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을 대하는 태도
중국 허난 중청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기본은 마음이 정직하며, 완전히 헌신하고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하기 힘든 일은 일생을 바쳐 참된 믿음을 얻음으로써 모든 진리를...
94년도에 엄마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3개월 만에 심했던 관상 동맥 심장병이 나았어요. 그때 저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축복하심을 보게 되면서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전 엄마를 따라 예수님을 믿었죠. 그 뒤로 저는 예배에 적극 참석했어요. 사업을 하는 와중에도 주님의 축복하심을 보게 되니 너무 감사했죠.
그러다 2002년 6월 1일에 예수님의 재림 복음을 듣게 됐고, 하나님께서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되어 돌아오신 건 마지막 구원 사역을 하시기 위함이란 걸 알게 됐어요. 전 정말 복된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이 마지막 기회를 잘 살려서 본분을 잘 이행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1월에 저는 사업을 접고 본분에 전념하기로 했어요. 그때는 제가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한다면,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것에 평안과 순탄함으로 축복해 주실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는 힘든 줄도 모르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교회 일로 바삐 보냈죠. 2012년에는 아들도 하나님의 집으로 이끌었고 같이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했어요. 저는 저와 아들까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데 쏟아부었으니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축복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렇게 제가 더 큰 복을 꿈꾸면서 열정적으로 헌신할 때,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서 복을 바라던 저의 꿈이 깨지게 됐죠.
2020년 10월 17일 저녁 여섯 시쯤이었어요.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축 처진 목소리로 그러는 거예요. “엄마, 나 아파요. 빨리 와 줘요.” 그때는 아프다니까 뭔 소린가 싶었어요. 아니, 점심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네가 초저녁에 왜 갑자기 아프냐고 했죠. 그랬더니 아들이 다급하게 좀 많이 아프다면서 빨리 와달라고 하더라고요. 전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애한테 갔어요. 집에 들어서니까 애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나 못 일어나겠어요. 하반신이 아무 느낌이 없어요.” 전혀 못 움직이는 애를 보면서 순간 멍해졌어요. 곁에 있던 젊은 형제가 빨리 병원 가자고 했죠. 그제야 정신 차리고 그 형제랑 애를 부축해서 나가려고 했어요. 근데 애 다리가 국수처럼 흐늘거리면서 한 걸음도 못 움직이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응급센터에 연락했죠. 병원에선 길랑바레 증후군인 것 같다면서 치료하기 힘들다고 했어요. 그 병원의 간호사도 같은 병에 걸렸는데, 6~7만 위안을 썼는데도 결국 사망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이 저한테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여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너무 긴장되는 거예요. ‘우리 아들이 어쩌다 이런 몹쓸 병에 걸렸을까? 둘이서 집을 떠나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지켜 주지 않으셨을까?’ 저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의사는 우리한테 도시의 큰 병원에 가 보라고, 거기에 가면 치료될 가능성이 좀 크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조금의 희망이 보였어요. 하지만 병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다시 보니까 너무 조마조마한 거예요. 수중에 2만 위안밖에 없으니 치료비가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렇게 되니까 저도 모르게 지금까지 수년간 본분을 이행하면서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겨 주든 거부라는 걸 한 적이 없이 정말 열심히 헌신했는데, 하나님은 왜 제 아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게 하셨을까 하는 원망이 생기더라고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질 않았고 계속 ‘하나님께서 애를 죽게 두진 않으시겠지. 어쩌면 내게 시련을 주시고 내 믿음을 검증하시는 것일지도 몰라. 날이 밝으면 갑자기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그렇게 그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간단하게 본분을 인수인계하고 아들을 큰 도시 병원으로 옮겼어요. 당직 의사가 아들 상태를 보더니 그러는 거예요. “지금 보여지는 증상은 길랑바레 증후군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내일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맞는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말 중요한 고비를 못 넘기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한 대 크게 맞은 느낌이었어요. 우리 아들이 정말 이 죽음을 피할 수 없을까 싶으면서 애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까 봐 겁이 났어요. 생각할수록 너무 두려워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죠. ‘하나님,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당신은 전능하시니 당신의 손길이 닿는다면 아이는 죽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 다른 건 바라지 않겠습니다. 애가 살 수 있게만 해 주십시오.’ 기도하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어요. 그날 밤은 계속 기도하면서 애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어요. 애가 조금만 숨을 거칠게 쉬어도 숨이 넘어갈까 봐 불러서 깨웠어요. 셋째 날 아침에 진단을 받았는데, 급성 횡단성 척수염이라고 했어요. 교수님이 이 병은 산다고 해도 하반신 마비나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어요. 그 얘길 들으니까 정신이 다 무너질 것 같았어요. 정말 애가 식물인간이 되거나 하반신 마비가 온다면 남은 생은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어요. 그리고 교수님은 스테로이드 약물은 리스크가 있다면서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했어요. 그 순간 정말 손이 막 떨리는 거예요. 서명하려니까 약물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남은 생에 고생할 게 겁나고, 안 하려니 치료를 포기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밖에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정말 크게 망설였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모든 게 하나님께 달렸으니 우리 아들의 병은 아무것도 아니지. 일단 침착하고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자.’ 그래서 서명을 했죠. 그렇게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니까 다음 날 아들 다리에 조금 감각이 돌아왔고, 3일째 되던 날에는 조금 움직일 수 있었어요. 정말 크게 감격스러웠고 하나님께 계속 감사드렸죠. 근데 예상치 못했던 건 넷째 날에 휴대폰을 애한테 건네주는데, 애가 갑자기 손에 힘을 쓰지 못하더니 휴대폰이 그대로 침대에 떨어지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멍해졌죠. ‘왜 이러지? 갑자기 심해진 건가?’ 전 놀라서 의사를 불렀어요. 의사는 상태가 더 심해졌다면서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그 얘기에 머릿속이 ‘윙~’ 하면서 ‘식물인간이 되면 끝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겁이 나서 또다시 하나님께 기도드렸죠. ‘하나님, 우리 아들 아직 젊고, 지금까지 계속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나님, 지켜 주세요. 이제 아이를 온전히 당신께 넘기며 생사를 당신께 맡깁니다.’
그러다 애가 위험한 고비를 넘겼고 병 상태도 제어가 됐어요. 저는 희망을 보게 돼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죠. 그렇게 6개월간 병원에 있었는데, 의사가 재활 병원에 가서 재활 치료를 받으라고 했어요. 재활 병원에 갔더니 회복하는 데 가장 좋은 시기는 처음 3개월이라면서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다시 걸을 수 있는 확률이 낮다고, 이제 3개월 안에 일어서지 못하면 진짜 못 걷는 거라고 했어요. 어느 날 애를 데리고 재활 치료를 받는데, 침대에 누워서 수심이 가득한 애 얼굴을 보니까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죠.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내가 바란 건 하나님께서 나와 아이를 무탈하게 지켜 주시는 것뿐이었는데, 애가 이렇게 갑자기 쓰러져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다시 걸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니? 이게 언제 끝날까?’ 그때 한 자매가 해 줬던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애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중병에 걸리는 건 우연이 아니라고, 가끔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통해 우리 안의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시기도 한다고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뭘까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휴대폰으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외면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옳지 못한 관점, 자기만의 속셈과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사실을 폭로하셨죠. 다 하나님의 은혜와 이로운 점을 얻기 위해서고, 하나님께 토색하기 위해서라고요. 보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엄마가 예수님을 믿은 뒤로 관상 동맥 심장병이 나은 걸 보게 됐는데, 전 하나님의 축복을 보고 나서야 다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기 시작했어요. 그것도 하나님의 보호로 저의 모든 게 무탈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거였죠. 어떤 병이나 화가 생기거나 어떤 어려움이 생길 때면 저는 하나님께 해결해 달라고 구하면서 하나님을 저의 피난처로만 대했어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뒤에는 더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하려고 했는데, 제가 그렇게 추구한다면 더 큰 축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정작 애가 심한 병에 걸려서 하반신이 마비되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됐을 때 저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따지고 옛날 일을 들먹였어요. 제가 과거에 어떻게 헌신하고 노력했는지를 계산하면서 그걸 빌미로 하나님께 아들을 고쳐 달라고 요구했던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전 종교인들처럼 저 자신을 하나님 손안의 귀염둥이로 착각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구하면 무조건 응답하고 은혜와 복을 주시는 존재로 간주하면서 제가 요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채워 주실 거라고 생각했죠. 보니까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고는 있었지만, 제가 하나님을 믿는 이런 모습은 종교인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은혜시대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저 혜택을 누릴 생각만 했잖아요.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주신 진리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죠.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육적인 필요만 채워 주셨지 그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어요. 말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이 아니라 진리를 선포하심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여 패괴함을 벗어 버리고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일이죠. 근데 저는 그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계속 복과 이익만을 바라봤던 거예요. 저의 이런 추구법은 하나님의 사역과 어긋나는 건데,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겠어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아이가 아픈 것에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었고, 저는 제가 진입해야 할 진리를 구해야 한다는 걸요. 근데 저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르는 데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진리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저 하나님께 아들의 병이 빨리 나을 수 있게 축복해 달라고만 요구했어요. 저는 떡으로 배를 불리기만 원하는 종교인들과 다를 게 없었어요. 이건 불신파의 태도잖아요. 더는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앞으로 아들의 병 상태가 어떻게 되든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겪어 나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 후로는 아들이 매일 여섯 가지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한 가지를 마칠 때마다 정말 땀범벅이 됐어요. 그렇게 보름 정도 지나니까 아들의 팔과 다리에 감각이 조금 돌아왔어요. 그때 저는 희망을 보는 것 같았고 매일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하면서 아들이 일어설 수 있기만 소망했어요. 근데 현실은 제 상상과 달랐어요. 어느 날, 재활 치료를 하다가 애가 바지에 변을 보게 됐어요. 그걸 보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운 거예요. 애가 생명의 위험에서는 벗어났지만 매일 저렇게 소변 주머니랑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싶었어요. 이제 겨우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인데, 이러면 앞으로 어떻게 사나 싶기도 했죠. 그렇게 전 다시 의기소침해졌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조용히 기도드렸죠. ‘하나님, 아들이 혼자서 생활하기 힘들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 당신의 크신 능력을 믿습니다. 애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저는 배로 노력하면서 본분을 잘 이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기도하는 건 하나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고 반성해 봤어요. ‘하나님의 안배하심에 순종하겠다고 해 놓고 왜 또 하나님께 요구를 하는 걸까?’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라서 찾아봤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몹시 하나님의 기쁨을 사고 싶어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너희는 그의 말씀만 받아들일 뿐, 그의 책망과 훈계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더욱이 그의 모든 안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완전히 믿지도 못한다. 이것은 또 어찌 된 일이냐? 결국 너희의 믿음은 영원히 병아리가 나올 수 없는, 속이 텅 빈 달걀과 같다. 너희의 믿음이 너희에게 가져다준 것은 진리와 생명이 아니라 뜬구름과도 같은 기대와 희망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로 그 기대와 희망을 위한 것이지 진리와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이 그저 부끄러움도 모른 채 비굴하게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만 하는 것으로, 아예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한 믿음에서 어떻게 병아리가 나오겠느냐? 다시 말해, 그러한 믿음이 어떻게 결실을 맺겠느냐?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을 이용해 너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것은 더더욱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말씀을 보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고요. 마치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받는 것 같았어요. 애 병이 치료될 확률이 크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 저는 모든 희망을 하나님께 걸었고, 좋은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사고 아첨하려고 했어요. 또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험한 상태에서 건져 주셨을 때는 기뻐하면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목숨은 건졌어도 하반신 장애나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다시 식물인간은 되지 않게 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심지어 하나를 주니 둘을 달라는 식으로 아들이 혼자서 자기를 챙길 수 있게 해 주시면 본분을 잘 이행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며 요구했어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제 목적을 이루려고 하나님께 아부하는 저를 보니까 정말 너무 비겁하더라고요. 제가 하나님을 입에 발린 말을 좋아하는 패괴된 사람처럼 본 거잖아요. 제가 좋은 말을 해서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아지면 좋은 걸 주시고, 제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실 거라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시라 마음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를 원하시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자를 원하시죠. 근데 저는 개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 잘 보이고 아부하려고 했어요. 그건 하나님의 염증을 사는 태도죠. 그제야 하나님의 고심을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예비하지 않으셨으면 전 절대 지금까지 오직 평안과 축복을 위해 하나님을 믿고 추구해 왔다는 걸 몰랐을 거고, 이렇게 평생 하나님을 믿었으면 진리 생명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이런 환경이 저한테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과 긍휼이었어요. 그제야 죄스러움과 자책감에 눈물이 났고, 하나님을 거역한 제가 너무 후회됐어요. 전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 하나님을 이용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근데 하나님은 제가 행한 대로 대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당신의 뜻을 알 수 있게 이끌어 주셨어요. 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구원에 더더욱 부끄러웠어요. 그때 다시 묵묵히 기도했죠. ‘하나님, 앞으로 아이가 혼자 생활을 하든 못 하든 순종하겠습니다. 이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당신의 말씀과 역사하심을 체험하면서 이 환경 속에서 공과를 배우겠습니다.’
어느 날, 아들과 재활 치료를 마치고 나니 저도 모르게 예수님을 믿었을 때부터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심한 관상 동맥 심장병이 나으니까 저는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했고, 사업이 잘될 때에도 하나님께 제 사업이 잘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랐고, 이번 단계의 사역을 받아들인 뒤에는 조금 버리고 헌신한 걸 내세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얻어 내려고 했어요.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사람의 성품은 극도로 악독해졌고, 사람의 이성은 극도로 무감각해졌으며, 사람의 양심은 이미 악한 자에게 짓밟혀 원래 가지고 있던 양심은 진작에 사라져 버렸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풀어 준 이처럼 많은 생명과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진리로 인해 하나님을 혐오하고, 진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하나님에게조차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서 ‘기름을 짜내고’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보다 수십 배나 많은 이자를 달라고 요구한다. 사람은 이런 양심과 이성을 가졌으면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이 너무 많고 반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푼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물 한 그릇을 주고는 우유 두 그릇 값의 금화를 달라고 손을 내밀고, 내가 그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 이보다 몇 배 넘는 숙박비를 요구한다. 너희는 이런 인성과 양심을 갖고도 생명을 얻으려 하느냐? 정말 비열한 소인배들이구나! 사람의 이런 인성과 양심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은 기거할 곳 없이 곳곳을 떠돌게 된 것이다. 정말로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육신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그가 아무런 사역을 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그를 경배하고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이것은 이성이 건전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사람의 본분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도 조건을 내건다. 그런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인지 사람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조건만을 얘기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만 한다. 너희는 나에게 밥을 지어 주면 품값을 요구하고, 나를 위해 다리품을 팔면 수고비를 요구하며, 나를 위해 사역하면 사역비를 요구하고, 나에게 빨래를 해 주면 세탁비를 요구하며, 교회에 공급하는 일을 하면 몸보신 비용을 요구한다. 말하는 자는 강의료를 요구하고, 책을 배부하는 자는 책 배부 비용을 요구하며, 글을 쓰는 자는 원고료를 요구한다. 심지어 내게 책망받은 사람은 내게 보상금을 요구하고, 집으로 돌려보낸 사람은 명예 훼손 배상금을 요구하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혼수비와 청춘을 바친 대가를 요구한다. 또한 닭 잡은 사람, 요리를 만든 사람, 국을 끓인 사람 등 다 그에 따른 수고비를 요구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너희의 고상하고도 위대한 인성이며, 너희의 그 따뜻한 양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너희의 이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인성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 같은 인면수심의 무리들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것이고, 구원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이런 짐승들을 위해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등을 돌리는 날은 바로 너희가 죽는 날이고, 어둠이 너희에게 임하는 날이며, 광명이 너희를 버리는 날이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나는 너희처럼 짐승보다도 못한 무리에게 큰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일하는 데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너희의 인성과 양심이 이러하니 나는 더 많은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너무 양심이 없고, 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상하게 했으며, 너희의 비열한 행위는 나를 너무 역겹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성과 양심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 나는 이렇게 흉악하고 잔인한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예전에 이 말씀을 볼 때는 저랑 대조를 해 보지 않았고, 이러한 사람들을 무시했었어요. 하나님을 믿으면서 토색하고 하나님과 흥정하는 사람들은 인간성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가 다시 이 말씀을 보게 되니까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뺨을 맞은 것처럼 너무 부끄러웠어요. 제가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하나님을 믿은 뒤로 전 하나님은 분명 우리 가족이 무탈하게, 아무런 화도 당하지 않게 지켜 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다 큰 복을 받기 위해 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달갑게 받아들였죠. 저는 제가 충분히 헌신을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복과 은혜를 주실 거라고 여겼고, 저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켜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피조물의 본분 이행을 하나님께 토색해도 되는 자본으로 여겼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제가 지출한 것보다 수십 배나 많은 축복을 요구했어요. 아들이 아프게 됐을 때, 저는 그동안의 헌신을 계산하면서 하나님께서 분명 아들을 고쳐 주실 거라고 여겼고, 추가로 하나님께 아들이 일어서서 걷고 자기 몸을 잘 가눌 수 있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어요.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챙겨 주시고 저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셔야 한다고 여겼고, 그렇게 안 해 주시면 공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협박하고 대놓고 하나님께 토색했어요. 정말 인성과 이성이 없었죠. 은혜시대의 바울이 그랬잖아요.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어요. 그는 수고와 대가, 고된 사역을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과 자본으로 간주하면서 하나님께 의의 면류관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라는 말을 했죠. 그 말은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주시지 않으면 공의롭지 못하다는 거잖아요. 그건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대드는 거니까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벌을 받게 됐죠. 돌아보니 제가 바울과 같은 길을 가고 있더라고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진리도, 성품 변화도 추구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만을 구했죠. 지금까지 제가 버리고 헌신하고 수고하며 사역했고, 추가로 아들도 청춘과 결혼을 포기하고 본분을 이행했으니까 그걸로 하나님을 겁박하면서 저의 욕심을 채워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 따지면서 반항하고 대들었어요. 정말 너무 후안무치했죠. 반성할수록 제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고,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제야 두려웠어요. 이제 회개하지 않으면 분명 바울처럼 하나님께 벌받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얼른 기도하면서 회개했죠. ‘하나님, 지금까지 진심으로 당신을 경배한 적이 없습니다. 여태 하나님을 이용 대상으로만 간주하면서 복을 받으려는 제 욕심을 채워 달라고 했습니다. 전 정말 너무 비겁합니다. 하나님, 회개하겠습니다. 제 아들이 죽더라도, 하반신이 마비되더라도 더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마련해 주신 모든 상황에 순종하고 이성과 인성을 갖춘 피조물로 살면서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고 당신의 마음에 위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아들한테도 말했어요.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순리에 맡기자.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순종하는 공과를 배우자. 이제 영원히 일어서지 못한다고 해도 원망하는 말을 하지 말자.” 아들도 제 말이 맞다고, 사람이 언제 태어나 언제 죽는지도 하나님께 달렸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으니까 순종하겠다고 했어요. 그 뒤로 저와 아들은 그렇게 괴롭지 않았고, 저도 더 이상 빨리 낫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고 순리에 맡기고 겪어 나가기로 했어요. 근데 생각지도 못하게 아들의 병 상태가 날로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아들이 여느 때랑 다름없이 휠체어를 타고 복도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저는 피곤해서 눈 좀 붙이려고 방에 들어가 있었죠. 근데 제가 눕자마자 복도에서 누가 큰 소리로 그러는 거예요. “저기 봐요. 저 남자분 일어섰어요.” 제가 그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내다봤더니 우리 아들이 일어섰더라고요. 정말 꿈 같았고 이게 생시인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속으로는 한없이 고백했죠.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을 찬송합니다. 아이가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당신의 크신 능력과 역사 덕분입니다.’ 조금씩 아들은 대소변을 가릴 수 있게 됐고, 혼자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도 갈 수 있게 됐어요. 어느 날, 같은 병실의 가족이 부러워하면서 그러는 거예요. 그 집 아들도 같은 병인데, 지금까지 백만 위안 넘게 들였지만 아직 일어서지 못했다고요. 그때 저는 우리 아들이 일어설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역사라고, 큰 능력을 보여 주실 분은 하나님뿐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옆에서 누군가는 애가 저 정도로 회복된 건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운이 좋았다고 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며칠 후, 우리는 퇴원했어요.
제가 하나님을 믿은 지는 21년이 됐는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셨어요. 다만 제가 너무 패역한 탓에 항상 추가 조건을 달고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저 은혜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를 했을 뿐이죠. 하나님께서 아들의 병을 계기로 저를 드러내는 일이 없었고, 복을 바라던 제 꿈을 깨지 않으셨다면 저는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신앙관을 인식하지 못했을 거예요. 보면 제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정말 추하고 비겁하기만 했어요. 하나님의 이런 사역을 겪게 되면서 아들의 병이 저와 아들한테는 정말 큰 구원임을 느끼게 됐어요. 은혜와 축복도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질병의 고통,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은 더더욱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었는데, 다 저를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거예요. 이번에 하나님의 공의롭고 아름답고 선하신 본질도 피부로 느끼게 됐고요. 지금 아들은 건강이 잘 회복됐어요. 사실 의사한테서는 사형을 선고받았던 사람인데, 이제는 자기 몸을 가눌 뿐만 아니라 제 일을 도와줄 수도 있어요. 정말 그땐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정말 만사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으며 사람의 생사도 하나님께 달렸고 하나님께서 모든 걸 주관하신다는 걸 확실히 보게 됐어요. 하나님의 구원에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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