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고통과 연단은 제 생명의 필요입니다

2025.11.27

중국 왕취안(王泉)

1999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것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단계 사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직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추구하며 선행을 충분히 예비해야만 대재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꼭 잡아 본분을 잘 이행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떠나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교회에서 바쁘게 보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방과 가족의 외면을 겪으면서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후 복음을 전하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고, 풀려난 뒤에도 변함없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선행을 많이 예비했으니, 나중에 누군가는 구원받지 못하더라도 저는 틀림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5년 말이 되자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아침에는 무언가를 붙잡아야 겨우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걸을 때도 힘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허리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고 걸음도 절뚝거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허리가 너무 아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끝이구나.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겠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선행을 예비하지 못하면,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하나님의 시련일지도 몰라.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꾸준히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베푸셔서 내 병이 나을지도 몰라.’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제 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밤에는 잠을 자다 몸을 뒤척일 수도 없었고, 어떨 때는 허리가 너무 아파 꼼짝도 할 수 없었으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는데, 뜻밖에도 검사 결과는 강직성 척추염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 병은 ‘죽지 않는 암’이라고 불립니다. 만성적인 평생 질환으로, 심하면 평생 마비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자 저는 온몸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심각한 병에 걸렸을까? 하나님을 믿은 후에 열심히 버리고 헌신했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보호해 주시지 않았을까? 만약 마비가 와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거잖아?’ 마음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괴로웠고, 어째서 이렇게 큰 병이 저에게 닥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운이 없었고 몹시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요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제 내적 상태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예전의 믿음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건강하게 다들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나는 걸음도 절뚝거리고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됐으니, 이러다 언젠가 병세가 악화되면 내 인생도 끝이고, 구원받는 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말겠지.’ 이런 생각을 할수록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더는 진리를 추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봐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하루하루를 넋 나간 사람처럼 보내면서 육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내가 계속 살 수 있다면, 아들에게 아파트를 사 달라고 해서 거기서 요양해야겠다. 살 수 있는 만큼 살다 죽자는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믿지 않는 친척이나 친구들은 건강하고 좋은 차와 집을 가졌는데, 하나님을 믿으며 그토록 오랫동안 버리고 헌신한 저는 온몸이 병든 것을 보니 이전에 들인 수고와 대가가 후회되었습니다. 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본 아내가 제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이 병이 찾아온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우리는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어서 패괴 성품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요. 그걸 완전히 해결하고 변화되려면,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가지 시련과 연단을 겪어야 해요. 우리는 더 많이 구해야 해요. 이렇게 심각한 병이 찾아온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패괴 성품을 해결하시려는 것인지, 우리가 서둘러 회개하고 변화해야지, 하나님을 원망하면 안 돼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제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 졌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저를 깨우쳐 주시길 바랍니다.”

기도를 마친 후,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련하고 연단하시는 부분의 하나님 말씀을 찾아 읽었는데, 그중 한 단락 말씀이 저에게 특별히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줄곧 나에게 충성을 다하고 나를 사랑해 왔다고 하자. 그런데도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궁색한 삶을 살며, 가족과 친구에게 버림받거나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때도 나에 대한 너의 충성과 사랑이 지속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마치 하나님께서 얼굴을 마주하고 저를 질책하시는 것만 같아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셔서 모든 일이 순조롭고 재앙이나 화가 없었을 때는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싶었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추구하여 더 나아지려고 힘썼습니다. 공산당에 붙잡혔을 때도 소극적이 되거나 물러서지 않았고, 풀려난 뒤에도 변함없이 본분을 이행하며 온몸에 힘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병이 찾아와 마비가 될 수도 있고, 복받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오해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적잖이 버리고 헌신했으니, 하나님은 저에게 병이나 재앙을 주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으로 건강한 몸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욕망이 채워지지 않자 저는 하나님께 소리 없이 대항하는 삶 속에 살았고, 하나님 말씀도 읽고 싶지 않았으며, 공과를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극적으로 원망하며 자포자기했습니다.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야 저는 제 이전의 사랑과 충성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병을 허락하신 것은 저를 도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환경을 통해 저의 패괴를 정결케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하나님께 너무나 죄스러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소극적으로 지낼 수 없었습니다. 병이 낫든 낫지 않든, 우선 순종하고 병의 고통 속에서 공과를 배워야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외면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확신컨대, 모두가 복을 받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저의 상태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대재난을 피하며, 천국의 복을 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사역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저는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고 고난의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 저는 버리고 헌신하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방이나 가족의 외면도 저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경찰에 붙잡혔을 때조차 본분 이행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헌신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중에 대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병이 찾아와 마비가 될 수도 있고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되자, 저는 구원받을 희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따졌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많이 헌신했으니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셔야 하고, 병의 고통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복받을 욕망이 좌절되자 저는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환경에 반발하고 소극적으로 변해 대항했으며, 심지어 이전의 헌신을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거래의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버리고 헌신하는 것을 이용해 하나님과 거래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마치 고용인처럼, 일했으니 마땅히 하나님께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을 기만하고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네 충성심에 다른 속셈이나 조건이 있다면, 나는 너의 그 소위 충성심을 차라리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저의를 지닌 채 나를 기만하고, 조건을 내밀며 뭔가 얻어 내려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나에게 변함없이 충실하고, 무슨 일을 하든 오직 ‘믿음’을 위해, 그리고 ‘믿음’을 검증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시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며, 사람 또한 하나님께 한마음 한뜻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거짓과 불순물을 가지고 믿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지만 저의 헌신은 하나님과 거래하여 은혜와 축복을 얻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을 이용하여 제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을 받지 못하자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저처럼 이기적인 사람을 어찌 하나님께서 혐오하고 증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드러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믿는 저의 비열한 속셈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잘못된 길을 걸었을 것이며, 결국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하나님께 너무나 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을 이렇게 오랫동안 믿었지만 진심이 없었고, 늘 당신과 거래하며 당신을 기만했습니다. 저의 이런 믿음은 당신께서 혐오하고 역겨워하십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께 회개하기 원합니다. 부디 저를 깨우치고 빛을 비추어 주시어, 제가 이 잘못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했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아야 하고, 병이나 재앙이 닥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관점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욥이 사탄의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자, 가장 먼저 그의 아내가 나서서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사탄의 역할을 하며 욥을 공격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아내의 권고를 듣고도 욥은 자신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았고, 하나님을 버리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이 말은 매우 무게가 있지 않으냐? 이 말이 무게를 지녔음을 입증해 주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마음으로 칭찬하는 것이며, 또한 원하고, 듣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했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역시 욥의 증거 중 정수로 꼽을 수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욥은 자녀와 재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내에게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욥은 자녀와 재산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이 마땅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시든 원망하거나 거래로 얻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 누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과 환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복을 받든 재앙을 당하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사람은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하며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제가 병이 찾아왔을 때 원망했던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공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 고생한 만큼 분배하는 것, 일한 만큼 돈을 주는 것, 노력한 만큼 얻는 것, 이것은 공의가 아니라 그저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증거한 후에 하나님이 그를 멸했다면 이것은 공의이겠느냐? 사실 이것 역시 공의이다. 어째서 그것을 공의라고 하겠느냐? 공의에 대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한다면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말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공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때 하나님이 욥을 멸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 패괴되었든 안 되었든, 사람의 패괴가 깊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이 사람을 멸할 때 사람에게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하느냐? 무슨 근거로 사람을 멸하는지 설명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그가 정한 규칙을 사람에게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필요 없다. 패괴된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다 합당하고, 다 하나님의 안배다. 하나님이 네가 눈에 거슬려 넌 증거를 다 했으니 쓸모없어졌다며 널 멸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냐, 아니냐? 이것 역시 공의다. 지금은 네가 사실상 알기 어렵겠지만, 이치는 이해해야 한다. 너희가 말해 봐라,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냐, 아니냐? (공의입니다.) 사탄을 남겨 둔다면? 뭐라 말하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공의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이 하는 것은 모두 공의롭다. 다만 사람이 알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사탄에게 넘겨주었을 때, 베드로는 어떻게 말했느냐? “당신이 하시는 일을 사람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늘 당신의 아름다운 뜻과 공의가 있지요. 그러니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 관점이 치우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의 공의란,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일한 만큼 삯을 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으며 수년간 집을 떠나 수많은 것을 헌신했으니, 하나님은 마땅히 저를 축복해 주셔서 병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며, 그래야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평안하고 순탄한데 저만 이렇게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을 보고, 저는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으시다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패괴된 인류의 거래 관점과 논리로 하나님의 공의를 가늠했던 것입니다. 이 관점은 치우친 것이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저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건 너무나 이성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든, 복을 주시든 재앙을 주시든 그 안에는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하며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양심과 이성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훨씬 환해졌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제 내적 상태를 바로잡았습니다. 얼마 후, 제 병은 많이 호전되었고, 교회는 다시 저에게 본분을 맡겨 주었습니다. 저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본분을 소중히 여기며 예전처럼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6개월 후, 제 병이 다시 재발했습니다. 허리 통증이 이전보다 더 심해져서 화장실에 갈 때도 목발을 짚어야 했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몹시 힘들었습니다. 치료도 효과가 없었고, 의사는 한숨을 쉬며 제 병이 고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저는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 병은 정말 낫지 않는 걸까? 이대로 마비가 되는 건가? 이렇게 가다간 완전히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말겠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병이 있었지만 본분을 미루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니, 병세가 호전되어야 하는데, 어째서 오히려 더 심해졌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도태시키려는 건 아닐까?’ 저는 생각할수록 소극적이 되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제 병을 없애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오직 병이 낫기만을 바랐고, 매일의 기분은 병세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병세가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기뻐했고, 심해지면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문득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온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중에 내가 결정하지 않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 내 손에 달려 있지 않은 일이 있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제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온 우주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제 병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병을 없애 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성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연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주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하는 한편,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며 훈계한다. 이렇게 사실과 진리를 대조함으로써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하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하며, 이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을 더 참되고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연단의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미가 있다. 그는 무의미한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멸하여 지옥에 보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또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연단은 실제적인 검증이자 실제적인 훈련이다. 오직 연단 속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제 마음은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병이 찾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도태시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 복받으려는 욕망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환경을 통해 해결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저에게 임한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복을 추구하는 제 속셈과 관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 병이 재발하자 저는 또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 안에 복받으려는 속셈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고통스러운 시련을 더 많이 겪어야만 정결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거룩하신데, 어찌 더럽고 패괴된 데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기까지 하는 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믿은 수년간 오직 복받기만을 추구했고, 겉으로 버리고 헌신하는 것만 중시했을 뿐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성품에 변화도 없으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축복을 받고 싶어 했으니, 이것이 헛된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계속 이렇게 추구했다면 구원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때서야 저는 병이 찾아온 것이 겉보기에는 좋지 않은 일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저의 패괴를 정결케 하시고 저를 구원하시는 것이며,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크게 감동했고, 또한 몹시 후회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듭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으니, 저는 정말 너무나 양심과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선인지 악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드러내는 것, 행하는 것에 진리를 실행한 증거, 진리 실제를 살아 낸 증거가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네게 그러한 실제가 없고 그러한 살아 냄이 없다면, 너는 의심할 나위 없이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겠느냐? 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 겉으로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사탄을 수치스럽게 하거나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는 짓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기호일 뿐이다. 너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도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 정확하게 말하면 사탄을 위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하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할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행한 것이 선행이 아니라 오히려 악행이어서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죄받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믿어도 결국에는 전부 허사가 되지 않겠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무엇이 진정한 선행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자신의 속셈이나 목적도 없으며 자신의 이익이나 사리사욕을 위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실행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선행입니다. 예전에 저는 그저 버리고 헌신하며, 본분을 더 많이 이행하고 고난을 더 많이 받으면 그것이 바로 선행을 예비하는 것이고, 나중에는 분명히 좋은 종착지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니, 선행을 가늠하는 제 관점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여 선행을 예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만, 만약 속셈이 섞여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악행입니다. 아무리 많이 헌신해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로 정죄받을 것입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추구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 도태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에는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오랫동안 많은 사역을 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더럽기 짝이 없다면, 네가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하늘의 이치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는 그 어떤 이에게도 특혜를 준 적이 없다. 이것은 아무도 깰 수 없는 하늘의 규칙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로 저의 잘못된 관점은 바로잡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앞으로 본분을 이행할 때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고 더는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복을 받든 재앙을 당하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창조주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권세하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공급과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받아들이므로 마땅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행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고상한 일이다. 인류 가운데 어떤 일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없으며, 지음 받은 사람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없다. 땅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창조주께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조류를 좇지 않고, 하나님의 인솔과 인도에 순종하며, 오로지 창조주의 말씀을 듣고, 창조주가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말씀대로 살아갈 뿐이다. 이는 가장 진실되고 힘 있는 증거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훌륭한 증거다. 한 피조물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창조주를 만족게 할 수 있는 것은 인류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인류 가운데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져야 할 일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맡기든, 피조물은 마땅히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인류에게 행복한 일이자 영광스러운 일이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이는 무엇보다 아름답고 기념할 만한 일로, 긍정적인 사물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그들에게 어떤 약속을 주는지는 창조주의 일로, 피조된 인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분명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이 일은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으로, 사람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뭔가를 주면 너는 뭔가를 얻는 것이고,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네가 할 말은 없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창조주에게 협력하여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능력을 다하는 것은 본래 거래가 아니고 교환도 아니다. 사람은 태도나 행위, 행동 방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어떤 약속이나 축복도 맞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숨결을 주셨으며, 이제 또 저에게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기회를 주셨으니,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이자 파격적인 높여 주심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의 피조물로서 언제든지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하며, 어떠한 조건이나 거래, 요구도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마땅히 가져야 할 이성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겉으로 버리고 헌신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가운데 진리를 얻어 우리의 패괴와 불순물, 그리고 사탄 성품을 해결하고, 마지막에는 정결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바이며, 제가 본분을 이행하며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온몸이 훨씬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제 병이 아직 낫지는 않았지만, 제 마음은 더 이상 그다지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을 반성했고, 병이 낫든 낫지 않든, 앞으로의 결말이 어떻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더는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제 병세는 호전되기 시작했고, 저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저는 다시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고통스러운 연단이 제 생명의 필요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연단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저의 관념과 상상 속에서 복받을 속셈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을 것이며, 그렇게 추구했다면 결국에는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 환경을 마련하시어 저를 드러내시고, 변화시키시고, 정결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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