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과 훈계를 통해 깨달은 것
2022년 8월, 저는 교회에서 양육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리더는 몇몇 형제자매가 제가 예배 전에 새 신자들의 상태와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예배에서 교제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어떤 새 신자가 예배에 나오지 않았을...
저는 평범한 가정의 자녀로,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과는 출발선부터가 달랐습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저는 아버지에 의해 학교 근처 기숙 가정에 맡겨졌다가, 나중에는 고모 댁과 할머니 댁을 전전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제 가정 환경을 알게 된 또래 아이들은 저를 멀리했고, 저 역시 항상 제가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밤이면 저는 억울한 마음에 자주 눈물을 흘리며 ‘내 운명은 왜 이렇게 기구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거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TV 속에서 커리어 우먼들이 대표 자리에 앉아 꽃과 후광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면 몹시 부러웠고, 그들이 참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집에 얹혀살며 무시당하는 제 처지를 생각하며, 어른이 되면 저들처럼 출세해서 저를 얕보던 사람들이 저를 다시 보게 만들겠다고 남몰래 다짐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이 제 어린 시절에 그늘을 드리우는 바람에 저는 늘 고통스럽고 괴로웠으며 열등감에 빠졌고 괴팍해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할머니를 따라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열여섯 살 되던 해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사람이 고통스럽게 사는 근본 원인이 사탄의 패괴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이번에 오셔서 하시는 사역은 바로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하여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끄시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이고, 하나님의 사역이 곧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저는 학업을 내려놓고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형제자매들이 무슨 문제가 생기면 리더에게 묻고, 리더는 교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그들을 우러러보는 것을 보니 마음속으로 무척 부러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도 열심히 추구해야겠어. 그러면 나중에는 나도 리더 일꾼이 될 수 있을지 몰라. 그때가 되면 평범한 신도가 아니라 리더 격인 인물이 되는 거지.’ 그 후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기든 저는 최선을 다해 협력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가 젊고 자질이 좋다며 열심히 추구하라고 격려해 주었고, 저도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나는 키울 만한 싹인가 보네. 열심히 추구해야지!’ 저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가는 길이 멀어도 피곤한 줄 몰랐고, 추운 겨울이든 무더운 여름이든 본분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의 노력과 수고를 형제자매들이 알아주고, 언젠가 리더 일꾼으로 선발되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저는 선출되지 못했고, 3년이 지나도록 계속 문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당시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나는 문서 본분밖에 이행할 수 없는 걸까? 이것이 교회에서 내 위치인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2019년 2월, 저는 교회의 문서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흐뭇했고, 전환점이 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건 아마 하나님께서 나를 미리 훈련시키시는 걸 거야. 하나님 집에서 나도 발전할 가능성이 있나 보네. 리더가 되려면 진리를 교제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니, 나도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서 형제자매의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해야겠어. 이제 막 문서 사역을 맡았으니, 얼마간 훈련하고 나면 리더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한번은 예배 때, 한 새 신자가 리더로 선출되었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쓰렸습니다. ‘새 신자는 믿은 지 1년 남짓 만에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는구나.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이나 됐는데도 왜 내게는 그런 좋은 기회가 오지 않는 걸까? 왜 나는 항상 제자리걸음일까? 문서 본분도 중요하긴 하지만, 리더 일꾼처럼 드러나는 자리만은 못하지. 한참 멀었다고.’ 저는 자전거를 끌고 길을 걸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한동안 저는 본분에 마음을 쏟을 수가 없었습니다. 2022년, 문서 사역 인원이 재조정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몹시 낙담하며 생각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은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왜 계속 문서 본분만 이행하는 걸까? 나는 문서 본분에만 맞는 사람인가? 나는 리더가 될 운명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도 언제 무슨 본분을 이행할지는 다 하나님의 예정과 주재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잖아. 어쩌면 나는 문서 본분을 이행할 운명인가 봐.’ 저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은 한 형제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은 후 교회에서 리더를 맡았고, 그 후에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리더 일꾼이 될 운명이었지만,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리더 일꾼이 될 기회도, 발전 가능성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인생은 그대로 끝인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는 책임자가 시키는 일만 하고 더는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본분에서 문제가 보여도 해결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사역의 성과는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책임자는 본분 이행에 발전이 없고 태도가 적극적이지 않다고 저를 책망했습니다. 저 역시 제가 본분을 수동적으로 이행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 후, 사람의 의기소침한 감정을 밝히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야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본 어떤 사람이 일을 처리할 때 언제나 유독 의기소침하고, 수동적이고, 기운이 없다고 치자. 그는 정서와 태도가 그다지 적극적이거나 낙관적이지 않다. 항상 소극적이고, 남 탓만 하며, 자포자기하는 태도를 보인다. 네가 설득해 봐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도 네가 말한 길이 맞고 네가 말한 도리가 훌륭하다고 인정하지만, 막상 일을 처리할 때는 힘을 못 내고 여전히 소극적이며 수동적이다. 심각할 때는 그의 팔다리가 움직이는 모양과 자세, 걸음걸이, 말하는 톤, 어휘 선택만 봐도 정서가 몹시 의기소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기운이 없는 게 꼭 소금 먹은 푸성귀 같아서 누구든 그와 오래 같이 있으면 영향을 받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사람이 의기소침한 정서 속에서 살면서 보이는 갖가지 행동, 표정, 말투,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드러내는 일부 사상 관점에서도 소극적인 성질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정적 현상을 일으킨 그 이면의 원인은 무엇이냐? 그 근원은 어디에 있느냐? 물론, 의기소침이라는 부정적 정서가 생겨난 근원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중 어떤 부류의 사람은 항상 자기 팔자를 탓해서 의기소침한 정서가 생기기도 한다. 이것이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 하나님을 믿게 된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열심히 이행하기로 다짐한다. 괴롭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매사에 다른 사람들보다 고생하고, 많은 사람의 지지와 높은 평가를 얻고자 노력한다. 나중에는 리더나 책임자, 또는 팀장으로 뽑힐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러면 조상과 가문을 빛내는 것 아니냐고, 그러면 운명을 바꾼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 그는 실의에 빠진다. ‘나는 하나님을 오래 믿었고 형제자매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어. 그런데 리더, 책임자, 팀장을 뽑을 때마다 왜 내 차례는 안 오는 거지? 생긴 게 너무 평범한 탓일까? 아니면 사람들 눈에 띌 만큼 비범한 일을 못 해서 그런가? 선거가 있을 때마다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있다고. 팀장으로 뽑혀도 좋겠어! 난 하나님께 보답하고 싶어서 가슴이 뜨거운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실망하게 돼. 번번이 나와는 인연이 안 닿아. 왜 이렇지? 정말로 나는 한평생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사람밖에 될 수 없는 건가?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중년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쭉 이렇게 평범했어. 아무것도 이룬 게 없지. 야심이 없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야. 자질이 떨어지느냐, 그것도 아니야. 노력을 덜 한 것도 아니고 고생을 견디지 못한 것도 아니야. 나한테는 의지가 있고 목표가 있어. 더 나아가 야심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걸까? 결국은 내가 팔자를 잘못 타고났고 운이 나쁘기 때문이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배하신 거야!’ 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기가 팔자를 잘못 타고난 것 같다고 느낀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저는 제가 문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갈수록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했던 이면에 그릇되고 터무니없게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리더 일꾼이 되지 못하고 출세하지 못하는 것은 나쁜 운명을 타고난 것이고, 리더 일꾼이 되어야만 발전 가능성이 있고 좋은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더 일꾼으로 선발되기 위해 저는 하나님 말씀을 갖추는 데 공을 들였고, 형제자매에게 어떤 내적 상태나 문제가 보이면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찾아 교제하며 도와주었습니다. 교제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 저는 스스로 자질이 있고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언젠가 모두가 저의 실력을 알게 되면 저를 리더로 뽑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저는 계속 문서 본분만 이행했고, 특히 저보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은 어떤 형제자매들이 리더 일꾼이 된 것을 보았을 때, 저는 그들이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리더 일꾼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저는 몇 년째 문서 본분을 이행하며 계속 제자리걸음만 했고, 교회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존재였습니다. 저는 이 모든 문제를 제가 나쁜 운명을 타고난 탓으로 돌리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고, 저에게 안배된 본분도 좋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러자 본분을 이행하는 데 점점 더 의욕을 잃었습니다. 사역의 성과가 좋지 않아도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고, 문제를 발견해도 마음을 쓰거나 대가를 치러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체험이 부족하여 더 많이 훈련하고 진리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공을 들이려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는 모습이,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벗어날 힘이 없어 조금씩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의기소침한 감정은 제게 정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신 것을 보고 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대해 조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생의 운명이 어떨지는 하나님이 이미 오래전에 정했으므로 바꿀 수 없다. 팔자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고, 환경에 따라서, 사람의 자아 감각, 추구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러므로 ‘팔자’는 좋고 나쁨과 관계가 없다. 너는 아주 힘들게 살면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무슨 대단한 걸 바라지 않아.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다면 만족해. 살면서 고생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세인들이 자주 하는 말도 있잖아. 비바람을 겪지 않고 어떻게 무지개를 보겠느냐고, 고생하는 것도 값진 일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이 정도가 무슨 고생이야? 이건 팔자가 나쁜 게 아니야. 하늘이 내게 약간의 고통과 고난을 주고 단련시키는 건 나를 중히 여기기 때문이야. 나는 팔자가 좋은 거라고!’ 그런가 하면 고생은 나쁜 일이고 팔자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고생 없이, 생활이 안락하기만 해야 팔자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를 두고 개인마다 관점이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팔자’라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 팔자가 좋다 혹은 팔자가 나쁘다는 말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런 말은 없다. 너는 하나님을 믿으니 곧 팔자가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바른길을 걷지 않아 징벌을 받고, 드러나고, 도태됐을 때는 대체 팔자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드러나고 도태될 일도 없다. 이방인들과 종교계에서는 사람을 드러내거나 분별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으며, 제명되거나 도태된다는 말도 없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그 사람은 팔자가 좋은 것이겠지만, 마지막에 징벌을 받는다면, 그렇다면 다시 팔자가 안 좋아진 것이냐? 한순간 팔자가 좋았다가, 또 한순간 팔자가 나빴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쪽인 것이냐? 팔자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논할 수 없는 일이다. 전부 하나님이 행한 것이다. 하나님의 안배는 모두 훌륭하다. 다만, 사람마다 운명의 궤적이라든지 처한 환경이 다르고, 각자에게 임하는 사람과 일이 다르며, 한평생 경험하는 인생의 궤적이 다른 것이다. 저마다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생활 환경과 성장 배경을 안배했다. 한평생 겪는 일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이른 바 좋은 팔자나 나쁜 팔자는 없다. 하나님이 모두 다 안배해 두었으며, 전부 하나님의 행사다. 하나님의 행사라는 관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훌륭하고 옳다. 다만, 개인의 취향, 느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안락한 생활, 명리, 명망, 세상에서의 성공, 개인적 영달을 선택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가져야 좋은 팔자라고 생각한다. 평생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면서 언제까지나 사회 밑바닥에 머문다면 팔자가 좋지 못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이방인 혹은 세인들이 세상을 추구하는 각도에서, 세상에서의 생존을 추구하는 각도에서 논한 것이다. 그래서 팔자가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말이 생겼다. 팔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말은 운명에 대한 인간의 편협한 인식과 깊이 없는 감성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또한 사람이 육적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나 누렸는지, 명예와 이익을 얼마나 얻었는지 등등을 논지의 출발점으로 삼는 탓에 팔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안배하고 주재한다는 점에 입각해서 이야기하자면, 팔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맞지 않느냐? (맞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주재라는 각도에서 사람의 운명을 논한다면 하나님의 행사는 전부 훌륭하고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이다. 전생과 현생의 인과가 있고, 하나님의 정함과 주재,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안배가 있기에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러면 이러한 방면에서 볼 때, 사람은 자기 팔자가 좋은지 나쁜지를 멋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냐? 만약 사람이 이를 멋대로 평가한다면 지극히 심각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계획, 안배, 주재를 사람이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는 심각한 잘못이 아니냐? 사람이 한평생 걷는 길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잘못이 사람을 망쳐 버린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은 출세해서 명예와 이익을 얻는 것은 좋은 운명을 타고난 것이고, 평생을 평범하고 무능하게 사는 것은 나쁜 운명을 타고난 것이며, 고통받는 것은 나쁜 운명을 타고난 것이고, 안락하고 평안하고 순탄하게 사는 것은 좋은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셨습니다. 이처럼 좋은 운명이나 나쁜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들은 모두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와 소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마다 평생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신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안배하시기에 사람의 생명에 모두 유익합니다. 그래서 좋은 운명이나 나쁜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은 없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자신이 나쁜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모든 환경은 좋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어릴 적 가정의 불행을 겪으며 사람들에게 냉대받고 무시당했지만 그런 좌절과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하는 훈련을 받을 기회를 얻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자 구원입니다. 하지만 저는 뛰어난 사람이 되어 출세하고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는 것이 좋은 운명을 타고난 것이고, 평생을 평범하고 무능하게 살며 무시당하는 것은 나쁜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불신파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리더 일꾼이 문제를 해결하여 형제자매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부러움을 사는 것을 보고, 저는 리더 일꾼이 되어야만 발전 가능성이 있고 평범한 형제자매보다 좋은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지나도 여전히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저는 제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발전 가능성도 없다고 느끼며 본분을 이행할 의욕을 잃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리더 일꾼으로 발탁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는 뜻일까요? 사실, 사람이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어 변화되지 않는다면, 설령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는다 해도 구원받거나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일부 리더 일꾼들이 진리는 추구하지 않고, 다년간의 사역 경험을 밑천 삼아 곳곳에서 사람들을 속박하고 제멋대로 사역하여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다가 결국 드러나 교체된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리더를 맡아 본 적은 없지만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속셈과 관점, 패괴 성품을 성찰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아 본분 이행에서 성과를 거두고 생명도 성장합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중요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지, 좋은 운명이나 나쁜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 점을 깨닫자 저는 마음이 좀 환해졌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명예와 지위에 대한 욕심이 너무 크고, 피조물의 본분을 착실히 이행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늘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이용해 출세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 욕망이 충족된다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져서 더욱 교만하고 자만해져 제가 그 누구보다도 낫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었고 그것은 저에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모든 것이 좋고,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신 환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운명을 어떻게 느끼는지 보자면 좋게 느낄 수도, 나쁘게 느낄 수도 있다. 순조로울 수도, 순조롭지 않을 수도, 평탄하지 못할 수도, 마음대로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좋고 나쁨을 따질 수는 없다. 사람은 어떤 태도로 운명을 대해야 하느냐? 창조주의 안배에 순응하고, 창조주가 이 모든 것을 안배한 목적이 무엇이며 그 의의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열심히 구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안배해 준 일생에서 네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피조물의 본분, 책임, 의무를 다하며, 네 삶을 더욱 유의미하고 값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창조주가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게 해야 한다. 물론 네가 구하고 노력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좋다. 요컨대, 지음 받은 인류가 운명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함부로 평론하고 정의하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게 아니며, 반항하고, 선택하고, 바꾸려 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마음으로 이해하고, 구하고, 모색하고, 순응한 다음 적극적으로 마주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배치한 생활 환경과 인생 여정 속에서 하나님이 네게 가르쳐 준 처신 방식을 구하고, 하나님이 네게 걸으라고 한 길을 구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네게 안배한 운명을 경험한다면 마지막에 너는 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주가 네게 안배한 운명을 경험한다면 네가 맛볼 것은 슬픔, 근심, 눈물, 고통, 좌절, 실패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기쁨, 평안, 위안을 체험하고 창조주가 베풀어 주는 진리상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체험하리라는 점이다. 또한, 인생길에서 네가 막막함을 느낄 때, 네가 좌절과 실패를 마주했을 때, 선택을 마주했을 때, 창조주의 인도를 체험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너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유의미한가에 대한 인식과 경험, 이해를 얻는다. 그때가 되면 너는 살면서 더 이상 막막하지 않을 것이요, 더는 두렵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자기 운명이 안 좋다고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며, 팔자가 나쁘다는 느낌 때문에 다시금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주가 네게 안배한 운명과 마주한다면 인성 방면에서 더 정상적으로 바뀔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 인성, 정상 인성의 사유와 관점, 일을 바라보는 원칙도 생길 것이다. 당연히 이방인이 얻을 수 없는, 인생의 의의에 대한 견해와 인식도 얻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좋다고 느끼든 나쁘다고 느끼든,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하며, 그 환경이 임한 데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구하고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내가 계속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일이 닥치면 진리를 구할 줄 몰랐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여 묵상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문서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저는 그런 결함들을 보완하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제 안의 패괴 성품을 반성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생명 진입에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동시에 그 환경을 통해 제 지위에 대한 욕심이 너무 크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지위에 대한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본분을 내팽개치고 싶어 했던 것을 통해 제가 하나님을 믿으며 추구한 것은 지위이지 진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듭 벽에 부딪히면서 저는 지위를 추구하는 그릇된 길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리더가 되려는 야심을 내려놓고 착실히 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왜 나는 리더로 선출되지 못했을까?’ 하고 반성해 보았습니다. 주된 이유는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책임감이 부족했고, 사역 능력도 부족하여 리더가 될 자질과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좋은 운명을 타고났는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인식하자, 저는 저의 결함과 부족함을 올바르게 대하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에 순종하며, 현재 이행하고 있는 본분에서 원칙에 따라 잘 협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은 저를 양육 집사로 선출해 주었습니다. 몇 주간 훈련을 받았을 때, 문서 사역 인원이 부족해지자 리더는 다시 저를 조정하여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했습니다. 그때 저는 더 이상 원망하거나 의기소침해지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여러 해 동안 저를 훈련시켜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했고, 저 역시 이 방면에 어느 정도 특기가 있으니 리더 집사를 하는 것보다 문서 본분이 제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되었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과거에 문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아쉬움을 남겼으니, 이번에는 마음을 다해 협력해야지.’ 얼마 후 본분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자 제 마음은 무척 평안해졌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저는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신 환경은 모두 좋은 것이며, 제 생명에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만큼 인식하고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이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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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저는 교회에서 양육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리더는 몇몇 형제자매가 제가 예배 전에 새 신자들의 상태와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예배에서 교제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어떤 새 신자가 예배에 나오지 않았을...
필리핀 제시카 2021년 8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세 달 후엔 마죠리와 같이 교회 리더로 뽑혔어요. 마죠리는 저보다 세 달 먼저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죠. 저흰 같은 교회는 아니어도 사역자 회의도 같이 참석하고 교회 사역도...
중국 신징(辛靜)2015년 6월에 저는 한 교회의 복음 집사로 가게 됐습니다. 당시 리제(李杰)가 새 신자 양육을 담당했고, 저희는 본분 때문에 함께 협력할 때가 많았어요. 저희 둘은 나이도 비슷하고 생활 습관이나 성격도 비슷했죠. 특히 둘 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눈치를 키워야지 바보처럼 속을 다 보여 주면 쉽게 피해 보고 사기당할 수 있단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크게 공감되는 바가 없어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