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내려놓다

2025.12.27

중국 쑤리(蘇黎)

어릴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무척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남매를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셨습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깰 때면 늘 호롱불 밑에서 저희를 위해 솜옷을 만들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고, 다음날이면 어머니는 또 산에 올라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온 식구를 돌보시느라 무리한 탓에 어머니는 온몸에 병을 얻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책임감이 별로 없으셔서 오빠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도 어머니 혼자 혼사를 치러 주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를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라고 칭찬했고, 저 역시 어머니를 본보기로 삼으며 어머니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어머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후 저도 어머니처럼 매사에서 남편과 아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그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제가 아무리 고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면 늘 일찍 일어나 난로에 불을 피우고 밥을 지었습니다. 방 안이 따뜻해지면 그때야 남편과 아이를 깨워 밥을 먹게 했습니다. 그렇게 식구들을 편안하게 보살피면 제 마음은 무척 뿌듯했습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저를 좋은 며느리라고 칭찬했고, 저 역시 그게 여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정의 무거운 짐이 제 어깨에 고스란히 지워졌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아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가정을 꾸리고 자립하게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작은 장사를 시작해 두 아이의 학비를 댔습니다.

1999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남편을 잃은 고통 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2003년, 악인의 밀고로 파출소 경찰들이 저를 잡으러 집에 들이닥쳤지만, 마침 제가 집에 없어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공의 체포를 피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남편도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나까지 떠나면 두 아이는 어떡하지? 아들은 벌써 열여덟 살이라 곧 결혼할 나이인데, 내가 없으면 누가 아들이 가정을 꾸리고 자립하는 걸 도와주겠어? 하지만 떠나지 않으면 언제 잡힐지 모르고, 그럼 아이들을 돌볼 수도 없잖아.’ 딸도 말했습니다. “엄마, 잡히는 것보단 차라리 우리 곁을 떠나는 게 나아요.” 철든 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아팠지만, 저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집을 떠났습니다. 집을 떠나왔지만 제 마음은 늘 두 아이에게 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잘 지낼까? 돈은 부족하지 않을까? 일자리는 구할 수 있으려나? 나중에 아들이 결혼하면 누가 혼사를 치러 주지? 아이들이 자기들을 내팽개쳤다며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고,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무척 미안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지만, 돌아갔다가 잡힐까 두려워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때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정 나를 위해 완전히 헌신하고 바칠 수 있는 자 누구냐? 모두가 이리저리 망설이고, 이모저모 따져보며, 가정과 바깥 환경, 먹고 입는 것 등을 생각한다. 너는 지금 나를 위해 내 앞에서 일을 한다고 하나, 네 마음은 여전히 집에 있는 처자식과 부모를 생각한다. 설마 그러한 것들이 다 너의 유업이란 말이냐? 어째서 그러한 것들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는 것이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내가 네게 마련해 준 것이 적절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59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아이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내가 돌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계시며, 두 아이가 잘 지내는지 아닌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집을 떠나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들은 어느덧 20대 초반의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결혼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도 없는데, 제가 곁에서 돌봐 주지도 못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7년, 저는 지역 리더로 본분을 이행하다 책임감이 없다는 이유로 교체되었고, 마침 두 아이가 제 남동생과 여동생이 사는 도시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은 저를 보자 아주 냉담한 태도를 보이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나님만 믿느라 자신들을 내팽개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아들의 원망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마음속으로 자책했습니다. 남동생과 여동생도 저를 보러 왔습니다. 남동생은 저를 나무랐습니다. “누나가 떠나고 몇 년 동안 애들도 참 힘들었어. 이번엔 가지 마. 애들도 다 컸으니 얼른 아들 장가보낼 생각이나 해. 그게 바로 누나가 할 일이야.” 여동생도 말했습니다. “언니가 없는 동안 우리가 언니 아들을 챙기고, 일자리도 알아봐 줬어.” 그들의 말을 들으니 더욱 자책감이 들고 괴로웠습니다. 저는 좋은 엄마가 아니고, 엄마로서의 책임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열일곱, 열여덟 살부터 돈을 벌어 스스로 생계를 유지했고, 딸은 몸집도 왜소한데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집에 있었다면 아이들이 그렇게 일찍부터 나가서 일하지는 않았을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 주고, 빨래도 해 주는 등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해줬습니다. 아들의 결혼 자금을 벌기 위해 저는 집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구했습니다. 건당 보수를 받는 일이어서 밤에 일하고 아침에 납품하면 낮에는 새신자를 양육할 수 있었고, 예배나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2008년,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무척 갈등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리더가 되면 너무 바빠서 돈 벌 시간이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돈도 집도 없는데 누가 우리 아들에게 시집오려 하겠어? 아이 아빠는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엄마인 내가 더 책임을 다해야 해. 만약 아들의 결혼 자금을 벌어 주지 못해 아들이 결혼하지 못하면, 남들이 나를 보고 무책임한 엄마라고 하지 않겠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리더 본분을 거절하고 계속해서 새신자를 양육했습니다.

어느덧 2010년이 되어 아들이 스물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아들과 동갑인 사람들은 모두 결혼했는데, 아들의 혼사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라 저는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돈도 벌었지만, 아들의 결혼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돈을 더 모으기 위해 더 많은 일을 맡았습니다.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는 새신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저는 낮에는 본분을 이행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신자들을 양육하는 데 쓸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졌습니다. 어떻게 교제해야 새신자들이 참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거의 고민하지 않았고, 새신자들에게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어도 해결해 줄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녁 5시부터 일을 시작해 어떨 때는 밤 12시, 심지어 새벽 1시까지 일했고, 아침 4시에는 또 납품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다음날 본분을 이행할 때는 머리가 멍했습니다. 얼마 후, 제가 양육하던 새신자 중 일부는 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분 이행에 줄곧 책임감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교체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전에 리더 본분을 거절했던 데다 이제는 새신자 양육 본분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서 기도할 면목조차 없었습니다. 이제 본분이 없으니 온전히 일만 하며 아들의 결혼 자금을 모을 수는 있었지만, 마음이 캄캄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일하면서 찬양을 들었는데, 한 하나님 말씀 찬양의 가사가 이랬습니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시간은 한 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 명심해라!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대체 나더러 어떻게 말하란 것이냐? 내 말이 너희가 자세히 되새기고, 반복해서 곱씹어 볼 가치가 없단 것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30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타는 마음으로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도 저는 어째서 그렇게 강퍅하게 굴며 돌아설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저는 이 내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늘 스스로에게 반문했습니다. ‘내가 아들의 결혼 자금을 벌기 위해 진리 추구를 포기해야 하는가?’ 그러다 또 다른 하나님 말씀 찬양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일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지나가 버리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 “살아 있을 때 진리를 위해 고난을 치르지 않고 진리를 얻으려고 추구하지도 않는 것은 설마 죽을 때 여한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란 말이냐?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저는 이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찾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얻지 못할 진리도, 서지 못할 정의도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는 모두 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너에게 이런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개 없는 나약한 자가 되지 마라. 너는 의미 있는 인생과 의미 있는 진리를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그렇게 건성으로 대해선 안 된다. 일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지나가 버리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너는 베드로와 같은 의지와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우롱하지 마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네 일생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대해야 한다. 즉,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더 의미 있게 믿을 수 있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어떻게 해야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마라. 너는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속되게 살며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면 여전히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 하나를 위해 너는 모든 육적 향락을 포기해야 하며, 약간의 향락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도 없고 존엄도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이 길에서 숱한 사람이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지만, 죽을 때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평생 헛되게 살았다고, 부질없이 세월을 보냈다고 스스로를 증오한다. 그저 도리만 알았을 뿐, 진리를 실행하거나 하나님을 증거할 줄 몰랐으며, 겉으로만 동분서주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에게 진실한 간증이 없고 하나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이는 너무 늦은 것 아니겠느냐? 왜 오늘을 기회로 자신이 좋아하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냐? 왜 꼭 내일까지 기다리려는 것이냐? 살아 있을 때 진리를 위해 고난을 치르지 않고 진리를 얻으려고 추구하지도 않는 것은 설마 죽을 때 여한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란 말이냐?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이번 단계 사역은 사람을 구원하는 마지막 사역입니다. 저는 그 기회를 잡았으면서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는 날에 다시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것이고, 결국 도태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여 진리를 얻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일이자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리더 본분을 거절했고, 리더 본분을 이행하다가 아들의 결혼 자금을 버는 데 지장이 생길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 사역을 갓 받아들인 새신자들에게는 교제하여 해결해 줘야 할 관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직 아들에게 진 빚을 갚을 생각만 하며 새신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려 하지 않았고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새신자들은 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구원받을 기회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께 보답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본분을 거절한 데다가 건성으로 임하고 무책임하게 굴기만 했으니, 그런 제가 어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 저는 유일하게 남았던 본분마저 잃었으니,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저처럼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자녀를 만족시키려 하고, 본분에 충성하지 않으며 양다리를 걸치면 마지막에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당장 추구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식에 대한 정을 내려놓고 진리를 추구해야 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저는 양육 집사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속으로 여전히 갈등했습니다. 양육 집사는 책임이 막중해서 아들의 결혼 자금을 벌 시간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몇 년간 아들의 결혼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면서 본분에 책임감을 갖지 않아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고 제 생명에도 손실을 입혔음에도 교회에서 제게 그렇게 중요한 본분을 맡겨 준 걸 생각하니 더는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받아들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아들이 돈이 없어 결혼하지 못할까 봐 계속 걱정했습니다. 그러다 2014년에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성숙해지면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에 뛰어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사람은 이 시점에 자신의 역할을 진정으로 수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확실했던 현생에서의 사명도 이 시점에서 점차 분명하게 드러난다. 형식적으론 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지만, 현생에서 수행할 역할과 사명은 부모와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독립 후엔 부모와의 친밀했던 관계가 차츰 벌어지게 된다. 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사람이 일단 성장기를 벗어나면 그의 모든 것이 부모와 상관이 없어지고,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독립적으로 해내야 한다. 부모가 한 사람의 일생에서 맡는 책임은 출산과 부양 외에, 형식상으로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데 그칠 뿐이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오직 창조주의 예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지는 누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부모조차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다. 운명에 관한 한 모든 사람은 독립적이고 각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누구의 부모도 한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막을 수 없고, 그가 현생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데 조금도 힘을 보태 줄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할지, 이는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 그것이 운명을 조금도 결정할 수 없고, 어떤 운명 속에서 사명을 완수하게 될지도 전혀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한 사람이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없고, 가족들 역시 그가 현생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완수하게 될지, 어떤 생존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는 완전히 현생의 운명에 달려 있다. 즉, 창조주가 정한 모든 사람의 사명은 그 어떤 객관적인 조건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 특정 성장 환경에서 성숙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인생길에 들어서며,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을 조금씩 실현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끝없는 인해 속으로 들어가 인생의 자리에 서서 창조주의 예정과 주재에 따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제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저는 제 책임은 단지 아이를 낳아 성장 환경을 마련해 주고 양육하는 것이며, 자녀가 자라 성인이 되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책임 관계는 사실상 끝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피조물이므로 제 소임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니, 더는 자녀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 몇 년간 저는 아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고, 아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야만 아들에게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리더 본분을 거절했고, 새신자를 양육하는 데도 책임감이 없어 제 생명 진입과 교회 사역 모두에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제가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돈을 벌어 차와 집을 사 준다고 해서 결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라 제가 바꿀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 이웃을 떠올렸습니다. 부부가 모두 장애인이었고 집도 차도 없었지만, 그들의 아들은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습니다. 또 다른 친척은 집에 수백만 위안의 예금이 있고 차와 집도 다 있었지만, 자식은 서른이 넘도록 아직 결혼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례를 통해 결혼은 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고 아들의 혼사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7년, 아들은 결혼해서 처가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예물도 원하지 않았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3만 위안을 주었을 뿐이고, 결혼식도 정식으로 올리지 않고 친척, 친구들과 모여 식사 한 끼로 간단하게 끝냈습니다. 기뻐해야 마땅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일종의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위해 성대한 결혼식을 치러 주지 못하고 몇 푼 안 되는 돈만 준 것이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019년, 며느리가 임신해서 저에게 돌봐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여러 교회의 문서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기에, 며느리를 돌보러 가면 본분에 지장이 생길 터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아들을 위해 해 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아들은 밖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었으니, 임신한 며느리를 돌보는 것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아들의 짐을 덜어 주지 못하면 너무 미안할 거야. 친척들도 나보고 무책임한 엄마라고 수군대지 않겠어?’ 저는 마음이 계속 진정되지 않았고, 본분에도 마음을 쏟지 못해 결국 본분 이행의 성과도 조금 떨어졌습니다. 책임자가 그 사실을 알고 제 내적 상태에 맞춰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이 현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다.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사람의 사상 관점에는 전통문화의 요소가 적지 않다. 특히 전통문화는 여자에게 남편을 돕고 자식을 가르치며 현모양처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아가며, 가족들 세끼 식사 준비와 뒷정리를 비롯한 모든 집안일을 훌륭히 해내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현모양처의 기준이다. 여성들도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심에 어긋나고 도덕 기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도덕 기준에서 벗어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남편과 자식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좋은 여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서 진리를 이해하고 일을 간파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피조물이니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이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과 현모양처가 되는 일이 부딪히지 않느냐? 현모양처가 되려면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려면 현모양처가 될 수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책임 있게 교회 사역을 대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을 택한다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이럴 때 너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네 사상에는 어떤 파동이 일겠느냐? 네 자식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겠느냐? 너의 그런 미안함과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에게 죄책감이 드느냐? 죄책감도 없고 자책감도 없다면 그것은 네 마음과 네 사상 속에 진리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네가 이해한 바는 무엇이냐? 전통문화이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네 사상 속에는 현모양처가 못 되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바른 여자가 아니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너는 이 관념에 얽매이고 사로잡혀 하나님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여전히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분 이행과 현모양처 되는 일이 부딪혔을 때, 너는 비록 마지못해 본분을 택하거나 하나님께 충성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틈이 생기면 자식과 남편에게 더 많이 보상해 주려는 마음에 여전히 그들을 챙길 기회를 찾는다. 설령 본인이 더 고생스럽더라도 마음만 편하면 된다. 이것은 전통문화 중에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 이론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일이 아니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을 노하게 할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저의 내적 상태였습니다. 중국의 전통문화인 ‘현모양처’는 바로 사탄이 여성에게 씌운 족쇄였습니다. 그것은 좋은 여자는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아야 하고, 매사에서 그들을 생각해야 하며, 그들을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이 아무리 고생하고 힘들어도 당연하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아니며,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어릴 적부터 저희 온 식구를 편안하게 해 주시려고 밤낮으로 일하시고, 오빠의 혼사를 준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를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라고 칭찬했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결혼 후 저도 남편과 자녀를 극진히 보살폈고, 남편은 제게 현명한 아내라고, 아이들은 저를 사랑 많은 좋은 엄마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저는 아버지의 책임까지 짊어지고 열심히 돈을 벌어 아이들의 학비를 댔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중공의 핍박으로 저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게 되었지만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마음은 늘 아이들에게 가 있었고,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특히 아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못하자 더욱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교회 리더로 선출된 후에는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들의 결혼 자금을 버는 데 지장이 생길까 두려워 본분을 거절했습니다. 새신자를 양육하면서도 마음은 본분에 있지 않고 오직 아들을 위해 돈 벌 생각만 하여, 결국 새신자들이 제때 양육받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며느리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비록 몸은 가지 않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미안해하는 상태로 살며 본분 이행에 마음을 쓰지 않았고, 결국 본분 이행의 성과도 떨어졌습니다. ‘현모양처’라는 전통 사상에 얽매여, 본분과 현모양처의 역할이 충돌할 때마다 저는 늘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만 했고, 교회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되어 수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으면서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일을 했으니, 정말이지 인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런 전통문화는 사탄이 사람을 옭아매는 도구이며, 저를 단지 좋은 어머니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 살게 하여, 결국에는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지 못해 도태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사탄의 흉악한 속셈에 대해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전통문화에 속박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했던 하나님 말씀은 무슨 뜻이냐?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혼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오고,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부모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대자연에서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단지 우리 육만 부모를 빌려서 나왔고, 우리 자식은 우리를 빌려서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에게 달렸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자 하나님이 정한 운명,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에게도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할 필요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에게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사람의 일생에서 반드시 완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너는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아니다. 사람이 볼 때 너는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주부, 효녀, 사회의 선량한 시민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 자신의 의무와 본분을 전혀 다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부탁을 받고도 완성하지 못한 사람, 도중에 포기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이런 사람은 눈곱만큼의 가치도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그 말씀을 보고 나니 제 마음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저는 피조물로서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제 책임임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현모양처가 된다고 해도 그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는 줄곧 전통문화에 따라 살면서 현모양처가 되는 것과 본분을 이행하는 것 사이에서 늘 갈등했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고 괴로웠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저는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며, 제가 가장 빚진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오직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만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며느리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우선은 본분을 잘 이행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 후, 저는 며느리가 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도 제가 돌보러 가지 않은 것 때문에 저를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성인이 된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에 이르려면 여생의 정력과 세월을 네가 이행하는 본분과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에 쏟아부어야지, 자녀를 위해 시간과 세월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네 생명은 자녀에게 속하지 않으니, 자녀의 삶이나 생존을 위해서, 자녀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소모해서는 안 된다. 네 생명은 하나님이 맡긴 본분과 부탁, 그리고 너라는 피조물이 완수해야 할 사명에 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네 생명이 지닌 가치이자 의미이다. 만약 네가 자녀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꺼이 존엄을 내팽개치고 자녀의 노예가 되어 자녀를 걱정하고 무슨 일이든 해 준다면 이는 의미도, 가치도 없는 행동이며, 하나님께 기억될 수도 없다. 한결같이 이렇게 하면서 이런 생각과 행동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기준에 맞는 피조물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너라는 사람은 더없이 패역하고, 하나님이 준 생명과 세월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만약 네 생명과 세월을 하나님이 준 본분에 쏟지 않고 오직 네 육과 감정을 위해 쏟는다면 너라는 사람은 살아갈 필요가 없으며, 그 삶은 가치가 없으니 너는 살아갈 자격도, 하나님이 준 생명을 누릴 자격도, 하나님이 베풀어 준 모든 것을 누릴 자격도 없다. 하나님이 네게 자녀를 준 것은 자녀를 키우는 과정을 즐기며, 그 가운데서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는 인생 경험과 체험을 얻으라는 것이고, 인류를 위해 후대를 번성시키는 특수하고 평범치 않은 경험을 느끼라는 것이다. 물론, 부모의 신분으로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네게 정해 놓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이자 부모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이다. 하나님이 네게 자녀를 준 것은 자녀를 키우는 특별한 과정을 체험하는 한편, 후손을 번성시키는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의무를 다하여 자녀가 성인이 되었다면 그들이 출세하든, 단지 평범한 일반인이 되든 너와는 무관하다.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지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네가 선택하는 것도, 나아가 네가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라면 너는 자녀의 삶과 생존에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자녀가 어떤 생활 습관과 생활 규칙, 생활 태도를 갖고 있든, 어떤 생존 방식과 인생관, 세상에 대한 태도를 지니고 있든, 어떤 길을 추구하든 너와 관계가 없다. 너는 그런 일을 부담하기 위해 고통받을 의무가 없으며, 그들이 매일 행복하게 살도록 보장해 줄 방법도 없다. 그런 노력은 다 불필요하다. … 그러므로 자녀가 성인이 된 다음, 부모의 가장 이성적인 태도는 손을 놓아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체험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인생의 각종 문제를 혼자 직면하고 처리하고 해결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자녀가 도움을 청할 때 네가 능력과 조건이 된다면 당연히 손을 뻗어 필요한 도움을 주어도 된다. 하지만 너는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네가 자녀에게 어떤 도움을 주든, 금전적인 도움이든 정신적인 도움이든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어떤 실질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녀의 인생길은 그들 스스로 걸어가야 한다. 너는 자녀 대신 어떤 일도, 어떤 결과도 책임질 의무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부모가 성인 자녀에게 가져야 할 태도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로서 오직 본분을 잘 이행하며 사는 것만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평생 단지 자녀를 만족시키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저는 자녀가 어릴 때 정성껏 돌보았고, 이제 그들이 장성했으니 부모로서의 제 책임은 완수된 것이었으며, 저는 마땅히 손을 놓아주어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경험하게 해야 했습니다. 자녀가 어떤 삶을 살든, 어떻게 살아가든 그것은 더 이상 제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건이 되면 도와주면 되고, 여건이 안 되어도 미안해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라 부모가 자녀의 운명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제 모든 에너지를 본분을 이행하는 데 쏟아야 합니다. 진리 원칙을 더 많이 갖추어 저의 부족함을 채우고, 진리를 추구하여 저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며,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번 일을 겪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일을 바라보지 않고, 사탄에게서 온 전통문화와 사상, 처세 철학, 사탄 독소를 진리로 해결하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해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만 사탄의 결박과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병고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다

중국 이신(一心)2003년,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위병, 저혈압, 저혈당 등 제가 앓고 있던 병이 어느새 다 나았습니다. 저는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살피고 지켜...

아들이 병을 앓은 후

중국 양러(楊樂)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이 너무나 부족하고,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많고 너무 지나치기까지 하는데, 이성이라고는 전혀 없다. 사람은 늘 하나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에게 완전히...

단지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옳은가

중국 장위(張玉)2008년 7월, 이모가 제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저는 사람의 생명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며, 제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경배해야...

고난이 닥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다

중국 저우후이(周會)제가 열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두 눈을 실명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혼 후 시댁 형편은 좋지 않았고, 남편은 저 몰래...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