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 되었다

2022.5.28

허베이 리즈

전 89년도에 예수님을 믿었어요. 성경을 보고 예배를 드리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예수님이 이 인류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하기 위해서 성육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은혜와 평안을 주신 걸 알게 됐어요. 주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나중엔 저도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예배와 성경 봉독이 거의 제 삶의 전부가 됐죠. 그때 복음이 빨리 확장돼서 여러 지교회를 세우게 됐어요. 저는 교회의 리더가 됐고 두 개 성의 사역을 맡게 됐죠. 나중에 일을 그만두고 교회 사역에만 전념했는데, 하루하루가 알찬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97년 이후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많이 일어났어요. 복음 전파도 안 되고 기도해도 병이 안 낫고, 귀신도 나가지 않는 거예요. 뭣보다 설교하는데 고리타분하고 빛 비춤이 없었어요. 동역자가 설교 뭐 할 거냐 할 때 전 안 되면 성경만 읽자고 했어요. 저도 그건 방법이 아닌 건 알죠. 성경이야 다들 혼자도 읽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때는 다들 영적 공급을 못 받으니 많이 연약해졌어요. 교회에 사람이 늘어나긴커녕 기존의 교인들도 떠나갔어요. 신앙을 버린 사람도 있고 세상에 돌아간 사역자도 있었죠. 사역자들과 자주 모여서 기도하고 금식도 하고 허난의 목사님한테도 도움을 구했어요. 근데 뭘 해도 교회는 황폐해지기만 하고 변화가 없었어요. 정말 너무 속이 타서 발을 동동 구르고 밥맛도 없고 잠도 안 왔어요. 정말 이대로 가다간 그동안 그렇게 공들여 세운 교회가 무너질 것 같더라고요. 그럼 주님이 오실 때, 뭘 내놓겠나 싶은 게 죄인이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른 교회는 어떤지 살펴보기로 했어요.

먼저 제일 명망이 높았던 오 장로님한테 가 봤어요. 근데 장로님 설교도 고리타분하더라고요. 그 후엔 장로님을 통해서 베이징의 원 장로님을 만나게 됐는데, 정말 유명한 장로님이셨어요. 그분이면 교회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근데 3일 동안 교제했는데 그저 평생 자기가 어떻게 주를 위해 헌신하고 공산당한테 핍박받은 얘기만 하시지 빛 비춤이 없었어요. 정말 헛걸음한 것 같았어요. 그러다 어떤 자매의 소개로 한국의 선교사님을 만났어요. 처음엔 외국은 성경을 먼저 접했으니 좋은 말씀이 있을 거라고 생각돼서 조금은 희망을 가졌어요. 역시 빛 비춤이 없고 고리타분했어요. 그러니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주님께 부르짖었죠.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 해볼 만큼 다 하고, 찾아볼 만큼 찾았습니다. 정말 어찌할 수 없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때가 98년 말이요. 허난의 윗선 리더가 예배 모임을 열었었는데, ‘동방번개’란 교파에서 주님이 오셨다고 한다는 거예요. 듣고 놀랍기도 하고 기뻤어요. 계속 주님이 오시길 기다렸었는데, 드디어 오셨구나 했죠. 근데 기쁨도 잠시, 그 리더가 그러는 거예요. ‘동방번개’에선 주님이 오셔서 새 사역을 하시고 새 말씀을 하셨다고 하면서 이젠 성경도 보지 않고, 또 주님이 여성의 몸으로 오셨다고 한대요. 그 말이 끝나니 다들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셨다는데, 어떻게 우리가 모를 수 있냐고, 게다가 어떻게 여성일 수 있냐며 예수님은 남성이니 재림 주도 남성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은 성경엔 주께서 오시면 새 말씀과 새 사역을 하신단 내용이 없다고, 그러니 주님이 오셨다는 건 아닐 거라고 했죠. 저 역시도 주님이 돌아오셔서 새 사역을 하신다고 하고 여성으로 성육신하셨다는 건 성경에 기록된 게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니 하나님 사역이 아닐 거라고 믿었어요.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는 주님을 믿는 의미가 없다고 여겼죠. 게다가 주기도문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라 했는데, ‘아버지’는 남자잖아요. 그러니 여성으로 오실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때, 마침 윗선 리더가 그러더라고요. 동방번개를 절대 믿으면 안 된다고, 그쪽의 주장은 성경에 어긋나니까 항상 깨어 있으라고 미혹돼선 안 된됐어요. 이제부터는 무조건 견제하면서 ‘3대’ 정책을 쓰랬어요. 안 듣기, 안 보기, 접대 안 하기 우리 양을 못 훔쳐가게 하래요. 사역자 모임이 끝나고 윗선 리더와 얘기를 나눴어요. 글쎄 주님을 믿은 지 오래되고 잘 추구하던 형제자매나 사역자들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대요. 정말 이해가 안 돼서 물어봤죠. 다들 성경도 잘 알고 열심히 믿었는데, 어떻게 거기로 갈 수 있냐고, 대체 뭘 들었길래 간 거냐고요. 제대로 모르더라고요. 그냥 ‘동방번개’는 성경에 어긋난다면서 무조건 성경에 근거해서 주님을 믿어야 한다고만 했어요. 특별히 당부까지 했죠. 전 교회 리더라 형제자매의 생명이 저한테 달렸다고, 이럴 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성경을 붙들라고요. 주께서 양을 맡기셨으니 잘 지켜야 된댔어요. 동방번개가 한 명이라도 훔쳐가면 주님께 내놓을 게 없을 거랬죠.

리더가 가고 나서 전 그 내용을 계속 형제자매들한테 주입했어요. 낯선 사람 들이지 말고, 친척이라도 교회에 함부로 데려오지 말라고, 특별한 경우는 제 허락을 받으랬어요.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어기게 되면 다 출교했어요. 전 그러면서도 그 사람들을 위한 거라고 말했어요. 다들 생명이 작아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나중에 형제자매한테 겁 주려고 윗선 리더의 당부대로 유언비어도 만들었어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때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렸죠. 근데 생각지 못한 건 그래도 많은 사람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전 더 경계하게 됐죠. 낯선 사람이 예수님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동방번개 사람인지 의심부터 하게 됐어요. 그땐 정말 너무 예민해서 보는 사람마다 동방번개 같더라고요.

그러다 한번은 한 사역자가 예배 모임에 갔다가 ‘동방번개’ 사람을 만나서 말씀을 듣게 됐는데 너무 좋았었대요. 근데 듣다가 동방번개랑 접하는 사람은 출교시킨다던 제 말이 떠오르더래요. 겁이 나서 더 듣지 못하고, 얼른 나와서 저한테 알린 거예요. 말씀이 좋아서 하루 종일 들었는데 출교당할까 봐 믿지 못했대요. 그 말을 듣고 눈을 부릅뜨고 자매를 꾸짖었어요. 동방번개를 만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왜 말을 안 듣냐고, 예수님은 분명 남성인데, 거기선 주님이 여성으로 오셨다 하니 그건 명백한 오류라고, 근데 하루 종일 듣다니, 정말 출교되고 싶냐고 했어요. 자매가 해명을 했지만 전 가만 있지 않았어요. 앞으로 거긴 제가 갈 거니까 더 이상 가지 말라고 했어요. 나중에 그 예배소에서 진짜 동방번개 사람을 만났어요. 저한테 말세 복음을 전해 주더라고요. 처음엔 더 변론해 보려고 했는데, 허난의 목사님이 동방번개 사람은 나쁘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그냥 가려고 일어났죠. 근데 집주인 자매가 들어보라고 말리는 거예요. 그래서 자매한테 한소리 했죠. 돌아간 후에 저는 사역자들한테 그 예배소 사람들이 ‘동방번개’로 간 것 같으니까 출교시키라고 했어요. 그 사람들을 출교시키지 않았다가 다른 형제자매까지 ‘동방번개’로 가게 되면 우리 죄가 더 커질 거고 주님께 내놓을 게 없잖아요.

그게 99년 3월달이었어요. 주 안에서 알게 된 친구가 왔는데, 글쎄 그쪽 교회는 뜨겁다는 거예요. 좀 의아했어요. 여긴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황폐한데 그쪽은 좋다고 하니까 혹시 동방번개로 갔나 싶었죠. 확실하게 확인하려고 그 교회를 맡고 있던 싱 자매한테 연락을 해 봤어요. 자기네는 성경을 안 보고 계시록의 작은 책을 본다는 거예요. 그 순간 철렁하더라고요. 자매도 동방번개로 갔다는 게 확실했죠. 인성도 좋고 성경도 알고, 신망이 좀 두터운 분이셨는데, 동방번개로 갔으면 다른 사람도 따라갈 게 뻔했어요. 안 되죠!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결단을 내렸어요. 다음 날 바로 기차 타고 그쪽으로 떠났어요. 가 보니까 20명 넘게 벌써 싱 자매를 따라서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더라고요. 최선을 다해 자매를 설득했는데, 제가 뭐라고 하든 자매는 아주 확고하더라고요. 집에 오자마자 바로 싱 자매가 동방번개로 간 사실을 각 지교회에 알렸어요. 근데 글쎄 어떤 형제자매들은 싱 자매처럼 믿음 좋은 사람도 믿는다고 오히려 ‘동방번개’에 반감을 갖지 않고 참도일 수 있겠단 생각을 했죠. 심지어는 몰래 ‘동방번개’ 분들을 접대한 사람도 있었어요. 게다가 산둥 지방의 어느 지교회는 100명 넘게 믿었다고 들었어요. 그중엔 열심히 추구했던 사역자들도 있었어요.

‘동방번개’가 점점 더 부흥되는 걸 보고 정말 이해가 안 됐어요. 갈수록 더 많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이고 성경을 좀 알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역자들까지 가는 거예요. 사실, 형제자매나 사역자들이 묻더라고요. ‘동방번개’를 믿지 말라는데 왜 거긴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냐고, 게다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냐고요. 근데 그 말에 해줄 말이 없더라고요. 저도 어떤 말씀을 전하길래 매료되는지 궁금하긴 했죠. 정말 재림 주신가 싶기도 했고요. 근데 주님은 여성으로 오실 리가 없고, 성경을 안 본다는 건 잘못된 거라 여겼죠. 그 교회가 부흥되는 것도 그저 잠시적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형제자매들도 알아보지 못하게 했죠. 그 뒤론 교회를 더 엄하게 관리했어요. ‘동방번개’ 사람은 일절 접촉하지 못하게 했죠.

근데 뜻밖의 일이 생긴 거예요. 그해 7월 달부터 제 온몸이 붓더라고요. 심할 땐 앉았다 일어서지도 못했어요. 다들 저를 위해 금식 기도를 해 줘도 안 나았고요. 의사 말로는 자궁에 계란만한 용종이 생겼다고 했어요. 그때 전 너무 놀랐고 눈물을 참고 집에 왔죠. 그래서 반성해 봤어요. 저한테 그런 큰 병이 생기니까 주님의 징계인가 싶더라고요. 성경 구절도 생각났어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근데 전 여태까지 교회를 봉쇄하고 ‘동방번개’는 일절 거부했거든요. 주님이 오셨다고 해도 전 무조건 접촉하지도 듣지도 않고 형제자매들도 듣지 못하게 했어요. 사실 그건 이미 성경에 어긋난 처사잖아요. 사실 전 ‘동방번개’에서 전하는 말씀이 뭔지도 몰랐어요. 근데 일단 ‘동방번개’라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나섰는데, 내가 좀 경솔했나 싶더라고요. 몸이 많이 아프니까 저도 동방번개를 막을 마음도 없고 기력도 없었어요. 한동안은 정말 하나님과 멀어진 것 같은 게 너무 외로웠어요. 울면서 주님께 기도했죠. ‘주님, 전 지금 너무 연약해요. 정말 절 버리신 건가요? 주님, 어떻게 해야 당신이 함께하시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 어디 계십니까? 제게 와 주셔서 절 구해 주세요.’

그때는 매일이 극심한 고통이었어요. 근데 주변에 ‘동방번개’를 믿는 사람들은 믿음이 넘치고 정신 면모도 다 너무 좋은 거예요. 특히 한 사역자의 어머니는 얼마 전까지 신앙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동방번개’를 받아들인 후로는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힘이 넘치는 거예요. 매일 5시에 일어나서 7시에 복음 전하러 갔다 저녁에 들어오고 믿음이 컸어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죠. 근데 우리 교회 사람들은 반대였어요. 저나 형제자매나 아프고 실족하고 생기나 활력을 찾아볼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이해가 안 됐어요. 목사님은 동방번개가 나쁘고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로 난 거라 오래 못 간다 했는데, 오히려 갈수록 부흥하는 거예요. 그 성경 구절이 생각나더라고요.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 5:38~39) 동방번개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사람의 힘으로 그렇게 믿음 넘치고 부흥할 수 없잖아요? 하나님께로 난 게 아닐까 싶었죠. 그런 거라면 전 그동안 하나님을 대적한 게 되잖아요?

그때 또 사역자 중에 많이 갈급하다면서 해갈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더 괴로운 거예요. 그동안 믿음 생활하면서 나름 잘 믿었다고 생각했는데, 형제자매를 이끌고 나갈 길이 전혀 보이질 않았어요. 주님을 뵐 면목이 없었죠. 가끔은 먼저 ‘동방번개’ 사람들을 찾아서 말씀을 한 번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 힘이 어디서 나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그게 8월달이었어요. 쑤 자매가 두 형제를 모시고 저희 집에 온 거예요. 반갑게 맞이했죠. 왕 형제가 먼저 묻더라고요.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뭐냐고요. 그야 천국 가 영생하기 위한 거랬죠. 그러니까 천국에 못 간다면 믿지 않을 거녜요. 전 누가 믿겠냐고 그렇게 대답했죠. 그랬더니 웃으며 그랬죠.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경배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사랑해야 된대요. 짧은 말이었지만 제 마음엔 크게 와닿았어요.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믿은 지 오래됐지만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봤거든요. 리더든 다른 교파의 사역자든 외국에서 온 선교사든 천국에 가고 복받고 싶으면 잘 믿으라고만 했었는데, 하나님 믿는 것에 대한 그런 순수한 견해는 처음 들어봤어요. 희망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얼른 교회의 황폐함에 대한 해결책을 물어봤어요.

왕 형제는 먼저 율법시대 말기에 성전이 황폐해진 원인을 말했어요. 그러더군요. “율법시대엔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으로 충만했었고 아무도 성전에서 제멋대로 못 했습니다. 근데 율법시대 말기가 돼서는 성전이 오히려 우양을 사고팔고 돈을 바꿔 주는 곳이 돼 버렸어요. 하나님의 영광은 떠났고 도적의 소굴로 전락했죠. 그때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꾸짖은 말씀을 통해서 성전에서 섬기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사람들이 종교 의식과 규례만 지키게 하고 하나님의 도를 벗어난 걸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성전에서 일하지 않으시고 성전을 벗어나 새 사역을 시작하신 겁니다. 그때 성전을 벗어나 주님의 새 사역을 따른 사람들은 생명의 공급을 받게 됐고 성령의 역사를 얻고 주님의 은혜를 받았죠. 근데 예수님의 새 사역을 거부하고 율법만 고수한 자들은 어둠에 빠지고 점점 타락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한 바와 같죠.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그리고 계속 교제했어요. “지금 종교계는 과거의 율법시대 말기의 성전과 같습니다. 아주 황폐하고 캄캄하고 불법이 크게 성한 상태죠.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이 왜 식겠습니까? 지도자가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사역이 앞으로 나아가 성령의 역사가 옮겨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님의 새 사역을 찾아야 활로가 생깁니다.” 형제의 교제를 들으니 이해가 됐어요. 교회가 황폐한 건 주님께 버림받은 게 아니라 주님이 새 사역을 하셨는데 따라가지 못해서였어요. 주님의 새 사역을 찾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야 주님의 함께하심과 성령의 역사를 얻는 거죠. 제가 좀 이해한 것 같으니까 말씀을 읽어 줬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온 우주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현하러 오고, 땅의 하나님께 경배하러 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의 사역을 모두 중단했으니, 사람은 참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 먹을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양식을 가지고 있던 요셉에게 가서 그를 경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굶주림의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종교계 전반에는 심각한 기근이 들었다.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만이 생수의 원천이고 사람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을 베풀어 주기에 모두가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천년하나님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 중에서) 『사람에게 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나 역시 강요하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있는 나의 영광을 다른 세계로 옮겨 간다. 그러다가 모든 사람이 또 후회하면 ‘믿음’에 속한 더 많은 사람에게 영광을 보여 준다. 이것이 나의 사역 원칙이다. 영광은 가나안을 떠날 때도 있고 선민을 떠날 때도 있으며, 더욱이 온 땅을 떠날 때도 있다. 따라서 온 땅이 어두워져 빛을 잃고, 암흑으로 뒤덮여 가나안 땅에조차 태양이 비추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믿음을 잃는다. 하지만 모두들 가나안 땅의 향기에 미련이 남아 떠나지 못한다. 내가 새로운 하늘땅에 들어가면 그때 비로소 또 한 부분의 영광이 제일 먼저 가나안 땅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칠흑같이 어두운 온 땅에 한 줄기 빛이 나타나고 온 땅이 그 빛을 따르게 된다. 나는 온 땅의 사람으로 하여금 빛의 위력에 힘을 얻게 하고, 나의 영광이 더해지게 할 것이며, 내 영광이 다시 열방에 나타나게 할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내가 이미 인간 세상에 왔고, 이미 이스라엘에서의 내 영광을 동방으로 가져왔음을 알게 할 것이다. 나의 영광이 동방에서 나왔고, 은혜시대에서 오늘날로 옮겨져 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스라엘을 떠났고 또 이스라엘에서 동방으로 왔다. 동방의 빛이 점점 밝아 올 때 어두웠던 온 땅이 조금씩 밝아지면 사람은 그제야 내가 이스라엘이 아닌 동방에서 새롭게 떠올랐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강림’했다가 이스라엘을 떠난 내가 또다시 이스라엘에 ‘강생’할 수는 없다. 나의 사역은 전 우주를 이끌어 가는 것이고, 번개는 동방에서 나서 서방까지 번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방에 강림하였고, 동방의 백성에게 가나안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온 땅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가나안 땅에서 계속 음성을 발하여 전 우주를 통제할 것이다. 이때 가나안을 제외한 온 땅은 광명이 없고, 사람은 모두 굶주림과 추위에 위협받을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에 영광을 주었다가 거두어 갔다. 또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사람을 동방으로 데려왔으며, 모두에게 ‘빛’을 주어 다시 빛을 만나고, 빛과 사귀고, 더 이상 빛을 찾아다니지 않도록 했다. 나는 찾고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빛을 보게 하고 이스라엘에서의 내 영광을 보게 할 것이다. 또 내가 일찍이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왔음을 보게 하고, 뭉게뭉게 떠 있는 흰 구름과 주렁주렁 달려 있는 열매를 보게 할 것이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과 유대인의 ‘선생’과 사람이 간절히 바라 왔던 메시야를 보게 하고, 역대 왕들에게 핍박받았던 나의 전모도 보게 할 것이다. 나는 전 우주의 사역을 행하고,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나의 모든 영광과 모든 행사를 말세의 사람에게 보여 줄 것이다. 또 내 모든 영광의 얼굴을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 온 사람들, 내가 흰 구름 타고 오기만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내가 다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이스라엘과 나를 핍박하고 있는 전 인류에게 보여 줄 것이다. 그로써 내가 이미 영광을 동방으로 옮겨 왔으며, 유대에는 더 이상 영광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할 것이다. 말세가 이미 도래했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 ―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 우주로 퍼져 나갈 것을 예언하다> 중에서) 이 말씀을 듣는데, 너무 놀라웠고 큰 권병이 느껴졌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죠. 그때 형제가 또 그랬어요. “주님은 이미 돌아오셨고 새 사역을 하셨어요. 영광을 이스라엘에서 동방으로 옮기셨죠.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가 앞으로 나아간 겁니다.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르고 최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성령의 역사를 얻고 끊임없는 생명의 공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다고 얘기하는 순간 ‘동방번개’라고 생각했죠. 온 교계에 주님이 돌아오셨고 새 사역을 하셨다고 하는 데는 ‘동방번개’밖에 없으니까요. 첨엔 좀 갈등이 됐어요. 전에 목사님들이 ‘동방번개’ 사람들은 나쁘댔는데, 직접 보니까 두 형제가 참 점잖고, 온화하고 그렇더라고요. 뭣보다 설교 내용이 새롭고 실제적이고 성령의 역사가 느껴졌죠. 또 교계의 황폐함에 대한 제 궁금증도 풀어줬는데, 정말 탄복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주님의 뜻이라 생각했죠. 그러니 만난 김에 대체 어떤 얘기들을 하는지, 그리고 동방번개에 가면 왜 그렇게 믿음이 넘치고 한 번 가면 안 나오는지 궁금했죠.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어요. 동방번개 분들인 거 알고 있다고, 주님이 돌아오시고 새 사역을 하셨다는데, 성경에 있는 거냐고요. 하나님이 하실 말씀과 사역은 다 성경에 있으니 성경에 따라 주님을 믿어야 하는데, 거긴 성경을 벗어난 것 같아 못 믿겠다고요. 형제가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성경에 따라 주님을 믿어야 한다면 그 말은 주님이 성경의 근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신다는 얘기냐고요. 전 당연하다고 말했죠. 그러니 그러더라고요. 하나님과 성경 중에 누가 먼저 있었냐고요. 그 질문에 멈칫했어요. 그건 여태까지 제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였어요. 잠시 생각해 보다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그러더군요. “맞아요. 성경은 하나님의 일을 기록한 책이고, 하나님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신 일을 증거하는 책이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신 걸 기록했고, 신약 성경은 예수님이 은혜시대에 하신 일을 기록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역이 먼저고, 성경은 나중에 기록된 겁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따라 일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에 따르시죠.”

그리고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줬어요. 『예수 시대에, 예수는 당시 성령이 그에게 하는 사역에 따라 유대인들을 인도했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했다. 예수가 행한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역에 따라 말씀한 것이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했든 예수는 상관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인도할 때 성경에서 길을 찾지도 않았다. 예수는 사역을 막 시작했을 때 회개의 도를 전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 많은 예언에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사역하지 않았을뿐더러 더 새로운 길을 펼쳤고, 더 새로운 사역을 했다. 그는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한 적이 없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하지 못했고, 그의 사역과 가르침, 그의 말씀의 권병과 능력 역시 율법시대에 아무도 닿을 수 없었다. 예수는 오로지 자신의 새로운 사역만 했다. 수많은 사람이 성경으로 예수를 정죄하고, 구약 성경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구약 성경을 넘어섰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사람이 어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다 예수의 가르침과 병 고치고 귀신 쫓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느냐? 예수가 행한 사역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펼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직분을 이행하러 왔을 뿐이며, 그를 갈망하고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역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예수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러 온 것이 아니었고, 그의 사역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사역은 성경의 근거 유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구약의 예언들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지도 않았다. 그는 구약에서 어떻게 말했든, 그것이 자신의 사역과 부합하든 않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어떻게 정죄하든 자신이 행해야 할 사역만 계속하였다. 많은 사람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 그를 정죄했을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보기에 예수가 하는 사역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수없이 많았다. 그것은 모두 사람의 착오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한단 말이냐? 성경이 크겠느냐, 하나님이 크겠느냐? 왜 하나님이 꼭 성경에 근거해 사역해야 한단 말이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는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고 구약의 그 계명들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서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고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 아니더냐? 예수가 구약대로 하고자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은 될 수 있어도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말씀을 읽고 그러더군요. “예수님도 일하실 때 구약의 율법을 넘어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셨어요. 인류에게 새 요구를 하시고 새로운 실행 길을 주셨어요. 예를 들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거나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는 건 사람이 보기엔 구약의 율법에 어긋나고 완전히 성경을 벗어난 거죠. 이걸 통해서 하나님은 성경에 제한받지 않으심을 알 수 있어요. 그때 주님의 제자들도 주님의 말씀과 사역에 권병과 능력이 있단 걸 보게 됐고 완전히 하나님께로 났다는 걸 보고는 주님을 따랐어요. 그들은 성경 글귀에 구애받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구해서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랐죠. 그래서 우리도 성경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가늠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그분을 알아 가야 합니다.”

듣고 보니까 좀 알겠더라고요. 성경은 하나님의 사역을 기록한 책이지, 그걸로 사역하시진 않죠. 저도 설교를 많이 했지만 성경과 하나님의 관계도 잘 몰랐더라고요. 또 설교를 많이 들어봤지만 이런 걸 알려주는 목사님이나 장로님은 없었어요. 게다가 또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다 성경에 있고 성경을 떠나면 믿는 게 아닌 줄 알았어요. 얼마나 어리석어요? 그때 또 석 형제가 말씀을 읽어 줬어요. 『오랜 세월 사람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방식(세계 3대 종교 중 기독교의 믿음법)은 성경을 보는 것이었다. 성경을 떠나면 주를 믿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떠나면 사이비이자 이단이라는 것이다. 다른 책을 보더라도 반드시 성경 해석이 밑바탕이 된 책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를 믿는다면 반드시 성경을 봐야 하고, 성경과 관련되지 않는 다른 책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었다. 성경이 생긴 후, 사람이 주를 믿는 것은 바로 성경을 믿는 것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주를 믿는다기보다는 성경을 믿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을 믿기 시작했고, 주 앞에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성경 앞에 돌아왔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게 되어 버렸다. 이처럼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 삼아 숭배하고 자신의 목숨으로 여기게 되었다. 성경이 없어진다면, 이는 생명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과 똑같이 높게 보며, 심지어는 하나님보다 더 우러러보기도 한다. 성령 역사가 없거나 하나님을 느끼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성경책이 사라지거나 성경의 유명한 장절, 문구가 없어진다면 생명이라도 잃는 줄 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그들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내 존재를 믿는다. 그들은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며 ‘나’와 ‘성경’을 동일시한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글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 장절로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가늠하고,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경 글귀에 부합하는 길이지, 내 마음에 합하는 길이나 진리와 합하는 길이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사역이 아니라 여기니, 이런 자들은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 아니겠느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 예수의 마음에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찾지도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진지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에게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야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진리와 합하는 길을 찾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석 형제가 그러더군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성경을 믿고 있죠. 하나님을 성경이란 테두리에 가둬놓고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 사역을 대조해 보고 안 맞으면 부인하고 정죄합니다. 그게 과거의 바리새인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바리새인은 구약 율법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대조했어요. 근데 주님의 사역이 구약 성경을 벗어나니까 주님을 정죄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얼마나 뼈아픈 교훈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와 하나님의 발걸음을 찾아야죠.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해 하시는 심판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해서 천국에 데려가는 사역입니다. 이 사역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보다 더 높은 차원이고 신구약 성경을 뛰어넘었죠. 근데 우리도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판단한다면 그건 바리새인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게 아닙니까?”

저도 하나님의 사역은 성경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여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사역이 아닌 줄 알았어요. 하나님 믿은 지도 오랜데, 왜 하나님을 성경에 가뒀을까요? 전 저의 생각이 잘못된 줄 전혀 몰랐어요. 특히 이 말씀이에요. 『그들은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며 ‘나’와 ‘성경’을 동일시한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이 말씀들이 제 가슴을 찔렀어요. 제가 어쩌다 성경을 하나님으로 대했는지…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지 않았어요. 오히려 성경을 더 크게 여긴 거죠.

동방번개의 도가 생각보다 훨씬 높더라고요. 근데 그때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많았던 터라 그래서 이번에 이 도에 대해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겠다 싶었죠. 계속 모호한 상태로 믿을 수 없잖아요. 게다가 두 형제가 하나님 믿는 것에 대해 또 어떤 고견이 있는지도 궁금했고요. 그래서 물었죠. 계시록 22장에 그러지 않았냐고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하나님이 오셔서 새 말씀과 새 사역을 하셨다고 하는데, 이 구절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요. 그러더군요. 이 구절에서 말하는 건 계시록 예언의 말씀에 추가하지 말라는 거지 말세에 하나님이 새 말씀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고 제가 이해한 대로 보면 하나님의 새 사역과 말씀은 없는 게 되는데, 그럼 예수님 말씀의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2~13) 이 말씀이 어떻게 이뤄지겠녜요. 또 계시록에 일곱번 언급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 3장) 이 말씀은 또 어떻게 되냐고요. 그럼 말세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진리를 부인하고 정죄하는 게 아니냐고요. 하나님은 바로 생명의 근원이시자 끊임없이 흐르는 생명 샘이신데,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성경에 가둬놓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말씀과 사역이 성경에 있는 게 전부인 것처럼 만들면 그건 하나님을 폄하하는 게 아니냐고 했죠.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은 수백 만자가 되는 말씀으로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하셨는데, 주님의 이 예언이 이뤄진 거랬어요.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또 베드로전서에도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신 진리와 말씀의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우리가 죄짓는 근원을 알 수 있고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더는 죄를 짓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순종할 수 있고 마지막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좋은 종착지를 얻게 된대요. 그제야 저도 알겠더라고요. 주님이 말세에 새 말씀과 새 사역을 하신다는 건 성경 예언에 있는 거였어요. 전 제가 성경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속속들이 아는 게 아니더라고요.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몰랐고요.

나중에 두 형제가 많이 교제해 줘서 성경을 바르게 대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정말 탄복하게 되더라고요. 한편으론 괴롭기도 했어요. 제가 정말 흐리멍덩하게 믿은 게 느껴졌거든요. 지금까지 전 성경을 떠나는 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성경에 가둬놓고는 성경을 제일 크게 봤어요. 그래서 누군가 하나님이 새 사역과 말씀을 하셨다고 하면 반대하고 정죄했지 구하는 자세는 전혀 없었어요. 완고하게 제 관념만 고집했고 또 그 관념을 형제자매한테 주입해서 잘못 이끌었죠. 돌아보니까 제가 했었던 설교들은 형제자매를 망치고 속인 거나 다름없었어요. 그제야 제가 진짜 무지하고 미련한 설교자란 걸 알았어요. 음, 예전에 많은 설교자를 만나 교제를 나눠 봤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알려주진 못했어요. 전 너무 교만해서 쉽게 굽히지 않는데, 이번엔 정말 탄복했어요.

그래서 더 많이 얘기해 주면 좋겠더라고요. 궁금한 걸 다 알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말했죠. 교제해 주신 내용은 다 이해했는데, 아직 제일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다고요. 주님이 여성의 몸으로 돌아오셨다고 하는데, 그건 납득 못 하겠다고요. 예수님은 남성이시니 당연히 남성으로 오셔야 하지 않겠냐고요. 그러더군요. “하나님은 형체도, 성별도 없는 영이십니다. 다만 사역의 필요성과 육신으로 일하셔야 하기 때문에 성별을 갖게 되신 겁니다. 근데 남성이든 여성이든, 하나님의 일을 담당하실 수 있죠.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셨어요. 주님은 남성이셨고 십자가에서 인류를 구속하셨어요. 반대로 예수님이 여성이셨더라도 얼마든지 십자가에 달리실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 하실 일을 마치고 형상을 바꿔 영의 몸이 되시면 남성, 여성의 구분은 없습니다. 성경에 그랬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이 구절에서 말하잖아요. 남녀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요. 그런데 남성으로 성육신하시면 하나님을 대표하고 여성이면 대표할 수 없는 건가요? 남성이 됐든 여성이 됐든,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으신 거고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겁니다. 이 부분의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이 남성이었으니 많은 이들이 하나님은 남자로만 성육신하실 수 있고 여성은 안 된다 여기고 있죠.”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줬어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에는 모두 실질적인 의의가 있다. 예수는 예전에 왔을 때는 남성으로 왔었지만 이번에는 여성으로 왔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해서이며,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영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육신을 취할 수 있고, 그 육신은 하나님을 대표한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면 모두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말이다. 설령 예수가 여자의 몸으로 왔더라도, 즉 당시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가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였어도 똑같이 그 단계의 사역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단계의 사역은 남자가 하게 됐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사역을 완성할 것이다. 사역은 어느 단계든 모두 의의가 있으며, 두 단계의 사역은 중복되지도, 서로 모순되지도 않는다. 예수는 사역할 당시에 독생자라고 불렸다. 독생자의 ‘자(子)’는 남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독생자라고 하지 않느냐?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성별이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으며, 그의 사역은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매우 자유롭지만, 모든 단계에 다 실질적인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두 번 성육신했는데, 두말할 필요 없이 말세에 성육신한 것이 마지막이며, 그는 자신의 모든 행사를 보여 주기 위해 왔다. 만약 이번 단계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직접 사역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이 여자가 아닌 남자일 것이라는 관념을 가질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만약 마지막 시대에 이 단계의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전 인류는 하나님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남자는 자신이 여자보다 높다고 생각할 것이고, 여자는 영원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구원받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늘 하나님의 성별이 남자이고, 하나님이 언제나 여자를 미워하며, 여자를 구원할 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호와에게 지음 받고 또 똑같이 패괴를 거친 여자들은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여호와가 여자를, 즉 하와를 만든 것부터가 의미 없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 또한 여자는 영영 멸망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말세의 이 사역은 여자만이 아닌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여자만 구원하기 위해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더더욱 어리석은 자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형제가 또 교제했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남자든 여자든 다 의의가 있고 구해 볼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 번 다 남성으로 오신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무조건 남성일 거라고만 생각할 텐데, 그럼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겠어요? 말세에 하나님께서 여성의 몸으로 오신 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의 본질은 변치 않고, 다 진리를 선포해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거죠.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심은 남자만의 하나님이 아니심을 보여 주신 거죠. 하나님이 말세에도 남성으로 오시면 여성은 영원히 차별을 받게 될 거고, 사람은 하나님이 여성을 싫어하고 구원 안 하신다고 여길 텐데 그건 오해를 낳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세에 여성의 몸을 입으신 게 사람 관념에는 안 맞아도 더 의의 있고, 인류의 구원과 하나님을 아는 데 이롭습니다. 그것도 다 하나님의 사랑이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제 관념을 드러내셨죠. 하나님이 남녀를 만드셨다고 말은 했지만 하나님이 여성의 몸을 입으시는 건 말이 안 된다 했어요. 왜 그리 미련했는지… 나중에 왕 형제가 또 말씀을 읽어 줬는데, 『‘하나님’이란 성령, 그 영, 일곱 배로 강화된 영, 만유를 포함하는 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이다. 그것도 보통 사람이고 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또 남성일 뿐만 아니라 여성이기도 한데, 같은 점은 둘 다 사람에게서 났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성령으로 잉태됐다는 것과 사람에게서 났으나 직접 영에서 왔다는 것이다. 같은 점은 성육신 하나님이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을 맡았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한쪽은 구속 사역이고 한쪽은 정복 사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대표하는 것은 같지만 한쪽은 자비와 긍휼이 가득한 구속주이고, 한쪽은 진노와 심판이 가득한 공의의 하나님이다. 한쪽은 구속 사역을 펼친 사령관이고, 한쪽은 정복 사역을 이루는 공의의 하나님이다. 한쪽은 시작이고, 한쪽은 끝이다. 한쪽은 죄 없는 육신이고, 한쪽은 구속을 완성하고 이어지는 사역을 하는, 본래 죄에 속하지 않는 육신이다. 동일한 하나의 영이지만 각각 다른 육신에 거하고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며, 수천 년의 시간 차에도 하는 사역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며,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있다. 또한 둘 다 사람이지만 남자 아기이고, 또 여자 아기이다. 오랫동안 사람이 본 것은 영이었고, 사람이었고, 남자였으며, 또한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많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나에 대해 늘 짐작하지 못했다. 내가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꿈 같기도 하여 늘 나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네가 정말 간단한 말 한마디로 나를 요약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예수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예수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하나님은 영이고, 영은 하나님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은 육신을 입은 사람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예수의 형상은 하나님의 위대한 형상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너의 글재주로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을 분명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남성을 만들었을 뿐, 자신의 형상대로 여성을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 말대로라면 여자는 다 내가 택한 대상이 아니며, 인류에 속하는 부류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정말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이냐? 하나님은 영이냐? 하나님은 정말 남자이냐? 오직 예수만이 내가 하려는 사역을 완수할 수 있느냐? 네가 이 중의 하나를 택해 나의 본질을 요약한다면 너는 너무나 무지한, 충성스러운 신자에 속할 것이다. 만일 내가 성육신 사역을 한 번만 한다면 너희가 나를 규정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네가 정말 나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접했던 것만으로 정말 나에 대해 확실히 요약할 수 있겠느냐? 내가 육신으로 행한 두 차례의 사역이 모두 같은 사역이라면 너희는 또 나에 대해 어떻게 보겠느냐? 나를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냐? 하나님이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전 하나님을 만유의 영, 무소불능, 무소부재하신 분이라 했지만 하나님을 단정하고 있었죠. 첫 번째 성육신이 남성이셨으니 이번에 여성으로 오시는 것도 정상이잖아요? 성육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다 하나님을 대표하고 진리로 구원하실 수 있어요. 사실 간단한 건데, 저한테는 수수께끼가 돼 버린 거죠. 생각하면 할수록 제가 잘못됐더라고요. 하나님을 너무나 몰랐어요. 계속 하나님을 단정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이성이 없어요?

석 형제가 그러더군요. “사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맞는지 알려면 신성을 갖고 있는지,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지를 봐야지 육신의 성별과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며,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혹은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이렇게 진리를 선포해 길을 주시고, 생명에 공급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성육신이시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사역하실 때, 사람이 보기엔 평범했고 목수의 아들이셨어요. 그 때문에 많은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죠. 근데 왜 아직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겠어요? 그건 주님의 말씀과 사역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거니까요. 주님은 진리를 주시고 회개의 도를 주실 수 있었어요. 사람에게 주신 그 사랑과 긍휼과 구속은 그 누구도 갖추지 못한 거고 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러니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세요. 전능하신 하나님 또한 겉보기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근데 많은 진리를 선포해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셨고 이미 이긴 자들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셨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큰 사역으로 전 세계를 뒤흔드시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영생의 도를 주셨습니다. 이건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겁니다. 근데 우리가 하나님이 선포하신 진리를 전혀 보지 않고 성육신의 성별만 본다는 건 어리석은 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거죠.”

그동안 전 교계가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하나님의 성육신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이 진리를 분명하게 말씀하신 거예요. 정말 탄복했어요. 그리고 자책감도 들었죠. 여태까지 저도 성경을 많이 봤지만 주님에 대해선 아는 게 없는 거예요. 외모로만 판단하는 세상 사람의 관점을 갖고 하나님의 성육신은 여성일 수 없다고 단정지었죠. 제가 은혜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정죄했을 거예요. 그 후에도 많은 교제를 나눴어요. 하나님 경륜의 비밀이나 인류 구원의 3단계 사역, 그리고 말세에 어떻게 심판 사역으로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지 등에 대해서요. 그러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 진리고 그분이 재림 주이심을 확신하게 됐죠. 하나님 말고 누가 그런 진리의 비밀을 열 수 있고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인류의 결말과 종착지를 정하겠어요?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동방번개에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이유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재림 주를 맞이해서였어요. 누가 하나님의 발걸음을 찾고, 어린양의 잔치에 들어갔는데 떠나려 하겠어요? 그게 바보지요. 그동안 저도 좀 더 일찍 구하는 자세로 동방번개 말씀을 들었더라면 벌써 어둠과 고통에서 나와 생명의 생수를 받지 않았겠어요? 다 제가 어리석고 눈 멀어서 목사의 허튼소리만 믿고 너무 교만해서 성경만 고집한 탓이죠. 게다가 제 잘못된 관점을 형제자매한테 주입해서 저와 같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부인하게 했어요. 재림 주를 맞이하지 못하게도 했고요. 바리새인을 꾸짖으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제가 한 행동이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천국의 문을 닫고 자기도 안 가고 다른 이도 못 가게 했어요. 형제자매를 해쳤으니 정말 큰 악행을 한 거죠.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했던 악행을 생각하니 너무 미웠어요. 감정을 못 참고 부엌에 가서 펑펑 울었죠. 그러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봤어요.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조차 할 수 없다면 믿고 안 믿고는 거론할 수도 없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하나님께 순종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이 네게 순종하고 너의 관념대로 따르게 한다면, 너는 가장 패역한 사람이며 불신파다. 이런 사람이 어찌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느냐? 가장 패역한 사람은 일부러 하나님께 불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원수이며 적그리스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항상 적대적인 태도로 대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기꺼이 순종하거나 자신을 낮춘 적도 없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가장 대단하다고 여기며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도’에 대해 가장 잘 나누고 다른 사람의 일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보배’를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오히려 그것을 가보로 삼아 섬기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함으로써 자신을 우러러보는 아둔한 이들을 가르친다. 교회에는 확실히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굴복을 모르는 영웅 세가’로, 대대로 하나님 집에 얹혀산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도’(리)를 얘기하는 것을 자신의 최고 직책으로 삼고, 한 해 또 한 해,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어 가며 자신들의 신성불가침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누구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누구도 감히 그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지 못한다. 하나님 집에서 ‘거물’이 된 그들은 시대마다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 날뛴다. 이 악마의 무리가 연합하여 나의 사역을 허물려고 하는데, 내가 어찌 이런 산 귀신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 내게 절반만 순종하는 사람들도 마지막까지 가지 못하는데, 하물며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이 악한 자들은 어떻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이 엄한 말씀이 예리한 검처럼 제 가슴을 찔렀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 같았어요. 믿은 지 오래돼서 전 제가 교회에서 제일 잘 믿는 사람이고 주님께 충성한다 여기고 제가 헌신한 걸 큰 자격으로 내세워 교회에서 왕노릇 했었어요. 교회의 대소사는 다 제가 결정했죠. 다들 예수님을 믿고 성경도 본다고는 하지만 청종한 건 다 제 말이었어요. 특히 주님을 맞이하는 일에서 전 제 관념만 고집했고 형제자매들도 알아보지 못하게 겁주고 막았고 교회를 완전히 봉쇄했어요. 다들 겁나서 동방번개 사람을 접촉하지도 못하고 말씀은 들을 엄두도 못 냈어요. 정말 좋은 말씀이라고 느껴도 출교될까 겁나서 더 듣지도 못했고요. 제가 바로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게 한 악한 종이고 현대판 바리새인이더라고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서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지만 돌이키지도 않고 계속 제 관념을 진리처럼 여겨 고집할 뿐이었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지 않았어요. 정말 너무 교만했어요. 제 관념을 진리로 여기면서 형제자매한테 따르게 했는데, 제가 하나님의 자리에 선 거잖아요. 그게 바로 적그리스도고 천사장이죠.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고도 하나님을 모르고 대적만 했어요. 근데 하나님은 벌하지 않으시고 병을 줘서 제 악행을 멈추시고 형제자매를 통해 복음을 듣게 하셨어요. 저는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생각하니 하나님께 너무 송구스럽고 또 감사했어요. 하나님께 엎드려 울면서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제 소행으론 정죄받고 저주받아 마땅하고 살 자격이 없는데, 절 구원하시고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셨네요. 저는 많은 악을 저질렀으니 용서를 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저의 죄를 속하고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길 잃은 양들이 당신께 돌아오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 후로 갈급하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봤는데, 예전에 몰랐던 많은 진리를 알게 됐어요. 무엇을 성육신이라고 하는지, 하나님을 믿는 게 뭔지, 어떤 게 참된 섬김인지, 그리고 성품 변화가 뭔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흡족게 할 수 있는지 등등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급받으면서 많은 걸 얻게 됐어요. 이게 진짜 어린양의 혼인 잔치죠. 더 확신했어요. 이건 하나님의 사역이자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에요. 그리고 그 사이에 저도 모르게 병도 다 나은 거예요. 나중에 형제자매들과 협력해서 원래 교회 사역자 9명과 30여 곳 소그룹 팀장을 다 하나님 앞으로 데려왔어요. 그 후에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루 빨리 말세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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