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함을 탐한 결과

2025.4.25

린이 자매에게

보내 주신 편지 잘 받았어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우리가 1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네요. 편지에서 제게 본분 이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물어보셨죠. 한순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한 차례 본분 조정을 겪으면서 제 안락함을 탐하는 본성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일이었어요. 이쯤 되면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실 것 같은데, 천천히 이야기해 드릴게요.

올해 1월 저는 문서 사역을 맡았어요. 책임자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은 원칙을 잘 알지 못했고,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도 몰랐죠. 그래서 협력하는 자매를 따라 배우며 훈련했고, 평소에도 각 팀의 사역을 주도적으로 파악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점점 각 팀에서 질문하는 문제가 많아지자, 그들의 내적 상태와 사역상의 문제와 편차를 바로잡기 위해 편지를 써서 교제해야 했고, 저는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지냈어요. 그런데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속으로 투덜대기 시작했어요. ‘이런 내적 상태를 해결하려면 각 문제의 근본 원인을 깊이 고민해야 하고,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도 찾아야 하니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 너무 힘들어!’ 저는 하루 종일 머리를 긴장 상태로 유지하고 싶지 않았고, 형제자매들이 질문을 적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면 제가 좀 더 편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던 중 또 두 명의 자매가 우리와 협력하게 되었어요. 저는 기뻤어요. 이제 제 사역 분량이 줄어들 테고, 그만큼 신경도 덜 쓰고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느 날, 어떤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고, 사역 성과도 떨어지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빨리 교제해서 해결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런 문제들은 나도 완전히 꿰뚫어 보지 못해서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도 찾아야 하잖아. 너무 신경 쓰여! 그냥 함께 협력하는 자매가 해결하도록 하자.’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귀찮게 느껴졌고, 결국 협력하는 자매가 해결하도록 떠넘기게 되었어요. 저는 본분 이행에 대한 부담은 점점 줄었고 매일 그저 정해진 대로 주어진 일을 해 나가기만 했어요. 만약 제게 할당된 일이 조금 많거나 어렵기라도 하면 기분이 상했고, 그저 간단한 일만 하면서도 진리를 구하는 데에는 힘쓰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어요. 함께 협력하는 자매가 제게 본분에 대해 부담이 없다고 지적하며, 잘 반성하고 해결하라고 말해주었지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러는 사이 점점 문제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졌고, 자꾸 졸음이 쏟아져서 사역 효율도 크게 떨어졌어요.

결국, 리더는 제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에 부담이 없고, 성과도 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저를 교체했어요. 그제야 저는 스스로를 반성하기 시작했죠. 어느 날,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어요.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폐인’이다. 바로 2급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고, 자질이 좋아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편안함을 즐기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며 바로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힘쓰는 것조차 기준에 맞지 않으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시켜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폐인’, ‘2급 장애인’, ‘짐승’,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살아갈 자격이 없다’ 등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저는 마음이 몹시 찔렸어요. 게으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가 느껴졌거든요.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책임자의 본분을 맡게 하신 것은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교제하고 해결할 수 있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고, 그것이 제가 져야 할 책임이었어요. 하지만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고, 사역 성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해결하려니 너무 복잡하고 신경써야 할 게 많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버렸어요. 심지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조차도 하지 않았죠. 복잡한 문제를 만나면, 분명 제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꿰뚫어 보지 못하겠다’는 둥, ‘못하겠다’는 둥 핑계를 대며 협력하는 자매에게 떠넘겨 버렸어요. 그렇게 저는 매일 단순한 일만 하면서 본분을 대하는 일에는 조금도 책임감조차 없었어요. 하루 종일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며 지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그저 얹혀사는 기생충과 다를 바 없지 않나요? 문득, 자질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본분 이행에 열심이고 최선을 다하는 형제자매들이 떠올랐어요. 그들이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저는 자질이 그다지 나쁘지도 않고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늘 육적인 것을 아끼고 안락함을 탐했어요. 본분을 이행하면서조차 조금의 수고나 고생도 감내하려 하지 않았고요. 정말 조금의 양심도 이성도 없었어요. 어떻게 책임자의 본분을 감당할 자격이 있겠어요! 제가 이렇게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혐오하시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계속 가다간, 힘써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었어요. 이 점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스스로를 진지하게 반성하기로 했어요.

그 후, 저는 묵상했어요. 제가 늘 안락함을 탐하고, 애써 고생하고 싶지 않아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어요.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생존의 토대가 된 사상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좀먹어 사람을 간사하고 나약하며 비열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은 끈기도,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하게 변했다.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 흑암 권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는 더더욱 없다. 사람의 사상과 삶은 썩어 문드러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관점 또한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며 비열하고 연약하다. 흑암 권세에 대해 어떤 증오심도 느끼지 못하고, 광명과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쫓아낸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계속 육적인 안락함을 추구하는 것은 제가 여태 이런 가치관을 신봉했기 때문이었어요.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통스럽고 짧은 인생 그냥 즐기자.’,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오늘은 그냥 즐기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인생은 고작 몇 십년인데,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는가.’와 같은 사탄 철학은 육적인 즐거움을 인생의 가장 큰 목표로 삼도록 만들었어요. 이러한 잘못된 관점의 지배로 저는 늘 안락함을 추구했고, 사람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야 하고,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면, 어릴 때 부모님께서 저를 애지중지 키우셨고, 어떤 일이든 제가 신경 쓰지 않도록 다 해주셨어요. 저는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고,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서 무엇을 하든 신경 쓰고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대학교에 다닐 때, 어떤 친구들은 대학원 입시를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며 공부했지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저 “인생은 고작 몇십 년뿐인데,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학사 학위가 있으니 너무 힘들지 않고 적당한 월급을 받는 직장을 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여전히 이런 생각을 버리지 못했어요. 늘 안락함만 추구하며 애쓰고 고민하는 것을 싫어했죠. 조금이라도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쉬운 일만 하려 했고, 그래서 발전도 더뎠어요. 하나님의 집에서 제게 책임자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양성해 주신 것은 저에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데, 저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오로지 육적인 것만 생각했어요. 형제자매들이 소극적이 되어가고, 사역 성과도 떨어지는 데도 신경쓰지 않았으며, 난이도가 있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버리고, 제가 감당해야 할 책임조차 다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저는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어요! 제가 계속해서 안락함을 탐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쉬운 일만 고르며, 몸을 사리고 요령을 부리는 바람에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 대신 발전한 것도 없었어요.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고, 예전에는 잘 해낼 수 있었던 일조차 잘 처리하지 못했어요. 마치 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에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 하나님께서는 성인이 책임감 있게 바른 일을 생각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를 바라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 마음속엔 오로지 육적인 즐거움 뿐이고 육적인 안락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면서 점점 더 타락하고 퇴폐적으로 변했고, 인간다움을 잃어갔어요. 저는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계속 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진리를 찾아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어요.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너희가 말해 보거라.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 …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힘이 닿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다. 최소한 양심에 참소가 없고, 본인의 양심에 떳떳하며,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태어난 가정, 교육 수준, 자질을 떠나 사람의 생존에서 알아야 할 도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걸어야 할 길, 사람이 살아야 할 삶, 의미 있는 삶 등 인생의 참된 가치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어요. 인간의 삶의 가치는 먹고 마시고 놀고 육적인 것을 즐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데 있다는 것을요. 하나님께서 저를 말세에 태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며, 본분을 다하게 하신 것은 정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였어요. 하나님께서는 제가 안락함에 빠져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원치 않으시며, 제가 진리를 잘 추구하고 본분을 다하며, 성품의 변화를 이루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진정한 사람의 형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죠. 돌이켜 보면, 제가 평소에 생명의 진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훑어보고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생명 경험은 얕고, 진리를 깨닫는 것도 적었어요.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와 어려움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은 제가 이 진리의 분야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방증이었어요. 그때야 말로 제가 진리를 구하고 진리로 채워야 할 때였어요. 제게 진정으로 책임감이 우러나와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을 때, 진리를 더 잘 이해하고, 생명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일시적인 안락함을 추구하고자 진리를 얻을 기회를 너무 많이 놓쳤고, 저의 생명 진입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본분에서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어요. 제가 너무 어리석고 미련했어요! 지금에서야 깨달았어요. 육적인 즐거움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것은 잠깐일 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요. 진리를 제대로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대충 이행하며 하나님을 기만하면 드러나서 도태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영원히 징벌을 받는 것이에요. 그때는 아무리 후회하고, 울고, 이를 갈아도 소용없을 거예요.

그 후 저는 묵상 시간에 안락함을 탐하는 욕망 해결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보았고, 제 생각을 기록해 두었어요. 두 달 후, 책임자가 다시 제게 본분을 맡겼고 마음 속으로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한 교회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 교회에는 신자들이 많고 문제도 많았어요.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죠. 그러나 저는 그동안 걱정하고 신경 쓰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제가 이 교회를 맡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고, 진리를 교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하게 하심은 저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제 생명의 진입에 유익한 훈련을 하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일을 맡았어요.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지만, 몇 번이나 교제했음에도 성과가 눈에 띄지 않자, 저는 기운이 빠졌어요. 너무 어렵고 너무 신경이 쓰였어요. 이렇게 생각할 때, 제가 다시 육적인 이익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내적 상태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어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큰 감동을 주었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고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양심적이고 이성적이며 진실로 공을 들여야 한다. 무엇이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겠느냐? 힘이나 좀 쓰고 육적으로 고난을 좀 겪는 것에 만족할 뿐, 본분을 이행할 때 진지하게 대하는 법이 없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그야말로 대충 건성으로 대하는 것이지,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다. 공을 들이는 핵심은 마음을 다하는 데 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거역했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두려워해야 한다. 또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면 어떤 고난을 겪든 상관없으며,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만약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 부담을 갖지 않으며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면, 분명 대충 건성으로 대하면서 형식만 갖추고 실제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는 본분 이행이 아니다. 정말 부담을 갖고 본분 이행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느낀다면,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도 없으며 그건 짐승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또 제대로 본분을 이행해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여긴다면, 이런 부담을 갖고 본분을 이행한다면 모든 일을 열심히 해낼 것이며 진리를 구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그 사명과 하나님이 너를 위해 치른 모든 대가, 그리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어요. 기꺼이 본분을 다하고, 본분에 충성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집의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들은 개인의 육적인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 실제로 대가를 치르고,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일을 해요. 이런 사람들은 책임감이 있고 신뢰할 수 있으며,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비록 육적으로는 고생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있어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죠. 반면 저의 모습을 보면 사역에 어려움이 있고 성과가 좋지 않을 때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걱정이 많아지며, 또 다시 저의 육적인 것을 생각하면서 물러나고 싶어했어요. 과거에 저는 안락함을 추구하고, 쉬운 본분만을 하려 했으며, 몸 사리고 요령을 부렸어요. 육적으로는 고생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어두웠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없었으며, 평안이나 기쁨이 전혀 없었어요. 저는 다시 그런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진지한 마음으로 본분을 대해야겠다고 다짐했고, 얼마나 협력할 수 있든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하려 했죠. 그래서 저는 형제 자매들의 생각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구하고 교제했어요.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일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고,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그 후로는 일이 생길 때마다 일부러 육적인 욕망을 배반했어요. 비록 매일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여유 시간이 없어졌지만, 저는 지치지 않았어요. 이렇게 실행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고, 본분에 협력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었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함으로 마음속에 평안과 안정을 느꼈어요.

자, 여기까지 이야기할게요. 올 한 해 자매님도 많은 수확이 있었나요? 자매님의 수확이나 깨달음도 저에게 편지로 알려주세요.

당신의 친구, 바이루 드림

2023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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