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함이 사람됨의 원칙인가

2025.4.18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입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무척 상냥하고 다가가기 쉬운 분이셨습니다. 늘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계셨고, 단 한 번도 우리에게 화를 내시거나 엄하게 꾸짖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우리와 함께 이야기도 나누시면서 선생님이라는 권위를 전혀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모두 담임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어 했고, 부모님들도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좋은 분이라며 칭찬하셨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을 존경하고 동경하며,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누구와 어울리든 거의 다투는 일이 없었고, 설령 남이 저에게 상처를 입혀 속이 상하고 상대가 미워도, 늘 참고 견디며 웃는 얼굴로 평화롭게 지내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모두 저와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친척들도 제가 착하고 철이 들었다며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에도 그렇게 형제자매들과 어울리며 특히 온화하게 말하고, 최대한 다른 사람의 체면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형제자매에게 문제가 보여도 대충 간단하게 언급만 했습니다. 그런 행동이 형제자매들의 좋은 평가도 받자,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옳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몇 가지 일들을 겪고, 하나님의 말씀의 폭로를 통해 비로소 원래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 사람됨의 원칙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어떻게 살아야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2022년 1월경, 저는 교회의 정리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리위안과 린시는 이제 막 정리 사역에 협력해 훈련을 시작해서 원칙을 잘 몰랐고, 그 기간 동안은 제가 그녀들의 사역을 좀 더 점검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그녀들이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모습, 몇 가지 눈에 띄는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느 날, 그녀들이 정리한 제명 자료를 살펴보았는데, 어떤 이들의 모습은 단지 대략적인 정리만 되어 있어 세부적인 내용은 부족했고, 어떤 이는 일부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사례를 좀 더 보충해야만 정리 대상이 되는지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엉뚱한 사람을 잘못 제명 또는 출교시킨다면,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녀들이 제명 자료를 이렇게 허술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점점 화가 났고, 파트너 류징 자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위안 자매와 린시 자매는 이제 막 이 사역에 협력해서 모르는 부분도 많은데 구하지도 않네요. 그녀들은 본분을 너무 대충 이행해요. 이번에 제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 문제를 지적해야겠어요.” 류징 자매도 제 말에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쓰려고 하니 망설여졌습니다. ‘며칠 전 만났을 때 그녀들의 내적 상태가 약간 소극적으로 보이던데, 만약 그녀들이 대충 하는 성질을 책망 훈계하고 해부하면, 그녀들이 소극적이 되어 책임을 내팽개치지 않을까? 혹시 내가 그녀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높은 요구를 하는 걸까? 아마 앞으로 나에 대한 인상도 나빠지겠지.’ 저는 저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그녀들이 이번에 보인 오류만 지적하고 그녀들의 패괴 성품에 대해서는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하며 자신의 단점과 부족한 점을 올바르게 대하고 소극적이거나 오해하며 살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류징 자매는 제 편지를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들이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성질에 대해 말하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완곡하게 표현하셨죠? 이렇게 말하면 그녀들이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류징 자매의 말을 듣자, 저 역시 이렇게 돌려 말해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나쁜 인상을 남길까 봐 그냥 둘러대며 얼버무리고 넘어갔습니다.

2월경, 저는 그녀들 팀에 가서 사역에 대해 상의했습니다. 모두와 거리감을 두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부드러운 태도로 그녀들을 대하고, 어휘 선택에 신중해야 해. 너무 권위적인 태도로 말하거나 딱딱한 말투를 써도 안 돼.’ 그녀들이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저도 따라 함께 웃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들이 저를 친해지기 쉽고 권위가 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서 모두와 잘 어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녀들이 최근 성장의 진전이 없고 내적 상태도 약간 침체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저는 저 역시 예전에 부족한 점이 많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차츰 원칙들을 파악하게 되었다는 말로 그녀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꽤 사이좋게 잘 지냈습니다. 한 자매는 이렇게 지내는 것이 참 좋고 부담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자신이 이렇게 실행하는 것이 옳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팀원인 천신이 저에게 그녀가 이 사역에 협력한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늘 문제가 나오고, 자신에게 아무런 성장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약간 소극적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천신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가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 하고 남들과 경쟁하려 하며 원칙 상에서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직접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면 그녀가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고, 저에게 선입견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까 봐 이렇게 격려하며 말했습니다. “협력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역 중에 문제나 오류가 생기는 것도 정상이에요. 훈련 과정이 필요하고, 자신을 올바르게 대해야 해요. 나타나는 문제나 오류를 많이 정리하고, 관련 원칙에 맞춰 공부하면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천신의 문제를 짚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지 못했고, 나중에도 여전히 종종 남들과 경쟁하려 하고, 이기지 못하면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린시는 본분을 대충 이행해서 생기는 문제가 계속 많았기 때문에 사역 진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린시가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문제가 심각해 훈계하고 폭로해야 했지만, 저에게 나쁜 인상을 가져 앞으로 저를 지지하거나 옹호해 주지 않을까 봐 단지 그녀의 문제를 간단히 언급만 하며 그녀가 성장하지 않은 데에는 본분 이행의 마음가짐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깨우쳐 주기만 했습니다. 제가 겉핥기 식으로만 언급했기 때문에 린시는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충 하는 문제가 계속 바로잡히지 못하면서 본분을 이행해도 여전히 종종 재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지만 고민하며 문제가 보여도 대충대충 말해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역을 지체시켰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한 예배에서, 저희는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부분에 대해 폭로하신 말씀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마침 제 내적 상태에 딱 맞는 한 구절을 읽게 되었고, 그제야 제 모습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교회 리더는 형제자매가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해야 하는데도 책망하지 않고, 분명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실 입는 것을 보아도 신경 쓰지도 묻지도 않으면서 조금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속셈과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기 위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고 나를 좋게, 높게 평가하고 내게 찬성하고 나를 좋아할 거야.’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얼마나 손해를 보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얼마나 피해를 입든, 교회 생활이 얼마나 큰 방해를 받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사탄 철학을 지키며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에는 어떠한 가책도 없다. 누군가 방해하고 교란하면, 기껏해야 말로 어물쩍 넘어갈 뿐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석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교제하는 법이 없다. 거짓 리더는 사람들이 항상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지 폭로하거나 해부하는 법이 없고, 어떤 실제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그릇된 행동 방식과 패괴 표출을 항상 눈감아 주며, 사람이 아무리 소극적이고 연약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고 격려의 말 몇 마디로 대충 넘어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뿐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민들이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해도 해결하지 못하며, 글귀와 도리,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생명 진입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리더는 하나님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더 잘 이해해 줘. 우리의 분량이 작아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해. 우리는 리더의 요구에 맞출 수 있기만 하면 돼. 우리가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야. 만약 어느 날 상부에서 우리의 리더를 교체하겠다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해. 리더가 교체되지 않도록 상부와 협상하고, 상부에서 우리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박해야지. 그러면 리더에게도 면목이 설 거야.’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생기고 리더와 이러한 관계가 형성된다. 마음에 리더에 대해 이러한 의지, 부러움, 숭배가 생기면 갈수록 리더를 믿게 되고, 리더의 말을 듣기 원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리더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만약 리더가 하나님의 선민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또한 그 관계를 즐기며 하나님 선민이 응당 자신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리더는 바울과 다를 바 없고,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은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분별력이 전혀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가 늘 사람의 육적인 것만 좇으며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대충 이행하여 교회 사역이 지체되는 것을 보고도 지적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무조건 용인하고 이해하는 것은 사람들 마음에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이고, 그 본질은 바로 사람을 농락하는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밝히신 내용이 바로 저의 행위와 모습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며 늘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와 지위를 지키려고 했고, 팀원들이 저에게 호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항상 친근한 모습을 보이려 했습니다. 심지어 말할 때도 말투와 태도에 특히 신경 쓰며, 혹시라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그들 마음에 나쁜 인상을 남길까 봐 조심했습니다. 천신의 성장이 느리고 내적 상태가 나쁜 것을 보고, 그녀가 늘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남들과 경쟁하려 하고 업무에 소홀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식으로 가다가는 그녀 자신의 생명 진입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역까지 지체시킬 수 있어 그녀에게 교제하고 지적해 줘야 했지만, 그녀의 미움을 살까 봐 덮어놓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권면하는 데 그쳤습니다. 천신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여전히 소극적인 내적 상태에서 살다가 생명 진입에도 손해를 보았고, 업무적인 성장에서도 느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린시가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마음속으로도 문제를 지적하고 문제의 성질에 대해 교제해야 그녀가 반성하고 인식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그녀의 문제를 직접 지적하면 그녀가 저를 안 좋게 볼까 봐 간단히 몇 마디만 했을 뿐이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제 이런 행동이 적그리스도처럼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팀원들이 저를 옹호하고 지지하게 하려고 저는 늘 그들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문제를 발견해도 지적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교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을 지체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역까지도 지체시켰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저는 팀원들과 마음을 활짝 열고 그동안 사람의 마음을 농락했던 저의 모습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한 팀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번 우리 사역에서 오류가 나왔을 때도 저희를 책망 훈계하지 않고, 오히려 저희에게 격려와 권면의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때 어떤 자매가 ‘봐봐, 책임자가 또 우리를 위로하잖아’라고 말했어요.” 그의 말을 듣자 저는 마음에 더욱 가책을 느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정리하는 문제는 진리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고, 조금의 소홀함이나 대충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면, 억울하거나 거짓되고 잘못 처리된 사건을 만들어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본분을 대충 이행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할 뻔했음을 분명히 보고도 미움을 살까 봐 지적하거나 도와주지 않고 교회 사역이 영향을 받는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약간 두렵고, 얼른 바로잡아 변화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는 가장 먼저 네 진심과 진솔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일하고 교류할 때 언제나 무성의한 말, 상투적인 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무책임한 말, 상상하는 말, 또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말만 한다면, 이는 진실한 것도, 성의도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지내든 이런 방식을 취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정직한 마음이 없다. 그러면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 어떤 사람이 네게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어쩌다가 소극적이 되었는지, 저 스스로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사실 네가 마음속으로는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괜찮아요. 그건 소극적인 것이 아니죠.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상대는 이 말을 듣고 무척 위안이 되었겠지만 네 태도는 진실한 것이 아니다. 너는 상대를 건성으로 대했고, 상대가 마음이 편하고 위로를 얻게 하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너는 진심으로 그를 돕지 않았고 그의 문제를 분명히 말해 주어 그가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으며, 정직한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너는 그저 그를 위로하고, 그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무성의하게 대했을 뿐이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정직한 사람은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는 자신이 보고 정확히 판단한 것을 그에게 말해야 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렇게 체험했습니다. 제 말이 맞는지 보십시오. 맞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맞는다면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제 말이 귀에 거슬려 상처가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제 목적은 당신을 돕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고 충격을 받은 거죠. 당신은 여태까지 이런 억울함을 당해 본 적이 없으니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극적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것 아닙니까?” 그는 듣고 네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네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저도 늘 소극적이 됩니다.”라고만 말할 것이다. 그럼 상대는 모두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소극적인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할 테고, 결국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태도와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돕는다면, 그가 진리를 깨닫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사람과 사귈 때는 정직한 마음으로 서로 대하고, 진심이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문제를 보면 솔직하게 말해 줘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생명 진입에 유익함이 있습니다. 저는 린시가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모습을 보고도 여전히 계속해서 마음에도 없는 위로와 권면의 말만 건네며 그녀의 환심을 샀습니다. 이는 그녀를 해치는 것이고, 교활한 술수를 쓰는 것입니다. 비록 직접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면 일시적으로 그녀의 체면이 상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자신을 반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됩니다. 또한 교회 사역도 함께 지키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저는 린시를 찾아가서 하나님께서 밝히신 ‘사람이 대충 하는 성질과 결과’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그녀와 교제했습니다. 린시는 자신의 태도가 심하게 불량하며, 본분에 마음을 쓰지 않고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던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 후 린시도 의식적으로 바로잡으면서 진입하려 했고, 본분 이행도 예전보다 진지하게 책임져서 어느 정도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서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늘 사람의 마음에 상냥하고 친절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하고, 항상 듣기 좋은 말로만 상대방에게 얼버무려 사람에게 전혀 유익함이 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가 좀 더 일찍 린시에게 지적해 주었다면 그녀는 더 빨리 바로잡을 수 있었고, 사역의 진전에도 유리했을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천신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질, 사역 능력이 부족하고 다른 팀원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제가 자기를 무시할 것이라 추측해 소극적인 상태에서 살며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 했습니다. 저는 천신을 찾아가 마음을 활짝 열고 교제했고, 그녀가 명예와 지위욕이 너무 강한 점을 짚고,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본분을 내려놓는 성질과 결과에 대해 교제해 주었습니다. 교제 후에 천신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했고, 내적 상태도 어느 정도 바로잡혔습니다. 저는 꽤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처신하고 행동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평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전통문화에 있는 “상냥하고 다가가기 쉬운 사람”과 같은 좋은 행위의 이면에 숨은 본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까이하기 쉬운 것, 상냥하고 친절한 것 등 좋은 행위의 이면에 숨겨진 본질은 바로 두 글자, ‘위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좋은 행위’들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며,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서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생겨났겠느냐? 사람의 속셈과 간계에서 나왔으며, 위장과 포장, 그리고 기만에서 비롯되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좋은 행위에 관한 모든 말들은 그저 사람의 외적 행위와 이미지에 대한 포장일 뿐이다. 듣기 좋은 말은 포장이고, 적절해 보이는 말은 사실 위장으로, 허상을 통해 사람의 호감과 좋은 평가, 존중을 얻어 내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마음속 어두운 면, 패괴 성품, 진면목을 모두 숨기고 포장하기 시작한다. 이 좋은 행위들의 후광 뒤에는 패괴된 인류의 패괴된 진상과 교만하고 간사하고 흉악한 성품, 그리고 진리를 혐오하는 사악한 인류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이 보이는 외적 행위가 교양 있고 사리 밝은 것이든, 온화하고 우아한 것이든, 아니면 상냥하고 친절한 것이든, 가까이하기 쉬운 것이든,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표면적 행위일 뿐이다. 사람은 좋은 행위를 통해 다른 이의 본성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비록 교양 있고 사리 밝은 것, 온화하고 우아한 것, 상냥하고 친절한 것, 가까이하기 쉬운 것 등의 좋은 외적 행위가 무척 좋게 느껴질지라도, 온 세상이 이것들에 호감을 가질지라도 사람의 패괴 성품이 이 좋은 행위의 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은 진리를 싫어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한다. 또 창조주가 한 말을 싫어하고 창조주를 대적하는 사람의 본성 본질은 실제로 존재한다. 여기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다. 사람이 아무리 잘 위장해도, 사람의 행위가 아무리 적절하고 괜찮아 보여도, 아무리 보기 좋고 아름답게 포장해도, 또 아무리 기만적인 면을 갖고 있어도 패괴된 인류는 모두 사탄의 성품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표면적인 행위 뒤에서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창조주를 거역하고 대적한다. 물론 인류는 이 좋은 행위들을 겉옷이나 은폐물로 삼는 동시에 매일 매시 매분 모든 일에서 패괴 성품을 드러내며 패괴 성품과 죄악 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사람에게 적절한 행위와 듣기 좋은 말, 꾸며 낸 겉모습이 있을지라도, 사람의 패괴 성품은 전혀 줄어들지 않으며, 외적 행위가 있다고 해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외적 행위에 가려진 채 패괴 성품이 계속 드러나며,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발걸음은 멈추는 법이 없다. 물론 흉악하고 사악한 성품에 지배되어 야심과 욕망, 사치스러운 요구 또한 끊임없이 확장되고 커진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예전에 저는 늘 상냥하고 다가가기 쉬운 사람이 정상 인성과 도덕에 부합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지지하며 긍정적인 것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담임 선생님께서 상냥하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늘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왔습니다. 그렇게 처신하고 행동해서 주위 사람들의 지지와 옹호를 받았을 때, 저는 더욱 사람을 대할 때는 상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제가 살아가는 준칙이며, 하나님께도 칭찬받고, 사람들도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원래 상냥하고 다가가기 쉬운 사람과 같은 좋은 행위의 이면에 있는 본질은 위장이며, 사실은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를 얻기 위한 속임수이자 기만적인 행위라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을 대할 때 상냥하고 다가가기 쉬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사상과 관점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과 다툰 적이 없었습니다. 설령 남들이 저에게 상처를 입혀도 속으로는 화내고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마주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위선적으로 살았던 이유는 남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 싶기 때문이었고, 자신은 위선자였고, 가식적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여전히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사귀고, 말하고 행동할 때 늘 남들의 체면을 신경 쓰고, 남들의 미움을 살까 봐 걱정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를 좋게 보지 않을까 봐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더라도 감히 진실을 말하거나 지적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이 팀 사역을 맡겼지만, 저는 진정한 역할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늘 사람들 마음속의 지위와 이미지를 지키려고, 교회 사역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제가 어떻게 좋은 사람입니까? 이제서야 자신이 겉으로는 상냥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이 있고, 이해심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는 자신의 간계가 숨겨져 있었고, 이런 수단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상냥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인간관계도 원만하며 사람들이 좋아하고 하나님께서도 칭찬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니, 상냥한 사람은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사람이고, 상냥함은 사람됨의 준칙은 아닙니다. 이런 전통문화와 사상에 따라 살면 점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교활하고 간사해질 뿐이고, 모든 행동이 진리에 어긋나며, 악을 행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 두 구절을 읽고 나서야 무엇이 좋은 인성인지 깨달았고, 사람됨의 준칙도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성이 좋다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 여기저기 비위를 맞추고 능란한 처세술을 보여 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 이런 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준이겠느냐? 하나님을 대할 때나 진리를 대할 때 순종할 수 있고, 본분이나 각종 사람과 일을 대할 때 모두 원칙이 있어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모두가 눈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확실히 알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이 가장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삼고 진리를 준칙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야 빛 속에서 살아갈 수 있고,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낼 수 있다. 빛 속에서 살려면 진리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정직한 말을 하고 정직한 일을 해야 한다. 처신함에 있어 진리 원칙을 갖는 것이 바로 근본이다. 사람이 진리 원칙을 잃어버리고 좋은 행위만 강조하면 거짓되고 위장하는 성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처신함에 있어 원칙을 잃는다면 행위가 아무리 훌륭해도 외식하는 것이 된다. 한순간 남을 미혹할 수 있어도 영원히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하고 처신해야 비로소 진정한 토대가 생긴다. 만약 처신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고 좋은 행위를 꾸미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그렇게 해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좋은 도리와 행위는 사람의 패괴 성품을 바꿔 놓을 수 없고, 사람의 본질 또한 바꿔 놓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만이 사람의 패괴 성품과 사상, 관점을 바꿔 놓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다. … 그럼 사람의 언행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이냐?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 진실한 말, 솔직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게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적어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기만하거나 미혹하거나 조롱하거나 놀리거나 비방하거나 비웃거나 속박하거나 남의 단점을 까발리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정상 인성의 모습이고 인성의 미덕이다. 하나님이 네게 어떤 어투로 말하라고 한 적이 있더냐? 표준어를 사용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더냐? 화려한 수식어와 고상하고 우아한 말을 쓰라고 요구한 적이 있더냐? (그러신 적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표면적이고 거짓되며 가식적이고 실속 없는 것들은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요구한 것은 전부 정상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들이며, 언어 행위의 기준이자 원칙이다. 어떤 곳에서 태어났든, 어떤 언어를 쓰든 어쨌든 네가 하는 말, 네 입에서 나온 단어와 내용은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도움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남들이 네 말을 듣고 진실하다고 느끼는 한편, 유익과 도움을 얻어 더는 어려움에 빠지거나 사람에게 미혹되지 않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실한 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되 남을 기만하거나 미혹하거나 조롱하거나 놀리거나 비방하거나 비웃지 말라고, 또 속박하거나 남의 단점을 까발리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말라고 요구했다. 이는 말을 할 때의 원칙 아니겠느냐? 여기에서 ‘단점을 들추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사람의 약점이나 잘못, 혹은 단점을 잡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점이다. 그럼 긍정적인 면에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어떤 것이겠느냐? 주로 격려하고 일깨우고 인도하고 권면하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말이다. 이 외에, 특수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책망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성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아니겠느냐?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성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을 깨달았습니다. 진정으로 좋은 인성은 중용의 도를 지켜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누구와도 잘 지내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과 사귈 때 상냥하고 다가가기 쉬운 사람도 아닙니다. 이는 단지 외적으로만 좋은 행위일 뿐,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께서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들과 사귈 때 원칙이 있고, 사람과 본분에 진심이 있어 책임질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만이 진정으로 인성이 좋은 사람입니다. 예전에 저는 늘 사람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하면 남들의 미움을 사고, 형제자매들도 저를 좋게 보지 않을까 봐 말할 때는 늘 어떻게 말해야 남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체면을 건드리지 않을까 고려했고,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온화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사귀면 남들의 미움을 사지 않고,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지키겠지만, 사람과 교회 사역에는 전혀 유익함이 없습니다. 사람을 도와줄 때는 최소한 그 사람에게 유익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문제를 보면 명확하게 지적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질책하는 말투를 상대방이 일시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그 사람이 스스로 반성하고 바로잡아 변화되게 재촉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역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는 데에는 한 가지 방식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위로와 권면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심판과 형벌을 내리시거나 책망 훈계도 하십니다. 그래야 사람을 더 잘 구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다른 사람이 패괴 성품에 살고 있는 것을 보고도 계속 위로하고 권면하기만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유익함이 없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는 것도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을 도울 때에도 원칙이 있어야 하며, 사람의 분량, 다양한 배경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형제자매가 막 훈련을 시작해 업무적으로 부족하다면 많이 도와주어야 하지만, 만약 패괴 성품에 따라 본분을 이행해서 이미 교회 사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지적하고 폭로하며, 책망 훈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도 유익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깨달은 저는 앞으로는 전통문화에 따라 사람과 사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또 다른 두 자매가 정리한 제명 자료를 검사하다가 사례가 충분히 상세하지 않고 보충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두 자매는 이 사역에 협력한지 오래된 편이라 검사를 조금만 열심히 했어도 이런 오류는 나올 리 없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그녀들의 본분 이행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늘 남들의 미움을 살까 봐 두렵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려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에게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역도 손해를 입습니다. 이번에 저는 교훈을 얻고 진리를 실행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의 본분을 대하는 태도와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성질과 결과에 대해 폭로했습니다. 그 후 한 자매가 답장을 보내와, 책망 훈계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그녀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책망의 말이 좀 심하다고 느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반성하니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책망 훈계를 겪으면서 어느 정도 수확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책망 훈계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돕고, 본분 이행을 더욱 열심히 하게 해서 사역하면서 나오는 오류와 문제도 줄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따라 살아가야 정상 인성으로 살 수 있고, 남과 자신 그리고 교회 사역 모두에 유익함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준칙임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하나님 말씀으로 깨어난 나의 영혼

미국 난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의 이 말세 사역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예전처럼 은혜와 축복만 주는 사역을 하지 않으며, 더 이상 사람을 달래면서 나아가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하나님 사역의 다양한 면을 체험하면서 무엇을...

더 이상 팔자 탓하지 않아요

중국 이신(伊心)저는 평범한 시골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죠. 우리 마을에 잘 사는 집이 있었는데, 집이 큰 데다 참 예뻤고, 그 집 애들은 늘 새 옷을 입고, 맛있는 걸 먹곤 했어요. 전 그때 그게 참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해야 효과가 있다

중국 수친(舒芹)저는 2021년 리더로 선출되었고, 그 후 사역상의 이유로 다른 교회에 가서 사역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사역 효과가 그리 좋지 않은 교회더라고요. ‘리더가 나를 이 교회로 보낸 건 그만큼 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야. 내가 교회...

전통 미덕이 사람됨의 원칙일까요?

프랑스 에드위지(Edwige)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아주 인상 깊은 글을 보았습니다. 공융양리(孔融讓梨)의 이야기였지요. 공융(孔融)은 형과 아우에게 가장 큰 배를 양보하고, 자신은 가장 작은 것을 가져가 부친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