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2025.5.20

중국 정치(鄭琦)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인류가 오직 하나님을 믿고 경배해야만 좋은 운명과 종착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 어둡고 사악한 세상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인생의 정도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당시 제 아들은 중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자주 하나님 믿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이므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저와 함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랐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저는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중공이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고 박해하며 곳곳에 유언비어를 퍼뜨렸기 때문에, 남편은 제가 하나님을 믿다가 체포되면 가족까지 연루될까 봐 저를 가로막고 핍박하기 시작했고, 저와 자주 다퉜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무척 지지하며 아빠에게 저를 막지 말라고 자주 설득했습니다. 주말마다 아들이 집에 오면 저는 시간만 나면 아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가끔 아들이 텔레비전은 보면서 하나님 말씀은 자발적으로 읽으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저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저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읽자고 몇 번이고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이 입으로만 대답하고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면 저는 화가 났고, 가끔은 아들을 몇 마디 닦달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제가 화가 난 것을 보고는 얼른 달려와 하나님 말씀을 몇 구절 읽었습니다. 아들이 제 눈을 속이는 것이 보였지만, 저는 어찌되었든 아예 안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된 후, 저는 이웃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주말마다 되도록 집에 돌아와 아들과 하나님 믿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 했습니다. 나중에 아들이 대학생이 되자, 저는 MP5 플레이어를 사 주며 학교에 가져가서 틈틈이 하나님 말씀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따금씩 아들에게 전화해 ‘영양제’ 잘 챙겨 먹으라면서 넌지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으라고 주문했습니다. 방학이 되어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 저는 아들을 보자마자 첫마디로 물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나님 말씀 봤니?” 아들이 시간이 날 때는 그래도 봤다고 하면 비로소 저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2011년 봄, 어떤 사람이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전화로 신고하는 바람에 저는 중공의 체포를 피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그때 아들은 천 리나 떨어진 곳에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저는 수십 리 떨어진 곳까지 달려가 공중전화로 아들에게 전화해 “잊지 말고 영양제 잘 챙겨 먹어라.” 하고 당부했습니다. 아들이 꼭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저는 안심했습니다. 저는 줄곧 아들이 대학 졸업 후 저와 함께 하나님을 잘 믿기를 바랐고, 아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당신을 믿게 해 달라고 늘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2013년 가을, 아들은 졸업 후 사관학교에 갔습니다. 그제야 저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중공은 무신론 정당이라 군인의 신앙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데, 아들이 사관학교에 가면 하나님 말씀을 못 볼 뿐만 아니라, 매일 중공에 세뇌당하고 무신론 사상을 주입받아야 할 텐데. 그러다간 분명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질 거야. 아들이 과연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지난 몇 년간, 아들이 하나님을 믿어 좋은 종착지를 얻기만을 바랐는데, 이제 내 바람은 전부 물거품이 되고 말았구나.’ 며칠 동안 아들이 그 귀신 소굴에 갔다는 생각만 하면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오고, 그저 눈물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고등학생교에 다닐 때는 2주에 한 번씩 집에 왔지만, 저는 본분이 바빠 집에 돌아가지 못할 때가 많았고, 나중에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게 된 후로는 아들과 교제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만약 내가 현지에서 본분을 이행했더라면, 아들과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이끌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아들이 잘못된 길을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아들에게 빚진 기분이었고, 아들의 앞날과 운명이 더욱 걱정되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교회에는 제 아들 또래의 젊은 형제자매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정도를 걷는데 제 아들은 세상을 추구하는 것을 보며, 저는 늘 아들에게 아쉬움이 남았고, 그때 아들에게 더 많은 공을 들이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읽어 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본분이 바쁘지 않을 때 아들 생각이 나면, 마음이 아프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고 아들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는 한 사람의 삶에서 출산과 부양의 책임을 지고,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형식적으로 제공할 뿐이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오직 창조주의 예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미래는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니, 그 누구도 좌지우지할 수 없다. 부모조차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다. 운명에 관한 한 모든 사람은 독립적이고 각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누구의 부모도 한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막을 수 없고, 그가 현생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데 조금도 힘을 보태 줄 수 없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자녀가 바른길을 걷지 않는 것은 부모와 일정 부분 상관이 있다’는 말은 틀렸다. 어떤 사람이든 그가 걷는 길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분명한 사실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길을 걷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그가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사람이 되든 그것은 그 자신의 일이며, 예정된 것, 타고난 것으로, 본성과 관계가 있다. 그럼 부모의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겠느냐? 사람의 본성에 영향을 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부모의 교육은 사람의 본성에 영향을 줄 수 없고,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다. 부모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무엇뿐이냐? 일상생활 속 자녀의 단순한 행위들, 깊이가 얕은 사상과 처신의 도리들은 부모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부모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책임은 바로 자녀가 바른길을 걷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열심히 공부하고, 성인이 된 후 두각을 드러내며,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가르치는 한편, 자식의 행위를 규범화하여 연장자를 보면 인사하는 등 예의를 알려 줘야 한다. 이렇게 행위와 관련된 것들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다. 자녀의 생활을 돌보고, 자녀에게 기본적인 처신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 부모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부모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부모는 성격이 굼떠서 무슨 일을 하든 느릿느릿하지만, 자식의 성격은 매우 급해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는 열네다섯 살이 되면 사회에 나가 분투하며, 어떤 일이든 자기가 알아서 해서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등 매우 독립적이다. 이것이 부모가 가르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격과 성품, 나아가 그의 본질과 관계되는 것, 추후에 그가 선택할 길 등은 부모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 “자식을 키우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다.”라는 말에는 문제가 있다. 부모에게 자녀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는 하나 자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사람의 본성이다. 교육으로 사람의 본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이 평생 어떤 길을 걷느냐 하는 것은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정한 바이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인류가 체험을 통해 종합해 낸 것이다. 상대가 미성년자일 때, 너는 그가 어떤 길을 걸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성인이 되면 사상이 생기고, 문제를 사고하게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을 할지 선택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고위 관리가 되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변호사가 되겠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등 각자 다른 선택을 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다. 누구도 “부모님이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부모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될 거예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런 바보는 없다. 성인이 되면 사상이 활성화되고, 조금씩 성숙해지며, 눈앞에 놓인 길과 목표가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럼 그가 어떤 부류이고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가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나타난다. 이때, 모든 사람의 성격이 점차 명확해지고, 성품도 점차 분명해지며, 그가 추구하는 길이나 인생 방향, 그가 속하는 집단 역시 점차 확실해진다. 이는 다 무엇에 근거한 것이겠느냐? 근원을 따져보면 하나님이 예정한 것이지, 부모와는 상관이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부모의 책임이란 자녀를 낳아 기르고, 좋은 성장 환경을 마련해 주며, 자녀가 미성년일 때 잘 배우고 정도를 걸으며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가르쳐 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자녀의 일생 운명이 어떠할지, 어떤 길을 걸을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지, 부모가 결정하거나 주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갖게 되면,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가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가 커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정도를 걷지 않는 것이 어머니인 저의 실책이고, 제가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읽어 주거나 이끌어 주지 않아서 아이가 세상의 길을 가게 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졌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저는 늘 자책감 속에서 살며 아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되었으면서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보지 않았으니,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을 믿는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그 본성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집에 있을 때 아들과 하나님 믿는 일에 대해 적잖이 이야기했지만, 아들은 하나님 말씀에 흥미가 없었고, 매번 제가 부르고 재촉해야만 제 눈을 속이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조금 보곤 했습니다. 자란 후에는 세상에 연연하고 명예와 이익을 좋아해서 자연히 세상의 길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외지에서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집에서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어 준다 해도,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아들이 어떤 운명이고 어떤 길을 걷는지는 어머니인 제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본인의 본성과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정하심에 달려 있었습니다. 어떤 자매는 대학 졸업 후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했는데, 믿지 않는 아버지에 의해 파출소에 보내졌지만, 풀려난 후에도 계속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또 어떤 자매는 명문대학에 다녔는데,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굳게 믿기로 결심하고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는 확실히 부모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묵상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식에게 이런 것을 요구한다. “자식은 바른길을 걷고 하나님을 믿어야 해요. 세상과 직장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때 자식은 들어가지 못할 것이고, 부모와 자식은 흩어지고 말 거예요. 나중에 가족 모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지상에서 모여 살았으니 천상에서도 모여 살아야 하고 하나님나라 안에서도 헤어지면 안 돼요. 대대손손 함께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자식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추구한다. 돈 벌고 부자 되는 것을 추구하며, 유행하는 옷을 입고 유행하는 일을 하고 유행하는 말을 하면서 부모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부모는 괴로워하며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한다. 한 번 금식했다 하면 일주일, 십 일, 십오 일 동안이나 한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갖은 애를 쓰는데 늘 배가 고파서 머리가 어질어질하기 일쑤이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목 놓아 울며 기도할 때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하고 애를 써도 자식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고 자식은 각성하지도 않는다. 자식이 믿지 않을수록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이고, 아이한테 빚을 지고 말았어. 아이를 볼 면목이 없어. 아이에게 복음을 전하지도 못했고 아이가 나와 함께 구원받는 길로 나아가도록 하지도 못했어. 이건 복을 받는 길인데, 너는 어찌 그리 어리석니!’ 그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부모가 이렇게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그가 필요하다면 네가 먼저 말할 필요가 있었겠느냐? 그가 스스로 편지를 보내왔을 것이다. 부모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미안해. 일찍 대학에 보냈더니 대학에 가자마자 돌이킬 수 없게 돼 버렸어. 세상을 추구하느라 여념이 없고, 집에 돌아오면 일하고 돈 버는 얘기만 해. 누가 승진하고 차를 샀다느니, 누가 부자에게 시집갔다느니, 또 누가 유럽에 가서 연수하고 유학 갔다느니 하면서 남 사는 것 좀 보라는 얘기만 해. 집에만 오면 하는 이런 얘기들을 나는 듣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아이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아.’ 결국 자식과 사이가 틀어져서 만나기만 하면 얼굴을 찌푸리고 얘기만 나누면 얼굴을 붉힌다. 어쩔 줄 몰라 이렇게 생각하는 자식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대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 안 믿으면 안 믿는 거지 왜 늘 저런 태도로 나를 대하시는 거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을수록 훌륭해져야 하는 거 아니야?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왜 가족애가 없어진 거야?’ 너무 애가 탄 부모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쟤는 제 자식 아니에요. 쟤랑 모자 인연 끊을 거예요.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부모는 어리석지 않으냐? (어리석습니다.) 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하고 자식의 미래와 신앙, 그리고 자식이 걷는 길마저 지배하려 하니 이는 너무도 어리석다! 적절하지 못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것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바로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 저는 마음속으로 계획했습니다. ‘아이가 졸업하면 나랑 같이 하나님을 믿고, 모자가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야지.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아이가 집에 있을 때는 시간만 나면 하나님 믿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몇 번이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라고 다그쳤습니다. 아이가 듣지 않으면 저는 화를 냈고, 때로는 닦달하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외지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수십 리 떨어진 곳까지 달려가 공중전화로 하나님 말씀을 보라고 일깨웠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이성도 없이 아이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어 당신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요구했습니다. 제 운명 하나 주관하지 못하면서 늘 아이의 운명을 제멋대로 주무르려 하고 제 생각대로 인생길을 걷게 하려 했으니, 참으로 교만하고 분수를 몰랐습니다! 아들이 세상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애가 타서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그때 아이를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치러 하나님을 믿는 길로 이끌어 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사실 제가 애가 탔던 것은 아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 훗날 재난에 빠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에 얽매여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는 상관없이, 무턱대로 아이를 억지로 끌어당겨 하나님을 믿게 하려 했고, 심지어 이성도 없이 하나님께 모자가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저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했던 이 모든 것은 실로 너무나 어리석었고, 참으로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로서 성인 자녀에게 지녀야 할 태도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축복하고,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밖에 자녀가 어떤 삶을 살지, 어떤 인생과 운명을 맞이할지 등은 그저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어떤 부모도 이 모든 것을 바꿔 놓거나 주관할 수 없다. 비록 네가 낳고 키운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예전에 말했듯이 부모는 자녀 운명의 주인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의 육을 낳아 주고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 주었지만, 자녀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는 부모가 선사해 주거나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부모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이 잘되게 해 주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잘되겠느냐? 자식이 역경이나 불운을 맞이하거나 갖가지 나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런 나쁜 일을 겪지 않겠느냐? 자식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 그것은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부모의 필요와 기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은 무엇을 알려 주느냐? 자녀가 장성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있고, 독립적인 사상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 독립적인 처신의 원칙과 인생관을 지녀 부모에게 영향받거나 좌우되지 않고, 속박받거나 통제받지 않게 된 이상, 그는 정말 성인이 된 것이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부모가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을 놓는다’는 말은 자식이 독립적으로 나가서 경험을 쌓게 하고 자신의 인생길을 걷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여생의 에너지와 세월을 네가 이행하는 본분과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에 쏟아부어야지 자녀를 위해 시간과 세월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네 생명은 자녀에게 속하지 않으며, 자녀의 삶이나 생존을 위해서, 자녀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모해서도 안 된다. 네 생명은 하나님이 맡긴 본분과 부탁, 그리고 너라는 피조물이 완수해야 할 사명에 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네 생명이 지닌 가치이자 의미이다. 만약 네가 자녀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꺼이 존엄을 내팽개치고 자녀의 노예가 되어 자녀를 걱정하고 무슨 일이든 해 준다면 이는 의미도, 가치도 없는 행동이며, 하나님께 기억될 수도 없다. 한결같이 이렇게 하면서 이런 생각과 행동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기준에 맞는 피조물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너라는 사람은 더없이 패역하고, 하나님이 준 생명과 세월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 이 의무를 다하여 자녀가 성인이 되었다면 그들이 출세하든, 평범하고 단순한 일반인이 되든 너와는 무관하다.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지 네가 결정하는 것도, 네가 선택하는 것도, 나아가 네가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라면 너는 자녀의 삶과 생존에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자녀가 어떤 생활 습관과 생활 규칙, 생활 태도를 갖고 있든, 어떤 생존 방식과 인생관, 세상에 대한 태도를 지니고 있든 그것은 그들 자신의 선택이지 너와는 무관하다. 네게는 그것을 바로잡거나 자녀 대신 고통을 받거나 자녀가 매일 행복하게 살도록 지켜 줄 의무가 없다. 그런 것은 다 불필요한 행동이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므로 평생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얼마나 많은 복을 누릴지, 어떤 가정과 결혼, 자녀를 갖게 될지, 이 사회와 인생 속에서 어떤 일들을 겪을지 자녀 스스로도 예측하거나 바꿀 수 없으며, 부모는 더더욱 바꿀 능력이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를 대할 때 지녀야 할 마땅한 태도를 아주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여 성인으로 키운 후에는 부모의 책임이 끝나는 것입니다. 자녀가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운명을 맞을지는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에 대한 저의 책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이성 없이 아이의 생활과 그가 걷는 길에 간섭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욥이 생각났습니다. 그 역시 아버지로서 자녀들이 자신처럼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기를 바랐지만, 자녀를 대하는 데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지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며 아버지의 책임을 다했을 뿐, 자녀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억지로 끌어당기거나 그들이 걷는 길에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자녀를 감동시켜 하나님을 믿게 해 달라고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했습니다. 욥의 실행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었습니다. 욥과 비교하니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토록 많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으면서도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고, 일이 닥치면 진리를 구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지 않고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했습니다. 저는 욥을 본받아 진리 원칙에 따라 아들을 대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제 아들은 여전히 세상을 추구하고 있지만, 저는 더는 아들의 앞날과 운명을 걱정하지 않고, 아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 안의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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