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2026.1.15

저는 평범한 시골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늘 타지에서 일하셔서 집에 거의 오지 못하셨습니다. 저와 언니는 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저희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셨고,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족시켜 주려고 애쓰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감기몸살을 달고 살았고, 키가 훌쩍 크면서 무릎까지 자주 아팠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평소에는 고기 살 엄두도 못 냈지만, 어머니는 영양 부족이 제 성장에 방해가 될까 봐 자주 갈비찜을 해 주셨습니다. 제가 아플 때마다 어머니는 밤잠을 설쳐 가며 저를 돌봐 주셨습니다. 때때로 고열이 내리지 않으면 몹시 걱정하시며 밤새도록 알코올로 제 몸을 닦아 열을 내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세심하게 돌보셨을 뿐만 아니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도 효도를 다하셨습니다. 저를 데리고 외갓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평소에는 좀처럼 사지 못하셨던 과일이나 우유, 디저트 등을 사 가셨고, 제 앞에서 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 잘해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로 어느 집 애가 부모에게 불효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머니는 배은망덕하다며 부모가 헛키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가르침 속에서 어느새 저는 부모에게 효도해야만 좋은 사람이고,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있으며, 칭찬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불효하면 남들에게 손가락질받고,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 고개도 못 들고 다닐 거라고 여겼습니다. 제가 열네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시자 저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꼭 최선을 다해 엄마가 좋은 환경에서 사실 수 있도록 해 드릴 거야. 어릴 때 엄마가 나를 애지중지 보살펴 주셨던 것처럼 나도 엄마를 세심하게 보살펴 드리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실 수 있게 해 드려야지. 만약 그렇게 못 한다면 난 양심도 없는 거고, 사람 축에도 못 끼는 거야.’

2011년, 저는 운 좋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복음을 전하다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풀려난 후, 집에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고, 그 후 몇 년간 어머니 곁을 지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어머니와 다시 만나 보살펴 드리고 효도할 수 있기를 늘 마음속으로 바랐습니다. 2023년 3월경, 저는 갑자기 언니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어머니가 2년 전 갑작스러운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이미 침상에 누워 지내시며 혼자서는 일상생활조차 못하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심한 당뇨병까지 앓고 계셔서 당뇨발까지 와 발가락의 살이 짓물렀고, 최근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부디 빨리 집에 와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뵙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편지를 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어쩌다 이렇게 되셨지? 이게 정말 사실일까?’ 집을 떠나 있던 몇 년간 저는 언젠가 어머니와 다시 만나 보살펴 드리고 효도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게 해 드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소식은 청천벽력처럼 저의 모든 희망과 기대를 산산조각 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왜 어머니를 건강하게 몇 년 더 살게 해 주시지 않느냐고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제 수명을 줄여서라도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해 주십사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며칠이라도 편안하게 지내실 수만 있다면 제 수명이 몇 년 줄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니는 편지에서 어머니가 병을 얻은 지 며칠 안 되어 새아버지가 이혼을 요구했고, 어머니를 때리거나 욕하는 등 매우 함부로 대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병 때문에 이미 마음이 몹시 괴로우셨는데, 매일 새아버지의 학대까지 견디셔야 했고, 결국 심한 우울증까지 앓게 되셨습니다. 언니는 어쩔 수 없이 새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먹고 마시고 용변 보는 것까지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셔야 하는데, 언니는 출근해야 하니 혼자 계신 어머니는 목마르거나 배고프시면 어떡하실지, 누가 어머니를 돌봐 드릴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심한 병을 얻으셨으니, 늘 강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은 분명 몹시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속상해하실 때 누가 옆에서 위로하고 다독여 드릴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당장이라도 어머니 곁으로 날아가 말벗이 되어 드리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일상생활을 돌봐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전에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어 그때 돌아가는 것은 스스로 올가미에 걸려드는 격이었습니다. 집에 가서 어머니를 돌봐 드리고 마지막 모습을 뵙는 것은 사치스러운 희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동안 저는 몹시 괴로웠습니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본분 이행에 집중할 수도 없었으며,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지금 어떠실까? 주무시고 계실까? 아니면 병으로 고통에 시달리며 잠 못 이루고 계실까?’ 생각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목이 메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꼈습니다. 어느 날 밤에는 꿈에서 어머니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긴 양 갈래 머리를 땋고 즐겁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어머니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이 없으셨습니다. 마치 제가 보이지도 않고 제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잠에서 깨어 보니 꿈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더욱 슬퍼져서 또다시 한참을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며칠간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그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 몇 구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생로병사의 현실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직면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사람의 생존 규율인데 왜 받아들이지 못한단 말이냐? 네가 피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거나 큰 어려움에 처하신 걸 분석하거나 연구해 봤자 소용없으니 그러지 말고 진리 원칙에 따라 대해야 한다는 건 저도 알죠. 그런데 분석하고 연구하는 걸 자제하지 못하겠는걸요.” 자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핵심은 생로병사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규율이며, 어떤 사람도 바꿀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이 50, 60대까지 살면 몸에 노화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근육과 뼈가 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지며, 잠도 잘 못 자고, 감기에 쉽게 걸린다. 책을 읽고 일을 할 때도 기력이 부족해지고, 당뇨병, 관절염 같은 질환이 발병하며, 고혈압, 심장병 등 심뇌혈관 질병도 생긴다. … 이런 육체적 병고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 오늘은 저들이지만 내일은 너희나 우리가 될 수 있다. 나이와 규율, 운명에 따라 모두가 점차 늙어가고, 몸이 쇠약해지며, 병고가 심해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규율이다. 그저 부모가 너를 키워 주었고,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 너를 가장 신경 써 주는 사람이기에 그들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정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남의 부모야 죽든 말든 별생각 없는데 우리 부모님은 아프시면 안 돼. 부모님이 아프시면 나도 괴롭고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단 말야. 정 때문에 마음에 걸려!’ 그들이 네 부모라서 늙으면 안 되고 병들어도 안 되며 죽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 안 된다. 이는 진리가 아니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누구나 부모가 점차 쇠약해지고 병들어 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고혈압이나 심장병, 뇌졸중, 편마비 등이 올 수 있고, 갖가지 암에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구든 부모가 노쇠해지고 병에 걸리고 죽어 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 시기가 다를 뿐, 언제 이런 일이 닥치든 자녀라면 모두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성인이라면 성숙한 사고방식을 지녀야 한다. 사람의 생로병사에 올바른 태도를 보이고 정상적으로 직면해야지, 도피하거나 거부하거나 나아가 부모의 병이나 사망 소식을 듣고 충동적으로 원망의 말을 내뱉으며 하늘과 땅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생로병사의 현실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직면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사람의 생존 규율인데 왜 받아들이지 못한단 말이냐? 네가 피할 수 있겠느냐? 부모가 병들지도, 죽지도 않고 불로장생하기를 원하느냐? 그것이 규율에 부합하느냐? 가능하겠느냐? 어떤 피조물이 불로장생하더냐? 그런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이 사실을 너는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가 쇠약해졌다거나 병이 들었다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누구나 쇠약해지고 죽기 마련이다. 네 부모가 정상적인 사람인데 어째서 이 과정을 겪으면 안 된다는 것이냐? 부모는 이 과정을 겪어야 하며 너 역시 이를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조금씩 진정이 되었습니다. 생로병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 주신 생명의 법칙입니다. 당시 어머니는 예순이 넘으셔서 몸의 각 기관과 기능이 서서히 퇴화하고 있었으니,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기는 것도 정상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따지고 억지를 부리며 제 수명을 어머니의 건강, 장수와 맞바꾸려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피조물이고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정해 주신 생명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겪어야 마땅했습니다. 저는 제가 매일 겪는 일조차 결정하거나 바꿀 수 없으면서, 망령되게 어머니의 운명을 바꾸려 했으니, 정말이지 분수도 모르고 너무나 이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곧 세상을 떠나실 거라는 생각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머니가 그렇게 중한 병에 걸려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되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순종하고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제 내적 상태에 맞춰 의식적으로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루는 묵상 시간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어떤 병에 걸리든 너를 키우느라 고생해서, 네가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크고 중한 병에 걸리는 것도 너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너와 상관없다. 네가 아무리 효도하며 세심하게 보살펴 봤자 기껏해야 그들의 육적인 고통이나 부담을 조금 덜어 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병에 걸릴지, 어떤 병에 걸릴지,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등이 네가 그들 곁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는 것과 관계가 있겠느냐? 아무 관계가 없다. 네가 배은망덕하게 굴지 않고 효도하며 온종일 부모 곁을 지키고 보살핀다고 해서 그들이 병에 걸리지 않겠느냐? 결국 걸릴 병은 걸리고, 죽을 사람은 죽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으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실지, 얼마나 아프실지, 돌아가실지는 모두 하나님의 예정과 안배에 달려 있으며, 자녀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요. 자녀가 부모님 곁에 있든 없든, 부모님은 평생 겪어야 할 고난과 좌절, 환난을 피할 수 없으며, 자녀로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곁에 있었고 겉보기에도 건강해 보이셨지만, 예순쯤 되셨을 때 큰 병을 앓아 식물인간이 되어 침상에 누워 지내시며 먹고 마시고 용변 보는 일을 전부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하셔야 했습니다. 어머니와 외삼촌, 이모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대로 할아버지를 돌보며 매일 마사지를 해 드리고 말벗이 되어 드리는 등 몇 년간 정성껏 보살폈지만, 할아버지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중병으로 침상에 누워 계셨지만, 설령 제가 어머니 곁에서 일상생활을 돌봐 드린다 해도 저는 단지 어머니의 육신을 조금 편안하게 해 드릴 뿐, 어머니를 대신해 병의 고통을 겪을 수는 없었으며, 어머니가 회복되실지, 돌아가실지는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점을 깨닫고 나니, 어머니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니가 편지에 쓴 말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까마귀도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어린 양도 무릎을 꿇고 젖을 빤다잖아. 짐승도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아는데, 사람이 효도할 줄도 모른다면 짐승만도 못하지!” 그 몇 년간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집에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도 저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동네 이웃과 친척, 친구들이 저를 어떻게 말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분명 어머니가 위독하여 돌아가시기 직전인데도 집에 오지 않는 불효자식이라고 뒤에서 욕할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어릴 때부터 키워 주셨으니, 그 은혜는 제가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어머니가 최고의 삶을 누리시고, 먹고 입는 것 걱정 없이 행복하고 편안한 노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저는 돌봐 드릴 수조차 없으니, 스스로가 정말 짐승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에 마음이 칼로 베는 듯 아팠고, 키워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몰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너를 낳은 것에 대해 살펴보자. 네가 태어날 부모를 택한 것이냐, 아니면 그들이 너를 낳기로 택한 것이냐? 누가 누구를 택했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아니다. 네가 태어날 부모를 택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너를 낳기로 택한 것도 아니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운명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이 일은 사람이 이해하기 쉬우니 이 주제는 일단 제쳐 두고 이야기하지 않겠다. 네 관점에서 보면 너는 수동적으로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그들에 의해 태어났다. 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주관적으로 자식을 낳아 키우기를 원했다.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바는 차치하더라도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일은 부모 측에게 주도권이 있다. 그들이 너를 낳기로 선택했다면 너는 수동적으로 그들에 의해 태어날 뿐, 선택권은 없다. 그러므로 부모가 주도권을 갖고 너를 낳은 이상,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울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너를 공부시키는 것이든, 먹이고 입히는 것이든,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자 의무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너는 양육받는 동안 늘 수동적인 입장이다. 네게는 선택권이 없고 그들에게 양육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는 어리고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의 손에 수동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너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난다. 부모가 네게 좋은 것을 먹이면 좋은 것을 먹고, 부모가 네게 제공하는 생활 환경이 고달프고 빈곤하면 너는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양육받는 동안 너는 수동적이고, 부모는 책임을 다한다. 부모가 꽃을 키우는 것과 같다. 화분의 꽃을 키우기로 했으면 비료와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너를 극진하게 보살피든, 정성껏 보호하든, 결국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들이 너를 키우는 목적이 무엇이든 이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이 너를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렇게 본다면 부모가 네게 하는 것이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부모가 네게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은혜라고 할 수 없다. 화초를 하나 키워도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책임을 다하는데 그것도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은혜라 할 수 없습니다.)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작은 화초는 밖에서 더 잘 자란다. 땅에 심으면 햇볕을 쬐고 바람과 비를 맞아 더 튼튼하게 자라지만, 집에서 화분에 옮겨 심어 키우면 밖에서만큼 잘 자라지 못한다!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든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너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은 모든 생명에게 책임을 지고 사람이 생존해 나가면서 모든 피조물이 따르는 법칙을 따르게 한다. 그저 너는 한 사람으로서 부모가 양육하는 환경에서 생활하니, 마땅히 그 환경에서 자라야 할 뿐이다. 네가 그 환경에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고, 네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키워져 성인이 된 것 또한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어찌 되었든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이방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 또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도 있다. 이 얼마나 수준 높고 그럴싸한 말이냐! 사실, 그들이 말하는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나님이 각 생물에게 정해 준 법칙일 뿐이다. 사람을 포함한 각종 생물은 모두 이 법칙을 따르고 있으며, 이는 모든 생물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더욱 입증한다. 어떤 생물도 이 법칙을 깨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 생각해 보아라, 사자나 호랑이는 사나운 육식 동물이지만 새끼가 성체가 되기 전까지는 새끼를 기르며 물지도 않는다. 이것이 동물의 본능이다. 사납든, 온순하든 모든 동물은 이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따라야만 번식해 나갈 수 있다. 인류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각종 생물이 이 법칙을 따르지 않거나 이런 법칙과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번식할 수 없을 것이고, 먹이 사슬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바로 생물계가 이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각종 생물은 모두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성체가 될 때까지 암컷이나 수컷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각종 생물도 자기 새끼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극진하게 돌보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이 소위 고등 동물이라고 불리면서 이 법칙을 따르지 않고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동물보다 못하다. 그러니 부모가 너를 키우면서 얼마나 보살피고 책임을 졌든 그들은 그저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그들의 본능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이 좀 환해졌습니다. 후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생물에게 부여하신 본능이자, 생물에게 정해 주신 생명의 법칙입니다. 사나운 맹수든 온순한 동물이든 모두 이 법칙을 따르기에,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기로 선택한 이상, 자녀를 부양하고 돌볼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며,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그것을 갚아야 할 은혜로 여기고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까마귀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어린 양이 무릎을 꿇고 젖을 빠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이 생물들에게 정해 주신 법칙이자 생물의 본능적인 행동일 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동물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은혜를 갚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겉보기에는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부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운명을 주재하고 안배하고 계셨습니다. 문득 어머니가 예전에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를 낳기 전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세 살 때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저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언니를 똑같이 정성을 다해 돌보셨지만, 언니는 불행히 요절했고, 저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같은 어머니를 두었지만, 운명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저는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신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부양하고 돌보는 책임만 질 수 있을 뿐, 자녀의 운명을 주관하거나 바꿀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몇 년간 집을 떠나 있으면서 많은 어려움과 우여곡절, 좌절을 겪었습니다. 더는 나아갈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줄곧 저를 이끌고 도와주셨습니다. 한동안은 제 내적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었는데, 하나님께서 형제자매들을 통해 여러 차례 끈기 있게 진리를 교제하며 저를 돕고 붙들어 주셨고, 그 덕분에 저의 무감각했던 마음은 조금씩 깨어났고, 저는 자신을 반성하고 하나님께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필요에 따라 세심하게 여러 사람과 일, 사물을 안배해 주셨고,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 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 생명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니 속으로 크게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탄의 황당한 논리에 물들고 속아,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받아 누린 모든 것을 어머니의 노고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여겨, 본분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를 돌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제 내적 상태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본분 이행 성과에도 지장을 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폭로가 없었다면 저는 계속 그런 잘못된 관점 속에서 살며 괴로워하고 시달렸을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라는 것은 부모가 너를 여태껏 키워 주었으니 부모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부모에게 보답하지 못하고 보답할 기회나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너는 늘 괴롭고 죄책감을 느끼며, 심지어 누가 부모 곁에서 그들을 돌보거나 효도하는 모습을 보면 괴로워한다. 하나님이 네 부모로 하여금 너를 성인이 되기까지 키우도록 정한 것은 네가 평생 부모에게 보답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네게는 평생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고 가야 할 길이 있다. 네게는 너의 삶이 있으니 평생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에 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지 네 인생길에서 네 삶에 딸려 오는 일, 인성과 감정의 관계에서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하지만 너와 부모 간 어떤 인연이 있는지, 네 남은 인생에서 부모와 함께 살 것인지, 아니면 함께할 인연이 없어 떨어져서 살 것인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달려 있다. 만약 하나님이 너와 부모를 평생 멀리 떨어져 있게 배치하고 안배하여 늘 함께 생활할 수가 없다면 너는 그 책임을 그저 마음에 품게 될 것이다. 만약 네 인생에서 하나님이 너와 부모를 가까이 살게 안배해서 부모의 곁을 지키게 한다면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고 효도하는 것도 네가 해야 할 일이기에 그다지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네가 부모와 떨어져 있어서 효도할 기회가 없고 여건이 안 된다면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네가 효도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를 볼 면목이 없을 일도 아니다. 단지 여건이 따라 주지 못할 뿐이다. 너는 자녀로서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이해해야 한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만 신경 쓴다면 네가 이행해야 할 많은 본분에 지장을 줄 것이다. 너는 평생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하라고 준 일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갚는 것은 네 평생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보답하며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건이 되면 좀 효도하고, 책임을 조금 이행할 수 있으며, 여건이 안 되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니다. 그저 양심과 도의에 좀 어긋나고, 몇몇 사람들에게 질책받을 뿐, 최소한 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서 그랬다면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에 있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를 깨닫는다면, 설령 부모에게 효도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양육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사람의 사명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요. 만약 우리가 부모님과 함께 산다면, 힘이 닿는 데까지 부모님을 돌보고 효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다면, 그분들을 돌보지 못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빚진 마음을 가질 필요 없이, 자신의 본분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전과 기록이 남았습니다. 만약 당시 집으로 돌아간다면 제 발로 올가미에 걸려드는 격이라,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고사하고 제 자신의 신변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집에 돌아가서는 안 되었고, 마음을 다잡고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연세가 드셨으니 병에 걸리시거나 돌아가시는 것도 정상적인 법칙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돌보거나 효도할 수 없어 마음속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모두 안배해 놓으셨고, 생로병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제가 아무리 어머니를 걱정하고 염려해도, 심지어 곁에서 돌봐 드린다 해도 어머니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깨달은 후,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어머니의 병은 당신의 손에 있고, 어머니가 사실지, 돌아가실지 또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사실지도 당신께서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당신의 손에 맡기고자 합니다. 최종 결과가 어떻든 저는 당신의 지배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순종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볍고 자유로워졌고, 더는 그 일로 걱정하지 않게 되었으며, 차분히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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