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열등감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2026.1.15

어려서부터 반응이나 이해가 좀 느렸던 저는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조금만 복잡한 질문을 하셔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틀리게 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반 친구들에게 늘 놀림을 당했고, 선생님께 머리가 나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가 또래 중에서 가장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처럼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커서 남의 밑에서 일하거나 농부가 될 수밖에 없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지도자나 경영인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큰 상처를 받은 저는 점점 더 내성적으로 변해 말수가 줄었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처음 예배드릴 때는 남들이 비웃을까 봐 교제할 엄두를 내지 못해 대부분 맨 마지막에 교제했습니다. 그러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이 교제하라며 격려해 주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본분을 맡게 되었는데, 반응이 느리고 자질이 부족한 탓에 저는 늘 열등감에 사로잡혔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내적 상태가 자주 지장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림 그리는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동역자 자매들과 함께 그림에 관해 토론할 때마다 자매들은 금세 그림의 문제점을 찾아내 수정에 관한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반응이 느렸던 저는 몇 번을 더 봐야 겨우 문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간혹 그림의 구상에 관해 제 관점과 생각을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난 자질이 부족해서 핵심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할 거야. 말해 봤자 별 도움이 안 될뿐더러, 혹여 틀리기라도 하면 창피만 당하겠지.’라는 생각에 평소에는 거의 의견을 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동역자 자매가 그림 한 장을 다시 제작해야 할지 판단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림을 보니 표현된 화면 효과가 괜찮아서 다시 제작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전 자질이 부족해서 문제를 정확하게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팀장에게 한번 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팀장은 제 생각과 달리 그림의 구상에 문제가 있어 다시 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 제 의견을 말하고 싶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장님은 자질이 좋고 원칙도 많이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업무 능력도 나보다 나아. 난 어릴 때부터 머리가 나빴고 이해력도 떨어졌으니 내가 잘못 봤을 거야. 고집부리지 말자. 가뜩이나 자질이 부족한데 다른 사람의 의견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창피한 일이지. 그냥 팀장님 의견대로 다시 제작하자.’ 그런데 뜻밖에도 다음 날 책임자는 그 그림의 구상이 적절해서 다시 제작할 필요가 없다면서 관련 원칙을 들어가며 저희의 편차를 지적해 주었습니다. 당시 책임자가 들어준 원칙을 생각했던 저는 ‘내 의견을 견지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역자 자매는 그 그림을 수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결국 헛수고만 한 셈이 되었고 다른 사역까지 지체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괴롭고 자책감도 들었지만, 그 후에 저 자신을 반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그림 한 장을 검토했는데, 몇 번을 봐도 화면 효과가 적절해서 조금만 수정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자매 몇 명은 그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불분명해서 가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수긍할 수 없었던 저는 제 나름의 생각을 말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매들은 자질도 좋고, 나보다 원칙도 잘 파악하고 있어서 나보다 깊이 있게 문제를 볼 거야. 난 어릴 때부터 머리가 나빴고 자질도 부족하니 내가 잘못 봤겠지.’ 그러자 소극적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점과 부족한 점을 다 찾아내는데, 나는 몇 번을 봐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다니, 정말 형편없는 자질이야. 아무래도 난 이 본분에 영 소질이 없나 봐.’ 그런데 책임자는 그 그림을 보더니 조금만 수정하면 쓸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내 의견을 견지할 걸.’ 하며 후회했습니다. 그 후 책임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왜 자매님 의견을 견지하지 않았나요? 가치 있는 그림이 하마터면 휴지 조각이 될 뻔했어요. 자매님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면 자기 의견을 밝히고 다 같이 상의해야죠. 그 의견이 틀렸더라도 나중에 고치면 되잖아요.” 저는 책임자의 말을 듣고 마음이 괴로웠지만, 패괴 성품에 너무 단단히 얽매여 있어서 그 후에도 일이 생기면 여전히 제 의견을 견지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늘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본분을 이행할 때 의견을 내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발전이 없어서 결국 교체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자신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제가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7월, 교회는 제게 사무 본분을 안배했습니다. 학력은 높지 않지만 반응이 빠르고 무엇이든 빨리 배우며 저보다 본분 이행 효율도 높은 동역자 자매를 보고, 저는 자매와 협력할 때도 여전히 선뜻 제 의견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가끔 억지로 몇 마디 하더라도 자매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저는 따져보지도 않고 제 의견을 철회했습니다. 저 보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설친다고 할까 봐 자매 앞에서는 늘 눈치를 보며 위축되었고, 매우 수동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한심하고 힘들게 살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11월, 열등감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열등감은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일종의 정서지만, 사실 열등감이 생겨나는 근원은 사탄의 패괴와 사람의 생존 환경, 그리고 각자의 객관적 원인이다. 사회와 인류에게서 비롯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 전체가 악한 자의 권력 아래 있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고, 그 누구도 다음 세대를 진리에 따라,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교육하지 못하며, 사탄에게서 온 것으로 교육하기 때문이다. 사탄의 것으로 다음 세대를 가르치고 인류를 가르친 결과, 사람의 성품과 본질이 패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정서가 생겨나게 되었다. … 열등감이라는 정서를 예로 들겠다. 네 부모가, 스승과 웃어른이, 그리고 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네 자질, 인성, 인격에 대해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평가를 내리고, 궁극적으로 네게 공격, 박해, 억압, 속박, 결박을 가해 결국 너로 하여금 반항할 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꾹 참으면서 살게 하고, 원하지 않지만 부득이하게 찍소리도 못 하고 이런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최종적으로 생겨나는 정서는 기쁨도, 만족도, 긍정적인 것도, 발전적인 것도, 삶에 더 큰 동력과 명확한 방향성을 주는 것도 아니며, 확실하고 정확한 인생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때 생기는 것은 깊은 열등감과 같은 정서다. 이러한 정서가 생기면 너는 무력감을 느낀다. 일이 닥쳐 네 관점을 발표해야 할 때, 하고 싶은 말과 표현하고 싶은 관점을 마음속 깊이 수없이 곱씹지만,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못한다. 다른 사람이 너와 똑같은 관점을 말하면 너는 그저 속으로 네가 남보다 못하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에 같은 환경이 닥쳤을 때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자. 무턱대고 나서지 말자.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자. 난 안 돼. 난 멍청해. 난 우둔해. 난 바보야. 나를 감출 줄 알아야 해. 듣기만 하고 말하지는 말자.’ 이런 점으로 볼 때, 사람에게 열등감이라는 정서가 생겨나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나면 사람의 자유 의지와 하나님이 부여한 사람의 정당한 권리가 이미 박탈당한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박탈당한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박탈한 것이냐? 그건 너 자신도 명확히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아무도 명확히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과정에서 네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너는 남들 때문에 해를 당하는 동시에 너 자신 때문에도 해를 당했다. 어째서냐? 좀 전에 말했듯이 네게 생긴 열등감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객관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체 의식이 생겼을 때부터 네가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은 전부 사탄의 패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을 바라보는 그런 관점은 이 사회와 인류가 네게 주입한 것이지 하나님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네 열등감이 언제, 어떤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든, 네 열등감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든, 너는 그러한 정서에 결박당하고 통제당할 수밖에 없으며, 사탄이 네게 주입한 방식에 따라 주변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할 수밖에 없다. 열등감이 네 마음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면 네게 심각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네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도 주도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내적 상태를 정말 잘 아십니다. 제 모습이 바로 그랬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반응이 느리고 머리가 나쁘며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제 의견을 밝힐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항상 물러섰고 실수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학창 시절 이해력이 부족하고 머리 회전이 느려 한번 배우면 바로 아는 똑똑한 친구들과 달랐던 저는 선생님께 늘 머리 나쁘고 어리석은 아이로 평가받았습니다. 선생님의 비아냥과 친구들의 비웃음 때문에 저는 깊은 열등감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후로 머리 회전이 빠른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그런 사람들이 자질이 좋은 사람이고 하나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머리 회전이 느린 저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고, 본분도 매우 수동적으로 이행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선뜻 제 의견을 말하지 못했고, 가끔 의견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완전히 수긍되지 않더라도 열등감 때문에 제 생각을 말해 가며 함께 토론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자매들이 머리도 좋고 자질도 좋으니 분명 저보다 문제를 더 정확하게 볼 것이라고 생각해 제 생각을 전부 부정해 버렸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정서는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처럼 제가 의견이 있어도 밝히지 못하게 저를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저는 기꺼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조종당하며 한심하게 살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조차 협력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본분을 감당하지 못해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제게 미친 부정적 정서의 해악이 너무나 컸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열등감이 됐든 다른 부정적 정서가 됐든, 너는 그러한 정서를 일으킨 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선 그러한 말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이 너에 대해 내리는 평가와 결론은 그게 네 자질과 재능에 대한 것이든, 인품에 대한 것이든 전부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고, 인식하여 열등감과 같은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 인성이 어떠한지, 자기 자질과 재능이 도대체 어떠한지, 자기한테 어떤 특기가 있는지 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네가 원래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하는데 누군가가 음치라며, 음 이탈을 한다며 항상 트집을 잡고 너를 깎아내린다고 하자. 그러면 너는 네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를 엄두를 못 낸다. 그 세인들 때문에, 그 바보나 어리석은 자들이 너에 대해 내린 부정확한 평가와 단정 때문에 네 인성에 마땅히 있어야 할 권리가 제한당하고 네 재간이 억압당한다. 결국 너는 노래 한 곡도 감히 못 부르게 되고, 너 혼자 있을 때만 큰 소리로 노래하며 억눌렸던 것을 해소할 엄두를 낸다. 평소에 너무 심하게 억압당했기 때문에 다른 때는 노래할 엄두를 못 내고, 혼자 있을 때만 겨우 노래를 부르며 자기의 우렁찬 노랫소리를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운 시간이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남이 네게 준 상처 때문에 너는 자기가 도대체 뭘 할 줄 아는지, 무엇에 능하고 무엇에 서툰지 알지 못하고 똑똑히 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가늠해야 한다. 자기가 배운 것, 자기 장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 자기 결점과 부족함은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자기 자질이 과연 좋은지 부족한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와 인식이 필요하다. 만약 자기 문제를 명확하게 보고 제대로 인식하기가 힘들다면 분별력 있는 주변 사람에게 평가를 부탁해도 된다. 그의 말이 정확하든 아니든, 최소한 네가 자기에 대해 기본적인 판단을 내리고 자기를 규정하는 데에 참고 사항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 속에서 차츰차츰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열등감이라는 정서는 사람이 분별하고 각성하고, 진리를 구할 수 있다면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학창 시절 저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는 정확하지 않았고, 스스로에 대한 저의 평가 역시 객관적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열등감을 해결하려면 저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판단해야 하며, 저에 대한 주변 형제자매들의 평가와 견해도 들어봐야 정확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역자 자매에게 저를 평가해 달라고 했습니다.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자매님은 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부족하지 않아요. 문제도 어느 정도 알아보고, 받아들일 만한 관점이나 의견도 곧잘 제시하시잖아요. 가끔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묻는 건 자매님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원칙을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 궁금해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자매님은 매번 자신을 부정하더라고요. 앞으로 자매님 생각이 원칙에 맞는다고 생각되면 다 같이 교제하고 토론하게 말씀하세요. 그것도 본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거니까요.” 그 후로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제 관점을 말하는 훈련을 했고, 대부분의 제안을 동역자 자매도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자매는 사무적인 일 처리는 저보다 빠르지만, 편지를 쓰거나 형제자매와 교제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자신은 그런 일에 서툴다며 제게 많이 부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며 관련된 진리를 묵상함으로써 형제자매들을 도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진리를 이해할 수 있었고, 비록 반응은 남보다 조금 느리지만, 천천히 생각하면 어느 정도 원칙을 깨닫고 묵상을 통해 실행의 길을 찾아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이 예전처럼 그렇게 짓눌리지 않았습니다.

2023년 5월, 리더는 제게 미술 디자인팀 책임자를 맡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척 긴장되었습니다. ‘자질이 부족한 내가 책임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까?’ 저는 그 자리에서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에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있다는 생각에 받아들였습니다. 얼마간 훈련한 후, 머리 회전이 빠르고 자질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역 능력도 뛰어난 두 동역자 자매를 보고 자매들이 제 반응이 느리다고 저를 싫어할까 봐 걱정되었고, 제가 책임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차라리 얌전히 팀원으로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렇게 부족하게 보이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저는 소극적으로 변해갔고, 본분도 수동적으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늘 저 자신이 형편없고 자질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리더가 저 대신 자질 좋은 사람을 안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로 사는 것이 마음속으로도 무척 괴로웠습니다. 지금 사역이 이렇게 바쁜데도 제가 노력하지 않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를 당장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머리 회전이 느린 것이 곧 자질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늘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진리에 부합하는 판단일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자질을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진리를 대하는 태도와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 전문적인 업무는 매우 빨리 배우지만 진리만 들었다 하면 멍해지고, 졸리고, 속으로 어리둥절해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혹자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학식이 높으니 자질이 좋다고 생각한다. 학식이 높다고 자질이 좋다는 뜻이겠느냐? 그것은 자질이 좋다는 의미가 될 수 없다. 사람의 자질을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이해도를 통해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말재간이 좋고 머리를 잘 굴리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매우 능숙하지만, 설교를 들을 때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체험 간증을 얘기할 때 글귀와 도리만을 늘어놓아 문외한처럼 보이며,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알고 보니 높은 학력, 똑똑한 머리, 유려한 언변이 좋은 자질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시는 기준은 그 사람의 학력 수준이나 머리 회전 속도가 아니라,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에 있었습니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정하게 이해하고 인식하며, 자신의 패괴 본성을 반성하고 인식할 줄 압니다. 또한 문제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 말씀 속에서 정확한 실행 원칙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반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비춰보면서 인식할 줄 모르며, 일이 닥쳐도 실행 원칙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도리나 말하고 규례나 지킬 뿐입니다. 저 자신을 비춰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대부분의 경우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문제를 깊게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어서, 자질 좋은 사람처럼 빨리 이해하고 깊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형제자매들이 교제해 주면 저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 자질은 진리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평범한 편이었습니다. 지금 책임자 본분을 이행하면서 잘 파악하지 못한 원칙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지만, 동역자 자매들의 자질이 좋아 그들과 함께 협력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본분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원칙을 몰라서 제 반응이 느린 것을 보고 스스로 자질이 부족하다고 규정하고는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더 노력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역까지 지체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닫고, 저는 제 자질을 올바르게 대하고 제 부족한 점을 이성적으로 직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열등감에 시달렸던 것에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외에 또 어떤 패괴 성품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집착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이는 그의 성품 본질 안에 있는 것으로, 한때의 흥미도 아니고 한순간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생명 속에, 뼛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그의 본질이라고 한다. 즉,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다른 게 아닌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자 평생 추구하는 목표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이런 것을 고려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될까? 내 명예는 또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일을 하면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의 내 지위가 올라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에 속한 것이자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지위와 명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이런 식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의 매일의 삶과 상태, 매일의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무엇이든 모두 좋은 명예와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가 명예와 지위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 추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명예와 지위만 생각한다고 밝히셨습니다. 제 모습을 돌아보니 저 또한 적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명예와 지위를 끔찍이 아꼈습니다. 어려서부터 반응이 느리고 이해력이 부족했던 탓에, 질문에 잘못 대답했다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 후로는 다시는 대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틀려서 남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편차가 생겨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으면, 제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 후로는 본분을 이행할 때 의견을 내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분을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책임자 본분을 이행할 때, 제 반응 속도와 사역 능력이 동역자 자매에 미치지 못하자 리더에게 저를 교체해 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 역시 제 체면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역 성과를 통해 제가 모든 면에서 동역자 자매에 뒤처진다는 사실을 리더에게 간파당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온종일 명예와 지위만 생각했던 저는 이행하는 본분이 제 명예와 지위에 지장을 주면 소극적으로 변해 본분을 소홀히 하고 도망치거나 배반하려 했으며, 심지어 교회 사역이 지체되는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진리 추구는 어떤 각도에서 말하든 가장 중요하다. 인성 측면의 결점과 부족함은 피할 수 있지만 진리 추구의 길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네 인성이 아무리 완벽하고 고상해도, 혹은 다른 사람보다 결점이 적고 특기가 많아도 그것이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진리 추구를 대체할 수도 없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여 깨달은 진리가 많으며 깨달은 진리가 매우 깊고 실제적이라면 인성 측면의 여러 결점과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추구하면 사람의 많은 결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제 자질이 그다지 좋지 않고 일이 닥쳤을 때 남들보다 반응이 느린 것은 바꿀 수 없는 선천적인 결함입니다. 하지만 지금 사역의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은 인성의 결함 외에도, 제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원칙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만약 제가 깨닫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더욱 진리 원칙을 구하면서, 체면을 내려놓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제하며 토론했다면, 더 많은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본분을 이행하는 데도 유익했을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나니, 저는 더 이상 책임자 본분을 피하지 않게 되었고, 그 후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저희가 함께 새로운 그림 원칙에 관해 교제한 후, 형제자매들에게 교류하고 실행해 줄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저는 책임자가 된 이후로 이렇게 중요한 편지를 쓰는 것은 처음이라, 혹시 잘못 써서 편차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무척 긴장되었습니다. 또다시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제가 쓴 편지가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선 능동적으로 협력하고 부족한 부분은 나중에 동역자 자매와 함께 보완하면 됩니다. 그렇게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상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느껴졌고, 일부 원칙들은 저희가 처음 교제했을 때보다 더 명확해졌습니다. 본분에 전념할 때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책임자 본분을 이행한 지도 이제 1년이 넘었습니다. 원래 협력하던 자매는 본분이 조정되었고, 리웨(李月) 자매가 저와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리웨 자매는 제가 이전에 그림 그리는 본분을 이행할 때 저희 팀 팀장이었습니다. ‘예전에 내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리웨 자매도 아는데, 이번에 같이 협력하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체면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결점이 있었든, 혹은 지금 협력하는 동안 어떤 부족함이 드러나든, 저는 모두 담담하게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능동적으로 리웨 자매에게 사역 절차를 소개해 주었고, 사역을 상의할 때도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다 리웨 자매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면 제 생각을 말했는데, 그중에는 받아들여진 의견도 있었고 받아들이기에 부적합한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여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교제를 통해 깨닫게 된 원칙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리웨 자매가 “예전에 같이 협력할 때는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하셨는데, 이번에 협력하는 걸 보니 많이 변하셨네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열등감의 늪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 덕분에 거둘 수 있었던 성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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