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를 다투던 날들과 작별하다
한국 쓰판(司凡)2년 전,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중요한 본분을 맡게 됐다는 생각에 앞으로 진리에 공을 많이 들이고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해 그들이 하루빨리 참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저는 전통적인 중국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사리에 밝고 예의 바른 아이가 되어야 하며, 어른을 보면 공손하게 인사하고, 버릇없이 행동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저를 교양 없는 아이라고 흉볼 거라고 하셨습니다. 학교에 들어간 후, 선생님께서도 중국은 자고로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나라로, 사람과 사귈 때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책에서 공융이 배를 양보한 것과 유사한 이야기를 자주 접했고, 이런 이야기들은 제 뇌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예의있고 노인을 공경하며 어린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런 전통문화로 살면서 어른들에게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절대 실례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봐도 한번도 직접 지적할 엄두를 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 교회에서도 계속해서 “문화와 교양을 갖춰야 한다”,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라”는 전통사상에 따라 살았습니다. 특히 연세가 많은 형제자매들을 대할 때는 한 번도 그들의 이름을 직접 불러본 적이 없었고, 항상 공손하게 “OO 아주머니”, “OO 아저씨”라고 불러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가 굉장히 철들고 예의 바르다고 여겼습니다. 연세가 많은 형제자매들과 협력할 때는 그들이 본분 이행에 어떤 문제가 있어도 감히 지적하지 못했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은 우리 부모님 세대 사람이야. 어떤 분은 내 할아버지, 할머니뻘인데, 내가 직접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면, 나를 버릇없고 교양 없다고 흉보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그들의 문제를 거의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말한다고 해도 먼저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해 최대한 그들의 체면을 상하지 않게 했습니다. 형제자매 앞에서 늘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니 사람들은 저를 성숙하고 진중하며 인성이 좋은 사람으로 평가했고, 그래서 저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문서 관련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어느 날, 리더가 현재 문서 사역에 일손이 부족한데, 원타오(文涛) 형제가 이전에 문서 본분을 이행한 경험이 있어 원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그를 배정하고 싶다며, 저더러 그를 찾아가 교제해 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원타오 형제를 찾아가 교제하자, 그도 협력하고 싶긴 한데 다만 몸이 좋지 않아 너무 힘들게 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형제의 건강 상태에 따라 업무량을 적절히 배정해 체력과 에너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고, 그러자 그는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리더가 말하길, 원타오 형제가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와 자기는 몸이 좋지 않아 문서 본분보다는 복음 전파를 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다시 한번 원타오 형제를 찾아가 교제를 좀 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형제가 평소에 복음을 전파할 때 더 먼 길을 다니는데, 힘든 건 똑같지 않나? 그런데 왜 복음 전파는 원하면서 문서 본분은 꺼리는 걸까? 무슨 어려움이 있는 걸까? 아니면 문서 본분은 남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서 그런 걸까?’ 저는 그를 찾아가 교제하고 싶었지만, 또 그 앞에서 문제를 지적하면 형제가 저를 어떻게 볼지가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젊은 주제에 건방지다고 하지 않을까요? “네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됐다고 내 문제를 지적하는 거야? 진짜 버릇없고 사람을 존중할 줄도 모르네!” 원타오 형제는 나이로 따지면 저보다 연장자라, 평소 그를 만나면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의 문제를 지적하면 제가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남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원타오 형제를 만났고, 저는 단지 간단히 그의 내적 상태, 본분 이행에 어떤 걱정이 있는지만 물어본 다음, 제 체험을 나누며 그와 교제했습니다. 결국 그는 계속 이 본분에 협력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타오 형제가 한 예배에서 자신의 내적 상태를 이야기했는데, 한 자매가 그에게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형제님이 문서 본분 이행을 원하지 않는 데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인가요? 아니면 어떤 속셈이 있으신가요? 이 본분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으신가요?” 자매가 일깨워 주자 원타오 형제는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본분 이행을 골라서 하고 싶은 것이 명예와 지위욕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복음 전파는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드러나고 어딜 가도 형제자매들의 인정을 받지만, 문서 본분은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해도 형제자매들이 몰라주기 때문에 복음 전파와 같이 자신이 드러날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후 원타오 형제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했습니다. 자신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바울의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 본분을 대하는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았고, 체험 간증문도 한 편 작성했습니다. 이 일을 듣고 저는 반성했습니다. ‘사실 나도 원타오 형제가 문서 본분을 꺼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았어. 하지만 왜 난 그의 문제를 지적하는 걸 미루기만 했을까? 대체 무엇의 지배를 받은 걸까?’ 한 번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연장자, 혹은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오래된 사람들이 있다면 너는 마음속으로 늘 그의 체면을 지켜 주고 싶어 한다. 말을 할 때 그가 먼저 말을 끝마치도록 해 주고, 그가 쓸데없는 말을 해도 끊지 않으며, 그가 무슨 잘못을 해서 책망과 훈계를 해야 할 때도 그의 체면을 지켜 주느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나무라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억지를 부리고 엉망으로 일을 해도 모두가 그를 용서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에는 또 늘 “어르신의 체면을 지켜 드려야죠. 그분들 체면이 깎이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손아랫사람이잖아요.”라며 다른 사람을 교육한다. ‘손아랫사람’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겠느냐? (전통문화입니다.) 전통문화 사상에서 파생된 것이다. 또한, 교회에 나이가 좀 많은 형제자매를 만나면 ‘형’, ‘누나’, ‘이모’ 또는 ‘연세 많은 형제’라고 부르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한 가족처럼 아주 친근하게 부르고, 그들을 각별히 존중하여 어느새 사람 마음속에 좋은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것들은 중국인의 사상과 뼛속에 아주 깊이 뿌리내려져 있어 교회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만연해 분위기를 형성한다. 사람은 늘 이러한 것들에 제약받고 통제받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것들을 인정하며 열심히 그 방향으로 행동하고 실행할 뿐만 아니라 남들도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고 가르친다. 전통문화는 진리가 아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전통문화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만 알면 그만이겠느냐? 전통문화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한 가지 측면이다. 어째서 그것을 해부하려고 하겠느냐? 그 근원은 어디에 있겠느냐?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겠느냐? 어떻게 해야 그런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전통문화를 해부하는 이유는 너로 하여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러한 측면의 이론과 사상, 관점을 완전히 새롭게 인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완전히 새롭게 인지할 수 있겠느냐? 먼저 전통문화가 사탄에게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 사탄은 어떻게 그런 전통문화를 사람의 내면에 주입했겠느냐? 사탄은 매 시기마다 유명 인사나 위인을 통해 이러한 사상들을 전파하고, 이러한 이른바 견해와 이론을 전파한다. 그런 다음 점차 체계화하고 구체화하여 점점 사람의 생활과 가까워지게 하고, 또 그다음에는 점차적으로 사람 사이에 퍼트려 이러한 사탄의 사상, 견해, 이론을 조금씩 사람의 사상 속에 주입한다. 이러한 것들이 주입되면, 사람은 사탄에게서 비롯된 이런 사상과 이론들을 인류가 마땅히 실행하고 지켜야 하는 가장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사탄은 이러한 것들을 이용해 사람의 사상을 억압하고 통제한다. 인류는 이런 환경 아래에서 끊임없이 교육받고 물들고 통제되며, 한 세대 한 세대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각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전통문화가 옳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누구도 이런 이른바 ‘좋은 것’, ‘옳은 것’의 출처와 근원이 어디인지 해부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심각성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오랜 세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에도 이것들이 옳고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생각하며, 나아가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읽었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한 삼종사덕(三從四德)이나 인의예지신 등 소위 전통 사상과 전통문화를 버릴 수는 없어. 이것들은 선조 때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선조들은 성현이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선조들의 가르침을 어겨서는 안 돼. 옛 선조들의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버려서는 안 돼.’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마음속에 늘 이런 생각, 이런 의식을 갖고 있으며, 여전히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이런 전통문화의 것들에 통제되며 결박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20여 세쯤 된 너를 보고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해 보자. 너는 무척 기쁘고 흐뭇할 것이다. 반면, 직접 네 이름을 불렀다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 아이는 예의를 모른다느니, 교육을 받아야 한다느니 생각하며 다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사실, 너를 삼촌이라고 부르든 네 이름을 부르든, 네 인격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해서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이겠느냐? 이것이 바로 전통문화에 지배되고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네 내면에 먼저 자리 잡아 네가 사람과 일을 대하고 모든 사물을 평가하며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되었다. 기준이 틀렸을 때 네 행동의 성질이 옳을 리 있겠느냐? 분명 옳지 않을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6조>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내적 상태를 폭로하셨습니다. 저는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라”, “품위 있고 온화해야 한다”와 같은 전통사상과 전통문화에 깊이 영향 받아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학교에서 받은 교육을 통해 예의 바르고 사리에 밝은 사람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거나 버릇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교양이 없고,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과 어울릴 때든 아니면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든 언제나 이런 전통사상에 따라 살면서 이런 사상을 사람됨과 처세의 준칙으로 삼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곧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형제자매와 지낼 때는 예의 바르고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언제나 공손하게 “아저씨”나 “아주머니”라고 불러 드렸습니다. 가끔 그들에게서 패괴가 표출되는 모습들을 보면 정직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지적하고 그들이 진리를 구해 해결하도록 도와줘야 했지만, 형제자매들 마음에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한 번도 직접 지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놓고 지적하는 것이 가정교육을 못 받고 교양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설령 말하더라도 완곡한 표현을 써서 돌려 말했기 때문에 전혀 효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원타오 형제와 본분 이행에 대해 교제했던 일처럼, 저는 그가 본분을 회피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이를 지적해 그가 반성하고 스스로 공과를 배우도록 도와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가정교육을 못 받은 버릇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 직접 지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저 몇 글자로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이렇게 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해쳤습니다! 저는 그제야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라”는 사상은 진리도 아니고, 사람됨의 원칙도 아니며, 사람 인성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근거도 아님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을 근거로 남을 판단하게 하느냐? 무엇에 근거하여 사람과 일을 바라보게 하느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사람을 바라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한 가지이다. 이 밖에,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진리에 순종하는지에 근거해야 한다. 이것이 구체적인 내용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군가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단할 때 무엇에 근거하느냐? 교양이 있는지, 규율을 지키는지, 식사할 때 쩝쩝거리지는 않는지, 음식을 가리지는 않는지, 연장자가 자리에 앉은 후에 착석하는지 등을 보며 판단한다. 이는 ‘교양 있고 사리 밝은’ 행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겠느냐?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결코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 이런 판단의 마지막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교양 있고 사리 밝은 이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에게 진리를 교제하라고 하면 그는 집안 규율이나 가정교육, 좋은 행위로 다른 사람을 양육하며, 이러한 것들을 주입한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을 좋은 행위로 끌고 가기에 사람의 패괴 본질에는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진리에서 멀어지고 하나님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좋은 행위만 좀 갖췄을 뿐이다. 이 사람의 내면에 있는 패괴 성품이 좋은 행위로 인해 바뀌겠느냐?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할 수 있겠느냐? 한참 부족하다. 이들은 모두 어떤 사람이 되었겠느냐? 좋은 외적 행위만 보일 뿐,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며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못하는 바리새인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바리새인의 겉모습에 트집 잡을 만한 것이 있었더냐? 안식일을 지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말할 때는 점잖고 예의 발랐으며, 규율을 잘 알고 규례를 지켰다. 교양을 많이 갖추었고, 문화적인 지식 또한 높았다. 하지만 위장에 능하고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했기에 결국 하나님께 저주받았다. 하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바리새인, 악을 행하는 자들로 규정했다. 마찬가지로 ‘교양 있고 사리 밝은’ 좋은 행위를 처신과 일 처리의 준칙으로 삼는 사람들은 결코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다. 그들이 이런 규율로 남을 판단하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 역시 당연히 진리 추구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어떤 사람과 일을 평가할 때, 그 평가 기준과 근거는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어긋난다.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사람의 행위와 행동일 뿐, 성품이나 본질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전통문화 중 ‘교양 있고 사리 밝은 것’과 같은 행위적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렇게 판단한 결과, 겉으로 볼 때 교양 있고 사리 밝은 좋은 행위를 갖추고 있기만 하면 좋은 사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된다. 사람이 이러한 정의를 하는 순간, 진리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그들이 이런 행위 기준으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수록 하나님 말씀과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결과가 생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상황에서 희희낙락하면서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통문화에서 비롯된 일부 좋은 말들을 지키면서 자신이 진리와 참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지키고 고수하든, 결국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전혀 체험하거나 경험하지 못하며,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경외는 더더욱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교양 있고 사리 밝은 것’과 같은 좋은 행위를 지킨 결과이다. 사람이 좋은 행위에 집중하고, 좋은 행위로 살아가는 데 집중하며, 좋은 행위를 추구하는 데 집중할수록 하나님 말씀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며, 하나님 말씀에서 멀어질수록 진리를 깨달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전통문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교양 있고 고상한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하는지, 어떻게 외적인 거짓 이미지로 사람들을 속이는지를 가르칩니다. 이런 전통문화에 따라 살면, 겉으로는 일시적으로는 거짓 이미지나 좋은 행동을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패괴 성품은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전통문화에 따라 살면, 영원히 진정한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하셨습니다.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는 것입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2)> 중에서) 즉, 말하고 행동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는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킬 수 있어야 하며, 형제자매와 어울릴 때는 단순히 마음을 열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서로 생명 진입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갖춰야 할 인성과 이성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지 않았고, 사탄이 가르친 사리에 밝고 온화하며 고상하게 살라는 전통문화를 진리처럼 지키면서, 겉보기에 좋은 행동으로 자신을 포장했습니다. 특히 연장자인 형제자매와 협력할 때, 분명 속으로는 그들을 싫어하면서도 겉으로는 인내심 많고 사랑이 있는 척 행동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미혹해서 저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으려 한 것입니다. 형제자매가 본분 이행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도 그들을 지적해 도와주기는커녕, 늘 그들의 기분을 고려하며 그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형제자매를 존중하고, 교양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온화하고 고상하다는 좋은 이미지를 심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인성이 있는 사람입니까? 저는 이기적이고 간사하며, 위선적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런 전통문화에 따라 살면서 점점 위선적이고 간사하며 양심과 이성을 잃어가는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실행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외적으로 좋은 행동을 하는 척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진리 원칙에 따라 일하고, 더 이상 패괴 성품에 따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라”와 같은 전통문화를 진리인 줄 착각해 이렇게 겉으로만 좋은 행동을 하면 진리를 실행하는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이런 좋은 행동은 아무리 잘 지켜도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칭찬도 받지 못합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할 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언행은 무엇을 근거로 삼아야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그럼 사람의 언행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이냐?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 진실한 말, 솔직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게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적어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기만하거나 미혹하거나 조롱하거나 놀리거나 비방하거나 비웃거나 속박하거나 남의 단점을 까발리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정상 인성의 모습이고 인성의 미덕이다. 하나님이 네게 어떤 어투로 말하라고 한 적이 있더냐? 표준어를 사용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더냐? 화려한 수식어와 고상하고 우아한 말을 쓰라고 요구한 적이 있더냐? (그러신 적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표면적이고 거짓되며 가식적이고 실속 없는 것들은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요구한 것은 전부 정상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들이며, 언어 행위의 기준이자 원칙이다. 어떤 곳에서 태어났든, 어떤 언어를 쓰든 어쨌든 네가 하는 말, 네 입에서 나온 단어와 내용은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도움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남들이 네 말을 듣고 진실하다고 느끼는 한편, 유익과 도움을 얻어 더는 어려움에 빠지거나 사람에게 미혹되지 않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실한 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되 남을 기만하거나 미혹하거나 조롱하거나 놀리거나 비방하거나 비웃지 말라고, 또 속박하거나 남의 단점을 까발리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말라고 요구했다. 이는 말을 할 때의 원칙 아니겠느냐? 여기에서 ‘단점을 들추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사람의 약점이나 잘못, 혹은 단점을 잡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점이다. 그럼 긍정적인 면에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어떤 것이겠느냐? 주로 격려하고 일깨우고 인도하고 권면하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말이다. 이 외에, 특수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책망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성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아니겠느냐?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 … 요컨대, 말을 할 때의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마음속에 있는 것, 진실한 체험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에게 가장 이로운 말이고, 공급과 도움이 되는 말이며, 가장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이다. 거짓된 말, 상대에게 도움과 이로움이 되지 않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그랬다간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상대를 쓰러뜨려 소극적인 상태에 빠뜨릴 수 있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최대한 상대를 도와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도움과 공급을 주고,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생기게 하며, 그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네 체험과 문제 해결 방식, 방법을 통해 도움을 얻고 큰 수확을 거두게 해야 한다. 또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길을 깨달아 생명 진입과 생명 성장을 이루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원칙 있게 말해 상대에게 도움을 줄 때 얻을 수 있는 성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지내는 원칙은 전통문화가 우리에게 가르친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며 예의를 알라”가 아닙니다. 우리의 말투가 부드럽고 온화한지에 달린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하는 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형제자매에게 유익한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형제자매 사이에 지위의 구분이 없고, 누가 나이가 많거나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길다고 해서 서열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연로한 형제자매든, 젊은 형제자매든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며, 상대방의 문제를 보면 진리를 교제하고 서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직접 상대방의 문제를 짚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제하고 지적하며 훈계 책망할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만 올바르면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유익하고, 일부로 꼬투리를 잡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설령 좀 심하게 말하더라도 별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제가 말하는 방식이나 말투 때문에 선입견을 갖지 않고, 제 나이가 어리다고 저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받아들이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기 때문에 제가 걱정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타오 형제에게 문제를 지적해 준 자매도 젊으신 분인데, 그녀는 문제를 보고 단순하게 마음을 열어 원타오 형제가 자신을 인식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원타오 형제도 자매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결례라고 생각하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였고, 그 가운데서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하여 진실한 수확을 얻었습니다. 반면, 저는 무조건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라”는 전통문화에 따라 살면서 원타오 형제의 문제를 보고도 지적해 주기를 망설였습니다. 겉으로만 대충 두어 마디 진심 아닌 말을 건네며 자신을 포장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은 형제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교회 사역에도 전혀 유익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만 하나님 뜻에 합당하고,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며 패괴를 표출하거나 원칙을 어기며 일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를 떠나 모두 상대방에게 지적해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며 그들을 도왔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제자매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구하고 반성하면서 점차 저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어느 정도 공과도 배웠습니다.
한동안 저는 리더가 매일 본분을 이행하며 겉으로는 매우 바쁘지만, 단지 매뉴얼대로만 일하고 상명하달식으로 일부 사역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 사역에 명백한 문제가 있음에도 해결하려 하지 않고,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를 실제적으로 묻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교회 사역이 좋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는 내가 예전에도 돌려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 같아. 내가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 하지만 리더는 저의 어머니와 비슷한 연세인 어른이라 어렸을 때부터 친근하게 아주머니라고 불러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실제 사역을 하지 않고 거짓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고 말씀드리면 저를 버릇없다고 욕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차라리 윗선 리더에게 보고해 그들이 직접 교제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스치던 바로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진실한 말, 솔직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게 해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저는 곧바로 제 관점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리더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문제가 있음을 분명히 알았으면, 그녀에게 지적해 주고 그녀가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즉시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교회 사역에도 유익합니다. 하지만 저는 망설이며 말하지 못했고, 여전히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라”는 전통사상의 지배를 받으며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아갔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있는 문제는 그녀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므로 곁에 있는 형제자매가 사랑으로 지적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제가 이미 그 문제를 본 이상 그녀에게 말해주어야 하고, 그래야 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후 리더와 다시 만났을 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찾아 그녀와 교제했습니다. 그녀가 예배만 드리고 실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은 거짓 리더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자신에게 거짓 리더의 모습이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육적인 것을 좇으며 대가를 치르는 데 애쓰지 않았던 모습을 반성하고, 곧바로 바로잡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그녀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역할 때도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고,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일부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탄의 전통문화에 따라 살면 우리가 겉으로는 공손하고 예의 바르며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의 패괴 성품은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상에 따라 살면 가면을 쓴 것처럼 점점 위선적으로 변하고, 사람에게 진심이 없어집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행동할 때, 행하는 모든 것이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에 유익하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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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쓰판(司凡)2년 전,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중요한 본분을 맡게 됐다는 생각에 앞으로 진리에 공을 많이 들이고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해 그들이 하루빨리 참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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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오양(趙陽)2016년, 저는 교회 리더로 뽑혔습니다. 본분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는 업무적인 중압감이 매우 심했습니다.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하고 일을 꿰뚫어 볼 줄 몰라서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만나도 어떻게 진리를 교제하여 해결해 줘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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