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인정하는 것의 어려움
미국 크리스티나(Kristina)2022년 12월 3일 토요일 비오늘 사역 표를 정리하다 한 영상이 잘못 배정돼 중복으로 제작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히 확인해 보니 제작 전에 기록표를 확인하는 절차를 깜빡해서 생긴...
저는 늘 사람이라면 남에게 너그러워야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어려움을 많이 헤아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살았어요. 그래서 제가 힘들더라도 남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인격적으로 고상하고 아량이 넓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교회 영상 사역을 맡게 됐는데, 저는 팀장으로서 뭐든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신에게는 엄격해도 팀원들한테는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거나 깐깐하게 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사람이 후해 보이고, 다들 저를 인성이 좋다고 느낄 것 같고, 저를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좋게 봐 줄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팀 내의 대소사를 챙길 수 있는 한 혼자 다 챙겼어요. 가끔 팀원들한테 조금 어려운 업무를 배정했을 때, 좀 싫은 티를 내면 얼른 제가 대신 해 버렸어요. 다른 사람들한테서 제가 요구 기준을 너무 높이고 가혹하게 대한다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최대한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했어요. 가끔 책임진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지만, 사람들한테 안 좋은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육을 버리고 사역을 다 짊어졌어요. 그러다 팀에 새로운 형제자매들이 합류했는데, 업무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부족한 게 많았어요. 제작한 영상은 제가 검사해야 했고, 그들에게 애매한 문제가 있을 땐 절 찾아와서 의논하곤 했어요. 그러니 제 스케줄은 그런 문제로 늘 꽉 차 있었어요. 그것 말고도 저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있었죠. 그러니까 많은 일들이 계속 밀려 있었고, 전 매일 그걸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어요. 가끔 쉽게 해결할 문제도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그럴 때면 ‘이런 건 알아서 의논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내가 나서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나한테 물어봤는데, 안 해 주면 팀장으로서 너무 책임감이 없어 보일 수 있지. 더구나 팀원들끼리 의논해도 그만한 시간을 쓸 텐데. 그래, 내가 시간 내서 해결하지 뭐.’ 하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어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매가 사역을 저한테 넘긴 이유는 본인이 게으르고, 또 책임지는 게 겁나서였어요. 그래서 자매랑 교제하려고 했지만 제가 너무 높은 걸 요구한다고 할까 봐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다시 삼켰어요. 또 가끔 저는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다른 형제자매들은 사역 양이 많지 않은 걸 볼 때면 일부를 떼어 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진도를 더 앞당길 수 있잖아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죠. ‘내가 업무량을 늘리면 쉴 틈도 주지 않는 가혹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 아니다. 그냥 내가 하지 뭐.’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작 그 일을 처리할 때 속으론 서운했어요. 특히 다른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게 될 때면,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도 그들은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없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어요. 그래도 저는 속으로만 불평을 토로했지 정작 말은 하지 않았어요. 괜히 말을 꺼내면 제가 인성이 안 좋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됐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저 혼자서 다 처리하곤 했어요. 간혹 팀 내 상황에 따라 사역을 배정해 줄 때, 다들 기분 좋게 하겠다고 하면 괜찮은데, 누군가 인상을 쓰거나 조금 투덜거리면 저는 배정해 줄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러면 저 혼자 밤을 새워서 그걸 완성했죠. 사실, 저도 속으론 서운하고 정말 불평을 많이 했어요. 그건 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인데, 제가 추가로 시간을 내서 처리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때로는 바빠서 영 생활을 할 시간도 갖지 못했거든요. 근데 전 그렇게 서운해도 감히 말은 못 하고 ‘사람은 너그러워야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시시콜콜 따지지 말자. 그렇게 안 하면 내가 인품이 너무 없어 보일 수 있어.’라는 생각에 그저 자신을 위로하곤 했죠. 물론 팀 내 형제자매들은 저를 책임감이 있고, 고난을 잘 감내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심이 깊다고 평가했어요. 그런 평가를 들으면 고생한 것에 대한 보람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원칙적으로 일하지 않고 계속 사람들의 육을 생각해 주면서 사역을 합리적으로 안배하지 못하니까 팀 내 많은 사역이 계속 밀렸고 진도가 많이 느렸어요. 어떤 형제자매들은 진취적으로 임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자기가 맡은 것만 끝내는 것으로 만족했고,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닥쳐도 기도하거나 진리 원칙을 구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제가 해결해 주길 바라면서 사람한테 의존하니 업무적으로 발전이 없었어요.
어느 날 책임자가 사역을 체크하러 왔다가 팀 내 사역이 합리적으로 안배되지 못한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일들은 팀원들한테 맡기고 저에게는 팀 내 사역의 진도를 체크하고 어려운 일들을 돌파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팀장 역할에 집중하라고 했어요. 그래야 모든 사람이 각자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잘 분담할 수 있다고 했어요. 물론 책임자의 말이 맞고, 그대로 안배하면 사역에 이롭다는 건 알았지만 정작 실행하려니 너무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저의 패괴 성품을 알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요. 아침 영 생활 시간에 제 내적 상태에 맞춰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는데, 그때 봤던 이 말씀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것은 재물을 주워도 갖지 말라나 기꺼이 남을 도우라는 말처럼 사람의 덕행에 대한 전통문화의 요구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이 측면의 덕행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지, 실행 가능한지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나 준칙이 될 수 없다. 어쩌면 네가 정말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를 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행동거지를 매우 조심하며, 무슨 일을 하든 남을 먼저 고려하고 생각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굴지도 않아 매우 공평무사해 보일지도 모른다. 또한, 네게는 사회적인 책임감과 도덕심이 있어 네 주변 사람들, 너와 함께하고 왕래하는 사람들 눈에 고상한 인격과 인품을 지닌 것처럼 비칠지도 모른다. 네 행위는 한 번도 어떤 질책이나 비난을 받을 일이 없으며, 언제나 큰 칭찬, 나아가 감탄을 받을지도 모른다. 사람들 눈에 비치는 너는 진정으로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생각하는 것이 이러한 겉모습, 겉으로 보이는 행위와 일치하겠느냐?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겠느냐? 분명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그 목적이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것이고 어둡고 사악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럼 그 목적이 어째서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것이고 사악한 것이겠느냐? 사람의 인성이 패괴 성품에 통제되고 조종되기 때문이다. 인성의 모든 생각, 그것은 사람이 말하든 말하지 않든, 드러내든 드러내지 않든, 부정할 여지 없이 패괴 성품에 주도되고 통제되고 조종당한다. 이로 인해 사람의 속셈과 목적은 음험하고 사악하다. 사람이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를 행할 수 있든 없든, 이 측면의 덕행을 겉으로 제대로 보여 주든 그렇지 않든, 그의 인성은 이러한 덕행에 영향을 받거나 통제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럼 진정으로 인성을 조종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패괴 성품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덕행에 가려진 인성 본질, 그것이 바로 사람의 본모습이다. 사람의 본모습은 곧 사람의 인성 본질이다. 사람의 인성 본질이란 과연 무엇이겠느냐? 주로 사람의 기호, 추구, 인생관, 가치관, 그리고 진리를 대하거나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등을 가리킨다. 이러한 것들만이 사람의 인성 본질을 대표할 수 있다. 단언컨대, 무릇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덕행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위욕이 매우 강하다. 그들은 패괴 성품에 지배되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마음속의 지위와 명망, 사회적인 지명도를 추구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지위욕과 관계가 있으며, 그들이 좋은 덕행에 가려진 가운데서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러면 그들이 추구하는 이러한 것들은 어떻게 생겨났겠느냐? 전부 그들의 패괴 성품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며, 패괴 성품에 지배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어쨌든, 누군가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덕행을 행할 수 있든 없든, 제대로 해낼 수 있든 없든, 그의 인성 본질을 조금도 바꿔 놓을 수 없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바로 그것이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을 조금도 바꿔 놓을 수 없으며, 다양한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을 좌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위장과 가식에 능한 사람이고, 좋아 보이는 말과 행동으로 남을 미혹하는 사람이며, 본성이 간사하고 사악한 사람이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지위와 권세를 깊이 사랑하고 추구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6)> 중에서) 하나님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는 사람은 지위욕이 매우 강해서 늘 사람들 마음속의 지위와 명망을 추구하는 자이니, 그런 자는 본성이 간사하고 사악하며, 위장과 가식에 능하다고 폭로하셨더라고요. 이 말씀을 보는데 마음이 찔렸어요. 사실, 그동안 팀장을 하면서 저는 많은 사역을 제가 도맡아서 했었거든요. 계속 다른 사람의 스케줄, 사역의 양, 어려움 등을 고려하고, 다른 사람을 누구보다 더 챙겨 주고 이해하면서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외적으로는 이해심이 깊어 보였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제 체면과 지위를 생각했던 거예요. 전 괜히 말 한 마디, 일 처리 하나 잘못해서 남들이 기분 나빠하거나 저를 안 좋게 보는 결과가 생길까 봐 겁냈어요. 저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책임감 있고, 고생하고 대가 치르는 걸 마다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양보하는 걸로 보였어요. 그 결과 다들 저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저한테 의존하는 바람에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진리를 구해 해결할 줄은 모르고 제가 해결해 주기만 기다리게 된 거예요. 저도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인간이라 사탄의 성품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절대 그러한 이타심과 아량이 있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형제자매들이 저한테 사역을 떠넘길 때 겉으로는 흔쾌하게 대답했지만 속은 불쾌하고 자매를 책임감 없다고 원망하기도 했죠. 더구나 제가 할 일이 쌓여 있고 압박감이 느껴질 때,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서 정말 이타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했지만, 사실 속으론 너무 서운했고 그런 일까지 챙기면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사역 분배할 때도 가끔 어떤 자매가 육을 생각하느라 더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하면, 저는 진리로 교제하면서 자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사역을 제가 떠안았죠. 하지만 속으로는 자매가 게을러서 제게 불필요한 부담을 더해 줬다고 원망하면서 색안경을 쓰고 보기도 했죠. 그랬던 일들을 생각하면 저의 넓은 아량은 다 거짓이었고, 가식적인 것일 뿐, 진심에서 나온 게 아니었어요. 저는 분명 이기적인 사람인데 이타적인 척하면서 사람들에게 거짓된 모습을 보여 줬어요. 그건 다름이 아닌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좋은 사람이라는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한 하나의 목적을 위해 그런 거였죠. 전 정말 가식적이고 위선적이었어요. 다들 거짓으로 꾸며 낸 제 좋은 행위만 보고 속에 있는 진짜 생각은 알지 못한 채 저에게 인성이 좋고, 너그럽다는 평가를 해 줬어요. 그건 다른 사람을 기만하고 눈가림하는 거잖아요. 생각할수록 제가 너무 역겨웠어요. 제가 가면을 쓰고 살다 보니까 저도 고통스러웠고 교회 사역에도 지장을 줬어요. 그게 주변 사람과 본인한테 해가 되는 거잖아요. 이걸 깨닫게 됐을 때, 저 자신이 너무 미웠고, 빨리 회개하고 변화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저의 내적 상태에 대해 추가로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교회 리더는 형제자매가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해야 하는데도 책망하지 않고, 분명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실 입는 것을 보아도 신경 쓰지도 묻지도 않으면서 조금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속셈과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고 나를 좋게, 높게 평가하고 내게 찬성하고 나를 좋아할 거야.’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얼마나 손해를 보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얼마나 피해를 입든, 교회 생활이 얼마나 큰 방해를 받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사탄 철학을 지키며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에는 어떠한 가책도 없다. 누군가 방해하고 교란하면, 기껏해야 말로 어물쩍 넘어갈 뿐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석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교제하는 법이 없다. 거짓 리더는 사람들이 항상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지 폭로하거나 해부하는 법이 없고, 어떤 실제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그릇된 행동 방식과 패괴 표출을 항상 눈감아 주며, 사람이 아무리 소극적이고 연약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고 격려의 말 몇 마디로 대충 넘어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뿐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민들이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해도 해결하지 못하며, 글귀와 도리,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생명 진입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리더는 하나님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더 잘 이해해 줘. 우리의 분량이 작아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해. 우리는 리더의 요구에 맞출 수 있기만 하면 돼. 우리가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야. 만약 어느 날 상부에서 우리의 리더를 교체하겠다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해. 리더가 교체되지 않도록 상부와 협상하고, 상부에서 우리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박해야지. 그러면 리더에게도 면목이 설 거야.’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생기고 리더와 이러한 관계가 형성된다. 마음에 리더에 대해 이러한 의지, 부러움, 숭배가 생기면 갈수록 리더를 믿게 되고, 리더의 말을 듣기 원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리더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만약 리더가 하나님의 선민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또한 그 관계를 즐기며 하나님 선민이 응당 자신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리더는 바울과 다를 바 없고,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은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분별력이 전혀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중에서), 『교회의 적그리스도나 악인들에게 대입해 보아도 좋다. 그들은 교회에서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공고히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더 높은 명성을 얻기 위해 본분 이행 과정에서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심지어는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모든 것을 팔아치운 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도 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자 치른 대가와 겪은 고난 중 일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것들이다. 그들은 와신상담의 정신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증거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추구 목표는 지위와 권세, 그리고 하나님이 주는 상이다. 그들이 행한 것 중 진리와 관련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든, 마지막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은 과연 그들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그들이 표면적으로 살아 낸 좋은 행위로 그들의 결말을 정하겠느냐?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행위와 모습으로 다른 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데, 그러면 상대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해 속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남에게는 관대하라.”라는 말을 실행했다고 해서 절대 그들의 덕행을 기억하거나 칭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야심과 그들이 지위를 추구하면서 걸어간 길 때문에 그들을 정죄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일 처리의 성격과 결과에 대해 더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전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본분에서 계속 다른 사람의 어려움만 생각해 주면서 뭐든 제가 다 하려고 했어요. 그 결과 형제자매들은 자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됐죠. 어떤 사람은 육을 생각하느라 책임감을 갖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저한테 의존하는 상태에 빠져 있다 보니 조금만 어려움이 생겨도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진리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저부터 찾았어요.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거든요. 이는 저의 악행이잖아요. 자매님이 본분을 이행할 때 짐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본분도 저한테 떠넘기는 상황에서 제가 교제를 나누면서 그런 상태의 성격과 결과에 대해 알려 줬더라면 자매가 육을 버리고 책임감을 갖고 짐을 짊어졌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생명도 성장하고 업무 역량도 강화될 수 있고요. 근데 전 제 체면과 지위만 생각하다 보니 형제자매들이 패괴된 성품대로 살아도 교제하면서 짚어 주지 않았어요. 그런 처신이 외적으로는 육적인 관념에 잘 부합할지라도 형제자매들의 생명에는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타락하게 만드는 처사죠. 저처럼 계속 양보해 주는 건 오히려 사람을 해치는 거였어요. 근데 다들 제 행동에 대해 분별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저한테 미혹돼서 제가 잘 대해 주고 챙겨 준다고 착각했었죠. 전 정말 위장을 너무 잘했어요. 그건 사람을 미혹하는 거죠. 표면적으로는 제가 본분에 책임감이 넘치고, 고생도 잘 감내하고 대가를 잘 치르는 걸로 보여서 사람들한테는 좋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겠지만 하나님께는 오히려 정죄받죠. 제가 행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의 제 지위를 지키기 위한 거였으니까요. 대놓고 악행을 저지른 건 없었지만 전 사람들을 하나님 말씀의 실제로 이끄는 게 아니라 제 앞으로 이끌었어요. 그건 사람들의 마음을 농락하는 거고,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낸 거예요. 이걸 깨닫게 되니 제 상태가 정말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게 됐어요. 저는 전통문화의 사상과 관점에 따라 본분을 이행했는데, 그건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거였어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면서 저의 문제점을 한층 더 깊이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제기한 덕행의 요구든 이것들은 다 사람에게 스스로를 억누르고, 자신의 욕망과 옳지 못한 덕행을 억누르며, 올바른 사상과 도덕의 관점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이 말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든, 그 영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소위 도덕 학자란 자들이 이 말들을 내놓은 목적은 사람의 덕행을 제약하고 규범화하여 사람이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이 사회와 국가를 대할 때 기본적인 준칙을 갖게 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들이 내놓은 덕행에 관한 이 말들은 어느 정도 인류의 덕행을 제약하고 규범화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로 볼 때, 그것은 사람을 거짓되고 허위적인 사상 관점으로 이끌었으며, 사람이 전통문화에 영향받고 물들어 더 음험하고 간사하고 위장에 능하게 만들었고, 사람의 생각을 더욱 옭아맸다. 사람은 이 전통문화에 영향받고 물들어 조금씩 전통문화의 그릇된 관점과 말들을 긍정적인 사물로 여기게 되었으며, 사람을 미혹하는 명인과 위인들을 성인으로 여겨 떠받들게 되었다. 미혹된 사람들은 마음이 어리석어지고 무감각하고 우둔해져서 무엇이 정상 인성인지, 정상 인성으로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생존 방식과 생존 법칙을 지녀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으며, 무엇이 올바른 생존 목표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또 전통문화에 영향받고 물들고 심지어는 속박된 탓에 긍정적인 것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요구와 법칙은 오히려 억눌림 당하였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전통문화 중 덕행 측면의 각종 말들은 사람의 사고에 상당히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람의 생각을 깊이 미혹하고 속박하여 사람이 인생의 바른길에서 벗어나 그릇된 길에 들게 하고, 하나님의 요구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즉, 전통문화 중 덕행 측면의 갖가지 사상 관점에 더 깊이 영향받고 더 오래 물들수록 정상 인성에 지녀야 할 생각과 바람, 추구 목표, 생존 법칙,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선민은 반드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고, 진리는 진리이며, 사람의 말은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다. 인의예지신은 사람의 말이고, 전통문화도 사람의 말이다. 사람의 말은 영원히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될 수도 없다. 이는 사실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전통문화가 사람에게 주입하는 관점은 모두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것이자 진리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정상 인성의 살아냄과는 모두 어긋나는 것임을 깨닫게 됐어요. 저는 전통문화의 미혹과 영향하에 어리석고 터무니없고, 옳고 그름을 분간 못 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어요. 저는 타인에게 관대하고 항상 상대를 생각해 주면서 자기가 힘들어도 남을 힘들게 하지 않아야 인격적으로 고상하고 아량이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관점이 제 안에 깊이 뿌리내린 채 저의 일언일행을 지배하고 있었고, 제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죠. 잘 생각해 보면, 사람들에게 관대한 저의 모습은 정상 인성 안에 갖춰져야 할 관용이 아니에요. 그건 원칙이 없고 선이 없는 방종이었어요. 저는 팀장으로서 당연히 팀의 전반적인 업무와 각 사람의 특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사역을 분배해 주고, 각 사람이 자신의 몫을 잘 책임지고, 본분에서 훈련받고, 자기 특기를 잘 발휘할 수 있게 해 줘야 하잖아요. 그래야 팀의 사역도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고 갈수록 잘할 수 있죠. 어떤 팀원은 업무 역량이 부족하고, 자질도 일반적이고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게 조금 더딜 수도 있어요. 그럼 사역을 맡길 때, 하지 못할 업무를 강제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실제 상황과 어려움에 따라 충분히 할 수 있는 조금 쉬운 업무를 맡겨 주면 되죠. 반대로 자질이 뛰어나고 이해력이 좋아 원칙이나 업무에 관해 조금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한테는 조금 더 마음을 쓰고 짐을 더 질 수 있게 적절하게 사역을 조금 더 추가해 줄 수 있죠. 그래야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상대가 조금 어려워하고 압박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건 정상이거든요. 그런 게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자신의 본분 이행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고, 본인의 기술력을 향상할 수 있게 하니까요. 그 밖에, 사역을 분배한 후에 불만을 품는 사람과는 소통을 하면 되거든요. 그게 실질적인 어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고생하고 대가 치르기 싫고 안락함만 누리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파악하고, 실제 상황에 따라 진리 원칙대로 일 처리하면 되죠. 그게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하는 거거든요. 생각해 보면, 평소에 제가 사역을 분배해 줄 때, 팀원의 실제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분배해 주거든요. 높은 기준을 요구하거나 가혹하게 하지 않고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주는데, 다만 어떤 사람은 게을러서 대가 치르며 노력하기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책임지는 게 싫어서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기 바빴던 거예요. 그런 경우는 제가 계속 눈감아 주거나 양보하고, 기준 없이 계속 참아 줄 게 아니라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 수 있게 교제하면서 지적해 주면 되고, 심한 경우는 책망도 해 줘야 하죠. 그게 팀 사역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게 수호하는 거죠.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면서 실행해야 하는 길에 대해 더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할 때면 항상 자신의 마음가짐이 올바른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인 것이다. 이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마음가짐을 살펴 올바르지 못한 속셈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이미 정상적이며, 네 모든 행동이 너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감정이나 개인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일 처리 원칙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중에서), 『그럼 하나님이 요구하는 진리 원칙이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소극적이고 연약할 때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의 고통과 고충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물어봐 주고, 도움을 주며, 붙들어 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더 이상 연약해지지 않게 하고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에 부합되는 실행 방식이 아니냐? 이러한 실행 방식은 진리 원칙에 부합되며, 물론 이런 관계는 더욱 진리 원칙에 부합된다. 어떤 이들이 일부러 방해하고 교란하거나 혹은 일부러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것을 보면, 너는 원칙에 따라 그에게 지적해 주고 질책하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수수방관하거나 그를 용인하고 감싸 준다면, 심지어 듣기 좋은 말로 그를 추켜세우고 칭찬한다면, 그런 식으로 사람과 교류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은 분명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사람과 교류하고 일을 처리하는 그 방식은 분명 불합리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해부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정말 간파하기가 어렵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니까 마음이 밝아졌어요.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잖아요. 그럼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는 전제에서 모든 말과 행동을 해야 하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두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 하는 거죠. 그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거였어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본분에 같이 협력할 때도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해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늘 교회 사역을 생각해야 하죠. 연약하고 소극적인 사람을 보면 진정으로 도와주고 붙들어 줘야 하고, 패괴 성품을 드러내거나 의도적으로 교회 사역에 훼방을 놓고 교란하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계속 양보하고 참아 주거나 쓸데없는 선심을 쓸 게 아니라 교제를 통해 도와주거나 지적하고 폭로해야죠. 그리고 업무를 분배할 때도 자기 체면을 생각하고 타인의 육과 기분을 먼저 생각할 게 아니라 원칙과 팀의 실제 상황에 따라 사역이 지체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분배해야 하죠. 그게 사람이나 교회에 이로운 실행인 거죠. 그 뒤로 형제자매들과 지낼 때, 저는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훈련했어요. 어려움이 있으면 형제자매들과 소통했죠. 사역을 분배할 때는 각 사람의 실제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정하면서 모든 사람이 각자의 몫을 책임질 수 있게 했어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간단한 문제들은 팀원들이 혼자 처리하는 훈련을 하게 하고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만 제가 관여했어요. 그리고 업무 분배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대가를 많이 치르려고 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하나님의 뜻을 교제하면서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패괴된 성품을 반성하고 깨닫고 옳지 못한 마음가짐을 바로잡을 수 있게 이끌었어요. 그리고 저도 어려움이 생기거나 여유가 생기지 않을 때면 더 이상 전처럼 혼자 다 떠안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사역을 배정해야 합리적이고 지체되지 않을지 의논하곤 했어요. 그렇게 실행하니까 형제자매들도 먼저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본분 이행에 대한 적극성도 전보다 향상됐고, 업무 효율도 좋아졌어요. 저도 마음이 훨씬 든든해졌어요. 지금도 간혹 무골호인의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지만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곤 해요. 제가 이만큼의 변화라도 갖게 된 건 모두 하나님 말씀으로 얻은 성과예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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