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제 팔자가 나쁘다고 원망하지 않아요
중국 천샤오(陳曉)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가난한 편이라 기초 생활도 보장이 안 됐습니다. 엄마가 이웃집에서 식량을 꿔서 생활을 유지하는 일이 잦았고, 저는 천을 덧대어 기운 옷이나 바지를 입곤 했죠. 가난한 집 자식이라고 늘 남들에게 괴롭힘과 차별을...
저는 62세에 주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는다는 약속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저의 인생에도 희망이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복이 저에게 왔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뻤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며 헌신하기 시작했고, 매일 마음속에 무한한 힘이 솟아났습니다. 3년 후, 저는 다행히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다시 오신 주님을 영접했음에 무척 감격했습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희망이 더 커지자, 저는 더욱 노력하며 추구했고, 다른 것은 돌보지 않고 헌신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본분을 이행했고, 저녁에도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은 저를 교회 리더와 설교원으로 뽑아주었습니다.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도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얻다니, 저는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특히 예배에 참석할 때면, 형제자매들 중 나이가 많은 제가 예배를 진행하고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영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열심히 추구한다면, 분명 젊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저는 본분 이행에 더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7, 8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저의 몸과 체력도 예전만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흔셋이 되던 해에는 뇌경색을 한 번 앓았습니다. 당시 이틀 정도 링거 주사를 맞고 나자 증상은 거의 사라졌고, 후유증도 남지 않았습니다. 분명 제가 기꺼이 헌신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지켜주신 거라고 생각해 저는 감사의 마음을 품고 다시 계속해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몸 상태를 고려한 리더는 저보고 집에서 형제자매들을 접대하라고 했습니다. 보아하니 저는 이제 예전에 했던 몇몇 본분은 이행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저 집에서 형제자매들을 접대하는 일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젊은 형제자매들이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여러 본분을 바쁘게 이행하는 것을 볼 때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난 이제 늙었고, 몸도 안 좋아. 뛰어다니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주니 이행할 수 없는 본분이 많아. 완전히 폐인이 다 되었구나.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가 저들과 함께 여러 방면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복과 구원을 받을 기회도 많을 텐데! 하지만 나는 이제 너무 늙었어. 젊은 사람들과 비교가 안 돼.’ 이런 생각을 하니 의욕이 없어지고, 저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또 제가 뇌경색이라는 다발성 질병에 걸렸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만약 어느 날 발병해 그대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영광 얻으시는 날을 보지 못할 텐데, 그러면 제가 어디 가서 구원을 받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 울적하고 침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기간에는 하나님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찬양도 듣기 싫었습니다. 고통 가운데,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구원받을 희망이 없어진 것 같아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제 내적 상태가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옳지 않은 내적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저를 이끌고 도와주세요.”
소극적인 생각들에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접대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접대는 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보고 나니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나 자격이 있고 얼마나 사역했는지에 따라 사람의 결말을 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지,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지,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는지, 본분 이행에 합격했는지, 참된 증거가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던 저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뛰어다니며 헌신할 수 있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수많은 사역을 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고 줄곧 생각했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젊은 사람들처럼 사역에 헌신할 수 없게 되자, 저는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고 스스로 규정지어 버린 채, 줄곧 소극적인 상태로 오해 속에 살았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비록 저는 나이가 많아 젊은 사람들처럼 다양한 본분을 이행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젊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아 저에게 요구하신 적이 없었고, 저에게서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앗아 가시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두뇌와 이성은 아직 정상이어서,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제 힘이 닿는 한에서는 본분을 이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은 구하지 않고, 스스로를 늙어서 쓸모없다며, 하나님도 이런 저를 좋아하시지 않을 거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본분을 많이 이행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늙은 사람은 도태시키고 구원하지 않겠노라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본분을 대해야 하는지 명확하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충성심을 가지고 끝까지 순종하며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할 수 있다면, 구원받을 기회는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일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진리로 여기고 줄곧 하나님의 뜻을 오해해 왔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너무나 가책이 느껴진 저는 바로 하나님 앞으로 나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잘못된 관점으로 인해 소극적이고 반항적이 되기 싫습니다. 하루라도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겠습니다.” 기도와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저의 마음은 위안을 얻었고, 더는 그렇게 괴롭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이성이 정상이고,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 하나님께 의지하며 형제자매들을 잘 접대하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진심을 바치며 힘쓰자.”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왜 저는 제가 젊은 사람보다 못한 것을 보면 소극적이 되고, 심지어 하나님을 저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일까요?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구하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오로지 이익과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약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이다. 복을 받고 상을 얻으려는 그의 속셈과 욕망이 너무 커서 단단히 붙잡고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한결같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 즉 좋은 종착지를 얻기 위한 거야. 이는 지고지상의 원칙으로서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만약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선 안 되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믿는 의미나 가치는 사라져 없어지는 거야.’ 적그리스도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누군가가 주입했기 때문이냐? 누가 가르치고 영향을 주기라도 했느냐? 전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성 본질에 의해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데 그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고 정죄한다.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그의 본성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그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성품이 사악하여 대놓고 하나님에게 고함치며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며 그의 실체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본분 이행을 거래로 여긴다. 그는 거래하고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본분을 이행하고 복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본분 이행이라는 긍정적인 것을 왜곡하고, 피조물의 본분 이행의 가치와 의미를 훼손하며, 피조물의 본분 이행의 정당성을 비방한다. 또 그는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본분을 거래로 변질시킨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 적그리스도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거래를 하려는 그들의 속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들은 복 받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복 받을 희망이 없어지는 것은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목숨을 잃는 것과 같아,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반항하고 하나님께 맞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대조해 보니, 저의 모습은 적그리스도의 그것과 정말 똑같았습니다. 주님을 믿을 당시, 저는 주님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무척 기뻐했습니다. 이번 생에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내세에는 영원한 복도 있을 거라고 하니, 주님을 위해 어떤 고생을 해도 가치가 있었습니다. 저는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았고, 많은 것을 버리고 헌신할수록 미래의 복도 커진다고 여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에는 더욱 복을 받을 꿈이 곧 실현될 것 같아 본분을 이행할 때 더욱 힘이 났습니다. 비록 그때 이미 예순여섯의 나이였지만,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매일 헌신하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여러 곳에서 예배를 드렸고, 이후에 뇌경색을 앓았어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고, 힘을 들여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가며, 복을 받기 위한 자본을 쌓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이 줄어들고, 저 역시 나이가 들어 뛰어다니며 헌신하려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서 점차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복을 받을 희망이 아득하게 느껴졌고, 그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비록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고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소극적이 되어 하나님께 맞서며 억지를 부렸습니다. 저는 복을 받고자 하는 목적과 속셈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으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을 때 가지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 아닙니까? 저는 본분 이행처럼 아름답고 긍정적인 것을 왜곡시켰습니다. 그저 뛰어다니고 헌신하며 본분을 이행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해 천국의 복과 바꿀 줄만 알았습니다. 본분을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이자 카드로 바꾸었습니다. 복을 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입니다. 그저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제가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저의 결말과 종착지는 어떠한지에만 관심이 있었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어디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저에게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셨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도 주셨습니다. 저는 이미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하나님을 원망했고, 하나님께 이치를 따졌으며, 소극적이 되어 맞섰습니다. 이렇게 패역한 저의 목숨을 하나님이 거둬가더라도 이 역시 하나님의 공의로움입니다. 여기까지 깨달은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복을 받고자 하는 속셈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규정하심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고 헌신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고 고생을 했는지가 아닌, 우리가 진리를 얻었는지,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를 보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을 많이 이행했다고 해서 진리와 성품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분을 얼마나 이행했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었느냐 여부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본분을 적잖이 이행했고, 적잖이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늘 뛰어다니고 헌신하는 겉모습을 가지고 좋은 종착지와 바꿀 생각뿐이었습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관점이 숨겨져 있는데도 알지 못하였고, 결국 복을 받겠다는 욕망이 깨지자 하나님께 따지며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뛰어다니며 헌신하는 것만 알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성품의 변화는 없을 것이고, 오직 갈수록 이기적이고 교만해질 뿐이라는 것을 사실이 증명해 줍니다. 결국에는 사역과 헌신을 자본으로 삼아 하나님에게 도리를 따지며 대결할 것이고 점점 더 사악해질 것입니다. 바울처럼 말입니다. 그는 사역을 많이 하고, 큰 사역도 하였지만, 그의 사역과 헌신은 공의로운 면류관과 바꾸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줄곧 하나님과 거래를 하였고, 죽기 직전까지 회개하고 변화하지 않아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으며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고, 매사 하나님의 뜻을 구해 하나님께 순종하며 조건을 따지지 않았고, 자신이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순종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하나님을 믿었지만, 추구하는 속셈과 관점이 달라 결말도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공의로우심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부합합니다. 제가 추구했던 관점과 제가 걸었던 길이 바울만큼 황당하고 터무니없고 잘못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저의 결말도 분명 바울과 같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 덕분에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져야 하는 관점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이성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자 저의 내적 상태는 한결 좋아졌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이 예배를 하러 오면 저는 성심껏 접대했고, 형제자매들이 오지 않을 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보며, 저의 내적 상태에 관한 진리를 구했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는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수십 년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이 세상에 몇 번이나 왔는지, 네가 몇 번이나 환생했는지 모른다. 이 일은 누가 주관하느냐? 바로 하나님이 주관하며, 너는 이 일들을 알 도리가 없다. 네가 세상에 한 번 올 때마다, 하나님이 친히 안배를 한다. 네가 이번 생에 몇 년이나 살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언제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이룰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으로 먹고살지, 하나님은 네가 이번 생에 순조롭게 너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네 삶의 출로를 안배한다. 네가 다음번에 환생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하나님은 네가 가져야 할 것과 너에게 주어야 할 것에 맞춰 너의 삶을 안배하고 실현한다…. 이렇게 몇 번을 안배하다가, 마지막에 너는 말세의 이 시대에 태어나는데, 현재 너의 가정에서 태어난다. 하나님은 너에게 하나님을 믿는 환경을 안배하여 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며, 네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도가 있었기에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네가 몇 번이나 인간 세상을 왔었는지, 너의 모습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몇 개의 가정을 거쳐 갔는지, 얼마나 많은 시대와 왕조를 겪었는지, 너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은 줄곧 너를 받치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줄곧 너를 보살펴 주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냐! “내가 60세인데, 하나님은 60년 동안 나를 보살피고 지켜 주시며 60년 동안 인도해 주셨습니다. 만약 내가 늙어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면, 하나님이 그래도 여전히 보살펴 주실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바보 같은 말 아니냐?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사람을 보살피고 지키는 것은 한 번의 생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단지 한 번의 생애와 한평생에 국한된 일이라면, 하나님이 전능하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울인 공과 치른 대가는 단지 사람이 이번 생애에 무엇을 하는지를 안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인지 알 수조차 없는 생애를 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환생한 모든 영혼을 끝까지 책임진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 일하고, 그의 생명을 대가로 일하며 모든 사람을 인도하고, 모든 사람의 일생을 안배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들이는 이런 정성과 하나님이 치르는 이런 대가,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이 모든 진리와 생명에도 불구하고, 만약 마지막 이 시간에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창조주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여러 번 환생했고 여러 시대를 살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는 것 아니냐? 하나님이 치른 모든 대가에 죄송한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그러면 사람은 너무 양심이 없으니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 하나님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다. …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사랑, 긍휼은 태도일 뿐만 아니라 사실이기도 하다. 무슨 사실이냐? 바로 하나님이 네 내면에 하나님 말씀을 더하여 네가 내면에서 깨우침 받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보게 하고, 네 마음을 밝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얻게 된다. 하나님은 너에게 실제적으로 매우 많은 사역을 하여 네가 진리를 얻게 한다. 네가 진리를 얻고 가장 귀중한 것, 즉 영원한 생명을 얻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할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기뻐하고 만족해한다. 또한 하나님의 태도가 생기고, 하나님은 태도가 생기는 동시에 일을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정하고 축복한다. 하나님이 “나는 너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 이는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축복이다.”라고 하면, 너는 진리와 생명을 얻게 된다. 네가 창조주를 알게 되고 창조주의 상을 받는데 네 마음이 여전히 공허하겠느냐? 공허함이 사라진다. 너는 충실함과 즐거움만 느낀다. 이는 가치 있는 삶 아니냐? 이것이 바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저는 감동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몸이 어떻든 간에, 저에게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여, 제가 늙어서 쓸모가 없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점점 줄어드니, 언젠가 큰 병에 걸려 죽게 되면 구원받을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더 성장하려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잘못된 관점의 영향을 받아 저는 줄곧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채, 소극적이고 연약한 내적 상태에 빠져 사탄에게 우롱당했습니다. 과거의 저는 피조물로서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려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런 이성도 없이 그저 복과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과 거래를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추구하면 100년을 더 살아도 아무 의미와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재앙이 닥쳤을 때 자신의 득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욥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온몸이 욕창으로 뒤덮인 채 죽는 것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을 때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하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베드로 역시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현실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중시했고, 마침내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며 죽을 때까지 순종하고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냈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것을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되어야, 삶이 공허하지 않고, 의미가 생기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계속해서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사역과 헌신을 가지고 천국의 복과 바꾸려 든다면, 그것은 너무나 비열한 짓이고, 그런 삶에는 조금의 가치와 의미도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앞으로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저는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의지해 힘이 닿는 한 저의 본분을 잘 이행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성품 변화를 추구하겠습니다. 어느 날 중병에 걸려 죽음에 직면해 다시는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없을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중시해야 할 일은 제 평생 이행해야 할 본분과 책임을 최대한 완수하는 것입니다. 저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죽을지 살지는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시는 일이지, 저 같은 피조물이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찬양을 들었고, 저의 패괴 표출을 발견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며 저의 사탄 성품을 인식하였습니다. 또, 형제자매에게 저의 패괴를 솔직히 털어놓으며 구하고 교제했습니다. 그러자 점차 어느 정도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평소, 제가 이행할 필요가 있는 본분이 있으면 저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할 수 있는 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체험 간증문을 써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을 보고 저도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제 체험을 글로 옮기는 일을 훈련하였습니다. 이렇게 실행한 이후로 저의 마음은 무척 충만하고 평안해졌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 말씀 찬양 ‘피조물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맡겨야 한다’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두 번째 단락에 언급된 베드로의 체험이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지만 너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네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한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는 미리 자신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고, 하나님이 기쁘고 즐거울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사람에게 불평할 자격이 어디 있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 해석ㆍ제41편> 중에서) 저는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부족했고, 한마디 한마디 들을 때마다 격려와 감동을 받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사탄에게 패괴된 피조물이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기회가 있다니,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기회가 있다니, 너무나도 큰 복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저의 패괴를 인식하고, 저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복을 받고자 하는 속셈을 바로잡았습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것으로,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더라도, 저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의 삶은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이성이 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피조물이 되기를 추구하겠습니다. 몸이 어떻든 간에, 마지막 결말이 어떻든 간에, 하나님의 다스림에 맡기겠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중국 천샤오(陳曉)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가난한 편이라 기초 생활도 보장이 안 됐습니다. 엄마가 이웃집에서 식량을 꿔서 생활을 유지하는 일이 잦았고, 저는 천을 덧대어 기운 옷이나 바지를 입곤 했죠. 가난한 집 자식이라고 늘 남들에게 괴롭힘과 차별을...
허베이성 스한 저는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철이 들었던 저는 친구들과 다투는 법도 없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어른들이 보기에 아주 착한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저처럼 착한 딸을 두다니 복도 많다며 저희 부모님을...
허난성 쩐시 10년 전, 저는 교회 리더를 맡았었습니다. 그때 전 교만한 본성으로 인해 제 생각대로 사역하며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때문에 본분을 이행하던 중 사역 배정을 엄중히 위반하며 교회 사역을 방해했고,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게 되었습니다....
중국 원징(文靜)몇 년 전, 저는 외지에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리더인 장신(張欣)에게서 샤오류(小劉)가 양육 집사를 맡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샤오류는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