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이행하며 책임지는 법을 배우다

2025.6.27

저는 2021년 7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저는 예순이 넘어서도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높여 주심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본분에 뛰어들었고, 각 팀 예배에 참석해서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매일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뒤 교회 각 사역이 모두 조금 나아지기 시작하자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이듬해 8월에 저는 설교원으로 선출되어 두 교회의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교회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교회 하나를 더 담당하면 더 피곤하지 않을까? 계속 그러면 몸이 버텨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다른 한 교회는 모든 분야의 사역 성과들이 별로여서 내가 얼마나 신경써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본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생각은 이랬습니다. ‘그러면 무슨 핑계로 거절하지? 그냥 내 나이가 너무 많아서 다른 교회를 하나 더 맡으면 에너지와 체력이 따라주지 않고, 그러면 사역이 지체될 테니, 아무래도 젊은 사람을 찾아 보라고 하자!’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불안했습니다. ‘이건 본분을 거절하는 거잖아?’ 저는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설교원 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는 매일 스케줄이 빡빡하게 채워져서, 어떤 때는 식사도 허둥지둥 하면서 되도록 손이 덜 가는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바쁜 와중에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난 나이도 많은데, 계속 이렇게 하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과로로 쓰러지면 어쩐담? 두 교회 다 리더가 있는데, 둘 다 적극적으로 사역을 시행하고 점검하던데. 두 사람이 협력하니까 내가 아주 꼼꼼하게 점검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러니 좀 쉬자. 나이도 들 만큼 들었는데, 시간을 내서라도 몸을 좀 챙겨야지. 계속 이렇게 신경쓰면 더 늙어보이지 않겠어?’ 저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한숨을 돌렸습니다. ‘진작 이렇게 했으면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잖아? 역시 나는 안배할 줄 몰라! 합리적으로 안배하기만 하면, 이 본분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힘들지는 않구나.’ 그 후로 저는 복음 사역과 양육 사역을 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도 사역과 관련된 일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교회 리더가 점검하고 있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간증 영상을 보거나 형제자매들의 질문에 답장을 좀 하는 정도라서, 스트레스도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어떻게 하면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몸을 보양할까 궁리했습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사역을 파악하러 교회에 갔더니, 생각지도 못하게 교회 두 곳에서 이번 달 한 사람도 얻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교회 리더들도 열심히 협조하고 있는데, 어떻게 복음 사역 성과가 하나도 없지? 예전에 내가 교회 리더를 했을 때도 이렇게 형편없지는 않았는데!’ 저는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번 달 두 교회 모두 복음 사역에 성과가 없습니다. 문제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원인을 찾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제가 한동안 육만 돌보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먹고 잘 쉴 생각만 하고, 부담 없이 본분을 대하면서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제때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사역에 성과가 없는 직접적인 책임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교회 리더를 불러 원인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비록 교회 리더가 사역을 시행하긴 했지만, 일을 분배하기만 하고, 사후에 점검과 감독을 하지 않아서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특히 복음 사역의 경우,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할 때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교회 리더는 그것을 실질적인 어려움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저의 직무 유기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최근의 제 내적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또한 서둘러 교회 리더들에게 사역을 어떻게 점검할지 교제했습니다. 더는 꾸물댈 수 없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리더 일꾼들은 주동적으로 각 팀의 사역을 검사하고, 각 팀 인원들의 상황을 확인하며, 머릿수만 채우거나 소극적인 것과 관념을 퍼뜨려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불신파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발견하는 즉시 철저히 폭로하여 제명해야 한다. 이는 리더 일꾼이 해야 할 사역이니 수동적으로 굴지 말고, 상부의 명령과 재촉이 있을 때만 일을 하거나 형제자매들이 함께 호소할 때만 일을 좀 처리해서는 안 된다. 리더 일꾼은 사역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모습은 주동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이런 교제와 말씀을 근거로 삼은 후에는 리더 일꾼들이 더 이상 수동적이어선 안 된다.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진리를 교제하여 현실의 문제와 어려움을 철저히 해결하고, 제대로 사역해야 한다. 제때 적극적으로 사역 진도를 밀착 관리 해야지, 언제나 상부에서 명령하고 재촉해야 마지못해 일하는 식이어선 안 된다. 늘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굴 뿐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없으니 교체하고 조정해야 한다. 지금 많은 리더 일꾼이 사역할 때 매우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늘 상부에서 명령을 내려 강요해야 조금 사역할 뿐, 그러지 않으면 해이하고 질질 끈다. … 상부에서 사역을 배정하고 나면 한동안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 일을 마치면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이행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 리더 일꾼의 직책 범위 안에 있는 사역 중 어떤 것들을 해야 할지 늘 모르고, 그들 눈에는 할 일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할 일이 없어 보인다는 것은 어떤 문제겠느냐? (부담이 없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부담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몹시 게을러 안락함을 누리며, 쉴 수 있을 때 좀 더 쉬려 하고,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여긴다. 이 게으른 자들은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많이 걱정해서 뭐 해? 걱정이 많으면 빨리 늙어. 이렇게 많이 걱정하고, 이렇게 많이 뛰어다니고, 고생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어? 과로로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병 고칠 돈도 없는데, 노후는 누가 책임져 주지?’ 이 게으른 자들은 이렇게 소극적이고 뒤처져 있으며, 진리가 전혀 없고, 아무것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 이는 그야말로 한 무리의 바보들 아니겠느냐? 흐리멍덩한 데다가 진리에 대해 지각도 없고 관심도 없는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사람은 왜 언제나 산송장처럼 방만하고 게으른 것이겠느냐? 이는 본성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사람의 본성에는 타성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든 늘 다른 사람이 감독하고 다그쳐야 한다. 때로는 육을 생각하며 육적인 안일을 누리려 하고, 늘 스스로를 위해 퇴로를 남겨 두는데, 이런 자들은 속셈과 꿍꿍이가 너무 많다. 결코 좋은 작자가 아니다! 또 어떤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든 한 수 남겨 두려 하니, 이는 무책임하고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6)> 중에서) 하나님께서 리더 일꾼에게 하시는 요구는 바로 적극적으로 사역을 점검하여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각 사역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리더 일꾼의 직책입니다. 처음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저는 본분에 부담도 있고,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낄 수 있었고,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음이 뿌듯하고 사는 것도 든든했습니다. 그런데 두 교회의 사역을 책임진 뒤로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나이 들어서 이렇게 과로하다가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속으로 본분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교회 리더가 사역을 시행하자 저는 이때다 하며, 교회 리더들이 사역을 하고 있으니 내가 점검을 몇 번 빠뜨려도 윗선 리더가 모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며 몸을 보양하는 데만 마음을 쓴 결과, 한 달이 지나도록 두 교회가 복음 사역에서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건 사역을 그르친 것이 아닙니까? 원래 저는 자질도 보통이고 이렇다 할 특기도 없었기에, 이런 중요한 본분을 할 자격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은 저를 높이셔서 훈련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것도 모른 채 본분도 열심히 하지 않고, 언제나 육만 생각하고 챙기는 등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게으름뱅이에다 충성심도 전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노아도 하나님 부탁을 받아들였을 때 무척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어려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방주도 만들고 복음도 전하면서 책임을 다했고,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분부하신 후, 노아는 그런 마음과 책임감으로 오로지 하나님 분부대로만 행했고, 결국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교회의 몇몇 나이 든 형제자매들도 떠올랐습니다. 어떤 분은 80대에도 본분을 이행하는데, 저는 겨우 60대에다 몸에 병도 없습니다. 두 교회는 범위도 크지 않아서, 그것 가지고 제가 과로로 쓰러지거나 병이 날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짊어질 수 있는 부담도 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분들과 비교해 보니 제가 정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과 은총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것을 가벼이 여겼고, 몸 사리고 꾀를 부려서 교회 사역에 손해를 입혔습니다. 저는 너무나 인성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당신이 저를 드러내신 것은 구원이기도 합니다. 회개합니다. 제가 앞으로도 육적인 편안함을 즐긴다면 당신께서 저를 채찍질하고 징계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육을 헤아리는 제 내적 상태에 관계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육은 뱀과 같아 본질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 네가 육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을 때가 곧 목숨을 잃는 때이다. 육은 사탄에 속하는 것으로, 그 안에는 언제나 사치스러운 욕망이 들어 있어 항상 자신만 생각하고, 호강하길 원하며 안락한 생활을 탐내고, 초조해하지도 않은 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어느 지경까지 육을 만족시키다 보면 종국에는 육에 삼켜지고 만다. 다시 말해, 네가 이번에 육을 만족시켰다면 육은 다음에도 네가 만족시켜 주길 바란다. 육 안에는 늘 사치스러운 욕망과 새로운 요구가 있으며, 네가 육을 생각하는 기회를 틈타 육을 더욱 아끼며 육의 안락 속에서 살게 한다. 그러니 네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 너 자신을 망칠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을지, 마지막에 어떤 결말일지는 육을 어떻게 저버리느냐에 달렸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고 또 너를 선택하고 예정했다 해도 네가 지금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 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려 하지 않으며,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육을 저버리려 하지 않아 결국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너는 극한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네가 항상 육을 생각한다면, 너는 천천히 사탄에게 잠식될 것이고, 생명도 영적 감동도 없다가 언젠가 내면이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다. 어둠 속에서 살면 사탄에게 사로잡혀 더 이상 마음속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때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떠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육을 헤아릴 때의 위험과 결과를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육을 헤아리고 소중히 여길수록 육적 욕망은 더 커져서, 결국에는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저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고통스럽고 짧은 인생 그냥 즐기자’, ‘살아 있을 때 즐기자’와 같은 사탄 철학으로 사느라, 사상 관점이 왜곡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너무 피곤하게 살면 안 되고, 육이 편하고 안락해야 복을 누리는 것이고, 좋은 생활이라고 생각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제 육을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하나님을 믿기 전부터 그랬습니다. 침상에 앉아 과일을 먹고, 주전부리를 하고, 티비를 보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하고, 틈만 나면 쉬려고 했습니다. 가끔 노인들이 나무 아래 앉아 부채질을 하는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는 본분이 조금만 바빠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늘 힘든 것, 지친 것이 두렵고,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싫어서 본분을 소홀히 대했고, 책임감도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인성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살 자격이 없습니다! 당시 저는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육을 잘 보양했지만, 교회 사역은 저 때문에 지체되었습니다. 그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탄 본성에 따라 살면서 육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중요하게 여기면, 사람은 점점 나태해지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서, 결국 거짓 리더, 거짓 일꾼이 되어 드러나고 도태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점을 인식한 뒤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 죄스럽고, 형제자매들을 볼 낯이 없습니다. 지금 저는 육을 헤아린 위험과 결과가 어떤지 인식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육을 헤아리느라 교회 사역을 늦추지 않겠습니다.’

그 후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너희가 말해 보거라.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 한 사람이 평생 병과 죽음을 모면하려 하거나 몸을 잘 보살펴서 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려는 생각밖에 없다면,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이겠느냐?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가 아니다. 그럼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방금 누가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구체적인 부분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평소 너희가 기도하거나 뜻을 세울 때 가졌던 소망을 말해 보거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정해 놓은 역할 가운데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또 무엇이 있느냐?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힘이 닿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다. 최소한 양심에 참소가 없고, 본인의 양심에 떳떳하며,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태어난 가정, 교육 수준, 자질을 떠나 사람의 생존에서 알아야 할 도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걸어야 할 길, 사람이 살아야 할 삶, 의미 있는 삶 등 인생의 참된 가치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육적으로 즐기려는 것도 그저 놀고먹는 것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삶의 가치가 아니며 올바른 길도 아니다. 사람의 삶의 가치,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길, 올바른 일이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 있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기를 원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기 원한다면 너는 온 힘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시간과 세월을 들이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기간에 약간의 질병을 겪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너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평생 온종일 빈둥거리며 토실토실 건강하게 관리한 몸으로 장수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면 어떤 삶이 가치 있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마음에 위안이 되고 아쉬움이 남지 않겠느냐?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은 마음속에 수확과 위안이 있는 것이다. 토실토실 살만 찌워 죽을 때가 되어서도 혈색이 좋은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지 않았으니 죽을 때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헛된 삶이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세 글자로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 헛된 삶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값지고 의미 있는 인생이자, 가장 올바른 선택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자기 자신은 잘 돌보면서, 본분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헛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죽음을 마주했을 때, 오직 아쉬움과 후회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저기 세상 사람들도 비록 육의 즐거움을 많이 누리면서 편안하게 살지만, 삶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삶의 방향과 목적도 없습니다. 저는 이제 인생의 바른길을 찾았고,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에, 더 이상 그렇게 육을 위해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해서 값지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내야지,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실 리더와 설교원 본분을 훈련하면서 형제자매와 더 많이 교제하고 사역을 시행하다 보니, 전에는 몰랐던 진리를 더 밝히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육은 조금 지치고 고되었지만, 많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면서 편안함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적으로 협력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동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어려움이 해결되고, 본분 이행에도 성과가 따라서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역시 육을 배반하고 실질적인 사역을 하니까 마음이 즐겁고 진정한 편안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자 제 마음은 더욱 편안하고 밝아졌습니다.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리더 일꾼이 어떤 중요한 사역을 하든, 어떤 성질의 사역을 하든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사역의 현황을 알아보고 파악하는 것이다. 반드시 현장에 가서 점검하고 물어봐야 하며, 직접 1차 자료를 파악해야 한다. 그저 소문만 전해 듣거나 남의 보고만 받는 걸로 끝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자기 눈으로 인원 및 사역 진전 상황을 보고 어느 부분에 어려움이 있는지, 상부의 요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원칙을 어기거나 방해하고 교란하는 문제가 있는지, 업무 관련 사역에 필수 설비나 관련 교재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등을 알아봐야 한다. 이런 일들에 대해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보고를 아무리 많이 받고, 소문을 아무리 많이 전해 들은들 직접 한 번 다녀오는 것만 못하며,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하다. 각 측면의 상황을 모두 확실히 파악하고 있으면 머릿속에 갈피가 잡힌다. 특히 자질이 훌륭해 양성할 가치가 있는 사람은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파악해야 사람을 정확하게 양성하고 쓸 수 있다. 이것이 사역을 잘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자질이 훌륭한 사람을 어떻게 양성하고 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과 원칙도 있어야 한다. 또한, 교회 사역에 어떤 종류의 문제와 어려움이 존재하는지도 다 알아보고 파악해야 하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사역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으며 전망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생각과 제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눈감고도 분명히 말할 수 있어 의문과 걱정이 사라지면, 이 사역을 훨씬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 아니겠느냐? 사역 중 나타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반드시 마음속으로 알고 있어야 하며, 또 자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고 상의하며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착실하게 실질적인 사역을 하면 해결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진정으로 좋은 리더는 하나님 집 사역을 진지하고 책임감이 있게 대할 수 있으며, 육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역지침에 따라 본분을 이행합니다. 어떤 사역에 어려움이 있어도 형제자매와 함께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리더 일꾼으로서 사역을 잘하고 싶다면 반드시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서 사역을 자세히 파악하고 점검하는 한편, 문제를 발견해서 제때 해결해야 합니다. 호령만 하거나 보고만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사역을 하면, 좋은 성과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육을 헤아리느라 형식적으로만 일하고, 세부 사항도 파악하지 않고, 문제를 발견해도 해결하지 않는 등, 리더 일꾼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위의 복을 탐하는 거짓 리더였고,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는 실제로 현장에 가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했습니다. 복음 대상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교제로 해결했죠. 한동안 협력한 끝에 교회의 각 사역 성과가 조금씩 향상되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몇 군데 교회를 더 맡게 되었습니다. 주로 복음 사역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했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나이도 많고 혈압도 높은데, 이대로 가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복음 집사와 팀장이 다들 협력하는 것을 보자, 자세히 점검하려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육이 그렇게 힘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본분과 본분 내의 일, 그리고 좀 더 거창하게는 하나님이 맡긴 부탁과 네 직책, 네 본분 이외 네가 해야 할 중요한 사역, 즉 하나님이 안배하고, 너를 지명하여 하라고 한 것에 대해 너는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든, 설령 힘이 들고 심지어 박해받아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충성을 다해 죽기까지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 추구의 실질적인 모습이자 노력이며 진실한 실행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중에서)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또 육을 헤아렸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본분이 지체될 것이 뻔합니다. 저는 육을 좇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요구 기준을 위해 노력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결국 저는 팔을 걷어 부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 사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자세히 교제하고 토론했습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한 덕분에, 복음 사역 성과는 지난 달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제 육과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본분에 몰두했더니,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고, 마음이 뿌듯하고 즐거웠습니다. 하나님의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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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 이행에 대가를 들이지 않으려는 이유

한국 창징(常靜)저는 교회에서 미술 디자인을 맡고 있습니다. 한번은 팀장이 제게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 제작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험이 부족한 데다가 원칙이나 제작 요령도 파악하지 못해, 힘겹게 만들어 낸 결과물의 완성도가 그리 높지...

본분 이행에 꾀부린 결과

2023년 7월, 저는 교회에서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제가 훈련한 시간이 길지 않고, 기술 수준도 보통이라 난이도가 높은 영상은 파트너 자매인 장신이 맡았고 저는 간단하고 쉬운 것들만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모르는...

나는 어떻게 거짓 리더가 됐을까

한국 신춘(心純)2019년 말, 저는 교회에서 영상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영상 사역은 업무 기술이 요구되는 사역인데, 전에 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압박감이 무척 컸습니다. 잘 모르는 업무적인 일을 대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커다란 돌덩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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