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통해 순종을 배우다

2025.7.11

중국 둥위(童羽)

저는 어릴 때부터 체질이 허약하고 약골이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커다란 소원이었습니다. 2012년 3월, 저는 다행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전에 비해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나는 횟수도 많이 줄고, 편두통, 경추증도 좋아졌습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가득했고, 버리고 헌신하려는 의지도 더욱 커졌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 리더였는데, 교회 사역을 잘하기 위해 가족들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바쁘게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2020년 5월, 하루는 목이 조금 불편해서,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약간 뻣뻣하고, ‘딱딱’ 소리가 났고, 조금만 오래 앉아 있어도 어지러웠습니다. 오른쪽 팔도 저리고 아프기 시작해서 물건을 드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 믿은 뒤로,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원래 앓고 있던 병을 거둬 주시는 것은 물론, 체질도 개선시켜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니, 병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고, 평소에 앉을 때도 자세를 바르게 하고 운동도 적당히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후, 경추증은 호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두통과 어지럼증도 자주 찾아오고, 눈도 뻑뻑하고 불편했습니다. 오른쪽 어깨도 저리고 아파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것조차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병이 점점 심해질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반신불수로 몸에 마비가 오면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지? 그럼 나는 구원받을 기회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전에 저와 협력했던 자매가 떠올랐습니다. 자매도 경추증이 심해져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병원 치료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다에게 배반당한 일 때문에, 병이 악화되어 본분을 이행할 수 없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고, 치료 받으러 병원에 갈 수도 없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롭고, 결국 참다 못해 원망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몇 년째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정도 일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어.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나를 보살피고 지켜주지 않으실까? 어째서 내가 또 병에 걸리게 내버려두실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병원 치료를 못 받는다고 악화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서 치료하자. 안 그럼 병이 악화되어 내가 고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분도 이행하지 못할 텐데, 그럼 어떡하나?’ 저는 어떤 방식으로 병을 치료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괄사, 부항, 쑥뜸 말고도 사방으로 경추증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병을 고치겠다는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분에도 부담을 갖지 못해서 여러 가지 사역을 점검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사역이 바빠서 밤에도 일을 해야 할 때는, 비록 겉으로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과로하면 병세가 악화될까 봐 속으로 무척 반발했습니다.

2022년 5월, 하루는 아침에 식사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뚜렷하게 오른쪽 다리와 어깨가 내려앉는 느낌이 들면서, 계단을 내려갈 때 다리를 들 수가 없어서 끌면서 걸어야 했습니다. 순간 바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정말 반신불수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만약 마비라도 오면 정말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데, 그러고도 무슨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간다는 말이야? 몇 년 동안 버리고 헌신한 것이 다 헛수고잖아?’ 생각할수록 괴로웠습니다. 주변 형제자매들을 보면 다들 그렇게 건강할 수가 없어서 속으로 정말 부럽고 질투가 났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몇 년씩 하나님을 믿으면서 버리고 헌신한 것이 저들보다 못하지 않은데, 하나님은 어째서 저 사람들한테만 건강한 신체를 주시고 나한테는 안 주시나?’ 이런 생각이 거듭될수록, 병으로 인한 근심과 우려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어느 연령대에 건강 상태가 어떨지, 심각한 질병은 없을지는 모두 하나님이 안배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은 손금, 사주팔자, 관상을 보고도 알아내고 모두가 이를 믿는데, 늘 하나님을 믿으며 설교를 듣고 진리 교제를 듣는 네가 이것조차 믿지 않는다면 넌 그야말로 불신파이다. 네가 진실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다면, 심각한 병이나 큰 병이든, 아니면 작은 병이든, 건강 상태가 어떻든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아래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떤 중병에 걸릴지, 어느 연령대에 건강 상태가 어떨지는 모두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긍정적이고 정확한 인식이다. 진리에 부합하느냐? (부합합니다.) 진리에 부합한다. 진리라면 사람은 받아들여야 하고, 이 일에 대한 태도와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바뀌면 무엇이 해결되겠느냐? 네 근심과 염려, 걱정이 해결되지 않겠느냐?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질병에 대한 네 근심, 염려, 걱정 등의 부정적 정서가 해결된다. 그것이 네 생각과 관점을 바꾸었기 때문에 네 부정적 정서를 해소해 버리는 것이다. …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는 많은 사람이 평생에 겪는 문제이다. 언제 어느 연령대에 사람이 어떤 병에 걸릴지, 사람의 건강 상태가 어떨지는 모두 하나님이 안배해 놓았다. 이는 사람이 태어나는 시간을 정할 수 없듯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을 두고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손을 써서 해결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묵묵히 순종하며 하나님이 보호해 주길 바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정말로 병에 걸리거나 죽음이 닥치면 사람은 불평하지도 말고, 하나님을 거역하지도,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공격하지도 말고 순종해야 한다. 피조물 본연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체득해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이를 하나의 특별한 경험으로 삼아 네 인생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을 꼭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러니 질병이라는 일에 대해 일단 질병의 근원에 대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해결하면, 사람의 이런 염려는 사라지게 된다. 아울러 미지의 일이나 이미 알고 있는 일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사람에게는 없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 아래 있기 때문에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와 실행 원칙은 기다림과 순종인 것이다. 인식에서 실행까지 모두 진리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 추구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제 병이 악화되는 것, 제게 마비가 오는 것은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렸으며,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현명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병을 치료하는 데 많은 에너지와 마음을 쏟았습니다. 하루 종일 병 때문에 걱정하고 우려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오해와 원망을 품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고, 병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하고, 하나님께 참된 신뢰를 품어야 합니다. 또한 몸이 불편하면 정상적으로 치료하고 건강을 돌보면서, 힘이 닿는 만큼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요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그것이 제가 지녀야 할 태도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속에 품었던 우려가 훨씬 가벼워지면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순리를 따르기로 하고, 시간을 합리적으로 안배해서 병을 치료하고 몸을 보양했습니다. 가끔은 평온한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왜 병이 악화되었을 때 원망을 쏟아 냈을까? 이것은 과연 어떤 패괴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일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 중 어떤 목적과 야심, 저의도 없는 초심을 지닌 자가 있는지 보아라. 설사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본 사람이 몇몇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최종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다. 사람은 생명 체험 과정에서 늘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도 직장도 내려놓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지? 그동안 내가 받은 복이 있는지 한번 계산하고 따져 봐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헌신하고 뛰어다니며 수많은 고난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한 것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해 주실까? 내 선행을 기억해 주실까? 내 결말은 어떤 것일까? 복은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은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뭔가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끊임없이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 갈수록 심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특정 환경에 처했을 때 항상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다.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이해이다. 사람의 본성 본질에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연결 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고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도 못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보고, 제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으면서 추구한 관점과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병세가 호전되자, 저는 하나님을 제 목숨을 살려 줄 의사로 생각했습니다. 버리고, 헌신하고, 수고하고, 대가를 치러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과 보호를 받으면 더 이상 병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병에 걸려서 병세가 계속 억제되지 않고 완화되지 않자, 저는 원망을 쏟아 냈습니다. 과거에 표면적으로 수고하고 헌신했던 일을 밑천으로 내세우며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는 한편, 병을 치료를 가장 시급한 일로 생각하느라 본분을 대할 때도 부담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사역에 성과가 없는 것을 보고도 조바심을 내거나 속을 끓이는 일도 없이, 온통 병을 치료하고 몸을 보양하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습니다. 주변 형제자매들은 하나같이 건강한데, 젊은 나이에 병에 시달리며 사는 저 자신을 보며, 속으로 하나님은 왜 저들은 축복하면서 나는 보살피고 보호해 주지 않느냐며 원망했습니다. 제 내적 상태와 모습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외면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제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입만 열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고 외쳤지만, 진정으로 그분을 하나님으로 대하며 경배하고 순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고 싶었고, 하나님이 제 병을 고쳐 주셔서 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 바랐습니다. 저는 명백히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면서도,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이것은 대놓고 하나님을 기만하고 대적한 것이 아닙니까? 정말이지 너무나 비열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발견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늘 육체를 돌보면서 토실토실 건강하게 몸을 관리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 그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육적으로 즐기려는 것도 그저 놀고먹는 것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삶의 가치가 아니며 올바른 길도 아니다. 사람의 삶의 가치,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길, 올바른 일이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 있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기를 원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기 원한다면 너는 온 힘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시간과 세월을 들이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기간에 약간의 질병을 겪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너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평생 온종일 빈둥거리며 토실토실 건강하게 관리한 몸으로 장수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면 어떤 삶이 가치 있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마음에 위안이 되고 아쉬움이 남지 않겠느냐?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은 마음속에 수확과 위안이 있는 것이다. 토실토실 살만 찌워 죽을 때가 되어서도 혈색이 좋은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지 않았으니 죽을 때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헛된 삶이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세 글자로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 헛된 삶이다! ‘헛된 삶’이란 무슨 의미겠느냐? (인생을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헛된 삶, 허비한 인생, 이 두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말이냐? (삶의 끝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얻어야 하느냐? (진리를 얻거나 삶에서 의미 있고 값진 일을 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하지 못하면, 평생 육적인 것을 위해 살면 헛된 삶이었다고, 인생을 허비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추구 관점은 바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마련하시더라도, 설령 큰 병으로 고통받는다 하더라도, 그분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이런 추구가 바로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추구이고, 하나님께 기념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육의 평온을 추구하고, 병이나 재난 없이 건강하게 평생을 살아가기만을 추구했습니다. 병이 악화되었을 때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며 원망을 쏟아 내기 시작하고, 오로지 병을 치료하고 몸을 보양하는 데에만 마음을 쏟았습니다. 심지어 자기 본분마저 이행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의 이런 추구는 무의미합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몸을 잘 보양해서 일생을 편안하고 건강하게 보낸다 해도, 피조물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인생이고, 그저 이 세상을 헛되이 살다 가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인식하니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제 병이 악화되거나 몸이 마비되고 말고를 떠나, 우선은 제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후로 저는 본분에 전념하며 여러 가지 사역을 점검했습니다.

어느 날은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어깨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오른 팔을 위로 드니까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고,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힘에 부쳤습니다. 속으로 갑자기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깨를 움직이지 못하면 본분을 또 어떻게 이행하지?’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좀 쉬자. 내일은 좀 낫겠지.’ 그런데 다음날 어깨는 좋아지는 건 고사하고, 통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머리와 목도 아프기 시작했고, 앉아 있어도 아프고, 누워 있어도 아팠습니다. 그러자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질병 속에 있든 아니면 고통 속에 있든 네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네가 살아 있는 한, 네가 말하고 걸을 수 있는 한, 본분을 이행할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럼 너는 고분고분하고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피조물의 본분과 창조주가 네게 맡긴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죽지 않는 한 너는 너의 본분을 완수해야 하고, 제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난 뒤, 저는 하나님께 제 병이 좋아지고 말고에 관계 없이 더 이상 병에 얽매이거나 구속되지 않고, 하나님 뜻을 구하며 순종하고, 제 본분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병이 언제면 호전될까 하는 생각을 버리고 본분에만 전념하며, 시간이 남을 때는 운동도 했습니다. 나흘 째 되는 날 아침, 문득 오른쪽 어깨 통증이 가벼워지고 목도 뻣뻣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점점 정상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거듭되는 병으로 하나님을 믿는 제 잘못된 추구 관점이 철저하게 드러나면서, 저는 비로소 스스로를 조금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 병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병을 앓으면서도 자신의 본분을 어떻게 잘 이행해야 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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