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게 되다

2025.9.26

중국 쑹위안(宋元)

저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학창 시절에는 반 친구들 얼굴도 다 못 외울 정도였습니다. 주위에 친구도 별로 없었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할 말도 없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게 두려워졌고, 사람이 많으면 긴장해서 말을 더 안 하게 됐습니다. 말을 잘 못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때, 저는 가족과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그림 그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본분은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보내고, 기껏해야 평소 예배 시간에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도여서 다른 사람과 많이 교류할 필요가 없었기에 저도 내성적인 성격에 크게 속박되지 않았습니다. 2022년, 저는 양육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인(佳音) 자매와 함께 새 신자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자인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새 신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새 신자의 내적 상태와 문제를 파악했고, 그러고 나서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새 신자에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새 신자들은 자인을 무척 좋아했고,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웠습니다. ‘나도 자인 자매처럼 외향적이고 다른 사람과 말을 잘 섞으면 좋을 텐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 어려운 일이 저 자매에게는 저렇게 쉬운 걸까?’ 저는 옆에서 그들이 활기차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제가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때때로 자인은 저에게도 이야기해 보라고 했습니다. 새 신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저도 어느 정도 교제할 수는 있었지만, 말을 하면 조금 더듬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항상 제가 표현하고 싶은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자질이 부족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한다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자매가 새 신자를 나한테 맡기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앞으로 혼자서 새 신자와 예배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긴장이 됐습니다. 제가 말을 잘 못해서 새 신자가 반감을 갖고 예배에 나오지 않으려 할까 봐 두려웠고,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결국 본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까 봐 더 겁이 났습니다. 이제 새 신자를 양육하거나 복음을 전하려면 사람들과 교류해야 하는데, 저는 하필 그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내가 새 신자를 양육하지 못하면 다른 본분도 잘 이행하지 못할 텐데, 그때 가서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이 없으면 어떻게 구원받겠어? 앞날과 종착지라고 할 만한 게 있겠어?’ 이 본분을 맡은 이상, 방법을 찾아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자매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지, 새 신자의 어려움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등을 유심히 듣고는 그대로 외워서 마음에 새겨 두었습니다. 그러면 새 신자를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혼자 새 신자와 예배하게 되자 너무 긴장이 됐습니다. 머리가 제멋대로 움직여 외웠던 말도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억지로 입을 열어 자매가 했던 말을 따라 해 보았지만 아주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간단한 질문조차 자매처럼 자연스럽지 않았고, 두 마디만 나누면 분위기가 싸늘해졌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말주변이 없을까? 이렇게 간단한 몇 마디 말도 못 하다니!’ 저는 이런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 성격을 바꿔야만 양육 본분을 더 잘 감당할 수 있고, 저의 앞날과 종착지도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훈련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그 후로는 예배 때마다 최대한 새 신자들과 많이 대화하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면, 하나님의 인도로 외향적으로 변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기도한 후에도 사람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됐고, 저는 점점 낙심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훈련했는데 왜 변하지 않는 걸까? 나도 이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은데, 이런 성격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좀 더 외향적으로 만들어 주지 않으시는 걸까? 내가 자인 자매처럼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계속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새 신자가 나를 무뚝뚝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앞으로도 나랑 같이 예배하고 싶어 할까?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해서 교체되면 어쩌지?’

한번은 어떤 새 신자가 관념이 생겨서 교회 리더가 저에게 그 새 신자를 붙들어 주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서둘러 관련된 진리를 찾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외우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새 신자 집에 도착하자 저는 여전히 긴장해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 땀이 나도록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새 신자는 다른 관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저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느 정도 생각은 있었지만, 당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머릿속이 하얘져서 두 마디 하고는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새 신자도 제 말을 듣고는 반응이 냉담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정말 형편없어! 분명히 단단히 준비했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잖아. 이 본분은 정말 나처럼 말주변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저는 생각할수록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얼마 후, 리더가 편지를 보내와 제가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본분에도 책임감이 부족하니, 심사숙고 끝에 제 본분을 바꿔 주기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제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나처럼 말주변 없는 사람은 새 신자 양육도 못하는데, 복음 전도는 더 못하겠지. 다른 특기도 없는데 무슨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사역이 곧 끝나 가는데 이행할 본분이 없다니, 나는 도태되는 거 아닐까?’ 저는 생각할수록 괴로웠고, 나름대로 변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만큼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성격을 주셨을까? 외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해 주셨어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문득 두려워졌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건가?’ 저는 더 이상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본분을 이행할 의욕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은 새 신자가 한 명 있었는데, 저는 그와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어차피 곧 다른 자매에게 양육을 인계할 텐데, 그 자매에게 해결하라고 하자.’ 이런 생각을 하니 또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제 행동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 이상, 우리는 마땅히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하루를 살아도 하루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최우선 임무로 삼아야 하며, 본분 이행을 인생의 우선순위로 삼아 완성해야 한다. 완벽을 추구하지는 않더라도 진리에 공을 들이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하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고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으며 어떤 후회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본분을 대할 때 가져야 하는 태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본분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본분에 마음과 힘을 다했는지 여부이며,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성격이 내성적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본분 이행에 마음을 쓰지 않았고, 진리를 구해 새 신자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지도 않았으며, 새 신자의 생명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무책임한 제 태도를 하나님께서 어찌 인정하시겠습니까? 비록 본분은 조정되었지만, 인수인계 기간에 해야 할 사역이 남아 있었습니다. 건성으로 해서는 안 되고, 새 신자의 문제를 빨리 해결해서 마지막까지 제자리를 잘 지켜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새 신자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구하다가, 마침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체험 간증 글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글쓴이의 체험에 결부해 새 신자와 교제했습니다. 말이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새 신자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 후, 리더는 제가 체험 간증 글을 몇 편 쓴 것을 보고 문서 본분을 맡겼습니다. 석 달 뒤, 리더는 제게 몇몇 형제자매에게 가서 설교 원고 작성 원칙을 교제해 주라고 했습니다. 제 성격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데 원칙을 교제해 주라니,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딱딱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이건 제게 무리한 일을 시키는 거고, 다른 사람을 오도하라는 거잖아요!” 당시 리더가 어떻게 교제하든 저는 제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무척 반발했습니다. 리더가 가고 나서야 진정이 된 저는 후회와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본분이 주어지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인데, 그날 제가 그렇게 본분을 거절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에야 저는 그러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내성적인 성격에 속박되어 무슨 일을 하든 매우 의기소침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나는 더 추구할 수도 없으니 이대로 힘쓰는 자나 되는 것도 괜찮겠다.’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남들과 대화할 때 쉽게 긴장하거나 어떤 일을 맞닥뜨릴 때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있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 많은 사람 앞에서 극도로 긴장하며 두서없이 말하고 입술까지 덜덜 떨리는 것 등이 있다. 심지어 말을 더듬는 사람도 있고, 이성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욱 말실수를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단기간 내에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너의 선천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 이 결함과 문제점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다면 극복하고, 극복하기 힘들다면 그냥 신경 쓰지 마라. 그것과 힘겨루기를 하거나 자신에게 도전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서도 안 된다. 네가 평생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 공포증을 갖고 긴장하며 두려워하는 것, 이런 모습은 패괴 성품이 아니다. 그것이 선천적인 것이든 후천적으로 어떤 환경 때문에 생겨난 것이든, 기껏해야 인성의 한 가지 결함이자 문제점일 뿐이다. 오랫동안, 혹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 그것에 속박되지 말고 그것 때문에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도 마라.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니 바꾸려 하고 힘겨루기를 해 봤자 소용이 없다.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며,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너는 그 결점, 문제점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점과 문제점이 있어도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 그것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구원받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성의 어떤 결점이나 문제점 때문에 늘 속박받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낙담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본분과 진리 추구를 포기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하등의 가치가 없으며, 그런 자는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가뭄의 단비처럼 저의 메마른 마음에 스며들어 희망을 주었고, 진리를 추구할 동력도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극복하지 못했던 문제가 바로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이며, 그것은 타고난 것이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에게 결함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두려워했고,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말주변이 없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며, 내성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본분 이행의 성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려고 했고, 성격만 바꾸면 본분을 잘 이행하고 구원받을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투를 따라 하고, 하나님께 저를 좀 더 외향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자, 저는 스스로 이 본분을 이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단정 짓고, 계속 의기소침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된 후, 리더가 형제자매에게 원칙을 교제하라고 했을 때도 저는 제 성격상 분명 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반발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힘쓰는 자가 되는 것에 만족하며 할 수 있는 일이나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 제 결함과 흠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했고, 온종일 의기소침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스스로를 규정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때에 저를 도와주신 것에 무척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 내성적인 성격은 패괴 성품이 아니라 단지 인성의 결함이자 선천적인 조건이며,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것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더 이상 그것과 씨름해서도, 그것에 얽매여서도 안 됐습니다. 제게 그런 결함이 있다고 해도 진리를 추구하여 패괴 성품이 변화되기만 한다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결함 때문에 진리 추구를 포기했던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았고, 사람의 성격과 구원받는 것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어떤 문제와 결함, 허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원래부터 갖추고 있는 정상 인성의 조건하에서 네가 어떻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며, 어떻게 진리 원칙대로 행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지를 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진리 원칙과 관련된 일에서는 정상 인성의 자질이나 본능, 성격, 습관 또는 생활 리듬 등 기본적인 조건에 제약받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 기본적인 조건들을 극복하는 데 정력과 시간을 쏟아붓지도 말아야 하며, 이를 바꾸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 이는 모든 피조된 인류가 타고나는 것으로, 패괴 성품이나 인성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이는 사람이 겉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상태이자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표현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못하는 사람도 있다. 묘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겉으로 표현해 모두에게 들려주어야 비로소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삶을 대하고 사람과 일, 사물을 처리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 사람의 성격이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니, 여러 번 시도했지만 바꿀 수 없었다면 말하건대 이제는 그만두어도 된다.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다. 성격은 바뀌지 않으니 바꾸려 하지 마라. 네가 원래 어떤 성격이든 그대로 두고, 구원받기 위해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마라. 그것은 사람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사람의 성격은 객관적 사실로, 너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객관적 원인을 보면,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고자 하는 성과는 네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와 아무 관계가 없고, 네가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여부 역시 네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또한,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인지,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인지도 네가 어떤 성격인지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본분을 이행한다거나 어떤 사역의 책임자가 되었다고 해서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마라.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럼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느냐? 어떤 성격을 지녔든, 어떤 선천적 조건을 갖추었든 네가 지키고 실행해야 할 것은 진리 원칙이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네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 네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자질이나 능력, 재능, 은사, 재주를 타고났는지 등은 보지 않는다. 물론 네가 육체적 본능과 필요를 얼마나 억제했는지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했는지,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다짐이 있는지를 본다. 결국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데 이르렀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바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께서 너무나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그 사람의 성격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구원 여부를 가늠하실 때 우리가 타고난 성격이나 자질, 재능, 능력이 어떠한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저는 줄곧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늘 양육자로서 사람들과 소통을 잘하지 못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고, 앞으로 분명 구원받지도 못할 것이며, 성격적 결함을 고쳐야만 본분을 잘 이행하고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제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결국 바꾸지 못한 채 소극적으로 변했으며, 심지어 제게 외향적인 성격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늘 성격을 바꾸려고 애썼던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성격의 변화는 단지 외적인 변화일 뿐입니다. 설령 제가 결점을 고쳐 외향적으로 변해 사람들과 말을 잘하게 되더라도, 패괴 성품이 해결되지 않아 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지 않으며, 일이 닥쳐도 진리를 구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께 따지고 원망한다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도태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태생적인 천성이나 육적 본능 같은 것들은 하나님이 사역하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대상은 사람의 패괴 성품과,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이 사역으로 사람의 자질과 본능, 심지어 성격과 습관, 생활 리듬 등을 바꾸려 한다고 상상한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이 하는 여러 가지 실행은 모두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영향받고 좌우될 것이며, 치우친 부분이나 극단적인 것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치우친 부분과 극단적인 것은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사람이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서 이탈하고 정상 인성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예를 들어, 네가 관념과 상상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자질과 능력, 심지어 본능까지 바꾸려 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바꾸려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추구하겠느냐? 너는 편집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뛰어난 자질을 추구할 것이고, 여러 기능을 배우고 각종 지식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 뛰어난 자질과 능력, 높은 식견과 소양, 심지어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재능을 갖추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표면적인 능력과 재주를 중시하게 된다. 그럼 이런 추구가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겠느냐? 진리 추구의 길에 들어서기는커녕 오히려 바리새인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또 사람들은 누구의 자질과 은사, 지식이 더 높은지, 누가 더 능력과 특기를 갖추었는지, 누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위신이 높아 추앙과 우러름을 받는지 서로 비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떠나는 길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반성하며 묵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은 진리 원칙을 우리 안에 심어 주시고, 우리의 패괴 성품과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시는 것이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질이나 본능, 성격 등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관점에 따라 살면서, 늘 하나님께 저를 외향적이고 말 잘하며 자질 좋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요구와 정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은사가 뛰어나고 말재주가 좋아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얻었지만, 진리에 전혀 힘쓰지 않았고 생명 진입을 중시하지 않아 패괴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많은 사역을 했다는 이유로 늘 자신을 높였고, 결국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와 같이 지극히 교만한 말을 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징벌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도 성격이 매우 외향적이고 말재주가 좋았지만, 글귀와 도리를 갖추는 데만 치중하고 결코 진리를 실행하거나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지 않아, 결국 불신파로 드러나 도태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품 변화를 중시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너무나 위험하며, 결국 잘못된 길을 걷다가 하나님께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인성이 아무리 완벽하고 고상해도, 혹은 다른 사람보다 결점이 적고 특기가 많아도 그것이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진리 추구를 대체할 수도 없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여 깨달은 진리가 많으며 깨달은 진리가 매우 깊고 실제적이라면 인성 측면의 여러 결점과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네가 겁이 많고 내향적이며 말을 더듬는 데다가 소양 수준도 높지 않고 결함과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실질적인 체험이 있다면, 비록 말은 더듬거려도 진리를 명확히 교제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듣고 나서 도움을 얻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오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아라. 말을 더듬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그 말들이 얼마나 중요하겠느냐! 잘 모르는 사람은 네 말을 듣고 네게 무식쟁이라고, 말할 때 문법도 틀리고 가끔 별로 적절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속어나 시쳇말을 쓴다고, 소양이 뛰어난 사람이 조리 있게 말하는 것처럼 품위가 있지도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교제하는 말은 진리 실제가 있어서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사람들이 네 말을 듣고 나면 모든 먹구름이 사라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보아라. 진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냐? (중요합니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명확한 실행의 길을 주셨습니다. 제가 지금 중점을 둬야 할 것은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제 성격에 결함이 좀 있지만,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이런 문제들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양육 본분을 맡은 후로 저는 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새 신자와 교류를 잘하지 못해서 본분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성격적 결함을 고치려고만 했을 뿐, 진리에는 힘쓰지 않고 결점을 극복하는 데에만 노력을 쏟았는데, 이는 사실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새 신자를 붙들어 주러 갔을 때, 새 신자의 관념 앞에서 성격에 속박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지만, 사실 주된 문제는 새 신자의 관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깊이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성격 문제 때문이 아니라, 주로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진리 원칙에 힘쓰는 것을 중시해야겠습니다. 진리를 명확히 알아야 말을 분명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가끔 말을 할 때 긴장해서 할 말을 잊어버리면,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새기며 천천히 말하면 됩니다. 그래도 말을 분명하게 하는 게 잘 안 되면, 나중에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보거나 형제자매에게 구하면 됩니다. 저는 마땅히 이렇게 실행해야 합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제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에 교제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는 훈련을 하니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도 있게 되었고, 예전처럼 어떻게 사람과 교류할지를 두고 괴로워하고 고민하거나 숨 막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한 진리가 사람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더는 제 성격적 결함에 속박되거나 얽매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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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속에서 어떻게 본분을 굳게 지킬 것인가

중국 우판(吴凡)2022년 6월, 저는 서른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중에는 리더 몇 명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드리는 가정이 모두 안전상의 위험에 처했고, 하나님 말씀 서적도 시급히...

내가 존경하던 리더가 교체된 후

리청(李成) 형제는 교회 리더로 주로 정리 사역을 맡았으며, 제 사역도 맡았습니다. 1년 여간 함께 지내며 저는 그가 자질이 좋고, 본분에 대해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를 잘 발견하고, 사람의 일부 내적 상태에...

악인을 제명하면서 배운 공과

네덜란드 케이틀린(Kaitlyn)2021년 3월, 저는 한 교회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양육 책임자와 함께 사역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팀장 몇 명이 업무 지시만 하고 형제자매들에게는 본분 이행을 독촉하면서도 정작 자기들은 말년 간부처럼...

문제를 보고하는 것에 대한 염려

중국 장이(張毅)2023년 4월, 저는 교회에서 양육 집사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당시 본분을 이행하던 많은 형제자매들이 중공에 체포되어 교회 사역은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와 몇몇 형제자매가 후속 사역에 협력했지만, 그래도 진전이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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