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실행 길이 생기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도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 말씀을 실천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예전에는 사람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는 교회에서 복음 사역을 담당하며 완다(王瑜) 자매와 함께 팀장을 하며 협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자매가 본분 이행에 적극적이고 사역 성과도 좋은 걸 보고, 자매를 부담도 있고 책임감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매는 본분에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사역 중에 문제가 생겨도 잘 발견하지 못했으니 해결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월말에 사역을 결산할 때도 예전 같으면 먼저 저를 찾아와 사역에서 생긴 문제와 오류를 정리하고 해결 방법도 같이 의논했을 텐데, 요즘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평소 팀 사역은 저희 둘이 주로 담당하면서 문제가 보이면 그 즉시 정리했었습니다. 그래야만 문제도 더 잘 해결되고, 사역 성과도 좋아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매는 이제 팀에서 생기는 문제를 아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러면 팀장의 의무와 책임도 다하지 않는 거잖아. 아무래도 자매를 찾아가 교제해 봐야지 안 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소 나랑 사이도 좋은데, 내가 자기한테 본분 이행에도 부담이 적고, 실제 사역도 하지 않는다고 직접적으로 지적하면 본인도 민망하지 않을까? 그러다 사이가 어색해지기라도 하면 앞으로 어떻게 지내지? 관두자, 괜히 일 만들지 말고. 미움받을 짓은 안 하는 게 상책이지.’ 그 며칠간 마음이 늘 불편했습니다. ‘요즘 완다 자매의 상태가 안 좋아진 건가? 계속 이런 식이면 본인 생명도 손해지만, 사역에도 영향을 미칠 거야. 내가 빨리 교제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사역에 부담을 갖지 않는다고 직접적으로 지적해 버리면 내가 자기 사역을 감독한다고 생각해서 내 눈치를 보지는 않을까? 그러지 말고 리더한테 직접 보고해서 자매를 도와 달라고 해야겠다. 그러면 내가 미움받지 않아도 되잖아.’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더한테 보고했다가 자매가 알기라도 하면 내가 뒤에서 고자질했다고 하지 않을까? 에이, 그냥 관두자.’ 속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르며 그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문득 제 상태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진리를 구해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루는 예배 시간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희가 문제를 발견하고도 막거나 교제하거나 제약을 두지 않는다면, 또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무골호인이 된다면, 이는 불충한 태도 아니겠느냐? 무골호인이 하나님께 충성심이 있겠느냐? 일말의 충성심도 없다. 그는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늘 사탄과 한패가 되고, 사탄의 시종, 추종자가 되어 자신의 본분과 책임에 조금도 충실하지 않다. 그러면서 사탄에게는 무척 충성스럽게 군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업무 측면의 부족한 점은 본분 이행 과정에서 부단히 공부하고 경험을 종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패괴 성품이다. 만약 너희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도 않은 채 늘 무골호인이 된다면, 누군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도 책망하거나 도와주지 않고, 드러내거나 폭로하지도 않으며 뒷걸음질 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런 본분 이행은 교회 사역에 악영향을 끼치고 지장을 줄 뿐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처신해야 한다. 이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사람됨의 원칙을 알지 못하면서 무슨 진리 실행을 운운하겠느냐? 진리 실행은 빈말을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 그것이 사람됨의 원칙이나 일을 바라보는 관점, 본분 이행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진리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와 원칙을 찾은 다음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길,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어떤 원칙을 지켜야겠느냐? 원래 네 관점은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는 것이 훌륭한 처세법이라는 것이다. 남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면서 타인의 체면을 해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 함께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런 관점에 얽매여 누가 나쁜 일을 하거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을 보아도 침묵을 지키고, 남에게 미움을 사느니 차라리 교회의 사역이 손해를 입는 편을 택하며, 누구와 지내든 두루두루 어울리고, 말할 때도 인지상정과 체면을 고려해 항상 듣기 좋은 말로 상대를 기분 좋게 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아도 참는 쪽을 택하고, 뒤에서 말할 뿐 그를 만났을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처신이 어떠하냐? 이는 무골호인이 아니냐? 너무 교활하지 않으냐? 이는 사람됨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다. 이런 식의 처신이 비천하지 않으냐? 이런 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며, 이런 처신은 귀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든, 사람답게 처신하는 측면에서 원칙이 없다면 너는 사람됨에 있어 실패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기억되지도, 열납되지도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지금까지 제가 그릇된 관점을 품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지낼 때는 당연히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하는 것은 미움을 사는 일이고, 상대의 체면이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쉽기 때문에 그러면 사람들과 잘 지내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고 나서야 이 관점이 진리에 전혀 맞지 않고, 사람됨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런 관점대로 사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교활하고, 간사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상대의 문제를 보고도 얘기하지 않고 아첨하는 말만 하면서 인간관계에 진심도 없고, 진실한 도움도 주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해친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비천하게 여기고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완다 자매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자매가 본분에 부담도 없고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진리를 실행해 문제점을 짚어 주지도 않았고, 문제를 보고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 문제를 폭로하는 것은 남에게 미움을 사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로 생각하면서 오로지 자매와의 관계를 지킬 생각만 했습니다. 사역에 영향이 가는 것을 보고도 육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생각이 없었으니 저는 정말 간사한 사람이자 무골호인이었습니다! 자매의 문제를 보고도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매와의 관계는 지켰을지 모르지만, 자매의 생명 진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교회 복음 사역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형제자매를 해하고, 교회 사역에 손해를 준 짓이었습니다.
이후에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지켜야 할 원칙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너희는 진리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 진입을 할 수 있다. 생명 진입이 있어야 다른 이들에게 공급하고 그들을 이끌 수 있다. 다른 이가 하는 일이 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가 진리를 향해 노력할 수 있게 사랑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반면, 누군가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한다면 그에게서 배우고 본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교회에는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모두가 진리에 집중하고 진리를 향해 노력하는 분위기 말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경험이 풍부한지 모자란지, 자질이 뛰어난지 부족한지, 이런 것들을 따지지 마라. 모든 사람은 진리 앞에 평등하다. 다만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누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가장 부담을 갖는지, 누가 비교적 분명하게 진리를 깨닫는지, 누가 정의감을 갖고 있고 누가 기꺼이 대가를 치르려 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마땅히 형제자매의 지지와 동조를 얻어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런 올바른 분위기가 교회에서 기류를 형성한다면 성령 역사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은 축복하며 인도할 것이다. 반면, 시비를 따지고 서로 겨루고 미워하며 질투하고 다투는 분위기가 교회에서 기류를 형성하면 너희에게는 분명 성령 역사가 없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교회는 진리가 다스리기 때문에 형제자매들과 어울려 지낼 때 반드시 진리 원칙에 따라야 하며, 형제자매들끼리 지낼 때는 진리를 최고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원칙을 어겨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적하고, 책망하고, 사랑으로 도와줘서 진리에 공을 들이게 해 줘야 하고, 말과 행동이 진리에 부합하고, 정의감이 있고, 교회 사역을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지지하고 옹호해 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의 요구에 닿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진리를 교제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선민이 본분을 이행할 때 나타나는 오류가 점점 줄어듭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환해지고, 실행의 길이 보였습니다. 사실 진심으로 하나님 믿는 형제자매들은 누구나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패괴 성품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고, 결점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건 형제자매들의 상호 지적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하는 것은 절대 그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타격을 주려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하루빨리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잘못된 상태를 바로잡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고,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이자 교회 사역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도 입을 꾹 다무는 것은 사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탄 철학을 신봉하는 것입니다. 그건 사람의 생명 진입에 대해서도, 교회 사역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행동이고,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한 행동입니다. 완다 자매와 지낼 때 본분에 문제가 있는 게 보였는데도, 저는 진정으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제 이미지만 신경 쓰느라 자매의 생명 진입은 물론이고 교회 사역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인간성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큰 죄책감을 느끼고,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자매를 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자매를 찾아가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교제하며 제가 발견한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 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자 자매는 크게 감동하더니 최근 자기 상태가 아주 안 좋았다면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드릴 말씀도 별로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놀랍기도 하고 자책감도 들었습니다. 제가 진작 지적하고 도와줬더라면 자매가 잘못된 상태를 좀 더 빨리 바로잡았을 거고, 그랬으면 본분에 지장이 갈 일도 없었을 겁니다. 자매와의 육적인 관계를 지키려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무골호인 노릇을 했으니 정말 사람을 해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사람들과 지낼 때 진리 실행에 힘써서 문제를 발견하면 그 즉시 지적하고 도와주고, 다시는 무골호인이 되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다짐했습니다.
그 후로 자매는 전에 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자매는 사역을 하면서 자주 원칙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매는 복음 대상이 인성도 안 좋고, 전도 조건에도 맞지 않는데도 전도를 하는 등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을 했습니다. 보고 있자니 좀 답답했습니다. ‘복음 전도를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니 각 방면의 원칙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어째서 아직도 이렇게 뻔한 실수를 하지? 내적 상태를 아직도 바로잡지 못한 건가? 내가 다시 얘기해 줘야 하나?’ 그러다가 다시 주저했습니다. ‘전에도 도와줬는데, 자꾸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그것도 민망한 일이잖아. 자꾸 지적하면 날 너무 교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맨날 다른 사람 문제만 지적하고, 남에게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고 말이야. 그러면 내 이미지만 안 좋아질 테니까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는 게 낫겠어.’ 결국 저는 완다 자매가 본분을 이행할 때 상태와 태도가 안 좋은 걸 알고도 모르는 체하며, 지적해서 도와주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자매는 오랜 기간 본분을 대충 이행해서 줄곧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는 크게 자책했습니다. ‘자매가 하는 본분에 문제가 있다는 걸 뻔히 알고도 나 몰라라 하며 못 본 체했어. 잘못을 일깨워서 도와주지도 않고 말이야. 지금 자매가 교체된 데는 내 책임도 있는 거 아닐까?’ 저는 왜 제가 늘 무골호인 노릇만 하려 하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건지, 이 문제의 근원이 도대체 뭔지 너무 후회되고 곤혹스러웠습니다.
반성하고 구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인간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견지하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을 것이며,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사람의 사탄 본성에는 수많은 사탄 철학과 사탄 독소가 들어 있다. 어떨 때는 스스로도 의식하거나 알지 못하지만, 너는 매분 매초 그것으로 살아가며, 그것이 옳고, 일리가 있고, 아무 문제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이는 사탄의 철학이 이미 사람의 본성이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말해 준다. 사람은 완전히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면서도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회개하려는 뜻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사탄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사탄 철학으로 살아간다. 사탄의 본성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자 사람의 본성 본질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폭로하신 내용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늘 무골호인이 되려 하는 이유는 제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된 나머지 마음속에 사탄의 철학과 법칙이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이런 말들이 이미 제 행동과 사람됨의 기준이 돼 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탄 철학에 지배되어 말과 행동이 남의 미움을 사면 안 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이좋게 지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는 것만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자매가 원칙을 어겨 본분을 대충 이행하고, 심지어 사역에도 영향을 준 것을 알고도 폭로하고 지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복음 사역에 피해가 가더라도 인간관계를 지키려 했습니다. 저는 사탄 철학에 단단히 묶여 진리를 실행하지 못했고, 양심과 이성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는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니 크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하나님은 사탄 철학을 따르는 제 비열한 속셈을 콕 집어 폭로하셨습니다. 전에는 자매가 제 눈치를 볼까 봐 자매를 지적하지 않는 것이라는 허울 좋은 소리를 했지만, 사실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였습니다. 자꾸 지적하다가 자매한테 미움받을까 봐, 자매가 저를 트집을 잘 잡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할 줄 모르는 교만한 사람이라고 할까 봐 겁이 났던 것입니다. 저는 자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자매의 문제를 보고도 못 본 체했고, 교제하지도, 폭로해서 도와주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형제자매의 문제를 보고 이를 지적하고 폭로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의감 있는 모습입니다. 또한, 사람의 생명에 책임감 있고, 교회 사역에 책임감 있는 모습이며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꼬투리를 잡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황당무계하게도 정상적으로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폭로하는 것을 교만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실행을 패괴 유로라고 생각했으니 저는 정말 시시비비도 가릴 줄 모르고 너무 황당합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사람들과 지낼 때 진심은 없고 오로지 거짓된 모습, 속임수만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교활하고 간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완다 자매와 협력해서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제가 실행해야 할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다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결과, 자매는 교체되었고, 그 일은 저에게도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탄 철학에 따라 살아가다 보면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해가 되고, 비열하고 구차해질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다시는 사탄 철학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구하며 저의 본분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단순하게 마음을 여는 사람, 숨기거나 가리지 않는 사람, 거짓말을 하거나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 사람, 직설적이거나 정의감 있는 사람,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먼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가장 혐오한다.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받고 싶다면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먼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 솔직한 말, 꾸밈없는 말을 하고 감정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며, 거짓과 기만을 벗어 버리고 원칙 있게 말하거나 행동해야 한다. 이렇게 살면 홀가분하고 즐거우며,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패괴된 성품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에서), 『나의 나라는 정직하고 거짓이 없으며 간사하지 않은 자를 원한다. 세상에서는 착실하고 충직한 자들이 푸대접을 받지 않더냐?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다르다. 정직한 자들은 내게로 오면 된다. 나는 그러한 사람을 기뻐하며 그러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공의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33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 덕분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고 올곧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말과 행동이 직접적이고, 간사하지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으며, 이 역시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의해 결정됩니다. 바깥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지낼 때 늘 가면을 씁니다. 남들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만 하고, 진심이 담긴 말은 하지 않습니다. 사악한 일, 양심과 도덕에 위배되는 일을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보전하는 쪽을 택합니다. 괜한 일 만들지 말자는 생각으로 진실한 말, 바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정말 가식적이고 간사하고, 인격도 기개도 없이 살아갑니다. 저도 그런 사탄 철학을 따라 형제자매들과 지냈습니다. 문제를 보고도 폭로해서 도와주지는 않고, 사람들과의 육적인 관계를 지켰습니다. 이렇게 사는 건 너무나 교활하고 간사한 거고, 하나님께서 증오하시고 역겨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문득,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신실한 본질이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셔서 사람들과 실제로 접촉하시면서 사람들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 혹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을 근거로 언제 어디서나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시는 말씀에서 우리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십니다. 비록 우리의 아픈 곳을 찌르는 엄한 말씀이지만, 모두 우리가 자신을 인식해서 회개하고 변화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정말 진실한 말씀만 하시고, 돌려서 말씀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그건 모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정말 진실하고 실질적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류가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된 본질과 본모습을 이렇게 명확하게 폭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천연적인 상상 속에서 살며 스스로가 꽤 괜찮은 줄 알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패괴 성품이 끝까지 달라지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판과 폭로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패괴된 본모습을 인식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요구에 따라 단순하고 올곧으며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한번은 리더인 벨린다(杨悦) 자매가 저희와 사역을 의논한 적이 있었습니다. 의논하면서 보니까 자매가 사역을 조금 잘못 안배한 것 같아서 그 점을 짚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벨린다 자매는 리더인데 본분을 이행하다가 생긴 빈틈이나 오류를 지적받으면 난감해 하지 않을까? 내가 자기를 못살게 군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나를 괴롭히면 어쩌지? 에이, 그냥 얘기하지 말아야겠다. 누구나 잘못할 때가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제가 또 무골호인이 되려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하나님께 진리 원칙대로 실행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너에게 무골호인의 속셈과 관점이 있다면, 너는 어떤 일에서도 진리를 실행하거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늘 실패하고 쓰러질 것이다. 깨닫지 못하고 시종일관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불신파이니, 영원히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한다. 네가 원칙을 지키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입장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무골호인의 관점을 저버리고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사탄을 이긴 것이며 이 부분의 진리를 얻은 것이다. 언제나 사탄의 철학으로 살기를 고집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며, 원칙을 지킬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일에서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여전히 믿음도, 힘도 없을 것이다. 언제나 진리를 구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다. 언제나 사탄의 철학으로 살면서 진리 실제가 전혀 없다면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 진리를 얻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로 살아가며 진리가 네 생존의 토대가 되면 너는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있게 되고, 구원받은 사람이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 저는 사람이 사탄 철학대로만 살면서 항상 무골호인이 되려 한다면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고, 결국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무골호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리며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육을 버리고 사적인 이익을 내려놓는 대신 교회 사역을 더욱 고려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하다 보면 점점 패괴 성품의 결박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본분에 충성심도 없으면 결국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진리를 실행할 용기와 힘이 생겼습니다. 더는 양심과 인성이 없는 무골호인으로 살 수 없어서 리더에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정말 홀가분했습니다. 그 후 열린 예배에서 벨린다는 이번에 지적받고 난 뒤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고 인식한 점과 그로 인해 얻은 수확을 교제했습니다. 자매의 체험을 통한 인식은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진리를 실행한 결과가 얼마나 달콤한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번 일을 겪고 난 뒤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 뒤로 비슷한 일을 만났을 때 또 무골호인의 관점이 가끔 드러나기도 했지만, 전처럼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거둔 결실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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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도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 말씀을 실천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예전에는 사람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2021년 9월, 저는 교회의 사역 하나를 담당하고 있었고, 당시 팀장은 자오팅 자매였습니다. 다같이 사역에 관해 토론할 때면 자오팅 자매는 늘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착상태에 머무는 바람에 사역...
코트디부아르 마리 호텐스(Marie Hortence)예전에 저는 본분 이행에 몹시 게을렀습니다. 건성으로 대할 때도 많았고요. 전도할 때도 사람들을 초대해서 설교만 듣게 하고 제가 대가를 치러 소통을 한다거나 설교가 어땠나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미국 리즈(Reese)2021년 초에 새로 생겨난 교회가 많아서 리더가 저와 파트너에게 각자 담당해야 할 교회를 새로 분담해 줬습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교회의 상황을 어느 정도 다 파악한 다음에 보니까 제가 맡은 교회들이 문제가 좀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