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복을 좇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

2022.12.9

영국 클라우드

전 2018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재림주를 맞이하게 되니 너무나 가슴이 뛰었죠.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낮에는 일을 하다 보니 저녁엔 많이 피곤해서 본분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전도만 하고 싶었지만 실제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집에 아이가 다섯이었거든요. 애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정부에선 양육할 능력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분명 애들을 데려갈 거니까요. 생활상의 스트레스가 컸지만 전 피조물이라 어떤 어려움에서도 저의 본분만큼은 다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죠.

2019년, 교회 리더로 뽑혀 전 더 바빠졌죠. 그래서 일은 주 6일에서 4일만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그걸 보시고 복을 주실 거라고 여겼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수입도 줄었지만 생활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죠. 모든 게 다 순조로웠습니다. 몸도 건강하고, 별다른 일도 없었고요. 제가 그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건 저의 열정과 헌신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했습니다. 전 기쁘게 본분에 더 시간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2021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뒤집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미용실 수입이 급격히 감소했고, 임대료를 감당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결국 임대료가 싼 곳으로 미용실을 옮겼는데,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 했죠. 저는 기술자에게 일을 맡겼는데, 몇 주 후에 보니까 그 공사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또 자기는 할 일은 많고 일손이 부족하니 저와의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했죠. 그 상황을 알게 된 이웃이나 손님들이 그랬죠. 새 가게 인테리어를 끝내지 못하면 계속 양쪽에 임대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하나님 믿는데 왜 그런 일이 생기냐고요. 처음엔 자신 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니까 원망해선 안 된다고요. 나중에는 다른 기술팀을 찾아 맡겼는데, 그쪽에서도 몸이 안 좋다고 공사를 그만뒀죠. 시간은 계속 가는데, 인테리어는 끝이 나지 않았죠. 그래서 세 달간 양쪽에 임대료를 다 내야 했습니다. 게다가 새 미용실은 천장에서 물이 새서 결국 천장을 다시 뜯고 수도관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일로 저는 거의 3천 파운드나 손해 봤습니다. 마음이 쓰리고 의문이 생겼죠. ‘왜 나한테 이렇게 돈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 생기는 걸까?’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좋은 기술자를 찾을 수 있게 해 주실 거라고 믿었는데, 그 사람은 갑자기 난방공사를 일부만 해 놓고 못하겠다고 갔습니다. 그리고 수도가 터지면서 반 이상 완공된 난방 공사까지 망쳐 놨죠. 게다가 전 코로나까지 걸렸고요. 원망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왜 나한테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 거냐고, 난 본분을 하려고 돈을 벌 수 있는 시간까지 다 할애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움을 많이 주시는 거냐고요. 속에는 불평이 가득 차 있었죠.

그 후로 전 본분을 참답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하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딴데 가 있었습니다. 온통 미용실 문제를 해결할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빠져서 예배에도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예배가 끝나면 요약하곤 했지만 그땐 하기 싫었죠. 또 전엔 잠자는 시간도 줄여 가면서 형제자매한테 교제도 해 줬지만 이젠 형제자매한테 연락이 와도 전화를 받기 싫었습니다. 예전에는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나 본분에서 어려움이 없는지 살피고 상황에 따라 말씀으로 교제해 줬지만 이제는 그 사역도 안 하고 싶어졌습니다. 전 본분을 점점 더 건성으로 했죠. 어느 날 윗선 리더가 그랬습니다. 저보고 부담을 가지고 모든 새 신자에 대한 예배와 양육이 원할하게 잘 이뤄질 수 있게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요. 전 그 배정이 마음에 안 들었죠. 그렇게 되면 전 가족한테 신경 쓸 시간이 없어지니까요. 전 가족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육의 욕심을 채우고 싶은 거죠. 제 상태는 엉망이 돼 갔고 묵상시간도 갖기 싫어졌습니다. 전에는 일찍 일어나 말씀 보고, 낮에도 말씀 낭송을 듣곤 했는데, 이제는 일어나기도 싫고 말씀도 안 보고 싶었죠. 왠지 제 헌신에 비해 축복이 없고 순탄치 못한 것 같았습니다. 예배 때는 뭘 교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전 매우 괜찮은 척을 했습니다. 그래야 최소한 제 지위는 지킬 수 있으니까요. 본분할 때도 간사하게 굴었습니다. 누가 본분 상황을 물어보면 제대로 못 했으면서도 했다고 거짓말하고 형제자매를 속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시고 어려움만 주셨다고 그런 행태를 부렸던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으니 경배는 말할 것도 없었죠.

결국 상태가 안 좋아져서 리더한테 다 털어놨더니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내 줬습니다.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이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떤 시련을 겪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체험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결국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가 그렇게 사역함으로써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며, 또한 사람의 의지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모를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주관을 갖고 굳게 서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이 말씀에서 깨달았습니다. 전 이 상황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몰랐던 겁니다. 전 막막하단 생각만 했고 하나님의 주관을 의심했습니다. 그러고도 전 자칭 충성된 크리스천이라고 했습니다. 가게가 잘되고 몸이 건강할 때는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 같아서 더 많이 헌신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생활이 빠듯해질 때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믿음을 찾아볼 수 없었죠. 욥이 전 재산과 자녀를 잃은 후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송했던 사례가 생각이 났습니다. 아내가 그의 신앙심을 흔들려고 할 때도 오히려 미련한 여자라고 꾸짖곤 했었죠.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욥의 믿음에는 하나님과의 거래가 없었습니다. 화복을 떠나 하나님께 다 순종했으니 욥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었던 거죠. 저는 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어려움들이 계속 닥쳐올 때 저는 속으로 원망하기 바빴습니다. 또 주변에서 하나님을 믿는데 왜 그런 일이 생기냐고 했을 때 전 그럴듯한 말로 대답했지만 마음은 하나님의 주관을 의심하고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죠. 욥의 사례를 통해 사탄은 제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하게 만들려고 공격적인 말을 했다는 걸 알았죠. 그 상황에서 간증이 전혀 없었고 사탄의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전 제 모습이 부끄럽고 후회됐습니다.

그 후에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사람은 생명 체험 과정에서 늘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도 직장도 내려놓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지? 그동안 내가 받은 복이 있는지 한번 계산하고 따져 봐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헌신하고 뛰어다니며 수많은 고난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한 것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해 주실까? 내 선행을 기억해 주실까? 내 결말은 어떤 것일까? 복은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은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뭔가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끊임없이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 갈수록 심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특정 환경에 처했을 때 항상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다.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이해이다. 사람의 본성 본질에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연결 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고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도 못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행하든,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급하든, 사람은 봐도 못 본 척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시종일관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자신이 주관하고 자신이 결정하려고 한다. 그 뜻인즉,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고 싶어 하지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사람들의 상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이 말씀에서 제 내면에 숨겨진 진짜 상태를 알게 됐습니다. 전 하나님을 경배하고 순종하려고 믿은 게 아니라 은총과 축복을 바라고 믿은 거였죠. 제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본분을 했던 것도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한 거였고 제가 헌신했던 것도 다 하나님과 거래를 한 거였지 참된 믿음과 사랑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초반에 생활에 어려움이 생겨도 계속 본분을 했던 건 그 어려움은 곧 지나가고 하나님이 더 크게 복을 주실 거라고 생각해서였죠. 근데 어려움이 끊이지 않고 새 가게로 옮긴 후에도 돈을 많이 쓰게 되자 전 본분을 이행할 원동력을 잃어 버렸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시니 예전처럼 그렇게 헌신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저는 제 육을 위해 살려고 했습니다. 제 머릿속엔 온통 어려움 속에서 받은 충격뿐이었죠. 이런 어려움 앞에서 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굳게 서려고 진리를 구하지 않고 제 힘으로 생활과 물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생각만 하면서 본분은 무책임하게 건성으로 대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죠. 본분과 하나님을 대하는 제 태도는 진정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제 삶에 어려움이 닥칠 땐 원망했고 하나님께 따지기만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았습니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건 바로 제 모습이었죠. 축복이 있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마치 채권자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 달라고만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생명과 제 모든 걸 주셨습니다. 충분히 많이 주셨는데도 전 하나님을 원망했었고 속으로 계속 따지기도 했고 본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며 대항했죠. 반성할수록 부끄러웠습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전 분명 하나님께 미움받고 도태될 거였습니다.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전 양심이 없습니다. 정말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계속 더 달라고 손을 내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제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원망하고 소극적이 됐죠. 하나님, 저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니까 혐오스럽습니다. 이런 옳지 못한 추구 관점을 바로잡을 수 있게 절 도와주세요.’

그 후에 말씀을 봤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신이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거나 상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다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의 사탄 본성을 가장 잘 입증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말씀에 비춰 보니 전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상에 지배받아 전 뭘 하든 항상 이득을 챙겨야 한다고 여겼었고, 이득이 안 보이면 안 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사상이 제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려서 늘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겁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헌신하는 목적도 오직 하나였습니다. 바로 복이었죠. 하나님을 속인 이기적이고 간사한 인간이었습니다. 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얻으려 하면서 제 이익만 도모했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제 생각처럼 복을 안 주시니 괴로워하고 원망을 했던 겁니다. 이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지 전 구해 보지 않았고 신경도 안 썼죠. 그저 제 육의 이익만 생각했습니다. 그건 진리를 얻을 기회를 놓친 거잖아요? 하나님은 말세에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고, 또 많은 말씀을 하시고 많은 심혈을 쏟으셨습니다. 그 말씀과 진리로 우리를 사탄의 패괴에서 벗어나고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시죠. 근데 전 그 진리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늘 자기 육의 편리와 안일을 도모했습니다.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그 결말은 도태와 멸망밖에 없는 것이었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절 구해 주세요. 제 자신을 알고 실행할 길을 찾게 해 주세요.’ 전 매일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이 말씀을 봤습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난받는 것,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 또는 육체가 평안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우며 편안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져야 할 목적이 아니다. 네가 이렇게 믿고 있다면 너의 관점은 바르지 않은 것이며, 너는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함과 난측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또한 이런 인식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요구와 소망, 관념을 없애야 한다. 이런 것을 없애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갖출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만 생명을 가질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품으로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격 없는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행사와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옳은 관점이자 네가 추구하는 목표여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전 제 믿음이 순수하다고 확신했었는데, 근데 보니까 다 제 상상이었습니다. 제가 믿는 방식은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바울이 했던 이 말과 같았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바울이 열심히 수고한 건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한 거였는데, 제 목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복을 바란 거였죠.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는 의미와 가져야 할 올바른 추구의 길을 알게 됐죠. 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기를 원했습니다. 안 그럼 전 계속 타락하고 하나님과도 적이 될 거니까요. 그건 어느 자식의 부모 공경이 진심이 아니라 오직 부모한테서 뭘 받기 위해서라면 그 자식은 절대 좋게 보일 수 없고 부모의 마음만 아프게 하는 것처럼요.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러고 무슨 보상을 원하고 있었는지…. 전 이미 많은 은총과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많은 진리의 말씀과 보호를 입었고 제가 마시는 공기, 햇빛, 나아가 일용할 양식까지 전부 다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거잖아요. 제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건데, 그 크신 사랑에 어찌 보답하겠습니까? 사실 모든 걸 바쳐도 부족하잖아요. 근데 전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이유를 따졌으니 정말 인간성이 없고 제 주제를 몰랐습니다. 하나님 믿고 본분하는 건 제 의무이자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진리를 추구해 구원받을 기회를 주신 거잖아요. 이 본분이 없다면 전 진리를 얻기 힘들고 패괴 성품의 변화도 얻기 힘들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이제야 본분은 피조물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란 걸 깨달았습니다. 본분 이행이 하나님과의 거래가 돼서는 안 되는 거였죠. 그리고 또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몸이 아프든 사업이 잘 안 되든 원망하지 말고 받아들여야죠. 그게 피조물이 갖춰야 할 이성이자 태도인 겁니다.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수입이 줄면서 생활의 질이 좀 떨어졌지만 전처럼 그렇게 소비하지 않고 절약하면 되는 거고 죽는 것도 아니거든요. 몸이 아프고 생활이 어렵다고 본분을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거죠. 계속 형제자매와 연락하면서 도와주고 맡은 본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저의 이기적인 면을 보게 됐고 잘못된 기복 신앙의 관점에 대해 더 깨닫게 됐습니다. 이게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얻은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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