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배운 공과

2026.5.29

이탈리아 둥웨이

아버지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효자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식탁에서 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씀을 자주 들었습니다.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야. 사람이 되려면 먼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단다. 그게 사람의 기본 도리지. 봐라, 양도 태어나면 무릎 꿇고 젖을 빨 줄 아는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야! 전에 할머니가 편찮으셨을 때, 아빠는 할머니를 돌보느라 밤마다 잠도 안 잤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결혼도 미루다가 두 분 다 돌아가신 후에야 내 결혼을 생각했지.” 어릴 때부터 제 마음에는 부모에 대한 효도의 씨앗이 싹텄고, 저는 속으로 커서 꼭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고, 안 그러면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열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중국 공산당에 체포돼 2년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타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를 뵈러 교화소에 찾아가 먹을 것을 사 드리고, 남은 월급은 집으로 보내 살림에 보탰습니다. 결혼 후에는 설날이 되면 늘 부모님께 옷이며 맛있는 음식 등을 사 드렸습니다. 나중에 제가 하나님을 믿고 밖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은 저를 무척 지지하시며 돈까지 쥐여 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다 키워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데, 도리어 부모님이 날 보살피다니….’ 그때 저는 속으로 늘 중국 공산당이 무너져서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노후를 돌봐 드릴 날이 오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박해는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저희 집은 그 지역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특히 유명했고, 아버지께는 전과 기록까지 있어 중국 공산당의 중점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2016년, 저는 해외의 민주주의 국가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한가할 때면 늘 출국할 때 차에 오르는 저를 배웅해 주시던 부모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며, 이제 부모님께서 연세도 많으신데 곁에서 효도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9년 여름, 저는 고향에 있는 교회 리더에게 집안 사정을 묻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답장을 받았는데, 아버지께서 몇 년 전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팀장이 하나님 주재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몇 구절 읽어 주었지만, 그때 제 머릿속은 온통 집에서 살 때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던 아버지 모습으로 가득 차서 팀장이 교제해 주는 내용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방을 나오자 하늘이 잿빛으로 보였고 주변의 모든 것이 색을 잃은 듯했습니다. 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아버지의 자상한 모습과 “뭐 먹고 싶니? 밖에서는 잘 지내고?”라고 물으시던 모습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로운 나머지 참지 못하고 한바탕 펑펑 울었습니다. 며칠 동안 제 머릿속에는 아버지께서 제게 잘해 주시던 모습들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며 자주 용돈을 주시고, 집안일은 손도 못 대게 하셨습니다. 결혼한 후에는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주셔서, 함께 찬양을 부르고 체험적 인식을 교제하곤 했습니다.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한 후에도 부모님은 저를 무척 지지하시며 경제적으로 자주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집에 갈 때마다 항상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해 주시며 살뜰히 보살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게 이토록 잘해 주셨는데, 제가 그 은혜를 갚기도 전에 아버지는 이미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마음에 큰 죄책감과 자책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일찍 결혼한 것도 후회되고, 본분에 바빠 아버지 곁에서 효도하지 못한 것도 후회됐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그렇게 가 버리셨으니, 만회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안타까움과 죄송함, 자책감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희는 단편극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제가 문을 밀고 들어가 “고모부, 저 왔어요!”라고 외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연습할 때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아빠, 저 왔어요!”라고 외쳤고, 그 순간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더는 연습을 이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매일 본분을 이행하긴 했지만,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무엇을 하든 마음이 딴 데 가 있었고, 도무지 프로그램을 연습할 의욕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니 마치 뿌리를 잃은 것 같아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겪어 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저를 이끌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진리를 구하던 중 한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출생이 그 전생의 인연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죽음은 그 전생 인연의 끝인 것이다. 한 사람의 출생이 현생에서 이행해야 할 사명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그 사명의 끝이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출생 배경을 정해 놓은 창조주는 죽음에도 당연히 각자의 배경을 안배해 놓았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출생은 우연이 아니고, 죽음 역시 돌연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출생과 죽음은 전부 그 사람의 전생 및 금생과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 한 사람의 출생 배경이 어떠한지, 죽음의 배경이 어떠한지는 모두 창조주가 정한 바와 관련된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숙명이자 운명이다. 사람의 출생 배경이 다양한 이상, 사람의 죽음 또한 필연적으로 각각의 특수한 배경이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 서로 다른 수명이 생겨났고, 서로 다른 죽음의 방식과 때가 생겨났다. 어떤 사람은 몸이 튼튼하고 힘이 넘치지만 일찍 죽고, 어떤 사람은 몸이 약하고 온갖 병을 달고 살지만 100세까지 장수하다가 편안히 눈을 감는다. 비명횡사하는 사람도 있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타향에서 마지막을 맞는 이도 있고, 가족 곁에서 눈을 감는 이도 있다. 하늘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지하에서 죽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익사하고 어떤 사람은 재난을 만나 죽는다. 어떤 사람은 새벽에 숨을 거두고, 어떤 사람은 밤에 숨을 거둔다…. 사람은 누구나 화려하게 태어나 멋진 삶을 살다 명예롭게 죽기를 바란다. 하지만 누구도 숙명을 초월하지 못하며, 창조주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운명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모든 사람의 생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셨고,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수명이 다했기 때문이고, 때가 되니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으로 누구도 바꿀 수 없으며, 설령 제가 계속 아버지 곁에 있었다 해도 이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 사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각자 떠나는 시간과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어떤 이는 수명을 다하여 편안히 죽고, 어떤 이는 물에 빠져 죽고, 또 어떤 이는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죽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이 예측하거나 막을 수 없는 일이며,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며 생사를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좀 평온해졌고,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10월, 저는 고향에 있는 한 자매님에게서 어머니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마음이 무척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출국할 때 어머니께서 “딸아, 엄마가 죽을 때까지 너를 못 보는 거냐?” 하고 물으셨는데, 그 말씀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생사를 대하는 것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봐서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있었지만, 효도하고 싶어도 더 이상 부모님이 곁에 안 계시다는 안타까움이 갈수록 커져만 갔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은 제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매듭과도 같았습니다. 특히 부모님께서 편찮으실 때 곁에서 돌봐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얼마나 죄책감이 컸는지 모릅니다. ‘비록 내가 무언가를 해 드릴 수는 없었어도, 곁에서 함께 있어 드리거나 하나님 말씀을 읽어 드리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외로움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제가 채 효도를 하기도 전에 부모님은 떠나셨고, 임종 때 얼굴 한번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 곁에 없었으니, 친척들은 분명 저를 배은망덕한 자식이라며 부모님이 저를 아낀 게 다 헛수고였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생각할수록 견디기 힘들고, 기억들이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머릿속에서 거꾸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희는 영화 한 편을 찍고 있었는데, 아주 간단한 두 장면에서 도무지 감정을 잡을 수가 없어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촬영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원래 이런 장면은 자매님한테 어렵지 않은데, 일단 상태를 좀 추스르세요. 나중에 다시 찍죠.”하며 조언했습니다. 한동안 부모님의 죽음은 제게 가장 마음 아픈 일이 되었습니다. 가끔 부모님과 연세가 비슷한 형제자매들을 보면 부모님이 떠올라 마음이 저려 오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가끔 꿈에서 부모님을 뵙고는 한밤중에 울다가 깨곤 했고, 그 후로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는 부모님의 생전 모습과 목소리가 계속 떠오르고, 제가 너무 많은 빚을 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쉬움이 무거운 돌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과 관련된 진리를 교제해 주시자 비로소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모는 그런 복과 운명이 있어서 자손이 번창하고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재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복이다. 반면 어떤 부모는 그런 운명이 없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배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옆에서 지켜 주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복이 없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배치로, 사람이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은 최소한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환경이 허락하고 여건이 된다면 효도해도 된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고 여건도 되지 않는다면 무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이 순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순종의 근거는 무엇이냐?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네가 정말로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면 부모가 한평생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복을 누릴지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한다. 네 효도 여부에 따라 무엇이 바뀌지는 않는다. 네가 효도한다고 그들이 고생을 덜 하거나 네가 효도하지 않는다고 그들이 고생을 더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운명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이 예정해 두었다. 그 모든 것이 그들에 대한 너의 태도에 따라, 너와 그들 사이의 정이 얼마나 깊은지에 따라 바뀌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운명이 있다. 그들이 이번 생에 빈곤할지 부유할지, 잘 풀릴지 안 풀릴지, 생활의 질이 어떻고, 물질적인 혜택이 어떻고, 사회적 지위가 어떻고, 생활 현황이 어떨지, 그 모두는 너와 별 관계가 없다. …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자주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책임을 다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부모님이 자식의 효도를 누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녀가 곁을 지키며 돌봐 주고, 자손이 가득한 가운데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라지만, 어떤 부모는 자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임종 때도 자녀들이 곁을 지키는 반면, 어떤 부모는 자녀들이 직장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곁에서 돌봐 줄 수 없어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안배해 주신 운명으로, 누구도 억지로 구하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곁에서 돌봐 드릴 수 없었던 것은 그분들의 운명이었고,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닫지 못해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것을 계속 후회하고 슬퍼했습니다. 심지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부모님 곁에 머물며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부모님께서 병환이 위중하여 돌아가실 때 제가 곁에서 돌봐 드렸다면 그분들의 고통을 덜어 드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말 너무 무지했습니다! 저는 한낱 피조물일 뿐, 부모님의 운명을 바꿀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마치 어떤 부모는 자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끊임없는 병마에 시달리며 매일 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부모는 자녀들이 곁에 없어도 몸이 건강하여 스스로를 돌보며 잘 지내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해 보니, 아버지께서 그토록 정성껏 돌봐 드렸지만 병으로 인한 고통은 조금도 줄지 않았고, 결국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서 어떤 병에 걸리시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실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설령 제가 곁에서 돌봐 드렸더라도 그분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조금도 줄지 않았을 것이고, 그분들의 수명 또한 저의 보살핌으로 단 1초도 연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효와 불효의 차이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환경과 조건이 되는데도 자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부모님이 병들거나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고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불효입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환경으로 인해 부모님을 돌볼 수 없다면, 그것은 인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불효도 아닙니다. 저 역시 집에 있을 때 힘이 닿는 데까지 부모님의 짐을 덜어 드리려 했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핍박 때문에 해외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객관적인 환경 때문이었지, 제가 불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이 훨씬 환해졌고, 더는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했다며 자책하며 슬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왜 계속 부모님께 빚진 마음이 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해답을 구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네 육의 생명을 부모가 낳았고 부모가 준 것 같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근원적으로 보면 네 육의 생명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다. 사람은 생명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아무도 사람의 숨결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각 사람의 육이 사람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숨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숨결에 생명이 깃들어 있고, 그 숨결이 바로 생명이 있는 사람의 상징인 것이다. 한 사람에게 숨결이 생기고 생명이 생긴 것의 뿌리와 근원은 부모가 아니다. 단지 부모의 출산이라는 방식을 빌려 네가 생겼을 뿐이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네 생명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여 생명의 숨결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것이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네 생명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으냐? 네 숨결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니 부모가 그 숨결을 이어지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네 하루하루를 돌보고 주재한다. 네가 매일 어떻게 생활하는지, 하루하루가 순조롭고 즐거운지, 매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는 부모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네 부모를 통해 너를 돌보게 하였을 뿐이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이 너를 돌보라고 파견한 대상에 불과하다. 네가 태어난 것은 네 생명을 부모가 주어서가 아니다. 그럼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네 생명을 부모가 주어서겠느냐? 그 역시 아니다. 네 생명의 근원은 여전히 하나님이지 부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은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해 주었다. 너의 가정 환경, 부모, 조상은 하나님이 일찍부터 정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한 다음에는 네가 태어날 날짜도 정했다. 이어서 네가 울며 태어나는 모습, 네가 옹알옹알 말을 배우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모습까지 하나님은 다 지켜보았다. 한 걸음씩, 너는 달릴 수 있게 되었고, 뛸 수 있게 되었으며, 말을 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사탄은 성장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호시탐탐 노린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일은 사람이나 일, 사물, 공간, 시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는 해야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할 뿐이다. 너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 질병,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곁에서 너를 보호하고 돌보아 주었다. 그렇게 이 길을 걷는 너의 생명과 미래를 엄격하게 지켜 주었으며, 너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이 모든 이를 위해 행한 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손을 잡아 이끌고 있다. 하나님은 시시각각 너를 보살피며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사람은 이런 환경과 배경에서 성장하니,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서 자란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제가 부모님께 빚진 마음이 들었던 가장 주된 이유는, 부모님께서 제게 생명을 주셨고, 저를 낳아 기르고 보살펴 주셨으니 마땅히 효도해야 하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분들의 양육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고 배은망덕한 자식이 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 숨 쉴 공기, 살아갈 숨결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중 어느 하나라도 거두어 가시면 저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의 부모와 가정을 정해 주셨고, 성장 환경까지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기까지, 제 성장의 모든 단계마다 하나님께서는 늘 제 곁을 지켜 주셨습니다. 부모님은 단지 저를 낳아 기르시고 부모의 책임을 다해 저를 보살펴 주셨을 뿐, 제 생명을 주관하지는 못하십니다. 제가 열여덟 살 되던 해, 석탄 때는 법을 몰라 가스에 중독되어 의식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곁에 안 계셨고, 이웃이 저를 밖으로 안고 나갔습니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저는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보살핌과 지켜 주심이 아니었다면, 저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제가 마땅히 보답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동시에 제 고통의 근원이 육적인 정이라는 관계를 꿰뚫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사실 부모와 자녀는 영계에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독립적인 개체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외롭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가정과 부모, 자녀를 안배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이 육적인 관계는 사라집니다. 게다가 저는 단지 부모님의 딸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피조물이기도 합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저의 책임이자 사명입니다.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닫고 나니 속으로 커다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라는 전통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서는 모두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과 마음을 속박하여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릇되게 하며, 네 마음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게 한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네 내면은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교란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의심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버릴지언정 전통문화의 도덕관념을 지키며 사탄에게 기대고 사탄 편에 서고, 하나님을 노하게 할지언정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말해 보아라, 사람이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을 여전히 밝히 알지 못하며,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줘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시종일관 이 세속적인 관계를 타파하지 못하는데, 그런 용기와 믿음이 없고, 그런 의지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에 이를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제가 부모님께 계속 빚진 마음이 들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제가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을 사람됨의 원칙으로 삼아, 효도해야만 양심이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은 전혀 진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역대 성도들이 부모와 가정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복음을 전파한 것을 생각해 보니, 그들이 한 일은 인류 가운데 가장 정의로운 일이자 하나님께 칭찬받고 기념되는 일이었는데, 저는 전통 문화에 패괴되고 물들어 효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제가 해외에 와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에 힘을 보태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사물인데도, 저는 효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배은망덕한 불효자식이라고 여기며 늘 마음속으로 가책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일찍 나와 본분을 이행한 것마저 후회했으니, 이런 전통 문화 때문에 제가 시비 구분도 없고, 옳고 그름도 전도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피조물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 계속 부모님께 빚진 마음에 사로잡힌 나머지 본분에 집중하지 못하고 연기에 몰입하지 못해 영화 촬영에 차질을 빚고도 마음에 가책이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양심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부모님의 죽음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며, 생로병사는 누구나 겪는 일인데, 저는 계속 의기소침한 내적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소리 없는 원망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전통 문화가 바로 하나님께 반하는 것이며, 하나의 독약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통 문화에 따라 살다 보면 갈수록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될 뿐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이 진리가 너무나 소중하고, 오직 진리만이 저를 사탄의 속박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었습니다.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라는 그릇된 사상에 계속 얽매여 부모님께 빚진 마음의 내적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그것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사탄의 수법임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당신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매사에 진리를 구하며, 제 본분을 지키겠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부모님이 돌아가신 일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시간과 정력을 모두 본분을 이행하는 데 쏟고 있습니다. 연기하는 역할마다 마음을 들여 생각하고, 더는 개인의 내적 상태나 기분 때문에 본분을 지체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일을 겪으며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진리를 조금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저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자 구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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