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성으로 임하는 태도를 돌아보다

2025.4.25

중국 간쑤 이한(一晗)

2021년 12월 저는 동영상 검사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막 시작했을 때는 열심히 배우고 고민하며 잘 모르는 부분은 협력하는 자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매도 종종 영상의 문제에 대해 저와 토론했습니다. 저는 매번 제 부족한 점과 오류를 정리한 다음 거기에 맞는 원칙을 찾아 공부하곤 했습니다. 평소 모두와 함께 원칙에 대해 교제할 때도 사람들의 교제에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제 부족한 점을 보완했습니다. 한동안 이렇게 훈련했더니 업무 실력이 늘고 일부 사역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원칙을 조금 파악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어느 정도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좀처럼 능동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원칙을 교제하고 문제를 토론할 때도 전처럼 그렇게 열심히 고민하지 않았고, 사역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정리하는 일도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는 점점 수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때 갓 훈련을 시작한 형제자매들이 문제가 많은 영상을 제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들에 맞춰서 형제자매들에게 일일이 교제하고 답변을 해야 하는데 저는 속으로 꼼수를 부리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영상을 자세히 검사한 다음 관련 원칙을 구해 교제하고 답변하려면 꽤나 손이 많이 갈 거야. 이 많은 영상을 언제 다 처리해? 그러지 말고 간단하게 문제점만 지적하고, 어떻게 해결할지는 알아서 고민하라고 하자. 그러면 나도 힘이 덜 들겠지.’ 그래서 저는 영상에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략적으로 수정 방향만 알려주었습니다. 또 한 번은 어떤 영상을 검사했더니 문제점이 조금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가 확실하지 않아서 협력하는 자매와 상의했습니다. 자매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속으로 찜찜해서 한참을 고민했는데 그래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또 슬쩍 넘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하자. 자매가 나보다 원칙을 잘 아는데 자매가 괜찮다고 했으니 별 문제 없을 거야. 괜히 마음 쓰면서 고민하지 말자. 게다가 나도 느낌만 약간 있는 건데 만약 제대로 보지 못하면 괜히 일만 지체되는 거잖아?’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고민하며 구하지 않고 영상을 제출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책임자는 영상에 수정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곧 이어 형제자매들은 저희가 제시한 의견을 보고 소극적으로 변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자기들이 만든 영상이 문제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러난 문제점을 마주하자 저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매일 마주치는 사람과 일, 사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안배하고 주재하신 것이고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 것은 다 이유가 있으니, 그 안에 틀림없이 내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묵상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경솔하고 오만하며 무책임하게 모든 일을 대하는 것은 패괴 성품에 속한다. 그것은 사람이 흔히 말하는 불량 습성이다. 모든 일에서 “대충 맞는 것 같아.”, “그 정도면 충분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아마도’, ‘십중팔구’ 식의 태도이다. 형식적으로 일을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고, 할 수 있는 한 일을 대충 해 나가는 수준에서 만족한다. 일을 진지하게 대하거나 세심하게 할 필요도 없으며 진리 원칙을 구하는 것은 더욱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패괴 성품에 속한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의 모습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이를 교만함이라 해도 옳고, 방종함이라 해도 아주 적합하지만, 가장 알맞게 표현하는 어휘는 ‘불량함’이다. 불량 습성은 대다수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데, 그저 경중 정도가 다를 뿐이다. 모든 일에서 대충 건성으로 하려 하고, 기만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우며, 시간을 적게 들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발각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책임질 일이 없다면 얼렁뚱땅 넘어가면 돼. 일을 굳이 잘할 필요가 없어. 그러면 너무 번거롭잖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숙달하는 경지까지 배우는 일이 없으며 배우는 일에 전념하거나 고생하거나 대가를 지불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피상적으로만 배워 전문가 행세를 하고 다 배웠다고 생각하고 그걸로 때우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냐? 이것이 좋은 태도겠느냐? 아니다. 한 마디로 묘사하면 ‘때우는 것’이다. 그러한 불량 습성은 패괴된 인류에게 다 존재한다. 인성에 불량 습성이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어물쩍 때우면 된다는 관점과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런 사람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다.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사람의 귀천을 어떻게 구분하겠느냐? 본분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봐야 한다. 즉, 일이 닥쳤을 때 그가 어떻게 대하는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격과 존엄이 있는 사람들은 일할 때 세심하고 진지하며 마음을 쓰며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인격과 존엄이 없는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대충대충 하고 무성의하며 항상 속임수를 쓰려 하고 항상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다. 어떤 기술을 배우든 마음을 다하지 않고 배우지 못하며, 아무리 오래 배워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사람은 인격이 비천한 사람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인다’, ‘인격과 존엄이 없다’, ‘비천하다’는 말들이 제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제가 본분 이행했던 모습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모습과 똑같지 않았겠습니까? 형제자매가 제작한 영상에 문제가 많은 것을 알았을 때, 저는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깨닫고 원칙에 진입하도록 문제 해결을 도와줄 생각은 않고, 어떻게 하면 제가 덜 힘들지부터 생각했습니다. 모든 영상을 열심히 검사하고 자세히 답변하려면 너무 번거롭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서, 저는 영상에 나타난 문제점을 간단히 짚어 주기만 하고, 원칙을 들어서 교제해 주지도 않고, 실제적인 방법은 더더욱 짚어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형제자매들은 제가 제시한 의견을 보고 다들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제 그런 행동이 방해가 아니겠습니까? 영상을 검사할 때 조금 인식은 있었지만 확신할 수가 없어서 더는 신경쓰고 고민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민한다고 꼭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매가 나보다 원칙을 잘 알고 있으니 자매다 괜찮다고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 핑계를 댔습니다. 실제로 애쓰거나 구하지 않고 그냥 결론을 내고서, 고민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교활하게 자기 이익을 챙긴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너무나 간사합니다! 본분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그대로입니다. 『발각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책임질 일이 없다면 얼렁뚱땅 넘어가면 돼. 일을 굳이 잘할 필요가 없어. 그러면 너무 번거롭잖아!(<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이 말씀이 가리키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하루 중이 되면 하루 종을 친다고, 육이 고생하지 않고 그럭저럭 지낼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형제자매의 어려움은 전혀 안중에도 없고, 내가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으면 대충 넘기는 등 본분 이행에 전혀 충성심이 없었습니다. 이런 저의 태도는 전혀 신뢰할 가치가 없었습니다. 정말 ‘인격과 존엄이 없다’, ‘인격이 비천한 사람이다’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이 전혀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속으로 괴롭고 자책감이 들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경솔하고 전혀 책임감이 없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육을 배반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을 쏟으며 진지하게 대하고 대가를 치를 것이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싶습니다.’

기도를 마친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요구를 조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열심히, 꼼꼼하게, 진지하게, 책임감 있게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착실하게, 하나하나 확실하게 이행하고, 최선을 다해 제대로 이행하고,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해내야 한다.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원칙을 구하고, 원칙과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고, 공을 많이 들이더라도 제대로 해야 하고, 절대로 건성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실행해야 마음이 평온하고 양심의 가책도 없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5)>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분을 착실하게 이행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어떤 일이든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추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진리 원칙을 구하며 최선을 다해 잘해 내기를 바라십니다. 저는 예전처럼 그렇게 건성으로 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모든 영상을 열심히 검사하고 문제에 맞게 원칙을 들어 구체적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비록 육은 조금 고생스럽고 신경도 더 많이 써야 하지만, 본분이 좋은 성과를 낼 수만 있다면 그만한 고생은 충분히 할 만합니다. 그 후로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검사하고 답변할 때면 저는 어떻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해도 많이 힘들지 않았고, 원칙에도 좀더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패괴 성품이 심각해서 육적인 편안함을 너무 탐했고, 그 때문에 복잡한 문제를 만나자 또 요령을 피우고 건성으로 일하려 했습니다.

한번은 영상을 검사하는데, 영상에서 좀 까다로운 문제들을 좀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안을 하려면 우선은 내가 공부하고 연구해서 돌파구를 마련해야해. 그러려면 너무 번거롭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한참 고민해도 답을 못 찾으면 시간만 낭비하는 거잖아? 관두자. 우선 다른 일부터 처리하고, 시간이 남으면 그때 처리하지, 뭐.’ 얼마 후, 저희 영상 사역 성과가 떨어진 것을 안 리더가 최근 3개월 동안 형제자매가 제출한 영상을 다시 검사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영상들이 제때 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원칙을 근거로 수정하도록 형제자매들을 지도하지 않아 영상 사역이 심각하게 지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보고 저는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이게 다 제가 본분에 마음을 쏟지 않고 건성으로 임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고, 마치 커다란 돌덩이에 눌린 것처럼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말씀을 읽자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느껴졌습니다.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경솔하고 오만해서 늘 건성으로 임하고 꾀를 부린다면, 그건 하나님을 심각하게 배반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저주받고 징벌받아 마땅합니다! 순간 덜컥 겁이 나면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저에게 영상 본분을 검사하도록 안배해 준 것은 제가 마음과 힘을 다해 사역을 잘 이행하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꾀를 부렸습니다. 잘 모르거나 간파하지 못하는 문제를 만나면 마음을 기울여 고민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신경도 많이 쓰이고 에너지도 많이 써야 할 것 같으니까 수고를 덜기 위해 아예 영상을 방치한 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지도 않고, 관련 원칙을 구해 사람들을 지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책임을 전혀 다하지 않았고, 한 것이라고는 오로지 영상 사역을 방해한 일밖에 없었습니다. 이 본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만 있으면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책임감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건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하나님을 저버린, 신뢰할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들었고, 나아가 하나님께 죄스러웠습니다. 저는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행동은 사역에 방해와 교란만 일으켰습니다. 회개하겠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제 태도를 바로잡고자 하오니 당신께서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고민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 모양으로 이행하는 걸까요? 구하는 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폐인’이다. 바로 2급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고, 자질이 좋아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편안함을 즐기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며 바로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힘쓰는 것조차 기준에 맞지 않으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시켜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예전에는 저 자신을 ‘쓸모 없는 인간’, ‘기생충’, 이런 단어들과 연관지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제 이런 모습이 하나님 눈에 산송장으로 비춰지고, 개, 돼지나 다름없이 비춰질 것이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찢어질 듯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육적인 편안함을 추구 목표로 삼고, 언제나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편안하고 한가하게 살려고만 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 어려움을 만나서 마음을 쓰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만 되면 잔꾀를 부렸습니다. 되는대로 얼렁뚱땅 넘기거나 영상을 방치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등 되도록 힘을 덜 들이려 했고, 전혀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결국 사역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제가 바로 쓸모없는 인간, 밥만 축내는 기생충이 아닙니까? 제가 이 지경까지 타락한 것은 바로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은 그냥 즐기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사람은 살면서 스스로를 잘 대접해야 한다’와 같은 사탄 독소에 중독되고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든 자기 육만 고려했고, 저만 피곤하지 않고 고생스럽지 않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독소에 기대어 살면서 갈수록 이기적이고 무기력해졌습니다. 긍정적인 사물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니 육은 편안했지만 결국 아무런 성장도, 수확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역을 지연시켜 과오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육적인 편안함을 누리는 것은 곧 자신을 해치고 망치는 것입니다!

얼마 후 저는 팀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자매 두 사람이 영상 제작 훈련을 막 시작한 터라, 저는 제 영상 제작 외에도 두 자매의 사역도 지도하고, 거기다 팀 전체 사역도 같이 챙겨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비교적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영상을 보면 또 요령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일일이 원칙을 찾으려면 꽤나 신경써서 고민해야 해.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이 사역들은 언제 다 처리하라고? 생각만 해도 지치고, 너무 번거로워! 정 안 되겠으면 너무 진지하게 대하지 말자. 보기에만 비슷하면 되지.’ 저는 제가 또 육적인 편안함을 즐기려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노아가 본분을 대한 태도를 떠올리며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서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드는 일을 맡긴 이후, 노아는 ‘하나님이 언제쯤 세상을 멸하시려나? 언제 이 세상을 멸한다는 신호를 내게 보내 주시려나?’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한 모든 사항을 진지하게 마음에 새긴 채 하나하나 시행해 나갔다.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인 후부터 노아는 하나님이 얘기한 방주를 만드는 일을 그의 이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아 조금도 태만히 굴지 않고 실행해 나갔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갔고, 일 년 또 일 년이 흘렀다. 그렇게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서 세월이 흘렀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엇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았지만, 노아는 시종일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중요한 임무를 굳게 지켜 나갔다.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은 석판 위에 글자를 새겨 놓은 듯 노아의 마음에 새겨졌다. 바깥세상의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해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그는 시종일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일을 굳게 지켜 나갔지, 단 한 번도 낙담하거나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마음에 새겨졌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시행되었다. … 노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히 지키고 실행해야 할 지고의 명령이자,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해야 할 목표와 방향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 무엇을 시키든, 어떤 분부를 내리든 그는 전부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겨 자신이 일생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간주했다. 그는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겼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이를 전부 시행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준행했다. 그렇게 방주는 나무로 한 조각 한 조각 붙여서 만들어졌다. 노아의 모든 행동, 노아의 매일매일은 다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 하나님의 분부를 위해 바쳐졌다. 겉으로 볼 때 노아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큰일을 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노아의 일거수일투족, 나아가 그가 어떤 일을 하려고 내디딘 모든 발걸음, 그리고 그가 손으로 한 모든 일은 다 귀하고, 기념할 가치가 있는 것이자 이 인류가 응당 본받아야 할 것이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2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였는가(1)> 중에서) 본분을 대하는 노아의 태도를 보자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방주를 만들면서 아무리 큰 어려움에 부딪히고 아무리 많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의 목표는 단 하나,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여 그분을 만족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노아는 실제적으로 수고하고 대가를 치렀습니다. 각종 자재를 준비하고 차근차근 방주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120년을 한결같이 일했습니다. 저는 노아의 체험에 깊이 감동받았고, 더 이상 육적인 편안함을 즐기며 건성으로 본분을 대할 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을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본분을 대하는 노아의 태도를 본받아 본분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최선을 다해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앞에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놓고 기도드렸습니다. 간혹 문제가 많은 영상을 발견하면 우선 원칙에 맞춰 열심히 고민하고, 협력하는 자매와 함께 검토한 다음, 형제자매들과 교류했습니다. 까다로운 문제가 있는 일부 영상들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자료를 찾아 공부해서 돌파구를 찾았고, 최선을 다해 형제자매들에게 실행의 길을 교제했습니다. 전체적인 사역도 최선을 다해 돌보고, 사역에서 오류와 문제를 발견하면 협력하는 자매와 소통하며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협력했더니 저와 파트너 자매 둘 다 좀더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는 원칙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면서 그 문제들을 어느 정도 간파하게 되었고, 업무에서도 더욱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분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욱 부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 원칙을 깨닫도록 조금씩 깨우치고 이끌어 주시고, 부담을 가하여 우리를 훈련시키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육은 조금 고생스러웠지만, 결국 혜택을 입는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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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을 지키다

한국 양무예전에 형제자매들이 무대에서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웠습니다. 언젠가 저도 무대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생각했습니다. 뜻밖에도 그 날은 금방 찾아왔습니다.2018년 5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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