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배된 후
중국 광춘(廣醇)2023년 7월, 저는 리더 본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8월에는 한 형제님과 예배 약속을 잡았는데, 예배 전날 밤 그 형제가 경찰에 잡혀갔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조금 긴장했습니다. ‘만약 형제님이 예배에 오다가 경찰의 미행이라도...
2004년,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드릴 때, 병을 앓으면서도 본분을 포기하지 않았더니 병이 기적처럼 나았다는 형제자매들의 체험을 듣곤 했습니다. 또 형제자매들이 쓴 체험 간증문 중에 어떤 자매가 암에 걸렸는데도 본분을 계속 이행하자 어느새 하나님께서 암을 없애 주셨다는 글도 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체험 간증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병의 시련이 닥쳤을 때 믿음으로 체험하고 굳게 서서 증거하니까 병이 나았어. 앞으로는 나도 형제자매들에게 배워서 어떤 병이나 화가 닥쳐도 본분을 지키며 굳게 서서 증거해야지. 그러면 나도 형제자매들처럼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될 거야.’
2011년 여름 어느 날 정오에 일곱 살 난 아들이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거실에서 놀다가 실수로 집에 있던 텔레비전을 넘어뜨렸고, 넘어진 텔레비전에 깔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바닥에 주저앉은 아들은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코피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급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가 어떻게 되든, 살 수 있든 없든 제 마음을 지켜 원망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은 후, 의사는 열만 나지 않으면 괜찮으니 집에 돌아가서 지켜보라고 했습니다. 그 후 아이는 괜찮아졌습니다. 나중에 가만 생각해 보니, 제가 원망하지 않아서 아들이 금방 나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저는 속으로 재앙이 닥쳤을 때 원망하지 않고 굳게 서서 증거하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볼 수 있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욱 열심히 헌신했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기든, 고생과 대가를 얼마나 치르든 순종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자 장차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2016년 5월, 저는 타지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병세가 심각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읽고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저는 방으로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침대에 무릎을 꿇고 목놓아 울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은 이제 겨우 열두 살입니다. 정말 아이를 데려가시려는 건가요?” 그 뒤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아들 곁으로 돌아가 보살피고 싶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적그리스도가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있고, 각종 사역이 방해받고 있으며, 형제자매들의 생명도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중대한 시점에 하나님께서 제가 교회 사역을 지킬지, 아니면 본분을 내려놓고 아들을 돌볼지, 저의 선택을 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욥을 떠올렸습니다. 재산을 약탈당하고, 자녀들을 잃고, 자신마저 온몸에 악창이 돋는 등 커다란 시련을 만났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굳게 서서 증거했습니다. 결국 그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은 병을 고쳐 주셨을 뿐 아니라 갑절의 축복까지 주셨습니다. 제 아들의 병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저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본분을 지키는 길을 선택해야 하며, 사탄의 간계가 이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굳게 서서 증거하면 하나님께서도 제 아들의 병을 낫게 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외아들 이삭을 바치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빼앗지 않으시고 더 큰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아들의 병을 통해 저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굳게 서서 증거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의 병도 분명 낫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후 저는 더 이상 아들의 병에 연연하지 않고 본분에 마음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석 달 후 집에 돌아갔을 때, 남편이 말하기를 아들은 백혈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백혈구 수치가 높고 면역력이 약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백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병원 몇 군데를 다녔지만, 전문의들이 여러 차례 연구해도 아들의 병을 확진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보존적 치료를 하고 있는데, 2천 위안이 넘는 한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편에는 난치병이 없는데.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 아닌가?’ 그 후, 저는 아이에게 자주 이렇게 교제했습니다. “이 병에 걸렸다고 절대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해. 우리가 굳게 서서 증거하면 하나님께서 네 병이 낫도록 지켜 주신단다.” 동시에 저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 민간요법을 수소문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아이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고, 제 마음은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아픈 후로 계속 본분을 꾸준히 이행했는데 왜 하나님은 병이 낫게 해서 아들을 지켜 주시지 않는 걸까? 어째서 치료할수록 더 심해지는 거지? 만약 의사 말대로 치료를 못 받아서 백혈병으로 발전하면, 우리 아들은 희망이 없는 거잖아?’ 저는 생각할수록 두려워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이 거의 울먹이며 제게 말했습니다. “병을 고치려고 안 써 본 방법이 없는데,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지니 이제 어떡하지?” 남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니 저도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꺼내 읽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이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떤 시련을 겪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결국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가 그렇게 사역함으로써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며, 또한 사람의 의지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입장을 지키고 굳게 서야 한다. 욥이 이 수준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지만, 네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저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보지도 만지지도 못할 때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는 것으로, 욥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렇게 교제했습니다. “평소에 재앙이 닥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에게 참된 믿음이 있는지 알 수 없어요. 시련이 닥쳐서 결과를 알 수 없을 때에도 꿋꿋이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그 믿음이야말로 진짜 믿음이에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연단하고 시련하여 얻는 성과이고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다 은혜와 이익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그러면 사탄도 참소하고 불복할 거예요. 오늘 아들 병이 낫든 안 낫든,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면 사탄이 치욕을 입어 실패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을 얻으실 거예요.” 남편도 제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그 후로도 아이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창가에 엎드려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습니다. “엄마, 다른 친구들은 다 학교에 가는데 저는 아파서 못 가요. 엄마는 계속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했는데, 제가 언제까지 순종해야 병이 나을 수 있어요?” 아들의 말을 듣자 마음이 칼로 베는 듯 아팠습니다. 제 믿음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이 병에 걸린 후로, 비록 마음은 고통스러웠지만 계속 본분을 지켰고, 이미 온 힘을 다해 협력했어.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직도 아들의 병을 낫게 해 주시지 않는 걸까? 정성이 부족해서일까? 의사가 만약 병이 낫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러면 앞으로 우리 아들은 어떻게 살지?’ 이런 끔찍한 결과를 생각하니,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습니다. 저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아들의 병이 낫지 않는 건가요? 제 분량이 너무 작아 정말 더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9월 말, 리더에게서 한 가지 본분에 협력해 달라는 편지가 왔습니다. 저는 아들의 병이 마음에 걸려 본분을 거절했습니다. 조금 지나자,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 동안 아무리 어려워도 본분을 거절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들의 병 때문에 본분을 저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착잡했습니다. 그동안의 제 내적 상태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저는 매일 건성으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만 조금 보았을 뿐 속으로는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매일 아들에게 약을 챙겨 주면서 속으로는 두렵고 불안했고, 병을 못 고쳐서 아이를 잃게 될까 봐 걱정하느라 본분에는 마음을 쓰지도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을 배반한 게 아닌가?’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은 지극히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최고의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소홀히 여기는 것의 성질이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부탁을 거절하는 사람을 혐오하고 저주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자 두려웠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지만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었고, 제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이 닥치면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인식하고, 저는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구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이런 내적 상태로 살고 있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으로, 순전히 하나님이 내리는 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는 진리가 없으며, 틀림없이 글귀와 도리를 얼마간 이해한 것으로 곳곳에서 뽐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걷는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결같이 사역만 한다. 그는 사역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고, 틀림없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얻을 자격이 있고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생하고 전도하며 죽을 수 있는 사람,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맡긴 본분을 훌륭히 완수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하나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을 사람이며, 분명 면류관을 얻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상상하고 추구한 것이며, 바울이 걸은 길이다. 바울이 바로 이런 사상에 지배받아 사역하고 하나님을 섬겼다. 이런 사상과 속셈은 사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는 지식을 추구해야 하며, 지식을 갖추고 나면 남들보다 뛰어나고 관직에 나아가고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위를 얻으면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치며 자신의 가업과 사업을 눈부시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여긴다. 이방인들은 모두 이런 길을 가지 않더냐? 이런 사탄의 본성에 지배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바울처럼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해. 그러면 나중에 큰 상과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과 틀에 박힌 듯 똑같다. 그것들은 전부 똑같은 본성에 지배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사탄의 본성을 갖고 있으면, 세상에서 지식을 추구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고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면류관과 큰 복을 얻기를 추구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분명 이런 길을 걸을 것이다.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으며 이는 자연법칙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가는 길은 베드로의 길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제가 오랫동안 버리고 헌신한 것은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거래를 한 것이었고, 줄곧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되어 바울처럼 복을 추구하는 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뒤로, 저는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고통받고 환난을 겪을 때 굳게 서서 증거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아무리 어렵고 위험한 본분을 맡겨도 주저 없이 협력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고, 환난이 닥쳤을 때 원망하지 않고 꿋꿋이 본분을 지키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축복받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중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병이 오랫동안 낫지 않자, 저는 하나님께 옛일을 들먹였습니다. 과거에 버리고 헌신한 일을 내세워 하나님과 거래하고, 하나님께 따지고, 대들고, 아들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본분을 거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저의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이익만 좇는 사탄 본성이 모조리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한 것은 하나님께 축복을 요구하기 위함이었으니, 저는 바울과 같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것을 내세워 하나님께 상과 면류관을 요구하며 하나님과 거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만하고 대적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정죄되고 징벌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은 탓에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거래로 여겼습니다. 제가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결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욥의 시련을 겪는 동시에 베드로의 시련 또한 겪게 된다. 욥이 시련을 받을 때 굳게 서자 마지막에 여호와가 그에게 나타났다. 굳게 섰기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생긴 것이다. 어째서 “나는 거룩한 나라에는 나타나지만 더러운 땅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말했겠느냐? 다시 말하자면, 네가 성결하게 되고 굳게 서야만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있는 것이지, 굳게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연단을 받는 과정에서 떠나거나 원망하고 굳게 서지 못해 사탄의 조롱거리가 된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만약 욥처럼 시련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저주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를 증오할 수는 있어도 절대 불평하지 않으며, 입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굳게 선 것이다. 네가 어느 정도로 연단을 받아도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에게 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며, 관념도 갖지 않는다면, 그때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이해되지 않고, 심지어는 기이하게 보일 때도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할 때, 이 ‘지배’는 대부분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이해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검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드러났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 비록 하나님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 사람을 검증한다고는 하나,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았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진심임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무조건적인 것이었고, 이 ‘무조건’은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미 이것을 바쳤고, 그것을 포기했어.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내게 만족을 못 하시는 걸까? 왜 계속 내게 시련을 주시는 거지? 왜 계속해서 나를 검증하시는 거지?”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너의 마음을 보지 못했고, 너의 마음을 얻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너에게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죽여 하나님께 바치려고 칼을 들었던 것과 같은 그런 진심과 무조건적인 순종을 보지 못했고, 너에게서 위안을 얻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네 시련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아무런 요구도, 바람도, 개인적인 불순물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증거입니다. 저는 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이 있다고 듣기만 했을 뿐인데도, 모든 재산과 자녀를 빼앗기고, 온몸에 악창이 나고, 아내마저 자신을 비웃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 욥은 하나님과 거래하거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은 순결했습니다. 저는 또 아브라함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백 세에 아들을 얻었고 이삭은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는 정에 얽매이지 않고 결연히 이삭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욥과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거래나 요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복을 받으려고도, 사리사욕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만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증거는 칭찬하고 감탄할 만합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병이나 재앙이 닥쳤을 때 본분을 지키고 원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선한 행위가 곧 굳게 서서 증거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는 것이며,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해 왔습니다. 제 헌신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심과 순종이 없었고, 희생의 이면에는 기만과 거래, 요구가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진정한 증거가 아니었고, 그런 행위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예전에 저는 욥과 아브라함의 증거를 수없이 보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순종을 지켰는지를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굳게 서서 증거한 후에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만 보았습니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이익만 좇는 사탄 본성에 지배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비로소 참된 증거가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는 줄곧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축복해 주셔야 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라고 생각했어. 아들이 건강을 회복하기는커녕 병세가 악화되자 속으로 원망과 오해가 가득하고, 심지어 본분을 거절하는 일까지 저질렀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공의를 올바르게 인식할까?’ 저는 구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공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 고생한 만큼 분배하는 것, 일한 만큼 돈을 주는 것, 노력한 만큼 얻는 것, 이것은 공의가 아니라 그저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증거한 후에 하나님이 그를 멸했다면 이것은 공의이겠느냐? 사실 이것 역시 공의이다. 어째서 그것을 공의라고 하겠느냐? 공의에 대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한다면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말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공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때 하나님이 욥을 멸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 패괴되었든 안 되었든, 사람의 패괴가 깊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이 사람을 멸할 때 사람에게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하느냐? 무슨 근거로 사람을 멸하는지 설명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그가 정한 규칙을 사람에게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필요 없다. 패괴된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다 합당하고, 다 하나님의 안배다. 하나님이 네가 눈에 거슬려 넌 증거를 다 했으니 쓸모없어졌다며 널 멸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냐, 아니냐? 이것 역시 공의다. 지금은 네가 사실상 알기 어렵겠지만, 이치는 이해해야 한다. …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다 공의롭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거나 관념을 가진 일에 있어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장 비이성적인 태도이다. 베드로는 어떤 일들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와 아름다운 뜻이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이 모든 것을 측량할 수는 없으며, 사람이 측량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에 비추어 보니,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순수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굳게 서서 증거하면 하나님께서 마땅히 그 사람을 축복하고, 어려움과 고통을 없애 주시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해 주셔야 하고, 그래야 공평하고 합리적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그런 이해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든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일이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욥이 굳게 서서 증거했을 때, 그를 축복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공의요, 축복하지 않으신다 해도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본질이 바로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공의란 흑백을 가리고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렀으니 하나님도 상과 축복을 주셔야 한다는 생각 속에는 거래가 가득했습니다. 이를 테면 아들이 아팠을 때, 저는 비록 꾸준히 본분을 이행했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적인 속셈이 섞여 있었고, 하나님께 은혜를 요구해서 아들의 병을 거두어 가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은 거래로 변질되었고, 더 이상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아이의 병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저의 비열한 속셈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사역의 지혜를 보았고, 또한 제게 양심과 이성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아이의 병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람의 천직이며,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재앙이 닥쳐도 꿋꿋이 본분을 지키고 원망하지 않으면 마땅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의 평안을 지켜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것이 잘못된 관점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병이 낫든 안 낫든, 최후의 결과가 어떻든, 저는 하나님과 거래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앞으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제 본분과 책임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사흘 후, 윗선 리더에게서 제가 급히 처리해야 할 사역이 있다고 편지가 왔습니다. 비록 마음으로는 차마 아이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정에 얽매여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 있고, 아이의 병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고, 그 후 본분을 이행하러 갔습니다.
석 달 후, 아들을 보러 집에 돌아갔더니,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한 시골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아이의 병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연말이 되자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회복이 빠르군요. 다 나았습니다.” 결과를 보고 저는 너무나 감격하여 그 마음을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을 겪은 후,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기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육적인 이익이나 가정의 평안, 무병장수 혹은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구해서는 안 되며, 이는 모두 비이성적인 요구입니다. 관념과 상상에 의지해 하나님을 믿으면 영원히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겪어야만 진리를 얻고 패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비록 아들의 병 때문에 고통스러운 연단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패괴와 불순물, 그릇된 믿음의 관점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이를 통해 저 자신을 알고 진리를 구하게 되었으며, 어떤 증거가 하나님께 칭찬받는지 알게 되었고, 제 잘못된 관점을 제때에 바로잡아 올바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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