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에서 애쓰지 않은 결과

2022.5.28

이탈리아 린다(Linda)

전 2019년, 안드레아(Andrea) 자매와 함께 교회의 미술 디자인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막 본분을 맡아 원칙들을 잘 모르는 저를 위해 안드레아는 차근차근 교제해 주었고, 대부분 일도 알아서 처리해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안드레아는 이 사역을 맡은 지 2년이나 돼 업무 경험이 꽤 많았습니다. 예배 시간에 다른 이의 문제를 해결해 주든, 사역 결산을 하든, 늘 저보다 더 빈틈없이 고려했고, 형제자매들이 문제를 말하면 항상 좋은 해결 방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런 자매에 비해 저는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안드레아처럼 되려면 얼마나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까! 나보다 경험도 많고 책임감도 강한 안드레아가 있으니 사역은 안드레아가 더 많이 맡게 하자.’

사역 결산 시간을 앞두고 안드레아가 제게 어떻게 결산하고 교제해야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미리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너무 귀찮은 일인데. 본분 중에 생긴 문제들을 취합해야 하고 관련된 하나님 말씀과 원칙을 찾아 교제하며 해결해 주기도 해야 하고 말이야. 특히 난 업무 관련 문제에 대해선 경험이 별로 없잖아. 해결법을 찾으려면 자료들을 많이 찾아봐야 하고, 그래도 모르면 교제하며 구해야 해.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 것 같아! 안드레아가 업무에 대해 잘 아니까 결산하라고 하고 난 빠져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저는 더 이상 사역 결산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산 시간에 안드레아가 제 생각을 물어 오자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업무에 대해 잘 모르니 자매님이 결산해 주세요.” 그 밖에, 안드레아는 형제자매들과 학습 방향에 대해 계획하다가 제 참여 여부를 물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조언을 들을 수 있어 오류가 생기는 걸 피할 수 있다면서요. ‘업무 학습은 안드레아가 계속 책임져 왔잖아. 내가 참여하게 되면 나름 신경 써서 고민도 해야 하고 모르는 건 공부도 해야 돼. 너무 피곤하겠다! 됐다, 참여하지 말자.’ 전 이런 생각에 안드레아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은 다 같이 새로운 그래픽 기술을 배우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과 문제도 많았지만 안드레아는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 상의하며 해결해 나갔습니다. 생소한 기술이라서 전 몇 번을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건 너무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야. 그냥 난 빠져야겠다. 어쨌든 안드레아가 있잖아. 형제자매들이 잘 배우도록 그녀가 이끌어 주겠지.’ 그 뒤로 저는 학습 시간에 집중해서 수업을 듣지 않았습니다. 학습 시간 내내 한마디도 안 하거나 다른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장 자매가 제 생각이나 의견을 물을 때면 전 별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갈수록 본분에 대한 책임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고, 사역을 체크할 때도 문제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매일 속이 텅 빈 듯한 공허한 기분이 들었고, 내적 상태도 점점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제 자질이 너무 형편없어 그 본분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는, 저와 사역에 대해 상의를 하고 난 후 안드레아는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님은 이 본분을 맡은 지 꽤 됐는데도 늘 ‘경험이 없다, 모른다, 못한다’고만 하네요. 자매님은 지금 책임감이 없고 신경을 쓰기 싫어서 그러는 거예요. 제가 사역과 관련해 생각해 내는 아이디어들은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하면서 열심히 원칙을 찾은 덕에 얻은 것들이에요. 잘 모르는 업무는 더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공부하고요. 안 그러면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하나님께 의지하고, 어떻게 해결법을 구하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제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고 도리어 안드레아가 제 어려움을 몰라주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자매의 지적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안드레아는 다른 사역을 맡아 떠나게 되어 전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산더미 같은 본분을 마주하자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임자를 맡은 지도 1년이 지났는데 난 왜 이 사역들을 해내지 못하는 걸까?’ 그때, 안드레아가 지적해 준 말이 떠올라 ‘정말 내가 본분에 책임감이 없는 걸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사역상 존재하는 문제들을 물어보면 너희는 많은 경우 대답하지 못한다. 일부 사람들은 참여하지만,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두거나 신경을 쓴 적도 없다. 사실, 너희의 자질과 식견을 보면 아무것도 모를 정도는 아니다. 너희 모두가 참여자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 대부분은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냐? 너희는 정말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고, 대체 그 일이 잘된 건지 아닌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너희가 그 일들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그저 임무로만 대하며 완수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너희가 무책임하고 그 일들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정말 관심을 두고 신경을 썼다면, 각각의 사안에 대해 관점과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관점과 생각이 없는 건 대부분 무관심, 냉담함, 무책임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이행하는 본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책임감을 갖지 않는 것이다. 대가를 치르기 싫어하고, 관심을 두려 하지 않으며, 애태우려고도 하지 않고, 더 많은 에너지를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보조 역할만 하려 하는데, 이건 이방인이 사장을 위해 일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고 열납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딱 제 내적 상태를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안드레아와 협력하고 사역에 대해 상의하는 과정에서 전 늘 관점과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가 잘 모르고 생소한 업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다 보고 그제야 제가 책임감과 성의가 없어 그랬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안드레아와 협력했던 때를 돌이켜 보면, 업무에 문제가 생기면 전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본분 관련 경험이 없다, 원칙을 모른다’란 핑계로 일을 미루고 피했습니다. 사역에 대해 상의할 때도 남의 말만 들으려 하고 신경 써서 고민해 보지 않았습니다. 늘 안드레아한테 ‘난 모른다, 못한다, 자매님만큼 사역 경험이 없다’고 말했는데 사실 이건 다 핑계였습니다. 제 진짜 목적은 안드레아의 동정과 이해를 얻어 그녀가 더 많은 사역을 책임지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전 계속 한가롭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전 참으로 교활하고 간사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전 책임자를 맡은 지 1년이 넘었고 업무 기초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배웠다면 사역에 대해 상의할 때 늘 그렇게 자기 의견이 없을 리 없었고, 안드레아가 다른 곳으로 갔다고 사역을 제대로 못 해낼 리도 없었습니다. 본분을 대하는 제 무책임한 태도는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의 태도와 똑같았습니다. 신경을 덜 쓸 수 있으면 덜 쓰고, 일을 덜 할 수 있으면 덜하면서 그냥 하루하루 대충 일했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마음과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무성의하게 대하며 어떻게든 육적인 고생을 덜 할 궁리만 했지 하나님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 마음에 어디 하나님의 지위가 있습니까? 이렇게 본분을 대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혐오를 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어서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바로 네가 자신의 본분, 마땅히 해야 하는 일조차 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네게 있던 것마저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빼앗아 간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느냐? 너의 자질, 은사로 해낼 수 있던 일도 해낼 수 없게 되고, 감을 잡을 수 없게 되며, 이방인처럼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에게 모든 걸 빼앗긴 것이다. 네가 본분 이행에 신경 쓰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며 진심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네게 있던 것을 빼앗아 가고, 본분을 이행할 권리를 박탈해 네게 그 권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은사와 자질을 주었지만 네가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지도, 대가를 치르지도, 마음을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를 축복하지 않을뿐더러 네게 있던 것마저 빼앗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사와 특기, 총명과 지혜를 주었다. 사람은 이것들을 어떻게 써야 하겠느냐? 너의 특기와 은사, 그리고 총명과 지혜를 모두 네 본분에 쏟아붓고, 마음을 다하며, 자기가 아는 것, 이해한 것,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본분 이행에 활용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다는 건 무슨 의미냐? 사람은 어떤 것들을 느끼게 되느냐?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가 있고 본분 이행에 길이 생긴다. 사람이 보기에 너의 자질과 네가 배운 것들로는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고 깨우쳐 주면 너는 깨달을 수 있고 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잘 해낼 수도 있다. 나중에 너 자신도 궁금해할 것이다. ‘내겐 이런 능력이 없었는데, 지금 내 안에 좋은 것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 다 긍정적인 거야. 전에 이런 걸 배운 적도 없는데 이젠 갑자기 이해가 된단 말이야.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똑똑해진 거지? 어째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줄 알게 된 거지?’ 자기도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깨우침,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축복한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자신이 맡은 사역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가지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에 마음을 쓰며 잘하려 노력할수록 점점 더 성령의 깨우침을 얻게 되고 본분의 성과도 갈수록 좋아지게 됩니다. 반대로, 본분에서 늘 몸을 사리고 신경을 쓰지 않으며 대가도 치르지 않으면 본분에 있어 성장할 수 없고 수확도 거둘 수 없습니다. 원래 할 수 있던 일조차 못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때 안드레아가 얘기해 줬던 그녀의 체험이 생각났습니다. 그녀도 처음엔 알지 못하는 사역들이 많았지만 어려움이 생기면 늘 하나님께 가져가 기도하며 구하고, 신경 쓰며 고민하고, 형제자매와 정리하며 교제했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성령의 깨우침을 얻게 돼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본분에서도 갈수록 성장할 수 있었으며, 성과도 나날이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반면 전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성장하려 하지 않고 현상 유지만 하려고 했습니다. 몸이 편한 걸 좋아해 대가를 치르며 고생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원래 할 수 있던 일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였습니다. 하나님은 저처럼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본분을 대하는 것을 혐오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아 본분 이행의 기회마저 잃게 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두려워진 전 황급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면서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 후,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행하라고 맡긴 일이다. 사람의 본분은 바로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일, 그것이 바로 너의 본분이다. 네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맡긴 일임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한 것임을 확실히 깨닫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모든 난관을 극복할 것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맡긴 일을 절대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본분도 거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어떤 본분을 맡기든, 어떤 어려움이 있든 거부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실행의 길이다. 다시 말해, 매사에서 진리를 실행하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점은 어디에 있겠느냐? ‘매사’라는 말에 있다. 이 ‘매사’는 네가 좋아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고, 네가 잘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으며, 더욱이 네게 익숙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서투를 것이고, 때로는 배워야 할 것이며,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고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네게 맡긴 일이라면 너는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행의 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본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입니다. 제가 잘하는 일이든 못하는 일이든, 간단한 일이든 복잡한 일이든,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니 마땅히 책임감을 가지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책임을 다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인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본분에 충성을 다해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겠다던 예전의 다짐들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본분이 조금만 어렵거나 복잡해 대가를 치르고 고생해야 할 때가 되면 전 대충하고 도망치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하나님께 참 죄송했고, 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대하며 제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전 예전에는 생소하게 느껴졌던 사역을 자발적으로 파악하고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만나도 더 이상 피하려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형제자매들과 상의하고 교제했으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형제자매의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점차 세부 사항을 파악하게 되었고, 어려움을 만난 형제자매들에게 적절한 해결법을 알려 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사역 결산 시간이 되었을 때, 처음엔 별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물러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에 봤던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의식적으로 육을 저버리고 본분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며 공들여 원칙을 구하고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실행하니 하나님의 인도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잘 몰라 갈팡질팡했던 부분이 어느새 환히 보였고, 사역 결산 시간마다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도 정리해 낸 방법에 따라 실행하면서 더 성장하게 되었고요.

전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가 그렇게 바뀐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른 상황을 마련하시자 옛 병이 또다시 도지고 말았습니다.

2021년 9월, 사역의 필요로 전 로지(Rosie) 자매와 협력해 새 신자 양육 본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기술적 문제와 상관없는 본분이라서 신경을 덜 써도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 훈련을 해 보니 새 신자를 잘 양육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외국어로 새 신자와 소통을 해야 하고 진리를 교제하며 그때그때 새 신자의 관념과 어려움을 해결해 줘야 했습니다. 로지는 모든 면에서 참 능숙했습니다. 새 신자에게 문제가 있으면 금방 관련된 진리를 찾아 해결해 주었고요. 다시 저를 보니 전 진리도 명확히 교제하지 못하고, 새 신자의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등, 자매에 비해 너무 떨어졌습니다. 로지의 수준까지 이르려면 오랜 기간 익히고 배우며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았습니다. ‘됐어. 어차피 로지랑 같이 협력하니까 난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런 생각에 전 양육 관련 진리를 갖추는 데 조급해하지 않았고, 예배가 끝난 후에도 먼저 새 신자들의 문제나 어려움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양육 본분을 맡은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혼자서 새 신자를 양육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반성해 보았습니다. 잘 몰라서 그런 거라는 핑계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실 전 열심히 대가를 치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난 잘 못하는 본분을 맡기만 하면 ‘모른다’, ‘못한다’ 등의 핑계를 대면서 본분을 무성의하게 이행하고 열심히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 걸까?’ 전 제 내적 상태와 답답함을 하나님께 가져가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묵상 시간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늘 수월하고, 힘들지 않고, 몸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 고른다. 이는 몸을 사리는 것이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모습이다. 또 있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조금 힘들고 고생스럽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 늘 불평을 합니다.) (평소에 먹고 입는 것 등 육적인 즐거움을 중요시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모습이다. 너무 힘들고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편한 일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질이 부족하고 사역 능력이 없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상 그것은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데 목적이 있다. … 이 밖에도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렵다고만 하고 열심히 노력하려고 하지 않고, 틈만 나면 쉬거나 잡담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여가를 즐긴다. 사역이 바빠져서 생활 리듬과 규칙이 깨지면, 언짢아하면서 불만을 품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가 하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다. 이는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것 아니겠느냐? …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적합하겠느냐? 본분 이행에 관한 얘기만 꺼내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일 얘기만 꺼내면,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젓는다. 어려움이 너무 많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며 철저히 소극적으로 군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쓸모가 없다. 그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으니 도태돼야 마땅하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 중에서), 『일부 거짓 리더들은 자질은 좀 있지만,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고 육적 안락함을 탐한다. 육적 안락함을 탐하는 자는 사실 돼지와 다를 바가 없다. 돼지는 매일 먹고 자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1년 동안 고생스레 돼지를 키우면 연말에는 온 가족이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그래도 가족들을 위해 힘쓴 셈이다. 만약 거짓 리더를 돼지처럼 키운다고 해 보자. 하루 세끼 공짜로 먹여서 뒤룩뒤룩 튼실하게 키웠는데 실제 사역은 하나도 하지 않는 폐물이라면, 이런 자는 키워 봤자 헛수고 아니겠느냐? 그를 키워서 어디에 쓰겠느냐? 그는 부각물이 될 뿐이니 도태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거짓 리더를 키우는 것은 돼지를 키우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거짓 리더는 ‘리더’라는 칭호를 가지고 그 지위를 점한 채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하나님의 은혜도 적잖이 누린다. 그렇게 연말이 되면 잘 먹어 살이 뽀얗게 올랐을 텐데 사역은 어떻게 했겠느냐? 지난 일 년간 너의 사역 성과를 가져와 봐라. 지난 일 년간 어떤 사역에서 성과가 있었느냐? 어떤 실제적인 사역들을 했느냐? 하나님 집에서는 네게 모든 사역을 훌륭히 해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음 사역, 영상 사역, 문서 사역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사역은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 이런 사역에서는 반드시 성과가 있어야 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3~5개월 정도 사역을 하면 대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고, 웬만하면 성과가 나온다. 만약 1년 넘게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다면 이는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네가 책임졌던 범위 내에서 가장 성과가 있는 사역, 즉 일 년간 가장 많은 대가를 치르고 고생한 사역이 어떤 것인지 보아라. 그리고 그 성과를 내놓고 살펴보면서 지난 일 년간 네가 누린 은혜만큼 그 성과가 가치 있었는지 너는 마음속으로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하나님 집의 밥을 먹고 그렇게 오랜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대체 무얼 한 것이냐? 성과를 좀 냈느냐? 성과가 전혀 없다면 빈둥대며 사는 자로, 너는 명실상부한 거짓 리더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4)>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많이 찔렸습니다. 본분에서 어려움을 만나면 ‘모른다’, ‘못한다’라는 말을 방패 삼아 늘 뒤로 물러나려 했던 건 제가 너무 게으르고 육의 안락함을 탐하기 때문임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안드레아와 협력해 책임자 본분을 이행할 때 전 익숙하고 간단한 일들만 골라서 하려 했고, 제가 잘 못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들은 안드레아한테 미뤘습니다. 현재 로지와 함께 새 신자를 양육하는 과정에서도 저는 신경을 많이 쓰거나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 않아 했습니다. 스스로를 반성해 봤더니 이게 다 사탄 철학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짧은 인생 즐겁게 살자.”, “사람은 스스로를 아껴야 한다.” 이런 말들이 제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 늘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고 몸과 마음이 고생 없이 편안한 게 자신을 위한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집으로 와 본분을 이행할 때도 제 이런 관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 못하는 본분을 만나거나 어려움을 만나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 생기면 전 육의 안락함에 연연해하며 거북이처럼 목을 웅크렸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먹고 잘 줄밖에 모르는 돼지처럼 저 역시 육의 안락함만을 탐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건 너무 비천했습니다! 책임자 본분을 맡았다가 이렇게 새 신자를 양육하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이 높여 주신 덕분입니다. 하지만 전 늘 성장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책임과 본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 집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에 무책임했습니다. 너무 양심이 없었습니다. 전 고생하며 대가를 들이기 싫어 그랬던 거면서 ‘모른다’, ‘못한다’란 핑계를 대며 형제자매들의 동정을 사려고 했습니다. 제가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이성적이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다들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런 말을 한 건 제 게으르고 무책임한 진짜 모습을 감추기 위한 거였습니다. 너무나 교활하고 간사하게도 형제자매들을 속인 거죠! 사람은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분이자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고 속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혐오를 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동안 저는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보지 못했습니다. 늘 갈피를 잡지 못했고 성장도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위험한 신호였습니다!

그러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부를 받은 후부터 노아는 하나님이 얘기한 방주를 만드는 일을 그의 이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아 조금도 태만히 굴지 않고 실행해 나갔다. 하루 또 하루가 갔고, 일년 또 일년이 흘렀다. 그렇게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서 세월이 흘렀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엇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았지만, 노아는 시종일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중요한 임무를 굳게 지켜 나갔다.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은 석판 위에 글자를 새겨 놓은 듯 노아의 마음에 새겨졌다. 바깥세상의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해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그는 시종일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일을 굳게 지켜 나갔지, 단 한 번도 낙담하거나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마음에 새겨졌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이행되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각종 재료를 하나씩 마련하였고, 방주는 노아의 꾸준한 작업 속에 하나님이 당부한 양식과 규격대로 조금씩 형태를 갖춰 갔다. 비바람이 불어도,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하고 헐뜯어도, 노아는 일년 또 일년 그렇게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였다. 하나님은 몰래 노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지만, 노아에게 또다시 어떤 말씀을 하지는 않았다.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지만 정작 노아 본인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고 각종 생물을 모았다. 노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히 지키고 실행해야 할 지고의 명령이자,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해야 할 목표와 방향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 무엇을 시키든, 어떤 분부를 내리든, 그는 전부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겨 자신이 일생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간주했다. 그는 잊지 않았고 마음에 새겼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이를 수행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분부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행했다. 그렇게 방주는 한 조각 한 조각 만들어졌다. 노아의 모든 행동, 노아의 매일매일은 다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 하나님의 분부를 위한 것이었다. 겉으로 볼 때 노아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큰일을 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노아의 일거수일투족, 나아가 그가 어떤 일을 성사시키려고 내디딘 모든 발걸음, 그리고 그가 손으로 한 모든 일은 다 귀하고, 기념할 가치가 있으며, 이 인류가 응당 본받아야 할 것이었다. 노아는 하나님이 맡긴 일을 굳게 지켰고,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은 참되다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방주는 지어졌고, 각종 생물 역시 방주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2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였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그분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 분부하시자 노아는 하나님께서 맡긴 일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했습니다. 노아도 처음부터 방주를 만들 줄 알았던 게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방주를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각 단계마다 고생하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충성했습니다.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기꺼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 가며 조금씩 조금씩 방주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120년간 지속한 끝에 결국 하나님이 맡긴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드느라 고생도 많이 하고 육적인 안락함도 누리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맡긴 일을 완수해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렸고 그분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맡긴 일을 대하는 노아의 태도와 저를 비교해 보면, 전 너무 인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귀히 여기지 않았고 충성심도 없었습니다. 게으르고 간사하며, 육적인 안락만 탐할 줄 알았지 조금의 고생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었습니다. 너무 비천하게 살았습니다! 이를 고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다간 결국 본분을 잃고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 후 전 매일 시간을 할애해서 새 신자 양육과 관련된 여러 진리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예배 시간에 누가 양육 사역에서 생긴 문제를 얘기했는데,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 나오자 또 저는 물러서서 알아서 상의하게 내버려 두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때, 제가 또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대하던 노아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떠올리며 의식적으로 잘못된 제 내적 상태를 바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어떻게 진리를 교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지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산 시간에는 저도 제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제 제안이 좋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로지와 함께 새 신자를 양육할 때도 전 적극적으로 나서서 새 신자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훈련을 했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즉시 로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혼자서도 새 신자를 양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저의 성장과 수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도 더 편안하고요. 제가 얻은 이런 수확과 인식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룬 결실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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