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명예와 이익의 족쇄에서 벗어났는가
중국 쑤미(蘇米)2002년, 열여덟 살이었던 저는 의류 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예쁘고 세련되게 꾸미고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한 드라마 주인공이 호화 주택에 살면서 자가용을 몰고 다니고, 어디를 가든 대접받는 폼 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삶이...
제 아들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성장 속도도 느렸습니다. 집이 학교와 가까워서 자주 아들을 운동장에 데리고 가 운동 삼아 달리기를 시켰는데, 그때 아이를 눈여겨 본 체육 코치가 있었습니다. 2020년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은 코치에게 발탁되어 교내 축구팀에 들어가 매일 방과 후 운동장에서 훈련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얼굴에 혈색이 돌고 몸도 점점 다부져 가는 아들을 보니 무척 흐뭇했고, 매일 밤 아이로부터 축구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듣곤 했습니다.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몇몇 코치들이 아들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며 따로 동작을 가르쳐 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코치들은 제게도 아주 공손하게 대하면서 아들이 이해력이 좋고, 말을 잘 들으며, 끈기가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을 주전 선수로 키우고 싶다며 상급생들과 함께 경기를 뛰게 했습니다. 저는 ‘우리 아들이 내 체면을 세워 주는구나. 정말 축구에 소질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때부터 아들의 축구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본분이 바쁘지 않을 때면 아들의 경기는 웬만하면 다 보러 갔습니다. 코치도 팀에 일정이 있을 때마다 미리 알려 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저는 꿈에 부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애가 정말 이쪽에 재능이 있나 봐.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자기만의 무기가 없으면 설 자리가 없는데, 내가 잘 키워야지.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면 내 체면도 설뿐더러 아들 덕에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겠지.’ 2021년 새해 첫날, 아들은 지역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금빛 찬란한 트로피를 보며 아들은 저를 껴안고 좋아서 깔깔댔습니다. 저 역시 기뻐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용히 아들의 축구 인생을 계획했습니다. ‘앞으로 고생할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독한 엄마라고 원망하지 마. 다 널 위한 거니까. 나중에 성공하면 엄마의 깊은 뜻을 알게 될 거야. 네가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잘 키워 주지 않으면 부모로서 실격이지.’
그 후로, 저는 자주 아들에게 세계 각국 스타 선수들의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이 선수 정말 멋있지? 언젠가 너도 이 선수처럼 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가뜩이나 축구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은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니 더욱 신이 나서 집에 와서 숙제를 끝내고 나면 바로 경기 영상이나 스타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주요 축구 경기나 각국의 스타 선수들에 대해 훤히 꿰뚫게 되었고, 종종 제게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한 저는 또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쉽게 성공할 수는 없어. 끈기가 있어야 네 꿈을 이뤄낼 수 있는 거야.” 아들은 제 말에 깊이 공감했고, 지루한 기본기 훈련에도 거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2021년 여름방학, 아들은 매일 아침 5시면 운동장에 나갔다가 9시가 넘어서야 훈련을 마쳤는데,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열이 나서 아들이 핼쑥해진 적이 있었는데, 마음이 좀 안 좋았지만 훈련한 성과가 있기를 바랐던 저는 그래도 아이를 축구장에 보냈습니다. 주말에는 클럽 훈련을 하러 갔는데, 간혹 아들이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해도 저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때로 아들이 무척 내키지 않아 할 때는 저는 계속해서 정신 교육을 했습니다. “견뎌야지. 네가 노력하는 모습을 코치님께 보여 드려야 실력이 늘었을 때 더 많은 경기에 데려가 주시지. 그러다 네가 유명해지면 좋은 코치님 눈에 띄어서 더 좋은 팀으로 스카우트될 거고, 그럼 축구 스타가 되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지 않겠니?” 아들은 제 말에 토를 달지 못하고 마지못해 훈련하러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후 심각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2년 연속 대규모 경기들이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아들이 상을 받지 못해 아쉬웠지만, 훈련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부는 썰렁한 운동장에도 아들의 모습은 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들과 저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들에게서 빨리 성과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저는 아이가 집에 와서 훈련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마다 짜증 내며 말을 끊었습니다. “그런 거 말고, 엄마는 경기에서 이겼는지, 골은 몇 골이나 넣었는지, 코치님께 칭찬은 받았는지, 팀에서 네가 제일 잘하는지가 궁금해.” 아들은 제 질문에 어쩔 줄 몰라 했고, 저와 예전만큼 가깝게 지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경기에 이기면 제게 자랑했고, 지면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2023년, 코로나가 전면 해제되면서 각종 경기가 예정대로 열렸습니다. 주말에는 항상 코치가 아이들을 데리고 원정 경기를 떠났고, 방학이 되면 더 먼 도시로 가서 큰 경기에 참가하거나 다른 나라의 또래 팀과 기량을 겨루기도 했습니다. 저는 돈이 얼마가 들든 아들을 적극적으로 참가시켰고, 스스로를 선견지명이 있고 책임감 있는 부모라고 여겼습니다. 아들이 받는 상이 많아질수록 제 체면이 섰고, 코치, 다른 학부모, 친척과 친구들 앞에서 저의 큰 허영심이 채워졌습니다. 그해 저는 본분이 무척 바빴지만, 아이의 훈련에 함께하기 위해 늘 축구장 옆에 차를 세워 두고 아이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일했습니다. 틈틈이 차에서 내려 아이의 훈련 상황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저의 본분 이행 효율은 매우 낮았습니다. 한번은 아들이 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하필 제가 새 신자와 함께 예배드려야 하는 날과 겹쳤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아들의 경기를 무척 보고 싶었지만 본분을 내려놓을 수는 없어 예배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는 내내 제 머릿속은 온통 경기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들이 풀타임으로 뛸 수 있을까? 팀이 이길 수 있을까?’ 섬김 가정에 도착해 보니 새 신자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초조한 마음에 어떻게든 새 신자에게 연락했을 텐데, 그날은 오히려 새 신자가 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들의 경기를 보러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잠시 기다리다가 새 신자가 오지 않자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축구장으로 달려갔고, 마침 후반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 아들이 속한 팀이 이기자 저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새 신자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2023년 10월, 아들이 시 대회에 참가했지만 트로피를 받지 못하자 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특히 아들보다 한 살 어린 팀이 상을 받고 학부모와 아이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축하해주는 것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는 그들이 저를 부러워하기만 했는데, 이번엔 그들이 상을 받고 제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제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집에 돌아와 저는 저녁도 먹지 않고 아들에게 계속해서 감정을 쏟아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2년이나 경기를 못 했는데, 이번에도 성적을 못 내다니. 전부 너희 코치님이 경기 전에 훈련을 제대로 안 시키신 탓이야! 너희 팀에 그 친구가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해서 팀의 발목을 잡았잖니. 너도 마찬가지야. 네 실력도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 않더구나. 네 실력이 뛰어났다면 충분히 팀을 끝까지 이끌 수 있었을 거 아니야!” 아들은 그렇지 않아도 경기에 져서 마음이 상해 있었는데, 이성을 잃은 제 모습을 보더니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 “엄마, 화내지 마세요.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잖아요. 원래 우리 팀이 상대 팀보다 한 수 아래였어요.” 아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자 제 마음 한구석이 뭉클했습니다. ‘그깟 경기 하나 때문에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지?’ 저는 억지로 아들을 격려하는 말을 몇 마디 건넸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고 새벽 한 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에서 제가 어떤 진리에 진입해야 할까요?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길 원합니다.’ 기도 후에 저는 하나님께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 알려 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활을 보살펴 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각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바로잡아 주며 올바른 사상 관점으로 지도해 주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미성년인 자녀에게 치우친 사상 관점이 나타나면, 반드시 부모로서 즉시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아들이 낮에 경기에서 졌으니 집에 돌아와 감정을 풀고 생각을 나눠야 할 사람은 아들이었고, 저는 아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역할을 해주기는커녕 아이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습니다. 정말이지 비이성적이기 짝이 없었습니다! 전 엄마로서 자격 미달이고 형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제 마음이 차츰 누그러졌고 더 이상 경기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아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했는지 반성했습니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의 주관적인 의식 속에 자식의 미래에 대한 그들의 여러 가지 예상, 계획, 그리고 그들 멋대로 정해 놓은 틀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런 기대가 생긴 것이다. 이런 기대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들은 자식에게 여러 가지 기능, 예를 들면 연기, 춤, 그림 등을 배우도록 요구한다. 그리하여 자식이 인재로 자라나 하류층이 아닌 상류층이 되고, 졸병이 아닌 고위 관료가 되며, 사장, CEO, 임원이 되며, 세계 500대 기업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이것들은 모두 부모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 부모의 이런 기대들은 무엇에 근거하겠느냐? 모두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사회와 세상에서 비롯되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모두 자식이 이 세상과 사회에 적응하고 세상과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자식이 사회에서 자리 잡아 철밥통 같은 직업을 갖고, 안정적인 가정과 미래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부모는 후손에게 여러 가지 주관적인 기대가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컴퓨터 공학자가 꽤 유행하다 보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중에 제 아들도 컴퓨터 공학자 시킬 거예요. 그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버니 부모도 체면이 서잖아요!” 아이가 모든 사물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없는 상황에서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는 완전히 어른의 시선으로, 그리고 세상사에 대한 견해, 관점, 기호에 따라 자식에게 기대를 거는 것인데, 이는 주관적인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듣기 좋게 말하면 주관적인 것이지만 사실은 무엇이겠느냐? 이 주관적인 것을 또 다른 방면에서 해석하면 무엇이겠느냐? 이기적인 것 아니겠느냐? 강요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어떤 직업을 좋아한다고 해서, 관직에 오르거나 부자가 되고 싶고 사회에서 떵떵거리고 만사형통하기를 바란다고 해서 자식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거나 그런 길을 걷는 것을 추구하라고 한다면, 앞으로 그런 환경에서 살면서 그런 일에 종사하는 것을 자식이 좋아하는지, 자식에게 어울리는지, 그의 운명은 무엇인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는 무엇인지 네가 아느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부모인 제가 좋으면 그만이죠. 제가 좋으니까 자식에게 그런 기대를 거는 거예요.” 이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무도 이기적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부모가 자신의 기호나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녀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며 그것을 추구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에 비추어 보니, 저 역시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아들도 그렇게 추구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운동에서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저는 아들이 축구를 통해 또래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훗날 유명인이 되어서 큰 부를 축적해 우월한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저도 아들 덕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저는 아들에게서 축구의 재미를 빼앗고, 제 뜻대로 스타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했습니다. 혹독한 추위나 무더위에도, 아들의 체력이 받쳐주든 말든 훈련을 계속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점차 아들은 승패와 명예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었고, 심지어 좋은 성적을 거두면 교만하고 거만해졌습니다. 겉으로는 아이를 위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축구로 출세하는 것을 통해 제 사리사욕을 채우고, 남들의 우러름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제 바람을 이루려 했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에 대한 저의 이런 기대와 요구는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바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유명해지거나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습니다. 제가 다 억지로 시킨 것이고, 제 계획대로 따르도록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이기적이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속에 있는데, 저는 제 맘대로 아들의 인생을 계획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후로 저는 제가 늘 아들이 제 요구에 부응하기를 바란 원인이 무엇인지 구했습니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좀 환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두 단어겠느냐? 바로 ‘명예’와 ‘이익’이다. 사탄은 과격한 방식이 아닌 매우 부드럽고 사람의 관념에 잘 맞는 방식을 써서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생존 방식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그 인생의 꿈은 겉으로 내세우는 말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되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밑천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인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는 밑천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확실하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구하지 않게 된다.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의 유혹이 너무나 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사람이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아도 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제가 아들에게 그런 기대를 걸었던 근본 원인이 바로 명예와 이익을 인생의 추구 목표로 삼았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출세해서 가문을 빛낸다”,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와 같은 사탄의 말을 인생의 신조로 삼고, 오로지 입시와 자격증 취득에만 매달렸습니다. 목표를 이룰 때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부모님도 제 성적 때문에 친척들과 이웃의 부러움을 사면 아무리 고생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승진과 임금 인상, 출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상사에게 굽신거렸고, 동료들과는 가면을 쓴 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지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대도시에서 일하면서 매달 집에 돈을 부쳐 주는 것을 보고 기뻐했고, 저 역시 우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생활에 넌더리가 난 지 오래였습니다. 명예와 이익을 놓고 경쟁하느라 인격의 존엄성을 잃어버렸고, 마음은 외롭고 공허했으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퇴사 후, 저는 오랫동안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제 마음은 평안과 안정을 얻었고, 명예와 이익의 전쟁터에서도 멀어졌습니다. 이제는 제가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이의 축구 문제로 다시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스타 선수로 키워 저도 덩달아 으쓱해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 기대의 본질은 아이가 저처럼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아이가 상대와 겨루고, 경기장 밖에서는 제가 다른 학부모들과 누가 아이를 더 잘 키우는지, 누구 아이가 더 부모의 체면을 세워주는지를 겨루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들이 유명해진 후에 제가 아들 덕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환상까지 품었습니다. 저는 제가 추구하는 목표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아이를 따라다니며 경기를 보면서, 스포츠 경기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명예와 이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능 있는 선수라 할지라도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얻는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것입니다. 더구나 그 찰나의 성취는 순식간에 사라져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쥔 스타 선수들조차도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고, 인생의 굴곡을 마주해야 합니다. 명예나 이익이 늙고 병드는 것을 막아주지 못하며, 수명을 연장해 줄 수도 없습니다. 제가 아들을 스타 선수로 키운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역시 저처럼 사탄에게 고통받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저는 아들을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길로 데려가는 것은 아이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짓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은 분명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명예와 이익에 눈이 먼 제가 직접 아들에게 명예와 이익의 족쇄를 채웠던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만약 책임을 다하고 싶다면 자기 아이의 성격, 성품, 취미, 자질, 그리고 인성에 필요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자신의 금전과 명리, 그리고 돈에 대한 추구를 자식에 대한 기대로 변모시켜서는 안 되고, 명예와 이익에 속하고 세상에 속하는 이런 것들을 자식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듣기 좋게 말하면 자식에 대한 기대지만 사실 이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명백히 자식을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마귀의 품 안으로 떠미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부모는 자녀가 장차 걷게 될 길이나 종사하게 될 직업에 대해 “저 피아니스트를 좀 봐. 저 사람은 네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대. 놀지도 않고, 친구를 사귀지도 않으면서 매일 피아노만 연습하고 피아노 수업을 받았다지. 또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다니고, 온갖 피아노 대회에 참가했대. 봐 봐, 얼마나 성공했니. 생계 걱정도 없는 데다가 어디를 가든 후광이 비치고 존중받잖아.”라는 말 따위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 이런 교육이 자녀를 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교육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는 어떤 교육이겠느냐? 마귀식 교육이다. 어린 마음에 이런 교육은 일종의 학대이다. 이런 교육은 아이가 명인이나 각종 영광, 명예, 지위, 누림을 동경하게 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것들을 지향하고 추구하게 하며, 그것을 위해 초조해하고 속 끓이고 걱정하고 심지어는 온갖 대가를 치르게 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거나 각종 예체능을 배우느라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게 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어린 시절의 시간을 바쳐 그것들과 맞바꾸게 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부모가 명예와 이익에 대한 자신의 추구를 자녀에게 투영하여 양육하고 교육하는 과정에까지 관철시키는 것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짓이며, 본질적으로는 아이를 마귀의 품으로 밀어 넣는 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창 아무 걱정 없이 지내야 할 유년기의 아들에게 훗날 스타 선수가 되어 유명해져서 큰돈을 벌라고 예닐곱 살 때부터 부추겼습니다. 이는 나이로든 심리적으로든 아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지만, 저는 이런 사상을 아이에게 강제로 주입하며, 아무리 피곤하고 아파도 훈련을 계속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아들에게 축구는 더 이상 단순한 취미나 관심사가 아니었고, 저 때문에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득실과 성패를 따지도록 아이를 몰아붙였고, 또래와 비교하게 만들었어요. 더 많은 코치에게 눈도장을 찍도록 혹독하게 훈련하라고 다그쳤습니다. 이제 아들은 경기에서 이기거나 상을 받으면 거만하고 안하무인이 되고, 다른 아이가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으면 낙담하고 질투합니다. 그 나이대에 가져야 할 동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제 바람을 아이에게 강요한 결과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명예와 이익이 얼마나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지 간파하지 못했고 오히려 아이에게 그것을 좇으라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제 본분까지 지체시켰으니 정말이지 자기 소임을 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몹시 후회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저는 부모 자격도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아이를 교육하고 아이의 취미와 관심사를 대해야 할까요?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길 원합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여러 가지 기대와 요구를 하는 것은 자식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지 결코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은 무엇이겠느냐? 최소한 자식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말을 하며 정직한 일을 하라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 밖에, 자식의 자질과 조건에 따라 실용적인 지식이나 재능 등을 배우도록 지도해야 한다. 만약 부모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달았다면 자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받아들이며 창조주를 인식하도록 해야 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고 이 우주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자식이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도록 이끌어 어른이 된 이후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좇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인간관계에 빠지며 이 세상의 온갖 사악한 흐름에 유혹되고 패괴되고 짓밟히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다.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은 바로 부모라는 역할을 하면서 자식이 미성년자인 기간 동안 자식을 긍정적으로 인도하고 적절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 밖에, 자식의 육적 생활 측면에서 의식주를 제때 보살펴 주어야 한다. 아이가 병에 걸려서 치료해야 하면 곧장 치료해야지 학업에 지장을 줄까 봐 치료는 포기한 채 계속 학교에 보내서는 안 된다. 병을 치료해야 하면 치료에 전념하게 해야 하고 쉬어야 하면 쉬게 해야 한다. 아이의 건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학업에 지장이 생기면 방법을 찾아 다시 보충하면 된다. 이것이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다. 한편으로는 자식이 지식을 잘 배우도록 도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가 바른길로 가도록 지도하고 교육해야 한다. 자식이 사회의 좋지 않은 풍조에 영향받지 않고 건강한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운동을 하며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이런 것이지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어떤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거나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필요로 하는 측면과 육적 생활이 필요로 하는 측면 모두에서 부모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음식은 차가운 것 말고 따뜻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 날씨가 쌀쌀해지면 한기가 들거나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옷을 따뜻하게 입어야 한다는 것 등의 생활 상식을 알려 주어 자식이 자기 건강을 잘 보살필 줄 알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 편으로, 아이가 어린 마음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유치하고 미성숙하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품을 때, 부모는 발견 즉시 올바르게 인도해 주어야 한다. 아이의 그런 유치한 환상이나 극단적인 것들을 바로잡아 줌으로써 자녀가 인생의 바른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활을 보살펴 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각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바로잡아 주며 올바른 사상 관점으로 지도해 주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부모로서 미성년인 자녀에게 다해야 할 책임은, 한편으로는 자녀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육적인 생활을 돌보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와 자주 소통하면서 심리적인 문제를 제때 바로잡아 해결해 주고, 더 나아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현실적으로 필요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의 됨됨이, 자녀를 대하는 법에 관해 실질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저는 부모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일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제야 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만 진정으로 부모의 책임을 다할 수 있고, 아이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깨닫고 나서는 더 이상 아이에게 훈련과 각종 경기에 참가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또한 아이와 소통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스타 선수가 되려고 애쓰지 말자. 축구가 좋으면 그냥 재밌게 축구만 하면 돼.” 제 말을 듣고 아들은 무척 놀라면서도 기뻐했고, 제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로 아들이 훈련이나 경기에 갈 때면 저는 아이 혼자 부딪히게 했고, 저는 차분히 제 본분에 집중하며 더 이상 그 일로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2024년 5월, 아들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한 경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상대 팀이 강해 경기가 과열될까 봐 참가하지 말라고 권했지만, 아들은 꿋꿋하게 가겠다고 했습니다. 경기에서 동료 선수의 실수로 두 골을 내주었고, 아들 역시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긴장한 탓에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조금 불평하며 아쉬워했습니다. 저는 차분히 아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격려해 주었고, 아들은 제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풀렸습니다. 평소에 저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면서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이야기나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키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아이는 무척 흥미로워하며 잘 알아들었습니다. 또 저는 항상 어려움에 부딪히면 거짓말로 속이거나 나쁜 짓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지금도 명예와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제 마음속에서 이따금 꿈틀거릴 때가 있습니다. 특히 다른 집 아이가 취미나 관심사에서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 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더 이상 제 뜻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저와 아들 모두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고 아들을 불러 함께 읽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네게 한 분야의 흥미나 기호, 특기를 주었다고 해서 반드시 네 흥미나 기호, 특기와 관련된 본분이나 사역을 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분야의 본분을 이행하거나 이 분야의 사역에 종사하게 할 것도 아니면서 왜 제게 이런 흥미나 기호, 특기를 주신 겁니까?” 하나님은 절대다수의 사람에게 저마다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 흥미와 기호를 준다. 물론 이는 여러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생계와 생존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인생을 다채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분야에 대한 흥미와 기호가 필요할 때가 있다. 취미를 즐기거나 본연의 일을 좀 하면서 알차게 생활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 보든 하나님이 준 것은 모두 이치에 맞는 것이며, 하나님이 네게 주지 않은 것에도 하나님의 도리나 이유가 있다. 네 인간적인 생활이나 생존에 하나님이 준 흥미나 기호, 특기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너는 다른 경로를 통해 네 생계를 유지하거나 네 인간적인 생활을 알차고 풍부하게 해도 된다. 어쨌든, 하나님이 사람에게 흥미나 기호, 특기를 주었든 주지 않았든, 그것은 사람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령 특별한 특기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성의 결함이 아니니 사람은 올바로 받아들이고, 올바로 대해야 한다. 만약 한 분야에 대한 흥미나 기호, 특기를 가졌다면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올바로 활용해야 하며 가지지 못했어도 원망해선 안 된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어떤 취미나 관심사를 주시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람의 인간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취미나 관심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을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취미나 관심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가 깨달은 바를 교제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축구를 좋아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축구를 하면 정말 즐겁거든요. 그런데 제가 나중에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하시는지에 달려 있어요.” 저는 “맞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니 이 문제는 그렇게 이해해야 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가 우리에게 길이 생기고, 우리 마음이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도록 매사에 실행 원칙을 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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