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본분 이행의 결과

2025.5.20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6천 년 경영 사역 기간에 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네게 영광이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영광이지 굴욕적인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얻은 이 영광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그것에 보답하는가이다. 하나님이 높여 주었으니 너는 그 호의를 무시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보답해야겠느냐? 하나님은 네 돈이나 네 목숨을 원하지 않는다. 네 집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어떤 좋은 물건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겠느냐? 하나님은 네 진심과 충성심을 원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9)> 중에서) 이 말씀을 읽고, 제가 예전에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해서 책망과 훈계를 받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리더 본분을 이행하게 해 주셨지만, 저는 그게 높여 주심인 줄 모르고 본분을 부담과 짐으로 여기다가 결국 사역을 지체시켰고, 그 일은 저에게도 마음의 빚과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2023년 4월, 윗선 리더는 저와 두 명의 파트너 자매에게 영상 사역과 설교 원고 사역을 맡겼습니다. 처음에는 단단한 각오로 파트너 자매들과 함께 부적합한 팀장과 책임자들을 조정하고, 각 팀의 사역 진도를 점검하고, 사역 오류를 잡아 내고, 사역 계획을 정비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비록 업무량이 많아서 좀 바쁘긴 했지만 커다란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후 리더는 저에게 시나리오 사역을 집중 점검하도록 안배했습니다. 그 사역은 저에게는 무척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력을 다해도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는 데다 리더가 직접 안배한 일이어서 게을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나리오 사역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다른 팀 형제자매들이 질문을 해 오면 간단한 일은 되는대로 처리했지만 머리를 쓰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고민해야 하는 일은 그냥 못 본체하거나 곧바로 파트너 자매에게 보내서 처리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메시지 확인을 하고도 바로 ‘읽지 않음’으로 설정해 버린 적도 많았습니다. 그 즈음 파트너 자매가 다른 팀 사역도 한번 점검하라고 일깨워 주었는데, 저는 입으로는 알았다고 하고 나중에는 하는 시늉만 하다가 그마저도 며칠 못 가서 귀찮아하고 신경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날 때면 다른 팀 사역을 점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업무에 부족한 점도 많은데, 그럴 시간이면 차라리 전문 지식을 좀더 공부해서 빨리 성장하고, 그래서 시나리오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는 게 더 낫겠어. 내가 본연의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니까 파트너 자매들도 이해해 주겠지.’ 이렇게 해서 그마나 마음속에 있었던 약간의 죄책감도 사라졌습니다.

하루는 보니까 영상 사역 진도가 느려서 팀장에게 문자를 보내 상황을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팀장은 이유를 줄줄이 보내 왔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전부 억지 같아서 상황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이 사역은 파트너 자매가 주로 담당하는 거니까 자매도 점검하겠지. 그러다 내 사역이 지체되면 안 되니까 적당히 관여하자.’ 얼마 후 리더가 영상 사역 진도가 너무 느려서 사역이 심하게 지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무책임하다며 저희를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역을 담당한 자매를 교체했습니다. 잠시 후 리더는 저를 나무랐습니다. “자매님은 시나리오 사역을 맡겼다고 해서, 그 사역만 잘하면 그만이고, 나머지 사역은 아무리 큰 문제가 생겨도 본인하고는 관계 없다는 겁니까? 고생할까 봐 꺼리는 건가요? 너무 무책임해요. 지위만 차지하고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도 않잖아요. 그게 바로 거짓 리더입니다. 신뢰할 가치도, 양성할 가치도 없어요!” 리더의 말에 몹시 찔렸습니다. 저도 제가 최근에 사역을 많이 점검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리더의 책망은 모두 사실이었죠. 하지만 나중에는 좀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실제적인 사역을 아예 안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시나리오 사역에 에너지를 쏟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저는 제 내적 상태에 맞춰,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양심과 이성이 없고 인성도 없다. 부끄러움을 모를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특징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무척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문자 그대로는 이해하기 쉽다. 바로 이익만 꾀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마음을 기울이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수 있으며, 정성과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 없는 일은 본체만체하며 내버려둘 뿐, 남이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누가 방해하고 교란해도 상관하지 않는데, 이는 그와 무관한 것이다. 좋게 말하면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부류의 사람은 비열하고 야비하며 옹졸한 사람으로, 우리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말로 규정할 수 있다. …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어떤 사역을 맡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입을지만 생각하고, 현재 자신에게 유리한 그 정도의 일만 고려한다. 교회의 중요한 사역이 그에게는 그저 부업 같은 일이라 아예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촉구할 때만 움직이고, 그저 자신이 하기 좋아하는 일,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지킬 수 있는 일만 한다. 하나님 집에서 안배한 일, 복음 확장 사역,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은 그가 보기에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사역에 어떤 어려움이 있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문제를 발견하여 그에게 알려도, 또 아무리 간곡히 말해도 그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인 양 아랑곳하지 않고 참여하지도 않는다. 교회 사역에 아무리 큰 문제가 생겨도 관심이 없다. 문제를 그의 앞에 갖다 놔도 그저 대충 처리할 뿐이다. 상부에서 직접 그를 책망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라고 명령할 때라야 상부에 보이기 위해 억지로 실제적인 사역을 어느 정도 한다. 그 후엔 또 자기 일로 바쁘다. 교회의 사역, 전반적인 상황과 관련된 중요한 일에는 관심이 없고 신경도 쓰지 않으며, 심지어 문제를 발견했더라도 처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어떤 문제를 제기해도 그는 대충 대답하고 얼버무리며 마지못해 대응한다. 이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모습 아니냐?(<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자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바로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상태가 그랬으니까요. 비록 처음에는 열정도 있고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사역에 일단 문제가 생기면 저와 파트너 자매 모두가 책임져야 하니까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하고, 사역이 잘되면 저 자신도 수혜자가 된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리더가 저에게 시나리오 사역을 주로 점검하라고 하자, 저는 잘하지 못하면 제가 자질이 부족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날까 걱정되어 오로지 시나리오 사역에만 마음을 쏟으며 팀의 사역과 업무 학습, 팀원들의 내적 상태를 가급적 두루 살피려 했습니다. 시나리오 사역에 노력을 기울인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나중에는 명백히 다른 사역을 점검할 시간과 에너지가 있어어도 신경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어떤 때는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대충 형식적으로만 점검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어떤 사역들은 제가 직접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서 문제가 생겨도 리더가 직접적으로 제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테니 마음을 덜 써도 저에게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업무를 더 공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 사역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채 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상태는 적그리스도의 모습과 판박이였습니다. 일을 할 때 이것저것 계산해서 제 명예와 지위에 유리하면 마음을 기울이며 수고와 대가를 기꺼이 치르려 하고, 저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등 떠밀어야 겨우 움직이는가 하면, 문제를 발견해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의 본분 이행 상태로 보면 저는 힘 쓰는 자,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 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을 누리고도 본분을 잘할 생각이 없었고, 머릿속에는 오직 제 명예와 지위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맘 놓고 다른 사역을 내버려둔 것은, 처음에 시나리오 사역을 받았을 때 사역이 많이 어려워서 신경을 많이 쓰려고 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다른 사역은 신경쓰지 않아도 다들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했어. 그렇다고 실제적인 사역을 전혀 안 한 것도 아닌데, 윗선 리더는 왜 내가 거짓 리더라고 하는 것일까?’ 저는 리더 일꾼의 직책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리더는 한 가지 사역뿐만 아니라 사역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 만약 네가 보기에 특별히 중요한 사역이라면 그 사역을 관리하고 감독해도 되지만, 다른 사역도 짬을 내서 검사하고, 지도하고, 밀착 관리 해야 한다. 만약 한 가지 사역을 잘한 것에 만족하며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역은 다른 사람에게 안배한 채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이는 무책임한 모습이며 직무 유기이다. 네가 리더로 있는 이상, 네가 책임지는 사역이 몇 가지이든 계속 관여하고 알아보는 동시에 그것들을 검사하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하는 것이 리더의 책임이다. 이것이 너의 본직 사역이다. 따라서 네가 교구 리더나 지역 리더, 교회 리더가 되었든, 아니면 어떤 팀의 팀장이나 책임자가 되었든 자신의 직책 범위를 파악한 후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했는지,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했는지 늘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담당하는 사역 중에 하지 못한 사역은 무엇이고, 하기 싫었던 사역은 무엇이며, 성과가 좋지 않은 사역은 무엇이고, 원칙을 숙지하지 못한 사역은 무엇이었는지를 언제나 성찰해야 한다. 동시에 사람들과 교제하며 물어보는 법을 배워야 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사역지침 안에서 실행 방안과 실행 원칙,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역지침이라도, 행정 분야, 인사 분야, 교회 생활 분야, 각 업무 사역 분야를 막론하고 그것이 리더 일꾼의 직책에 관계된 것이라면, 즉 리더 일꾼이 다해야 할 책임이자 리더 일꾼이 책임져야 할 범위에 속하는 일이라면, 너는 그 사역들을 모두 챙겨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경중과 완급을 구분해야 하며, 어떤 사역도 지체하면 안 된다. 어떤 리더 일꾼은 말한다. “제가 초능력자도 아니고 사역지침 안에 포함된 사역이 한두 가지도 아닌데, 전부 저더러 책임지라고 하면 전혀 감당이 안 됩니다.” 네가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사역들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하도록 안배했느냐? 안배한 다음에는 밀착 관리를 하고 관여하였느냐? 잘 검토했느냐? 설마 관여하고 검토할 시간조차 없는 건 아니지 않으냐? 그 정도 시간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어떤 리더 일꾼은 말한다. “저는 한 가지 사역만 할 수 있습니다. 저더러 검토하라고 시키시면 저는 한 가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그렇다면 너는 못난 인간이며, 자질이 너무 떨어지고 사역 능력이 없어서 리더 일꾼을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 네 자질이 부족해서 사역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회 사역과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성장을 지체시키지 말고 너에게 맞는 일만 하면 된다. 만약 이런 이성이 없다면 너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이다. 네가 만약 자질은 보통이지만 하나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훈련하기를 원한다면, 그런데 사역을 잘 하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자질이 좋은 사람을 둘 찾아 함께 협력하며 사역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그것 또한 이성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0)> 중에서) 하나님의 첫 마디 말씀이 제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리더는 모든 사역을 책임지는 사람이고, 마땅히 자기 직책 범위 내의 모든 사역을 일일이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역을 점검할 때는 경중과 완급을 구분해서 특별히 중요한 사역은 집중 점검하고, 나머지 사역은 돌볼 여력이 없으면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넘길 수 있지만, 본인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에게 넘기고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검사해서 문제를 발견하면 즉시 해결해야 하고, 본인 상상에 따라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역만 점검하고 나머지는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저는 ‘매일같이 시나리오 사역에 몰두하며 사람들과 같이 대본을 작성하고 문제를 토론하는데, 이것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일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상상대로 본분을 이행했으니, 많은 사역들을 처음에 가끔 신경쓰다가 끝에 가서 내버려둘 때까지 양심에 걸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직무 유기를 저질렀다고 리더에게 책망을 받았을 때는 오히려 억울해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무감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한동안 한 가지 사역으로 바쁘다는 것이 다른 사역을 점검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도 나와 있습니다. “네가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사역들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하도록 안배했느냐? 안배한 다음에는 밀착 관리를 하고 관여하였느냐? 잘 검토했느냐? 설마 관여하고 검토할 시간조차 없는 건 아니지 않으냐? 그 정도 시간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저는 주로 시나리오 사역으로 바빴지만, 마음이 있었다면 다른 사역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가급적 두루 살펴야 했습니다. 만약 에너지가 부족하면 파트너 자매와 잘 소통해서 자매더러 좀더 점검해 달라고 하고, 문제가 생기면 같이 의논해서 해결하면 됩니다. 만약 여러 가지 사역을 책임지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면 윗선 리더에게 보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최소한 사역이 지체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제 행동은 무책임한 행동에 속하며, 바로 거짓 리더의 모습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한동안 본분에 무책임했습니다. 정말 리더를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저에게 이렇게 많은 훈련 기회를 주었는데, 저는 감사할 줄은 모르고, 오히려 본분을 부담과 짐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정말 양심이 없고, 너무나 인성이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저를 교체하지 않았으니, 회개하고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하겠습니다.’

그 후 리더는 저에게 체험 간증 영상 촬영 사역도 맡겼습니다. 저는 무척 감격했습니다. ‘이번에는 열심히 회개하고 본분에 좀더 부담을 갖자.’ 그 후로 저는 매일 스케줄을 거의 늦은 밤까지 꽉 채우고 그렇게 한참을 밤 늦게까지 일했습니다. 사역 성과가 조금 올라간 것을 보며 속으로 무척 기뻤습니다. ‘이번에는 실제적인 사역을 좀 했으니 리더도 내 회개하는 모습을 보았을 거야.’ 나중에는 또 체험 간증 영상 촬영을 점검할 책임자를 찾게 되어 시간적으로 좀 여유로워지고, 교회의 다른 사역에 참여할 시간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일어난 일로 인해 저는 또다시 드러났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물품을 한 가지 구입해야 했습니다. 파트너 자매는 교회 지출에 관계된 일이라 저에게 같이 상의하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토론에 참여했는데, 얼마 못 가 또 속으로 슬슬 귀찮아졌습니다. 그 일을 의논하는 것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것 같았고, 게다가 이것은 파트너 자매가 주로 점검하는 일이라 잘 되더라도 리더는 제가 참여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할 테니, 이럴 시간에 차라리 체험 간증 영상을 더 찍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였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제 직책 범위에 속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체면 때문에 토론에 참여하는 체라도 해야 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한 팀의 영상 사역도 이따금씩 문자로만 확인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있었지만,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잖아. 아무래도 리더가 최근 집중하고 주목하는 사역에 좀더 시간을 쓰는 게 낫겠어. 그런 사역은 문제가 생기면 내가 곧바로 책임을 추궁당하니까.’ 그래서 저는 그 팀의 영상 사역을 자세히 점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윗선 리더가 갑작스레 저희를 찾아와서 지금 처리해야 할 영상이 열 편 넘게 쌓였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망했다. 이건 내가 직접 담당하는 사역인데, 이렇게 큰 문제가 생겼다면 직무 유기잖아?’ 잠시 후 리더는 저를 책망했습니다. “지난 번 문제를 지적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무책임하게 나오나요! 전에 시나리오 사역을 안배했다고 그것만 신경쓰더니, 이제 간증 영상을 맡기니까 이것만 신경쓰는군요. 리더가 돼서, 당장 하고 있는 사역만 신경쓰고 나머지는 내버려둬도 되는 겁니까? 자매님은 고생을 꺼리고 부담감이 없어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니라고요! 자매님 같은 사람이 여러 가지 사역을 책임질 수나 있겠어요?” 리더는 저에게 몇 가지 사역은 그만 맡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조정을 받으니 마음이 무척 착잡했습니다. ‘나란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인성도 부족해. 아마 정말 구제 불능인지도 몰라.’ 하지만 나중에는 또 조금 억울했습니다. ‘최근에는 나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왜 또 무책임하다고 책망받아야 하지? 내가 정말 조금도 변화하지 않은 건가?’

한번은 하나님께서 본분 이행에 대해 교제하신 말씀을 읽고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제서야 저 자신의 문제를 조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해 보아라, 사람이 어떤 내적 상태와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일을 해야 선행을 예비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최소한 일을 할 때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하며, 진리 원칙대로 일을 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것이 핵심이다. 늘 수동적으로 군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런 너는 마치 하나님 집 사람이 아니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너는 급여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용주의 요구대로 일하며, 자발적이 아니라 매우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듯하다. 이익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아예 하지 않을 것이고, 또는 아무도 네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방식은 선행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을 가리켜 몹시 어리석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수동적이고, 생각이 미치는 것도, 시간과 정력을 들이면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기다리고 관망하기만 하니 골칫거리가 된다. 이는 참으로 가련한 일이다. 어째서 참으로 가련하다고 하겠느냐? 첫째, 너는 자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둘째, 경험이 부족한 것도 아니며, 셋째,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도 아니다. 너는 그 일을 할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시간과 정력을 들이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고 선행을 예비하지 않았으니, 너무도 안타깝다. 왜 안타깝다고 하겠느냐? 네가 몇 해가 지난 후 돌아보면 후회할 것이다. 그 해 그달 그날로 돌아가 그 일을 하고 싶어도 세월이 흘렀으니, 두 번 다시 같은 기회가 오지는 않는다. 그 기회는 그렇게 지나간 것이고, 그렇게 놓쳐 버린 것이다. 만약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 등 육적인 누림을 잃은 것이라면 별것 아니다. 그것은 헛된 것이며, 네 생명 진입과 선행 예비, 종착지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 일이 너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나 평가와 관련되고, 심지어 네가 걷는 길과 종착지까지 관련된다면, 그 기회를 놓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일은 앞으로 네 생존의 길에 오점과 유감으로 남을 것이며, 네 평생 다시는 만회할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안타까운 일 아니겠느냐? 만약 네 자질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 일을 맡을 수 없다면 그것은 안타깝지 않다. 하나님 집에서는 다른 사람을 안배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준 기회거늘, 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 기회를 잡지 않고 손에서 놓쳐 버렸으니, 너무나 안타깝다! 이는 너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고 하나님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은 네가 그 일을 꿰뚫어 보고 감당할 수 있도록 너에게 자질과 수많은 좋은 조건을 주었건만, 너는 올바른 태도도, 충성심도, 진심도 없었으며, 온 힘을 다해 잘하려 하지도 않았으니, 하나님을 너무나 실망시킨 것이다! … 만약 진리와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늘 건성이고,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실행하지 않고, 꾸물거리며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없다면, 비록 겉보기에는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도 않으며 제멋대로 굴지 않고 나쁜 짓을 일삼지도 않아서 점잖고 주제를 아는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요구한 일을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하지 않고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도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것이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길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거짓 리더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서야 저는 비로소 스스로를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번 리더에게 책망받은 뒤로, 제가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른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해서 본분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내자, 저에게 회개의 모습이 나타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리더가 집중하고 주목하는 사역이 아니면 또 귀찮아서 신경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제가 보이는 ‘자발성’과 ‘적극성’에 기만적인 성질과 불순물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책망과 훈계를 받고는 조정되고 교체되는 것이 두려워서,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키고자 일시적으로 수고와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기껏해야 보신 행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은 주인이 요구해야 품삯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한다고 하셨듯, 그것은 결코 진심에서 나온 행위가 아닙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선행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진정한 본분 이행은 자발적이고 부담이 있는 것이며, 본분에 충성을 다하고, 진리 원칙을 구해 열심히 사역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최근 제 모습을 떠올려 보니, 리더가 체험 간증 영상 촬영 사역을 맡기자 오로지 그 일만 하고, 제 이익에 관계되지 않는 나머지 사역에 대해서는 무척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하며, 다른 사역들을 부담과 짐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영상이 적체된 문제는 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제가 전혀 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나마 보였던 약간의 좋은 행위도 단지 지위를 보전하고 체면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할 뿐, 제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리더가 안배해 준 일만 하고, 제 명예, 지위와 관련 있는 일만 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본분 이행이 아닙니다. 사실 리더는 원래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더 많이 신경써야 합니다. 책임지고 싶지 않다면, 제 쪽에서 먼저 리더에게 얘기해서 다른 사람이 리더를 맡도록 해야 합니다.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으면서 지위만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집에 해를 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지위의 복을 탐하고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는 거짓 리더가 아닙니까? 또한 리더가 저를 ‘신뢰할 가치도, 양성할 가치도 없다’고 평가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교회의 전체 사역을 방치했고, 정말 신뢰할 가치가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담당한 사역이 하나씩 줄고 있는데, 정말 잃어 버리는 순간이 오면, 저는 정말 후회할 것입니다. 저는 원래 리더가 직접 맡긴 사역만 지키면 지위를 보전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대가로 본분을 잃고, 선행을 예비하여 진리를 얻을 기회를 하나씩 잃고 있으며, 이것은 제 최대의 손해입니다. 만약 계속 이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일관되게 무책임하고 일관되게 무성의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러면 제 인격과 존엄성이 완전히 끝장날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망치고, 자신이 구원받을 기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종종 이 일을 떠올리며 제가 너무 이기적이고, 본분을 이행할 때 자기 이익만 고려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와 관계된 하나님 말씀을 떠올리고, 찾아서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저는 이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사탄이 주입한 각종 독소와 생존 법칙이 사람의 생명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 내는 것은 모두 사탄의 형상이며,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지배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무척 이기적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도움을 청할 경우, 도와줘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흔쾌히 대답하고, 제가 잘 보이고 싶거나 의지하고 싶은 상대라면 힘껏 도왔습니다. 만약 이익을 전혀 얻을 수 없다면, 귀찮아하고 심지어 상대를 모른 체하려고 했습니다. 아빠도 그러셨습니다. “넌 애가 어쩜 그리 매정하냐?”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하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다 그런 거 아냐!’ 교회에 와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속으로 제 나름의 계산이 있었습니다. 사역을 할 때도 저에게 도움 되는 일만 하고, 교회 사역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자매가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만약 제가 직접 담당하는 사람이면 사랑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들 앞에서 좋은 리더라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제가 직접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면, 비록 상대가 패괴 성품으로 살고 있는 것을 알더라도, 그들을 도우려면 하나님 말씀을 찾아야 하고, 에너지와 노력을 들여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에 귀찮아서 모른 체하려 하거나, 아니면 대충 한두 마디로 끝냈습니다. 저는 그런 행동을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기심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가져왔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사실 각 사역을 점검할 때, 그 일은 사람을 바라보고 일을 바라보는 각 방면의 진리와 각종 문제를 처리하는 원칙에 관련됩니다. 저는 어떤 사역들에 참여하지 않음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진리를 얻을 많은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밖에도 하나님이 저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리더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신 것은 마음 쓰고, 부담을 가지는 법을 배워서 점차 정상 인성을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는 것인데, 저는 좀더 짐을 지고 마음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입만 열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하나님께 보답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드러낸 모습은 하나님에 대한 기만 뿐이었습니다. 제 인성은 너무나 형편없습니다! 제가 그래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가 바로 제가 봉사를 마치고 징벌 받을 때가 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만약 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단순히 “전 저 자신이 정말 미워요! 어떻게 그렇게 비열하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정말 제 뺨을 몇 대 때리고 싶네요.”라며 자신을 미워하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핵심은, 잘못했다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의 지배를 받았는지, 왜 진리를 실행하지 못했는지,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 일을 한 근거와 원칙은 무엇인지, 일이 닥쳤을 때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랐는지, 의식적으로 사탄에 속하는 자신의 사상과 관점, 야심과 욕망, 속셈과 계획을 저버렸는지 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몇 가지 ‘의식적으로’를 모두 해냈다면, 그것이 바로 선행을 예비한 것이다. 이는 좋은 일이고, 어느 정도 수확이 있는 것이다. …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선행을 예비하는 것은 아니다. 악을 행하는 것과 선행을 예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개념이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이 마땅히 지녀야 할 모습이다. 예를 들어 보자.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은 살인을 했지만 저는 하지 않았고, 그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지만 저는 훔치지 않았으니, 저는 좋은 사람이에요.” 이것이 자랑할 만한 일이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게 옳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개념을 혼동하는 것이다. 도둑질을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고, 방화를 하지 않고, 간음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악한 짓을 하지 않고 법을 어기지 않는 것은 좋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만의 기준이 있다. 악을 행하는 것과 선행을 예비하는 것 또한 서로 다른 개념이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정상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선행을 예비한다는 것은 주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 원칙에 따라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며, 충성을 다하고, 기꺼이 고생을 하며 대가를 치르고, 책임을 지고,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행한 것은 기본적으로 다 선행이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일이든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일이든, 또 사람들이 눈여겨볼 만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하나님에게는 다 선행으로 보인다. 네가 선행을 예비하면 마지막에 네게 오는 것은 화가 아니라 복이다. … 그렇다면 선행은 결국 어떻게 정의되겠느냐? 네가 한 일이 최소한 너 자신과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이로움이 되어야 한다. 너 자신과 다른 사람, 하나님 집에 모두 이로움이 되면, 네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효과적일 것이고,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것이며, 하나님은 네게 점수를 줄 것이다. 그러니 이 몇 년간 너희가 예비한 선행이 얼마나 되는지, 그 선행들이 너희의 과오를 상쇄할 수 있는지, 상쇄한 후에 선행이 얼마나 남는지 판단해 보아라. 스스로 점수를 매기고 마음속에 확신이 있어야지,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저에게 길을 주셨습니다. 회개는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자신을 증오한다고 말하는 것이 달라졌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역시 그 사람이 실제적으로 살아 내는 것과 본분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교회 사역에 관한 일에서는, 문제를 발견했을 때 못 본 체하며 방관자가 되는지, 아니면 교회 이익을 지키는지가 한 사람의 인성과 품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행과 악행의 차이점을 교제하신 부분을 보고, 저는 한 사람이 악을 행하지 않고 교란과 방해를 저지르지 않았을 때, 이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성실한 사람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선행에는 자발적 요소도 있고 진리를 구하는 과정도 있으며,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하나님 뜻에 맞아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선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궁극적으로 선을 행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결말을 정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하나님을 믿은 후 본분을 이행하면서 한 많은 일은 오직 명예와 이익만을 위해서였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실행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자발적으로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고발한 적도 없었고, 형제자매들이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운 적도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 ‘각자 자기 집 문 앞의 눈을 치우고, 남의 기와의 서리는 신경 쓰지 마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을 신봉했습니다. 저는 교회 리더로서 제 직책 범위에 해당하는 많은 일들을 더 하고 싶지 않아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다가 사역을 그르쳤습니다. 이것은 악행에 속합니다. 진리 원칙을 근거로 판단해 보니, 제가 몇 년째 하나님을 믿으면서 선행을 거의 예비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행을 많이 쌓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저 자신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몇 년째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스스로를 하나님 집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교회 사역을 지킨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하나님, 회개하오니 저를 도와주시고 감찰해 주십시오. 진리를 실행하여 당신을 만족게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본분 이행 스케줄을 짰습니다. 매일매일의 사역을 합리적으로 안배하고, 매일 저녁 휴식을 취하기 전에는 다음 날 사역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에너지를 집중해서 사역을 좀더 많이 할 수 있었고, 다른 사역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이렇게 실행하고 나서, 합리적인 계획을 통해 사역 효율을 높이면 하루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다른 팀 형제자매들이 일이 생겨서 저를 찾아도 신경써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을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찰을 받아들일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왕 하기로 했다면 마음을 기울여 일해야지 대충 형식적으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끔 다른 사역을 점검하려면 귀찮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그 점을 의식하면 자발적으로 그 마음을 저버리고, 최선을 다해 세부적인 사역에 더 참여합니다. 저는 제 사탄 본성의 뿌리가 매우 깊어서 두 번의 책망과 훈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제 마음을 감찰하셔서 제가 본분을 무책임하게 이행할 때는 저를 채찍질하고 징계해 주시고, 그래서 제가 정상 인성을 살아 내고 양심 있고 이성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의 책망과 훈계를 통해 무책임한 본분 이행의 심각한 결과를 알게 해 주시고, 조금은 깨닫고 변화할 수 있게 해 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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