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답답함을 해결했는가
저는 예전부터 교회에서 단일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사역량이 많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었고,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전도 책임자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협력하는 자매를 보니 매일 점검해야 할...
2012년, 저는 여러 교회의 사역을 맡았습니다. 교회 선거 기간 중 어머니는 악인 리팡에게 미혹되어 새로 선출된 교회 리더를 공격하고 깎아내리며 그 사람은 업무 능력도 부족하고, 진리도 깨닫지 못하니 리더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리팡은 진리 실제가 있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직접 발로 뛰고,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다며 리팡을 높이 평가하고 찬양했습니다. 결국 악인인 리팡이 리더로 뽑혔습니다. 그리고 또 어머니는 양육 집사가 성령 사역이 없고, 실제 사역을 할 수 없으니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서야 한다며 공격하고 논단했고, 결국 양육 집사가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양육 사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악행을 전혀 반성하지 않으셨고 교회에서 리팡을 제명하려고 할 때에도 계속 리팡을 적극적으로 감싸며, 리팡의 억울함을 대신 호소했습니다. 더 나아가 형제자매들을 미혹해 리팡 편에 서게 했고, 심지어 “선거를 열 번, 스무 번 해도 저는 리팡을 리더로 뽑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선거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게 방해한 탓에 교회 사역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했습니다. 그 후 리더가 어머니의 악행을 분석하고 폭로했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악행을 조금도 인식하지 못했고, 전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교회에서 제명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어머니가 제명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은 후 박해를 받았고, 고생도 많이 하셨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힘겹게 저를 키워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동정심이 생겨 어머니가 제명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여러 차례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깨우침과 인도로 저는 어머니의 본질이 악인임을 분별할 수 있었고 어머니를 교회에서 제명하는 데에 동의하는 서명을 했습니다.
2018년 5월, 저는 교회의 정리 사역을 맡았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하달된 사역 안배에는 제명된 후 진실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다시 교회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제명된 후 지난 몇 년간 간혹 본인이 제명된 일을 얘기하시면서 그땐 본성이 너무 교만해서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야 깨달음을 얻었고, 제명된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라고 하셨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제 기억에 한 번은 어머니께 당시 악행을 어떻게 인식하셨는지 여쭈었는데 어머니는 분별력이 없어 미혹되었다며 리팡이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오래되었으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직접 발로 뛰며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리더 자리에는 리팡이 아니면 안 된다고 여겼고, 그래서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하며 만류하는 말은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행했던 악행을 상세히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여전히 스스로 변명하며 해명했고, 어떤 일은 발생한 원인이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문제와 리팡의 모습을 연관 지어 살펴보고 어머니에게 악인을 감싸며 두둔했을 때 사역에 가져오는 교란의 본질과 후폭풍을 교제하여 어머니가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하시도록 이끌었습니다.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셨고, 스스로 사탄의 하수인이었다며 사탄의 대변자 역할을 했으니, 본인이 바로 악인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정말 기뻤습니다. 어머니도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었고, 어느 정도 인식은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몇 년간 어머니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꾸준히 봉헌하고 자선을 베풀었고 리팡에 대해 약간의 분별력이 생긴 모습, 교회에서 제명된 후 복음을 전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음에도 형제자매들을 팔아넘기는 유다가 되지 않았던 모습, 제가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을 때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던 모습, 지난 몇 년간 경찰의 추적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었을 때 제 아이를 돌봐주시며 제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것들을 떠올리니 어머니가 어느 정도 회개의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제명 후 매우 힘들어하셨으며, 언젠가 교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하셨습니다. 지금 마침 제가 그 사역을 맡고 있으니 저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 어머니가 교회로 다시 돌아오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도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회 생활을 하실 수 있고, 나중에 제가 어머니를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분명 매우 기뻐하실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담당하는 교회 몇 곳에 메시지를 보내 각 교회 리더에게 제명된 후 진심으로 회개하여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루는 교회 리더로부터 제명된 악인들의 참회문 4편을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어머니의 참회문도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4명 중 나머지 세 사람도 제가 잘 아는데, 제명된 후 별다른 회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어머니가 교회로 다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훨씬 컸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에서 사람을 받아들이는 원칙에 따라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려면 많은 형제자매와 리더 일꾼의 평가가 필요하며 당사자의 참회문과 교회 리더의 평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교회 리더에게 메시지를 보내 교회 리더에게 어머니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평가를 요청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평가만 요청하면 형제자매들이 저더러 사적인 감정을 따른다고 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의심을 피하고자 저는 리더에게 4명 모두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고,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평가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이 떠올라 어머니가 제명된 후 ‘회개’한 모습을 상세히 써 내려갔고, 어머니가 당시 제명된 이유는 짧게 언급하는 정도로만 작성했습니다. 너무 자세히 쓰면 어머니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데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명된 이후의 긍정적인 변화를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교회로 다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좀 더 커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또 어머니께 메시지를 보내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을 상세하게 교제하며 분석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근본적인 원인을 깨달을 수 있게 이끌어드렸고, 이번 기회를 잡아 하루빨리 회개하라며 일깨워드렸습니다. 이렇게 작성하는데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뒤에서 이렇게 많이 신경 쓰면서 어머니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길 바라는데, 이는 감정적으로 일을 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단순히 생각만 했을 뿐, 진리를 구하거나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답장을 기다리던 중 혹시라도 그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겨 어머니가 다시 교회로 받아들여지는 데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며칠에 한 번씩 교회 리더에게 메시지를 보내 평가 수집 진도를 독촉하며 물었습니다.
어느 날, 상부 리더가 메시지를 보내 저를 책망하며 말했습니다. “최근 교회 리더가 업무의 초점을 모두 제명된 사람들의 재수용 자료를 수집하는 데에 집중하면서 다른 업무는 모두 제쳐 두고 있어요. 진실로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교회의 재수용 대상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교회에 평가를 수집하라고 하다니 이건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행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메시지를 보고 저는 속으로 계속 변론했습니다. ‘회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자료를 수집한다고? 리더가 잘 못 본 것 아냐? 우리 엄마는 회개하는 모습이 조금은 있어. 어떻게 그 사람들 모두 회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를 책망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한다고 하지?’ 저는 속으로 계속 반발심이 들었고, 어떻게 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틀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리더가 저를 책망하자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 무엇이 진실된 회개인지 알지 못합니다. 부디 제가 이와 관련한 진리를 깨우칠 수 있게 저를 일깨워주시고 이끌어주세요.’ 기도 후 제 마음은 차분해졌습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악한 길’은 한두 가지의 악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행한 일의 근원이 사악함을 의미한다. ‘악한 길에서 떠나다’는 더 이상 그렇게 일을 하지 않고 악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하는 방식, 근원, 출발점, 속셈, 원칙 모두를 바꾸어 더 이상 그런 방식과 원칙으로 향유하거나 즐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다’의 ‘떠나다’는 내려놓고 버림으로 과거를 완전히 끊어 내고 다시는 지난 길을 걷지 않는다는 뜻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난 것은 참된 회개를 했음을 증명하고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과 내면을 모두 관찰한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마음으로 참된 회개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살펴보고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제서야 마음을 되돌렸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든 간에,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은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은 점차 누그러져 뜻을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을 멸할 것이라 선포하기 바로 직전, 즉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 직전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련의 회개가 있은 후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점차 관용과 긍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두 성품이 하나의 일에서 동시에 나타났는데, 이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모순되지 않음을 사람은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하느냐? 완전히 다른 두 본질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전과 후에 하나님에게서 나타나고 드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고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본질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어렵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노할 때 하나님은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사람의 참된 회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계속 아낌없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 것이다. 사람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는 자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을 대한 일에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게 드러났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의 참된 회개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리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니느웨 사람은 악행이 너무 많아 하나님의 분노를 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걸었던 악의 길에서 벗어나 행했던 모든 악한 일을 완전히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입으로 회개하고 죄를 인정한 것이 아니었으며 겉으로 보이는 행동에만 변화가 생겼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악행을 반성하며 인식했고, 그들이 일을 행하는 속마음과 근원, 출발점이 모두 바뀌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된 회개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악인들과 적그리스도는 제명된 후에도 단순히 겉으로만 나은 행동을 보일 뿐이었고, 복음을 전하거나 본분을 이행하며, 선행을 하여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려고 하며 입으로는 자신이 악행을 저질렀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이 일을 하는 속셈과 목적, 동기가 무엇인지, 어떤 본질의 지배를 받는 것인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진정한 깨달음과 악을 증오하는 마음이 없어 진실된 회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다시 악을 저지르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으니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모습과 대조해 보니 어머니가 교회에서 제명된 것은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과거의 악행을 진실로 인식하고 회개하며 진리 실행에 집중하면서 앞으로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확실히 다짐하면 어쩌면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받을 희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입으로만 본인이 리팡의 미혹에 당해서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했으며 자신이 악인이었고, 사탄의 대변자였음을 인정하시면서도 본인이 악인을 두둔하고, 교회의 선거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던 악행에 대해서는 조금의 인식도 없으셨습니다. 다시 어머니의 악행을 폭로했을 땐 여전히 객관적인 이유를 들며 변명하셨고, 본인의 본성 본질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식이 없어 진실된 회개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제명된 후 매우 힘들어하시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으며 예배드리시며 체포가 되었는데도 유다가 되지 않고 평소에도 봉헌하고 자선을 베푸시며 제가 소극적이고 나약했을 때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어머니가 회개하시는 모습이 있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를 다시 교회로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다른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행위에 근거하기에 선행을 하면 의인, 악행을 하면 악인이라고 본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은 사람의 본질이 하나님께 순종하는지의 여부에 근거한다. 행위의 좋고 나쁨과 말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의인이고, 그러지 않는 자는 원수이자 악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선과 악을 가늠하실 땐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본질과 사람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 일을 행하는 속마음과 출발점이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인지를 보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본질이 진리를 싫어한다면, 겉으로 아무리 좋은 행동을 보여도 그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입니다. 제가 사람을 대할 때 원칙이 없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겉으로 약간의 좋은 행동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진실로 회개했다고 여겼고, 어머니의 본질을 분별하지 못했으며 어머니가 진리를 대하시는 태도도 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어머니를 교회로 다시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며, 조금의 원칙도 없었습니다. 제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정말 너무 황당무계합니다! 얼마 후 저는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행동했던 것은 어떤 패괴된 성품의 지배와 속박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이 문제를 품은 채 저는 계속 하나님 말씀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감정의 본질이란 무엇이냐? 바로 패괴 성품의 일종이다. 감정적인 모습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하자면 편들기, 감싸기, 육적인 관계 지키기, 불공정함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다. 사람이 감정이 있어 감정에 기대 살아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하나님은 왜 사람의 감정을 가장 혐오하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늘 감정에 얽매여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나 그러지 못하기에 감정으로 고통받는다. 또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도 실행하지 못하는데, 이 또한 감정에 얽매였기 때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 집에서 네게 교회의 인원을 정리하는 사역을 시켰는데,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건성으로 임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이 있다. 원칙대로라면 그에게 처분을 내려야겠지만 그와 너는 사이가 좋다. 그럼 너는 어떤 생각과 속셈을 품겠느냐? 너는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자신의 취향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그 취향은 어떻게 생겨났겠느냐? 그가 너한테 잘해 주었기 때문에, 혹은 너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었기 때문에 너는 그에게 호감이 생겼고, 이럴 때 그를 보호하고 변호해 주려 할 것이다. 이것이 감정의 작용 아니겠느냐? 너는 그에게 정을 느끼기에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라는 식으로 양면 수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좀 더 열심히 해야 해요. 더는 대충 해서는 안 돼요. 고생도 좀 해야 해요. 이건 우리 본분이잖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너는 “그 사람 많이 좋아졌습니다. 본분 이행 효과도 전보다 좋아졌습니다.”라고 상부에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네 속마음은 이랬다. ‘이건 내가 그 사람을 달래서 그렇게 된 거지, 안 그랬으면 그대로였을 거야.’ 그리고 너는 계속 ‘그 사람은 나한테 잘해 주는데, 내가 그 사람을 제명할 수는 없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너에게 이런 속셈이 있다면 이것은 어떤 내적 상태이냐? 이는 개인의 감정적인 관계를 지킴으로써 교회 사역에 해를 입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겠느냐? 이런 행동이 순종적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반항하는 것이다. 네게 임한 일, 또는 네가 해야 할 사역에 대한 네 생각에 주관적인 판단이 있는 것인데, 거기에는 감정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너는 정에 휘둘려 일을 처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이 공정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한다. 이렇게 사역을 하면 에누리해서 하여 사역 성과에 영향을 미치며, 교회 사역에 피해를 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에 휘둘려 일을 처리한 결과이다. 만약 성찰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 영원히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런 식의 행동이 옳지 못하며 순종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줘야지. 내가 도와줘서 그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진다면 제명할 필요도 없어.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잖아?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니까 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동해야 해.’라고 생각한 후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 너는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고도 마음이 편하며 진리를 실행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너는 진리에 따라 실행한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취향이나 속셈에 따라 행한 것이냐? 너는 완전히 자신의 취향, 속셈을 따라 행한 것이다. 전반 과정에서 너는 소위 호의와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감정, 처세 철학을 동원하여 얼버무렸고 중용의 길을 택했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는 정에 휘둘린 것이다. 또한, 상부에서 알게 될까 봐 절충적인 방식으로 사람 마음을 회유하고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고 사역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의 중용의 길이다. 사실,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평가하겠느냐? 하나님은 네가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정의할 것인데, 너는 진리와 하나님 요구에 대해 늘 연구하고 분석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식으로 진리를 대하고 하나님 요구를 대하고, 또 그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했을 때, 너의 속셈은 여기서 어떤 작용을 한 것이냐? 자신의 이익과 체면, 인간관계를 지키는 작용을 했다. 반면, 하나님의 요구를 개의치 않으며, 자신의 본분과 교회 사역에 좋은 작용을 하지는 못했다. 이런 사람은 100% 처세 철학에 기대 살아간다. 그의 말과 행동은 모두 자신의 체면과 감정, 인간관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진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진실로 순종하지 않고, 그 어떤 입장 표명이나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음속에 조금의 가책이 없고, 그것이 어떤 문제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면 사람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일을 처리하든 원칙에 따라 하지 못한다. 속셈과 사적인 욕망으로 산다면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이 닥쳤을 때 자신의 속마음을 성찰하지 않고, 또 그 속마음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온갖 이유를 들어 자기에게 유리한 거짓말이나 핑계만 늘어놓는다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느냐?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체면, 인간관계는 잘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는 맺지 못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이 하나님을 대할 때 갖춰야 할 태도>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 깊이 찔리고 괴로웠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임했을 때 진리를 구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일을 행하지 않았으며 가족의 편만 들며 감쌌고 모든 일에서 육적인 감정과 개인의 이익을 비호하려고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에 따라 일을 행하는 것이며, 일종의 패괴된 성품으로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힘들게 키우시고, 저를 위해 많이 헌신하셨으니 이 혈연관계로 저는 늘 어머니를 감싸려고 했고, 어머니를 대할 때 조금의 원칙도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신자를 수용한다는 사역 안배를 보고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악인으로서 교회에서 제명되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겉모습에서 보이는 몇 가지 좋은 행동만 보고 어머니를 다시 교회로 데려오고 싶어 했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으며 어머니와의 친족 관계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평가를 작성할 땐 객관성, 공정성, 진실성, 실제의 원칙을 위배하며 감정적으로 편들고 비호하면서 대부분 어머니의 좋은 면만 작성했습니다. 어머니를 진리를 추구하는 올바른 사람으로 미화했고, 어머니가 과거에 악행을 저질렀던 모습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어머니가 당시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진실된 인식이 없으실 것을 우려해서 따로 메시지를 보내 어머니가 저질렀던 악행을 하나하나 폭로하면서 일깨워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본인을 진실로 인식하고 하루빨리 회개해서 다시 교회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지인들의 평가를 수집할 때 저는 제명된 다른 세 명이 회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의 평가만 받으면 다른 형제자매들이 제가 감정적으로 일을 한다고 말할 것이 두려워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리더에게 네 명에 대한 평가를 달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며칠 간격으로 교회 리더에게 평가 수집 진행 상황 보고를 독촉하는 바람에 결국 리더의 본분 이행을 교란했습니다. 이런 저는 결국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감정적으로 행동했고, 잔머리를 굴리며 편법을 사용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되어 일을 행할 때 조금의 원칙도 없었으며 제 마음대로 사람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인성도 없습니다! 제가 이런 비열한 방법으로 어머니를 다시 교회로 데려와서 어머니와의 친족관계를 지킨다고 해도 이는 하나님께 미움받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읽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성질과 초래될 결과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정이 너무 많다. 매일 말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정에 이끌려 살아간다. 이 사람에게도 정을 주고 저 사람에게도 정을 주며 매일같이 정을 베풀고, 매사 정에 파묻혀 살아간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그는 사흘간 곡을 하고 땅에 묻지도 못하게 하면서 죽은 사람에게도 정을 준다. 지나치게 정에 이끌리기에 이 사람에게는 정이 바로 치명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일에서 정에 휘둘려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도 없으며 또한 항상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다. 정이 바로 그의 최대의 약점이자 치명적인 부분이다. 정은 이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 망칠 수 있다. 정이 너무 많은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없다. 정이 많으면 육만 돌볼 수밖에 없는데, 어리석은 바보다. 이런 사람의 본성은 바로 정이 너무 많은 것으로, 그는 정에 이끌려 살아간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사탄은 누구이고 마귀는 누구이며 하나님의 원수는 또 누구더냐?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그 무리들 아니더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 아니냐?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나 진리가 없는 자들 아니더냐? 복만 받으려 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 아니더냐? 네가 오늘날에도 이 마귀들과 손잡고 그들을 양심과 사랑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 아니겠느냐? 마귀와 한통속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오늘날에 이르렀는데도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사랑과 긍휼만 강조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이런 부류가 맞이하는 결말은 더욱 비참할 것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원수이다. 네가 원수에게도 양심과 사랑을 베푼다면 정의감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내가 증오하고 반대하는 자와 네가 오히려 마음이 통해 그들을 사랑이나 사적인 감정으로 대한다면 패역 아니겠느냐? 고의로 대적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 자에게 진리가 있겠느냐? 원수를 양심으로 대하고 또 마귀를 사랑으로 대하며 사탄에게도 긍휼을 베풀려고 한다면, 고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감정에 치우친 사람은 가족 관계를 지키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 원칙을 위배하고 진리를 저버릴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받게 됩니다. 제 상태에 견주어보니 제가 바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로 살고 있었습니다. 가족 간의 정을 최우선으로 두었으며 본분의 이점을 이용해 어떻게든 어머니를 교회로 다시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저는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입으로만 한 회개와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좋은 행동만 보고 어머니를 교회로 다시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평가를 써 줄 사람을 찾아 어머니가 교회로 들어올 수 있는 증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악행을 작성한 메시지를 따로 보내 어머니가 얼른 인식하고 회개해서 하루빨리 교회로 돌아오시길 바랐습니다. 제가 정리 사역을 맡은 이후를 돌이켜보면, 제 손을 거친 제명 대상자와 재수용 신청자의 자료는 모두 원칙에 따라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했고, 그 기간에는 진리 원칙을 조금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평가를 작성할 땐 고의로 간사하게 기만하며 어머니를 대신해 좋은 말만 하려고 했고, 심지어 어머니께 빨리 회개하라며 교제해 주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완고하게 원칙을 어기면서 일을 행했고, 진정한 악인을 다시 교회에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혐오하시고 증오하시는 사람을 저는 감정에 휩싸여 온갖 수단으로 교회에 돌아오게 하려고 했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께 거스르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며 교란하는 행위 아니겠습니까? 큰 붉은 용이 집권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사리사욕을 위해 법을 어기고, 한 사람이 관직에 오르면 친척과 친구들도 덕을 봐서 자질에 상관없이 모두 중용되며 법도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집 원칙을 무시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원칙을 위배하고 억지로 어머니를 다시 교회로 데려오려고 하면서 저도 모르게 악인의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받을 만합니다! 교회의 재수용 원칙에 따르면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멋대로 행동하여 교회 사역을 교란한 사람이 제명된 후 자신의 악행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얻고 좋은 사람을 얻는다면 그 사람이 교회에 다시 돌아오길 신청하면 재수용을 고려하고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제명된 사람을 너무 많이 재수용하면 이는 원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본질은 영원히 악인이므로 진실로 회개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다시 받아들일 때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진리를 구하고 모든 사람의 모습과 본질을 정확히 분별하여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면서도 나쁜 사람이나 악인은 재수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원칙을 위배하고 어머니를 교회로 데려오면 어머니가 자신의 악행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진실로 회개하지 않으실 것이고 적당한 기회가 오면 분명 계속해서 악행을 저지르고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선동하며 미혹하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악행에 가담한 사람이 되어 결국 사탄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감정이 저의 치명적인 약점이며 제가 진리를 실행하는 길에 있는 걸림돌이자 장애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감정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볼 수 없었고 어머니와의 감정을 지키고자 원칙을 위배하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제가 한 모든 행동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것으로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위험합니다! 다행히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되어 악행을 저지르려던 제 발걸음을 제때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어머니를 다시 교회로 데리고 와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을 교란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악인의 공범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결과는 정말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제 마음은 후회와 자책감,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빚진 마음으로 가득했고,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매우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행동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고, 진리를 구하며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이와 관련한 원칙을 다시 찾아보고 네 사람 모두 자신의 악행을 진실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들이 작성한 참회문을 보면, 일부는 여전히 간접적으로 자기변명을 늘어놓아 마치 자신들의 악행이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재수용 원칙에 따라 이 네 사람 모두 교회에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만약 네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믿는 것이 올바른 길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며,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도 당연히 그들을 혐오하고 증오할 것이다. 너는 이런 부모를 혐오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욕한다면, 틀림없이 마귀이자 사탄일 것이다. 너는 그들을 증오하고 저주할 수 있겠느냐? 이는 다 현실적인 문제이다. 네 부모가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막는다면, 너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대해야 한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벌써 이 말씀이 있었고, 오늘날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말씀은 더욱 명확하고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며 하나님의 집 사역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형제자매이며 이들을 대할 때는 마땅히 사랑으로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를 싫어하며 악행을 저지르고 교란한 후에도 결코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을 대할 때는 마땅히 끊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부합합니다. 저는 어머니를 대하는 방법과 관련한 원칙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해야 합니다. 혈연관계에서 그녀는 제 어머니시지만, 어머니의 본성은 진리를 싫어하시고 증오하시며 자신의 악행에 대해 진실로 인식하거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형제자매들이 작성한 평가를 보니 어머니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방인과 같아 세상의 흐름을 추구했고 불신파와 악인의 본질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증오하시고 혐오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저도 진리와 원칙에 따라 어머니를 대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저는 교회의 재수용 원칙과 선행과 진실된 회개를 분별하는 관련 진리에 따라 교회 리더에게 그 몇 사람에 대한 처리 제안을 담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후 교회 리더는 이 기간에 파악하고 조사한 것을 통해 저희 어머니가 겉으로만 약간의 선행을 보였으며 자신의 악행에 대해서는 진실된 인식이나 회개가 없어 네 명 모두 수용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교회에 재수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만 마음이 진정으로 해방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 정도의 실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신 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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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부터 교회에서 단일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사역량이 많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었고,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전도 책임자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협력하는 자매를 보니 매일 점검해야 할...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입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무척 상냥하고 다가가기 쉬운 분이셨습니다. 늘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계셨고, 단 한 번도 우리에게 화를 내시거나 엄하게 꾸짖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우리와 함께 이야기도 나누시면서...
이전에 책임자 멍제(孟潔) 자매한테서 들은 얘기가 있어요. 리핑(李平)이 계속 사람과 일에 집착하고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교제해 줘도 전혀 뉘우치지 않는다면서 리핑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해 달라고 했어요....
프랑스 에드위지(Edwige)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아주 인상 깊은 글을 보았습니다. 공융양리(孔融讓梨)의 이야기였지요. 공융(孔融)은 형과 아우에게 가장 큰 배를 양보하고, 자신은 가장 작은 것을 가져가 부친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