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관점은 옳은가?

2025.9.26

중국 어우양쉐(歐陽雪)

2015년, 리더가 제게 문서 본분을 맡겼습니다. 당시 팀장이었던 청눠 자매는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가 좋지 않아 리더에게 책망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리더가 자신을 대신하라고 저를 보낸 줄 알고 사사건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예배 때면 늘 설교 자료에 관한 문제들을 꼬치꼬치 캐묻곤 했는데, 제가 대답하지 못하면 청 자매는 저를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자질이 좋다면서요? 안 그랬으면 리더가 왜 자매님을 보냈겠어요?” 그 말을 들으면 속으로 무척 속박을 받았고, 예배 시간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내적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설교 자료를 봐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원칙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본분을 이행하기가 너무 어렵고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괴로워 집에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바로 그때, 파트너인 양광 자매가 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인내심을 갖고 교제하며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격려해 주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자기와 교제하고 상의해서 함께 협력하자고 했습니다. 양광 자매와 많은 교제를 나누자 제 마음은 한결 밝아졌고, 계속해서 본분을 이행하려는 의지도 생겼습니다. 그 후 저는 원칙을 갖추는 데 힘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양광 자매를 찾아가 교제했습니다. 점차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어느 정도 찾게 되면서 저는 양광 자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청눠 자매가 교체되고 형제자매들이 저를 팀장으로 추천했을 때, 저는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또 양광 자매가 격려하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 같이 상의하고 자신도 도와주겠다고 말해 주었고, 저는 팀장 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기간에 양광 자매는 제게 본분을 이행하는 길에 대해 자주 교제해 주었고, 사역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양광 자매에게 무척 감사했고, 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겨 두었다가 나중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최선을 다해 돕고, 절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양광 자매가 잠깐 집에 돌아갔는데, 그 아들이 자매가 나가서 본분 이행하는 것을 반대하며, 나중에 늙어도 신경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양광 자매는 그 말에 얽매여 줄곧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고, 본분에도 별로 부담을 갖지 앉았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교제하며 도와주었지만 그녀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리더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양광 자매의 상태가 사역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으니 계속 나아지지 않으면 교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보고 저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제가 어려웠을 때 양광 자매가 저를 많이 도와주었던 것이 생각났고, 이런 중대한 시점에 제가 그녀를 더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양광 자매를 찾아가 교제했고, 그녀는 자신의 상태가 좀 나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또 한 번은 양광 자매에게 시급히 선별해야 할 설교 자료들이 있었는데, 보름이 지나도 다 선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양광 자매의 마음이 본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이대로 두면 사역에 차질이 생길 테니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양광 자매가 설교 자료를 다 선별해 내면 본분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셈이니 조정되지 않을 거야. 이럴 때 내가 좀 도와줘야 해.’ 그래서 저는 다시 양광 자매와 교제하며,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고 서둘러 설교 자료를 선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구체적인 이유를 물어도 자매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녀에게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사역에 차질이 생긴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무척 자책감이 들기도 하고, 양광 자매의 상태가 계속 나아지지 않으니 교체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매는 원래 상태가 좋지 않은데 교체된 후에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마음속으로 수없이 갈등했습니다. 마침 그때 사람이 필요한 다른 사역이 있어서, 저는 양광 자매를 그곳에 배치했고, 그 후로는 자매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일 년 후,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한번은 사역 보고를 보다가 양광 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매우 수동적이고, 자주 집에 가며, 사역을 모두 파트너 자매에게 떠넘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매 본인에게 안전상의 문제도 있어서 오가는 것 역시 안전하지 않았고, 교제해 줘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양광 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이 예전과 다름없고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 저는 파트너 자매와 상의하여 양광 자매를 조정해야 할지 논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곧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양광 자매가 저를 그토록 많이 도와주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리더가 되자마자 그녀를 교체해 버리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더러 양심도 없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어? 나중에 다시 만나면 무슨 낯으로 보겠어?’ 저는 파트너 자매에게 이 일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양광 자매를 만났을 때, 저는 자매에게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의 성질과 결과를 교제해 주며,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교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양광 자매는 앞에서는 잘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파트너 자매에게서 온 편지에는 양광 자매가 여전히 툭하면 본분을 내려놓아 사역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진작 양광 자매를 교체했더라면 사역이 또 한 달이나 지체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큰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양광 자매의 일관된 모습이라서 몇 번 돕는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자매를 교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왜 매번 양광 자매의 문제에 있어서 원칙에 따라 처리하지 못하는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저는 두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정이 너무 많다. 매일 말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정에 이끌려 살아간다. 이 사람에게도 정을 주고 저 사람에게도 정을 주며 매일같이 정을 베풀고, 매사 정에 파묻혀 살아간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그는 사흘간 곡을 하고 땅에 묻지도 못하게 하면서 죽은 사람에게도 정을 준다. 지나치게 정에 이끌리기에 이 사람에게는 정이 바로 치명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일에서 정에 휘둘려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도 없으며 또한 항상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다. 정이 바로 그의 최대의 약점이자 치명적인 부분이다. 정은 이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 망칠 수 있다. 정이 너무 많은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없다. 정이 많으면 육만 돌볼 수밖에 없는데, 어리석은 바보다. 이런 사람의 본성은 바로 정이 너무 많은 것으로, 그는 정에 이끌려 살아간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감정은 어떤 특징을 보이느냐? 그것이 긍정적일 리는 없다. 육적인 관계에 집중하고 육적인 기호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편을 들고 잘못을 감싸 주고 익애하며 오냐오냐하고 방임하는 것, 이런 것은 전부 감정에 속한 것들이다. 어떤 사람은 감정에 너무 치우쳐서 어떤 일이 닥치든 정에 휘둘린다. 마음속으로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하며, 나아가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도 못한다. 늘 감정의 속박을 받는다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감정 때문이다. 그들은 감정을 몹시 중요하게 여기며, 일순위에 둔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 그럴 리가 없다. 감정의 본질이란 무엇이냐? 바로 패괴 성품의 일종이다. 감정적인 모습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하자면 편들기, 감싸기, 육적인 관계 지키기, 불공정함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정에 끌리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정에 얽매여 진리를 실행하지도,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도 못하며, 마음속으로는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공사를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정에 끌리는 사람이었고, 양광 자매와 지내면서 드러낸 것이 바로 정이었습니다. 제가 막 문서 본분을 이행했을 때 자주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본분을 포기하고 싶어 했는데, 그때마다 양광 자매가 끈기 있게 도와준 덕분에 저는 본분을 이행할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매가 저에게 잘해주고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팀장이 된 후, 양광 자매가 늘 가정에 얽매여 사역에 차질을 주는 것을 보고도, 자매를 교체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싸주며 그녀의 실제 상황을 리더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자매가 계속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몇 번이나 기회를 주었고, 그 결과 사역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제가 교회 리더가 된 후에도 양광 자매가 일관되게 본분에 부담이 없는 것을 보고 교체해야 마땅함을 알았지만, 자매가 제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고, 또다시 정에 이끌려 자매를 감쌌습니다. 제가 양광 자매에게 여러 번 기회를 준 결과,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고 말았습니다. 정에 따라 일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행동에 대해 몹시 자책감을 느꼈고, 정에 얽매여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은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정에 이끌리며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원칙에 따라 실행하여 교회 사역을 지키겠습니다. 제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파트너 자매와 상의하여 양광 자매를 교체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이 전통 사상을 폭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상태에 대해 또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은 중국 전통문화 중에서 사람의 덕행을 평가하는 매우 전형적인 기준이다.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 덕행이 어떤지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는 바로 그가 남에게 은혜를 입고 도움을 받은 후 보답하는지,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인지를 보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문화나 인류의 전통문화에서, 사람은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는 것을 덕행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배은망덕한 사람인 것이다. 그는 양심이 없는 사람,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며, 사람들에게 멸시와 혐오, 버림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이 은혜에 보답할 줄 안다면, 즉 남에게 은혜를 입거나 도움을 받은 후에 그것을 잊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자기 방식으로 상대에게 보답한다면, 양심과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이 다른 이에게 이득을 얻고 도움을 받은 후 은혜에 보답하지 않거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감사의 뜻을 표한 후 더는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면, 은혜를 베푼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느냐? ‘이 사람은 도와줄 가치가 없구나. 좋은 작자는 아닌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정말이지 양심도 인성도 없는 사람이야. 사귈 가치가 없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가 앞으로 그런 부류의 사람을 또 만나면 도와주겠느냐? 적어도 도와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희가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정말 도와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겠느냐? 지난번 경험을 떠올린 후 교훈을 얻을 것이다. ‘함부로 남을 도와주면 안 되겠어. 은혜를 반드시 갚는 사람이어야 도와줄 거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서 도와줘도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한다면 안 도와주는 게 낫겠어.’라고 말이다. 너희는 이런 관점을 갖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지난날,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양심에 기대 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그것이 악인이든 양아치든 네게 은혜를 베풀어 주고 도와주었다면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벗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심지어 몸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남자는 평생 노예가 되어 은혜에 보답하고, 여자는 몸을 바쳐 상대의 자식을 낳고 길러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전통문화가 사람에게 주입한 관점이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고 알려 주면 사람은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만이 양심이 있는 사람이야. 은혜를 입고도 보답하지 않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거고, 사람도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이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내린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제가 늘 양광 자매의 은혜를 생각하며 자매를 교체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 사상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께서는 늘 사람이 되려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만약 보답할 줄 모르면 그건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니 아무도 너와 어울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바로 그렇게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남동생이 아파서 집에서 모아놓은 돈을 모두 썼을 때,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저희 집을 도와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는 그분들의 은혜를 마음에 새기고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되면 서둘러 저희 집안일을 마치고 다른 집 일을 도우러 가셨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저희 어머니는 인성이 좋아 사귈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늘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남들이 우리를 도와줬으니, 우리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해. 누구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손 내밀어 도와주고, 절대 양심 없이 굴어서는 안 돼.” 늘 보고 듣다 보니 저 역시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사람이고,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귈 가치가 없는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본분을 이행하다 어려움에 처해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을 때 양광 자매가 여러 번 도와주고 붙들어 주자, 저는 그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매를 교체해야 했을 때 원칙을 어기고 자매를 감싸주며 몇 번이나 기회를 주었고, 그 결과 교회 사역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저는 은혜를 갚았지만, 결국 교회 사역에는 교란을 초래했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이 전통 문화 사상에 의지해 살다 보니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 조금의 원칙도 없었습니다.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관점이 긍정적인 것이 아니며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 한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고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관점의 그릇된 점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도덕적 행위에 관한 말은 사람이 이 사회, 이 인류 가운데서 다해야 할 책임이 과연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는다. 그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속박하고 강요할 뿐, 사람이 원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에게 닥친 일이 어떤 상황, 어떤 배경에서 벌어진 것인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고대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무척 많았다. 예를 들어, 굶어 죽을 지경이 된 거지를 어떤 집안에서 거두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무예나 각종 지식을 가르쳐 준 다음 그가 성인이 되면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악행, 살인 등 그가 원치 않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가 입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가 그들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가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들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문화에 물들어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가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살수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악을 행하고 남을 죽이는 짓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을 본다면, 주인의 지시대로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보은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특히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사상에 물들고 지배된다. 그가 일하는 방식과 방법, 그리고 의도와 출발점은 분명 이런 것들에 통제될 것이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이 집안에서 나를 구해 줬으니 나는 이 집안에 은혜를 입은 거야. 은혜에 보답해야지, 배은망덕하게 굴어서는 안 돼. 내 목숨은 저들이 구해 준 거니까 저들을 위해 바쳐야 해. 저들이 뭘 시키든 해야 한다고. 설령 그게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보답해야 해. 이렇게 큰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집안사람들이 살인이나 나쁜 일을 시킬 때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다. 그럼 그의 이런 행위와 행동,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 태도는 전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생각과 관점에 지배된 것 아니겠느냐? 그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덕행의 준칙을 이행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사례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원칙이 없습니다.) 사실, 보은하는 사람에게도 원칙이 있다. 그의 원칙은 바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며,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정죄당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이는 물 한 방울의 은혜가 아니라 목숨을 구해 준 은혜이니 더더욱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보은의 원칙이 무엇인지, 보은의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목숨을 그 집안사람들이 구해 주었으니, 마땅히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그들이 무엇을 시키든, 심지어 그것이 악을 행하고 남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런 보은은 원칙과 선을 잃어버리고 악인의 앞잡이가 되는 행위로, 스스로를 망치는 짓이다. 그의 그런 보은 방식이 옳으냐? 당연히 옳지 않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은 사탄이 주입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관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은 채 마구잡이로 은혜를 갚게 되고, 일을 처리하는 데 원칙이 없으며, 최소한의 양심조차 잃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관점에 따라 살면서 양광 자매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자매가 본분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교체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매를 도우며 몇 번이나 기회를 주었고, 그 결과 교회 사역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관점에 얽매이고 속박되어 시시비비를 가릴 능력이 없었고, 원칙을 어기며 일을 처리하여 교회 사역에 차질을 주었으니, 정말이지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폭로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분별하지 않았다면, 저는 제가 한 모든 일을 다 옳다고 여겨 전통 문화에 해를 입고도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2023년 4월의 어느 날, 리더가 편지로 양광 자매에 대한 평가서를 써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얼마 전 파트너 자매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자매는 양광 자매에게 본분을 맡겼더니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본분을 이행하라는 것이 자신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양광 자매는 줄곧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거기다가 이전에 본분을 이행했던 모습까지 모두 써 낸다면 양광 자매는 제명될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다 제공했다는 걸 알면, 자매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나를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쓰지 않으면 진리를 실행할 기회를 잃는 것이고, 그건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야.’ 저는 밤에 침대에 누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구하고 묵상하던 중에 한 단락의 하나님 말씀이 생각나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사탄을 봉사하게 하여 사람을 도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하나님에게 감사해야지, 사탄에게 은혜를 보답해서는 안 된다. 이는 원칙적인 문제이다. 악인이 은혜를 베푸는 시험이 닥치면 먼저 마음속으로 네게 이로움과 도움을 준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다른 길은 없는지 분명히 한 후, 융통성 있게 처리해야 한다. 하나님이 너를 구하려는 것이면 어떤 사람을 통해 봉사하게 하든 너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은혜를 완전히 사람에게 돌리거나 심지어 보은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다른 이에게 바쳐서는 안 된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보고 나니 갑자기 해방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줄곧 양광 자매에게 감사하며, 제가 당시에 본분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 양광 자매가 교제하고 도와준 덕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늘 그 은혜를 내려놓지 못하고 그녀에게 보답하고 싶어 했으니, 정말이지 어리석고 눈이 멀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 언제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정하시는 것입니다. 당시에 양광 자매가 저를 도왔던 것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였습니다. 저는 은혜를 양광 자매에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제가 감사해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네가 보답을 하든 하지 않든 너는 사람, 정상 인성의 틀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네가 제대로 보답했다고 해서 네 인성에 변화가 생기거나 네 패괴 성품이 줄어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또 네가 제대로 보답하지 않았다고 해서 네 패괴 성품이 더 심각해지는 것도 아니다. 보은을 하든 하지 않든, 은혜를 베풀든 베풀지 않든 이런 것들은 네 패괴 성품과 어떤 관계도 없다. 물론, 관계가 있든 없든 은혜에 관한 그 말은 나에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도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는 그것을 그저 무엇으로 여겨야겠느냐? 하나의 의무이자 책임, 인성의 본능으로 해야 할 일,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로 여기고 힘닿는 데까지 실행하면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우리 또한 이런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는 아예 은혜라는 말이 없으며,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라고 해도 원칙 없이 은혜를 갚아서는 안 되고,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책임을 다하되, 진리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만약 진리 원칙을 어기게 된다면, 마땅히 거절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설령 패괴가 드러나더라도 회개하고 변화하기만 원한다면 마땅히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하고, 상대방이 우리를 도왔는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었는지가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 이행을 원치 않으며, 여러 번 교제해도 회개하고 변화하지 못하고 심지어 악을 행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대상이니, 우리 역시 마땅히 저버리고 미워해야 합니다. 양광 자매에 대해 말하자면, 제가 그녀를 여러 번 도왔지만 그녀는 전혀 진입하지 않았고, 몇 년이 지나도 조금의 변화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수년간 믿으면서도 조금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고 본분 이행도 달가워하지 않았으니, 바로 하나님이 사역으로 드러내신 불신파였습니다. 저는 원칙에 따라 실행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양광 자매에 대한 평가서를 썼습니다. 평가서를 보낸 후 제 마음은 무척 평안했고, 나중에 양광 자매는 제명되었습니다.

이 기간의 체험을 통해, 저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 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런 전통 문화의 그릇된 이론들을 해부하시는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구원임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덮어 놓고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이런 사상 관점에 따라 살면서, 얼마나 많은 진리를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질렀을지 모릅니다. 제가 조금이나마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이 이룬 효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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