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을 이행하며 왜 어려움에 맞서 나아가지 못했는가
중국 리이찬(李依燦)2021년 11월, 저는 교회 리더로 선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본분을 이행하면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생명 성장도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비록 제가 부족한 점은 많지만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려 했습니다....
2022년 8월, 저는 교회에서 새신자를 양육하는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게 된 것에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무척 감사드렸고, 반드시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전에 양육 사역을 책임져 본 적이 없어 원칙을 잘 몰랐기에, 저는 열심히 배우고 관련 원칙을 익히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새신자에게 어떤 내적 상태나 문제가 생기면 파트너 자매와 함께 서둘러 교제하며 해결해 주었습니다. 매일 정신없이 바빴지만 의욕이 넘쳤고, 몇몇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이 사역에 세세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신자들의 각종 문제와 어려움을 제때 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양육자들의 사역을 검사하고 점검하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야 했고, 또 인재를 발견해 양육자로 양성하는 등 할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 사역을 잘 해내는 것이 너무 어렵고, 신경도 많이 써야 하고 대가도 많이 치러야 해서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늘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아서 사역이 좀 수월해지기만을 바랐습니다. 나중에 양육해야 할 새신자가 점점 더 많아지자 제 부담감은 더욱 커졌고,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신자들을 모두 잘 양육하고 일일이 신경 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까? 이렇게 하면 너무 힘들잖아!’ 그래서 저는 양육자들과만 예배를 드리고, 관념이 비교적 많은 새신자들은 모두 양육자들에게 맡겨 버린 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가끔 양육자들의 사역에 대해 물어볼 때도 형식적으로만 했습니다. 얼마 후, 양육 사역에서는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새신자는 소극적이고 연약해져 예배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어떤 새신자는 종교 목사의 유언비어와 황당한 논리에 미혹되었으며, 또 어떤 새신자는 가족의 방해와 핍박으로 예배에 정상적으로 참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양육자들 역시 어려움 속에서 다소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습니다. 리더는 편지로 제게 빨리 원인을 찾아 편차를 바로잡으라고 하면서, 관념은 있지만 자질이 좋은 새신자들은 직접 양육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또한 새신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제로 참여하여 그들이 참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리더의 말을 보니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제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서둘러 새신자들의 문제를 교제하며 해결해 주려 했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고, 이 사역이 정말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차라리 좀 더 수월한 본분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한번은 양육자들이 사역상의 몇몇 문제와 어려움을 제기했을 때, 저는 원칙을 좀 찾아본 뒤에 그들과 함께 해결 방법을 상의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원칙을 찾으려면 신경도 많이 써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릴 텐데. 파트너 자매는 자질도 좋고 교제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니까 그냥 자매님더러 해결하라고 하는 게 낫겠어.’ 그래서 저는 찾아야 할 원칙도 찾지 않고, 해야 할 교제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자매가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후로도 일이 생기면 저는 제 자질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문제나 어려움이 많은 사역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파트너 자매에게 떠넘겼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할수록 점점 더 부담을 느끼지 않았고, 매일 그저 정해진 대로 주어진 일만 처리했습니다. 그 무렵, 제 마음속에는 늘 불안하고 편치 않은 감정이 있었습니다. 성과가 계속 떨어지자 리더는 사역을 자주 점검하고 상황을 알아보았는데, 그럴때면 저는 마음이 답답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어려움이 너무 많고 부담이 너무 크며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늘 괴로워하며 불평까지 했습니다. ‘나는 이 본분을 맡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리더는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고 사역을 이렇게 빡빡하게 점검하는 걸까?’ 저는 사역에 더 이상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어느 날, 저는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갑자기 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으며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바람에 밥도 먹지 못했고 밤에는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병고가 임한 데에는 당신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어느 방면의 공과를 배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제가 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친 후, 저는 그동안의 제 본분 이행 상태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인데, 왜 나는 늘 답답함과 고통을 느꼈을까? 어쩌다 제 본분 이행 상태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늘 육의 안일과 쾌락만을 찾거나 추구하며 고생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의 육이 조금이라도 괴롭거나 남보다 더 고생하거나 혹은 평소보다 피로할 때 그는 억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억압을 야기하는 원인의 하나이다. 만약 사람이 육적인 고생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육의 안일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를 추구한다면, 육적인 고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설령 때로 분주하고 피곤하여 지치더라도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진다. 괜찮아지면 계속 분주히 보낸다. 그의 마음은 본분과 사역에 있으니 육적으로 조금 피곤하더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에 문제가 생겨 늘 육의 안일만 추구하고자 한다면, 육적으로 조금 억울하거나 만족을 얻지 못할 때 부정적 정서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항상 마음대로 하고 육을 방종하며 삶을 즐기려는 부류의 사람이 만족을 얻지 못할 때 늘 억압이라는 부정적 정서에 빠지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겠느냐? (안일과 육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부 사람의 경우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제가 답답함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된 것은 이 사역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주로 저의 사상 관점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한 것은 진리를 얻는 것도,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육적인 안일함을 누리려고 어떻게 하면 신경을 덜 쓰고 편해질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업무량이 많아져 더 많은 신경을 쓰고 더 많은 고난과 대가를 치러야 할 때면 저는 불평하고 반발했습니다. 사역에서 문제와 어려움이 좀 많아지면, 귀찮아하며 힘들다고 불평하거나 다른 형제자매에게 처리하고 해결하라며 떠넘겼고, 심지어는 더 수월한 본분으로 바꿔 이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저는 리더가 사역을 점검하는 것이 리더의 직책을 다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리더의 채근이 심해져 저의 육적인 이익에 부딪히고 힘들고 지친다고 느껴지자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사실 저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환경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자 반발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패역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계속 진리를 구하며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렵다고만 하고 열심히 노력하려고 하지 않고, 틈만 나면 쉬거나 잡담하거나 여가를 즐긴다. 사역이 바빠져서 생활 리듬과 규칙이 깨지면, 언짢아하면서 불만을 품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가 하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다. 이는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것 아니겠느냐? … 교회 사역이 아무리 바빠도, 본분이 아무리 바빠도 그 자신의 생활 규칙이나 평소의 생활 상태는 전혀 깨지 않으며, 자신의 육적인 생활의 어떤 세부 사항도 그는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다 적절하게 관리한다. 무척 엄격하고, 또 무척 진지하게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 집의 사역을 대할 때는 아무리 큰 일이라도, 설령 형제자매들의 신변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 할지라도 그는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대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부탁이나 그 사람 개인이 이행해야 할 본분과 관련이 있어도 그는 전혀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것이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것 아니겠느냐?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적합하겠느냐? 본분 이행에 관한 얘기만 꺼내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얘기만 꺼내면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젓는다. 어려움이 너무 많다며 불평을 가득 늘어놓으며 소극적으로 군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쓸모가 없다. 그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으니 도태돼야 마땅하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안일함을 탐하고 책임감이 없는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늘 안일함만 탐하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고 잔꾀를 부리며 요령을 피우고, 고생하고 대가 치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려움을 보면 도망치고,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어렵고 문제가 많은 사역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이런 사람은 신뢰할 가치가 없고, 사역을 감당할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양육 사역을 책임지고 있으니 마땅히 제때에 새신자들을 잘 양육하고, 그들의 관념과 문제를 해결하여 그들이 속히 참도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본직 사역이고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새신자들에게 많은 문제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 번거롭고 힘들다는 이유로 핑계를 대며 관념이 있거나 어려움이 있는 새신자들을 모두 양육자들에게 떠넘겼습니다. 제가 뒷짐만 지고 새신자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탓에, 새신자들의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못했고 양육 사역의 진척을 가로막았습니다. 양육자들이 사역 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분명 제가 육적인 것만 생각하느라 해결해 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데도, 저는 아주 영악하게 제 자질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당연하다는 듯이 어려움과 문제를 파트너 자매에게 떠넘겼습니다. 제가 육적인 것만 생각하고 안일함을 추구하며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은 탓에 양육 사역의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고, 리더가 사역을 점검하며 상황을 알아볼 때도 반감을 품고 불만을 가졌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상태와 모습에 어찌 책임자의 자격이 있겠습니까? 이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롭고 후회스러웠습니다. 이번에 전염병에 걸린 것에 하나님의 허락이 있다고 느껴져 하나님께 제가 계속 저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길 기원한다며 기도드렸습니다.
얼마 후, 한 예배에서 저는 모두에게 제 내적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리더는 제게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고, 이를 통해 저는 제 패괴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리더는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지만, 어떻게 관리 노릇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런 자가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하겠느냐? 사람들의 마음을 산다. 그는 “신임 관리는 부임하자마자 눈에 띄는 일을 한다.”라는 식으로 먼저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몇 가지 일이나 생활 혜택과 관련된 몇 가지 일을 하여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준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리더로 보여지게 하고, “그는 우리의 부모 같은 리더다!”라고 칭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정식으로 자리에 오른다. 그는 대중적 기반이 마련되었고 지위도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지위의 복을 누리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 격언은 바로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 하루 누렸으면 그만이고 한순간 즐겼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 리더가 마땅히 어떤 책임과 본분을 이행해야 할지 고려하지도 않는다. 그저 형식적으로 글귀와 도리를 읊어 대고 체면을 세우는 일을 약간 할 뿐, 실질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는다. 교회에 존재하는 실제 문제들을 파고들어 철저히 해결하지도 않는데 그런 표면적인 일만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 아니겠느냐? 이런 거짓 리더 부류의 인물에게 중임을 맡길 수 있겠느냐? 그들이 리더 일꾼을 선발하는 하나님 집의 원칙과 조건에 부합하겠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말의 양심과 이성조차 없으며, 조금의 책임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감투를 쓰고 리더가 되고자 한다. 어찌하여 염치를 모르는 것이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질이 부족하면 리더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책임감조차 없는 폐인은 리더가 될 자격이 더더욱 없다. 먹는 것만 밝히고 일은 게을리하는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어느 정도로 게으르겠느냐?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책임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말재간이 있고 자질도 좀 있는 것 같지만, 막상 교회 사역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사역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문제가 갈수록 많아져도 내버려둔 채 상관하지도 않고, 여전히 형식적으로 표면적인 일만 계속해 나간다. 그로 인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교회 사역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지 않겠느냐?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흐트러지고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느냐?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저는 마치 하나님께서 얼굴을 마주하고 저를 폭로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그런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안일함을 탐하기 위해 저는 문제를 보고도 해결하지 않았고, 실제적인 사역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새신자들의 관념과 문제는 제가 다 알고 있었고, 양육자들의 어려움과 내적 상태도 제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게 진리를 구해 그 문제들을 속히 해결할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형식적으로 교제하고, 도리를 좀 이야기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파트너 자매나 양육자에게 문제를 곧바로 떠넘겨 해결하게 했고, 저는 편하고 힘들지 않은 일만 골라서 하며 모든 면에서 육을 좇았습니다. 저는 양육 사역이 새신자가 참도 위에 굳게 설 수 있는지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일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고, 문제를 보고도 해결하지 않았으며, 되려 문제를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사역이 손실을 입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못 본 체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양심도 없고 무책임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제가 사역을 책임진 지 얼마 안 됐으니 리더가 제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너무 높이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 ‘하루 스님이 되면 하루만큼만 종을 친다’라는 사탄 철학에 따라 살면서, 본분에 충실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만 하면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겉으로는 매일 한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았고, 마땅히 해야 할 책임도 다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이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백수건달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했는데, 저 자신이 바로 백수건달 같은 부류의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 자신이 역겨울 정도였습니다! 저처럼 인격도 없고 신뢰할 가치도 없는 사람은 정말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거짓 리더, 거짓 일꾼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병고가 임한 지금은 본분을 좀 이행하고 싶어도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건강했을 때 시간을 허비한 것이 너무나 후회되었니다. 만약 이번에 병이 낫지 않아 죽게 된다면, 평생 여한을 남기게 될 것이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롭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저 역시 계속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도 잘 이행하지 않으면 정말로 도태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어느 날 묵상 시간에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조금의 고통도 겪지 않으려고 한다. 문제에 부딪히면 어렵다고 앓는 소리를 하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이는 어떤 태도이냐? 이것이 바로 건성으로 대충 하는 태도이다.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며 경시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한다면, 결과가 어떻겠느냐? 네가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잘 이행하지 못해 기준에 달하지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너의 태도에 매우 못마땅해할 것이다. 원래는 네가 만약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여 성심성의껏 할 수 있다면, 네가 이렇게 협력할 수 있다면, 네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성사되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나님이 앞에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놓는다. 네가 최선을 다해 협력할 때, 하나님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 놓는다. 만약 네가 잔꾀를 부리며 불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그릇된 길로만 간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지 않아 너는 기회를 잃게 된다.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은 안 되겠다. 쓸 수가 없구나. 옆으로 비켜라! 너는 몸을 사리고 농간 부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게으름 피우고 편안함을 누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고 말하며, 그 은혜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남겨 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손해를 본 것이냐, 아니면 이익을 본 것이냐? (손해를 본 것입니다.) 손해가 너무나 막심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은 지극히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느꼈고, 본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탁이자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본분을 가볍게 여기고 무책임하게 대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심각한 과오를 저지르는 것으로 그런 사람은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개인의 육적인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과 인도를 받을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진리를 깨닫고 얻어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안일함만 좋아했습니다. 분명히 제가 해야 할 본직 사역인데도 하지 않았고, 가끔 조금 하더라도 건성으로 형식적으로만 했고 체면이 서는 일만 하면서 하나님을 기만하고 형제자매를 속였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간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시고, 저의 일거수일투족과 생각 하나하나까지 다 감찰하십니다. 저처럼 안일함을 탐하고 이기적이며 간사한 사람은 신뢰할 가치가 전혀 없고, 하나님께서도 혐오하고 증오하십니다. 그런데도 저는 반성할 줄 몰랐고, 리더가 일깨워 주어도 계속 육을 좇았습니다. 그 결과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해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했고, 새신자들의 어려움도 제때 해결되지 못했으며, 본분에 과오를 남겼습니다. 지금 전염병이 닥친 것은 제게 임한 하나님의 처벌이자, 저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입니다. 만약 제가 계속 회개하지 않는다면, 설령 교회에서 저를 제명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기에 성령께서도 제게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고, 저는 머지않아 도태될 대상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말입니다.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잠 1:32)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지금 탐내어 누리려고 하는 것들은 너의 앞날을 망치는 것들이고,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중에서) 여기까지 인식하니, 저는 속으로 몹시 후회됐고, 저 자신이 너무 미운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이기적이고 간사하여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했고 육적인 것만 생각하며 교회 사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제가 이런 내적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십시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너희가 말해 보거라.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 …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힘이 닿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다. 최소한 양심에 참소가 없고, 본인의 양심에 떳떳하며,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태어난 가정, 교육 수준, 자질을 떠나 사람의 생존에서 알아야 할 도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걸어야 할 길, 사람이 살아야 할 삶, 의미 있는 삶 등 인생의 참된 가치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에는 복음 전파 사역에 온 힘을 기울이며 평생을 쏟아붓고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사람을 얻은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고 가치 있다고 위안을 느낀다. 그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하거나 생을 마감할 때 그가 한 이 모든 일과 걸었던 길을 돌이켜 보면서 마음에 위로받고 참소가 없으며 아쉬움도 없다. 그리고 교회 리더를 맡거나 한 측면의 사역을 담당할 때 여력을 남기지 않고 자기 역량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온 힘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해야 할 사역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며 대가를 치르는데 많은 사람이 연약하고 부정적일 때 그의 양육과 인도, 도움과 붙듦 덕분에 강건해지고 일어서며,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다. 이 외에도 그가 리더를 맡는 동안 여러 중요한 사역을 완수하여 많은 악인을 제명하고 적지 않은 하나님의 선민을 보호하며 일부 막대한 손실을 만회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그가 리더를 맡은 기간에 이룬 것이다. 자신이 걸었던 길과 그동안 했던 사역, 치렀던 대가를 돌이켜 볼 때 마음에 아쉬움도, 참소도 없고,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으며, 가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낀다. 이러면 얼마나 좋으냐! 이것이 성과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끼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추구하여 얻게 되는 효과이자 수확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얘기해 보자. 자신의 위치를 찾은 후 자기 본연의 위치에 제대로 서서 그 본연의 위치를 지키면서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온 힘을 다해 자기가 해야 할 일, 완수해야 할 일을 잘해 낸다면,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보고할 때 스스로 마음에 참소나 아쉬움 없이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위안과 수확이 있으며 값진 삶이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말세에 태어나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교회에서 본분을 다하게 하신 것은, 제가 육을 좇고 안일함을 탐하며 그렇게 무의미하게 일생을 허비하게 하려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가 인생의 바른길을 걷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더 많이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형제자매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고,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여 기준에 맞는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교활하게 요령만 피웠던 제 자신을 생각해보면 비록 육은 편안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은 고통스럽고 어두웠으며, 평안과 기쁨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순간의 안일함을 누리기 위해 제 생명 진입을 지체했을 뿐만 아니라, 본분에도 너무나 많은 여한을 남겼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짐했습니다. 비록 제 병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저의 잘못된 내적 상태를 바로잡고 육을 저버리며, 서둘러 새신자들의 관념과 문제를 해결하고, 해야 할 사역을 잘 해내어 저의 책임과 본분을 다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사역에서 나타난 문제들에 대해 파트너 자매와 함께 진리를 구해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양육자들과 함께 원칙을 구하고, 정기적으로 사역의 편차와 문제를 정리하며 해결의 길을 찾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전신(甄欣) 자매가 자신이 양육하는 새신자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제게 교제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몇몇 질문은 저도 당장 어떻게 교제하고 해결해야 할지 몰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들을 명확하게 설명하려면 더 많이 고민하고 구해야 할 텐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또 얼마나 번거로울까! 그냥 이 문제들은 일단 놔뒀다가 나중에 파트너 자매에게 해결하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할 때, 저는 제가 또다시 육을 좇았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또 안일함을 누리려 하면서 교활하게 요령만 피우려 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육을 저버리고 힘써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진리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대단히 원하는 마음과 진실한 마음을 갖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할 힘이 생긴다. 이런 진실한 힘이 생기면 대가를 치르고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되며, 이익을 버리고 육의 모든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우선시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관념, 육적인 이익, 체면, 지위, 명성, 육의 즐거움 등을 내려놓을 수 있다. 네가 이런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진리 실제에 진입할 것이고, 그 어떤 어려움이나 난제들도 쉽게 풀려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려면 진실한 마음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 이 두 가지는 필수 불가결이다. 만약 진실한 마음만 있을 뿐 늘 나약하고,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이 없으며, 어려움에 봉착할 때 위축된다면, 이는 안 될 일이다. 만약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만 가지고 다소 충동적으로 의욕만 앞세울 뿐, 일이 일어났을 때 진실한 마음이 없고, 위축되며, 자신의 이익을 택한다면, 이 또한 안 될 노릇이다. 진실한 마음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을 모두 갖춰야만 하는 것이다. 네가 진실한 마음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네가 진실한 마음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고, 진리 실행에 힘이 빠질 것이다. 그러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으며 구원받기도 어려울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어려움 앞에서는 뒷걸음질 치고 힘든 일은 피했던 것은 제가 본분을 대하는 데 진실한 마음이 없었고,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 고생하고 대가 치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새신자의 문제를 제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제가 그 방면의 진리를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때가 제가 진리를 구하고 갖추어야 할 때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제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의지하도록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제가 진리를 얻을 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저는 마땅히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육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며, 제가 치러야 할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아 점차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늘 안일함만 탐하며 어려움 앞에서는 뒷걸음질 치고 힘든 일은 피한다면, 영원히 진리 실제에 들어갈 수 없고 진리를 얻을 수도 없으며, 결국 저 자신이 손해보는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후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새신자의 문제에 대해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후 저는 전신 자매와 함께 새신자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새신자가 제기한 문제들을 교제하고 답해주었습니다. 새신자는 진리를 깨닫고 실행의 길이 생겼으며, 어려움과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실제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저 역시 어떤 문제들을 꿰뚫어 보게 되었고, 이전에 몰랐던 일부 진리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니 제 마음이 든든하고 평안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본분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를 만나는 데에는 모두 하나님의 허락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저를 힘들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를 통해 제가 진리 원칙을 구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을 통해 저의 패괴와 부족함을 드러내시어 제가 진리를 구해 저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패괴 성품으로 살면서 본분을 이행할 때 안일함만 탐하고 교활하게 요령만 피우다가 교회 사역에도 지장을 주고 결국에는 제 자신을 망쳤을 것입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저를 일깨워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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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리이찬(李依燦)2021년 11월, 저는 교회 리더로 선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본분을 이행하면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생명 성장도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비록 제가 부족한 점은 많지만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려 했습니다....
한국 신춘(心純)2019년 말, 저는 교회에서 영상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영상 사역은 업무 기술이 요구되는 사역인데, 전에 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압박감이 무척 컸습니다. 잘 모르는 업무적인 일을 대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커다란 돌덩이를...
린이 자매에게보내 주신 편지 잘 받았어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우리가 1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네요. 편지에서 제게 본분 이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물어보셨죠. 한순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스페인 클로에(Chloe)저는 교회에서 영상 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하면서 조금 어려운 작업의 경우, 제작할 때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각각의 화면 효과를 반복적으로 테스트하고 수정해야 하며, 또 많은 실패를 겪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