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함을 탐하면 반드시 자신을 해치게 된다

2025.11.27

미국 그레이슨(Grayson)

2021년 8월, 리더는 제게 영상 사역을 책임지도록 안배했습니다. 평소 저는 영상을 직접 제작하는 것 외에 형제자매들이 제작한 영상도 검토해야 했고, 언제든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겪는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야 했습니다. 또 모두의 내적 상태에 대해서도 교제하며 해결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최선을 다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매일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일일이 다 처리하고 해결하려면 너무 신경 쓸 게 많잖아! 차라리 그냥 팀원으로 영상 제작만 하는 게 낫겠어. 그럼 이렇게 신경 쓰고 고생할 필요도 없을 텐데.’ 게다가 형제자매들이 평소에 본분을 비교적 진지하게 이행하는 것을 보고는 굳이 늘 확인할 필요가 있나, 뭐하러 그렇게까지 수고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정해진 대로 영상을 제작하는 것 외에 팀의 다른 일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본분에서 나타난 편차와 문제를 정리하거나 그들의 잘못된 내적 상태를 해결해 주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때로 형제자매들이 제게 어떤 사역을 제때 마치라고 일깨워 주면 저는 너무 재촉한다며 귀찮아했고, 몇 번 더 재촉하면 마음속으로 이런 반발심을 품었습니다. ‘나도 지금 하고 있잖아? 내 속도가 이런데 재촉한다고 빨라지나!’ 저는 이런 내적 상태로 살면서 본분에 대한 부담이 점점 없어졌고, 시간이 흐르자 본분 이행이 아주 따분하게 느껴졌으며 마음속에 공허함마저 생겼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너무 무감각해서 줄곧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리더가 장리 자매가 제작하던 영상이 며칠째 진척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에게 자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고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장리의 최근 내적 상태에 대해 알아보았고, 자매가 요즘 본분을 이행할 때 확실히 수동적이며 사역상의 문제를 구하거나 토론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상황을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문제를 발견하면 또 교제해서 해결해야 하잖아. 너무 번거로워. 지금 사역 진도가 많이 늦어진 것도 아니니 큰 문제는 아닐 거야.’ 그래서 저는 더는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가 그달에 제작한 영상 수가 지난달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 영상 사역의 진도가 지체된 것을 리더가 발견했습니다. 리더는 저희에게 원인을 찾아보라고 하면서 저희가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고 무책임하다고 책망하고 폭로했습니다. 또한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충성심이 없는 것이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특히 리더가 ‘진도가 느리다’, ‘충성심이 없다’,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것이다’라고 말하니 더욱 마음이 찔려 고개조차 들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역을 정리할 때, 형제자매들은 모두 자신의 내적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요즘 본분을 이행하면서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내적 상태에 빠져, 본분을 이행할 때 적당히 여유를 부리며 효율을 따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는 일도 하루 또는 그 이상을 들여서야 겨우 마쳤고, 이 때문에 영상 제작 진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와 본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듣자, 저는 무척 후회스러웠고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되물었습니다. ‘내가 분명히 발견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었는데, 왜 제때 파악하고 해결하지 않았을까?’

어느 날 영 생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너무 게으르면 어떤 모습과 특징이 있겠느냐? 첫째, 무슨 일을 하든 건성으로 대충 하고, 꾸물대고 질질 끌며, 쉴 수 있으면 쉬고 미룰 수 있으면 미룬다. 둘째, 교회 사역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누가 마음을 쓰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은 마음을 쓰지 않는다. 만약 그가 마음을 쓴다면 그 또한 자신의 명예, 이익, 지위를 위한 것으로, 지위의 복을 누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셋째, 사역할 때 고생할까 봐 두려워한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못 견디고 마음속에 원망이 커지며, 고생하거나 대가를 치르지 못한다. 넷째, 무슨 사역을 하든 끈기가 없고,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 잠시 기분이 들떠 재미로 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만약 오랫동안 꾸준히 이렇게 할 경우, 늘 그렇게 바쁘고 그렇게 마음을 쓸 경우 육이 피로를 느끼게 되어 시간이 지나면 원망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교회 사역을 책임지는 리더가 있는데, 처음에는 새로운 일에 흥미를 느끼고, 매우 의욕적으로 진리를 교제한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형제자매가 보이면 도와서 해결해 준다. 한동안 꾸준히 이렇게 하다가 그는 리더의 사역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 소극적으로 변하고, 고생하기 싫어 편한 사역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항심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 게으른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실질적인 사역을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일단 육이 고생하면 핑계를 대며 회피하거나 거절하고, 또는 다른 사람에게 시켜 놓고 그 사람이 사역을 완수하면 뻔뻔하게 자기가 성과를 누린다. 이것이 바로 게으른 사람의 5대 특징이다. 너희는 교회의 리더 일꾼 중 이런 게으른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게으른 사람을 발견하면 당장 교체해야 한다. 게으른 사람이 리더가 되면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그의 자질이 어떻든, 그의 인성이 좋든 나쁘든 게으르면 제대로 사역할 수 없으며, 게으르면 사역과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 교회 사역에는 여러 측면이 있으며, 각 측면의 사역과 관련하여 많은 세부적인 사역을 해야 하고, 진리 교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만 제대로 사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리더 일꾼은 반드시 부지런해야 한다. 매일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일을 해야만 사역의 성과를 보장할 수 있으며, 말이나 일을 거의 하지 않으면 성과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리더 일꾼이 게으른 사람이라면 분명 거짓 리더이며,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며, 사역 현장에 직접 가 보는 일은 더더욱 없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도, 어떠한 구체적인 사역에도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를 전혀 알아보거나 파악하지 않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피상적으로 대충 알고는 사람들에게 도리를 이야기하며 어물쩍 넘어갈 뿐이다. 너희는 이런 리더를 분별할 줄 아느냐? 그가 바로 거짓 리더임을 분별해 낼 수 있겠느냐? (조금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어떤 본분이든 건성으로 이행하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항심도 없어서 하다 말다 한다. 조금만 고생해도 원망하며 날마다 죽는소리를 하고, 누가 그를 질책하거나 책망하면 상대방에게 욕한다. 마치 쌈닭 같은 여자가 길거리에서 욕지거리하는 것처럼 늘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만 하려 하고 본분은 이행하기 싫어한다.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느냐? 그가 부담을 갖지 않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며, 이렇게 고생하면서 대가를 치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이다. 특히 리더 일꾼의 경우, 그에게 부담이 없다면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4)> 중에서),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폐인’이다. 바로 2급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고, 자질이 좋아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질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편안함을 즐기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며 바로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힘쓰는 것조차 기준에 맞지 않으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시켜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아주 게으른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늘 편안함만 도모하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기 때문에 본분에 대한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가질 수 없으며, 아무리 자질과 사역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신뢰할 수 없고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 자신을 반성해 보니 팀 안에서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영상 사역의 성과를 크게 떨어뜨린 것은, 주로 제가 너무 게으르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영상 사역을 책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늘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습니다. 모든 사역을 세심하게 제대로 하려면 고생하고 수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늘 저 혼자 영상을 제작하고 싶어 했고, 크게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겪는 내적 상태와 어려움에 대해서도 귀찮다는 생각에 알아보거나 묻기를 꺼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 사역 진도를 재촉하면 마음속으로 불평하며, 저를 너무 심하게 다그치고 제 어려움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고 싫어했습니다. 특히 리더가 장리의 본분 이행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을 때, 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발견하면 또 신경 써서 해결해야 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를 반성해 보니, 육적인 고생이나 신경 쓸 일이 생길 때마다 늘 꾀를 부리고 요령을 피우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그 게으른 자요, 쓸모없는 자였던 것입니다! 저는 나태하고 태만하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며 형제자매들의 사역을 감독하거나 확인하지 않았고, 그 결과 모두가 본분을 비효율적으로 이행하게 되었고 안일을 탐하며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내적 상태에 빠져 영상 사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책임자라는 직함만 달았을 뿐 책임자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조금도 다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남도 해치고 자신도 망친 것입니다! 그때서야 저는 게으른 사람은 인품이 저급하고 어떤 사역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신뢰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게으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혐오감을 일으키고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제 내적 상태에 맞춰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섬기는 과정에서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며, 건성으로 대충 하기까지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은 것이다. 그런 자는 이른바 ‘둔재’이자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자를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하겠느냐?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어 문드러진 자가 아니겠느냐? …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것에 대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느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 그리고 자신의 패역과 패괴를 증오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피조물이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누릴 자격이 있고,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자격이 있다. 그런데 너희 대부분은 또 어떠하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살고 있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의 앞에서 또 어떻게 너희의 본분을 이행하고 있느냐? 성심성의를 다하고 기꺼이 목숨을 바쳤느냐? 너희의 희생은 어떠하냐? 너희가 나에게서 얻은 것이 아직도 적단 말이냐? 너희는 분별할 줄 아느냐? 나에 대한 너희의 충성심은 어떠하냐? 나를 섬기는 것은 또 어떠하냐? 내가 너희에게 베풀어 주고 너희를 위해 행한 것은 또 어떠하냐? 너희는 가늠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쥐꼬리만 한 양심으로 가늠하고 비교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언행이 떳떳하냐? 설마 너희의 그 작디작은 희생으로 내가 베풀어 준 모든 것에 떳떳하단 말이냐?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너희는 나에게 음흉한 속셈과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고 얼마 되지도 않는 너희의 기능이다. 그렇지 않으냐? 설마 너희는 자신들이 아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면 너희가 어찌 피조물이라 불리겠느냐? 너희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는 자기 자신이 잘 알지 않느냐? 너희는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관용과 풍성한 은혜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은혜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너희 소인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라는 것 없이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다. 너희 같은 사람들, 너희 같은 둔재들은 하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전혀 없다. 오직 고난의 나날과 끝없는 징벌만이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없다면 너희의 운명은 곧 고통이고, 나의 말과 사역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너희의 결말은 곧 징벌이다. 그 어떤 은혜와 축복,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삶도 너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너희가 누릴 몫 또한 없다. 너희에게 이것은 당연한 결말이며 자업자득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의 심판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마주하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예전에 저는 좀 게으르고 본분을 이행할 때 대가를 덜 치르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늘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람이 능력껏 자기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께 진실하게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이야말로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였습니다. 만약 늘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고 자신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조차 다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사람이라 불릴 자격도, 피조물이라 불릴 자격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니 마음이 찔리고 두려웠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의 부담감이나 책임감도 없이 늘 신경 쓰고 수고하는 것을 귀찮아했던 저를 떠올렸습니다. 마땅히 확인해야 할 사역과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저는 늘 무관심했고, 설령 묻더라도 형식적으로 물었을 뿐이었습니다. 깊이 파고들어 문제를 발견하면 또 신경 써서 해결해야 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는 편안함을 도모하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기 위해, 사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알고도 모른 척하여 사역 성과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의 모든 소행을 돌아보니 온통 잔꾀를 부리고 요령을 피우며 건성으로 대충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진심이 어디에 조금이라도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어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었겠습니까? 저는 명백히 하나님 말씀이 폭로한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진’ 폐물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크나큰 굴욕과 고통을 감내하시며 성육신으로 나타나 사역하셨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비록 줄곧 사악한 중공당의 광적인 핍박과 추격, 그리고 종교계의 대적과 정죄를 받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역을 멈추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진리를 선포하시며 사람을 양육하고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늘 노파심에 비유와 예를 들어가며 여러 각도에서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는 오로지 우리가 하루빨리 진리를 깨달아 성품 변화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며 모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도 하나님의 사랑에 조금의 진심으로도 보답하지 않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제게 어찌 인성이 조금이라도 있겠습니까? 저는 또 노아가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인 후 방주를 잘 만들기 위해, 공사가 아무리 힘들고 중간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방해가 있었든 상관 않고 한결같이 120년을 버텨 마침내 방주를 완성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노아의 인품과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 그리고 순종을 보십시오. 그야말로 인성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자 진정한 피조물이며, 하나님께서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정상 인성을 조금도 갖추지 못했고, 양심으로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못했으니, 실로 사람이라 불릴 자격이 없었습니다! 제가 만약 계속 이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며 회개할 줄 모른다면,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되는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두려움과 함께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앞으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반드시 육을 저버리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경험을 하고 나서 다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이전보다 조금 나아졌습니다. 저는 매일 영상을 제작하는 것 외에도 자주 형제자매들의 본분 이행 상황을 파악했고,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교제하며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니 비록 신경 쓸 일은 더 많아졌지만, 능력이 닿는 한 제 본분을 다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제 본성 본질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기에 얼마 후 제게는 또다시 안일을 탐하는 내적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영상 제작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매일같이 수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어떤 영상은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해야 했고, 어떤 영상은 기술적인 요구 수준이 높아 신경 써서 궁리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최대한 완성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음속으로 다시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이렇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언제쯤 좀 줄어들까? 그래야 이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육체도 좀 편해질 텐데.’ 한번은 자매가 제게 10여 개의 영상을 보내 이틀 안에 검토해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약간의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이틀 만에 다 검토할 수 있을까? 이건 야근까지 해야 할 판이잖아?’ 비록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일이 제게 임했으니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저는 늘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나는 왜 본분을 이행할 때 업무량이 많아지면 늘 육을 좇을까? 대체 무엇에 지배받는 것일까?’ 그렇게 구하던 중, 저는 하나님의 말씀 몇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육체는 네가 잘해 줄수록 더 탐욕스러워지기 때문에 조금 고생을 하는 것이 낫다. 조금 고생을 하면 사람은 올바른 길을 걷고 본연의 일을 한다. 육체가 고생하지 않고 안일을 누리며 안락한 환경에서 자라면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진리도 얻지 못한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닥치면 사람은 사리를 분별하지도 못하고 이치로 깨우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타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례가 많지 않으냐? 이방의 수많은 가수와 영화배우들을 보아라. 무명 시절에는 고생도 할 줄 알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일단 유명해지고 큰돈을 벌면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다. 마약을 하는 자도 있고 자살하는 자도 있는데, 다 단명하고 만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이겠느냐? 물질적 향락을 과도하게 누리고 너무 안일하며 어떻게 누리고 어떻게 자극해야 하는지 몰라 어떤 이들은 더 큰 자극과 재미를 찾으려고 마약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끊지 못하는데, 마약을 과다 복용하여 죽고 마는 이도 있고, 어떻게 벗어날지 몰라 아예 자살해 버리는 이도 있다. 이러한 사례가 너무나 많다. 네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아도, 아무리 좋은 것을 누리고 안일한 삶을 살아도, 너의 욕망이 아무리 충족되어도 마지막은 공허하고 공허할 뿐이며, 그 결과는 곧 멸망이다.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겠느냐? 사실 그건 행복이 아니라 사람의 상상이고 타락하는 방식이며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이다. 사람이 추구하는 소위 행복은 가짜이며 사실은 고통이다. 그것은 사람이 추구해야 할 목표도 아니고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도 아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과 수단 중 일부는 사람에게 육체를 만족시키고 정욕을 방종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을 마비시키고 유혹하며 패괴시켜 사람이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느끼게 하고 그 목표를 추구하도록 한다. 사람은 그런 것들을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전력을 다해 그 목표를 추구하지만 얻은 후에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공허해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이로써 그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육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식이며, 사탄은 바로 각종 처세 철학과 황당한 논리로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킨다는 것을 말입니다. 가령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한다.’ 등과 같은 것들로 사람들이 그것에 의지해 살게 하고, 육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삶의 의미와 가치, 인생의 목표로 삼게 합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 안일함과 육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고 점점 더 방탕해지고 타락하여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비록 저는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했고,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추구하거나 육을 방종하지는 않았지만, 사탄의 독소와 사탄의 철학 법칙은 여전히 제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저의 사상 관점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늘 육적인 안일과 즐거움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여겼고, 무슨 일을 하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 본분을 이행할 때 신경 쓸 일이 많아지거나 일이 조금 바빠지면, 늘 쉴 시간을 찾으려 했고 육체가 그렇게 힘든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역에 명백한 문제가 있어도 깊이 파고들어 해결하려 하지 않고 본분을 내팽개쳐 버렸고, 그 결과 사역 진도가 늦춰지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으니, 정말 너무 위험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안일을 탐하는 내적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제 마음은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있을지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닥치면 저는 늘 육체가 고생하지는 않을지, 힘들지는 않을지를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으며, 조금의 양심과 이성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육에 속박되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에 대해 매우 반발하고 싫어했으며, 본분이 주어지면 늘 회피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육은 편안하고 별다른 고생은 하지 않겠지만, 결국에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니, 그것은 스스로를 완전히 망쳐 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비로소 안일을 탐하는 것의 위험한 결과에 대해 조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고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양심적이고 이성적이며 진실로 공을 들여야 한다. 무엇이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겠느냐? 힘이나 좀 쓰고 육적으로 고난을 좀 겪는 것에 만족할 뿐, 본분을 이행할 때 진지하게 대하는 법이 없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그야말로 대충 건성으로 대하는 것이지,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다. 공을 들이는 핵심은 마음을 다하는 데 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거역했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두려워해야 한다. 또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면 어떤 고난을 겪든 상관없으며,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만약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 부담을 갖지 않으며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면, 분명 대충 건성으로 대하면서 형식만 갖추고 실제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는 본분 이행이 아니다. 정말 부담을 갖고 본분 이행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느낀다면,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도 없으며 그건 짐승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또 제대로 본분을 이행해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여긴다면, 이런 부담을 갖고 본분을 이행한다면 모든 일을 열심히 해낼 것이며 진리를 구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그 사명과 하나님이 너를 위해 치른 모든 대가, 그리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다. … 하나님 집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정직한 사람이고,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부탁을 받을 수 있고, 충성심을 가지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진실한 믿음과 양심, 이성,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본분 이행에 적합하지 않다. 설령 본분을 이행한다고 해도 대충 건성으로 한다. 그들은 힘쓰는 자인데 진실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힘쓰는 자들은 언제든 도태될 것이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는 비록 진리 실제가 없어도 양심과 이성이 있고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살아남도록 허락한다. 진리 실제를 갖추었으며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할 수 있고, 백성에 속하는 사람들도 모두 살아남을 수 있으며 하나님나라로 인도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오직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정직한 사람만이 하나님 집의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일을 책임감 있게 처리하여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은 단지 겉으로 힘 좀 쓰거나 정해진 대로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으며, 마음을 다해 행하고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본분 이행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저는 실행의 길을 찾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다시 잔꾀를 부리고 안일을 탐하려는 생각이 들 때면, 저는 육을 저버려야 하고, 본분과 관련된 모든 일에 마음을 쓰고 진지하게 대하며 제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육을 좇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당신의 마음을 저버렸습니다. 이제 당신께 회개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매사를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처리하도록 훈련하며, 제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잘 이행하겠습니다.”

그 후 다시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이 방면으로 실행하고 진입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한번은 형제자매가 제게 급히 검토해야 할 영상 두 개를 보내왔는데, 그중 하나는 문제가 비교적 많아 검토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저도 모르게 또 불만이 싹텄습니다. 그때 저는 그것이 육을 좇는 것임을 깨닫고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 자신을 저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본분이 주어져 네가 힘을 들여야 할 때, 이는 네가 자신을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네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때이다. 어떤 것도 숨기거나 잔꾀를 쓰거나 여지를 남기거나 뒷길을 열어 두어서는 안 된다. 여지를 남기거나 잔꾀를 부리며 요령을 피운다면 절대 그 일을 잘 해낼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에서) 그때처럼 급한 본분이 임했을 때야말로 제가 육을 저버리고 대가를 치러야 할 때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사역을 잘하고 제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 영상을 검토하고 나서 다른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나중에 비슷한 일을 만났을 때도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본분을 최우선시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했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이전보다 훨씬 더 알차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환경들을 겪으면서 저는 비로소 안일을 탐하는 것의 해로움과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본분을 이행할 때 진실한 부담감을 갖고 기꺼이 고생하며 대가를 치러야만 자신의 책임과 본분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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