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거짓 리더의 깨달음
중국 양판 2019년에 전 리더 본분을 맡게 됐어요. 하나님이 높여 주신 거니, 본분을 잘 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매일 예배드리고 본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역 진도를 체크하는 데 집중했어요. 알차게 사는 기분이었죠. 얼마쯤 지나 사무적인...
저는 2002년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 안 돼 복음 전도와 새 신자 양육을 시작했어요. 저는 믿음 충만으로 몇 년 동안 계속 열심히 본분을 이행했어요. 비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날려도 저는 본분 이행을 멈추지 않았죠. 한번은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상대가 받아들이지도 않고 오히려 삿대질하면서 욕하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죠. 그때 저는 정말 모욕감을 느꼈고 크게 다운되고 약해졌어요. 하지만 제가 복음을 전하느라 이런 조소와 비방을 받는 거니까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 따를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괴롭지 않았고 계속 복음을 전했어요. 그렇게 또 몇 년이 훌쩍 지났어요.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몸도 고생하고 체면도 조금 깎이는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하나님을 믿은 뒤 가족이 무탈하니 이게 다 제가 하나님을 잘 믿은 덕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기뻐하던 시기에 제가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겼죠.
2008년 6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양쪽 눈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뭔가 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상초열로 인해 그런 줄 알고 계속 본분을 이행했어요. 어차피 하나님이 계시니까 겁날 게 없다고 생각했죠. 아파도 본분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근데 생각과 다르게 상태가 점점 심해지고 뭘 봐도 침침하고 멀리 보면 눈앞이 심하게 부시면서 머리가 어지러웠어요. 그때야 조금 겁이 났죠. 괜히 가만있다가 골든 타임을 놓쳐서 실명이라도 되면 큰일이란 생각에 얼른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병원에선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사 좀 맞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어요. 그제야 조금 안심했죠. 근데 주사를 며칠 맞아도 호전되는 게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이러다 실명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죠. 그래도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까지 계속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 양육 본분을 이행했으니까 하나님은 내가 버리고 헌신한 걸 봐서라도 절대 눈이 멀게 두지 않으실 거야. 괜히 스스로 겁먹지 말자. 더구나 요즘은 의학도 많이 발달했으니까 이 정도는 잘 고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남편이랑 시립 병원 안과 전문의를 찾아 CT를 찍었는데, 황반 부종이라고 했어요. 처음 며칠은 수액을 맞으니까 좀 낫는 듯싶었는데, 나중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시력은 갈수록 더 떨어졌고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희미해졌어요. 의사가 처방한 약이 스테로이드 성분이니까 온몸에 부종이 생기더라고요. 시립 병원에 다섯 번이나 갔지만 제 눈 상태가 더 심해지기만 하니까 의사도 어쩔 수 없다면서 진지하게 그러는 거예요. “지금 눈병은 치료가 힘듭니다. 어쩌면 계속 재발할 수 있고, 심하면 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간 스테로이드 약물 사용으로 골다공증이 생길 수 있는데, 넘어지면 쉽게 골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이었어요. 온몸의 힘이 다 빠지는 게 의사의 말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확인했더니 의사는 확실하다고 못 박았어요. 그러니까 온몸이 떨렸고 ‘이제 끝났구나. 이건 불치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왔는데 기운이 빠지고 짜증이 나기도 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 주지 않으셨다는 생각에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어요. 눈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점점 더 안 보였어요. 어느 날, 사촌 언니가 절 보러 왔는데, 정말 목소리를 안 들었으면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을 거예요. 앞에 그저 검은 물체만 보였으니까요. 속으로 ‘내가 이 젊은 나이에 벌써 실명하게 된다면 그냥 쓸모없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씩 저는 과묵해졌고 혼자 집에 틀어박혀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매일 눈물로 보냈는데, 하루가 일 년 같았어요. 남편은 혼자 밭일도 하고 집안일도 챙겨야 하니까 짜증을 내더라고요. 몇 번이나 저한테 “이제 눈도 안 보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너랑 살아서 뭐해? 그냥 널 버리고 싶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괴롭고 가슴이 시렸어요. 결국 막막함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을까요? 지금 눈도 보이지 않는데, 앞으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정말 실명이 된다면 앞으로 일은 고사하고 일상생활도 어렵습니다. 남편이 하루 세끼 챙겨 줘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을 거고, 안 그래도 누구한테 신세 지거나 눈치 보면서 사는 거 질색인 사람인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나님, 팔다리를 못 쓰는 게 눈으로 못 보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 지금 너무 힘듭니다. 이 병을 거두어 주십시오. 낫게만 해 주신다면 어떤 본분이든 다 이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지만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믿음을 잃었고 더는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 주시지도 않고 남편마저 저를 버린다면 제가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에 죽을 생각까지도 했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어린 아들을 두고 가면 애는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되면서 죽어도 눈이 안 감길 것 같았죠. 나중에 유명한 안과 병원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남편과 병원을 찾아가서 열흘 넘게 입원 치료까지 받았지만 치료는 안 됐어요. 6개월이 넘어가니 돈도 거의 바닥이 났어요. 근데 눈병은 오히려 더 심해졌고 저는 이제 못 고친다는 생각에 실망을 했죠.
제가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한 자매를 만나게 됐는데, 자매가 그러는 거예요. “자매님, 계속 병에 빠져 있으면 안 돼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질병 속에서 배워야 할 공과를 찾아야죠.” 자매의 말에 정신이 들었어요. ‘그래, 난 이 병에 걸린 뒤로 지금까지 자아 성찰을 하지 않았어.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지. 그저 의사를 찾기 바빴어. 요즘 과학이 발달했으니까 의사만 내 눈을 고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 어쩌다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싶었어요.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려고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저 애간장만 태웠죠. 그래서 하나님께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질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속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조금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사탄의 생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질병 속에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미 속에서 하나님을 누리며,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계속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그저 병뿐이지만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모금의 숨이라도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은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편> 중에서) 그렇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시죠. 근데 전 한동안 계속 병통에 빠져 있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그 병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으며, 병에 걸렸을 때도 제가 배울 공과가 무엇인지 성찰하지도 않았어요. 전 정말 무감각한 사람이더라고요. 저의 병도 하나님께 달렸으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당장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제가 저 자신을 반성하고 알 수 있게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달라고 기도해 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사이 하나님의 말씀 낭송만 들었어요. 가끔 병통이 임했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을 듣게 되면 그 말씀에 나온 실행 길에 따라 기도하는 훈련을 했죠. 그리고 고백했어요. ‘하나님, 전에 제가 했던 기도를 보면 전 정말 이성적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팔다리를 못 쓰게 되더라도 눈이 머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고, 하나님께 이 병을 거두어 달라고 요구하면서 병만 낫게 해 주시면 어떤 본분이든 다 이행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했던 기도를 돌아보니 정말 이성적이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도 듣게 됐어요. 『예수의 기도를 보아라.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일 할만하시거든…”이라고 기도했다. 다시 말해, 가능하다면 상의를 하고자 했지, ‘바라옵건대’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순종의 마음으로, 그리고 순종적인 내적 상태로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으며, 두 번째 기도도 이러했다. 그리고 세 번째 기도에서 그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기에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는 완전히 순종할 수 있었고, 거기에 자신의 선택은 전혀 없었다. …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 사람은 늘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십시오. 어떻게 어떻게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제게 조건을 예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어쩌면 하나님은 적합한 환경을 예비해 주지 않고 그 고난을 겪으며 공과를 배우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이 늘 “하나님, 저를 위해 예비해 주시고, 제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그런 기도는 얼마나 비이성적이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는 반드시 이성이 있어야 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하며,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할 때는 반드시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먼저 하나님에게 구해야 한다. 그러면 기도하는 동안 마음이 저절로 환해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기 전의 생각에서 기도한 후에 마음에 생기는 변화까지가 바로 성령 역사의 결과다. 만약 자신이 이미 규정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확정한 뒤에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여 하나님을 네 뜻에 따르게 한다면, 이런 기도는 너무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대부분 어떻게 할 것인지 사람 스스로 먼저 정하고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할지 네가 이미 정해 놓았는데 구태여 내게 물을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한다. 이런 기도에는 하나님을 속이는 뜻이 조금 들어 있으므로 기도가 무미건조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 그저 일방적으로 병을 거두어 달라고 요구하는 기도를 했음을 알게 됐어요. 정말 너무 비이성적이었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어요? 저는 하나님을 제 뜻에 따르게 하면서 제 개인의 이익을 충족시켜 주시기를 바랐는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조금도 없었어요. 예수님의 기도가 생각났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셨지만 당신의 기도에는 요구하는 의미가 없었어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면 당신이 고난받아도 기꺼이 순종하려고 하셨어요. 저도 마땅히 병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순종해야 하죠. 그래서 다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는 순종하는 자세로 당신께 기도하면서 구합니다. 제가 이런 병에 걸린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의 뜻을 알지 못하고 제가 이 병을 통해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세요.’ 그렇게 한동안 계속 기도했는데, 눈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다시 말씀을 보니 조금 희미하긴 하지만 보이더라고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저의 내적 상태를 조금 더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주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하는 한편,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며 훈계한다. 이렇게 사실과 진리를 대조함으로써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하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하며, 이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을 더 참되고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연단의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미가 있다. 그는 무의미한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멸하여 지옥에 보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또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연단은 실제적인 검증이자 실제적인 훈련이다. 오직 연단 속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하나님은 이 병통의 시련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속셈과 불순물을 드러내셨는데, 그건 사실 저를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려고 하셨던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더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하나님을 믿어 온 과정을 돌아봤는데, 저는 여태 고난받고 열심히 대가를 지불하면 하나님께 기억되고 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지금까지 가족들이 무탈하고 집안이 평안했던 것도 제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얻게 된 하나님의 보호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눈이 갑자기 잘 안 보이게 되니 저는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제 요구대로 해 주지 않으시자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어요. 그러고는 첨단 과학의 힘을 믿으면서 의사한테 의존했어요. 근데 의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자 저는 일락천장으로 추락했고 죽음까지 생각했어요. 그 사이에 저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고 자아 성찰도 하지 않았어요. 지금 보니까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에는 속셈과 불순물이 있었더라고요. 그건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거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거였어요.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이런 병통으로 제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저 자신을 몰랐을 거예요.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 몇 단락을 더 보게 되면서 제 문제가 뭔지 더 정확하게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신이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거나 상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다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에게 사탄 본성이 있음을 가장 잘 입증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다 사실이더라고요. 전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족이 평안하고 무탈하기만을 추구했고, 그게 하나님을 믿는 이유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았던 거예요. 제가 하나님을 믿었던 건 오직 제 평안과 축복을 위한 거였고 버리고 헌신하면서 본분을 이행했던 건 그걸로 천국의 복과 바꾸려고 했던 거예요. 모든 게 다 저의 이득을 위해 움직였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축복을 보게 되고 집의 모든 게 무탈한 걸 경험했을 때 저는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저는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가 병에 걸리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병이 낫지 않으니 저는 하나님을 멀리했고 하나님께 의지하거나 기도하지 않았어요. 사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말씀 낭송은 충분히 들을 수 있잖아요. 근데 저는 시간을 내서 쿨쿨 자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마음을 완전히 닫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았어요. 제가 하나님을 믿는 행태는 배를 불리려고 떡을 구하는 종교인들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평안과 좋은 걸 얻기 위해서잖아요. 일 년 사계절 순조롭고 온 가족이 무탈하길 바라는 거죠. 근데 그런 걸 얻지 못하고 오히려 화를 입으면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했어요. 저도 그렇게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이었고, 양심도 이성도 전혀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많은 진리를 주셨는데도 저는 추구하지 않았고 정결케 되고 변화되려고 추구하지도 않았어요. 그럼 저도 개돼지와 다를 게 없는 거잖아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진정 하나님을 믿는 게 뭔지, 하나님을 믿는 의의가 뭔지를 조금 더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의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으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띤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로 믿는 것을 기초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종종 하나님을 믿는 일을 아주 쉽고 가볍게 본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미를 잃었으며, 마지막까지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텅 빈 도리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실체가 없고 자신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평안과 풍성한 은혜를 얻을 수 있게 지켜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생각해 보자. 하나님을 믿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가 고작 더 많은 은혜를 얻는 것에만 국한되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정 하나님을 믿는 게 뭔지 좀 알았어요. 지금까지 저는 계속 저의 관념을 지니고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어 왔더라고요. 애초에 하나님을 믿은 것은 현세에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기 위함이었어요. 저는 잘못된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었으니 길도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저처럼 하나님을 믿으면 아무리 오래 믿어도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거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재자이심을 믿는 것을 기초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하나님을 알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림으로써 하나님 마음에 합하는 사람이 되는 이런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돌아보면 은혜시대에 베드로가 추구했던 신앙의 길은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거였어요. 베드로는 진리를 추구했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찾고 구했죠. 또한, 그는 피조물의 자리에 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추구했어요.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아름답고 힘 있는 증거를 했어요. 베드로에 비하면 전 정말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회개합니다. 남은 시간 진리를 잘 추구하면서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당신의 뜻을 구하고 자아 반성에 들어가고 저의 생명 진입을 중시하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눈병을 앓게 돼서야 제가 하나님을 믿는 관점과 제가 가는 길에 대해 성찰하고 인식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공과를 조금 배우게 됐을 때, 눈도 거의 치료가 됐어요. 이제는 10년이 지났지만 눈병이 재발하지 않았어요. 자칫 실명할 뻔했고 질병의 고통을 좀 겪었지만 그 일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의 고심을 알게 됐고 사탄에 의해 패괴된 제 본모습을 보게 됐어요. 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사역 방식과 고심에 대해 실제적으로 인식하게 됐어요. 이런 건 편한 상황에서 얻을 수 없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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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양판 2019년에 전 리더 본분을 맡게 됐어요. 하나님이 높여 주신 거니, 본분을 잘 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매일 예배드리고 본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역 진도를 체크하는 데 집중했어요. 알차게 사는 기분이었죠. 얼마쯤 지나 사무적인...
한국 청신(誠心) 제가 교회 리더로 있을 때, 왕화(王華)가 제 사역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늘 자신이 예전에 어떻게 사역을 관리했는지 이야기하곤 했는데, 자기 교회의 사역만 책임진 게 아니라 다른 몇몇 교회의 사역까지 체크해서 윗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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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신량 제가 막 양육팀장 본분을 맡았을 땐데, 새 신자 양육 문제는 다들 저한테 물었어요. 저를 좀 높이 봤죠. 리더가 외국인 새 신자들도 저보고 맡으랬어요. 팀 내에서 외국어 가르치는 것도 제가 했구요. 그러다 보니 저를 더 대단하게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