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밍 주님과의 재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 저는 올해로 78살이 되었습니다. 항상 두통과 당뇨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2005년 주님을 믿은 후 수년간 저를 괴롭혔던 병세가 서서히 완화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추구하는 것은 다 나중에 복을 얻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들은 반드시 시련과 연단으로 해결받아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정결케 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패괴 표출이 있다면 반드시 그 부분에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마련해 네가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알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놓고 말하면 몇 년간의 연단과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생각과 마음속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탄 본성에 통제되는 부분이 있고, 자신의 욕망과 요구가 있다면 그 부분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이 공과를 배울 수 있다. 즉,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편안하고 순탄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말씀을 볼 때면 제가 경험했던 병통이 생각나요. 그때 병통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저는 기복 신앙을 하고 있는 저의 잘못된 관점에 대해 알지 못했을 거고, 앞날과 종착지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지 못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 병통을 겪게 해 주신 덕에 생각지 못한 걸 얻었어요. 너무 감사하죠.
전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자주 아팠어요. 21살 때는 기관지염을 앓았는데, 미열이 3개월 동안 지속됐어요. 정말 병원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만 낫지 않았어요. 거기다 복용했던 약들이 위랑 혈관을 많이 상하게 해서 집에 가서 쉴 수밖에 없었죠. 집에 돌아왔지만 밥도 잘 안 내려가고 몸은 점점 허해졌어요. 저는 제가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너무 괴로워하니까 엄마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줬어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과 사람이 패괴된 근원, 왜 사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뭔지, 어떤 삶이 의미 있는 것인지 등을 깨닫게 됐어요. 정말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는데, 거의 몸의 아픔을 잊을 정도로 좋았어요. 그러다 몸이 많이 좋아지게 되자 교회 생활에 참석하기 시작했죠. 6개월 후에는 몸이 거의 회복됐어요.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죠.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본분에 임했어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더우나 추우나, 중국 공산당이 추적하거나 핍박하거나 관계없이 저는 구애받지 않고 계속 본분을 이행했어요.
어느새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공산당의 박해는 점점 더 심해졌어요. 저는 다행히 중국을 탈출해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게 됐죠. 해외에서도 계속 본분을 이행했고요. 그러다 한때는 제가 양육을 맡은 새 신자랑 제가 있는 지역이 시차가 있다 보니 거의 매일 밤을 새워야 했어요. 가끔 많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종착지를 예비하셨으니까 고생을 좀 많이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2021년에 자꾸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렸는데, 심장의 박동수가 고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게다가 자꾸 기운이 빠지고 자주 졸렸어요. 그래도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죠. 조금 쉬면 괜찮겠지 싶었거든요. 더구나 새 신자들이 아직 탄탄한 기초를 다진 단계가 아니니까 제가 제때에 양육하지 못하면 새 신자들이 생명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죠. 문제는 몇 달 뒤에 증상이 더 심해졌고 가끔은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는 거였어요. 그제야 혹시 큰 병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허약한 체질이기는 했지만 큰 병을 앓은 적은 없었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고 자주 밤을 새워서 생긴 정상 반응이겠거니 했어요. 게다가 지금까지 다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했으니까 하나님께서 큰 병은 걸리지 않게 보호해 주시겠지 했어요.
그러다 2022년 2월의 어느 날 초저녁이었어요. 다른 때랑 마찬가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심장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좀 참으면 지나가겠지 싶었는데,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칼로 후비는 것 같았어요. 호흡도 가빠져서 결국엔 앉아 있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어요.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너무 겁이 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집에 있던 자매가 저를 발견하고는 부축해 침대로 옮겨줬는데, 그렇게 저는 잠이 들었죠. 잠에서 깨니까 저녁 9시가 넘었더라고요. 천장을 보면서 아까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봤죠. ‘내가 심장이 아파서 졸도한 건가? 내가 정말 심장병에 걸린 건가? 심장병이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나 이러다 죽는 건가? 난 모든 걸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왜 날 지켜 주지 않으셨을까? 이런 병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겠다.’ 그래서 휴대폰을 열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죠.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이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떤 시련을 겪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체험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결국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가 그렇게 사역함으로써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며, 또한 사람의 의지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모를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주관을 갖고 굳게 서야 한다. 욥이 이 수준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지만, 네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네가 바라는 것을 베풀어 준다. 너에게 믿음이 없으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전능은 더더욱 볼 수 없다. 네가 실제 체험 중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볼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 네 안에서 너를 깨우쳐 주고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네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네가 하나님께 희망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지니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어야 체험 속에서 그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을 수 있고, 그의 행사를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단이 있어야 믿음이 생기고, 연단이 없으면 믿음도 생기지 않는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마음이 한결 안정됐어요. 하나님의 시련이 제게 임했다는 걸 인지했고,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다만 지금 제가 모르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욥에게 시련이 닥쳤을 때에도 욥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지만, 입으로 죄를 짓지 않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고 찾고 구하면서 아름다운 간증을 해 종국에는 하나님을 뵙게 되는 큰 축복을 받았죠. 이처럼 저도 심장이 불편해서 졸도했지만, 당장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도 욥을 본받아 입으로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하나님께서 제게 참된 믿음이 있는지 보시는 것 같았어요. 제가 아픈 데가 없을 때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면서 불평이 없이 본분을 이행했었는데, 지금 병통이 임했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죠.
그 뒤로도 몸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졌어요. 툭하면 가슴이 답답했고 온몸에 기운이 없었고, 말하다 보면 호흡 곤란이 왔는데, 간단한 집안일도 못 할 정도였어요. 몸이 그렇게 되니까 너무 괴로운 거예요. 전 이제 30살인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폐인으로 살아야 하나 싶은 거예요. 21살에 하나님을 믿어서 청춘을 바치고 모든 걸 버렸고, 중국 정부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왜 절 지켜 주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은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전 이런 병에 걸려서 이 중요한 시기에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선행을 예비하지 못하게 되니 앞으로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얻을 수 있겠나 싶기도 했죠. 생각할수록 너무 괴로워서 몰래 베란다에 나가 울었어요. 울면 울수록 서러움은 더 커졌고 제 처지가 너무 처량해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울고 나니까 조금 차분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런 병에 걸리니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망해서는 안 되는 걸 알고, 비이성적으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제가 분량이 너무 작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뜻을 알고 이 상황에서 제가 배울 공과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이끌어 주세요.’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겼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낯선 사람으로 대했다. 그러나 일정 기간 하나님이 사역한 후,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참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때 사람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여겼느냐? 생명줄로 여겼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축복을 받고 약속을 받기를 원했다. 이때 하나님은 사람을 무엇으로 여겼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정복할 대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검증하고 시련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할 수 있음을 보았고, 하나님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는 종착지를 얻을 기회가 있음을 보았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은 조금이나마 진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너무 마음이 찔리고 괴롭더라고요. 하나님께서는 저를 구원하셔서 가족처럼 대해 주시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시고, 본분 이행을 통해 다양한 진리를 얻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함으로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게 해 주셨잖아요. 근데 저는 하나님을 그저 구명조끼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에게서 은총과 축복만 얻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몸이 아프니까 제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버렸는지를 계산했는데, 제가 하나님께 헌신했으니까 아프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은 제가 건강할 수 있게 축복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만큼 얻지 못했을 때 실망하고 낙담했는데, 보니까 그동안 제가 다 버리고 헌신했던 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은총과 축복을 얻기 위해 거래하고 있었던 거더라고요. 보니까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에는 비열한 속셈이 너무 많이 섞여 있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에 너무 면목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어요. 제가 본분을 이행한 이유가 복을 얻기 위한 것임을 하나님이 보시면 참으로 슬프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부모가 자식이 자기한테 잘하는 이유가 뭘 물려받기 위한 것임을 알면 마음이 슬플 수밖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제가 그런 불효자 같더라고요. 그저 제 이익을 위해서 고생하고 대가를 지불한 건데, 그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그걸 깨닫고 나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도를 했어요. 복을 바라는 속셈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겠다고요. 그 뒤로 저는 일과 휴식 시간을 조절했어요. 평소에 잘 쉬고 식단 관리도 하면서 매일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1주일 뒤부터는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졌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왔어요.
그해 12월에 저는 다른 본분을 맡게 됐는데, 그 사역을 파악해야 하고, 팀 내 형제자매들의 사역 상황을 확인해야 하니까 며칠은 조금 늦게 자기도 했어요. 어느 날 5시가 조금 넘은 초저녁이었는데, 갑자기 심장 쪽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는 거예요. 근데 점점 더 아파지면서 통증이 한참 갔어요. 제가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거기서 나오는데,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심장이 아픈 거예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아파서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어요. 그렇게 바닥에 30분 정도 누워 있었는데, 심장이 너무 아프고 온몸이 떨렸어요. 제가 바닥에 그러고 있으니까 다른 자매가 보고 놀라서 얼른 저를 침대로 옮겨 줬어요. 저녁 10시가 넘어서 침대 위에서 쓸 작은 상을 가져와야겠다 싶었어요. 근데 기운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 순간 앞으로도 계속 이러면 어쩌나 싶으면서 너무 서러운 거예요. 다음 날, 다른 자매랑 병원에 갔어요. 근데 검사 결과는 다 정상이라는 거예요. 그 결과를 보고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픈 데가 없는 건 좋은 일인데, 몸에 이상이 생긴 건 확실했어요. 근데 병명을 알 수 없으니 치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나중에 책임자가 제 몸 상태를 생각해서 업무량을 줄여 줬어요. 근데 본분의 양이 계속 줄어드니까 걱정도 들더라고요. 본분이 조금씩 줄어들면 선행을 예비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인데, 이래서야 어떻게 선행을 예배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 생각이 드니 조금 소극적으로 변했어요. 그 후에도 몸 상태는 점점 나빠져서 방에서 화장실을 갈 때에도 벽을 짚어야 할 정도였어요. 평소에는 그저 침대에 앉아 있어야 했고,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벽에 기대거나 책상에 엎드려 있어야 했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난 최근에 잘 쉬기도 했는데, 왜 몸은 갈수록 안 좋아질까? 전에는 조금만 쉬어 주면 몸이 금방 회복됐는데, 지금은 왜 갈수록 더 심해지는 걸까? 남들은 신나게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나는 아파서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러면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일단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래도 본분은 계속 이행해야겠어.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내 본분을 끝까지 지킨다면 난 구원받을 가망이 있는 거고,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그 모습을 보시고 낫게 해 주실지도 모르잖아.’ 싶었죠. 그 뒤로는 조금만 괜찮으면 바로 본분을 이행했는데,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고 심장 통증도 더 빈번해졌어요. 평소에 조금이라도 놀라거나 큰 소리가 들려도 심장이 불편했어요. 그때 저는 ‘내가 아파도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데, 왜 몸은 갈수록 안 좋아질까? 하나님은 왜 고쳐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픈 지도 거의 2년이 돼 가고, 병원에서도 원인을 몰라서 치료도 못 받는 상황이고, 일상생활하기도 힘들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도 기력이 달리는 상황이니 이러다 도태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마음이 갈수록 약해져서 결국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게 됐죠.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정상적인 사람이 병에 걸리면 고통스러워하며 괴로워한다.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자기 힘으로 병을 없애거나 병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느냐? 병에 걸린 상태에서 고통과 괴로움이 가중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병에 걸렸을 때일수록 더욱 진리를 구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지를 구해야 하며, 병에 걸렸을 때일수록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무리한 요구를 인식해야 한다. 병에 걸렸을 때일수록 네 진정한 순종을 검증할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병을 감당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고, 자신의 불평과 무리한 요구를 버린다면,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며 네게 간증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네 충성심과 순종이 진실하여 검증을 이겨 낼 수 있고 그것이 구호도, 도리도 아님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병에 걸렸을 때 한편으로는 네 여러 무리한 요구와 하나님에 대한 여러 현실에 맞지 않는 상상과 관념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네 믿음과 순종을 검증한다. 만약 이런 측면에서 검증을 모두 통과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네 믿음과 충성심 그리고 순종에 진정한 증거와 실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고, 피조물이 갖추고 살아 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모두 긍정적인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는 모두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네게 병을 허락했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 병을 거둬 가기도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든 네 병을 거둬 갈 수 있다면, 병이 계속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같은 병을 네게서 거두지 않는다면, 너는 계속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겠느냐? 이는 네게 검증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 병이 몇 달 후 완쾌되면 하나님에 대한 네 믿음과 충성심, 순종이 어떤지 검증되지 않으니 네게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몇 달을 참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약 그 병이 2, 3년 이어져도 네 믿음,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고자 하는 소망이 변하지 않고 점점 더 실제적이 된다면, 생명이 성장한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수확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병에 걸린 동안 병이 그에게 가져다주는 다양한 이로움을 경험하고 체험하지 조급하게 병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병세가 길어지면 어떤 나쁜 결과가 있을지, 어떤 번거로움을 불러오게 될지, 악화되거나 죽지는 않을지 등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것들을 걱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진입하여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과 충성심 그리고 순종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증거가 생기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명 진입, 성품 변화에 엄청난 수확을 가져오며, 자신이 구원받는 것에 견고한 기초를 쌓기도 한다. 이 얼마나 좋으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흑암 속의 빛처럼 제게 위로를 주었고, 실행의 길도 줬어요. 하나님은 이 순간 제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알고 계셨어요. 이런 상황을 제게 예비하신 건 여기에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라고 하시는 거고, 또한 저의 믿음과 순종심을 검증하시는 것이기도 했어요. 사실 사람의 생로병사도 하나님께 달렸으니까 이런 병 하나 거두시는 건 하나님께는 쉬운 일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셨어요. 무엇보다 증상이 더 심해진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사실 두 번 병통을 겪으면서 저의 패역함이 많이 드러났거든요. 병통이 임할 때마다 처음에는 주관적으로 원망하지 않고 순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증상이 심해질 때면 저도 모르게 원망하며 이치를 따졌어요. 2년간 이 상황을 겪으면서도 굳게 서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제가 계속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을 봐서라도 병을 거두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거래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겪게 하신 건 제 생명을 책임지는 것이자 저를 향한 구원이잖아요. 근데 제가 양심 없이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되죠. 이 상황에서 저는 참된 순종을 보여야 하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야 하죠. 그리고 제가 드러낸 패괴 성품을 알고 진입해야 할 진리를 찾아야 하겠더라고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방금 적그리스도가 진리는 싫어하면서 불의하고 사악한 일은 좋아한다는 것에 관해 언급했다.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고 복받기를 추구해서 항상 복받으려는 속셈과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과 거래를 한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분별하고 규정해야겠느냐? 만약 이익에 눈이 멀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 약하다. 마치 바울이 그의 몸에 가시가 있어서 속죄하기 위해 사역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마지막엔 공의의 면류관을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어떤 성질이냐? (흉악함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흉악한 성품이다. 그런데 이 일의 성질은 무엇이냐?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질이 있는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이득을 보려 하고 거래를 한다. 이방인의 말 중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적그리스도 역시 같은 논리다. ‘제가 당신을 위해 사역하는데 당신은 제게 무엇을 주시나요? 제가 무슨 유익을 얻을 수 있죠?’ 이 성질을 어떻게 결론지어야 하겠느냐?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익에 눈이 멀었다,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다. 적그리스도는 오로지 이익과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약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이다. 복을 받고 상을 얻으려는 그의 속셈과 욕망이 너무 커서 단단히 붙잡고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한결같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 즉 좋은 종착지를 얻기 위한 거야. 이는 지고지상의 원칙으로서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만약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선 안 되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믿는 의미나 가치는 사라져 없어지는 거야.’ 적그리스도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누군가가 주입했기 때문이냐? 누가 가르치고 영향을 주기라도 했느냐? 전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성 본질에 의해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데 그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고 정죄한다.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그의 본성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그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성품이 사악하여 대놓고 하나님에게 고함치며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며 그의 실체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깊이 반성해 봤어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복을 얻기 위한 거라고 폭로하셨죠. 그들이 본분을 이행하는 건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거지 진리를 추구함으로 생명 성품의 변화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고요. 돌아보면 지난 2년 동안 아팠던 것으로 인해 제 진짜 분량이 다 드러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대로 잘 겪어 나가는 것 같았는데, 기간이 길어지고 증상이 더 심해지니까 제 속에 있던 불평과 오해가 터져 나왔고, 제가 버리고 지불한 걸로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기 시작했죠. 사람이라면 생로병사를 다 겪는 거고 그게 정상이잖아요. 제가 모든 걸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것도 제 선택이고 제가 원해서 한 거잖아요. 사실 제가 지불하고 본분을 이행한 거랑 제가 아픈 거랑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거죠. 근데 저는 제가 바친 걸 자본으로 내걸고 하나님께 터무니없는 걸 요구했죠. 제가 다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은 제가 이렇게 아프면서 고생하지 않게 지켜 주셔야 하고, 나중에 아름다운 종착지도 주셔야 한다고 말이에요. 근데 제가 원했던 걸 얻지 못할 것 같으니 저는 불평을 하면서 하나님께 따지고 대들었어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유럽 대부분을 돌면서 많은 사역을 했지만, 바울이 그렇게 한 건 나중에 면류관을 얻고 좋은 종착지를 얻기 위함이었잖아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한 거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이건 대놓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거잖아요.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더욱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건데,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거래성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본분 이행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시켰죠. 그래서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며 큰소리칠 수 있는데, 그건 바울의 포악하고 사악한 성품을 드러낸 거예요. 제가 가고 있는 길을 돌아보니까 바울과 같더라고요. 계속 이대로 간다면 종국에는 바울과 같은 벌을 받을 수밖에 없죠. 이런 생각이 드니 두려웠어요. 기복 신앙의 성격과 결과가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거든요. 더는 이런 잘못된 추구 관점을 갖고 살면 안 되겠더라고요.
비록 저의 내적 상태는 조금 좋아졌지만 몸 상태는 여전히 호전되지 않고 매일 같은 증상이었어요. 제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느낌이 들었어요. 가끔 부정적인 생각도 들면서 이렇게 아픈 건 하나님께서 나를 드러내고 벌하시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아니면 이렇게 더 안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더 괴롭고 힘들더라고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사람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는 것들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종종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이 말씀을 찾아 읽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는 것들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종종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오해는 어떻게 생겨나느냐? 사람은 어째서 하나님에게 오해가 생기느냐? … 하나님의 사랑을 규정하기 때문이 아니냐?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사랑이니까 당연히 사람을 보살피고, 지켜 주고, 은혜와 축복도 내려 주셔야 해.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지! 나는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시는 게 마음에 들어. 특히 사람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걸 보니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겠어. 그 시대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야! 나도 그중 한 명이었으면 좋았을걸.’ 거기에 도취된 너는 하나님이 그 순간 나타낸 사랑을 최고의 진리로 생각하고 하나님 본질의 유일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하나님을 네 마음속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이 그 순간 행한 모든 것을 최고의 진리라고 규정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이자 사람이 제일 존경하고 경외하는 부분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하나님이 그렇게 행한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네가 규정하는 바람에 그 일은 네 마음속에서 관념이 되고, 하나님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어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 긍휼과 보살핌, 보호, 인도, 은혜, 축복과 같은 것 외에 다른 것은 없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 정도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너는 어째서 그런 면을 그토록 애지중지하느냐? 네 이익과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의 어떤 이익과 관계가 있느냐? (육적인 즐거움과 편안한 생활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에게서 그런 것들만 바란다. 다른 것들, 이를테면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버리고, 헌신하고, 심지어 목숨을 내던지는 것 등은 원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보호, 인도만을 누리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본질의 유일한 상징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유일한 본질로 규정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게 한 사실에서 하나님이 행한 일들이 사람이 관념을 품게 된 근원이 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것이 인류가 하나님에게 관념을 품게 된 배경이다. 이런 관념이 생긴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성품을 진실로 인식할 수 있겠느냐?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해와 관념이 생겨날 게 뻔하다. 이것은 사람의 인식이 너무나 단편적이고 진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관념 상상과 사욕으로 분석하고 해석한 사랑이자 인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실한 본질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긍휼과 구원, 보살핌, 보호를 베풀어 주고 간구를 들어주는 것 말고 또 어떤 것이 있느냐? (채찍질과 징계, 훈계와 책망,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이 있습니다.) 맞다.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하는 것은 너무나 많다. 매질, 징계, 꾸짖음, 심판, 형벌, 시련, 연단…. 이런 것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야 비로소 전면적이 되고, 진리에 부합하는 사랑이 된다. 이런 걸 인식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성찰할 때 자신의 치우친 면을 인식하고, 자신의 잘못된 점을 훌륭히 반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진리를 구해야 한다. 사람은 진리를 구하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없앨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없애면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 …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고, 일용할 양식을 내려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수도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병이고, 또 하나님의 본질이자 성품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깨달아야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다> 중에서) 말씀을 보니까 마음이 환해졌어요. 제 안에도 계속 옳지 못한 관점이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면 계속 복을 주시어 모든 게 순조롭고 무탈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반대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시면 그자는 많은 굴곡진 삶을 살고, 질병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저도 몸 상태가 안 좋아질수록 그건 저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생각하면서 저만의 관념과 상상에 빠져 소극적이고 괴로워했던 거예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난 2년간 병으로 괴롭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찾고 구하면서 기도하게 된 경우가 더 많아졌고 하나님과는 한층 더 가까워졌어요. 게다가 복을 좇는 마음이 그렇게 크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건 저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총이죠. 하나님 말씀에도 있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긍휼과 자비, 보살핌, 보호뿐만이 아니라,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도 사랑이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잖아요. 다만 그 방식을 제가 좋아하지 않을 뿐 그게 저한테는 꼭 필요한 거였어요. 이런 상황이 없었다면 저는 저 자신을 몰랐을 거거든요. 그제야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심을 알게 됐어요. 하나님은 저를 구원하시면서도 제 오해와 원망을 들으셔야 했으니 정말 이런 걸 생각하면 제가 너무 미워지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동됐어요.
한동안은 계속 베드로의 체험을 생각했어요. 물론 제 인성은 베드로와 비교가 안 되고, 베드로처럼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의지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베드로는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이 임했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극도로 괴롭고 연약해졌을 때 어떻게 겪어 나왔는지를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를 알아 간 과정>과 <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이 말씀 낭송 영상을 봤어요. 그때 영상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죠. 『이제 너는 베드로가 간 길이 어떤 길인지 분명히 보아야 한다. 베드로가 간 길을 분명히 보았다면 지금의 사역을 확신하게 될 것이며, 불평을 터트리거나 소극적이 되지 않고 뭔가를 바라지도 않게 될 것이다. 너는 베드로의 그때 심정을 체험해야 한다. 그는 몹시 괴로워 죽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어도 좋은 미래나 복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또한, 그는 세상의 명예나 복, 부귀영화를 좇지 않았으며, 그저 가장 의미 있는 인생, 즉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살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종종 예수께 기도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는 당신을 사랑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았나이다. 비록 입으로는 당신을 믿는다고 떠들었지만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나이다. 저는 그저 당신을 앙망하고 우러러보고 그리워했을 뿐 당신을 사랑하지도 진심으로 믿지도 않았나이다.” 그는 항상 기도하며 뜻을 세웠고, 언제나 예수의 말씀에 격려를 받으며 이를 동력으로 삼았다. 한동안 체험한 후, 예수가 베드로에게 시련을 주자 그는 예수를 더욱 사모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이 너무도 그립고 뵙고 싶사옵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수 없나이다. 저를 빨리 데려가 주소서. 언제쯤에야 제가 필요하겠나이까? 언제쯤에야 저를 데려가시겠나이까? 언제쯤에야 당신의 얼굴을 다시 뵐 수 있나이까? 저는 더 이상 육체에 살길 원하지 않으며, 더 이상 패괴되지 않고 거역하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한시라도 빨리 제 모든 것을 당신께 전부 바치길 원하옵니다. 더 이상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나이다.” 그는 당시에 이렇게 기도했으나 예수가 그에게서 무엇을 온전케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시련을 받고 극도로 고통스러워할 때 예수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나서 말씀했다. “베드로야, 나는 너를 온전케 하여 한 알의 열매로 만들 것이니라. 그것은 내가 온전케 한 후의 결정체로, 난 그것을 누릴 것이니라. 너는 정말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네게 하라는 일을 하였느냐? 내가 한 말을 살아 냈느냐? 너는 나를 사랑했느니라. 나를 사랑했으나 나를 살아 냈느냐?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너는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베드로는 예수를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전에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일을 떠올리며 불평을 멈추었다. 다시 기도할 때는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그는 다시 기도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는 당신을 떠난 적이 있고, 당신도 저를 떠나신 적이 있나이다. 우리는 이별했던 때도 함께했을 때도 있지만 당신은 그 무엇보다 저를 사랑하셨나이다. 저는 여러 번 당신을 거역하고 여러 번 당신을 슬프게 했나이다. 이를 어찌 잊을 수 있겠나이까? 저는 당신이 제게 행하신 사역과 제게 맡기신 부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잊은 적이 없사옵니다. 당신께서 제게 행하신 사역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나이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당신께서 아시나이다. 제가 무슨 기능을 할 수 있는지는 당신께서 더 잘 아실 것이옵니다. 저를 당신의 지배에 맡기길 원하옵고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길 원하옵나이다. 제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당신만이 아시나이다. 사탄이 이렇게 저를 우롱하고, 저 역시 당신을 거역한 적이 있으나 당신께서는 그런 이유로 저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런 것들로 저를 대하지 않으실 것이라 믿사옵니다. 저는 제 일생을 당신께 바치길 원하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른 바람이나 계획도 없사옵니다. 오직 당신의 생각과 뜻에 따라 행하길 원할 뿐이옵니다. 저는 당신의 쓴잔을 마시고, 저 자신을 당신의 지배에 맡기길 원하나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가 ‘예수’를 알아 간 과정> 중에서), 『너희는 너희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또 너희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하나님이 온전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너희에게 맡긴 부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느 날 시련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그때 너희가 베드로의 체험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너희가 베드로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가 ‘예수’를 알아 간 과정>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크게 감동됐고,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했던 베드로의 의지를 보면서 크게 감명받았어요. 베드로의 체험을 보니까 제가 너무 부끄러워졌어요. 베드로는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더 순수하게 사랑할지를 찾고 구했고,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지 못한 자신을 미워했고,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걸 하나님께 드릴지를 고민했죠. 근데 저는 병통 속에서 패역과 오해만 표출하고 있었고, 병이 심해지면 훗날의 종착지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죽음이 다가올까 봐 겁내기도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주신 건 저를 드러내고 벌하시려고 그런 거라고 착각했죠. 제가 고민했던 건 다 제 이익을 위한 것일 뿐,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려고 했던 건 없었어요. 정말 제 믿음의 분량은 가여울 정도로 작았는데, 약간의 풍파도 견디지 못할 정도였어요. 당장은 육이 많이 허약하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제한적이지만, 진리를 추구할 의지마저 잃을 수는 없잖아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 제가 피조물인 건 변함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고자 추구하는 건 제 평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살아 있는 한 진리를 추구하고 제가 맡은 본분을 잘 이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어느 날, 아침부터 무기력한 거예요. 심장이 아픈 횟수도 더 늘어나고 시간도 더 오래 지속됐어요.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초저녁이 되니까 더 심해졌고 호흡 곤란이 왔어요. 집에 있던 자매가 얼른 구급차를 불렀죠. 저는 속으로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제 저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 제가 이 나이까지만 살도록 정하신 건가요? 저 이제 죽는 건가요?’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이 정말 또렷하게 기억이 났어요. 『너에게 한 모금의 숨이라도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은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빛처럼 제 마음을 비췄어요. 제가 계속 숨을 쉬면서 살 수 있을지는 모두 하나님께 달렸으니까 하나님께서 죽게 하지 않으시면 전 죽을 수도 없죠. 그때 자주 봤던 베드로의 체험이 떠올랐어요. 베드로는 죽을 때에도 자신이 하나님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고 고백했잖아요. 베드로의 체험이 동기부여가 되어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죽을지 살지는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렸음을 믿습니다. 제가 이만큼 살도록 정하셨다 해도 아무런 원망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베드로의 분량은 안 되지만 그래도 베드로를 보고 배우면서 당신의 모든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건 제가 피조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하나님, 당신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렇게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했는데, 그래도 담담했어요. 검사를 했지만 의사도 병명을 찾을 수 없어서 치료를 할 수 없다면서 집에 가서 잘 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정말 저의 운명은 하나님께 달렸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제 생사를 결정하는 건 의사가 아니었죠. 제가 죽어야 한다면 의사도 어떻게 살릴 수 없는 거고, 제가 죽을 운명이 아니면 죽지 못하는 거죠. 집에 돌아와서도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누워서 쉬었어요. 한잠 자고 일어나서 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어요. 근데 놀랍게도 전보다 힘이 더 들어가는 거예요. 침대에서 내려왔는데, 뭘 짚지 않아도 걸을 수 있겠더라고요. 정말 너무 놀라웠어요. ‘이렇게 낫는다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 뒤로 1주일이 지나도 전처럼 무기력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됐어요. 지금까지 1년이 지났는데 몸 상태도 많이 회복돼서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됐어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시련과 연단은 정말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기 위한 것임을 피부로 느꼈어요. 그 과정에서 고생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제가 얻은 건 제가 겪은 고통보다 훨씬 크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제 생명의 자산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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