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흥미와 기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중국 원놘(溫暖)제 아들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키도 잘 크지 않았어요. 집이 학교랑 가까워서 저는 자주 애를 데리고 운동장에 나가 달리기하면서 운동을 시켰는데, 그때 체육 코치님이 아들을 눈여겨보셨죠. 2020년에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습니다. 저와 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생활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데다 성적까지 좋지 않아서, 저는 중학교까지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둔 뒤 돈을 벌러 나갔습니다. 배운 게 없어 막노동밖에 할 수 없었고, 고된 데다 체면도 서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번 생에 배운 게 없으니 하층민으로 살 수밖에 없겠구나.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나처럼 배운 것 없이 살게 할 수는 없어.’ 그래서 결혼 후 첫딸을 낳았을 때,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딸의 미래도 밝아질뿐더러 엄마인 저도 체면이 설 테니까요.
그때 저와 남편은 집에서 작은 장사를 하면서 아이를 학교에 보냈습니다. 딸이 두 살 때, 저는 인터넷으로 유아 계몽 서적을 사서 가르쳤습니다. 밥을 짓거나 빨래할 때도 딸에게 ≪삼자경≫을 가르쳤고, 당시도 외우게 했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앞 구절을 외우면 딸이 뒤 구절을 외우기도 했습니다. 습득이 빠른 딸을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똑똑하기도 하지. 나중에 틀림없이 공부를 잘하겠구나.’ 딸이 네 살이 되자 저는 딸을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반년 후, 저는 기초반에서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해 딸을 중등반으로 올렸고, 중등반도 다 마치기 전에 고급반으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집에서 멀지 않은 유치원을 골랐지만, 나중에 딸이 그곳에서 배운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지금이 바로 기초를 다져야 할 때인데, 이대로 가면 아이 앞날에 지장이 생기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소문한 끝에, 집에서는 멀지만 잘 가르치는 유치원을 찾아 매일 아침저녁으로 딸을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때는 딸을 위해 좋은 유치원을 찾아 주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이 좋은 성적을 받게 하려고 먹을 것 쓸 것 아껴 가며 500위안이 넘는 돈을 들여 전자펜을 사 주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딸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저는 밥을 먹고 나면 먼저 글씨 쓰기 연습을 하고, 다 쓴 뒤에는 교과서 한 단락을 외워야만 밖에 나가 놀 수 있게 규칙을 정해 주었습니다. 딸은 제가 시키는 공부가 너무 많아 다 끝내지 못하면 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울며불며 떼를 썼습니다. 그러자 저는 화가 나서 딸에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네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이 숙제들을 다 할 수 있을 거고, 그럼 나도 너한테 신경 쓸 필요가 없잖아. 내가 너를 관리하는 것도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 아니니? 누구네 집 애 좀 봐. 성적도 좋은데 부모님이 집에 안 계셔도 알아서 공부하잖아.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좋은 미래는커녕 밖에 나가서 일자리도 못 구해. 그때 가서 밥 굶어도 나한테 찾아오지 마!” 딸은 제 잔소리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마지못해 제 요구대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관리하에 딸은 성적이 올랐습니다. 매번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받았고, 어떨 때는 99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딸을 나무랐습니다. “왜 100점을 못 맞았어? 1점 차이잖아.” 그러고는 딸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했습니다. 또 과외 시간에 보충 학습을 하라며 문제집까지 사 주었고, 하루빨리 100점을 맞으라고 다그쳤습니다. 2021년 6월, 당시 2학년이었던 딸의 성적이 계속 떨어지자 저는 딸을 나무랐습니다. “넌 어째 시험 볼수록 성적이 떨어지니!” 저는 딸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았다고 꾸짖으며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어떨 때는 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손찌검을 하기도 했습니다. 딸은 저만 보면 무서워했고, 저에게 반항하지 못하고는 자기 자신을 손으로 때렸습니다. 또 저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고, 할머니에게는 엄마가 자기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무척 화가 나서 딸에게 말했습니다. “넌 아직 어려서 철이 없지만, 엄마가 이렇게 하는 건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엄마는 어렸을 때 공부를 제대로 못 해서 좋은 미래도 없이 하층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어.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처럼 살면 안 돼.” 딸은 어쩔 수 없이 제 요구대로 해야만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교회 리더로도 선출되었습니다. 교회 사역이 비교적 바쁜 탓에 집에서 아이의 공부를 봐줄 시간이 많지 않았고, 딸은 성적이 뚝 떨어져서 90점대이던 시험 점수가 서서히 70점대로 떨어졌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대학에 가서 좋은 미래를 여는 건 고사하고 중학교나 제대로 졸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딸의 미래도 밝지 않고, 내 체면도 서지 않잖아.’ 그래서 저는 낮에는 교회 사역으로 바쁘게 보내고, 밤에는 딸의 공부를 봐주었습니다. 하지만 딸이 워낙 노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게다가 선생님까지 전화가 와서 딸의 성적이 심각하게 떨어졌다고 알려 주면서 덧붙였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이 공부를 그냥 내버려 두시면 안 되죠!” 선생님 말에 저는 속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본분이 너무 바빠 공부를 돌보지 못하니까 성적이 그렇게 심하게 떨어진 거야.’ 그러자 리더 본분도 더 이상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매주 예배나 드리면 좋겠다고, 그러면 집에서 아이 공부를 봐줄 시간이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오후, 리더가 와서 저희와 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거기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 딸의 성적이 너무 심각하게 떨어졌습니다. 계속 이대로 가면 아이의 장래에 지장을 줄까 봐 더는 리더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압니다. 부디 저를 이끌어 주셔서 제가 실행할 길을 찾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친 뒤 저는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리더에게 제 내적 상태를 얘기했더니, 리더는 제게 교제도 해 주고 집에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교육하는 잘못된 방식에 대해 밝히신 말씀을 찾아보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 저는 그 방면의 하나님 말씀을 찾아 읽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 혹은 집안 어른이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저마다 조금씩 다른, 크고 작은 기대를 품고 있다.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처신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열등생이 아닌 우등생, 수재가 되어 선생님과 동급생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시험 성적은 늘 80점 이상이기를 바라는데 만약 60점을 받으면 때리고, 60점도 못 받으면 벽을 보고 반성하게 하거나 벌로 오래 세워 두거나 밥을 안 주거나 잠을 안 재우거나 TV를 못 보게 하거나 컴퓨터를 못 쓰게 하거나 사 주기로 했던 좋은 옷과 장난감을 안 사 준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갖가지 기대를 품고, 자녀에게 커다란 희망을 건다. 다들 자녀가 굵직한 인물이 되고 출세 가도를 달려 조상과 가문을 빛내기를 바란다. 자기 자녀가 나중에 거지, 농사꾼이 되거나 심하게는 강도, 도적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자기 자녀가 사회에 나가 남의 아랫사람 노릇을 하거나 고물을 줍거나 노점상을 하거나 영세 상인이 되거나, 혹은 남에게 무시당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부모의 이러한 기대가 실현될 수 있든 없든 아무튼 부모는 자녀에게 갖가지 기대를 품는다. 그들의 기대는 자기가 좋다고 여기거나 고상하다고 여기는 것, 혹은 그러한 추구를 자녀에게 의탁하고, 자녀에게 희망을 걸고, 그들이 부모의 바람을 실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의 이러한 바람은 알게 모르게 자녀에게 무엇으로 작용하겠느냐? (압박감입니다.) 압박감이 되고 또 무엇이 되느냐? (짐이 됩니다.) 압박감이 되고 일종의 족쇄가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으므로 자신들의 기대에 맞추어서 자녀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교육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을 위해 자녀에게 투자를 하거나 그 어떤 대가든 치른다. 자녀가 학교에서 수재이자 뛰어난 학생으로서 시험을 볼 때마다 90점 이상을 받아 1등을 하고, 아무리 못해도 5등 안에는 들기를 바라는 부모를 예로 들겠다. 부모가 이렇게 말하고 나면 아이가 그 목표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자기들도 어느 정도 희생하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목표를 실현하게 만들기 위해서 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복습하고 교과서를 외우면 자기들도 일찍 일어나 함께하고, 더운 날에는 아이에게 부채질을 해 주고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 주거나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먹인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에게 콩국, 꽈배기 튀김, 달걀을 준비해 준다. 특히 시험 기간에는 아이에게 긴 꽈배기 하나와 달걀 두 개를 주면서 먹고 100점 받기를 바란다. 만약 네가 “못 먹겠어요. 달걀은 하나만 먹을래요.”라고 하면 “뭘 모르는구나. 달걀을 하나만 먹으면 10점밖에 못 받으니까 하나 더 먹어. 힘내서 이 달걀까지 먹으면 100점 받을 거야.”라고 한다. 아이가 “방금 일어나서 안 들어간단 말이에요.”라고 하면 “안 돼. 꼭 먹어야 해! 착하지, 엄마 말 들어.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먹으렴.”이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고민하다가 이런다. “엄마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는구나. 다 나를 위해서 저러시는 거니까 먹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달걀이지만 사실상 삼키는 것은 무엇이냐? 압박감, 달갑지 않은 마음이다. 음식이 좋고 어머니의 기대가 아주 크니 인성과 양심상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러한 사랑에 반항해야 하고 그러한 방식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만약 먹지 않는다면 어머니가 화를 낼 것이고, 너를 때리고 야단치거나 심지어 몹쓸 말을 퍼부을 수도 있다. … 너는 부모의 기대 속에서 어떠한 교육을 받느냐? (시험을 반드시 잘 봐야 하고 나중에 성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꼭 성공해야 하고, 꼭 어머니의 사랑과 고생스레 치른 대가를 헛되게 만들지 말아야 하고, 꼭 어머니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너를 너무나 사랑하고, 너를 위해 전부를 바쳤으며, 생명으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치른 그런 대가와 그들의 교육, 그들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전부 무엇이 되느냐? 네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 되는 동시에 네 짐이 된다. 그 짐은 바로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은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를 품게 되면 자신이 자녀를 위해 하는 모든 것이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고,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학력을 얻어 가문을 빛내고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자녀에 대한 자신의 기대에 따라 이래라저래라 요구하면서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이에게 어떤 스트레스를 줄지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폭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저의 상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딸이 두 살 무렵 아이가 똑똑한 것을 보고,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커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남들에게도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가문도 빛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기대를 품은 뒤로는 딸을 위해 좋은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좋은 기초를 다지게 했습니다. 또 먹을 것 쓸 것 아껴서 학습 도구를 사 주었고, 늘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라고 요구하며 성적이 좋은 옆집 아이와 비교했습니다. 딸이 제가 정해 준 방식대로 따르려 하지 않으면 저는 이 모든 것이 다 딸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나중에는 구걸하며 살 수밖에 없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로 인해 딸은 감히 제 말을 거역하지 못했고, 전혀 자유가 없었습니다. 딸은 제게 따지지도 못하고 그저 자기 자신을 때릴 뿐이었고, 저를 점점 더 멀리했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은 딸의 어린 마음에 상처만 주었지만, 저는 여전히 그것이 딸을 위한 것이라 여기며 딸을 가르치는 그런 방식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미성년자인 후손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출발선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아이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해’에서 ‘커서 출세하고 사회에서 자리 잡아야 해’로, 자식에 대한 요구로 점차 변해간다. ‘너는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자리 잡고 나서도 근본을, 부모님을 잊어선 안 돼. 너는 가장 먼저 부모님께 보답해야 해. 넌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고, 부모님께서 행복한 생활을 하시도록 해야 해. 왜냐하면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너의 은인이고 너를 기른 사람이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 네가 누리는 이 모든 것, 네가 가진 이 모든 것은 다 부모님의 피땀으로 바꾸어 온 거야. 그러니 너는 여생을 바쳐 부모님께 보답하고 부모님께 진 빚을 갚고 부모님께 잘해 드려야 해.’라는 것이다. 이는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자식이 사회에서 자리 잡고 출세하길 바라는 부모의 기대가 변화한 것으로, 자식에 대한 정상적인 기대가 점차 자식에 대한 요구와 토색으로 변한 것이다.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 만약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반항하며 공부하기 싫어하거나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부모를 거역한다면 부모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안 힘든 줄 알아?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데? 다 너를 위해서 아니야? 내가 하는 모든 건 다 너를 위해서인데 넌 감사할 줄도 모르는구나. 넌 왜 이렇게 맹하니?” 이런 말들로 너를 협박하고 구속한다. 이런 방식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옳지 않다. 이는 부모의 ‘고상’한 부분이자 비열한 부분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품는 기대의 이면에는 속셈과 목적이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대가를 치른 뒤 아이가 출세하면 자신의 체면이 서고 가문이 빛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서 물질적인 이득을 얻어 자신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밝혀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딸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가르치고 엄하게 관리하는 것이 모두 딸의 밝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계속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은 오직 저의 개인적인 이익이 목적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딸이 아주 어릴 때부터 제가 딸을 키운 것은 딸이 기초를 잘 다져 좋은 대학에 가고 출세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가문을 빛내고 저도 체면이 설 뿐만 아니라, 딸의 생활이 좋아지면 엄마인 저에게도 잘해 주고 효도할 테니 제 생활도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노는 것을 좋아하자, 저는 이대로 가다가는 성적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되어 딸을 꾸짖거나 때렸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에는 너무 바빠 딸의 공부를 봐줄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딸의 성적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이대로 가다가는 딸의 미래가 영향을 받고 제 체면과 이익도 만족될 수 없을까 봐 걱정되어 심지어 리더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딸을 위해 한 모든 일에는 속셈과 목적이 있었고, 모두 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탄의 독소인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에 따라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할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의 본질을 해부해 보면, 부모의 기대는 이기적이고 인성에 위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모의 책임과도 관련이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여러 가지 기대를 품는 것, 강제로 다양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위 책임이란 무엇이겠느냐? 부모가 최소한 다해야 하는 책임은 너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나쁜 사람이 되지 말고 선량해야 한다고 교육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너를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 밖에 너의 나이, 네가 견딜 수 있는 정도, 너의 자질과 취미에 근거해 너에게 적합한 어떤 지식과 재주 등을 익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부모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이 우주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식에게 알게 하며, 그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인도하고, 성경 이야기도 좀 들려준다. 그가 어른이 된 후 세상의 흐름을 좇고 각종 복잡한 인사 관계에 빠져 이 세상, 이 사회의 갖가지 흐름에 짓밟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길 바란다. 부모가 다해야 하는 책임은 부모의 기대와는 관련이 없다. 부모가 다해야 하는 책임은 바로 부모라는 역할을 맡아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고 그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자식의 육적인 생활 방면에서 그의 의식주를 제때 살피는 것, 또는 그가 아플 때 신속히 보살펴 주는 것이다. 아이가 아플 때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해야 한다. 그를 상관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가 아픈 걸 보고도 그에게 “학교는 계속 가야지. 공부도 계속 해야 하고. 숙제도 빼먹으면 안 돼. 많이 빼먹으면 수업을 못 따라가니까.”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에게 휴식이 필요하면 휴식을 취하도록 해야 하고, 그가 아프면 몸이 회복하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 이는 부모의 책임이다. 한편으로는 그의 몸이 건강하도록 잘 보살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이 건강하도록 지도하고 교육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은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지 자식에게 강요하는 어떤 비현실적인 기대나 요구가 아니다. 한 방면은 마음에 필요한 것이며 다른 한 방면은 육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부모는 이 두 방면에서 모두 책임을 다해야 한다. 겨울에는 그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그에게 생활 상식들을 알려 주어야 한다. 감기에 걸리는 상황,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기 때문에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 날씨가 추워지면 바람 부는 곳에서 함부로 옷을 벗거나 바람을 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 그가 스스로 건강을 챙길 줄 알도록 해야 한다. 한편, 아이의 어린 마음속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유치하고 성숙하지 못한 생각들이 생기거나 극단적인 사상들이 생기면, 부모는 발견 즉시 강제로 억압하지 말고 제때 올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그가 그것들을 표출하고 털어놓아 진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보살펴 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끌고 바로잡아 주며 올바른 사상 관점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부모가 다하는 책임은 사실 후손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너는 그가 어른이 된 후 건강하길 바라도 되고, 그가 어른이 된 후 인성과 양심, 그리고 이성을 갖추기를 기대해도 되며, 혹은 그가 너에게 효도하기를 바라도 괜찮다. 그러나 그가 어른이 된 후 어떤 유명 인사,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고, 아이에게 “옆집 아이 샤오밍(小明)은 얼마나 말을 잘 듣니!”와 같은 말을 자주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네 아이는 그저 네 아이일 뿐이다. 네가 다해야 하는 책임은 그에게 옆집 샤오밍이 얼마나 착한지 알려 주어 그가 옆집 샤오밍을 본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사상 관점, 취미와 관심사, 자질, 성격이 서로 다르고, 또한 인성 본질이 선량한 사람이 있는 반면 흉악한 사람도 있다. 선천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타고나길 말수가 적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해도 답답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만약 책임을 다하고 싶다면 자기 아이의 성격, 성품, 취미, 자질, 그리고 인성에 필요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어른인 자신의 세상과 명리에 대한 추구를 자식에 대한 기대로 변모시켜서는 안 되고, 사회에서 비롯되는 명리에 속하고 세상에 속하는 이런 것들을 자식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듣기 좋게 말하면 자식에 대한 기대지만 사실 이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명백히 자식을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마귀의 품 안으로 떠미는 것이다. 만약 네가 정말로 부모의 자격을 갖췄다면, 너는 자식의 몸 건강과 마음 건강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하지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자신의 바람을 그들에게 강요하여 그들의 어린 마음이 미성년자일 때 견뎌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을 견디도록 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저는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부당한 요구나 기대를 내려놓고, 아이의 실제 상황에 맞게 대해야 하며, 자신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을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딸의 교육 문제를 대하는 일을 돌이켜보니,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딸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저는 올바르게 대해야 했습니다. 늘 옆집 아이와 비교하지 말았어야 하고,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잘못된 사상을 주입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장래에 출세하여 가문을 빛내라고 하지도 말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령대가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실제 상황에 맞게 요구해야 합니다. 제 딸은 열 살도 채 되지 않았으니, 노는 것만 좋아해서 숙제하기 전에 잠시 놀고 싶어 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제 교육 방식에 따라 아이에게 요구 해 놓고, 딸이 해내지 못하면 나무라서는 안 됩니다. 이는 아이의 여린 마음에 상처만 줄 뿐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진정으로 아이에게 좋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는 것으로, 아이의 자질과 성격, 그리고 해당 연령대에 맞게 아이를 대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가 저의 방식대로 자녀를 교육하면, 설령 딸이 출세하는 목표를 이룬다 해도, 딸은 갈수록 무신론적인 지식을 많이 배우고, 그만큼 하나님과 더 멀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복음을 전했을 때 자신이 배운 지식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딸의 앞날을 망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저는 더 이상 이전처럼 딸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고, 딸이 나중에 대학에 가서 저를 빛내 주기를 바라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딸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실용적인 지식을 좀 배우기를 바랄 뿐, 앞으로 좋은 학력을 갖게 될지, 좋은 직장을 찾게 될지, 어떤 미래를 갖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한 사람이 어떤 사회 환경에서 어떤 일이나 사업을 하게 될지는 모두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는 부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전공을 선택하고, 졸업 후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인생 여정에서 첫발을 순조롭게 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기술을 가졌어도 자신의 사업은 고사하고 자기에게 맞는 일이나 자신이 속할 곳 하나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첫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순탄치 않아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경우다. 성공과는 연이 없는 운명인 것처럼, 힘들게 공부했지만 대학교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첫 희망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 경우, 앞으로의 운명은 순탄할지 험난할지 알 수 없는 변수로 가득 차 있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고, 인생에 대해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품게 된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도 책을 써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자무식인데도 창업을 해 돈을 벌고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사람은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의 바람과 결정에 따른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어 한다. 바람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에서 지내며 번듯하게 차려입고 떵떵거리며 살기를 원하고, 남보다 성공해서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한다. 사람의 소망은 이렇게 ‘완벽’하지만, 그가 인생의 여정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운명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차츰 깨닫게 된다. 또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대담한 계획을 세우고 마음껏 꿈을 키울 수는 있어도 실제 자신에겐 꿈을 실현할 능력과 힘이 없을뿐더러 미래를 결정할 능력도 없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직면한 현실은 언제나 꿈과는 괴리가 있고 늘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사람은 그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직업과 미래를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운명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능력, 지능,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 앞에서 사람은 나이, 우열, 귀천을 구분할 수 없는 동등한 존재이다. 사람이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질지는 부모에 의해 좌우되거나 재능, 노력, 욕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창조주가 정한 운명에 달려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일생에 어떤 미래와 운명이 펼쳐질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에 달렸으며, 아이가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을지는 제 요구나 아이 자신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일생을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가고 좋은 학력을 갖췄지만 마음에 쏙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학문이 깊지 않아도 큰 사업을 일구기도 합니다. 마치 제가 아는 한 친구의 아들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계속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집에서 실업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또 저희 할머니의 의붓며느리도 대학에 갔지만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제 남편의 고모부는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못했고 아는 글자도 많지 않았지만, 직접 공장을 차려 사장이 되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러한 실제 사례들을 통해 저는 사람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미래를 가질 수 있는지의 여부는 대학에 갈 수 있느냐에 달린 것도, 부모가 교육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저는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고, 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며, 더는 딸에게 학교를 통해 저의 출세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이전처럼 딸을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딸에게 하나님 믿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며, 천지 만물과 인류는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사람은 살면서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딸도 저와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제 교제를 듣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무척 기뻤습니다. 얼마 후, 딸은 말을 잘 듣게 되었고, 숙제도 제때 끝냈으며, 성적도 차츰 좋아져서 매번 시험에서 80점 안팎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 기뻤지만, 이번의 기쁨은 이전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는 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네가 몇 점을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엄마는 이제 너한테 100점을 맞으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가라고도 안 할 거야. 엄마가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사람의 미래와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네가 커서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다하면 된단다.” 딸은 기뻐하며 알았다고 대답했고, 지금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니 아이가 더는 괴로워하지 않고도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저 또한 해방감을 느꼈고, 더 많은 힘을 본분을 이행하는 데 쏟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사람의 일생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 속에 있으며, 딸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는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시는 것이지, 딸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장악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제가 딸에게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미래를 갖게 하려 했던 것은 모두 저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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