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려 하지 않고 안주한 결과

2022.5.28

이탈리아 이천

2019년에 저는 장 자매랑 디자인팀 사역을 맡게 됐어요. 막 본분을 하게 돼 제가 원칙들을 잘 모르니까 장 자매가 차근차근 알려 줬고, 대부분 일도 알아서 처리해 줬어요. 보니까 장 자매는 이 일을 맡은 지 2년이나 돼서 나름 베테랑이었더라고요. 예배 때 교제를 하든, 사역 결산을 하든 늘 저보다 더 꼼꼼했어요. 누가 문제를 제안하든 늘 좋은 해결 방안을 생각해 내더라고요. 그러니 자매에 비해 제가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내가 장 자매처럼 되려면 얼마나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까! 나보다 경험도 많고 부담도 있으니 사역은 장 자매가 좀 더 맡게 하자.’

사역 결산 시간에 자매는 제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미리 생각해 보라 했어요. ‘그건 너무 귀찮은데… 본분 중에 생긴 문제들을 취합해야 하고 관련된 말씀과 원칙을 찾아 해결법도 찾아야 되고… 특히 난 업무와 관련된 문제에는 경험도 별로 없잖아. 해결법을 찾으려면 자료들을 많이 찾아봐야 하고, 그래도 모르면 더 알아봐야 하고. 시간과 공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은데… 장 자매가 잘 아니까 자매보고 정리하라고 하고 빠져야겠다.’ 그러고 나서 결산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장 자매가 제 생각을 물어보길래 그랬죠. “난 업무에 대해 잘 모르니 자매님이 맡아 주세요.” 가끔 장 자매가 형제자매들과 학습 계획을 짤 때 같이 하자고 했어요. 제안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오류를 줄인다고요. ‘근데 업무 학습은 장 자매가 계속 책임져 왔잖아. 난 잘 모르는데 하면 나름 고민도 해야 하고 모르는 건 공부도 해야 돼. 너무 피곤하겠어. 됐다, 참여하지 말자.’ 그래서 거절했어요.

그 후에 다들 같이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게 됐는데, 어렵고 문제도 많았지만 장 자매가 이끌며 해결해 나갔어요. 전 잘 모르는 기술이라서 몇 번을 들어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안 되겠어. 새 기술 익히는 데 신경도 많이 써야 하니 그냥 난 빠져야겠다. 장 자매가 있으니까 잘 이끌어 배우게 하겠지.’ 그 뒤로 저는 그 시간에 제대로 잘 안 들었어요. 수업 때 한 마디도 안 하거나 다른 일을 하곤 했어요. 장 자매가 제 생각이나 의견을 물을 때면 전 별 생각 없이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 갈수록 본분에 부담이 없어지는 게 느껴졌어요.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할수록 사역에서 문제도 찾지 못했어요. 그때는 매일 정말 공허한 기분이 들었고, 점점 소극적이 됐어요. 제 자질이 안 돼 본분을 못 하는 것 같았어요. 어떨 땐 장 자매가 부럽기도 했어요. 자매는 경험도 있고 자질도 좋아서 일을 정말 잘하는데, 전 자매와 달리 자질도 안 되고 경험도 없어 힘에 부치는 것 같았어요.

하루는 같이 사역에 대해 상의하는데 그러는 거예요. “자매님은 이 본분 한 지 꽤 됐는데도 늘 경험이 없다, 못한다고만 하네요. 혹시 부담 갖고 신경 쓰기 싫은 거 아니에요? 저도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건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하면서 열심히 원칙을 찾았기 때문이에요. 잘 모르는 업무는 찾아서 배우기도 하고요. 안 그럼 어떻게 본분을 잘하겠어요?” 그리고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하나님께 의지하고, 어떻게 해결법을 구하는지 알려 줬어요. 사실, 그때 전 제 문제를 의식도 못 했어요. 되려 제 어려움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자매의 지적을 귀담아듣지 않았고,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하지도 않았어요.

근데 얼마 후에 장 자매가 다른 업무를 맡게 된 거예요. 자매가 떠나고 마음이 힘들었어요. 산더미 같은 본분에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어요. 스스로에게 물었죠. ‘책임자 본분을 맡은 지도 1년이 지났는데 난 왜 이 사역을 잘하지 못할까?’ 그때서야 장 자매가 해준 지적이 떠올랐어요. 정말 전 본분에 부담이 없는 건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알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했어요. 그 후에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사역상 존재하는 문제들을 물어보면 너희는 많은 경우 대답하지 못한다. 많은 이가 참여하지만, 너희는 잘됐는지 아닌지 관심을 두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사실, 너희의 자질과 식견을 보면 아무것도 모를 정도는 아니다. 너희 모두 참여자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 대부분은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냐? 너희는 정말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고, 대체 그 일이 잘된 건지 아닌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너희가 그 일들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그저 하나의 임무로만 대하며 완수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너희가 그 일들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정말 관심을 두고 신경을 썼다면, 각각의 사안에 대해 관점과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관점과 생각이 없는 건 대부분 무관심, 냉담함, 무책임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이행하는 본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책임감을 갖지 않는 것이다. 대가를 치르기 싫어하고, 관심을 두려 하지 않으며, 애태우려고도 하지 않고, 더 많은 에너지를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보조 역할만 하려 하는데, 이건 이방인이 사장을 위해 일해 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고 열납하지 않으며 이를 혐오하기에 언젠가 도태될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말씀이 딱 제 상태더라고요. 장 자매랑 협력해 사역을 상의할 때 전 관점과 생각이 없었어요. 저는 그게 업무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씀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제가 부담이 없어 마음을 들이지 않았던 거였어요. 장 자매와 협력했던 때를 보면 업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요. 경험이 없고, 원칙을 모른다란 핑계를 가지고 일을 미루고 피했었죠. 상의할 때도 남의 말만 들으려고 하고, 생각을 안 했어요. 늘 자매한테 난 모른다, 못한다, 경험이 없다, 그런 식으로 말했었는데 사실 거짓말이고 핑계였어요. 제가 그랬던 건 그 자매가 더 맡아서 하게 하려고 저를 동정하게 한 거예요. 그럼 전 널널하게 할 수 있잖아요. 너무 교활하고 간사했어요! 전 책임자 본분을 맡은 지 1년이나 됐고 업무 기초도 익혔어요. 제가 부담 갖고 열심히 배웠다면 상의할 때 늘 그렇게 자기 의견이 없을 리 없고, 장 자매가 없다고 사역을 제대로 못 할 리도 없어요. 본분에 이렇게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대충 일하며 사는 사람과 같잖아요. 신경을 덜 쓸 수 있으면 덜 쓰고, 일을 덜 할 수 있으면 덜하면서 그냥 하루하루 넘어갔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생각하질 않았어요. 본분을 무성의하게 대하고 어떻게든 고생을 덜 할 궁리만 했지 하나님의 뜻은 헤아리지 않았어요. 제 마음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었어요. 이렇게 본분을 대하는데 하나님이 혐오하시지 않을 리 없죠.

그리고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바로 네가 자신의 본분, 마땅히 해야 하는 일조차 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네게 있던 것마저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빼앗아 간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느냐? 너의 자질, 은사로 해낼 수 있던 일도 해낼 수 없게 되고, 감을 잡을 수 없게 되며, 다시 이방인이었을 적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게 모든 걸 빼앗긴 것이다. 네가 본분에 신경 쓰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며 진심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네게 있던 것을 빼앗아 가고, 본분을 이행할 너의 권리를 박탈해 네게 그 권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은사와 자질을 주었지만 네가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지도, 대가를 치르지도,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를 축복하지 않을뿐더러 네게 있던 것마저 빼앗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사와 특기, 총명과 지혜를 주었다. 사람은 이것들을 어떻게 써야 하겠느냐? (이런 은사들을 써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너의 특기와 은사, 그리고 총명과 지혜를 모두 네 본분에 쏟아붓고, 마음을 다하며, 머리를 짜내 자기가 아는 것, 이해한 것, 할 수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본분에 활용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다는 건 무슨 의미냐? 사람은 어떤 것들을 느끼게 되느냐? (본분 이행에 길이 생기고 성령의 깨우침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깨우침, 하나님의 인도가 생긴다. 사람이 보기에 네 능력 범위 내에서 너의 자질과 네가 배운 것들로는 네가 하려는 일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고 깨우쳐 주면 너는 깨달을 수 있고 더 잘 해낼 수 있다. 너 자신도 이상할 것이다. ‘내겐 이런 능력이 없었는데, 지금 내 안에 훨씬 많은 것들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난 이것들을 배운 적이 없어. 어째서 갑자기 이해가 되고,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지?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똑똑해진 거지?’ 자기도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깨우침, 하나님의 축복으로,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축복한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자신이 맡은 사역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가지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것이다. 본분 이행이 재미없게만 느껴지고 별로 할 게 없다고 느껴져 힘을 들이지 않고, 늘상 깨우침을 얻지 못해 발휘할 만한 총명과 지혜가 없다고 느낀다면 이는 곤란하다. 본분 이행에서 네 속내가 바르지 않고, 늘 무성의하게 굴며 바른길을 걷지 않아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을 받지 못해 그런 지경에 처했음을 의미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달았어요. 하나님은 진심으로 헌신하는, 정직한 사람을 축복하세요. 본분에 마음을 들이고 잘하려 노력할수록 점점 더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죠. 본분의 성과도 갈수록 좋아지고요. 반대로, 노력도 안 하고 대가도 안 치르고 몸을 사리게 되면 본분에서 성장할 수 없고 수확도 없어요. 원래 할 수 있던 것조차 못하게 되고요. 그때 장 자매가 겪은 체험이 생각났어요. 자매도 처음엔 업무에 대해 잘 몰랐대요. 그래도 어려움이 생기면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고, 계속 생각하고, 형제자매와 교제했더니 어느새 성령의 깨우침을 얻게 돼 늘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본분에서도 성장하고 성과도 좋아졌댔어요. 근데 전 성장하지 않고 현상 유지만 하려고 했어요. 편한 걸 좋아해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죠. 결국엔 원래 할 수 있는 일조차 못하게 된 거예요.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는 말씀대로였어요. 하나님은 본분에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혐오하세요.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도태돼 본분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너무 무서워서 바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회개하고 싶고,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요.

그때 본 게… 이 말씀이에요. 『본분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이행하라고 맡긴 일이다. 하나님이 일을 맡길 때 사람의 본분이 생겨난다. 하나님이 네게 준 임무, 하나님이 네게 맡긴 일, 이것이 바로 너의 본분이다. 너는 이것을 목표로 추구해야 한다. 네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거부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일이 아니다. 마땅히 받아들여야지,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실행의 길이다. 실행의 길이란 무엇이냐? (매사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점은 어디에 있겠느냐? ‘매사’라는 말에 있다. 이 ‘매사’는 네가 좋아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고, 네가 잘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으며, 더욱이 네게 익숙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서투를 것이고, 때로는 배워야 할 것이며,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고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네게 맡긴 일이라면 너는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 자신의 본분으로 삼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행의 길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기쁨이 있다> 중에서) 또 있어요.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어 본분을 늘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는데, 이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건성으로 대충 임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건성으로 대충 임하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으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따라서 건성으로 대충 임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먼저 마음가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올바르게 대하고, 참답게 책임을 다해 일해야 하며, 기만하거나 대충 하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본분 이행은 어느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마음가짐이 단정해질 것이다. 또한, 일을 다한 후에도 검토하고 반성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불안해서 자세히 검토해 보니 정말 문제가 있다면, 이럴 때는 개선해야 한다. 개선되면 마음도 평온해진다. 마음이 불안하다는 것은 그 안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참답게 검토해야 하며, 중요한 부분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책임감 있게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이다. 사람이 참답고, 책임감 있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면, 사역을 잘할 수 있다. 때로 너의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눈에 띄는 잘못이 있는데도 찾지 못하고 발견하지도 못한다. 네 마음가짐이 바르면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로 그 문제들을 발견하게 한다. 성령이 너를 인도하고 의식하게 하여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주었는데도 네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고 건성으로 대강대강 한다면 그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너는 발견할 수 없다.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본분을 이행해야만 영적으로 예민해집니다.) 맞다. 사람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고, 사람의 마음도 매우 중요하며, 마음과 생각을 어느 측면에 쓰는지도 매우 중요하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이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큰 격려를 받았어요. 본분은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일이고 임무예요. 그게 잘 하는 일이든 못 하는 일이든, 간단한 일이든, 복잡한 일이든,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니 마땅히 책임감을 가지고 충성을 다해야 해요. 마음을 쏟고 책임을 다해야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받을 수 있죠. 전에 본분에 충성해서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했던 다짐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근데 막상 본분이 어렵고 복잡하니 대가를 치르고 고생해야 할 때가 되면 무책임하게 도망가고 싶었어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더라고요.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대하고 제 책임을 끝까지 다해야 하죠.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 후에 낯설기만 했던 사역에 대해 먼저 나서서 익히기 시작했어요. 복잡한 문제를 봐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형제자매와 상의하고 교제했어요. 모르겠는 건 형제자매한테 묻고요. 조금씩 세부적으로 파악해 가니까 형제자매들이 어려울 때 적절한 해결법을 알려 줄 수 있게 됐어요. 사역 결산 때, 별로 좋은 제안이 없으니까 또 빠지고 싶었는데, 전에 봤던 말씀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육을 저버리고 문제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면서 원칙을 알아보고 자료를 찾아봤어요. 그렇게 한동안 실행하니까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전에 잘 몰라 갈팡질팡했던 부분이 어느새 환히 보이고 사역 결산 때마다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됐죠. 형제자매들도 찾아낸 방법을 실행하면서 더 성장하게 됐고요.

그렇게 본분에 대한 제 태도가 좀 바뀐 줄 알았어요. 근데 하나님이 다시 상황을 마련하시니까 또 고질병이 나오더라고요.

21년 9월에 사역 때문에 전 리 자매와 같이 새 신자 양육을 맡게 됐어요. 전 그게 기술적인 게 아니라서 덜 신경 쓸 줄 알았었는데, 실제로 훈련을 해 보니까 새 신자 양육도 그렇게 쉽지 않더라고요. 외국어로 새 신자와 소통을 해야 하고 진리로 그때그때 새 신자의 관념과 어려움을 해결해 줘야 했어요. 보니까 리 자매가 이 일을 잘하더라고요. 새 신자한테 문제가 있으면 금방 진리를 찾아 해결해 줬어요. 근데 전 좀 떨어지더라고요. 진리를 잘 교제하지도 못하고,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했어요. 제가 리 자매 정도가 되려면 오랜 기간 익히고 배우고 공을 들여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러니 어차피 리 자매랑 같이 일하니까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리를 구하는 데 급해하지 않았죠. 예배 후에도 먼저 새 신자들의 문제나 어려움을 묻지 않았고요. 그러다 양육 본분을 맡은 지 두 달이 다 됐는데도 저는 혼자서 못 하는 거예요. 잘 모르는 것 투성이고, 그렇다고 열심히 배우지도 않았어요. 스스로에게 물어봤죠. ‘왜 난 잘 못하는 본분을 맡기만 하면 모르겠다, 못한다 핑계를 대면서 본분을 무성의하게 하고 대가를 들이지 않는 걸까?’ 전 제 이런 상태와 어려움을 하나님께 가져와 기도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묵상 때 이 말씀을 봤어요.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늘 수월하고, 힘들지 않고, 몸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본분만 고른다. 어떤 일이 위험하고 고되다 싶으면 거절하며 다른 사람을 추천하고, 자신은 수월한 일을 찾는다. 또한, 자신은 자질이 떨어지고 업무 능력이 없어 그런 일을 맡을 수 없고, 자신은 지혜롭지 않아 일이 생기면 처리할 수 없다며 핑계를 댄다. 이는 쉬운 일만 고르고 어려운 일은 피하는 것으로, 육적 안락함을 탐하는 모습이다. … 그리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어렵다고 우는소리를 하며 공을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시간이 생기면 바로 쉬거나 잡담하면서 사역만 했다 하면 어렵다며 우는소리를 하며 어려울 것 같으면 물러나고, 까다로울 것 같으면 몸을 움츠리고 도망치려 하면서 각종 핑계를 들어 거절한다. “저는 안 돼요. 저는 자질이 형편없어요! 모모 씨가 저보다 자질이 좋고 식견과 업무 능력도 있으니 그분은 이 사역을 맡을 수 있어요.” 그러고는 자신은 수월한 일을 찾아 한가롭게 즐긴다. … 이는 육적 안락함을 탐하는 사람 아니냐? 이런 모습들은 육적 안락함을 탐하는 것 아니냐? 이런 부류의 사람이 본분 이행에 적합하겠느냐? 본분 이행에 관한 얘기만 꺼내면, 고생스럽고 대가를 치르는 일 얘기만 꺼내면,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젓는다. 어려움이 너무 많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며 철저히 소극적으로 군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쓸모가 없다. 그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으니 도태돼야 마땅하다.(<거짓 리더를 분별하다(2)>)일부 거짓 리더들은 자질은 좀 있지만,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고 육적 안락함을 탐한다. 육적 안락함을 탐하는 자는 내가 보기에 돼지와 다를 바가 없다. 돼지는 매일같이 먹고 자는데도 너는 기꺼이 돼지에게 그 많은 사료를 먹인다. 나중에 고기를 먹기 위해서다. 거짓 리더를 돼지처럼 크고 통통하게 키운다 한들, 그는 폐물이라 아무 사역도 하지 않는데 키워서 뭐 하겠느냐? 교체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거짓 리더를 키우느니 돼지를 키우는 게 낫다고 하는 것이다. 돼지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삼시 세끼를 공짜로 먹지만, 연말이 돼 고기를 먹을 때가 되면 돼지도 나름 공헌을 하는구나 느낄 것이다. 일 년간 돼지를 먹이느라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은 가치 있는 것이었구나 느낄 것이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어떠냐? ‘리더’라는 칭호를 가지고 그 지위를 점한 채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하나님의 은혜도 적잖이 누린다. 그렇게 연말이 되면 잘 먹어 살이 뽀얗게 올랐을 텐데 사역은 어떻게 했느냐? 지난 일 년간 너의 사역 성과를 가져와 봐라. 지난 일 년간 어떤 사역에서 성과가 있었고, 어떤 실제적인 사역들을 했느냐? 하나님 집에서는 네게 모든 사역을 훌륭히 해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음 사역, 영상 사역, 문장 간증 사역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사역은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 이런 사역에서는 반드시 성과가 있어야 한다. 일 년이 지나고 난 후, 네가 책임졌던 범위 내에서 가장 성과가 있는 사역, 즉 일 년간 가장 많은 대가를 치르고 고생한 사역의 성과를 내놓아 봐라. 지난 일 년간 네가 누린 은혜만큼 그 성과가 가치 있었는지 보아라. 너도 보면 잘 알 것이다. 너는 하나님 집의 밥을 먹고 그렇게 오랜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으면서, 대체 무얼 한 것이냐? 성과를 좀 냈느냐? 성과가 전혀 없다면 빈둥대며 살았다는 말이고, 너는 명실상부한 거짓 리더이다.(<거짓 리더를 분별하다(4)>)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이 찔렸어요. 본분이 어려우면 나는 모른다, 못한다라는 말을 해서 늘 뒤로 물러나려 했던 건 너무 게으르고 육의 안락함을 탐하기 때문이란 걸 알았어요. 전에 장 자매와 책임자 본분을 같이 협력할 때 전 익숙하고 간단한 일들만 골라서 하려고 했어요. 제가 잘 못하고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일들은 장 자매한테 미뤘고요. 리 자매랑 같이 새 신자를 양육할 때도 신경 쓰고 싶지 않고, 고생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자신을 반성해 봤더니 사탄 철학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짧은 인생 즐겁게 살자.”, “자신한테 잘하자.” 이런 말들이 제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전 늘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고 몸과 마음이 고생 없이 편안한 게 자신을 위한 거라 생각했어요. 하나님 집에 와 본분할 때도 이런 관점은 변하지 않았어요. 본분이 어렵거나 제가 잘 못하는 일이라 대가를 들여야 할 일이 생기면 육의 안락함에 연연해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렸어요. 이렇게 사는 건 돼지가 사는 것과 다를 게 없죠. 아무 일도 안 하고 생각도 없이 그저 먹고 잘 줄만 아는 돼지처럼 저 역시도 육의 안락함만 탐했어요. 너무 비천하게 사는 거죠. 제가 책임자 본분을 맡다가 이렇게 양육 본분을 맡게 된 건 다 하나님의 높여 주심이에요. 근데 전 늘 현실에 안주하면서 책임과 본분은 안중에도 없었어요. 하나님 집 사역, 형제자매의 생명에 책임감이 없었죠. 너무 양심이 없었어요! 고생하며 대가를 들이기 싫어한 거면서 모른다, 못한다란 핑계를 대며 형제자매의 동정을 사려고 했어요. 제가 저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니까 이성적이고 정직한 사람이란 인상을 줄 수 있잖아요. 사실, 그런 말을 한 건 제 게으르고 무책임한 모습을 감추기 위한 거였어요. 교활하고 간사하게도 형제자매들을 속인 거예요. 사람은 잠시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다 감찰하시고, 공의로우세요.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속이는데, 어떻게 혐오하시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 본분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보지 못했어요. 늘 갈피를 못 잡고 성장하지 못했죠. 이건 위험한 신호였어요!

그 후에 또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분부한 이후, 노아는 결코 ‘하나님이 언제쯤 세상을 멸망시키시려나? 언제 이 세상을 멸한다는 신호를 내게 보내 주시려나?’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한 모든 사항을 성실히 마음에 새긴 채 하나씩 하나씩 실행해 갔다. 하나님의 분부를 받은 후부터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일을 그의 이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아 조금도 태만히 굴지 않고 실행해 갔다. 하루 또 하루가 갔고, 일 년 또 일 년이 흘렀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렀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엇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았지만, 노아는 시종일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중요한 임무를 지켜 나갔다. 하나님이 말씀한 모든 말씀은 석판 위에 글자를 새겨 놓은 듯 노아의 마음에 새겨졌다. 바깥세상의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해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그는 시종일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일을 지켜 나갔지, 단 한 번도 낙담하거나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마음에 새겨졌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이행되었다. 방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각종 재료가 하나씩 마련되었고, 방주는 노아의 꾸준한 작업 속에 하나님이 당부한 양식과 규격대로 조금씩 형태를 갖춰 갔다. 비바람이 불어도,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하고 헐뜯어도, 노아는 일 년 또 일 년 그렇게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였다. 하나님은 몰래 노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지만, 노아에게 또다시 어떤 말씀을 하지는 않았다.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지만 정작 노아 본인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고 각종 생물을 모았다. 노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히 지키고 실행해야 할 지고의 명령이자,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해야 할 목표와 방향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 무엇을 시키든, 어떤 분부를 내리든, 그는 잊지 않았고 마음에 새겼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서 이를 수행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분부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행했다. 그렇게, 방주는 한 조각, 한 조각씩 만들어졌다. 노아의 모든 행동, 노아의 매일매일은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 하나님의 분부를 위한 것이었다. 겉으로 볼 때 노아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큰일을 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노아의 일거수일투족, 나아가 그가 매 단계 해야 하는 일, 그리고 그의 손에 있는 모든 일은 다 귀하고, 기념할 가치가 있으며, 이 인류가 응당 본받아야 할 것이었다. 노아는 하나님이 맡긴 일을 굳게 지켰고,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은 진실이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방주는 지어졌고, 각종 생물 역시 방주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2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였는가(1)>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굉장히 감동됐어요.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그 뜻을 헤아렸죠. 방주를 만들라고 분부하시니까 노아는 그 분부를 귀하게 여기고 요구에 순종했어요. 노아가 첨부터 방주를 만들 줄 알았던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걸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매번 고생하고 대가를 들여야 했어요. 근데 노아는 하나님의 분부에 충성해 그 분부를 완수하기 위해 기꺼이 고생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갔어요. 120년을 지키면서 결국 사명을 완수하게 됐죠. 노아는 그렇게 평생을 고생스럽게 방주를 만드느라 육적 안락함을 누리진 못했지만 하나님의 분부를 완수해 그분께 칭찬을 받았어요. 노아는 그렇게 의미 있는 삶을 산 거죠. 노아에 비하면 전 너무 인성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분부를 귀히 여기지도 않고, 충심도 없고 게으르고, 간사했어요. 안락함만 탐했지 조금도 고생하기 싫어했어요. 하나님의 분부를 받들 자격이 없는 비천한 인간이죠. 근데 고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다간 결국 하나님이 주신 본분을 잃고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되겠죠.

그 후부터 전 매일 시간을 잘 안배해서 새 신자 양육과 관련된 여러 진리를 갖추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예배 때 누가 양육 사역 관련 문제를 제기했는데 잘 모르는 부분이 나오니까 알아서 상의하게 두고 또 피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나는 거예요. 그때, 제가 또 무책임하게 하려고 한다는 걸 알았어요. 분부를 책임감 있게 대했던 노아의 태도가 떠올라 의식적으로 제 잘못된 상태를 바로잡았죠. 다들 어떻게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진지하게 듣고 마지막 결산 시간에 저도 제 생각을 제안했어요. 근데 다들 제 제안이 좋다고 하는 거예요. 리 자매랑 같이 새 신자를 양육할 때도 적극적으로 새 신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훈련을 했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리 자매한테 물어봤어요. 얼마 후에는 혼자서 양육할 수 있게 됐고요.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제가 성장하고 수확이 있는 게 느껴져요. 마음도 더 편안하고요. 이런 수확을 얻을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역사로 이룬 결실이에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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