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함을 추구하다가 자신을 망칠 뻔했다
한국 바이쉐(白雪)2019년, 교회에서 영상 제작하는 일과 교회 리더를 동시에 맡은 저는 본분을 꼭 제대로 이행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에 전념하면서 파트너 자매에게 교회 사역을 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평소 크고 작은 예배에 가급적...
전 배우 본분을 이행한 지 벌써 몇 년이 됐어요. 2022년 5월 즈음이었죠. 리더가 저한테 영상 검사를 겸해 감독 본분을 훈련하라고 했어요. 솔직히 압박감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노력하고 싶었고, 잘 협력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매일매일 정말 바쁘게 지냈는데, 그래서인지 굉장히 뿌듯했어요.
그러다 2022년 8월, 새 영화 촬영이 시작됐는데, 촬영 감독이 저랑 류윈(劉芸) 자매한테 주연 오디션을 보라고 했어요. 솔직히 좀 내키지 않았어요. 두 가지 본분만 해도 이미 정신없이 바빴거든요. 근데 제가 오디션에 합격해서 주연까지 맡게 되면, 세 가지 본분을 다 감당해야 하는데 그건 분명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류윈 자매가 주연으로 뽑혔고, 전 세 번째 인물 역할을 연기하게 되었어요. 주연으로 뽑히지 않았는데 실망감보다는 내심 기뻤어요. 왜냐면 그 세 번째 인물은 대사도 그렇게 많지 않고, 비중도 크지 않아서 그나마 좀 편할 것 같았거든요. 저는 그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촬영 감독이 류윈 자매 이미지가 조금 근심 있는 사람 같아 적극적이고 강인한 주인공의 성격이랑은 잘 맞지 않는다고 저한테 다시 한번 주연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제 첫 반응은 딱 이거였어요. ‘지금 이 세 가지 본분만 해도 충분히 바쁜데, 내가 주연으로 바뀌면 더 바빠질 거잖아? 게다가 이 영화 주인공은 우는 장면도 좀 있어서 연기 난이도도 꽤 높은 편이야. 연기를 잘하려면 분명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겠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 역할은 못 맡겠더라고요. 그래서 촬영 감독한테 찾아가서 이 주인공은 좀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편인데, 나는 어린 편이라서 그렇게 차분하지 못하니까 이 역할에는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류윈 자매는 이미 이 역할을 맡아 많이 노력했고 더구나 나이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저보다는 자매님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다만 어떤 부분은 표정 연기가 좀 부족한 게 있기는 하지만 좀 더 도와주면 분명히 좋아질 것 같으니까 난 굳이 다시 오디션을 볼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죠. 나중에 다들 상의 끝에 확실히 류윈 자매가 분위기상 주인공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좀 더 도와주기로 결론이 났어요.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저는 육체적으로 고생할까 봐 주연을 맡기 싫어하는 비열한 마음을 감추고 있었잖아요. 나중에 그로 인해 좀 가책이 느껴졌어요.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어땠는지 조금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진리를 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렸어요.
그 후로 매일 일정이 꽉 차 있었는데, 그게 좀 내키지 않았어요. 가끔 촬영 감독들이 밤늦게까지 모여서 영화 문제를 상의할 때면, 저는 마음이 내키지 않고 불만스러웠어요. 제 속에는 ‘빨리 끝내 줬으면 좋겠어! 당신들이야 상의하고 나면 쉴 수 있지만 난 영상 검사까지 해야 한단 말이야. 언제면 영상 검사할 게 좀 줄어들까?’ 하는 이런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 작업들을 빨리 끝내려고 가끔은 영상 검사를 할 때 빨리 감기로 돌려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면 검사를 빨리 마치고 조금이라도 일찍 잘 수 있었으니까요. 감독 본분은 촬영 구도나 연출 방식 같은 것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게 너무 머리 아프게 느껴져서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요. 주연 배우가 연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 다른 감독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자매가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게 열심히 도와 줬어요 근데 전 그저 게으름을 피울 생각만 할 뿐, 역할을 제대로 파고들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자매한테 그저 제가 그동안 쌓아 온 약간의 경험을 쬐끔 얘기해 준 게 다였고, 감독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죠. 그리고 제가 맡은 세 번째 인물에 대해서는 계속 바쁘다는 핑계로 역할 연구에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결과물이 형편없었죠.
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저한테 교제해 주셨어요. 제가 본분에서 대가는 치르려 하지 않고 육적인 안락함만 누리려는 게 보인다고, 이건 잔꾀를 부리고 요령을 피우는 거라고요. 전 자매님이 말한 게 확실히 제 문제라는 건 알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어요. 그저 ‘어차피 이렇게 많은 본분을 다 감당하기도 힘들고, 감독 본분에서도 내가 하는 역할이 별로 없으니까 언젠가는 교체되겠지. 교체되면 또 어때? 본분이 하나 줄면 몸고생도 덜하고, 좀 더 여유가 생길 수도 있을 거야. 그냥 한 가지 본분만 이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런 생각만 했어요. 제가 계속 돌이키지 않으니까 본분에 임하는 자세가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영화 촬영 과정에서 많은 문제에 부딪히자 진행 속도가 엄청 더뎌졌어요. 그런데도 저는 그저 맡은 본분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만 궁리하고, 그런 문제들에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했어요. 결국 제가 본분에 계속 부담을 느끼지 않으니까 리더도 더 이상 저한테 감독 훈련을 시키지 않고 맡은 역할에만 온전히 집중하라고 했죠. 본분은 줄었지만, 심적으로는 여전히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연기 면에서도 문제가 속출했죠. 결론적으로 그 영화는 촬영 문제에다 저희 몇몇 메인 배우들의 미숙한 연기 때문에 촬영에 실패하고 말았어요. 게다가 이런저런 특별한 이유 때문에 저도 더 이상 배우 본분을 할 수도 없었고, 영상 검사도 할 수 없게 됐죠. 결국 본분을 줄줄이 잃게 됐지만 무감각했던 제 마음은 조금도 깨어나지 않았죠. 저는 자성의 시간도 갖지 않았고, 오히려 본분을 잃은 게 다 객관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교회에서 저한테 복음 사역을 책임지라고 맡겼는데, 저는 그 본분을 정말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근데 얼마 못 가서 저는 그 못된 습관을 또 반복했죠.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겪는 어려움들, 복음 사역자들의 협력 문제, 복음 대상자의 문제 등을 마주하면서 전 정말 일이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다시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죠. 매번 사역을 시행할 때 저는 그저 지침을 전달하는 역할만 했고, 매일 리더가 시킨 일만 빨리 끝내고 일찍 쉴 생각만 했어요. 힘들 때는 ‘좀 더 편한 본분은 없을까? 이 복음 사역이 항상 이렇게 바쁘기만 한데 언제쯤 쉴 수 있을까? 언제쯤 이렇게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죠. 근데 제 그 ‘소원’이 놀랍게도 너무 빨리 이뤄졌어요.
2023년 6월 9일, 제가 있던 지역에 갑자기 특별한 일이 생기면서 교회와 연락이 안 됐고, 형제자매들이랑도 만날 수 없게 됐어요. 그렇게 제 본분은 강제로 정지됐어요. 너무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이라 한동안은 정신을 못 차렸어요. 갑자기 바빴던 일상이 한가해지니까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어요. 지금 복음 사역은 정말 바쁜 상황이고,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마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왜 나는 갑자기 본분이 정지됐을까? 그러다 문득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만약 네가 잔꾀를 부리며 불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그릇된 길로만 간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지 않아 너는 기회를 잃게 된다.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은 안 되겠다. 쓸 수가 없구나. 옆으로 비켜라! 너는 몸을 사리고 농간 부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게으름 피우고 편안함을 누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고 말하며, 그 은혜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남겨 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손해를 본 것이냐, 아니면 이익을 본 것이냐? (손해를 본 것입니다.) 손해가 너무나 막심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심판의 말씀이 저를 번뜩 깨어나게 만들었죠. 나는 계속 쉬고 싶어 했잖아? 항상 힘들고 고생스러운 게 싫어서 요령을 피우고 육의 안락함만 추구했잖아? 이제는 아예 쉬게 됐네. 아무런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됐어! 이런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머릿속에는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고 하신 이 말씀이 계속 맴돌았어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게 그냥 속이 텅 빈 느낌이었어요. 과거에 본분을 이행하던 제 모습을 돌아보면서 너무나 후회했어요. 그러면서 ‘왜 본분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까? 왜 건성으로 대충 넘어가려 했을까?’라며 매일 가책과 참소에 시달렸어요.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것은 본분을 이행할 때 절대 금물이다. 네가 대충 건성으로 임한다면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없다.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며,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현상을 발견하는 즉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얼렁뚱땅 넘어가면 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늘 건성으로 임하며 형식과 절차에만 치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본분 이행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 사람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기회는 잡지 못하면 사라지고 그 후에 다시 잡으려 해도 그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도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전에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지만 이제 다시 그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겠어.” 이런 의지가 있다는 것은 아주 좋다. 그러나 본분을 어떻게 제대로 이행할지 분명히 알고, 진리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진리를 명확히 깨달을수록 본분 이행 성과는 좋아진다. 네가 이 점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진리에 힘을 쏟을 수 있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지금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본분이 주어져 네가 힘을 들여야 할 때, 이는 네가 자신을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네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때이다. 어떤 것도 숨기거나 잔꾀를 쓰거나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여지를 남기거나 요령을 피운다면 절대 그 일을 잘 해낼 수 없다. ‘아무도 내가 요령 피운 걸 못 봤어. 정말 다행이야!’, 이것은 대체 어떤 생각이겠느냐? 너는 사람을 속이고는 하나님까지 속였다고 생각하느냐? 사실 하나님은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알고 있다. 사실, 너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누구든 네 패괴와 추악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단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이지, 속으로 몰래 너를 평가하기 마련이다. 많은 이가 드러나 도태된 이유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의 본질을 간파한 사람들이 그를 폭로하고 쫓아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말고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고, 양심에 따라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한다. 네게 비록 결점이 있더라도 본분 이행에 효과가 있다면 도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는 꽤 괜찮은 사람이니까 절대 도태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여전히 본인에 대한 반성도 인식도 하지 않고, 본연의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건성으로 대충 임한다면, 이를 보다 못한 하나님 선민들이 너를 폭로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도태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너를 꿰뚫어 보았고 네가 네 존엄성과 인격을 모조리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도 너를 신뢰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너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는 언제나 자신의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 정성으로 임하고 있는지, 건성으로 대충 넘어가려는 내적 상태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늘 건성으로 대충 임한다면 위험하다. 작게는 너라는 사람이 신용을 잃어서 다른 사람이 너를 믿지 않게 된다. 크게는 본분 이행에 늘 건성으로 임하고 하나님을 늘 기만한다면, 크게 위험할 것이다! 네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속임수를 쓴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느냐? 사람들은 누구나 네가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너는 순전히 패괴 성품으로 살아가고 매사에 건성으로 임하며 진리는 전혀 실행하지 않으니, 이것은 인성이 없는 것이다! 계속 그런 식으로 살면서 큰 잘못은 아니더라도 사소한 잘못이 계속되고, 그러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악인이요, 불신파에 해당되니 출교 조치를 해야 한다. 이는 무척 심각한 결과로, 바로 불신파, 악인이 완전히 드러나 도태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은 전에도 많이 읽었지만 그때처럼 가슴이 찔리고 괴로움을 느껴 본 적은 없었어요. 제가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하고, 교활하게 잔꾀를 부린 게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회개하지 않는다면 분명 도태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그동안 본분을 이행했던 모습들을 하나하나 돌아봤어요. 본분이 많아져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 때마다 저는 여유 시간이 없고, 제때 쉬지 못하는 거에 속으로 내키지 않아 불평을 했어요. 그리고 늘 언제면 쉴 수 있을까만 바랐죠. 영상 검사를 할 때는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대충대충 보기도 했고요. 그것 때문에 어떤 손실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가 요령을 피우고 건성으로 임했던 모습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어요. 저는 정말이지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교회에서 감독을 해 보라고 훈련 기회를 줬을 때도 저는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죠. 머리 쓰는 게 귀찮고 힘들어서 대본이나 촬영 구도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노력하려 하지 않았어요. 배우들이 역할을 잘 소화하도록 도울 때도 잔꾀를 썼는데, 그저 예전에 연기했던 경험을 토대로 배우들을 지도해 줬죠. 그러니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죠. 전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서 실질적인 일은 하지 않는 장식품이나 다를 게 없었어요. 배우 본분에 있어서도 저는 주연 역할이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이유로 오디션 기회를 거절했어요. 제가 뽑힐지 안 뽑힐지를 떠나서 하나님의 집 사역에 필요할 때 저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는커녕, 먼저 제 몸이 편할지 아닐지부터 따져 봤던 거예요. 제 육에 이로울 것이 없다고 판단되자 저는 오디션을 보고 싶지 않았고, 게다가 교활하게 핑계를 대며 회피하기까지 했어요. 전 정말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나중에 세 번째 인물 역할을 연기할 때도 저는 경솔하게 대했고,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아서 촬영 결과가 형편없었어요. 사실 그때, 제가 세 가지 본분을 맡고 있긴 했지만, 시간을 합리적으로 잘 배분하고 성실하게 임했다면, 어떤 본분도 제대로 못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본분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30분이나 1시간 정도 더 하면 되거든요. 근데 전 이 정도 대가조차 치르려 하지 않았고, 늘 힘들고 고생스러운 걸 꺼려했어요. 심지어 본분을 하나씩 잃어가는데도 회개하지 않았고, 복음 사역을 맡게 됐을 때에도 또다시 몹쓸 버릇이 도져버린 거예요. 육의 안락함을 위해 저는 어딜 가든 대충 얼버무릴 수 있으면 얼버무리고, 대충 넘길 수 있으면 넘기면서 요령을 피웠어요. 이미 제 인격과 존엄성을 완전히 내팽개쳐 버렸는데, 정말 믿음직스럽지도 못했고, 본분을 이행할 자격도 없는 사람인 거죠. 제가 이런 지경까지 왔으니 하나님은 절 미워하실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본분을 이행했던 제 모습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니 크게 자책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울면서 기도했죠. “하나님, 제가 본분을 합격 기준에 맞게 이행하지 못하고, 온통 건성으로 대충 넘기면서 육체의 안락함만 탐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 본분이 갑자기 강제로 중단된 건 바로 하나님의 형벌과 징계가 저에게 임한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 회개하겠습니다. 제가 자신을 반성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로는 의식적으로 이 부분에 관한 진리를 찾고 구했어요.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죠.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폐인’이다. 바로 2급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고, 자질이 좋아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질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편안함을 즐기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며 바로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힘쓰는 것조차 기준에 맞지 않으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시켜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처음부터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은 정예이지, 사람 수가 많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자 교회 인원수에 대한 요구와 원칙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예이다.”에서 ‘정예’란 하나님나라의 정예병을 가리키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이기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겠느냐? 둘 다 정확하지 않다. 정확히 말해 ‘정예’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 진정한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 집에서 네가 사람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며, 너를 사람으로 쓸 수 있고, 누군가가 너를 끌고 당기고 밀지 않아도 사람의 책임을 다하고 사람의 본분과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면, 네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며 공짜 밥을 먹는 사람도, 백수 건달도 아니라면,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면, 너는 비로소 기준에 맞는 인간이다! 본연의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백수 건달이 사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감당할 수 없습니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쓸모없는 자이다.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없는 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 하나님 집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없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리더 일꾼을 하든, 아니면 어떤 업무 기술과 관련된 사역을 하든 너는 자신의 본분에 속하는 사역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생활하고 생존하는 것 외에도 그저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부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피조물,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하나님 집에서 늘 밥을 빌어먹으려고 하고, 어물쩍 대충 넘어가려 하고, 끝까지 대충 버티다가 복을 받으려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역과 책임도 감당할 수 없으며, 사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람은 도태시켜야 하며, 아깝지도 않다. 도태된 자들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를 쓸모없는 놈이라 불러도 좋고, 백수 건달이라 불러도 좋으며, 놈팡이라 불러도 좋다. 어쨌든 그는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에게 어떤 일을 맡겨도 그는 혼자 완수하지 못하며, 어떤 임무를 줘도 자기 책임을 짊어지지 못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도 못한다. 이러면 끝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나님이 그를 살려 두는 것 자체로도 이미 은총을 베푼 것이며, 특별한 은혜인 셈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맞아요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처럼 게으름뱅이나 놈팡이 같은 자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제 할 일을 안 하는 거’였어요 그냥 한 마디로 ‘빈둥거리기’만 하는 거죠. 종일 먹고 놀고, 몸둥아리 편하게 지낼 생각만 할 뿐, 제대로 일을 할 생각을 안 하는데, 그런 자들이 본분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얼렁뚱땅 대충 하면서 쉴 수 있으면 쉬고, 미룰 수 있으면 미룬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어떤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어떤 일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그럴 생각도 없고, 그저 한가하고 편하게 지내다 복까지 받으려고 한다고 하셨어요. 이런 자에겐 ‘사람’이란 칭호가 아깝고 무용지물에 해당한다며 하나님도 이런 유형을 싫어하신다고 하셨어요. 저를 비춰 보니까 제가 딱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할 수 있는 일도 안 하고, 짊어져야 할 책임도 지기 싫어하고, 힘들거나 피곤할까 봐 겁내면서 그저 몸이 편한 것만 탐냈거든요. 매일 크게 바랐던 건 빨리 일을 마치고 일찍 쉬는 거였어요. 돼지처럼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실컷 먹고 자고 노는 삶을 원했던 거예요. 교회에서 영상 검토라는 정말 중요한 본분을 맡겨 주면서 최종 점검을 하라고 했는데, 저는 그저 일찍 자고 싶어서 영상을 빨리 감기로 후루룩 봐 버렸어요. 제 무책임함 때문에 기준에 미달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가면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잖아요. 그 결과는 제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영화 작업에서 감독은 리더잖아요.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감당할 수 있게 훈련 기회를 주신 건 정말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주신 건데, 저는 여전히 무책임했고, 요령만 피웠어요. 영화의 감독이자 배우로서 영화가 그렇게 오랫동안 지연되고 제대로 촬영되지 못한 것에는 저한테도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는 거죠. 그렇게 저도 본분에서 심각한 과오를 저지른 거예요. 하나님 집에서 절 배우로 육성시킨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정작 영화 작업이 배우 문제로 막히는 걸 보고도 저는 조급해하거나 애태우지 않았고 그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어요. 심지어는 내 몸 편하자고 주연 오디션까지 거절했어요.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조금도 지키지 않았잖아요. 이 얼마나 인성이 없는 모습이에요! 제 이런 행동들과 하나님 집의 사역에 끼친 손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정말 하나님의 이 말씀 그대로더라고요. “이런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나님이 그를 살려 두는 것 자체로도 이미 은총을 베푼 것이며, 특별한 은혜인 셈이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계속 준 건 본분 이행의 기회를 통해 진리를 얻고 많이 성장하라고 하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뭘 하든 건성으로 대충 넘기고 빈둥거릴 생각만 했어요. 전 정말 조각할 수 없는 썩은 나무 같은 존재였어요. 양심도 이성도 없고 맡겨 준 본분 하나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으니 무용지물이 따로 없는 거죠. 저 같은 사람이 살아서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죽어도 아깝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또 은혜를 베풀어 반성할 기회를 주셨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본분이 임할 때마다 전 힘들고 고된 걸 꺼려하면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헌신하지 못했어요. 그건 단순히 게으름 때문만이 아니라 제 안에 사탄의 독소가 자리잡고 저를 지배하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면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나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 그리고 “세상에 사는 동안 현재를 즐기고, 자신에게 잘하자.”, “몸 편한 것도 복이다.” 이런 사상 관점들에 근거해 살다 보니까 저는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 갔어요. 그래서 뭘 하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건 싫어했고, 육신의 편안함을 1순위에 뒀죠. 어릴 때도 보면 그랬어요. 중학교 때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고 방과 후에는 온갖 숙제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사는 게 너무 힘들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저렇게 고생해도 꼭 대학에 가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지금을 즐기면서 편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생각 때문에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그만뒀어요. 결혼 후에도 집안의 대소사를 신경 쓰기 싫어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다 알아서 처리했어요. 가족들이야 제가 여유롭게 산다고 복이 많다고 했고 저도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평생 아무 걱정 없이 힘들이지 않고 한가롭게 살면서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게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사는 거라 생각했죠. 보니까 사탄의 독소들이 이미 제 본성으로 자리잡혔고, 제 모든 행동의 기준이 돼 있었어요. 그런 것에 따라 사니까 점점 더 육신의 안락함을 탐하는 비천한 삶을 살았어요.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전 역시나 육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죠. 본분을 이행해도 내 육신의 편안함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만 조금 대가를 치렀어요. 일단 내 몸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육신이 편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았고, 본분은 건성으로 대충 때웠어요. 이 찬양 가사처럼 살았죠. “육을 위해선 목숨도 버리나, 진리 위해선 내놓는 것 없이…”(<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세상의 처량함 애석하도다> 중에서) 사실 건성으로 대충 해서 넘긴 후에는 속에 가책이 느껴졌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았어도 저는 그 고생을 감수하기 싫었고 그만한 대가를 치르기 싫었어요. 그렇게 대가를 치르면 제가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들었거든요. 그래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계속 편안함만 탐했던 거고요. 제가 감독과 배우로 본분하는 동안에 하나님 집의 사역에 그렇게 큰 손실을 끼쳤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마음이 괴롭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객관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죠.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좀 두렵더라고요. 사탄의 독소들이 정말 저를 이기적이고 더러운 사람으로 전락시킨 거잖아요. 겉보기엔 제가 몸이 편했지만, 결국은 제 인격과 존엄성을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게다가 지금은 본분을 이행할 기회조차 없어졌고, 전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남긴 아쉬움들은 하나님을 믿는 제 삶에 오점으로 남게 됐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셔서 인간 세상의 고통을 맛보시고, 또 여러 방면의 진리를 선포해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이끄시고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 걸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쏟으신 심혈은 정말 엄청나잖아요. 근데 전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조차 다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제게 어찌 양심과 이성이 있겠어요? 정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될 자격이 없었어요!
격리 기간 동안 저는 교회랑 연락할 수 없어서 유튜브로 형제자매들이 찍은 영상만 볼 수 있었어요. 하나님 집에서 만든 영화, 생명 체험 간증, 찬양, 춤 영상들이 점점 많아지고 매일 새로운 영상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형제자매들한테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가 함께한다는 걸 느꼈어요. 그제서야 그게 너무 부러웠고 형제자매들이랑 같이 본분을 이행했던 날들이 그리웠어요. 한때는 저도 그 일원이었지만 본분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계속 건성으로 대충 때우다가 결국 본분을 이행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된 거잖아요.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지난날에 남긴 과오와 후회들이 저를 아프게 하는 가시가 됐어요. 너무 괴로웠어요. 그제야 저는 진정한 행복은 육적인 안락함을 얼마나 많이 누렸는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선행을 예비했는지, 하나님께서 흡족해하시는 일을 얼마나 했는지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흡족해하실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어요. 그걸 생각할 때마다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왔어요. 그리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값진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이 찬송을 들었는데, 마음이 좀 환해졌어요.
1.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걸었던 길과 그동안 했던 사역, 치렀던 대가를 돌이켜 볼 때 마음에 아쉬움도, 참소도 없고,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으며, 가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낀다. 이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추구하여 얻게 되는 효과이자 수확이다.
……
3. 삶이 값지고 마지막에 이런 수확을 얻기 위해 네 육체가 피로하여 병에 걸리거나 몸이 병들더라도 약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다 가치가 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육적으로 즐기려는 것도 그저 놀고먹는 것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삶의 가치가 아니며 올바른 길도 아니다. 사람의 삶의 가치,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길, 올바른 일이라 한다.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든 다 가치 있는 것이다.
……
―<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이 찬송을 통해 사람 사는 게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는 건지 제대로 깨닫게 됐어요. 그때서야 비로소 육신이 편한 건 잠시뿐이고, 본분을 잘 이행해서 마음이 편안해야 그게 진짜 의미 있는 삶이라는 걸 알게 됐죠. 제가 패괴된 성품을 고치지 못하고 게으름 피우면서 육적인 안락함만 좇다가는 절대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실행의 길을 찾고 구했어요.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자기 몸을 사리고 하나님의 감찰을 피하려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 때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면서 그런 행동이 옳은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거지? 내가 이렇게 건성으로 하면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까지 속일 수는 없어. 게다가 내가 몸을 사리려고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니잖아.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거야.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정상 인성의 모습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태도도 아니야. 안 되겠어. 세상에 있을 때는 몸을 사리면서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그만이었지만, 지금 나는 하나님 집에 있잖아. 하나님의 주재와 감찰 아래 있다고. 나는 사람이니까 마땅히 양심적으로 일해야지, 내 마음대로 행동해선 안 돼.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몸을 사릴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사리거나 건성으로 임하는 게 아닐까? 더 노력해야겠다. 방금 나는 그렇게 하는 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해 고생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이젠 나도 알아. 그렇게 하면 귀찮기는 해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니 그렇게 해야만 해.’ 막상 행동에 옮기려고 하면 그래도 고생할 게 걱정될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게으르고 교활한 사람입니다. 저를 징계하고 질책하여 제 양심이 자각하게 해 주시고, 제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저는 대충 건성으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패역과 추태를 알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십시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면 후회의 마음이 생길 것이며, 자신의 추태를 증오할 수 있어 잘못된 내적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또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왜 나는 대충 건성으로 하는 걸까? 나는 왜 늘 몸을 사리려 드는 거지? 그건 양심도 이성도 없는 짓이야. 그러고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나는 왜 일할 때 참답게 대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에너지와 시간을 좀 더 들이는 것뿐이잖아? 그게 뭐라고? 그건 당연한 거잖아. 이런 것조차 해내지 못하면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래서 의지를 다지며 하나님께 맹세할 것이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깊이 패괴되어 양심도 이성도 인성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회개하고자 하니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반드시 잘못을 바로잡겠습니다. 만약 제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저를 징벌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마음가짐이 바로잡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본분을 이행하거나 일을 할 때 참답게 대할 수 있다. 대충 건성으로 하는 부분이 줄어들고, 고생하며 대가도 치를 수 있다. 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깃들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면 내적 상태가 바로 달라질 것이다. 네 마음속 소극적인 상태가 바로잡히고 자신의 속셈과 육의 사욕을 저버리게 되고 육의 안락함과 즐거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며 더 이상 제멋대로 하지 않게 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게 된다. 이렇게 육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쉽겠느냐?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되는데,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실행의 길을 찾게 됐어요.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본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더라고요. 그리고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하려고 할 때면 얼른 기도하면서 고난을 감내하는 마음을 달라고 구해야 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감찰도 받아들여야 해요. 이렇게 꾸준히 실행하면 건성으로 대충 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거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본분을 잃은 건 하나님께서 저의 문제를 반성하라는 뜻으로 주신 상황이란 걸 깨달았어요. 이게 저의 신앙생활에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으니까 저는 진리를 추구하고 육을 이겨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 사람답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바로 무릎 꿇고 기도했죠. “하나님, 이제 제가 실패한 근본 원인을 똑똑히 알게 됐습니다. 더 이상 사탄의 성품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더 나아지고 싶습니다. 앞으로 다시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본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24년 8월, 드디어 교회랑 연락이 닿았고 저는 다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됐어요. 정말 그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고, 기쁨과 감사함, 그리고 죄책감이 한데 뒤섞여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이게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라는 걸 알았으니까 본분을 이행할 때 절대로 다시는 예전처럼 육체의 안락함을 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항상 본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겠다고도 다짐했어요.
그 후에 교회에서는 다시 또 배우 역할을 맡겨 주면서 체험 간증 영상 촬영도 훈련하고, 다른 본분도 겸해서 하라고 했어요. 근데 이번에는 본분을 여러 개 겸하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시간이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협력했어요. 지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는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많이 성장한 걸 보게 되니까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돼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요즘은 체험 간증 영상 촬영 진도가 너무 빠른 거예요. 그러니까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저도 좀 못 따라가는 느낌도 들었어요. 제가 처음 촬영했던 체험 간증 영상은 준비 시간이 정말 짧았어요. 그러자 ‘난 아직 초보인데, 좀 봐주면 안 될까? 꼭 이렇게 서둘러야 하나? 준비할 시간 좀 넉넉하게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감독한테 제 생각을 말했는데, 감독은 괜찮다고,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협력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내가 또 내 몸이 편하게 본분을 이행하려고 한다는 걸 의식했어요. 전에 실패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더 이상 육체를 헤아리면 안 되겠다며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고 시간이 짧으면 짧은 대로 최선을 다해 협력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얼른 준비에 들어갔는데, 첫 번째 체험 간증 영상은 순조롭게 촬영을 마쳤어요. 나중에 좀 더 긴 체험 간증 영상을 촬영할 때는 가끔 부담감이 너무 커지고 시간이 촉박하면 힘들고 고생하는 걸 꺼리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얼른 그걸 인지하고 제가 더 이상 육체를 생각하지 않고, 연습에 매진하면서 최선을 다해 협력할 수 있게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어요. 지금 제가 촬영한 영상들이 다른 사람만큼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지는 않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나면 그래도 가책이 밀려 오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든든하고 평안해요.
이렇게 여러 가지 본분을 맡았지만 소중히 여기지 않아 잃어버렸다가 다시 복귀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고심을 진실로 체험하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모든 상황은 다 저의 패괴 성품을 벗겨 버리기 위함이고,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더라고요. 정말 저 자신을 알 수 있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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