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지위의 구속을 받지 않게 되다

2022.1.29

프랑스 블라디아

작년에 교회 리더였던 로라 자매가 실제적인 사역을 못해 교체됐었어요. 그리고 우선 저를 뽑아 훈련시켜 리더를 맡기기로 결정했죠. 제가 리더라는 생각이 드니 무척 부담됐어요. 새로운 책임이 더해진 거잖아요. 근데 그러면서도 기뻤어요. 지위를 얻고 싶은 갈망이 채워졌으니까요. 제가 리더라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자질과 능력이 있어선 것 같았어요. 그 후, 저는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했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묻고 배웠죠. 형제자매들 내적 상태를 자주 파악해 말씀 찾아 교제하고 교회에 갓 들어온 새 신자 양육에도 늘 신경 썼어요. 그러면 웃으며 고맙다고 말해줄 때 참 좋았어요. 그 본분하는 동안 저는 쉴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혼자 모든 사역을 다 해내려고 했어요.

어, 그러다 대학 시험을 치러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업무량을 줄였죠. 시험을 마치고 예배를 드리는데 형제자매들이 그 사이 성장한 게 보였어요. 그중 두 자매는 말씀을 찾아서 팀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정도였어요. 사실 잘된 일인데 저는 어딘가 좀 서운했어요. 다들 이젠 제가 필요 없는 것 같고, 절 찾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어, 그러다 어느 팀 예배를 가게 됐어요. 그 팀이 원랜 교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팀이었는데 근데 에블린 자매가 이미 형제자매들과 잘하고 있더라구요. 그 자매는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말씀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나누도록 격려해 줬죠. 그 자매가 그렇게 인도하니까 다들 적극적으로 교제했고 또 자매와도 가까워 보였죠. 그 모습을 보는데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언젠가 에블린 자매가 제 자리를 대신할 것만 같아서 불안함이 느껴졌죠. 며칠 후에 한 자매가 단톡방에 어떤 문제에 대한 질문을 올렸더라구요. 질문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히 하는 법이었죠. 그래서 답을 쓰려고 하는데 에블린 자매가 바로 하나님 말씀을 올려줬고 말씀을 깨달은 내용까지 썼더라고요. 자매가 찾은 말씀을 보니 적절하고, 깨달음도 실제적이고 실행의 길까지 써 놔서 제가 더 보탤 게 없었어요. 그때 마음이 좀 힘들었어요. 전에는 이 팀을 제가 계속 책임져 왔거든요. 말씀 찾아 형제자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저였구요. 그때 저는 ‘에블린 자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답변을 하면 다들 나를 어떻게 볼까? 리더가 문제도 해결 못 한다고, 자매보다 못하다고 보지 않을까? 계속 그 자매가 이렇게 형제자매를 돕는다면 다들 나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매한테 질투심이 났고 심지어는 제가 더 적극적으로 해서 안 지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후엔 늘 실수가 생겼어요. 심지어 아주 간단한 일에서도 실수를 했어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리더와 집사들의 예배 시간을 공지하려고 메시지를 올린다는 게 실수로 그만 새 신자 예배팀에다 잘못 올린 거예요. 다른 자매가 전화로 저한테 알려줬는데, 그제야 잘못 올린 걸 알았죠. 아휴, 너무 당황해서 얼른 그 글을 삭제했어요. 그 일이 작은 일이긴 한데, 마음은 좀 힘들었어요. ‘아니, 어떻게 새 신자 예배팀과 리더 예배팀을 헷갈릴 수 있는 거지?’ 그 순간 저는 제가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다 대학 시험을 치러야 해서 본분에 온 정신을 다 쏟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니 이제 제 본분은 에블린 자매로 교체될 거 같았어요. 그 후로 소극적으로 돼 무성의하게 본분을 했고, 아무 일도 하기 싫었어요. 예배 때는 시간이 길게 느껴져 그 사이에 페이스북에 올라온 내용을 볼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제 생명에 아무 도움 안 되는 개그 프로그램이나 영상을 보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예배 전에 미리 준비도 하고 책임감을 갖고 말씀을 묵상하거나 형제자매들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며 어떻게 도울지 생각했었어요. 근데 그런 책임감은 사라졌고, 묵상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한번은 저녁 예배 전에 밖에 나가 옷을 몇벌 사고 예배 몇 분 전에 돌아오기도 했어요. 아침에 말씀 묵상도 안 하고 단톡방에 묵상할 말씀을 공유하던 것도 관뒀죠. 제 마음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게 느껴졌어요. 하나님께 와서 기도했어요. “하나님과 많이 멀어졌어요. 이렇게 본분하는 건 잘못된 거 알아요. 회개하고 싶은데 제가 연약하니 저를 인도해주세요.”

그 후에 말씀을 보게 됐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사람의 마음속에는 모두 좋지 않은 상태가 있다. 소극적인 상태나 연약함, 우울함, 나약함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고, 언제나 비열한 속셈이 있을 수도 있으며, 체면이나 사욕, 이익 등에 연연할 수도 있고,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소극적인 상태가 생길 수도 있다. 늘 이런 상태 속에서 살면 성령 역사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성령 역사를 얻기가 매우 힘들면 내면에 적극적인 것이 적고, 그럼 진리를 얻기도 매우 힘들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진심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그때 이 말씀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았어요. 떡 저한테 하신 말씀이더라구요. 저는 다른 사람이 제 자리를 대신할 거 같고 제 지위가 위협받는것 같아서 소극적이 돼 본분을 잘 못 했어요. 그러니 하나님과 멀어지고 연약해지게 됐어요. 형제자매들과도 소원해졌고요.

그러다 또 다른 말씀을 보게 됐어요. <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3)>, 이 말씀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기 전까지 사람에게는 다양한 내적 상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흔히 드러나는 소극적인 상태의 경우, 다른 사람의 본분 이행 성과가 자기보다 좋으면 소극적이 되고, 다른 사람의 가정이 자기 집보다 화목한 것 같으면 소극적이 되며, 다른 사람의 조건이나 자질이 자기보다 좋아도 소극적이 되는 것이다. 조금 일찍 일어나라고 해도 소극적이 되고, 본분 이행을 하면서 좀만 피곤해져도 소극적이 되며, 본분 이행이 피곤하지 않아도 소극적이 된다. … 소극적인 것은 사람 내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는 일에 늘 불만을 품는 것이다. 또한, 진리를 전혀 구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그를 신경 쓰겠느냐? 그런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겠느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한쪽에 버려두고 신경 쓰지 않는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도록 말이다. 네가 믿고 추구하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한다. 그러나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네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가고 싶으면 속히 가라.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다면 행패를 부리거나 거드름 피우지 말고 빨리 떠나라.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붙잡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태도이다. 너는 분명 피조물이거늘, 언제나 피조물이 아닌 천사장이 되고 싶어 하는데 하나님이 너를 신경 쓰겠느냐? 너는 분명 평범한 사람이면서 언제나 특별 대우를 받고 싶어 하고, 지위와 신분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모든 것에서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란다. 그것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생각이다. 이성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겠느냐? 어떻게 평가하겠느냐? 그런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하나님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진 근원을 밝혀 주셨어요. 제가 리더 자리를 너무 아끼고 신경 썼기 때문이었죠. 전 지위를 잃기 두려웠고, 지위를 본분보다 더 좋아했어요. 제가 한 건 다 리더 지위를 지키기 위한 거였어요. 처음 리더 본분을 맡게 됐을 때가 생각났어요. 열심히 본분하면서 전 거의 쉬지도 않고 할 정도였어요. 잘하지 못하면 교체될까 봐요. 근데 두 자매의 성장을 보면 기뻐해야 맞는데 형제자매들이 절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걱정됐죠. 그럼 저는 존재감이 없어지고, 다들 높이 보지도 않을 거니까요. 특히 에블린 자매가 굉장히 두드러지게 형제자매의 문제를 잘 해결해주고, 또 다들 자매랑 가까이 지내니까 저는 제 지위를 지키지 못할까 봐 소극적으로 된 거죠. 본분도 무성의하게 했구요. 하나님은 이런 자를 한심하다 하시고 성령 역사를 얻기 힘들다는 말씀에 너무 두려워졌어요. 이러면 정말 위험하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어요. 또 하나님은 늘 소극적인 자를 싫어하신 댔잖아요. 그런 자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자신의 잘못된 생각 안에 살면서 돌이키지 않으니까요. 늘상 이런 소극적인 상태 속에 사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게 돼요. 그때 저도 이런 걸 깨닫고 서둘러 하나님 앞에 가 기도하고 회개했어요. 그렇게 말씀드렸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알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후에 예배 때 한 자매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줬는데 제가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근원에 대해서 좀 알겠더라구요.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의 네 번째 단락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사탄은 무엇으로 사람을 단단히 옭아매느냐? (명예와 이익입니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 지금 보니 사탄의 이런 음흉한 속셈이 가증스럽지 않으냐? 오늘은 너희가 아직 사탄의 음흉한 속내를 간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명예와 이익이 없으면 삶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명예와 이익이 없으면 앞으로 방향과 목표를 찾을 수 없고 칠흑같이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명예와 이익이 얼마나 큰 사탄의 족쇄인지 서서히 깨닫게 될 것이다. 너희가 이를 깨닫고 나면, 사탄의 통제와 사탄이 묶어 놓은 족쇄에 철저하게 맞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사탄이 주입한 것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사탄과 완전히 결별하고 사탄이 준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증오하게 될 것이다. 그때야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모하게 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명리와 지위는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수단이라는 걸 알았어요. 사탄이 사람을 속박하는 무형의 족쇄죠. 전 어려서부터 명리와 지위라는 족쇄에 묶인 사람이었어요. 학창 시절에는 남들의 우러름과 존경을 받으려고 늘 앞순위를 차지했고 남보다 뒤처질까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하나님을 믿고 리더로 뽑힌 후엔 교체되지 않도록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본분을 이행했구요. 저보다 뛰어난 형제자매들을 보면 질투하며 그들보다 뒤처져 사람들 맘속 지위를 잃을까 걱정했어요. 가장 바보 같았던 건 제가 형제자매들에게 있어 제 생각처럼 그렇게 대체 불가한 존재가 아닌 걸 알고 지위를 얻지 못하게 되니,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고 본분을 대충 했다는 거에요. 보니까, 저한테 하나님의 요구, 본분에 대한 책임감, 교회 생활, 다 중요하지 않았어요. 저는 오직 지위를 향한 욕망을 채우려 했을 뿐이지 경외심은 없었어요. 그리고 사탄은 사림이 하나님의 요구를 외면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려고 명리를 이용해 서로 싸우게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어요. 사탄의 간계인 거죠. 이런 걸 깨닫고 나니까 스스로가 너무 증오스러웠어요.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앞에 오고 싶어졌어요. 그러다 찬양을 하나 듣게 됐어요. <나는 작디작은 피조물> 이요. 듣고 감동이 됐어요. 『하나님, 제게 지위가 있든 없든 저는 이제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제 지위가 높다면 그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이고, 제 지위가 낮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결정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손에 달렸으니 저는 어떤 선택도,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서 살게 하셨으니 저는 당신의 권세에 오롯이 순종할 따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지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피조물일 뿐이니까요. 당신께서 저를 무저갱에, 유황불 못에 넣으신다고 해도 저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쓰셔도 저는 피조물이고, 당신이 저를 온전케 하셔도 저는 피조물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온전케 하지 않으셔도 저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일개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창조주께서 만드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자, 당신께서 지으신 인류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저를 만드셨고, 오늘날 또 저를 당신의 손안에서 지배하시니 저는 당신의 도구, 당신의 부각물이 되길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당신의 손안에 있습니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중에서) 그때 깨달았어요. 하나님 집에서 제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거고 높여주신 거에요. 지위가 있든 없든 피조물로서 마땅히 저는 제 본분을 성실히 이행해야 해요. 그래야 이성 있는 거구요. 또 하나님 집에선 다 자기 본분을 하는 거지, 지위의 높낮이가 전혀 없다는 거에요. 이런 것들을 깨닫고 마음속이 자유해지더라구요. 앞으로 지위가 있든 없든 본분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흡족게 해드려야죠.

나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는데, 정말 마음에 와닿았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본디 형제자매들이 함께 협력하는 것은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과정이다. 너는 네 장점으로 다른 이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다른 이는 그의 장점으로 네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다. 사람은 조화롭게 협력해야만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을 수 있다. 체험할수록 더욱 실제가 생기고, 길은 갈수록 더 환해지며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에 관하여> 중에서) 『역할은 달라도 몸은 하나다. 각자 맡은 바 직책을 다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미력이나마 전력을 다해 생명의 성숙을 추구한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21편> 중에서) 그때 이 말씀을 보고 하나님 뜻을 알 수 있었어요. 원래 하나님은 우리가 본분을 함께 이행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장점을 배워가면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조화롭게 본분을 잘하길 바라시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했어요. 지위를 내려놓는 것도 훈련했구요. 제가 교체될지 안 될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본분을 잘 이행할지 고민하고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쏟았어요. 예배 때는 적극적으로 교제도 했어요. 다른 사람이 교제할 땐 곰곰이 잘 들어보고 빛 비춤이 있으면 바로 메모했구요. 그러니 형제자매들한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그렇게 저보다 성장이 빠르고 자질이 좋은 형제자매들을 질투하지 않게 됐어요. 자신을 내려놓고 배울 수도 있었구요. 한동안 그렇게 실행했더니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평온했고 하나님과도 가까워진 거 같았어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절 심판하고 드러내시니 제 패괴 성품을 알게 됐어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했어요.

어떻게 해야 죄성을 이기고 회개하고 또 죄짓는 상태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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