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길러주신 은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중국 선밍(沈明)저는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경작으로 생계를 유지하셨습니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부모님은 건강이 안 좋으셨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양쪽 다리가 다 아프셔서 심할 때는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늘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중화 민족의 전통 미덕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부모님도 항상 그렇게 저를 교육하셨고, 더군다나 행동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할머니 댁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버지는 본인 집 일을 내려놓고서라도 할머니를 도우러 가셨고, 주말에는 저희까지 동원하여 할머니 댁 농사를 도와 드렸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항상 밭에서 일하셨고, 어린 저희 자매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도 저희를 돌봐 주지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할머니를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돌봐 드렸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드리고, 아프면 병원에도 모셔 갔습니다. 친척이나 친구, 주변 이웃들 모두 부모님을 효성도 깊고 인성도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다음에 부모님 같은 사람이 돼야지. 부모님을 공경하고, 시부모님께 효도해야 인성이 좋은 사람이야.’
2013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남편은 중공이 퍼뜨린 유언비어를 믿고 제가 하나님 믿는 일을 반대하다가 2014년에 저와 이혼했습니다. 이혼 후에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부모님을 돌보고 두 분 대신 집안일도 했습니다. 2017년, 저는 외지로 나가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집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경찰이 집으로 찾아가 하나님을 믿지 말라며 부모님을 위협하고, 제 사진을 요구하면서 제 행방을 물어보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예순을 눈앞에 두신 부모님은 건강도 좋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몇 년 전에 다리가 심하게 골절된 뒤로 후유증을 앓으셔서 다리 통증이 심할 때는 일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부모님만 생각하면 언제 돌아가서 한번 뵐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2019년 8월,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집을 찾아갔습니다. 부모님을 본 순간, 부쩍 늘어난 주름살과 하얀 귀밑머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 몸도 많이 여위셨습니다. 마음이 아리고 괴로웠습니다. 부모님은 저희 자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이렇게 나이 들어 건강도 좋지 않은 지금도 여전히 힘들게 농사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딸인 제가 곁에서 돌봐 드리지도 못하고 일도 덜어 드리지 못하는 것이 불효를 저지르는 것만 같아서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고모도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너는 몇 년을 밖에 있으면서 집에 한 번 다녀가질 않니. 아버지 어머니 나이도 많으신데. 앞으로 두 양반이 병 들고 무슨 일이 생겨도 옆에서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잖니. 며칠 전에 너희 아버지가 농약을 치다가 날씨가 더워서 중독되었다. 제때 병원에 안 갔으면 비명횡사할 뻔했어.”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괴로웠습니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저는 곁에서 두 분을 돌봐 드리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니까 부모님이 저를 키우신 게 다 헛수고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친척들 눈에 비친 저는 철 들고 효심 깊은 아이였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불효자, 배은망덕한 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는 제가 가장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가정도 직업도 없다 보니, 당신이 악착같이 일하시는 것도 다 저 때문이라고, 돈 많이 벌어서 저에게 주고 싶어서라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제가 잡혀갈까 걱정되어 밤새 잠도 못 주무시고 매일 조마조마하시다고, 마을 위원회 전화만 오면 제가 경찰에 잡혀간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듯했고, 그만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이렇게 나이 드신 부모님을, 돌봐 드리지는 못 할망정 나 때문에 노심초사하게 만들다니, 난 정말 불효막심해!’ 접대 가정으로 돌아와도, 아버지가 하신 그 말씀들, 아버지의 그 초췌한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무척 괴로웠습니다. ‘외지에서 본분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지 않겠어?’ 이런 생각을 하니 외지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돌봐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고, 더 이상 저 때문에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에게 아직 쫓기는 몸이라 돌아가면 잡힐 가능성이 컸습니다. 게다가 본분이 한창 바쁠 때 그것을 내팽친다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닐까요? 며칠 동안 속으로 무척 갈등하며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내적 상태로 살다 보니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사라지고, 결국 본분을 그르쳤습니다. 저는 제 내적상태가 옳지 않은 것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제가 옳지 않은 내적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빌었습니다.
묵상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진리겠느냐? (아닙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옳고 긍정적인 사물이다. 그런데 왜 진리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사람은 원칙 없이 부모에게 효도하며, 부모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방법은 진리와 관계가 있다. 만약 부모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네게도 잘한다면 너는 효도하겠느냐? (효도할 것입니다.) 어떻게 효도하겠느냐? 형제자매와 다르게 대한다면, 부모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며, 부모가 나이가 들면 곁에서 돌봐 주면서 본분을 이행하러 가지 않는다면, 이러는 것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럴 때는 상황을 보아야 한다. 만약 네가 집 근처에서 본분을 이행하여 부모를 돌볼 수 있고 부모도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면, 자식의 책임을 다해 부모의 일손을 도와주면 된다. 부모가 병에 걸리면 돌봐 주고, 부모에게 힘든 일이 있다면 위로해 주어라. 또 경제적인 여건이 된다면 적당히 영양 보조 식품을 사 주어라. 하지만 네가 본분으로 바쁜데 부모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면, 또 부모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럴 때는 어떻게 선택해야겠느냐? 네가 실행해야 할 진리는 무엇이겠느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사람의 책임이나 의무에 불과한 이상, 네 의무가 본분과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본분을 위주로 하고, 본분을 일 순위에 놓아야 합니다.) 의무가 꼭 본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분 이행을 선택하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지만,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진리 실행이 아니다. 만약 조건이 된다면 그 책임과 의무를 이행해도 되겠지만, 당장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저는 본분을 이행하러 가야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겁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만, 진리 실행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서 본분을 위주로 하고 본분을 지켜야 한다. 만약 지금 네가 본분이 없고 외지에서 사역을 하지도 않으며 부모 곁에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부모를 돌봐 주며 최선을 다해 부모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덜 고생을 하게 해도 되지만, 그것도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봐야 한다. 만약 부모가 인성이 좋지 않고, 늘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가로막고, 네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네가 실행해야 하는 진리는 무엇이겠느냐? (그들을 저버려야 합니다.) 이럴 때는 저버려야 한다. 너는 의무를 다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네게는 그들에게 효도할 어떤 의무도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한 가족이고 너의 부모겠지만,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너희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그들은 사탄을 신봉하고 마왕을 받들며 사탄의 길을 걷고 있으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이고, 한 가족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적이나 원수로 여기니 네게는 그들을 돌봐 줄 의무가 없다. 그들을 철저히 저버려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 이행 중 어떤 것이 진리겠느냐? 당연히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이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부탁이 있는데 그것은 네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 책임은 진정한 책임으로, 창조주 앞에서 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창조주의 요구이자 인생의 큰일이기도 하다. 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그저 자식의 책임이자 의무일 뿐, 절대 하나님의 부탁이 아니고, 나아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 이행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일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오직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진리이고, 천직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사람에게 효도하는 것으로, 본분 이행에도, 진리 실행에도 속하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긍정적인 사물이고, 정상 인성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하나님 믿으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계속 지지해 주셨으며,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것은 제가 딸로서 다해야 할 도리입니다. 상황이 허락하고 여건이 되는 경우에는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돌봐 드리고, 근심과 걱정을 덜어 들이면서 딸로서의 도리를 다하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경찰에 쫓기느라 집에서 두 분을 돌봐 드릴 수가 없는 데다, 본분도 바쁩니다. 지금은 본분을 위주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또 한 가지 깨달은 점은, 피조물로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제 사명이자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고, 반드시 완수해야 할 천직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딸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 진리를 실행한다는 뜻도 아니고,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과 본분이 충돌하면 저는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이 점을 인식하자 더는 고민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본분에 전념하고 싶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제 내적 상태를 조금 인식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과 영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일을 여전히 간파하지 못하고 진리를 정말 모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속적인 관계를 타파하지 못하는데, 그에게는 그런 용기와 믿음도 없고, 그런 의지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제 고통의 근원이 바로 전통 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선생님은 저희에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고, 이것이 중화 민족의 전통 미덕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부모님도 저에게 어른이 되면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하셨고, 나아가 당신들이 몸소 실천하며 저희에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어린 제 마음에 심어진 그런 사상으로 인해 저는 부모님께 효도해야만 효자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효를 다하지 못하면 불효자,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것이고,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느라 부모님을 돌보지 못했을 때, 저는 스스로를 불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제가 잡혀갈까 걱정되어 조마조마하게 지내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더더욱 제가 불효하게 느껴졌습니다. 부모님을 돌봐 드리지는 못 할망정 저 때문에 걱정하게 만들다니, 정말 부모님께 죄스러웠습니다. 저는 ‘효는 모든 선행의 으뜸이다’, ‘자식 키워서 노후를 대비한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마라’ 등의 전통 사상에 얽매이고 속박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곁에서 돌봐 드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심지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어져서, 본분도 건성으로 이행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순간 저는 사탄이 주입한 이런 전통 사상이 제가 하나님을 떠나고 배반하게 만들었고, 저도 모르게 하나님 반대편에 서게 만들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은혜 시대의 베드로가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가정과 부모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여기저기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길렀습니다. 또 하나님 뜻을 헤아린 서양 선교사들은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가정과 부모, 자식을 버리고, 만리 길을 마다않고 중국에 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인성 있고 양심 있는 사람입니다. 재난이 점차 커지고 하나님나라 복음이 크게 확산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더 많은 사람이 일어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저는 그토록 많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또 진리도 일부 깨달았기에, 피조물로서 마땅히 하나님 마음을 헤아려 복음을 전하고,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그들이 하나님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인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자 본분 이행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집에서 또 편지가 왔습니다. 2022년 8월 파출소 사람들이 집으로 저를 잡으러 왔습니다. 아버지가 제가 집에 없다고 하자 그 사람들은 믿지 않고 몰래 저희 집 창고에 도청기를 설치했습니다. 하루는 오후에 파출소에서 네 사람이 왔습니다. 그들은 총을 가지고 저를 잡으러 와서는 부모님을 집에서 쫓아낸 다음 집안을 십여 분 동안 수색했습니다. 파출소 사람들은 또 집안 친척들에게 전화해서 제 행방을 묻기도 했습니다. 편지를 읽고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눈물이 와락 쏟아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몇 년째 저는 밖에서 본분을 하고 있고, 부모님은 제가 잡혀 갈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경찰은 저를 잡기 위해 집안에 감청기까지 설치하고, 부모님은 말년을 경찰의 감시 아래 보내고 계십니다. 부모님이 이런 고초를 겪으시는 것은 다 저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마음이 괴로워서 평온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옳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보았던 하나님 말씀이 떠오르자 얼른 찾아서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가정을 버림으로 인해 이름이 알려지자 정부에서는 수시로 그의 집을 찾아가 수색하며 그의 부모를 괴롭히고, 그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이에 이웃사람들은 “양심도 없지.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고 말이야. 효도는 고사하고 부모에게 이렇게 많은 폐를 끼치다니 불효자야!”라고 비난했다. 이 비난에 진리에 부합하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이 이방인의 눈에는 옳은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이방인들 사이에서 이런 관점은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윤리에 부합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신의 기준에도 부합한다. 그 기준 안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들어 있든, 예컨대 부모를 어떻게 공경해야 할지, 부모를 어떻게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할지, 부모에게 얼마나 보답해야 할지 등의 기준이 진리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그 기준은 이방인의 눈에 긍정적인 사물이자 긍정적 에너지, 옳은 것으로 보이며, 어떤 집단에서도 질책받지 않는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기준은 바로 이런 것인데, 네가 이런 것들을 해내야 남들 눈에 기준에 맞는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 너 또한 이렇게 처신하는 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게다가 너는 이러한 것들로 자신을 평가하고 제약하며, 스스로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요구했다. 만약 네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네 처신의 기준 안에는 분명 이 한 가지가 들어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어떻게 효도할 것인지, 어떻게 부모의 걱정을 덜어 줄 것인지, 어떻게 부모를 자랑스럽게 하고 체면을 살려 주고 조상을 빛낼 것인지 등은 네 마음속에서 처신의 기준이자 방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를 듣고 난 후, 네 관점은 바뀌기 시작했다. 너는 모든 것을 버리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사람이 그렇게 처신하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임을 아직 확신하지 못했을 때, 너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모순적인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끊임없는 양육과 목양을 통해 조금씩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너는 비로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람의 전통 관념과 상상 속 처신의 기준을 철저히 저버렸다.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할 때 이방인의 판단과 정죄의 말에 통제되지 않고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이끄심으로 제가 또 사탄이 주입한 전통 문화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몇 년째 저는 계속 부모님을 돌봐 드릴 수 없었고, 지금은 또 제 문제로 경찰이 저를 잡으러 집으로 찾아갑니다. 부모님은 이웃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오랜 시간 경찰에게 시달려야 하고, 동시에 제 안위도 걱정해야 합니다. 저는 부모님이 겪는 이 모든 고통을 제가 초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만 아니었으면 부모님도 그런 고초를 겪지 않으셨을 것이고, 그러니 제가 불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물을 보는 관점은 이방인과 같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추구했을 뿐,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공 경찰은 총을 들고 사람들을 동원해서 저를 잡으러 집으로 찾아가고, 거기다 부모님을 위협하며 제 행방을 물었습니다. 부모님에게 그 많은 고통을 안긴 원흉은 누가 뭐래도 큰 붉은 용입니다. 하지만 저는 큰 붉은 용을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제가 하나님을 믿어서 부모님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제가 시비를 분별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부모님이 겪은 고통을 제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또한 언제나 부모님께 죄스러운 내적 상태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본분을 잘 이행하고 굳게 서서 증거하여 사탄에 치욕을 안겨야 합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정말로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면 부모가 한평생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복을 누릴지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한다. 네 효도 여부에 따라 무엇이 바뀌지는 않는다. 네가 효도한다고 그들이 고생을 덜 하거나 네가 효도하지 않는다고 그들이 고생을 더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운명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이 예정해 두었다. 그 모든 것이 그들에 대한 너의 태도에 따라, 너와 그들 사이의 정이 얼마나 깊은지에 따라 바뀌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운명이 있다. 그들이 이번 생에 빈곤할지 부유할지, 잘 풀릴지 안 풀릴지, 생활의 질이 어떻고, 물질적인 혜택이 어떻고, 사회적 지위가 어떻고, 생활 현황이 어떨지, 그 모두는 너와 별 관계가 없다. 네가 그들에게 죄책감이 드는 것 같고, 그들에게 빚을 진 것 같고, 그들 곁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자. 설령 네가 그들 곁을 지킨다고 한들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느냐?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두 가지 원인이다. 이 외에 한 가지 원인이 더 있다. 만약 부모가 하나님 믿는 것을 유난히 박해하고 가로막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부모가 지지했다면, 혹은 너처럼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였고 모두가 하나님 집의 사람이었다면 마음속에 부모가 떠오를 때 묵묵히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부모를 하나님 손에 맡기고 그들의 건강과 안전, 그들 생활에 필요한 것 일체를 하나님 손에 맡기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네가 부모를 하나님 손에 맡긴다면 그들에게 최고로 효도하는 것이다. 너는 그들의 생활에 온갖 난관에 부딪치기를 바라지 않고 그들이 잘살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너는 마음속으로 분명 그들이 평안하도록 하나님이 지켜 주기를 바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본분을 이행하고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 사람은 인성으로 그 정도에만 이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그토록 많은 진리를 들었으면 최소한의 인식과 이해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하며, 사람은 하나님 손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지킴이 자녀의 걱정과 효도, 자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이 부모를 보살펴 주고 지켜 준다면 네 마음이 푹 놓이지 않겠느냐?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네가 걱정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작은 것이다. 만약 네가 정말로 그들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린다면 자주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그들을 하나님 손에 맡겨 하나님이 지배하고 안배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매일을 주재하며 그들에게 닥치는 모든 일을 주재하는데, 네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 너는 너 자신도 주재하지 못하고 네 코가 석 자이다. 네가 무슨 수로 부모를 매일 행복하게 해 주겠느냐? 너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에게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결국에는 구원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해라. 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들이 원하는 길을 걸으라고 해라. 조금 낫고 인성이 조금 있는 부모라면 여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행할지는 하나님의 안배가 있을 것이니 사람은 순종해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저는 늘 부모님 곁에서 효를 다하지 못하는 것은 양심 없고 이성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진정한 불효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거나 부모와 가까이 살아서 얼마든지 부모를 돌볼 기회가 있어도 개인의 이익과 육의 누림을 위해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않고, 부모가 늙고 병들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불효자이고 인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예전에 집에 있을 때 본분을 이행하면서 동시에 부모님을 돌보았습니다. 부모님 대신 집안 일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 제가 부모님을 돌봐지 못하는 것은 양심을 잃어버리거나 인성이 없어서가 아니며, 자식된 도리를 피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큰 붉은 용에게 쫓겨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제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어서입니다. 이것은 제 사명입니다. 부모님을 돌보느라 제 본분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집에서 시간이 있어도 부모님에게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며, 마땅히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근거로 이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저는 부모님이 평생 얼마나 고생하고 어떤 고난을 겪을지, 말년이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모두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지, 제가 돌보고 말고와도, 제가 곁에 있고 없고와도 관계가 없고, 저는 결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집에 있었을 때 어머니 다리에 활막염이 생겨서 제가 어머니 대신 집안 일을 하고 곁에서 돌봐 드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돌봐 드렸다고 해서 어머니의 통증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집을 떠난 몇 년 사이에 어머니는 다리가 점점 좋아져서 지금은 어떤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부모님이 잘 지낼지 못 지낼지, 말년 생활이 어떨지는 모두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부모님을 하나님 손에 맡기고 하나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했던 하나님 말씀은 무슨 뜻이냐?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혼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오고,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부모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대자연에서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단지 우리 육만 부모를 빌려서 나왔고, 우리 자식은 우리를 빌려서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에게 달렸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자 하나님이 정한 운명,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에게도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할 필요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에게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사람의 일생에서 반드시 완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너는 합격된 피조물이 아니다. 사람이 볼 때 너는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주부, 효녀, 사회의 선량한 시민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 자신의 의무와 본분을 전혀 다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부탁을 받고도 완성하지 못한 사람, 도중에 포기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이런 사람은 눈곱만큼의 가치도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 덕분입니다. 하나님은 제게 생명을 주시고 계속 공급하시면서 제가 오늘까지 오도록 보살피고 지켜 주셨습니다. 제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지 부모님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저를 위해 하신 모든 것은 사실 부모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신 것입니다. 부모님이 저를 위해 무엇을 하셨든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가 가장 감사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지 부모님이 아닙니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니 저는 줄곧 전통 문화의 사상 관점에 기대어 살아 왔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사람됨의 준칙으로 삼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본분을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돌봐 드릴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아무리 부모님을 잘 돌봐 드린다 해도 그것은 진리의 실행이 아니고, 양심 있고 이성 있는 행위도 아닙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만이 진정 인성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지금도 가끔 부모님이 생각나고 걱정되기도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통해 사람이 평생 얼마나 고생하고 어떤 일을 겪어야 할지는 모두 하나님 손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부모님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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