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증오 감정을 내려놓았나
저는 리신과 함께 문서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나중에 리신은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체되었습니다. 교체된 후에도 그녀는 계속 불복하며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내적 상태에서 살며 저와 경쟁하려 했습니다. 저는 리신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좋지...
저는 예전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마음속에 늘 한 가지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선의를 갖고 본분을 잘 이행하려고만 하면 하나님께서 저의 좋은 마음을 보시고 칭찬하며 기쁘게 받아 주실 것이고, 본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도록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노력한 뒤에 돌아오는 것이 비판과 지적, 심지어 책망과 훈계일 때면 속으로 무척 억울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시는 분이 아니었던가? 왜 내 좋은 마음에 찬물을 끼얹으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고 위축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방식이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제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체험 중에 기도로 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조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2년간 교회에서 영상 사역을 책임졌습니다. 2024년 5월, 리더는 한 찬양 영상에 사용된 소재가 주제와 맞지 않는다며 다시 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영상을 보니 제작자가 사용한 일부 소재는 꽤 신선했지만 노래가 표현하려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 했지만 원칙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리더는 그 영상의 문제점에 대해 자세히 교제하고 제작한 사람들을 책망했습니다. 리더가 언급한 한 가지 핵심이 제 마음에 무척 와닿았습니다. 리더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원칙이 전혀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데도 구하지 않으며, 자신의 관념과 상상, 그리고 좋은 마음에만 의지해 일하다가 결국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저지른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건 바로 내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자주 저지르는 잘못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저희가 제작한 영상은 표현 방식이 비교적 단조로워 적지 않은 형제자매들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저 역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제작하는 영상에 실제로 그런 문제가 있었기에, 배우고 연구해서 과감한 돌파구를 마련해 사람들에게 우리가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몇 개의 참고 영상을 찾아 형식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저희가 제작한 샘플 영상을 몇몇 형제자매에게 보여 주자 그들은 꽤 신선하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포맷을 좀 사용한 것을 고려하며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리더에게도 보여 주면서 검토해 달라고 할까?’ 하지만 또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리더가 보고 나서 원칙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이 포맷에 반대하면 어쩌지? 그냥 리더에게 보여 주지 말자. 우리가 보기에 괜찮으면 바로 올리지 뭐.’ 하지만 그렇게 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리더에게 영상을 보내 검토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리더는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일부 형식은 주제와 맞지 않고, 생각이 너무 단순하며 분별력이 조금도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무척 가라앉았습니다. 저도 그 영상에 아직 문제가 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는 좋은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고 뜨거운 마음으로 사역을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리더는 왜 격려의 말 한두 마디를 해주어 마음을 좀 편하게 해 주지 않는 건지 싶었습니다.
그 후 저는 왜 본분을 이행하다 리더의 지적과 책망을 받으면 억울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리더가 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방식이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구했습니다. 묵상 시간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기분이 좋고 체면이 서는 방식대로 하면 이는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다. 네가 개인 취향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그게 하나님의 요구이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 여기며 개인 취향을 하나님께 강요한다면, 개인 취향을 진리로 삼아 실행하고 진리 원칙으로 삼아 지킨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냐? 그것은 본분 이행이 아니다. 그러한 본분 이행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 무엇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난 힘과 마음을 다했고 육도 저버리며 고통받았어. 그런데도 본분 이행이 왜 늘 기준에 달하지 못할까? 왜 하나님은 늘 만족하지 못하시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그의 잘못은 무엇이겠느냐? 그의 잘못은 하나님의 요구를 구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행동했다는 데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의향과 취향, 사심을 진리로 여겼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 하나님의 기준이나 요구로 여겼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 좋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진리로 삼았으니, 이것이 잘못이다. 사실 사람이 옳다고, 진리에 맞는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해서 꼭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눈에 옳게 보일 때일수록 더 신중해야 하고, 진리를 구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지 봐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요구와 정확히 위배되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위배된다면, 네가 옳다고 생각해도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기에 아무리 옳아도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따라 가늠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근거가 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틀린 것으로, 포기해야 한다. 반드시 진리에 부합해야만 한다. 이렇게 진리 원칙을 고수해야만 본분 이행이 비로소 기준에 달할 수 있다. 본분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본분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이자 하나님 집 사역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모든 선민이 마땅히 맡아야 할 책임이고 의무이다. 본분이 네 개인적인 사업이겠느냐? 네 개인적인 가정사겠느냐? 본분이 네게 맡겨지면 네 개인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본분을 이행해야겠느냐? 반드시 하나님의 요구와 말씀, 하나님의 기준,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해야지, 사람의 주관적인 바람대로 행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본분을 저에게 맡겼으니 제 일이 아닌가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몫이고, 제가 해야 할 몫이면 개인의 일이 아닌가요? 본분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면 잘 이행할 수 있잖아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잘 이행할 수 있을까요?” 이 말이 옳으냐, 틀리느냐? 이것은 틀린 말로,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본분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 사역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해야만 기준에 달할 수 있다. 늘 너의 관념과 상상에 따르고, 네가 원하는 대로 이행한다면 기준에 달할 수 없다. 네가 항상 자기 뜻대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행하는 일이 하나님의 경영 범위 내에 있지 않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자신의 경영을 하고,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그런 마음 상태였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힘을 다하고 마음을 쓰며 대가를 치르고 궁리하기만 하면 그것이 본분을 잘 이행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만족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생각한 ‘좋음’이 원칙에 부합하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순간적인 생각에 이끌려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하고 좋은지 판단하고 그대로 해버렸고, 진지하게 원칙을 구하거나 차분히 자료를 찾아보고 배우며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작품이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마치 찬양 영상을 제작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외부인들은 영상을 제작할 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조회수를 늘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채로운 장면 전환과 뛰어난 편집 기술을 통해 영상을 더 화려하게 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상을 제작하는 가장 주된 목적은 사람들이 차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우리가 개인의 취향이나 외부인들의 평가 기준을 원칙으로 삼아 본분을 이행한다면 종종 편차가 생겨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과에 이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저 자신의 자질은 한계가 있고 안목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비록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고, 원칙에 따라 행하며,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원칙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편차가 있어 만들어 낸 작품의 성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제작한 영상 역시 포맷 면에서 어느 정도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었지만, 저는 새로운 요소를 조금 배우자마자 조급하게 영상에 적용했습니다. 사실 저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웠을 뿐, 화면 표현 형식이 영상의 주제와 부합하는지, 일부 기법의 사용이 원칙에 맞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 낸 영상의 성과는 좋지 않았고 초보적인 실수까지 저질렀습니다. 리더가 제 문제를 지적하며 생각이 단순하고 분별력이 없다고 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억울해하며 리더가 인정사정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의도는 좋았기 때문에 설령 제게 편차나 문제가 있었더라도 저의 좋은 마음을 보아서라도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의 이런 요구는 원칙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만들어 낸 작품이 원칙에 부합하고 성과가 좋다면 교회는 당연히 그것을 채택할 것입니다. 만약 원칙을 어겨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작품을 만든다면 리더는 그것을 채택하지 않을 것이고, 제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지적해 주는 것은 약점을 들추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름을 분명히 보고 앞으로 원칙을 더 많이 구하고 업무에 더 힘써서 더 좋은 영상을 만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데 가장 좋은 도움입니다. 하지만 저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위로하고 헤아려 주는 말만 듣기 좋아했으며, 말이 조금만 엄해져도 반발심을 가졌습니다. 마치 좋은 마음만 있다면 설령 잘못했더라도 비난해서는 안 되고, 제 체면을 세워 주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탄의 처세 철학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요구한 것은 너무나 이성이 없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본분은 하나님 집의 사역과 연관되어 있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스럽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본분을 대하고 많이 구하며 많이 자문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념과 상상에 의지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좋은 마음과 열심만으로 원칙을 구하지 않으면 본분을 이행하다가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기 쉽습니다.
나중에 저는 ‘본분을 이행하다 일이 생기면 원칙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때로는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면 바로 실행에 옮기고 원칙을 구하려 하지 않는 걸까? 왜 내 뜻을 이렇게 앞세우는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에 대해 조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집에 와서 늘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고 뽐내고 싶어 한다면 이 출발점이 옳은 것이냐? (옳지 않습니다.) 어디가 옳지 않으냐? 그 이유를 확실히 말해 보거라. (그의 목적은 자신을 드러내어 체면을 세우려는 것으로, 자기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하나님 집의 사역에 유익할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취향대로 하고자 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거나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매사에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사탄의 성품에 속합니다. 그는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증거할까를 생각하지 않고 항상 자기만 증거하고자 하니 이 자체가 옳지 않은 길입니다.) 그 출발점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디가 옳지 않으냐? 이 질문에 너희는 반박을 하지 못한다. 너희가 무척 억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다들 자기 특기를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이겠구나? 이방인 가운데 본때를 보여 준다는 의미로 할머니가 립스틱을 바른다는 말이 있지 않더냐? 뽐내는 것이 바로 이런 뜻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뽐낸다는 것은 나서서 자기를 드러내어 사람들 속에서 명망과 지위를 얻음으로써 남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뽐내는 기회를 통해 남들에게 ‘내 실력이 대단하다.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니 날 우습게 보지 마라. 나는 인재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최소한 이런 의미는 갖고 있다. 그럼 늘 뽐내고 싶은 생각만 한다면 이는 어떤 성질이겠느냐? 그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자기 지위를 경영하며 사람들 가운데서 발판을 다지고 위신을 세우려는 것이다. 이토록 단순하다. 그는 본분 이행이나 하나님 집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며, 진리를 구하여 하나님 집의 요구나 원칙대로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를 위해, 자기의 인지도와 가치, 위신을 높이기 위해 일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책임자나 리더로 선출하도록 일하는 것이다. 그가 리더로 선출되면 지위가 생기지 않겠느냐? 체면이 서지 않겠느냐? 이것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것이다. 이토록 단순한 출발점인데, 그저 지위를 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목적을 가지고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 집의 사역과 이익을 지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과 의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기회 삼아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으며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 한다면, 그 사람은 일을 할 때 성급하게 나서기 쉽고 마음속으로 궁리하는 것은 온통 자신의 명예와 지위일 것입니다. 이런 본분 이행의 성질은 바로 개인의 경영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또 본분을 이행하면서 왜 그토록 많은 문제가 발생한 건지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속셈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할지, 어떻게 해야 성과가 더 좋을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낸 작품을 통해 제가 아이디어가 있고, 틀에 박힌 대로 일하지 않는 창의적인 사람임을 증명하여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최근 몇몇 형제자매가 저희가 제작한 영상 포맷이 단조롭다고 건의했을 때, 저는 속으로 ‘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다들 나를 생각 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모두의 마음속에 그런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저는 몇몇 영상을 보며 공부했고, 어떤 것이 시청자에게 인기가 많고 조회수가 높은지 보고 그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영상 제작에서는 돌파구를 마련해 모두가 저를 다시 보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만든 샘플 영상을 몇몇 형제자매에게 보여 주자 그들은 꽤 신선하다고 했고, 저는 속으로 흐뭇해져서 하루빨리 그 영상이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리더에게 검사를 받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리더가 보고 나서 원칙적인 문제를 지적하면 그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지 못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에 아예 구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돌이켜보고 나서야 저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이 올바르지 않고 제 뜻이 너무 강해, 하마터면 문제가 있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했을 것이니,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때 가장 큰 금기가 무엇인지 너희가 알고 있느냐? 어떤 리더 일꾼들은 남들보다 앞서는 기발한 생각을 해내고, 새로운 속임수로 자기 솜씨를 뽐내어 자기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님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지만, 정작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교만한 성품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 그러므로 절대로 일시적인 충동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결국, 하나님의 성품과 행정 법령을 거슬러 도태되면 너는 할 말이 없게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본분을 이행할 때 가장 금기시되는 것이 바로 기발한 생각으로 자신의 재주를 뽐내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뛰어남을 과시하기 위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제멋대로 해 버리는 것은 교만한 성품의 표출입니다. 이번 영상 제작처럼 말입니다. 제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업무 지식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었기에, 많은 프로그램 형식과 표현 방식을 자세히 연구하지 않고 그저 제 느낌이 좋다는 이유로 가져와 참고했습니다. 특히 영상에 대해 조금 아이디어가 생기자 그것이 창의적인 생각이자 영감이라고 느끼면서 스스로 만족하며 자신을 과신했고, 이번에 제작하는 영상으로 분명 사람들이 저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만약 제게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기 전에 자료를 자세히 찾아보거나 사람들에게 자문했을 것입니다. 영상을 만든 후에도 반복적으로 검토하고 많이 구해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 인터넷에 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맹목적으로 자만했으니, 이것이 바로 어리석고 무지한 모습입니다. 정말이지 저는 교만하고 무지했습니다! 저는 제 분수를 모르고, 일을 할 때 구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니 일을 방해하기 쉬웠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위험합니다!
묵상 시간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고 실행의 길을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 일을 진리 원칙에 따라 처리하지 않고 이방의 잘못된 사상 관점에 치우쳐 이런 그릇된 사상 관점을 근거로 일한다면 너는 헛수고를 한 것이다. 비록 네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엄청 마음을 쏟았는데도 최종 결과가 헛수고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 일의 성질을 어떻게 규정하겠느냐? 또 그 일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적어도 네가 한 그 일이 선행이나 하나님을 증거하고 영화롭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치른 대가와 쏟은 마음은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즉, 헛고생인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기 전에 잘 생각해 보고, 많은 사람과 교제하여 원칙을 구하고 이해하고 나서 임해야 한다. 홧김에, 충동적으로 혹은 사리사욕과 욕망을 품고 임하면 안 된다. 최종 결과가 어떻든 네가 책임져야 하며, 어떤 결과이든 하나님이 결론을 내릴 것이다. 네가 만약 자기가 한 일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에게 기억되길 바라고, 더 좋게는 선행이 되어 하나님에게 열납되길 바란다면 더더욱 원칙을 구하여라. 만약 네가 이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면, 선행이든 아니든, 하나님이 열납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고 한다면, 심지어 징벌받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상관없어. 어차피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느껴지지도 않잖아.’라는 사상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너는 일할 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이 대담하고 방종하며 제멋대로 굴면서 아무런 염려나 거리낌이 없게 된다. 네가 하나님에게 경외심을 갖지 않으면 일할 때의 방향이 편중될 것이다. 사람의 본성을 따르고 사람의 본능을 따르게 되면 최종 결과는 네가 한 그 일이 하나님에게 열납되지 않고 기억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방해와 교란을 야기할 것이니 악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 결국 네 결말이 어떨지,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고 처리할 것인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일을 하고, 매사를 처리할 때마다 너는 우선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 일의 최종 결과가 어떨지 충분히 생각해 본 후에 임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에 관련되는 문제겠느냐? 네가 모든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 어떤 원칙으로 일하는지에 관련되는 것이다. 가장 좋은 태도는 원칙을 자주 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느낌이나 취향, 속셈, 욕망 혹은 눈앞의 이익으로 판단하지 말고 원칙을 구해야 한다. 그 일을 자주 하나님 앞에 가져와 구하며 기도하고, 형제자매에게도 가져가서 함께 협력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구하여 원칙을 정확히 한 다음 임해야 한다. 충동적으로 하거나 얼떨결에 하지 마라. 너는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느냐? 밥벌이를 위해서도,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도, 유행을 좇기 위해서도, 정신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너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믿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모든 일을 할 때 구원받는 것, 하나님의 요구, 진리와 연관시켜 봐야 하지 않겠느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5)> 중에서),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므로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자기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도, 자기의 인생이나 삶을 위한 것도, 자기의 가정이나 사업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 무엇을 위한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위한 것이다. 어떤 업무에 관련되든, 작게는 문장 부호나 형식 하나에서부터 크게는 세부 사역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역이든 모두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되는 범주에 있다. 그러니 네게 이성이 있다면 우선 ‘나는 이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일까? 하나님 집에서 제시하는 원칙은 무엇일까?’라고 자문해야 한다. 그다음 관련된 원칙을 하나하나 나열하여 모든 규정과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해 나가야 한다. 원칙에 부합하고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네가 하는 모든 것은 적절할 것이고, 하나님은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규정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깨달았다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골몰하지 마라.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비이성적인 일을 해야 하겠느냐? 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자신을 저버려야 합니다.) 저버리고 내려놓고 본분과 하나님 집의 요구 및 원칙을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보고 나니 마음이 환해졌고 무엇이 선행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하는 일이 원칙에 부합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며,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러한 긍정적인 성과에 이르는 것을 선행이라고 하며, 그래야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만약 자기 뜻과 뜨거운 마음만으로 원칙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한다면, 아무리 수고하고 애쓴다 해도 그것은 헛수고일 뿐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으며, 심지어 원칙을 어겨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속셈과 어떤 길을 가는지가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지 제 사사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제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문장부호 하나, 형식 하나와 같은 일이라도 관련 원칙을 구해야 합니다. 이는 한 사람이 본분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이 사역과 관련된 원칙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궁리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많이 궁리하면 일을 처리할 때 조심스러워지고, 기도하고 구하는 마음이 더 강해지며, 의식적으로 관련 원칙을 찾아보게 될 것입니다. 설령 잠시 명확한 원칙을 찾지 못하더라도 진리를 깨닫거나 이 방면의 업무를 아는 사람을 찾아 많이 교제하며 비교적 적합한 길을 찾아 실행할 수 있습니다. 만약 대다수의 사람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다시 상부에 구하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자질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잘 해내고, 나중에 편차가 발견되면 다시 정리하고 바로잡으면 됩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비교적 정확할 것입니다. 그 후 다시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떻게 해야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구했습니다. 특히 스스로 보기에 아주 좋고 만족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그렇게 과신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구해 확인한 후 만약 대다수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니 마음도 조금 더 편안해졌습니다. 최근 저희가 새로운 형식의 포스터를 시도하며 몇 가지 새로운 요소를 추가했을 때, 저는 형제자매들과 소통하여 먼저 몇 가지 시안을 제작했습니다. 당시 저희도 이 방향이 적절한지 확신이 서지 않아 리더에게 구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또 몇몇 사람이 문제를 제기했고, 저희는 꿰뚫어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구했습니다. 구할 때 리더는 저희가 제작한 포스터에 있는 몇몇 문제점을 지적해 주었고, 저희는 그 부분에 대해 관련 업무 지식을 배우고 나서야 마침내 비교적 적절한 포스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을 체험하며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이 바로 진리 원칙을 구하는 과정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정확한 원칙을 찾아야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 마음이 편안할 뿐만 아니라 업무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하는 것을 통해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평온해지는 때가 많아지고, 본연의 일에 힘쓰는 때가 많아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원칙에 따라 일해서 얻은 수확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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