아버지 곁에서 효도할 수 없을 때

2026.1.15

겨울날 오후의 햇살은 따스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쇼윈도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푸른 화초들로 가득한 창턱을 비추자 몇몇 화분들이 햇살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란위(藍羽)는 창밖을 보며 한 가닥 자유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3년 4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던 그녀는 형기를 마치고 막 석방된 참이었습니다. 란위의 언니 역시 두 번이나 체포된 적이 있었고, 아버지도 체포되어 3년 반의 형을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출소 후에도 여전히 중공 정부의 중요 감시 대상이었기에 온 가족이 십수 년 동안 모이지 못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의 도움으로 란위는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십수 년 동안 봉인해 두었던 그리움을 더는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버지를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란위는 벅찬 마음을 안고 아버지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습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란위는 차창 너머 저 멀리 택시 옆에 서 있는 한 환갑 노인을 보았습니다. 마스크가 노인의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란위는 그 노인을 유심히 살피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눈을 크게 뜨고 그 노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14년 동안 보지 못했던 아버지잖아?’ 모자챙 아래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였고 기억 속의 강건했던 몸은 더 이상 꼿꼿하지 않았습니다. 란위의 아버지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길가에 서서 무언가를 찾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차가 커브를 돌아 멈춰 서자, 란위는 망설일 겨를도 없이 차 문을 열고 아버지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녀는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나지막이 불렀습니다. “아빠!” 아버지가 “그래!” 하고 대답할 때쯤엔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란위를 재촉했습니다. “얼른 차에 타, 집으로 가자.”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저녁노을이 마을 구석구석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초겨울 저녁의 한기가 점점 짙어졌지만, 뺨을 스치는 바람에도 란위는 춥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분주하게 이부자리를 정리했고, 란위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란위는 따뜻한 행복감에 휩싸였습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벽에 걸린 CT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방 문을 열자 책상 위에는 약 봉지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란위는 아버지가 분명 편찮으시리라 짐작했고 속으로 꽤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란위는 아버지와 지난 세월 겪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폐결핵을 두 번이나 앓았고, 지금은 폐가 심하게 손상되어 찬 기운만 닿아도 숨이 차고 기침을 한다고 했습니다. 최근 2년 사이에는 담석증까지 발견되어 계속 약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더 심해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공 경찰의 끊임없는 괴롭힘 때문에 아버지는 9년 넘게 형제자매들과 접촉하지 못했고 교회 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몰래 아버지에게 하나님의 최신 말씀과 체험 간증 영상 등을 가져다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란위의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아버지는 중공의 핍박으로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딸인 자신은 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으니 자신이 너무 불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친척들은 란위가 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와 몇 번이고 당부했습니다. “네 아버지는 연세도 많으시고 몸도 안 좋으신데, 곁에서 돌봐 줄 사람이 없으면 안 돼. 네가 돌아왔으니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아버지를 잘 보살펴 드려라….” 친척들의 말은 란위의 마음을 때렸습니다. 란위는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날 낳아 길러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셨고, 올바른 인생길을 선택하도록 지도해 주셨어. 이제 아버지가 늙고 병드셨으니, 딸로서 책임을 다해야 해. 아버지 곁에서 말동무도 해 드리고 보살펴 드리면서 매일 즐겁게 해 드려야지.’ 그래서 란위는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인터넷으로 의사에게 문의하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약값이나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란위는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고,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 때마다 란위의 마음도 기뻤습니다.

어느 날 란위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리더에게서 편지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편지에는 란위가 집에 있으면 경찰이 언제든 찾아와 괴롭혀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고, 지금 교회에 문서 사역을 할 사람이 급히 필요하니 란위가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편지를 다 읽은 란위는 기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이미 몇 년 동안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는데,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리면서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란위는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병세가 악화되어 매일 담낭 통증을 겪고 있었는데, 만약 자신이 떠나면 나중에 아버지가 수술이라도 받을 때 누가 돌봐 줄지 걱정되었습니다. 그때는 곁에서 물 한 잔 떠주고, 약 하나 챙겨 줄 사람도 없을 것이었습니다. 란위는 언젠가 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했습니다. 언니가 수배되고 란위가 체포되어 형을 살자 친척들은 모두 아버지를 비난하고 원망했으며, 마을 사람들도 아버지를 피하고 멀리했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속 고통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져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였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나서야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란위는 몹시 걱정되었습니다. ‘내가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게 된 뒤에 혹시라도 아버지가 괴로워서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도 하시면 어쩌지? 아버지는 연로하셔서 보살핌이 필요한 때인데, 내가 집을 떠나면 친척과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불효막심하고 비인간적이라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집에 있으면 본분을 이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출소한 후 그때까지 경찰은 파출소에 와서 보고하고 회개 각서에 서명하라고 이미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앞으로 경찰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며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본분도 이행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란위는 차라리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침실에서 나와 거실 창문으로 아버지의 수척한 모습을 보았을 때, 란위는 마치 자신이 떠난 뒤 집에 홀로 남겨질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만 아버지를 돌봐드릴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됩니다. 아버지는 연세도 많으신데 곁에서 효도하지 못하니 제가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이 선택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친 후, 란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생활하는 환경과 처한 배경을 볼 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충돌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행할 수 있다. 너는 형식적으로 부모와 떨어질 필요가 없으며, 형식적인 의미에서 버리고 내칠 필요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 그러하겠느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충돌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러합니다.) 그렇다.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을 네 부모가 막지 않고, 그들 역시 믿으면서 네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것을 무척 지지하고 독려해 준다면, 너와 부모는 평범한 의미의 육체적 혈연관계가 아니라 형제자매 관계이다. 그러니 너는 형제자매의 관계로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 외에도 자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는 것 또한 마땅한 일이다. 너는 본분 이행이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즉 네 마음이 그들에게 속박받지 않는 상황에서 전화로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도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거나 생활 속 문제들을 처리해 줄 수 있고, 그들이 생명 진입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가능하다. 하나님 믿는 것을 부모가 막지 않는 상황에는 그 관계를 지켜야 하고, 너는 네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돌봐 주어야겠느냐? 너는 그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 때문에 너에게는 하나의 책임이 더 있는 것이고, 너는 그들에게 더 많이 안부를 묻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그들이 가로막거나 교란하지 않고 네 발목을 잡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그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만약 환경적 영향이나 방해로 인해 집에서 부모에게 효도할 수 없다면, 규례를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배치를 따르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무리하게 지키지 않아도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4)> 중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같지 않고 차이가 있다. 리더 일꾼의 경우,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으니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야지, 부모 곁에서 효도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한 가지 상황이다. 이 밖에 평범한 신자의 경우,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부모 곁에서 효도해도 된다. 열심히 효도해도 뭔가 상은 없고 축복을 얻을 수도 없겠지만, 효도하지 않는다면 인성이 없는 것이다. 사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일 뿐, 진리 실행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진리 실행이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자야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어쨌든,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4)> 중에서) 란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효도가 사람이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에 영향이 없고 환경이 허락되는 상황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할 책임을 이행해도 되지만, 만약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처한 환경과 자신이 이행하는 본분에 따라 저울질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자매들은 중공의 체포를 겪지도 않았고 교회의 중요한 사역을 맡지도 않아 본분을 이행하면서 동시에 부모님을 돌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중공에게 추적과 박해를 당해 집을 떠나지 않으면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부모님을 돌보는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먼저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란위는 자신이 집에 있으면 아버지를 돌볼 수는 있지만, 중공 경찰이 늘 괴롭히고 위협하기 때문에 집을 떠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당시 문서 본분에 사람이 부족하니, 자신은 교회 사역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피조물로서 사람은 부모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창조주를 경배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란위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요구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말입니다. 부모와 가정에 대한 정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택한 그들이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인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란위는 예전에 늘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가 가장 인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사람의 인성 유무를 가늠하시는 기준은 효도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있는지 여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란위는 자신이 본분을 앞에 두고 앞뒤를 재며 망설이고, 늘 아버지를 걱정하고 염려하느라 본분을 다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큰 효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더라도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었습니다.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었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살아가는 가치였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란위의 마음이 후련해졌고, 기꺼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란위는 아버지와의 석 달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집을 떠나 타지에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 그리고 죄책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언제쯤 다시 집에 가서 아버지를 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한번은 협력하는 자매가 볼일이 있어 집에 가게 되었는데, 자매가 곧 가족과 만날 것을 생각하니 란위는 더 이상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눈은 컴퓨터를 향해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의자에 앉아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뿐이었습니다. ‘경찰이 아버지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아버지의 상태는 어떠실까? 병세가 더 심해지지는 않으셨을까? 아버지가 아직 편찮으신데 나는 집을 떠났으니, 친척과 친구들이 나를 뭐라고 할까?’ 란위는 온통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맡은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란위는 자신의 내적 상태가 옳지 않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영 생활을 하던 중,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부모를 떠나는 것은 불효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의도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은혜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부모와 자녀를 떠나 각지로 하나님의 복음을 확장하러 갔던 것처럼, 그것은 인류 가운데 가장 정의로운 일입니다. 란위도 아버지 슬하에서 효도하고 싶었고, 아버지가 평안한 노년을 보내도록 곁에 있고 싶었으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체험적 인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자유가 없는 무신론 국가에서는 중공이 하나님을 믿고 바른길을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에, 아버지 곁을 지키면 본분을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사역은 곧 끝날 것이고 대재난은 이미 내렸으며, 아직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었습니다.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런 것들을 깨닫자 란위는 마음속으로 방해와 속박을 덜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란위는 본분을 이행하는 틈틈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나중에 란위는 아버지로부터 답장을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사촌 언니가 담석증 치료 처방을 구해 주어 아버지가 지금 두 번째 치료 과정의 약을 먹고 있으며, 담낭의 결석이 전보다 조금 작아져 예전만큼 아프지 않고, 아버지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대목을 읽은 란위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을 느꼈습니다.

한번은 란위가 섬김 본분을 이행하는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매는 자기 자녀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돈을 보내주고, 찾아올 때마다 물건을 사다 준다고 말했습니다. 란위는 자신이 집을 떠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중공의 핍박 때문에 아버지께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하고 옷가지나 영양제 하나 사 드리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똑같은 자식인데, 자신은 이만큼 자라도록 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다는 생각에 늘 아버지께 죄송했고,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 후 란위는 왜 늘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인지 궁금해 답을 구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서는 모두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우리 또한 이런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을 노하게 할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란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어릴 때부터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부모님이 어릴 때 나를 키워 주셨으니, 나는 부모님이 늙으시면 봉양해야 한다.’와 같은 전통 사상의 영향을 받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부모님이 수년간 힘들게 자신을 키워 주셨으니 마땅히 효도해야 하고, 늙으시면 노후를 책임지고 임종을 지켜드리는 것이야말로 양심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계속 망설였고, 자신이 불효자에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협력하는 자매가 부모님을 뵈러 집에 가는 것을 볼 때면 마음속으로 부러워했고,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에 사로잡혀 본분에 마음을 쏟지 못했습니다. 란위는 사탄이 바로 그런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그릇된 사상 관점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여, 사람이 오직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할 생각만 하게 하고 피조물의 본분은 다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자신이 계속 그런 전통 사상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면, 사탄에게 어리석게 놀아나고 고통받으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참으로 음흉하고 악독했습니다!

란위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 되었든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은혜라고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네가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누려야 할 하나의 권리이다. 너는 마땅히 양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성년일 때는 양육받는 것이 네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받은 것은 단지 너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지 부모의 은혜나 은정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번식하며 후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이다. 예를 들어 새, 소, 양 심지어 호랑이도 새끼를 낳은 후에는 키워야 한다. 후대를 키우지 않는 생물은 없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한다. 이는 생물이 생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생물의 본능이다. 그것을 은혜로 귀결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저 창조주가 동물과 인간에게 정해 준 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네게 책임을 다하고 심혈을 쏟고 돈을 썼다고 해서 너더러 갚으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라면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한다.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란위는 깨달았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 역시 부모로서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 주신 규칙과 법칙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낳아 기르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은 부모님의 양육과 교육을 은혜로 여겨서도 안 되고, 늘 마음에 담아 두고 갚으려고 생각해서도 안 되며, 올바르게 대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란위는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모와 가정을 안배해 주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살피고 지켜주고 계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란위는 자신이 18살 때, 한번은 퇴근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다가 길가의 큰 흙더미에 부딪혔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란위는 공중에서 360도 돌아 얼굴이 하늘을 향한 채로 길 한가운데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마침 큰 화물차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급정거했습니다. 하마터면 란위는 그 차에 깔릴 뻔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그 순간에는 부모님이 곁에 계셨다 해도 자신을 지켜 주실 수 없었겠지만, 하나님께서 남몰래 지켜 주신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란위는 또 자신이 체포되어 감옥에 있던 몇 년 동안, 아버지는 자신을 걱정하고 염려할 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란위는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질 때마다 하나님 말씀 찬양을 떠올렸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의지처이고, 자신이 가장 죄스러워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며,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본분을 다하여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체험으로 깨달았습니다. 만약 부모에게 효도할 생각만 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야말로 비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깨닫자, 란위는 마음속에 명확한 실행의 길이 생겼고, 기꺼이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란위는 아버지를 뵙지 못한 지 거의 2년이 되었습니다. 가끔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편지에는 경찰이 여전히 아버지를 괴롭히고, 몸이 아파 계속 약을 먹고 있으며, 가끔은 소극적으로 변하고 실의에 빠지며 외로움을 느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란위는 편지를 보면 마음속으로 또다시 아버지가 걱정되고 염려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부모가 하나님 손안에 있는데 네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 사람이 무슨 걱정을 하든 전부 쓸데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물 흐르듯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따라 마지막까지 살아가고 길을 끝까지 걸어간다. 조금도 빗나가는 법이 없다. 그러니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더 번뇌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인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했는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게 아닌지, 이것들은 네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네가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란위는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역시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그가 겪어야 할 환경은 모두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것은 모두 적합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란위는 자신이 집에 있을 때 아버지가 담석증으로 몹시 아파하셨는데, 자신은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런 도움도 드릴 수 없었고, 단지 아버지께 약을 드시라고 일깨워 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또 아버지가 이전에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져서 자살까지 생각했을 때, 자신은 곁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깨우치고 인도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셨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있었기에 아버지가 믿음을 갖고 그러한 환경들을 겪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줄곧 남몰래 사람을 보살피고 지켜주고 계시니, 자신의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자신은 마땅히 아버지를 하나님께 맡긴 채 안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란위는 아버지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바쁘지 않을 때면 란위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한동안 어떤 인식과 수확이 있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란위는 더 이상 아버지께 죄송한 내적 상태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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