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했던 일에 대한 반성
중국 쟝링저는 2019년에 한 교회의 리더를 맡아 윗선 리더 두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진리 교제로 문제를 해결할 때, 두 사람은 문제 핵심도 잘 파악하고, 얕은 데서부터 깊은 데까지 차근차근 교제하고 해부하는데, 듣고 있으면 정말 도움이...
저와 샹샹 자매는 알게 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대화가 꽤 잘 통하고 매번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어지곤 합니다. 우리는 자주 함께 서로의 체험과 수확을 나누며 교제했고 자매는 어떤 내적 상태에 처하든 직접 찾아와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기꺼이 자매에게 이야기했는데 자매는 언제나 인내심을 가지고 저와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이의 이런 친밀한 관계를 정말 소중히 여겼습니다. 곁에 서로 도우며 의지할 수 있는 자매가 있다는 것이 참 좋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우연히 샹샹 자매가 몇몇 자매들과 대화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최근 복음을 전하는 성과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며, 비록 많은 복음 대상들이 종교적 관념이 깊었지만 기도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준 결과 머지않아 그들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자매들은 부러움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둘러싸고 이것저것 물으며 좋은 실천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조금 의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성과가 좋은 건 좋은 일이지만 자매는 왜 복음 성과만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교제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기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고 이끌어 주셨는지는 왜 증거하지 않는 거지? 이렇게 말하는 게 자신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며칠이 지나고 한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샹샹 자매의 자질이 정말 좋더라고요. 복음을 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내다니요. 게다가 그녀 말로는 예배 때 리더가 그녀를 지목해서 체험을 교제하도록 했다고 하더라고요.” 자매의 말을 듣고 제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샹샹 자매는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이게 다른 사람에게 무슨 건설적이거나 유익한 점이 있을까?’ 최근 샹샹 자매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본분 성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꺼낸 것이 떠올랐고 저는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높이거나 드러내는 것은 사탄 성품이 드러난 것이라고 교제해주신 적이 있어. 그런데 지금 형제자매들이 그녀를 그렇게 우러러보니,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정말 위험할 수 있어. 안 되겠어. 기회를 봐서 그녀에게 지적해줘야겠어.’ 하지만 샹샹 자매의 문제를 대놓고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졌습니다. 몇 년 전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와 협력하는 왕팡 자매가 자주 글귀적인 도리만 말하며 높은 자리에서 사람을 훈계하고 자신을 해부하거나 인식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지적했더니 그녀는 받아들이기는커녕 제 과거의 실패와 과오를 들추며 저를 책망하고 그러고 나서는 더 이상 저를 상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 일로 저는 너무 난처하고 마음 아팠습니다. 또 한 번은 예배를 드릴 때 천위 자매의 교제가 주제에서 벗어나 제가 이를 듣고 지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천위 자매가 저와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제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쾌했고, 일부러 자신을 곤란하게 하려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이후 예배에서도 더 이상 교제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비록 자매가 추구하고 반성하여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로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할 때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떠오르니 더욱 망설여졌습니다. ‘나와 샹샹 자매는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내가 그녀의 문제를 대놓고 지적한다면 자매가 난처해하지 않을까? 그녀가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해 내게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면 내가 그녀의 약점을 드러내고 일부러 곤란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이후 나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우리는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지내야 하는데 그러면 얼마나 불편할까. 샹샹 자매가 늘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그녀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빌려 반성하고 깨달을 수도 있어. 됐어. 그냥 말하지 않는 게 낫겠어.’
어느 날 샹샹 자매가 저를 찾아와서 한 형제자매가 자신에게 조언을 해줬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예배에서 교제할 때 자신을 드러내곤 해서
사람들이 쉽게 그녀를 우러러보고 존경하게 된다는 내용이었고 그 말에 그녀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제 마음도 복잡해졌습니다. 사실 저도 최근 그녀가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봐 모른 척하고 넘어갔고 눈 감아주면서 그녀에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좋은 기회가 아닌가요? 제가 본 문제들까지 함께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하지만 그녀가 이미 충분히 괴로워 하는데 제가 또 지적하면 감당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본 문제를 그녀에게 말하면 그녀가 저를 가혹하다고 느끼고 이후 저와 소원해질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어떤 말투로,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완곡하게 들리고 자매가 덜 난처하게 느낄지 말입니다. 결국, 저는 제가 과거에 자신을 드러내며 높였던 모습들을 예로 들고 그 후 어떻게 반성하고 깨닫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녀가 체면이 깎일까 봐 몇 마디 위로도 덧붙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다 패괴 성품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모습이 드러나는 것도 정상이에요. 저도 그래요. 지금껏 하나님을 믿어오면서도 너무 교만하고 자주 저를 드러내요. 그러니 자매님도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신을 올바르게 대해야 해요.”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일어난 한 사건이 제 마음의 평정심을 깨뜨려 놓았습니다.
어느 예배 시간에샹샹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최근에 복음을 전한 체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주님을 수십 년 동안 믿어온 한 나이든 목사에게 전도한 일이었습니다. 그 목사는 관념이 너무 많았고, 수많은 루머를 믿고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여러 차례 전도를 했지만, 목사는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가서 몇 차례 교제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목사의 관념과 오류를 하나하나 반박했습니다. 결국 목사는 조금씩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샹샹 자매가 말을 마치자 사람들의 주의력은 모두 그녀가 복음을 전한 체험에 집중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교제하는 데는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이건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까? 샹샹 자매가 전도의 체험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녀가 말을 마친 후 모두가 그녀를 존경하고 우러러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저는 그녀에게 이 점을 지적하고 이야기를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막상 말을 하려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녀에게 그만두라고 하면 얼마나 난처하겠어? 게다가 그녀가 복음을 전하는 데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인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내가 질투해서 일부러 그녀와 불편하게 지내려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녀의 속셈은 선했을 수도 있고, 자신을 드려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평온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없었고, 교제할 때도 특별한 깨달음 없이 미미건조하게 몇 마디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는 끝나버렸습니다.
밤에 저는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는 예배 중 샹샹 자매가 했던 자신을 드러내는 말들과 그녀를 우러러보며 높이 평가하던 형제자매들의 표정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녀의 교제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게 도와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의 주의를 그녀가 복음을 전한 일에만 쏠리게 했습니다. 예배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저는 그녀의 체면이 상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교회 생활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누구한테나 잘 보이려는 ‘좋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옳은 사람인지 아닌지 잘 살펴보아라. 네 속마음과 목적이 모두 나를 위한 것이냐? 네 말과 행동이 모두 내 앞에서 행해지고 있느냐? 나는 네 마음과 생각을 모두 감찰하고 있다. 너는 마음에 가책이 없느냐? … 이번에 사탄이 형제자매들의 먹고 마시는 시간을 빼앗아 갔는데 다음번에는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보상할 수 있는 것이더냐? 이 시간을 네가 보상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자신을 많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몇 번의 예배에서 먹고 마시지 못한 까닭이 무엇인지, 누가 방해한 것인지 하나하나 교제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을 엄격하게 저지하지 않으면 형제자매들이 알지 못해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다. 정말이지 영적 눈이 열리지 않은 소경이 너무도 많구나! 분간할 수 있음에도 일어나서 지적하지 않고 어정쩡 넘어가는 자는 여전히 소경이며, 보고도 입을 열지 않는 자는 벙어리다. 불구자가 너무 많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3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저의 내적 상태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샹샹 자매가 예배에서 교제를 주제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형제자매들의 시간을 낭비했고, 예배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샹샹 자매의 교제 내용이 분명 주제를 벗어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교회 생활을 지키지 않고 침묵하며 ‘좋은 사람’이 되기를 택했을까? 한편으로는 샹샹 자매의 이러한 행동이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것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전도의 체험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체험을 교제하는 것이 형제자매들에게 어느 정도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교제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제가 상황을 정확히 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괜히 지적했다가 그녀가 속박받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제가 질투심에서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오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습니다.
다음 날 예배에서 저는 마음 속의 고민을 몇몇 자매들에게 꺼내서 구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패괴된 인간은 모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뽐내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사탄의 본성에 지배된 사람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이자, 패괴된 인류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사람은 보통 어떻게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느냐? 어떻게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느냐?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얼마나 많은 헌신을 했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했는지 증거한다. 자신의 밑천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높여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지위를 더 높게, 더 공고하게, 더 안정되게 만든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숭배하고 앙망하고 추종하게 한다. 사람은 이 목적을 위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일을 많이 저질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성적인 것이냐? 그것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선 일로, 염치없는 것이다. 즉, 염치도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증거하며 심지어는 자신에게 어떤 은사나 재능, 특별한 기능, 어떤 경험이나 좋은 처세술, 남을 우롱하는 수단 등이 있다고 자랑하기까지 한다.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수단은 자신을 뽐내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또한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들이 자신의 약점과 결점, 부족한 부분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자신의 빛나는 일면만 보게 한다. 심지어는 소극적이 되어도 남들에게 알리거나 마음을 열고 교제하지 못하며, 일을 잘못해도 애써 포장하고 숨긴다. 자신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교회 사역에 끼친 손실은 입에도 올리는 법이 없지만, 아주 작은 기여나 성과만 있어도 즉시 끄집어내 자랑한다. 자신이 얼마나 재능 있고 자질이 좋은지, 자신이 얼마나 남다르고 일반인보다 뛰어난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해 한스러워한다. 이것이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방식이 아니냐?』(<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한 가지 방면의 행동이 바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특기와 은사, 자신이 이룬 공로와 성과를 자랑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과 자질을 보여주고 그들로 부터 존경과 우러름을 받으려 한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본래 긍정적인 일이고 샹샹 자매는 복음 전도의 특기가 있습니다. 그녀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체험했는지 교제하고 이를 통해 어떤 깨달음과 인식을 얻었으며 어떤 실천의 길을 발견했는지를 정리하고 이런 것들을 교제한다면 사람들에게 유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샹샹 자매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고난을 겪었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만 이야기했으며 그녀의 체험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았고,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실천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녀를 우러러 보고 존경하며, 그녀가 복음 전도에서 체험과 은사의 자질이 풍부하고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더 추구한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은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고 부러워하며 자신들은 그에 못 미친다며 부끄러워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다릅니다. 교제를 통해 저는 이전의 생각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샹샹 자매가 했던 대부분의 말은 하나님을 증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려는 것이며 드러난 것은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혐오하고 증오하시는 행동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자매들은 또한 샹샹 자매의 이런 행동을 그녀 자신이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우리가 이를 보았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지적하고 도와줘야 하며 사람들 간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좋은 사람’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자매들의 말을 듣고 저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샹샹 자매와 하루빨리 교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도 제 마음은 계속해서 편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샹샹 자매의 문제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없어 그녀에게 지적하지 못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말했더라도 수박 겉핥기 식에 불과해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끝내 진정으로 반성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제 마음은 몹시 괴롭고 자책이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 샹샹 자매와는 늘 웃으며 대화하고 서로 못할 말이 없었는데 왜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하면 이렇게 어렵고,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을까?’ 진리를 구하며 반성하던 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모두 교육을 받았고 점잖고 차분한 말투를 중요하게 여기며 말하는 방식과 완곡한 말투를 중시한다. 또 그 누구의 존엄과 체면도 손상하지 않고, 말하거나 일할 때 남들에게 여지를 주고, 최대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하며, 남의 상처와 단점을 까발리지 않고 남을 괴롭거나 난처하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반인의 처세 원칙이다. 이런 처세 원칙은 어떠하냐? (그런 사람들은 무골호인으로, 간사하고 약삭빠릅니다.) 교활하고 약삭빠르고 간교하고 음흉하다. 사람의 웃는 얼굴 뒤에 악독하고 음흉하고 떳떳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중용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제일 음험하다.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세상 물정에 밝아 처세술이 능란하며, 임기응변에 능하고, 아무에게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사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패괴된 성품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에서),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인간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견지하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을 것이며,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 이 몇 가지 측면의 본질을 봤을 때, 사람의 덕행 중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요구를 고상하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이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상처 입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된다고 말이다. … 그것이 사람에게 남들과 함께할 때 지혜를 갖고 사람을 분별하라고, 올바른 방식과 방법으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남과 함께하라고 가르치겠느냐? 좋은 사람, 인성을 갖춘 사람을 만나면 진심으로 대하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되, 도와줄 수 없으면 포용을 보이며 올바로 대하라고, 상대의 결점을 참아 주고 너에 대한 상대의 오해와 판단을 참아 주며 상대의 장점과 뛰어난 점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치겠느냐? 그것이 이렇게 사람을 가르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 가르침으로 사람이 마지막에 얻게 되는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사람을 정직하게 바꿔 놓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간사하게 만드는 것이겠느냐? 사람이 간사하게 변한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벽이 높아지고, 사람과 사람 간에 거리가 멀어지며, 관계도 복잡해진다. 이는 사람의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것과 같다. 사람들 사이에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 사라지고, 상호 간에 경계심이 생겨난다. 이러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정상적이겠느냐? 사회 분위기가 좋을 리 있겠느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은 분명히 틀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가르치면 정상 인성을 살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광명정대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절대 긍정적인 성과를 얻을 수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사탄의 처세 철학으로 샹샹 자매과 어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 ‘친구가 많으면 길이 많고, 원수가 많으면 벽이 많다.’와 같은 말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저는 이런 처세 철학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원칙으로 삼아 왔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킬 수 있고 사람들에게 밑보이지 않으며 자신에게 불편할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이 밝히신 내용을 통해 이러한 철학은 모두 간사하고 교활하며 음험한 처세술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 경계하게 하고 거리감을 만들며, 진실하게 대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존재하지 않게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어울리면 사람들에게 밑보이거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진정한 친구를 얻지는 못합니다. 또한 점점 더 위선적이고 간사해집니다. 또한 저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그들을 진실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상대방에게 문제가 보이면 사랑으로 도와주고 최대한 도와야 합니다. 설령 상대방이 일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를 오해하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속셈을 바로잡아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샹샹 자매와 어울릴 때 저는 분명 여러 차례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형제자매들도 모두 그녀를 우러러보는 것을 보았지만 제가 지적하면 그녀의 체면이 깎여 저와 거리를 두게 될까 봐 두려워서 자매와의 사이좋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저는 그녀가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지적하거나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샹샹 자매는 끝까지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거나 깨닫지 못했고, 나중에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탄 철학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그녀와의 관계를 지키고자 그녀가 저를 이해심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보기를 원했고 그녀의 생명 진입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제가 본 문제를 자매에게 지적했더라면 그녀도 자신의 패괴 성품을 어느 정도 깨닫고 예배 중에 그런 비이성적인 말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좋은 사람 노릇을 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속인 것 아니겠습니까! 또 제가 예전에 한 자매와 어울리던 게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자주 본분을 대충 이행하고 형제자매가 그녀의 문제를 지적해도 여전히 이치를 따지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스스로 반성하도록 교제하고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매의 나이가 조금 많은데 대놓고 지적했다가 그녀의 체면을 해치고 나를 가혹하다고 할까봐 그녀의 문제에 대해 늘 보고도 못 본 체했으며, 겉으로는 웃으면서 대하고 정말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나중에 자매가 본분을 대충 이행했다는 이유로 교체되어서야 비로소 그녀를 진작 돕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저는 자매가 떠날 때 제가 보았던 문제를 교제했습니다. 그녀도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되었지만 일찍 바로잡았으면 조정되고 교체되지는 않았을 텐데,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며 저를 탓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처세 철학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것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해 조금의 진심과 사랑이 없고 정말 이기적이고 간사하며 삶을 온통 사탄의 성품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혐오하십니다. 샹샹 자매는 줄곧 진심으로 저를 대해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세 철학으로 그녀를 대했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어떻게 해야 미움받지 않을지,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지킬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패괴 성품을 드러낸 것을 보고서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좋은 친구인가요?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는 말은 실로 사탄의 헛소리입니다. 정말 남을 곤경에 빠뜨리는 말입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처세 철학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를 구하며 반성하던 중 샹샹 자매에게 문제점을 지적할 엄두를 못 냈던 다른 방면의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안에 잘못된 관점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늘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남의 결점을 들추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체면을 해치고 쉽게 미움받으며 고생만 하고 별 효과 없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샹샹 자매의 일에서 저는 늘 그녀의 문제를 지적했다가 그녀에게 미움받고 우리 관계를 깨뜨릴까 봐 겁이 났으며 결국 진리를 실천해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저를 이끌어 주셔서 이 방면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진리를 구하던 중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실한 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되 남을 기만하거나 미혹하거나 조롱하거나 놀리거나 비방하거나 비웃지 말라고, 또 속박하거나 남의 단점을 까발리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말라고 요구했다. 이는 말을 할 때의 원칙 아니겠느냐? 여기에서 ‘단점을 들추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사람의 약점이나 잘못, 혹은 단점을 잡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점이다. 그럼 긍정적인 면에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어떤 것이겠느냐? 주로 격려하고 일깨우고 인도하고 권면하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말이다. 이 외에, 특수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책망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성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아니겠느냐?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 … 요컨대, 말을 할 때의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마음속에 있는 것, 진실한 체험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에게 가장 이로운 말이고, 공급과 도움이 되는 말이며, 가장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이다. 거짓된 말, 상대에게 도움과 이로움이 되지 않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그랬다간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상대를 쓰러뜨려 소극적인 상태에 빠뜨릴 수 있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최대한 상대를 도와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도움과 공급을 주고,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생기게 하며, 그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네 체험과 문제 해결 방식, 방법을 통해 도움을 얻고 큰 수확을 거두게 해야 한다. 또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길을 깨달아 생명 진입과 생명 성장을 이루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원칙 있게 말해 상대에게 도움을 줄 때 얻을 수 있는 성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네가 어떤 형제자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가 너에게 그의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이는 네가 어떤 방식으로 이 일을 대하는지와 관계가 있다. … 그럼 진리 원칙을 따른다면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어떻게 해야 진리에 부합할 수 있겠느냐? 몇 가지 원칙이 있겠느냐? 첫째, 최소한 사람을 쓰러뜨려선 안 된다. 우선 그의 약점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그를 쓰러뜨리지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 이는 최소한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만약 그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데 그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손 놓고 있거나 웃음거리로 삼는다면, 이는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해하는 것으로, 그런 자는 양심도 이성도 없고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는 것이다.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형제자매를 웃음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 그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해야 한다. 회개할 수 있을지 여부는 그의 몫이다. 네가 책임을 다했다면, 설령 그가 지금 당장은 회개하지 않을지 몰라도 언젠가 깨달음을 얻게 되면 너를 원망하거나 고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형제자매를 대할 때는 최소한 양심과 이성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빚지지 말되,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형제자매에 대해 사랑과 진리 원칙으로 대해야 한다. 이런 자가 바로 가장 좋은 사람, 마음씨가 가장 선량한 사람이다. 물론, 진정한 형제자매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떡으로 배만 불리고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형제자매가 아니다. 진정한 형제자매를 대할 때는 진리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든, 어떤 길을 걷든 사랑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최소한 어떤 성과를 내야겠느냐? 첫째, 그를 쓰러뜨리거나 소극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둘째, 그를 도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킬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그가 진리를 깨닫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사랑으로 도와주어야 얻을 수 있는 성과이다. 만약 진실한 사랑이 없다면, 이 세 가지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며, 한두 가지 성과를 낼 수 있다 해도 다행이다. 이 세 가지 성과는 또한 사람을 도와주는 세 가지 원칙이기도 하다. 너는 이 세 가지 원칙을 모두 알고 파악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너는 정말 그의 어려움을 알고 있느냐? 이것 또한 문제 아니겠느냐? 너는 ‘그가 겪는 어려움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그를 도울 수 있을까? 내가 분량이 너무 작아 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함부로 말한다면 잘못된 길로 인도할지도 몰라. 또 그의 이해 능력은 어떨까? 자질은 어떨까? 그는 고집스러운 사람일까?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사람일까?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일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까? 만약 내가 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에게 교제해 줄 때 나를 질투하지 않을까? 소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등을 모두 생각해야 한다. 확실하게 생각해 본 후 그에게 가서 교제하며, 그의 문제점에 맞춰 하나님 말씀 몇 단락을 읽어 주어라. 그가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깨달아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되고, 그는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이 간단하겠느냐?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만약 진리를 깨달았다면, 단 몇 마디만으로 상대가 깨우침과 도움을 받게 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남의 결점을 들추어내는 것은 상대의 약점을 붙잡고서 단정하고 정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속셈은 그를 비웃고 놀리며 정죄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십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문제와 부족함을 보고 지적하는 사람의 속셈은 그 사람을 돕기 위함이며 이는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이는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며 형제자매의 생명을 책임지는 행동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지적과 도움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며 생명 진입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책망과 훈계, 남의 지적과 도움을 특히 거부하고 반감을 가집니다. 이는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을 드러냅니다. 저는 이전에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일이며, 애써봤자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정말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사람을 지적하고 돕는 데도 원칙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선한 마음이나 열정만으로 누구에게나 문제를 발견하면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원칙에 따라야 하며, 상대의 인성과 받아들이는 능력이 어떠한지, 올바른 사람인지,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 고려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어떻게 지적해야 상대가 무너지지 않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 않으면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관련된 진리를 묵상하며 지적과 도움을 통해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실천하고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그제야 저는 이전에 제가 사람을 지적하고 돕는 일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이유가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왕팡 자매가 글자적 이치만을 말하고 높은 위치에서 사람을 훈계하며,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바로 그 문제를 지적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를 만나면서 저도 그녀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진리에 대한 이해가 치우치고 지위심도 너무 강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녀를 지적한 것은 너무 어리석었고, 좋은 결과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계속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형제자매들의 지적과 도움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항상 리더 일꾼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고 논단했습니다. 결국 악인으로 규정돼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위 자매는 허영심과 체면을 특히 중시하고, 진리를 이해하고 진입하는 데 조금 느립니다. 게다가 훈계와 책망을 겪어본 적도 없는데, 저는 그녀의 분량을 고려하지 않고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할 때 주제에서 벗어났다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지적했고, 그 결과 그녀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동안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후 형제자매들이 돕고 붙들어 준 덕분에 겨우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면의 원칙을 깨닫고 저는 더 이상 샹샹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샹샹 자매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올바른 사람입니다. 저는 원칙에 따라 사랑으로 그녀를 돕고 그녀가 잘못된 길을 걷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어떻게 샹샹 자매와 교제해야 좋은 결과를 얻고 그녀가 속박 받지 않으면서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닫고 자신에 대해 진리의 인식이 생길지 말입니다.
그 이후의 기간에 저는 하나님께서 밝히신 사람이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것과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시며 묵상했습니다. 또한 시간을 내서 샹샹 자매에게 터놓고 교제하며 최근 제가 보았던 문제를 이야기 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성질과 결과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게서 이러한 행동을 대하시는 태도에 대해서도 교제했습니다. 교제를 마친 후, 샹샹 자매는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이 늘 지위심에 지배받고 있었다는 점을 반성했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차지하고 남들에게 우러름 받기를 좋아했다며 이런 식으로 추구하면 하나님께서 혐오하신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예배에서 최근 본인을 높이고 드러냈던 행동을 교제하고 해부했으며 사람들에게 분별력을 갖도록 했습니다. 샹샹 자매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할 줄 알며 자신을 미워하고 진정한 회개할 줄 아는 모습을 보며 제 마음은 기쁘면서도 동시에 자책감이 들었고 이제서야 그녀에게 교제하고 지적해 준 점이 후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문제를 지적하고 드러낸 저의 이번 행동으로 인해 제게 편견을 갖지도 않았고 우리 사이의 관계도 이에 따라 틀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렇게 행동해야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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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링민(靈敏)교장이신 저의 아버지는 학교나 집에서 유물론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시곤 했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행복은 자신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고, 오직 열심히 노력해야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고 가문을 빛낼 수 있다고 항상 저희들을 가르쳐...
영국 클라우드 전 2018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재림주를 맞이하게 되니 너무나 가슴이 뛰었죠.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낮에는 일을 하다 보니 저녁엔 많이 피곤해서 본분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전도만...
미국 크리스티나(Christina)2021년 5월 중순 즈음, 리더 젠(Jen)이 제게 라우라(Laura) 자매에 대한 평가서를 쓰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라우라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리더 일꾼을 멋대로 판단한다고, 옳은 사람은 못 된다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