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바라는 마음이 사라지기까지

2025.2.24

저는 2003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어요. 그토록 바라던 예수님이 돌아오셨다니까 정말 가슴이 너무 벅찼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갈망하는 사람들한테 이 기쁜 소식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어요. 교계가 아무리 반대하고 욕하고 때리고, 큰 붉은 용이 핍박하고 잡아가도 복음 전파는 계속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몇 년간 계속 있었던 유방 종양이 수술도 안 했는데, 기적처럼 사라졌고, 가족이 사업하는데, 수입도 두 배로 늘었어요. 그 뒤로 저는 더 신나서 본분을 이행했어요. 어디든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아무리 멀고 조건이 열악해도 기꺼이 나섰어요. 그러다 2012년에 교회 리더를 맡게 됐는데, 본분 때문에 바삐 보내다 보니까 집에도 못 갔어요. 어느 날, 예배 모임에 가는 길에 아들을 만났는데, 글쎄 손녀가 악성 뇌종양이라는 거예요. 몇십만 위안을 썼는데도 가망이 없다고, 의사가 길어야 두 달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전 너무 놀라 멍해졌어요. ‘세상에, 그 어린애가 어떻게 그런 병에 걸리지?’ 싶었어요. 집에 가 보니까 어린 손녀 머리는 온통 붕대로 감싸져 있고 한쪽 눈은 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TV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죠. 가슴이 찡한 게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한 세 살밖에 안 된 아이인데, 저 어린 생명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은 게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어요. 남편한테 더 좋은 병원에 가보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소용없어. 이제 늦었어. 치료가 안 돼. 기껏해야 두 달이라네.”라고 말했어요. 남편의 말을 듣고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손녀가 어떻게 저런 병에 걸리지? 난 지금까지 계속 본분을 이행했고 많은 고난을 받았는데, 하나님은 왜 내 손녀를 지켜 주지 않으셨을까? 왜 내게 이렇게 큰 시련을 주시는 걸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웠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 마음도 식어 버렸어요. 물론 그게 옳지 않은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그런 자신을 저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보호로 아이의 병이 낫길 바랐어요. 성경에 죽은 여자아이가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주시니 살아났던 사례가 생각나서 손녀를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기도했죠. 그리고 빨리 나가서 본분을 이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 헌신을 보시고 아이가 낫게 해 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남편이랑 아들한테 애를 위해 기도 많이 하라고 당부했죠.

그때는 정말 손녀가 빨리 낫기만을 바랐는데,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마음에 계속 애가 걸렸어요. 머릿속에서 온통 귀엽고 발랄했던 아이의 모습들이 영화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었지만 전처럼 긍정적 부담을 갖지 않았어요. 그저 그 어리고 귀여운 손녀가 두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은 칼로 에이는 것 같았고,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저는 소극적이고 연약해졌고 본분에 성과도 없었어요. 그제야 전 제가 매우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다는 걸 느꼈는데, 빨리 돌아서지 않으면 성령님의 역사를 잃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죠. ‘하나님, 제 손녀가 큰 병을 앓으니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제 마음을 지켜 주시고, 당신의 뜻을 알 수 있게 깨우쳐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이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떤 시련을 겪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체험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결국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가 그렇게 사역함으로써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며, 또한 사람의 의지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모를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주관을 갖고 굳게 서야 한다. 욥이 이 수준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지만, 네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손녀가 그런 병을 앓게 된 것에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이건 저에 대한 시련이자 저의 믿음을 더 온전케 하는 계기였어요. 욥이 생각났어요. 욥은 자기의 모든 자산과 소유는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그것을 거두어 가시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시련이 임했을 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할망정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라고 고백했죠. 욥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갖췄고, 자신의 목숨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어요. 욥은 정말 올곧고 선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리고 저를 봤어요. 전에는 열정적으로 본분을 이행했는데, 아무리 복음을 전하는 게 고생스러워도, 교계와 큰 붉은 용이 아무리 핍박하고 정죄해도 전혀 소극적이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하며 헌신했어요. 하지만 그게 저의 참된 믿음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믿은 뒤로 집의 사업이 잘되고, 하나님께서 제 병도 낫게 해 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기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근데 지금 손녀가 뇌암에 걸려서 두 달밖에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제 요구대로 손녀를 고쳐 주시지 않자 저는 과거의 헌신과 희생으로 하나님께 따지고, 손녀를 지켜 주지 않으셨다고 불평했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사람의 뜻에 맞지 않다고 느끼며 이렇게 큰 시련을 주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저는 인성과 이성이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과 순종이 없었어요. 이런 걸 생각하니까 하나님께 너무 면목이 없었어요. 하나님께 받은 게 정말 많은데, 계속 이렇게 욕심부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욥을 본받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마음먹었죠.

그 뒤로도 본분을 이행하면서 형제자매들 집의 어린애들을 볼 때면 손녀가 생각나는 거예요. 제 손녀도 저렇게 건강해져서 제 앞에서 깡충거리며 재롱떠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전에 제가 유방 종양이 생겼을 때, 의사가 종양이 많이 커져서 수술을 안 하면 위험하다고 했지만, 제가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본분을 이행하니까 종양이 기적처럼 나았던 일도 생각나면서 이번에도 본분을 잘 이행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저는 매일 스케줄을 꽉 채웠고, 자주 형제자매들과 예배 모임을 가지며 사역에 관해 의논했어요. 그 결과 형제자매들 모두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들을 붙들어 주면서 사역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죠. 그때 저는 ‘이렇게 하다 보면 애가 갑자기 나을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죠. 두 달 후에 집에 가 보니까 애가 나아지기는커녕 암세포가 온몸에 다 퍼졌고 겨우 숨만 쉬고 있었어요. 벌써 관도 다 준비해 놓은 상태였고 아들과 며느리는 계속 울고 있었어요. 정말 마음이 미어지는 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어요. 그러면서 속으로 또 하나님께 따지게 되는 거예요. ‘애가 아픈 두 달 동안 난 본분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헌신했고, 사업도 다 내려놓았잖아.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고, 친척들한테 버림받고, 큰 붉은 용의 체포 때문에 쫓겨 다니는 등 아무리 열악한 상황이 닥쳐도 계속 본분을 이행했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생기는 걸까? 난 분명 하나님과 대적한 일이 없잖아?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하나님은 내 손녀를 보호해 주지 않으셨을까?’ 정말 그때 제 내적 상태는 이미 바닥을 쳤고, 걸을 힘도 없었어요. 밥도 내려가지 않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생길 정도로 괴롭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어요. 물론 불평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어린애가 식어가는 걸 보니까 저도 모르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당신을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근데 이겨 내기가 너무 힘듭니다. 마음이 너무 약해지고 막막합니다. 원망하지 않도록 제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그러다 손녀는 결국 떠났어요. 전 너무 괴로웠어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예배에 참석해도 교제를 나누고 싶지 않았어요. 특히 형제자매님들 집에서 제 손녀랑 비슷한 또래의 애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한동안 그런 내적 상태를 돌려세우지 못했어요. 본분에 성과도 없었고요. 그제야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찾고 구했어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밝아졌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출생이 전생의 인연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죽음은 그 인연의 끝인 것이다. 사람의 출생이 현생에서 이행해야 할 사명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그 사명의 끝이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출생 배경을 정해 놓은 창조주는 죽음에도 당연히 각자의 배경을 계획해 놓았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출생은 우연이 아니고, 죽음 역시 돌연한 것이 아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모두 그 사람의 전생 및 금생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출생과 죽음의 배경 모두 창조주의 예정과 관련이 있다. 이는 한 사람의 타고난 숙명이자 운명이다. 모두가 다른 배경에서 태어나듯, 죽음에도 각자 고유한 배경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 죽음의 방식과 시점이 모두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튼튼하고 건강하지만 일찍 죽는다. 어떤 이는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프지만 장수하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비명횡사하는 사람도 있고, 천수를 다 누리는 사람도 있다. 타지에서 마지막을 맞는 이도 있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 이도 있다. 하늘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지하에서 죽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익사하고 누구는 재난을 만나 죽는다. 누구는 아침에, 누구는 밤에 죽는다…. 누구나 빛나고 당당하게 태어나 멋진 삶을 살다 명예롭게 죽기를 바란다. 하지만 숙명을 뛰어넘고, 창조주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사람의 운명이다. 사람은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이든 세울 수 있어도 어떻게 태어날지, 언제 어떻게 죽을지 계획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죽음이 닥치는 것을 피하고 막으려 애쓰지만 죽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다가온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더 나아가 어디서 죽을지 알지 못한다. 인류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존재는 인류 자신도, 자연계의 그 어떤 생명체도 아닌 유일무이한 권병을 지닌 창조주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인류의 삶과 죽음은 자연계 내 모종의 법칙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의 권병과 주재로 인한 결과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사람의 운명과 생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잖아요.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을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거니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죠. 제 손녀의 경우, 어떤 병을 앓게 될지, 언제 죽을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대로 가는 거지 제 주관적인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고, 제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며 사역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근데 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에 순종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가 한 사역과 헌신으로 손녀의 운명을 바꿔 보려고 했으니 그 본질은 하나님께 맞서는 거잖아요? 제 손녀의 생사는 아이의 전생 및 금생과 관련이 되는 일인 거고, 아이의 기한이 그만한 것도 그 아이의 명이죠.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집의 애들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아는 이방인의 자식도 뇌종양이 발견됐는데, 처음엔 치료했지만 12살에 재발되어 결국 세상을 떠났죠. 보니까 사람이 살 수 있는 기한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거지 가족이 하나님을 믿는 거랑은 관련이 없었어요. 근데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손녀가 아파도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잖아요. 이걸 깨닫고 나니까 그렇게 괴롭지 않았어요. 손녀의 죽음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깨달은 걸 남편과 아들한테도 이야기해 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고 했어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제 문제를 한층 더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을 받고 화를 입는 일에 관해서는 구할 진리가 있다. 어떤 말씀이 사람이 지켜야 할 명언이겠느냐?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이 말은 진리이냐 아니냐? 이 말은 사람의 말이므로 진리의 높이까지는 오르지 못하지만, 여기에 진리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 진리에 부합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냐? 사람이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렸고, 모두 하나님의 주재라는 점, 이것은 진리다. 적그리스도가 그 점을 믿겠느냐? 믿지 않는다. 그는 이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왜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느냐? (그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는 복만 받으려 합니다.) (너무 이기적이어서 육적인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을 받으려 하고 화를 입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 복을 받고 좋은 것을 얻고 은혜를 받고, 더 많은 물질적 누림을 얻고, 큰 이득을 얻는 것을 보면 그는 그것이 하나님이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물질적인 축복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곧 이런 뜻이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이라면 사람을 축복하고 재앙을 없애야지 사람이 고통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당신을 믿는 일이 값지고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을 따르고도 화를 입고 고통받는다면 사람이 당신을 믿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는 만사 만물이 모두 하나님 손안에 있고 하나님이 모든 걸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인정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이냐? 적그리스도는 화를 입는 것을 겁내고, 이익을 얻고, 덕을 보고, 축복을 누리기만을 바란다. 그는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면서 하나님 손에서 이익을 얻기만을 바란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이기적이고 비열한 관점을 갖고 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과 관련된 말씀에서 보이는 일련의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일련의 모습은 주로 적그리스도의 추구 관점과 관련되고, 또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이런 일을 대하는 그의 견해, 평가, 이해와 관련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6)> 중에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는 비열한 마음을 다 들춰내셨어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복과 이득을 취하려는 데 있었어요. 그래서 화가 닥치면 원망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데,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복과 이익이라는 기반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거였어요. 제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돌아보니까 적그리스도랑 다를 게 없었어요. 복을 바라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요. 제가 하나님을 막 믿었을 때 유방의 종양이 저도 모르게 낫고 가족의 사업이 더 잘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게 됐잖아요. 그때는 기뻐서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절로 노래가 나왔고, 집 안엔 웃음꽃이 활짝 폈고 남편과 자식들까지 하나님은 정말 좋은 분이라고 했거든요. 저는 본분을 이행해도 힘이 넘쳤고 제가 다 버리고 헌신하는 게 가치 있게 느껴져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했어요. 근데 손녀가 뇌종양을 앓고 두 달밖에 살 수 없게 됐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지 않으셨다고 원망했어요. 그러면서도 애가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하나님께 간구했어요. 그리고 열심히 본분을 이행했는데, 그건 하나님께서 제가 충성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걸 봐서라도 아이의 병을 기적처럼 고쳐 주시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근데 애가 세상을 떠나니까 전 다시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불평했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마저 버리려고 했어요. 게다가 과거의 헌신으로 하나님께 따졌는데, 그건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 없는 거잖아요? 바울을 보면 평생 하나님께 헌신하면서 많은 교회를 세웠고 감옥 가는 고생도 했지만, 그건 온전히 하나님의 상과 복을 얻기 위한 거였어요. 그는 자신의 모든 헌신을 하나님의 의로운 면류관을 얻는 카드로 삼았고 그걸로 하나님을 겁박했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크게 거슬러 하나님께 벌받고 저주받게 됐잖아요. 보니까 제가 바울과 같은 추구 관점을 가졌더라고요. 제가 수년간 다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했으니 하나님도 저한테 그만큼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저는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하다고 원망했어요. 보니까 전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었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였더라고요. 세상에서 일하는 것과 같았죠. 제가 일한 만큼 보수를 받고 보수가 없으면 일을 안 하겠다고 구는 것 말이에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저는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바라고 제 이익을 위해서 본분을 이행했던 거예요. 거기엔 진심이 아니라 오직 거래뿐이었죠. 제가 생각해도 비열한 속셈은 정말 하나님의 염증을 살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봤어요. 『적그리스도 부류는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도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해 해결할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일을 바라볼 줄은 더욱 모른다. 이것은 순전히 그가 하나님이 하는 말씀 하나하나가 다 진리임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진리를 교제하든 적그리스도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는 무슨 일을 대하든 올바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특히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일에서는 더더욱 관념을 지키며 죽어라 놓지 않는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하나님, 초자연적인 하나님이다.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만 있으면 관세음보살이든 부처든 마조(媽祖)든 상관없이 그는 그것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는 존재만이 하나님 신분을 갖춘 하나님 자신이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없는 존재는 아무리 많은 진리를 선포한다 해도 반드시 하나님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여긴다. 그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하나님의 큰 능력이자 전능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야만 하나님의 큰 능력이자 전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육신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해서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는 일, 하나님 선민을 양육하고 목양하고 이끄는 일, 사람에게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겪게 하는 일, 이로써 진리를 깨닫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일 등 이 모든 실제적인 사역을, 적그리스도는 사람이 한 것이지 하나님이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의 생각에 하나님은 신주 뒤에 숨어서 사람에게 공양을 받고, 사람이 바치는 음식을 먹고, 사람이 피우는 향으로 호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손 내밀어 도와주고 사람이 도움을 청할 때 정성껏 소원을 빌면 마땅히 큰 능력을 보여 주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즉시 사람을 도와주고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이 바로 참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이 적그리스도의 눈에는 하찮게만 보인다. 왜 그렇겠느냐?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보면,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행하는 모든 양육, 목양, 구원 사역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필요한 것은 현세에서 일이 잘 풀려 만사형통하는 것이고, 현세에 징벌받지 않고 내세에는 천당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의 관점과 필요는 진리를 증오하는 그의 본질을 증명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5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본질을 부정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폭로의 말씀을 보면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저는 여전히 막연하게 믿고 있었음을 알게 됐죠. 저는 하나님을 무슨 부처처럼, 복을 주는 존재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우리 온 가족이 무탈하게 축복해 주실 거라고 여겼던 거예요. 그래서 손녀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저는 본분을 많이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아이가 낫는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하나님을 큰 복을 주시는 존재로만 봤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의 ‘성의’를 봐서라도 제 요구를 들어주실 거라고 착각했어요. 그게 무슨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거겠어요? 하나님이 말세에 하시는 사역은 이적과 기사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주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선포해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이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사람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역이죠. 근데 저는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제가 어떤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고 추구했는지, 제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반성해 보지 않았어요. 또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성품이 변화되도록 추구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하나님과 거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토색하기만 했죠. 저는 그런 태도로 하나님을 믿었으니까 그게 세상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어요? 그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게 아니고 뭐겠어요? 저는 진리 추구를 중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려고만 추구했어요. 심지어 손녀의 죽음 때문에 하나님께 반항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본분을 이행할 마음까지 접으려 했죠. 그건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 거잖아요.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다 버리고 헌신해도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잖아요.

나중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추구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난받는 것,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 또는 육체가 평안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우며 편안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져야 할 목적이 아니다. 네가 이렇게 믿고 있다면 너의 관점은 바르지 않은 것이며, 너는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함과 난측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또한 이런 인식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요구와 소망, 관념을 없애야 한다. 이런 것을 없애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갖출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만 생명을 가질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품으로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격 없는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행사와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옳은 관점이자 네가 추구하는 목표여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복을 받거나 본분을 이용해 자기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였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상황 속에서 진리를 구함으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일을 중시하고, 자신의 실제 체험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는 거죠. 그게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추구 관점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는 건 우리 각 사람의 책무죠.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원망해서도 안 됐고, 복과 은혜를 요구해서도 안 됐습니다. 당신께서 하시는 일은 다 좋은 것인데, 제가 소경이라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당신의 행사를 모르고 계속 거래만 했습니다. 이제 잘못된 추구 관점을 내려놓고 당신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이번에 시련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에 복을 바라는 불순한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하나님 믿는 관점을 조금 바꾸게 됐어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관하심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됐고, 고난과 연단을 체험하는 건 좋은 일이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절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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