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대하는 법
일본 다이앤(Diane) 2012년 우리 가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뭔지 알게 됐고 누구든 이 세상에 올 때는 사명을 가지고 오며 사람은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2019년 6월, 저는 외지로 나가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일 년이 넘도록 집에 돌아가지 않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이 저와 어머니를 신고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집에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고, 어머니도 뵈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늘 어머니가 염려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연세도 많으신데,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곁에서 돌봐 드릴 가족이 아무도 없어. 더군다나 남편에게 신고를 당해서 형제자매들을 만나실 수도 없는데 지금 내적 상태가 괜찮으신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네.’ 어머니는 저를 키우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연로해서 시중 들 사람이 필요할 때 제가 곁에서 효를 다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저 때문에 연루되어 조마조마하게 지내고 계셨습니다. 이런 생각만 하면 무척 괴롭고,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기회가 있으면 가서 어머니를 찾아 뵙고, 딸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갔다가 경찰에 잡힐까 두렵기도 하고, 본분까지 바빠서 끝내 어머니를 뵈러 가지 못했습니다.
2023년 7월, 예배 시간에 한 자매로부터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혼자 생활하실 수 없어 양로원에서 지내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저히 제 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알츠하이머에 걸리셨지? 혼자서 생활이 힘드신데 옆에서 보살펴 드릴 가족이 없으니 얼마나 고생하실까!’ 저는 겨우 감정을 억누르며 예배를 마쳤습니다. 밤이 되어 조용해지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 알츠하이머에 걸리셨을까? 다른 병이면 최소한 정신은 또렷하니까 병이 닥친 다음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해서 공과를 배우면 호전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이성이 정상이 아니야. 그러면 구원받을 희망이 어디 있겠어?’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건, 아마 남편이 저와 어머니를 신고해서 당신도 정상적인 예배와 본분 이행이 불가능한 데다 제 안위까지 걱정하느라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셨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어서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면서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며 붙잡아 드리고 도와드렸더라면 아마 그런 병에는 걸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내 보살핌이 가장 절실한 지금, 정작 곁에 있어 드리지도 못하니 딸을 키운들 무슨 소용이야?’ 어머니에게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한동안은 본분을 할 마음도 생기지 않고, 심지어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한 것이 후회되기까지 했습니다.
책임자는 제 내적 상태를 알고,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어 주었습니다. 『부모가 중병에 걸리거나 큰 어려움에 봉착한 일을 지나치게 분석하고 연구할 필요는 없다. 네 힘을 들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 부질없는 짓이다.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생로병사나 크고 작은 일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네가 성인이라면 네 생각이 성숙했을 테니 이 일을 냉정하고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면 날 생각하느라 그런 거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나 돼? 생각이야 했겠지. 자기 자식인데 어떻게 생각을 안 할 수가 있겠어? 나도 부모님을 생각하는데 어째서 나는 병에 걸리지 않는 거지?’ 병에 걸리는 사람은 모두 자식이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겠느냐? 그런 게 아니다. 그럼 부모가 큰일을 당하는 것은 어찌 된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에 그 일을 배치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하나님의 손으로 배치한 것이니 객관적 원인이나 이유를 들이댈 수 없다. 그저 부모가 그 나이가 되면 그 일이 일어나고 그 병에 걸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네가 곁에 있다고 피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그들의 운명에 병에 걸리는 일을 안배하지 않았으면 네가 그들 곁에 없어도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의 인생에 그런 큰일이 일어나도록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네가 그들 곁에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들은 여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보아라. 온 식구가 해마다 같이 있지 않더냐? 부모에게 큰 어려움이 닥치면 가족과 자녀가 모두 부모 곁에 있지 않더냐? 부모가 병에 걸리거나 병세가 악화되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겠느냐? 그런 게 아니라 그럴 운명이었던 것이다. 단지 자녀로서 부모와의 혈연관계 때문에 남이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네가 들으면 괴로운 것일 뿐이다. 이는 정상이다. 하지만 부모가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네가 분석하고 연구하며 어떻게 벗어나고 해결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부모도 성인이고 사회에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그들이 그 일에서 벗어나게끔 환경을 안배한다면 그 일은 조만간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만약 그것이 그들이 겪어야 할 인생의 고비 중 하나라면 얼마 동안 겪어야 할지는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것이니 피해 갈 수 없다.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그 일의 근원과 인과관계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이며 부질없고 쓸데없는 짓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생로병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으로, 사람이 일생에서 어떤 시련을 겪고 얼마나 고생할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저는 사람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연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신 것은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고통이고, 어머니 자신의 운명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저를 걱정해서, 혹은 제가 곁에서 보살펴 드리지 못해서 그렇게 되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곁에서 보살펴 드리면서 생명 진입을 도와드렸다면 어머니가 병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는 제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고, 치우친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부모들 중에는 자식들이 곁에서 함께하며 보살펴 주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걸릴 병은 걸리고, 죽을 때가 되면 죽습니다. 자식들이 곁에서 보살핀다고 큰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어떤 병에 걸리고 어느 정도로 아프실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그저 돌봐 드릴수만 있을뿐,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순종하여 어머니의 병을 하나님 수중의 지배와 안배에 맡기고 본분에 몰두해야 합니다.
2024년 1월, 돌연 어머니가 한 달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빨리 가시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어머니를 뵈러 갈 기회가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미처 효도를 다하기 전에 어머니는 영원히 떠나셨고, 제가 어머니에게 효도할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습니다. 당시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하나님께 당신을 원망하고 오해하지 않게 지켜 달라고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오후 내내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셔도 돌봐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실 때도 마지막 모습을 뵙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자책감이 들고 죄스러웠습니다. 친척과 지인들이 저더러 양심도 없다며 욕하고, 은혜도 모르는 불효자라고 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 며칠은 본분을 이행하긴 했지만 기운도, 의욕도 없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병으로 고통받는 어머니 모습 뿐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제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셨을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생각할수록 어머니에게 죄송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동안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계속 그렇게 지내다가는 위험할 것 같아서, 하나님께 정의 속박에서 벗어나 교란되지 않도록 저를 이끌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때 본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무척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병에 걸린 것도 아주 뜻밖인데 부모가 세상을 떠난다면 더 뜻밖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일로 생긴 뜻밖의 충격이 네 본분 이행과 걸어가는 길에 타격이나 지장을 주고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해결할 수 있겠느냐? 먼저 죽음이 대체 무엇인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것은 인간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육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생명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세계에서 제명되어 사라지면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형태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명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너와 그의 관계가 제거되고 사라지며 종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또 다른 형태로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는데, 그 다른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 다시 인간 세상으로 올 수 있는지, 너와 만날 수 있는지, 너와 어떤 육적인 관계나 감정적인 갈등이 생길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은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니 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결론적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는 것은 인간 세상에서의 사명이 끝났고 매듭지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의 평생의 사명이 끝나면 너와 그의 관계도 그렇게 끝나게 된다. … 부모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네가 듣는, 그들에 관한 마지막 소식이자 네가 보고 듣는, 그들이 인생에서 경험하는 생로병사의 마지막 관문이다. 그뿐이다. 그들의 죽음이 네 무언가를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고 네게 무언가를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죽는 것이고, 사람으로서의 이번 여정을 마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죽음이 사고사인지, 자연사인지 아니면 병사인지 등 이런 것을 상관할 필요가 없다. 결국,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이나 세력도 그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오직 그들의 육적 생명의 종료를 의미할 뿐이다. 네가 만약 부모를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며 또는 정 때문에 부모에게 죄스럽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은 죽었으니 네가 아무리 생각해 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 ‘오랜 세월 부모님은 내가 보고 싶지 않으셨을까? 이렇게 오랫동안 부모님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줄곧 부모님 곁에서 며칠이라도 모시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어. 너무 괴롭고 죄스러워.’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이는 너와 무관한 일이다. 왜 관계가 없겠느냐?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든, 부모와 함께하든 그것은 하나님이 네게 준 의무나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로 인해 얼마나 복을 누리든, 얼마나 고생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너와 추호도 관련이 없다. 네가 곁에서 함께한다고 해서 그들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네가 부모와 떨어져 있어서 늘 곁을 지켜 주지 못한다고 해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수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으로, 너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니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부모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 죄책감을 갖지 말고 올바르게 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분명했습니다. 사람의 생로병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한 것입니다. 사람이 몇 살까지 살고 어떤 식으로 죽을지, 정상적인 죽음일지 불의의 사고일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며,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실지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안에 있었고, 어머니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지금은 어머니 수명이 다했으니 자연스럽게 떠나야 하고, 제가 곁에서 보살펴 드린다 해도 어머니 생명을 붙들어 둘 수는 없습니다. 전에 아버지가 편찮으셨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 가 치료도 하고 곁에서 몇 개월을 정성껏 보살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람의 생로병사는 하나님이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 드릴 수도, 수명을 늘릴 수도 없고, 이성적인 태도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 온갖 병고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의사도 어머니가 오래 사시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어머님이 하나님을 믿은 뒤로 앓던 온갖 병들이 호전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일흔이 넘도록 사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입니다. 이 점을 인식하자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대할 때도 그렇게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방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 또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도 있다. 이 얼마나 수준 높고 대범하고 품위 있는 말이냐! 사실, 그들이 말하는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나님이 각 생물에게 정해 준 법칙일 뿐이다. 사람을 포함한 각종 생물은 모두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 생물마다 그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모든 생물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한층 더 입증하는 것이다. 어떤 생물도 이 법칙을 깨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 생각해 보아라, 사자나 호랑이는 사나운 육식 동물이지만 새끼 때는 성체가 되기 전까지 길러지고 물지 않는다. 이것이 동물의 본능이다. 사납든, 온순하든 모든 동물은 이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따라야만 번식해 나갈 수 있다. 인류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각종 생물이 이 법칙을 지키지 않거나 이런 법칙과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번식할 수 없을 것이고, 먹이 사슬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바로 생물계가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성체가 될 때까지 암컷이나 수컷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각종 생물도 자기 새끼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극진하게 돌보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이 자칭 고등 동물이라고 하면서 이 법칙을 지키지 않고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동물보다 못하다. 그러니 부모가 너를 키우면서 얼마나 보살피고 책임을 졌든 그들은 그저 피조된 인류의 능력 범위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그들의 본능이다. … 각종 생물이나 동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가지고 있고, 이를 잘 지키고 제대로 실행한다. 아무도 이를 깨뜨릴 수 없다. 이 외에도 특별한 동물이 있다. 호랑이, 사자와 같은 동물들은 성체가 되면 부모에게서 떨어진다. 심지어는 수컷끼리 경쟁하며 물 땐 물고, 겨룰 땐 겨루며, 싸울 땐 싸우기도 하는데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것이 법칙인 것이다. 그것들은 정에 얽매이거나 인간처럼 정에 빠져 살지 않는다. “은혜에 보답하고 은혜를 갚아야 돼.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지 불효하면 남들이 비난하고 욕하며 뒤에서 험담할 거야.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어!”라는 말은 동물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사람은 이런 말을 하겠느냐? 왜냐하면 사회나 사람들 가운데에 여러 가지 잘못된 사상과 여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런 잘못된 사상과 여론에 영향을 받고 물들고 부식되고 나면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다루게 된다. 결국, 부모를 자신의 채권자로 삼고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모가 죽으면 부모가 기뻐하고 원하는 걸 해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부모의 은혜에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불필요하지 않으냐? 사람이 정에 빠져 살면 정에서 비롯된 여러 생각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이유는 바로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 ‘자식 키워서 노후를 대비한다’와 같은 전통 문화에 물들고 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힘들게 키워 주시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공부 시켜 주셨는데, 길러 주신 은혜를 아직 갚기도 전에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셨는데, 어머니께 길러주신 은혜마저 보답하지 못하면 그것은 정말 대역무도하고 금수만도 못한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이런 전통 문화를 긍정적인 사물로 생각하고, 사람됨의 준칙으로 여기면서 제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단지 제 육을 낳아 사람으로 키워 주셨을 뿐이고, 게다가 부모님이 저를 위해 하신 모든 것은 자신들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자라는 동안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까지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한 번은 친구와 강에서 배를 타는데 그만 배가 뒤집혔습니다. 저희 둘 다 강에 빠져서 하마터면 익사할 뻔했지만, 마침 강변에서 낚시를 하던 어른 두 분이 저희를 구조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운이 좋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인간을 보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제서야 그 일이 사실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부모님이 저를 보살피고 키우신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에 감사하며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지는 않고, 그저 어머니를 돌봐 드리지 못한 것만 죄송스럽게 생각했고, 그 때문에 본분마저 지장을 받았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더욱 더 자책과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심지어 처음부터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한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건 양심이 없는 것 아닌가요? 저는 이런 전통 문화와 사상에 물들고 해를 입어서 정말 시비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저는 두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통해 부모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를 대할 때 자녀의 의무를 다해 그들을 보살필 것인지 등 모든 것은 네 개인적인 여건과 하나님의 배치에 근거해야 한다. 확실하게 얘기한 게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부모를 떠날 때 자기가 부모에게 너무 죄스럽다고, 부모를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와 함께 살 때 전혀 효도하지 않고 어떤 의무도 다하지 않는다. 이런 자가 정말 효도하는 사람이겠느냐? 이는 입만 놀리는 것이다.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혹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획하든 그런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피조물이든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지, 진실로 믿는지 하는 점이다. 어떤 부모는 그런 복과 운명이 있어서 자손이 번창하고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재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복이다. 반면 어떤 부모는 그런 운명이 없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배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옆에서 지켜 주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복이 없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배치로, 사람이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은 최소한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환경이 허락하고 여건이 된다면 효도해도 된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고 여건도 되지 않는다면 무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뭐라고 하겠느냐?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이 순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순종의 근거는 무엇이냐?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이 선택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선택할 권리가 없으며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배치라는 것을 느낄 때, 네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지 않겠느냐? (그럴 것입니다.) 그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느냐? 언제나 가책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지도 않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다. 인성에는 정상적인 생각이나 본능이 있는데,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자녀로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깨달아야 한다. 너는 평생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은 창조주에게서 받은,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이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갚는 것은 네 평생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보답하며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건이 되면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되 여건이 안 되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단지 양심과 인간의 도의 및 관념에 조금 위배될 뿐 최소한 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죄하지도 않는다. 네가 진리를 깨닫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부모를 대하는 길을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과 능력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허락하고 능력이 된다면 책임을 다해 부모에게 효도하면 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무리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기까지 돌봐 드리지 못한 것은 제가 무정하고 의롭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어머니께 효도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무신론 국가에서 하나님을 믿다 보니 중공에 핍박받고 쫓겨서 집에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양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한편으로, 저는 하나님을 믿을 때 제 사명이 있습니다. 바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효도하느라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양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인식한 뒤, 더 이상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게 되었고, 마음을 평온히 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제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아 주신 덕분에, 저는 어머니의 죽음을 올바르게 대하고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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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이앤(Diane) 2012년 우리 가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뭔지 알게 됐고 누구든 이 세상에 올 때는 사명을 가지고 오며 사람은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중국 양천(楊晨)저는 2023년 6월경에, 복음 사역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가서 본분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당분간 돌아오기 힘들 것 같아서 부모님도 뵙고, 옷도 챙길 겸 집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보니 어머니의 팔에 링거 주사가 꽂혀 있는...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늘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중화 민족의 전통 미덕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부모님도 항상 그렇게 저를 교육하셨고, 더군다나 행동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할머니 댁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버지는 본인 집 일을...
2012년, 저는 여러 교회의 사역을 맡았습니다. 교회 선거 기간 중 어머니는 악인 리팡에게 미혹되어 새로 선출된 교회 리더를 공격하고 깎아내리며 그 사람은 업무 능력도 부족하고, 진리도 깨닫지 못하니 리더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