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와 지위가 가져온 고통
중국 팡샹2020년 3월, 저는 팀장으로 발탁되어 몇 개 팀의 양육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사역을 관리해 본 적이 없어.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거나 업무를 제대로...
한동안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늘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는 제 부주의 때문이었고, 어떤 문제는 원칙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조금 걱정했습니다. 리더나 파트너 자매가 저를 책망하며 제가 본분을 대충 이행한다고 말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파트너 자매는 단지 저에게 앞으로 주의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형제자매들의 본분 이행에 일부 명확한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그들이 본분을 너무 대충 이행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가 제대로 교제하고 해부해서 본인들이 건성으로 대하는 성질 및 그렇게 했을 때 초래될 심각한 결과를 깨닫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단도직입적으로 모두의 문제를 지적하면 얼마나 체면이 상할까?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다들 자기 문제를 깨달을 수 있으면 돼. 게다가 이 문제들은 최근에 나한테도 있었잖아. 내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하겠어? 모두를 책망한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나한테 또 생기면 어떡해, 그럼 내 얼굴에 침 뱉기잖아? 폭로하고 책망하는 일은 아무래도 관두는 게 좋겠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중에 나한테 문제가 생겼을 때도 형제자매들이 따지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게 자신한테 관대한 거야.’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속에 남은 약간의 정의감마저 없어졌습니다. 저는 파트너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갖고 있는 문제를 지목해서 말할 필요는 없어요. 문제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자매도 듣고서 별말이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형제자매의 문제를 보고도 지적하지 않으면 그들이 의식할 수 있을까? 나중에 변화될 수 있을까? 만약 변화되지 않으면 사역에 영향을 끼칠 거야.’ 저는 속으로 갈등했습니다.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얘기를 안 하자니 또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어려워할까? 무엇이 내가 형제자매의 문제를 폭로하고 싶지 않게 막는 걸까?’ 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기도하며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한 자매와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매는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부분을 보내주었습니다. 말씀을 보고 난 저는 마음이 확 트이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덕행의 말을 제창하지 않느냐? 만약 누가 이 덕행의 말을 제창한다면, 너희는 그를 고상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겠느냐? 혹자는 “보십시오. 그는 남에게 강요하지도, 난제를 제시하지도, 남을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늘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말을 실행하지요.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충분한 자유를 주며, 따스함과 포용을 충분히 느끼게 합니다. 얼마나 위대한 사람입니까!”라고 말하는데, 사실이 정말 그렇더냐?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의 속뜻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을 남에게 베풀고 공급해 주라는 것이다. 패괴된 인류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어떤 것들이냐? 모두 패괴된 것, 황당한 것이고, 과한 욕망이다. 그 부정적인 것들을 남에게 베풀고 공급한다면, 온 인류는 점점 더 패괴되지 않겠느냐? 또한, 긍정적인 것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사실 아니겠느냐? 인류는 심각하게 패괴되었다. 이는 사실이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명리와 지위, 육적인 누림을 추구하기 좋아하며, 명인이나 위인, 초인이 되고자 한다. 또 다들 놀기만 좋아하고 일하기는 싫어하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이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만약 인류 모두가 자신의 패괴와 기호를 남들에게 베풀고 공급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안 봐도 뻔하다. 인류는 점점 더 패괴될 것이다.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관점을 제창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패괴와 기호, 과한 욕망을 베풀고 공급하게 하며, 모두가 사악함과 누림, 출세하고 부자가 되는 것을 추구하게 한다. 이것이 인생의 바른길이겠느냐?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은 문제가 너무도 크며, 허점과 맹점이 너무도 명확하므로 해부하고 분별할 가치가 없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그 말의 문제점과 황당한 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 많은 이가 이 말에 쉽게 설복되어 영향을 받고, 전혀 분별하지 않은 채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남들과 함께 지낼 때 수시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 충고까지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고상한 인격을 드러내고 아주 이성적으로 처신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 말은 네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네 처신의 원칙과 입장을 팔아넘기는 한편, 다른 사람들까지 미혹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어 너와 같은 관점과 입장으로 사람과 일을 대하게 한다. 또 너는 말 그대로 중재인이 되어 중용의 길을 걷게 된다. 너는 “무슨 일이든 따지지 말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도 마십시오. 남을 괴롭히는 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고, 남에게 잘 대해 주는 건 스스로에게 잘 대해 주는 것입니다. 남을 힘들게 하는 건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고요. 굳이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최고의 포상이자 관용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엄연히 모든 일을 참답게 대하지 않는 태도이다. 어떤 일에도 정확한 입장과 관점을 보이지 않고, 어떤 사물을 대하든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참답게 대하지 않으며,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다가 결국 하나님 앞에서 결산 보고를 해야 할 때가 오면 흐리멍덩한 것투성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늘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 말은 네게 큰 위안과 누림이 되어 주었지만, 동시에 네게 엄청난 문제를 가져다주어 네가 많은 일에서 명확한 관점과 입장을 갖지 못하게 했고, 물론 눈앞에 닥친 일들 앞에서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무엇인지, 어떤 성과를 내야 할지 등을 분명히 알지 못하게 했다. 이 결과는 네가 모든 사물을 참답게 대하지 않고, 흐리멍덩한 태도와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마땅히 지녀야 할 관용의 태도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옳은 것 같고 고상하고 선한 이론 같지만, 그런 이론은 결코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다. 물론 사람이 지켜야 할 진리 원칙은 더더욱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0)>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분명하게 지적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마치 모두에게 관대하고 사람들이 난처해지지 않도록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속셈과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본분을 대충 이행할 때가 많아서 비슷한 문제가 생길 텐데, 모두의 문제를 폭로했다가 나중에 저한테 똑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는 남들에게 엄격한 것은 자신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퇴로를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여겨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대할 때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기려 했습니다. 저는 일관되게 본분을 대충 이행하면 본인들도 본분 이행에서 성과와 선행을 남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영향을 끼치고 심지어 방해와 교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책임자로서 마땅히 책임을 다해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교제하고 지적해 주고, 필요할 때는 폭로 해부하고, 책망 훈계해야 했지만,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진리를 실천하려는 약간의 마음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겉으로는 이해심이 많아 보이겠지만 사실 저는 그저 자신을 지키고 보전하려 했고, 다른 사람이 제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밝혀 주시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행위의 이면에 사탄 철학의 영향과 통제가 있었음을 전혀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자신이 이렇게나 간사한 사람인지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의 표면적인 뜻은 자기가 싫어하는 것, 원치 않는 일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무척 현명하고 이성적인 행동 같다. 하지만 100% 이 사탄의 철학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수많은 잘못을 범할 것이며,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피해를 주고, 나아가 해하기 쉽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부모가 자식에게는 책을 많이 읽으라고 이치를 늘어놓으며 독서를 권하는 상황이 그렇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요구를 따른다면, 부모는 자식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 자신이 독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인생의 바른길임을 알고 있기에 자식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바른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한다. 자기 자신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지만, 자식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을 따른다면 자식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사탄의 철학은 지킬지 몰라도 자식들이 구원받을 기회를 망치게 된다. 이 결과는 어떻게 초래된 것이겠느냐?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전통적인 덕행의 말이 사람을 해한 것 아니겠느냐? … 이 몇 가지 예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을 철저히 부정한 것 아니겠느냐? 그 말은 전혀 정확성이 없다. 예를 들어, 진리를 싫어하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기를 좋아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는 몸을 사리면서 고난을 겪거나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속담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려 준다. “삶을 즐기는 법을 배우십시오. 열심히 본분을 이행할 필요도,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습니다.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면 피우고, 대충 넘어갈 수 있다면 넘어가세요.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란 말입니다. 보세요. 저는 이런데도 멀쩡히 잘 살아가지 않습니까? 얼마나 즐겁게 삽니까! 그런데 여러분처럼 사는 건 얼마나 힘든가요! 저를 따라 배우십시오.” 이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요구에 이른 것 아니겠느냐? 이렇게 한다면, 그가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양심과 이성을 잃은 사람은 부도덕한 자 아니겠느냐? 이를 가리켜 부도덕하다고 한다. 어째서 부도덕하다고 말하겠느냐? 그는 안일을 탐하며 대충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데다가 다른 사람들까지 그와 같이 대충 건성으로 임하고 안일을 탐하도록 선동하고 종용한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대충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무책임하게 구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고 대적하는 행위이다. 계속 대충 건성으로 임하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드러나 내쳐질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0)> 중에서), 『사람에게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힘이 있고, 열심히 진리를 실행할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명리와 지위에 관련된 일은 더 당연히 내려놓을 것이다. 만약 내려놓지 않는다면 이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힘이 없다는 의미이다. 일이 닥쳤을 때는 진리를 구하고 실행해야 한다.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마다 사심을 품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 무슨 일이 닥쳐도 진리를 구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한다. 언제나 명리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안배하든 ‘이 일이 내게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데,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설사 악을 행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너는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으며, 어떤 일이 닥치든 늘 네 명예와 지위, 이익과 이점을 생각한다. 이는 오직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이자,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다. … 사람이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언제나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불신파이고 악인이다. 언제나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과오를 범한다면, 네 결말은 정해진 것이다. 네 모든 과오와 네가 걸어온 그릇된 길, 그리고 결코 회개하지 않는 태도가 합쳐져 셀 수 없는 악행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너의 결말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 징벌받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신 내용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겉보기에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의 처세 철학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 사람들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의 본질은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스스로도 실행하거나 진입하지 않았고, 형제자매의 문제를 보아도 눈감아 주고, 실행하거나 진입하도록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두가 저처럼 발전을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이고 타락하는 편이 낫다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본질은 무책임하게 무골호인 노릇을 하는 것이고 도덕과 양심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유독 안락함을 즐기며, 본분을 이행할 때도 진지하고 세심하게 대하지 않아 결국 본분에 많은 문제와 오류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문제와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리더와 파트너 자매가 저를 너무 진지하게 대하지 않기를 바랐고,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아도 폭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들추어내면 나중에 제가 본보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감독을 받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육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문제를 봐도 지적하거나 서로 감독하지 않도록 감싸 주고 싶었습니다. 원래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는 항상 패괴 성품에 따라 살아가며 본분을 이행할 때도 꾀를 부리고 건성으로 하기 쉽기 때문에 더욱 모두가 서로 감독하고 지적하며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그래야 교회 사역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저는 책임자로서 더욱 앞장서서 진리를 실행해야 하지만 솔선수범은커녕 모두가 저처럼 건성으로 임하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저의 이런 본질은 진리를 혐오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앞장서서 건성으로 임하고 하나님을 속인 것은 스스로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해친 것이기도 합니다. 반성할수록 제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교회 사역을 돌보지 않았고,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이 불신파이고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온 악인이라고 말씀하셨는지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마음에 오직 자기만 있고, 교회 사역은 전혀 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실행하고 말과 행동에 원칙이 있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모두가 서로 감싸주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는 악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일부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만 악행이며 하나님께 혐오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무슨 일이든 항상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패괴 성품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며 진리를 실행한 증거가 없는 것도 악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점을 깨달은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책임자로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감싸주고 모두가 건성으로 임하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정말 양심과 이성이 없고 이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고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마친 후, 저는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문제의 세부 내용을 확인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두 형제자매가 본분을 무책임하게, 건성으로 이행한 탓에 재작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보며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모두의 본분 이행에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저는 대충 넘어가며 남도 봐주고 자신도 봐주려고만 했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산다면 이 사역은 제 손에서 지체되고 말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이런 행동에 대해 좀 더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먼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며, 생각이 정리되면 행동한다. 그는 진심으로, 성의를 다해, 절대적으로, 완전히 진리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선택적이고 조건적으로 군다. 그 조건은 무엇이겠느냐? 그의 지위와 명예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어떤 손해도 입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선결 조건하에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 적그리스도는 진리 원칙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의 부탁과 하나님 집의 사역을 대함에 있어, 또는 닥친 일을 대함에 있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만족하고 형제자매에게 유익이 될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의 지위와 명예가 영향을 받지 않을지, 그의 명성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하는 것이다.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할 경우 교회 사역에 유익이 되고 형제자매 역시 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의 개인적 명예가 손해를 입고 많은 사람이 그의 실제 분량, 본성 본질을 알게 된다면, 그는 분명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제적인 사역을 어느 정도 하여 더 많은 사람의 우러름과 앙망, 탄복을 받고, 더 큰 명성을 얻게 되거나 그의 말에 권위가 실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는 그렇게 하는 걸 택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절대 하나님 집의 이익과 형제자매의 이익을 생각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하지 않으냐? 어떤 상황에서든 그의 지위와 명예는 절대적인 것으로, 누구도 그와 다투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고 상대에게 숭배받을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방법이든 가리지 않고 행할 것이다. … 결론적으로 적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의 목표와 동기는 지위와 명예 두 가지를 둘러싼 것일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 행위뿐만이 아니라 사상 관점, 추구하는 방법도 모두 명예와 지위를 중심으로 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사역하는 방식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지키려고만 할 뿐, 속으로 어떻게 교회 사역을 지킬지, 어떻게 형제자매에게 유익이 될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 사역이 영향을 받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이익은 지키려고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명예욕과 지위욕이 너무 강합니다. 저는 제 모든 행동이 적그리스도의 행동과 같았던 점과 일이 닥치면 항상 자신의 이익, 체면과 지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을 반성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경향이 심할 때는 교제하고, 지적해 주고, 폭로하고, 책망해서 그들의 문제와 패괴 성품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남들에게 밉보이지 않고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진리에 부합하는 말 한 마디조차 입 밖에 꺼내지 않았고, 앞뒤를 재며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퇴로를 남길지만 궁리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교활하고 간사했고, 중용의 길을 걷는 무골호인이었습니다. 오로지 명예와 지위만을 추구하며 자신의 이익을 지켰고, 형제자매가 패괴 성품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방임하며 교회 사역은 전혀 돌보지 않으면서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가 계속 이렇게 산다면 분명 하나님에게 드러나 도태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 순간, 저는 제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명예와 지위를 내려 놓고 교회 사역을 잘 지키고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갖가지 일을 대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과연 무엇인지 분명히 알라고 했다. 만약 옳은 것,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 자기 자신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일깨워 주고 권하며 교제하여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진리 원칙은 과연 무엇인지 알게 해야 한다. 이는 네 책임이자 의무이다. 하나님은 네게 중용의 길을 가라고 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네 아량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라고 하지도 않았다. 네가 지켜야 할 것은 하나님이 네게 일깨워 주고 가르쳐 준 것, 하나님 말씀에서 제기한 요구 준칙, 그리고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진리 원칙이다. 너는 그런 진리 원칙을 영원히 지키는 한편, 솔선수범하여 실행하며, 남들도 너와 같이 그 진리 원칙을 견지하고 지키고 실행하도록 권하고 감독하고 돕고 지도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요구이자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이니, 너 자신만 실행하고 다른 이는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네게 요구한 것은 올바른 입장을 갖고 올바른 준칙을 견지하며, 하나님 말씀의 준칙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라는 것이다. 설사 너 자신은 실행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으며 좋아하지 않고 관념과 반발심을 품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하나의 책임이자 의무, 바르고 옳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온 긍정적인 사물을 다른 사람에게 교제해 주는 한편,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도움과 영향과 가르침을 주고, 상대가 그 가운데서 유익과 도움을 얻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게 해야 한다. 이는 네 책임이다. 사탄이 주입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말을 죽어라 지켜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눈에 그 말은 그저 처세 철학이고, 사탄의 간계를 담고 있는 하나의 사상 관점일 뿐 결코 바른길도, 긍정적인 사물도 아니다. 하나님이 네게 요구한 것은 정정당당하게 처신하며,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게 무골호인이나 중재자가 되라고 하지 않았고, 중용의 길을 걸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진리 원칙과 관련된 일에서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하고 깨달아야 할 것은 반드시 깨닫는 한편,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한 것을 네가 깨달아서 알려 주고 도와줄 수 있다면, 마땅히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지,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사탄이 주입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사탄 철학을 지켜서도 안 된다. …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덕행의 말은 그야말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 사탄의 간계 중 하나이다. 언제까지고 그것을 신봉한다면, 너는 사탄 철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전적으로 사탄 성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지 않는다면, 너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 닥치든 네가 지켜야 할 원칙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최선을 다해 다른 이를 돕는 것이지,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사탄의 말처럼 ‘영리한’ 무골호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다른 이를 도우라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네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네가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알았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교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0)>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말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 수단이자 계략이며, 사탄 철학에 따라 살면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 진리를 실행하는 분위기는 없고 모두 서로 눈감아 주고 감싸 주며 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약 사람이 패괴 성품대로 살면 사탄이 권세를 잡게 되고, 사악한 풍조가 득세해서 결국에는 성령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요구를 자신이 당장 도달하지 못하거나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우침과 빛 비춤, 인식과 깨달음을 형제자매와 교제해야 합니다. 만약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 원칙을 어기는 모습을 보면 남과 타협하거나 자신을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원칙을 지켜 교제하고, 돕고, 폭로하고,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 사역을 지키는 것이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한, 솔선수범해서 진리를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자신과 타협하거나 포장하고 위장하며 현실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영원히 성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형제자매의 감독을 받아들여 본분에 있어 진리를 추구하고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저는 또 “내가 실수하지 않고 문제가 없을 때만 남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는 관점은 전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패괴된 사람이고, 사탄 성품도 심각해서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진리 원칙을 어기는 부분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 책망 훈계를 받을 필요가 있으며, 형제자매의 감독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올바르게 대해야 하고,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 회피하거나 포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환해졌고 실행하고 진입할 길도 조금 생겼습니다.
예배에서 저는 먼저 그동안 제 본분 이행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에 맞춰, 건성으로 임하는 성질을 폭로하고 해부해서 모두에게 저를 감독하고, 저를 거울로 삼아 경계해 달라고 교제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특히 건성으로 임하는 성질이 심한 두 형제자매를 겨냥해 폭로하고 해부하며 이를 바로잡지 않았을 때 초래될 결과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감동스러웠던 것은, 책망을 받은 한 형제가 이런 폭로와 책망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온 것입니다. “만약 이런 폭로와 책망이 없었다면 저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반성하고 진입하겠습니다.” 메시지를 보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예전에는 책망과 폭로를 받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고 폭로하는 것은 더 싫어했는데, 사실 이것은 정말 남을 해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후회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서 모두의 본분 이행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도 무조건 눈감아주고 내버려두면서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죄스럽고 형제자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처신과 일 처리의 원칙이며, 형제자매의 문제를 보고 솔직하게 지적하는 것이 사람을 돕는 것이고 남에게도 저에게도 모두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말은 확실히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사탄의 터무니없는 이론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제가 본분을 이행하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책망과 훈계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문제를 폭로하고 책망하는 것도 원치 않았던 것은 사실 책망 훈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감독하고 관찰하고 알아보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도록 돕기 위함이며, 방해하거나 교란하거나 헛수고하는 일 없이 하나님의 요구와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사람에 대해 책임지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서일 뿐, 어떤 악의도 없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7)> 중에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이 있어서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거나 꾀를 부릴 수 있습니다. 만약 사역을 감독하고 확인하는 사람이 없다면, 혹은 문제에 대해 교제하고 지적하며 책망하고 훈계하는 사람이 없다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육만 돌보고 안락함만 즐길 것입니다. 심지어 멋대로 행동해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짓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리더 일꾼이 사역을 감독하거나 책망 훈계하는 것은 본분에 책임을 지는 것이고, 교회 사역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사람의 생명 진입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지 일부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책임자임에도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사탄 철학을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의 본분 이행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교제하거나 도와주지도 않고, 책망 훈계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버려두고 감싸 주었습니다. 이는 무책임한 일이고, 형제자매를 해치고 교회를 해치는 일입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 바로잡혔고, 감독과 지적, 책망과 폭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사탄 철학에 따라 살면 사람의 사상과 관점은 모두 치우치게 되고,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지 몰라 사탄 철학에 따라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행동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진리를 실행할 때의 기쁨을 맛보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는데 열중할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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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팡샹2020년 3월, 저는 팀장으로 발탁되어 몇 개 팀의 양육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사역을 관리해 본 적이 없어.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거나 업무를 제대로...
한국 웨이천2019년 12월, 저는 교회에서 복음 집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리더들의 일하는 방식이 보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다 문제점을 드러내면 곧바로 지적했고 엄한 말투를 쓸 때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스웨덴 크리스틴(Kristin)2021년 7월, 저는 영상 사역의 책임자가 됐습니다. 당시 저는 형제자매들한테 수시로 본분 이행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나 어려움에 대해 물어보고, 함께 진리를 구해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사역 성과가...
산둥성 자오샤 저는 이름이 자오샤로, 평범한 가정 출신입니다. “사람은 체면으로 살고, 나무는 껍질로 산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격언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저는 명예와 체면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