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더 이상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2025.9.26

미국 위징(于敬)

저는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고 머리 회전도 느렸습니다. 가족들도 제가 영리하지 못하고 머리가 나쁘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표현력도 좋지 않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말할 때 쉽게 긴장했고, 한번 긴장하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늘 과묵한 편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질문하시면 다른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발표했지만, 저는 답을 알아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저를 지목하시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제가 반응이 느리고 말주변이 없다고 했고, 아버지는 늘 제게 ‘미련한 새가 먼저 난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 역시 스스로를 미련하다고 여기게 되었고, 늘 무엇을 해도 내세울 만한 게 없다고 느껴 점점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형제자매들이 무척 친절해서 한 가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도 마음을 열고 형제자매들에게 제 내적 상태와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다들 저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예전만큼 얽매이지 않게 되었고, 마음이 자유롭고 즐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말할 때 여전히 심하게 얽매였습니다. 몇 번은 사람이 많은 예배 시간에 제 교제 차례가 되자 긴장해서 몸을 벌벌 떨었고 생각도 헝클어져 말을 더듬거렸습니다. 몇몇 자매님이 저를 쳐다보자 저는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속으로 ‘형제자매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너무 형편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말을 줄이고 자질 좋은 형제자매들이 교제를 많이 하도록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는 예배 시간에 사람이 많을 때면 늘 맨 마지막에 교제하거나 아예 교제하지 않았고, 사람이 적거나 친한 형제자매들 앞에서만 간단히 교제할 뿐이었습니다. 때로 제가 본분을 이행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 책임자는 다른 사람들이 배우고 참고할 수 있도록 좋은 방법을 공유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 앞에서 교제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겁부터 덜컥 났습니다. 교제할 때 긴장해서 횡설수설하면 얼마나 창피할까 걱정되어, 저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번번이 거절했습니다. 그 후 저는 왜 매번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말을 해야 할 때면 겁을 먹고 위축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번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도 뛰어나지 않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 말주변도 없는 탓에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애는 머리가 나쁘고, 빠릿빠릿하지도 못하고, 말재주도 없어. 다른 집 애는 사람 살살 녹게 말도 참 예쁘게 하던데, 이 애는 어떻게 된 게 종일 입이 댓 발 나와서는 사람을 봐도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잘못을 해도 설명하거나 변명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 기분을 풀어 줄 줄도 몰라. 이 애는 멍청이야.”라고 말한다고 하자. 부모가 이렇게 말하고, 친척과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고, 선생님도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일정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한 주변 환경을 경험하면서, 그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심리가 생긴다. 어떠한 심리겠느냐? 자기가 못생겼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자기를 싫어하고, 공부도 못하고, 둔하고, 숫기가 없어서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누가 뭘 줘도 부끄러워서 고맙다는 인사조차 못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말주변이 없을까? 남들은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 거지? 나는 멍청이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자기를 아주 한심하게 여긴다. 하지만 자기가 그렇게 한심하고 멍청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늘 속으로 자기한테 묻는다. ‘내가 정말 그렇게 멍청해? 난 정말 환영받지 못하는 거야?’ 부모가 싫어하고, 형제자매도 싫어하고,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도 그를 싫어한다. 가족, 친척, 친구들이 틈만 나면 그를 두고 이런 말을 한다. “덩치 작고 눈이랑 코도 작은 걸 보면 나중에 커서도 별 볼 일 없을 거야.” 그가 거울을 보니 눈이 크지는 않다. 확실히 그렇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반발심, 불만, 거부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점차 자신의 부족함, 결점, 문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쪽으로 바뀐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떨쳐낼 수 없는 정서가 생겨난다. 그러한 정서를 무엇이라 하겠느냐? 열등감이다.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자기 장점이 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는 남들의 호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항상 자기가 멍청하고 사교성이 없다고 느낀다. 요컨대, 자기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고, 얼굴도 못생겼고, 머리도 나쁘고, 둔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도 않고, 학교 성적도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열등감이 마음속에서 점차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후 일종의 벗어날 수 없는 정서가 되어 네 마음을 옭아매고 네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어른이 된 이후든, 사회에 나간 이후든, 결혼해서 독립한 이후든, 네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어렸을 때부터 성장 환경에서 심어진 열등감은 네게 있어 해소할 수 없는 정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내적 상태를 정확히 짚어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제게 말주변이 없고 머리 회전이 느리다고 했고, 가족들도 늘 “네 언니 똑똑한 것 좀 봐라. 너처럼 굴어서는 어디 가서도 환영받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점차 저는 자신이 남들보다 똑똑하지 못하다고 여기게 되었고, 서서히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제가 장점이 없고, 표현력도 좋지 않으며, 정신력도 약해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말을 하면 긴장하는 데다, 머리도 영리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많은 일에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늘 제 표현력이 부족해서 형제자매들이 저를 얕잡아볼까 봐 두려웠습니다.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말을 아꼈고, 예배 시간에 교제하거나 본분 이행으로 얻은 수확을 공유할 때면 매우 수동적으로 변하여 늘 뒤로 물러서기만 했습니다. 열등감의 영향으로 저는 진리를 얻을 많은 기회를 놓쳤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에도 정상적으로 협력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삶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 진리를 구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 마음은 열등감으로 가득하며 네 열등감은 오래된 것이다. 일시적인 기분의 일종이 아니라, 네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네 생각을 단단히 통제하고 있으며, 네 입을 단단히 막고 있다. 이 때문에 네 내면에 어떤 순수한 이해가 있든,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 어떤 관점과 견해가 있든, 너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고려할 뿐, 과감하게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못한다. 남들이 인정해 주든, 아니면 지적하고 비판하든, 너는 그러한 결과를 받아들일 엄두도, 볼 엄두도 못 낸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 열등감이 네 안에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마. 넌 그럴 능력이 없어. 넌 그럴 자질을, 그럴 실제를 못 갖췄어. 넌 그래서는 안 돼. 그런 일을 하는 건 네가 아니야.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열등감 아래서 사는 너야말로 진정한 너야. 너한테는 진리를 추구할 자격이 없어.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자격도, 남들에게 흉금을 터놓을 자격도 없어. 왜냐하면 넌 안 되니까. 남보다 못하니까.” 이런 열등감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람의 사상을 주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정상인이 응당 다해야 할 의무와 응당 있어야 할 정상 인성의 생활을 억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방법, 그리고 방향과 목표를 주도한다. … 이런 구체적인 태도와 유로를 통해 볼 때, 부정적인 정서 중 하나인 열등감이 일단 사람에게 작용하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한 사람이 그것을 떨쳐 버리거나 그것의 통제를 타파하기란 몹시 힘들기 때문에, 매사 그것에 얽매이게 된다. 이러한 정서를 패괴 성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사람에게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사람의 인성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 정상 인성의 희로애락과 언행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고,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작게는 사람의 성격과 취향, 지향에 영향을 주고, 크게는 사람의 인생 목표와 방향에 영향을 준다. 열등감이 생기는 원인과 과정, 그리고 사람에게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를 고려할 때, 어느 모로 보나 열등감은 사람이 내려놔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며, 저는 열등감 속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지 깨달았습니다. 열등감은 단순한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처신과 일 처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사람을 결박하고 속박합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제가 반응이 느리고 말주변이 없다고 했고, 아버지도 늘 ‘미련한 새가 먼저 난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점차 저도 제가 선천적으로 남들보다 미련하다고 여기게 되어 늘 과묵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조차 선뜻 나서서 하지 못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예배드리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인식을 교제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저는 늘 제가 말주변이 없다고 생각하며, 말을 잘 못하면 형제자매들이 얕잡아볼까 봐 감히 쉽게 입을 열지 못했고, 때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빛 비춤과 깨달음이 있어도 감히 교제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본분을 이행하여 약간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공유하여 더 많은 형제자매들이 유익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열등감의 영향으로, 긴장해서 말을 잘 못하면 망신을 당할까 봐 두려워 피하기만 했고, 훈련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은 저를 속박하여 제가 일하고 말할 때 얽매이게 했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책임을 감당하지도 못하게 했으며, 생명 진입에서도 성장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열등감 속에서 사는 것의 해로움을 깨닫고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열등감이 저를 계속 동여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여전히 그 감정에 얽매여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열등감 속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바로잡고 싶으니, 이 부정적인 감정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고, 인식하여 열등감과 같은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 인성이 어떠한지, 자기 자질과 재능이 도대체 어떠한지, 자기한테 어떤 특기가 있는지 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네가 원래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하는데 누군가가 음치라며, 음 이탈을 한다며 항상 트집을 잡고 너를 깎아내린다고 하자. 그러면 너는 네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를 엄두를 못 낸다. 그 세인들 때문에, 그 바보나 어리석은 자들이 너에 대해 내린 부정확한 평가와 단정 때문에 네 인성에 마땅히 있어야 할 권리가 제한당하고 네 재간이 억압당한다. 결국 너는 노래 한 곡도 감히 못 부르게 되고, 너 혼자 있을 때만 큰 소리로 노래하며 억눌렸던 것을 해소할 엄두를 낸다. 평소에 너무 심하게 억압당했기 때문에 다른 때는 노래할 엄두를 못 내고, 혼자 있을 때만 겨우 노래를 부르며 자기 노랫소리가 맑게 울리는 시간을 즐긴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운 시간이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남이 네게 준 상처 때문에 너는 자기가 도대체 뭘 할 줄 아는지, 무엇에 능하고 무엇에 서툰지 알지 못하고 똑똑히 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가늠해야 한다. 자기가 배운 것, 자기 장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 자기 결점과 부족함은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자기 자질이 과연 좋은지 부족한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와 인식이 필요하다. 만약 자기 문제를 명확하게 보고 제대로 인식하기가 힘들다면 분별력 있는 주변 사람에게 평가를 부탁한다. 그의 말이 정확하든 아니든, 최소한 네가 자기에 대해 기본적인 판단을 내리고 자기를 규정하는 데에 참고 사항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 속에서 차츰차츰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열등감이라는 정서는 사람이 분별하고 각성하고, 진리를 구할 수 있다면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평가에 좌우되어 자신에 대한 정의나 판단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가늠하고 평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숙한 형제자매에게 자신에 대한 평가를 물어본 다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자신을 가늠해 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저를 잘 아는 몇몇 자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매님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자매님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형편없지 않아요. 평소에 본분에 관한 원칙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깨달음이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을 이야기할 줄 알며, 때로는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해요. 자매님은 자신을 올바르게 대해야 해요.” 자매님들의 평가를 듣고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형편없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계속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평가 속에서 저 자신을 규정지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에게 장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 성격이 다소 내성적이라 남들처럼 표현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떤 일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좋은 실행 길을 찾아내어 어느 정도 역할을 해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결함을 이성적으로 대해야 했습니다. 그 후, 다시 자신을 부정하는 생각이 들 때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언어 표현 능력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거야. 이런 결함이 있다고 해서 남들보다 못하다고 느끼며 매사에 얽매여서는 안 돼.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잘하면 돼.’

한번은 한 자매님에게 제 내적 상태를 이야기했더니, 그 자매님은 제가 주로 체면을 너무 중시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방면의 내적 상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어른이 자주 말하는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것은 네가 명예를 중시하고 체면이 서는 삶을 살면서 망신당할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이끄느냐, 아니면 부정적으로 이끄느냐? 너를 진리로 이끌겠느냐? 네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한다. 네가 과오를 저지르거나 잘못된 일을 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진리에 위배되는 일을 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를 인식하여 끊임없이 자기를 해부하고 진정으로 회개한 다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되려 할 때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과 상충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부분이 상충되겠느냐?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은 사람이 화려한 모습을 살아 내는 것을 중시하여 체면이 서는 일을 많이 하라고 하지, 옳지 않은 일, 불명예스러운 일을 해서 자신의 추한 면을 드러내라고 하지 않는다. 망신을 당하거나 존엄하지 않게 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체면과 체통, 명예를 위해 자기를 쓸모없는 사람처럼 말하면 안 되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어두운 면이나 떳떳하지 못한 부분을 남에게 말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체면을 세우고 존엄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엄은 사람의 체면에 달려 있고, 사람의 체면은 가식과 포장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이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과 상충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정직한 사람으로 살 때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에 정확히 위배되는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체면을 차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체면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진리 앞에서 사람은 자신을 폭로해야지 위장이나 가식을 떨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잘못한 일, 진리 원칙에 위배되는 부분 등의 실상을 낱낱이 하나님에게 보이고 형제자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체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진정한 피조물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구원받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 종종 가정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들에 지배되어 잘못된 일을 저지르면 포장하고 위장하며 생각할 것이다. ‘말하면 안 돼. 아는 사람도 말하면 안 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장을 보겠어. 내 체면이 우선이야. 산다는 건 다른 걸 위한 게 아니라 바로 체면을 위한 거지.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해. 사람이 체면을 잃으면 존엄도 잃는 거야. 그래서 사실도 사실대로 말해서는 안 되고 위장하고 포장해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체면이나 존엄은 실추되고 삶의 가치도 없어지는 거야. 존중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싸구려가 되는 거야.’ 네가 이렇게 실행한다면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자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부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이 네게 교육한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을 따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네가 만약 이 말을 내려놓고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한다면 이 말이 네게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할 것이고 더 이상 네 좌우명이나 행동 원칙이 되지 않을 것이니, 네가 하는 행동은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과 상반될 것이다. 네가 체면이나 존엄을 위해 살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산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진정한 피조물 되기를 추구하기 위해 산다면, 네가 이런 원칙을 따른다면 너는 가정이 교육한 그런 것들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니, 저는 왜 제가 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거나 자신의 관점을 밝히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로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체면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겼고, 사람이 체면을 잃으면 존엄을 잃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머리 회전이 느리고 표현력이 좋지 않아 자신이 남들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깊은 열등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말을 하면 쉽게 긴장했고, 표현을 잘하지 못해서 형제자매들이 저를 얕잡아볼까 봐 차라리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좋은 방식과 방법을 형제자매들과 공유해야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형제자매들을 돕기 위함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본분 이행의 성과와 효율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체면을 지키기 위해 몇 번이고 거절하고 회피했습니다. 체면을 너무 중시해 매사에 저 자신만 생각하는 제 모습이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되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도 솔직하게 꺼내 놓아야지 감추고 위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닫고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체면의 결박과 얽매임 속에서 계속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부정적인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으니, 제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한번은 제가 본분을 이행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사역을 총결산할 때 책임자가 제게 공유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교제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겁이 덜컥 났습니다. 막 거절하려던 순간, 매일 닥치는 환경에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진리를 실행할 기회를 주신 것이며 저는 마땅히 맞서야 한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떠올렸습니다. 『너의 결함과 흠이 너와 공존하도록 허용한다면, 너는 그것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다. 설사 남들이 네 결함을 보더라도 그것은 네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네가 교만하고 방자해지지 않게 너를 보호해 줄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의 결함과 흠을 드러내는 것은 많은 이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혹자는 “다들 자신의 강점이나 장점을 드러내지, 일부러 단점이나 결함을 드러내는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겁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은 데서 말할 때 항상 긴장한다면 자진해서 이렇게 말해라. “저는 말할 때 쉽게 긴장해요. 그러니 다들 뭐라고 하지 말고 양해해 주세요.” 자진해서 결함과 흠을 드러내 사람들이 양해하고 포용하며 너를 이해하도록 하면, 남들이 너를 이해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결함과 흠에 속박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오히려 너 자신에게 유익과 도움이 될 것이다. 늘 자신의 결함과 흠을 감춘다면 그것은 네가 그것과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그것이 너와 공존하도록 허용한다면 드러내야 한다. 창피하다고 느끼거나 낙담하지 말고, 남보다 못하다고 느끼거나 자신은 형편없고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마라. 진리를 추구하며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만 있다면, 마음이 진실하고,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속이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에게 일부 결함과 흠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남들보다 못하다는 의미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결함을 올바르게 대하고, 그것이 자신과 공존하도록 허락하기를 바라십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얕보일까 봐 자신의 결함을 감추려 한다면, 그것은 위장이자 기만이며, 자기 자신도 매사에 얽매여 발휘할 수 있는 능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성격이 내성적이고, 사람이 많으면 쉽게 긴장하며, 표현력도 좋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저는 어떻게 하면 긴장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지, 혹은 표현을 잘 못 하면 어떡할지에 대해 늘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을 향해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고, 제가 어떻게 협력하고 어떻게 체험했는지 그대로 말하며,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체면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이번 교류를 진리를 실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는 그동안의 제 체험과 본분을 이행하면서 얻은 수확을 모두와 나누었습니다. 중간에 긴장도 하고 말이 그다지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저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았고 마음이 무척 홀가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덕분에 저는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게 되었고, 점차 열등감의 결박과 얽매임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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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안나(Anna) 저는 미얀마에서 왔습니다. 2019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이 인류를 사탄 권세에서 철저하게 구원해 내고, 아름다운 종착지로 데려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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