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안주가 나를 해쳤다

2025.4.14

2018년, 저는 교회에서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업무적 스킬이나 여러 분야의 원칙에 대해 잘 몰라 열심히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제 업무적 스킬은 눈에 띄게 향상했고, 형제자매들은 저를 팀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전 매우 기뻤고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습니다. 그 후 복잡한 영상 프로젝트 하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리더는 저에게 확인 후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사역 과정이 복잡하고, 제 업무적 스킬도 부족하여 처음에 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고민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일정 기간 노력하자 사역은 점차 순조로워졌고 저의 업무적 스킬 역시 향상되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나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물론 이 프로젝트를 최고로 잘 해내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어. 지금 이 상태만 유지하면 될 거야. 항상 너무 아등바등할 건 없어. 매일 긴장한 상태로 있으면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업무 공부도 소홀히 했습니다. 제가 제작한 영상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긴 적이 몇 번 있었고, 형제자매들은 저에게 업무 기술을 향상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물론 저도 형제자매들이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 ‘난 매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여기서 공부할 시간을 더 쪼갠다면 내가 힘든 것은 고사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는데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면 난 헛수고한 게 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 후 리더는 우리의 사역이 더디다는 것을 발견하고 저에게 원인을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함께 협력하는 형제 역시 재차 저에게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비록 지금 진도는 좀 느리지만, 예전에 비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 이게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도 사역 과정을 조금 더 상세히 정리하면 사역 효율이 오를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매일 많은 사역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여기에 더 시간을 쏟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에 계속 미뤄왔습니다. 그 후 리더는 두 번 더 얘기했습니다. 저는 체면에 못 이겨 억지로 절차에 따라 정리했지만, 적합한 해결 방안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 후 저는 팀의 사역에 조금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졌고, 예전처럼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사역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좀 더 쉬고 싶었고, 몇 번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사역이 지체되기도 했습니다. 외부에서 일을 볼 때면 서둘러 돌아가면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게 싫어 일부러 꾸물거리기도 했습니다. 바쁘지 않을 때면 업무적 스킬을 향상시킬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기회를 틈타 더 쉬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점 나태해졌고 매일 정해진 대로 사역을 확인하고 안배했으며 형제자매들에게 문제점을 정리해 주지 않았습니다. 사역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고자 신경 쓰지 않아 분명 더 일찍 마칠 수 있었던 영상 제작도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완성했습니다. 그 기간에 제가 만든 영상에서는 계속 문제가 발생했고, 팀 내 형제자매들의 업무에도 발전이 없었으며 사역이 조금이라도 어려우면 사람들은 볼멘소리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진리를 교제하며 해결하고자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의 볼멘소리를 따라 저의 힘듦을 토로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실제 사역을 하지 않는 바람에 리더 일꾼이 몇 차례 교제를 통해 도와주려 했지만, 전 바뀌지 않았고, 결국 전 교체되었습니다. 교체 후 전 너무 괴로웠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반성했습니다.

하루는 묵상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조금의 고통도 겪지 않으려고 한다. 문제에 부딪히면 어렵다고 앓는 소리를 하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이는 어떤 태도이냐? 이것이 바로 건성으로 대충 하는 태도이다.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며 경시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한다면, 결과가 어떻겠느냐? 네가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잘 이행하지 못해 합격하지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너의 태도에 매우 못마땅해할 것이다. 원래는 네가 만약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여 성심성의껏 할 수 있다면, 네가 이렇게 협력할 수 있다면, 네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성사되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나님이 앞에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놓는다. 네가 최선을 다해 협력할 때, 하나님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 놓는다. 만약 네가 잔꾀를 부리며 불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그릇된 길로만 간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지 않아 너는 기회를 잃게 된다.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은 안 되겠다. 쓸 수가 없구나. 옆으로 비켜라! 너는 몸을 사리고 농간 부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게으름 피우고 편안함을 누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고 말하며, 그 은혜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남겨 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손해를 본 것이냐, 아니면 이익을 본 것이냐? (손해를 본 것입니다.) 손해가 너무나 막심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팀장일 때 했던 여러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제 내적 상태는 하나님 말씀이 폭로하신 것처럼 본분을 경시하고 무책임했으며, 무성의한 데다가 몸을 사리며 농간을 부렸습니다. 막 팀장을 맡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전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적 스킬이 늘고, 사역에서 성과가 조금 나타나자, 현재에 만족하며 과거의 성과에 파묻혀 육적인 것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편안하고,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지만 고민하며 예전처럼 고생하며 사역을 더 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역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도 즉각 해결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몇 번이나 저를 일깨워주었는데도 수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팀 내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에 맞닥뜨린 후 볼멘소리할 때도 팀장으로서 진리를 교제하며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되레 동조하고 부화뇌동했습니다. 영상 사역이 얼마나 지체되건, 형제자매들이 얼마나 힘든지 등은 저와 상관없는 것처럼 굴면서 육적인 편안함을 누리고 힘들지 않으려고만 했습니다. 결국 저희가 제작한 영상에서는 문제가 끊이질 않았고 영상 사역의 진도를 심각하게 지체했습니다. 저는 이토록 중요한 본분을 가벼이 여기며 육적인 편안함을 누리려고 감히 두 눈을 부릅뜨고도 불성실했으며,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을 기만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본분을 이행하는 저의 이런 태도는 정말 하나님께서 혐오하시고 증오하시는 모습입니다. 사역에서 나타났던 문제들을 떠올려보면, 제가 정말 노력하고 대가를 치르면서 해결하려고 했다면 그렇게 엉망이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게으르고 고생하기 싫어해서 결국 영상 사역을 망쳤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인성이 없었습니다! 이 지경으로 타락했음에도 전 지각하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사람과 사물을 배치하심으로써 저를 몇 차례나 일깨워주셨음에도 저는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둔하고 강퍅했을까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롭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무책임하고 인성이 없는 사람은 팀장 자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교체된 것은 모두 저의 자업자득입니다.

이어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또 보게 되었습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리더 일꾼이든 상부에서든 자기에게 말 한 마디를 하거나 어떤 일을 맡기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를 이렇게 믿어 주는데 이 일은 꼭 잘해야지. 실망시키면 안 돼.’ 양심과 이성을 갖춘 이런 사람에게는 일을 맡길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네 마음에 들고 신뢰하는 사람이다. 특히 그가 너를 위해 몇 가지 일을 매우 열심히 처리했고 네가 요구한 바를 완전히 충족시켰다면 너는 그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속으로 감탄하고 존중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사람과 교류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그렇지 않겠느냐! 너희가 볼 때 하나님이 교회 사역,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신뢰할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 하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어떤 사역을 누군가에게 맡길 때, 그에게 어떤 기대를 하느냐? 첫째, 그가 직책을 다하고 그 사역을 중요하게 여기며 잘 해내기를 바란다. 둘째,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 책임감이 변하지 않고, 그의 인격이 검증에 통과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안심하고 더는 그 일을 감독하거나 점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그를 믿고 있으며, 그 일을 그에게 맡기면 차질없이 임무를 완수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진정으로 인성이 있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감을 갖고 하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줄 압니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지킬 수 있으며 원칙에 따라 남김없이 본인의 책임과 충성심을 다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본분을 대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하는 태도입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영상 사역을 맡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전 최소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며 사역 중 나타나는 문제나 어려움을 즉각 발견하고 해결하여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본분을 받을 때 입으로만 잘 대답하고 조금 후면 육적인 편안함을 누릴 생각만 하며 실제 사역은 거의 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변에서 여러 차례 채근하고 일깨워주어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최소한 해야 하는 책임도 다하지 않아 결국 영상 사역은 지체되었습니다. 전 정말 인성이 없고 조금도 믿을만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제 행동으로는 일찍이 도태되었어야 마땅하나, 제가 지금도 계속해서 팀 안에 남아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관용과 긍휼 덕분입니다! 그때 저는 ‘이번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서 본분을 잘 이행해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다시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현재에 만족하던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매일 제작해야 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것 외에 시간만 나면 어떻게 사역 효율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문제와 오류를 정리했으며, 즉각 팀장에게 보고하고 사람들과 함께 해결 방안을 상의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하자 조금 힘들긴 했지만, 저의 책임을 다할 수 있어서 마음은 평온하고 안정되었습니다.

얼마 후, 조금 바뀐 제 모습을 본 리더는 저에게 영상 프로젝트 하나를 맡도록 안배했습니다. 다시금 이런 본분을 맡게 되자 저는 매우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다해 본분을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저는 매일 적극적으로 사역을 하며 사역 중 오류를 정리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팀장과 상의하고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 제 사역에서 약간의 성과가 나타나고 업무적 스킬도 조금 발전하자 저의 그 게으름이 또 나타났습니다. ‘요즘 사역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큰 문제도 없었어. 나도 이제 좀 쉬어야겠어. 매일 이토록 많은 사역을 하고, 많이 신경 쓰면 언젠가 난 버티지 못하게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제 마음은 바로 또 해이해져서 그저 정해진 대로만 본분을 이행하고 어떻게 스킬을 향상시킬 수 있고, 문제나 오류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의 사역 상황 역시 참견하기 귀찮아했고, 시간이 조금만 나면 육적인 편안함만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사역이나 업무를 배우는 시간에 저는 예능 영상이나 드라마 같은 것들을 보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결국 일찍 끝낼 수 있었던 영상은 저 때문에 지체되었고, 업무 성과 역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며칠간 저는 온종일 비몽사몽이며 머리와 마음이 맑지 않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도 빛이 없었습니다. 마음은 굉장히 어두웠고 하나님께 기도드려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면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전 속으로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때, 마침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언행이 불신자처럼 제멋대로이고 절제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이방인보다 더 사악한 사람이며, 전형적인 악마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마치 저를 직접적으로 폭로하신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영상을 제작할 때 제대로 하지 않고 쉬고 여가를 찾으며 조금의 진심도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사장이 일을 하더라도 회사의 규정을 지켜야 하고 근무시간에는 열심히 일해야 하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최소한 가져야 하는 책임감마저 없었고, 육적인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쉽게 본분을 놔버렸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방탕하고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어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처럼 본분을 이행할 때 힘도 쓰지 않는 사람에게 본분 이행에 합격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육적인 것만 생각한 자신이 증오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육을 저버릴 조금의 기개조차 없는 것일까요? 중국 본토의 형제자매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은 중국 공산당 경찰에게 체포되어 가혹한 형벌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도 자신의 본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해외로 도망쳐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조금 더 신경 쓰고 대가를 치르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너무 무능하게 살고 있는 제 모습에 어디 인격이나 존엄이 있단 말입니까? 생각할수록 형제자매를 볼 낯이 없었고, 하나님을 볼 낯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성했습니다. ‘난 예전에도 육적인 것을 생각하느라 직무를 소홀히 해서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왜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 것일까? 왜 나는 작심삼일로 일을 처리할까?’ 저는 서둘러 하나님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시어 제가 문제의 근원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왜 언제나 산송장처럼 방만하고 게으른 것이겠느냐? 이는 본성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사람의 본성에는 타성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든 늘 다른 사람이 감독하고 다그쳐야 한다. 때로는 육을 생각하며 육적인 안일을 누리려 하고, 늘 스스로를 위해 퇴로를 남겨 두는데, 이런 자들은 속셈과 꿍꿍이가 너무 많다. 결코 좋은 작자가 아니다! 또 어떤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든 한 수 남겨 두려 하니, 이는 무책임하고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 오늘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사역할 때 수동적으로 굴지 말라고 너희를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너희는 내가 말하는 데까지 따라와야 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6)> 중에서),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지만, 어떻게 관리 노릇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런 자가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하겠느냐? 사람들의 마음을 산다. 그는 “신임 관리는 부임하자마자 눈에 띄는 일을 한다.”는 식으로 먼저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몇 가지 일이나 생활 혜택과 관련된 몇 가지 일을 하여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준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리더로 보여지게 하고, ‘그는 우리의 부모 같은 리더다!’라고 칭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정식으로 자리에 오른다. 그는 대중적 기반이 마련되었고 지위도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지위의 복을 누리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 격언은 바로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 하루 누렸으면 그만이고 한순간 즐겼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 리더가 마땅히 어떤 책임과 본분을 이행해야 할지 고려하지도 않는다. 그저 형식적으로 글귀와 도리를 읊어 대고 체면을 세우는 일을 약간 할 뿐, 실제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는다. 교회에 존재하는 실제 문제들을 파고들어 철저히 해결하지도 않는데 그런 표면적인 일만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 아니겠느냐? 이런 거짓 리더 부류의 인물에게 중임을 맡길 수 있겠느냐? 그들이 리더 일꾼을 선발하는 하나님 집의 원칙과 조건에 부합하겠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말의 양심과 이성조차 없으며, 조금의 책임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감투를 쓰고 리더가 되고자 한다. 어찌하여 염치를 모르는 것이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질이 부족하면 리더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책임감조차 없는 폐인은 리더가 될 자격이 더더욱 없다. 먹는 것만 밝히고 일은 게을리하는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어느 정도로 게으르겠느냐?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책임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말재간이 있고 자질도 좀 있는 것 같지만, 막상 교회 사역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사역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문제가 갈수록 많아져도 내버려둔 채 상관하지도 않고, 여전히 형식적으로 표면적인 일만 계속해 나간다. 그로 인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교회 사역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지 않겠느냐?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흐트러지고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느냐?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스스로 만족하고 현실에 안주했던 이유는 제 본성이 나태하고 안일함을 탐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일 찬물을 먹더라도 오늘 술이 있다면 그 술에 취하라’, ‘여생이 길지 않으니, 자신을 잘 살펴라’ 등 사탄의 처세 철학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탄의 그릇된 이론으로 살며 한 번 사는 인생이니 삶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늘 고생하고 힘든 것은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모든 일에 끈기가 없었으며, 조금만 성과가 있으면 이를 자양분 삼아 스스로 만족하고 방종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조금 좋은 시기에 선생님과 친구들의 칭찬을 받으면 전 더는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기가 싫어졌고 수업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숙제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여기며 그저 마음껏 놀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적이 떨어져 부모님과 선생님이 엄하게 대하시면 한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다시 올린 후 다시 마음 놓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줄곧 타락한 사상에 지배받아 점차 게으르고 퇴폐적이며 현실 안주형으로 변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작심삼일이었고, 고생하거나 대가를 치르기 싫어했으며 본분을 이행할 때도 점점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렸습니다. 과거 팀장을 할 때든 지금 팀원으로 한 사역을 할 때든 저는 이처럼 현실에 안주하는 게으름뱅이의 모습이었고, 조금만 성과가 있으면 그 성과에 취했으며, 많이 하면 고생하고 힘들 것이 두려운 마음에 조금만 하고 쉴 생각만 했습니다. 사역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해도 해결하지 않았고, 즐거움에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한이 있어도 본분에 더 신경 쓰거나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체면을 차릴 수 있는 것만 조금 하는 데에 만족하며 리더를 속이고 대충 넘어갈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으를 뿐만 아니라 약았고 교활하며 매일 쉬고, 편한 것만이 좋다고 생각하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 공급을 받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비호를 받았음에도 제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가 바로 교회에 기생하는 게으름뱅이이자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인성과 이성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저는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잠 1:32) 라는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계속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 교회에서 저를 도태시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므로 성령 역시 저에게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고 언젠가 도태될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본분에 대하는 제 태도에 미약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최소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 줌이자 특별한 은혜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심지어 목숨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사람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베드로의 모습으로 살려면 베드로의 인식과 체험을 갖춰야 한다.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더 깊고 순결한 사랑을 추구해야 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베드로 같은 사람이다. 너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만족하며 소극적이 되어 후퇴해 더 깊고, 더 세밀하고, 더 실제적인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적극적인 면에 자발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 너는 실제적인 사랑을 갖추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타락해 살아가는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고, 자기 삶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얻지 못할 진리도, 서지 못할 정의도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는 모두 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너에게 이런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개 없는 나약한 자가 되지 마라. 너는 의미 있는 인생과 의미 있는 진리를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그렇게 건성으로 대해선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추구하는 건 한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이자 의미임을 깨달았습니다. 늘 편안함만 탐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자신의 본분을 대충 이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혐오하시고 저주하실 일입니다. 저는 베드로가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추구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엄하게 관리했습니다. 계속해서 발전하고자 했으며 모든 일에 있어서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노아도 떠올랐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부탁으로 방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련과 고통에 직면해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방주를 만들 때까지 120년을 버텼습니다. 노아나 베드로가 하나님을 대하고 본분을 대했던 태도와 비교하자 제 모습이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또 이기적이고 게으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성은 조금도 없었고 본분을 대할 때 최소한의 책임감마저 없었습니다. 대강하며 미루려고 했고, 요구조건이 조금이라도 높거나 사역이 조금이라도 바쁘면 고통을 호소하고 힘들다고 말했고, 심지어 채근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도 꾀를 부리며 육적인 만족을 좇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는 저의 이런 추구법으로는 결국 자신을 해하고 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늘 제가 느끼기에 훌륭하고, 조금이라도 기여하면 만족했습니다. 저는 정말 둔하고 어리석으며 무지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 지경으로 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더는 타락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게으른 제 본성을 보니 정말 인성이 없었습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를 잘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 마음을 살펴주세요.”

그 후 저는 본분 이행에 노력했습니다. 매일 일정이 가득 차 있었지만, 저는 최대한 시간을 내서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종종 문제와 오류를 정리하며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키려고 했습니다. 얼마 후 제가 제작한 영상 성과가 또 향상했습니다. 제가 배운 것들을 형제자매에게 가르쳐주며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니 제 마음도 편안하고 안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조금 바쁘고, 쉬는 시간이 적을 때도 있었지만, 저는 고생스럽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는 과거처럼 그냥저냥 비몽사몽으로 지내지 않았으며 사역의 문제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형제자매와 함께 구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이끌어주심으로 많은 문제가 즉각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탄에 너무 깊이 패괴되어서 사탄의 게으른 생각이 계속해서 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역에 조금이나마 성과가 생기면, 또다시 저는 스스로 만족하며 육적인 것을 방종하고자 했습니다. 한 번은 영상을 검사하다가 한 액션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요즘 사역 스트레스도 컸는데, 잠깐 영화 한 편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내 고질병이 또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자기 몸을 사리고 하나님의 감찰을 피하려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 때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면서 그런 행동이 옳은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거지? 내가 이렇게 건성으로 하면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까지 속일 수는 없어. 게다가 내가 몸을 사리려고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니잖아.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거야.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정상 인성의 모습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태도도 아니야. 안 되겠어. 세상에 있을 때는 몸을 사리면서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그만이었지만, 지금 나는 하나님 집에 있잖아. 하나님의 주재와 감찰 아래 있다고. 나는 사람이니까 마땅히 양심적으로 일해야지, 내 마음대로 행동해선 안 돼.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몸을 사릴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사리거나 건성으로 임하는 게 아닐까? 더 노력해야겠다. 방금 나는 그렇게 하는 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해 고생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이젠 나도 알아. 그렇게 하면 귀찮기는 해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니 그렇게 해야만 해.’ 막상 행동에 옮기려고 하면 그래도 고생할 게 걱정될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게으르고 교활한 사람입니다. 저를 징계하고 질책하여 제 양심이 자각하게 해 주시고, 제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저는 대충 건성으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패역과 추태를 알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십시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면 후회의 마음이 생길 것이며, 자신의 추태를 증오할 수 있어 잘못된 내적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또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왜 나는 대충 건성으로 하는 걸까? 나는 왜 늘 몸을 사리려 드는 거지? 그건 양심도 이성도 없는 짓이야. 그러고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나는 왜 일할 때 참답게 대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에너지와 시간을 좀 더 들이는 것뿐이잖아? 그게 뭐라고? 그건 당연한 거잖아. 이런 것조차 해내지 못하면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래서 의지를 다지며 하나님께 맹세할 것이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깊이 패괴되어 양심도 이성도 인성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회개하고자 하니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반드시 잘못을 바로잡겠습니다. 만약 제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저를 징벌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마음가짐이 바로잡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본분을 이행하거나 일을 할 때 참답게 대할 수 있다. 대충 건성으로 하는 부분이 줄어들고, 고생하며 대가도 치를 수 있다. 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깃들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면 내적 상태가 바로 달라질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되새기자, 저에게 실행의 길이 생겼습니다. 제 본성은 게으르고 육적인 편안함을 좋아하며 고생하기 싫어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기대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 합니다. 또다시 육을 좇고 꾀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서둘러 하나님께 저를 단속하시고 벌해달라며 기도드려야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육을 저버리고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내적 상태를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저를 단속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기도 후 제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계속해서 영상을 검사했고, 열심히 원칙을 되새기며 관련 자료를 찾았습니다. 제가 속으로 옳은 일을 생각하자, 저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낄 수 있었고 영상의 문제도 빨리 발견할 수 있었으며 해결 방안도 마련했습니다.

체험 후 저는 제 게으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대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으며 다시 육을 좇고 싶을 때면 하나님께 기도드려 기대고, 의식적으로 스스로 단속하면 게으름을 이겨낼 힘이 생기며 편안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편안함을 탐하는 생각이 종종 드러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계속해서 실행하고 진입하면 이와 같은 패괴된 성품은 반드시 정결케 되고 바뀔 것으로 믿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복을 바라는 마음이 사라지기까지

저는 2003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어요. 그토록 바라던 예수님이 돌아오셨다니까 정말 가슴이 너무 벅찼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갈망하는 사람들한테 이 기쁜 소식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어요....

더 이상 고통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진신(金欣)어머니는 제가 결혼하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57세에 고혈압으로 혈관이 파열되어 반신불수가 된 후 15년을 누워만 지내다가 고통스럽게 돌아가셨고요. 아버지가 침상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은 제 마음에 어두운...

가족을 대할 때도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2004년 10월, 저와 아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두 자녀도 우리를 따라 함께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저는 무척 기뻤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온 가족이 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모두 구원받아...

15. 나를 알게 하는 하나님 말씀

먀오샤오(渺小) 한국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