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된 후의 뉘우침

2025.8.8

중국 줘징(卓靜)

2020년 11월, 저는 교회에서 리더를 맡아 새로 선출된 왕천 자매와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교회에 중공의 체포가 닥쳐서 몇몇 형제자매들이 체포되었고 후속 사역을 처리해야 해서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저는 사역 능력도 좀 부족하고 몸도 그다지 좋지 않아 스트레스가 꽤 컸습니다. ‘내 사역 속도로 매일 이렇게 많은 일을 하려면 시간과 정력을 얼마나 쏟아야 할까? 나는 몸이 약한데, 오랫동안 이렇게 일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본분을 건성으로 대하기 시작했고, 마땅히 신경 써야 할 사역에도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로 책임진 복음 사역과 양육 사역은 당시 복음 전도 인원과 양육 인원을 양성해야 하는 급한 일이었습니다. 저도 이 사역을 서둘러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적합한 인원을 물색하고 어떻게 교제하며 훈련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리하는 등 꽤 신경을 쓰고 에너지를 쏟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체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복음 집사와 양육 집사에게 실행하라고만 했습니다. 또 한번은 사역을 보고할 때 몇 가지 오류와 문제를 발견했는데, 사역이 지연되지 않도록 빨리 교제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문제들에 대해 일일이 실행 원칙과 해결 방안을 찾으려면 많은 시간과 정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골치가 아파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몇몇 간단한 일만 골라서 했습니다. 나중에 왕천 자매도 이 문제들을 발견하고 주도적으로 교제하여 해결한 덕분에 일이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정리 사역에서 제명 자료를 검사하고 확인해야 하는데, 저는 고생하기 싫어서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뤘고, 때로는 자료가 많으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보지도 않아서, 하마터면 제명 조건에 미치지 못하는 한 사람을 제명할 뻔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한 가지 사역을 맡아 그렇게 바쁘지도 힘들지도 않은 것을 보니 무척 부럽기도 하고, 리더는 너무 힘들고 바빠서 만약 몸이라도 축나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특히 어려움이 많을 때는 더욱 짜증이 나서 사역들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교체된 사람들이 집에서 영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저도 언제쯤 집에서 쉴 수 있을지, 그러면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본래 우리 두 사람이 교회의 사역을 책임지고 있는데, 왕천 자매는 이제 막 선출된 데다 그 많은 사역을 해야 하는데, 이럴 때 제가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너무 비양심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속으로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사역 스트레스가 클 때는 여전히 육을 이기지 못하고 이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본분을 매우 수동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보고, 한 자매가 저에게 부담감이 없고 육을 헤아린다고 지적해 주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좀 괴롭기도 하고, 이렇게 본분을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저도 모르게 육으로 살면서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되다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한 자매가 저를 고발했고, 윗선 리더가 확인하고 알아본 후 저의 일관된 모습에 근거하여 저를 교체했습니다. 당시 리더가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며, 종교 인사들의 행위와 같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그저 하나님 역사의 부각물, 즉 하나님 집의 장식품처럼 숫자만 채우는 폐물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성령이 역사할 기회가 없을뿐더러 온전케 될 가치도 없으며, 전형적인 산송장이므로 성령이 쓸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 이들은 전부 사탄에게 점령당하고 사탄에 의해 극도로 패괴된, 하나님께 도태될 대상들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부각물’, ‘장식품’, ‘폐물’이라는 단어들을 보고 저는 마음이 몹시 찔리고 괴로웠습니다. 리더가 된 이래로 저는 줄곧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늘 제 육을 생각하느라 하지 않은 구체적인 사역이 많습니다. 저라는 리더는 그저 장식품에 불과했고, 조금의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바로 폐물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거짓 리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본분을 받아들였지만 책임감이 없었고, 늘 힘들고 고된 것을 싫어하며 신경 쓰기 싫어했고, 일이 많고 바쁘면 마음속으로 반발심까지 가졌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제 몫의 사역도 잘 해내지 못해 사역을 지연시켰으니, 제가 이렇게 본분을 대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배반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교체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교체되면 그렇게 바쁘게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저는 소원대로 되었고, 교체되어 집에 머물며 육도 고생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제 마음은 어두웠고, 하나님께서 저를 한쪽에 제쳐두고 저를 버리시려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불안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겁이 나서 하나님께 뉘우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제 문제에 맞는 관련 하나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는데, 두 단락의 말씀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네가 정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너란 사람이 양심이 있고 이성이 있다는 뜻이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누가 시킨 일이든, 하나님 집에서 맡겨 준 일이든, 교회 리더 일꾼이 시킨 일이든 너는 이런 태도여야 한다. ‘본분을 나에게 맡긴 이상 그건 하나님의 높여 주심이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총을 베푸신 겁니다. 그러니 나는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비록 내 자질은 보통이지만 나는 이 책임을 짊어지기 원하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습니다. 잘 이행하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하고, 잘 이행하더라도 그건 공로가 아니라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본분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를 왜 원칙적인 문제라고 하겠느냐? 만약 너란 사람이 정말 책임감이 있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너는 교회의 사역을 짊어질 수 있고,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 만약 네가 본분을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관점도 바르지 않고, 하나님을 대하고 본분을 대하는 너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관점은 바로 건성으로 대하고 어영부영 넘기는 것이다. 그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네가 잘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너는 모든 일을 대충 때우는 태도로 대한다. 그렇다면 너는 리더 일꾼을 하기에 합당하지 않고 교회 사역을 할 자격이 없다. 게다가 내가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겠는데 너 같은 부류가 바로 못난 인간이고 결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는 폐인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폐인’이다. 바로 2급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고, 자질이 좋아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질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편안함을 즐기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며 바로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힘쓰는 것조차 기준에 맞지 않으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시켜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는 본분을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의 각기 다른 모습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한 부류는 자신의 자질이 어떻든 먼저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본분을 마음에 두며,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인데, 이는 인성과 이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육적인 편안함만 즐길 줄 알고, 어떤 고생도 하지 않으려 하고, 일이 좀 바쁘고 힘들면 피하고 게으름을 피우려 하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자질이 있어도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인품에 문제가 있으며,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폐인으로, 조만간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됩니다. 제 모습을 비추어 보니,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게으름뱅이, 폐인이었습니다. 리더가 된 이래로, 사역 스트레스가 좀 크고 마음을 써서 대가를 치러야 할 때면 저는 짜증을 내고 불평하며, 몸이 축날까 봐 걱정했고, 본분을 건성으로 대하며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뤘습니다. 제가 주로 책임진 복음 사역과 양육 사역에 대해 저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없었고, 복음 전도 인원과 양육 인원을 양성하는 사역도 점검하지 않고 시행하지 않아 복음 사역의 진도를 지연시켰습니다. 사역을 보고할 때도, 문제를 발견하면 실행 원칙을 찾아 교제하여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교회 정리 사역에 협력할 때도 저는 육을 헤아리느라 무책임했으며, 제명 자료를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서 하마터면 제명해서는 안 될 사람을 제명할 뻔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한 일관된 모습을 보면,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인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조금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교회의 이익을 지키지 않았으며,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거짓 리더였습니다. 본분이 아무리 바쁘고 사역이 아무리 중요해도, 저는 제 육을 만족시키고 싶었고, 일이 조금만 많아져도 우는 소리를 하며, 늘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본분을 거절하려 했습니다. 결국 아무 책임도 다하지 않았고, 사역까지 지연시켰으니, 힘쓰는 것조차 미흡했습니다. 제 몸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마음만 먹으면 완전히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제가 본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올바르고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여 협력할 수 있었을 때는 사역상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고, 문제를 보는 것도 비교적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육을 생각하는 상태 속에서 살며, 마음 쏟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을 만나면 피하고 싶었고, 마땅히 해야 할 사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점차 마음이 무뎌져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역까지 지연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자매들을 통해 저를 고발하게 하시고 결국 제가 교체되었으니, 이 일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났습니다. 제가 스스로의 인격과 존엄을 망친 것이고, 이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고 하나님도 열납하지 않으십니다. 이행할 수 있는 본분조차 다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확실히 일개 폐인에 불과하고 신뢰할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나는 왜 항상 편안함을 즐기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가? 늘 육체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하고 구했습니다. 하루는 두 단락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문제의 근원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네가 육을 만족시킬수록 육은 더 큰 욕심을 낼 것이다. 이번에 만족시키면 다음에 또 다른 요구를 하니,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사람은 육을 더 사랑하게 된다. 육은 항상 사치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있어 늘 네가 만족시켜 주길 바라고 그 안에서 즐기길 바란다. 먹고 입거나 화를 내거나 자신의 연약함과 나태함 등등을 헤아려 주길 바란다. 네가 육을 만족시킬수록 육의 욕망은 더 커지고, 나날이 방종해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지경에 이르면 사람의 육은 관념이 더 깊어져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받들며, 하나님의 사역도 의심하게 된다. 네가 육을 만족시킬수록 육의 연약함은 더 많아져 늘 아무도 너의 연약함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왜 이리 엄하십니까? 왜 언제나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지 않으시죠?”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이 육을 지나치게 만족시키고 지나치게 사랑하면 자신을 망치게 된다. … 옛날에 어떤 농부가 길에서 얼어붙은 뱀 한 마리를 보고 주워 품 안에 넣었더니 뱀이 깨어나 농부를 물어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의 육은 뱀과 같아 본질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 네가 육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을 때가 곧 목숨을 잃는 때이다. 육은 사탄에 속하는 것으로, 그 안에는 언제나 사치스러운 욕망이 들어 있어 항상 자신만 생각하고, 호강하길 원하며 안락한 생활을 탐내고, 초조해하지도 않은 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어느 지경까지 육을 만족시키다 보면 종국에는 육에 삼켜지고 만다. 다시 말해, 네가 이번에 육을 만족시켰다면 육은 다음에도 네가 만족시켜 주길 바란다. 육 안에는 늘 사치스러운 욕망과 새로운 요구가 있으며, 네가 육을 생각하는 기회를 틈타 육을 더욱 아끼며 육의 안락 속에서 살게 한다. 그러니 네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 너 자신을 망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제가 육체를 생각하며 그렇게 타락하게 살았던 이유가, 바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인생은 짧은데, 어찌 제때 즐기지 않으랴’와 같은 사탄의 독소가 제 안에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육적인 편안함을 누리는 것을 인생의 추구 목표로 삼았고, 사람은 마땅히 자신을 잘 대해주고 육을 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압박감이 좀 크고 마음을 많이 써야 하면 저는 하지 않으려 했고, 육이 고생스럽고 힘든 것에도 반발하며 그렇게 하면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들여야 하는 경우, 저는 그 일을 한쪽에 제쳐두고 쉬운 일만 골라서 했으며, 이 문제들을 즉시 해결하지 않으면 사역에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정리 사역에 협력할 때도 마찬가지로, 육을 생각하느라 제명 자료를 검사할 때 제대로 하지 않아 사람을 잘못 제명할 뻔했습니다. 이것이 어디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겠습니까? 그야말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문제를 반성하지 않고, 일이 조금만 바빠도 불평하는가 하면, 심지어 교체되어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고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늘 자신을 봐주고, 언제나 제 육을 고려했습니다. 제가 사탄의 독소에 깊이 해를 입어 점점 더 타락했고, 이기적이고 간사하며, 인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리더가 될 기회를 얻어 많은 사람과 일, 사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구하고 진입해야 할 진리 원칙도 많았고, 사람을 분별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제 패괴와 부족함이 드러나, 자신을 반성하고 진리를 실행하여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도록 재촉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탄 성품에 따라 살며 편안함을 즐기고, 본분에 무책임했으며, 자꾸만 육을 생각하느라 사역을 지연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자매들을 통해 제게 지적하고 교제해 주셨을 때도 저는 목을 뻣뻣이 세우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제 본직 사역을 잘 해내지 못해 사역을 지연시켰으니, 제가 이렇게 본분을 대하며 남긴 것은 과오이자 악행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비로소 본분을 이행하며 육을 생각하고 편안함을 즐기는 것이 정말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방면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고, 여전히 전처럼 본분을 어영부영 무책임하게 이행하면서 늘 안일함 속에서 살면 악을 더욱 많이 저지르게 되어 결국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며 편안함을 즐기는 것의 해악과 결과를 보고 나서, 저는 더는 이렇게 패역하게 살고 싶지 않고, 하나님께 회개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제 내적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고, 선거에서 또다시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회개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매우 감사드리며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주로 복음 사역을 책임졌는데, 낯선 곳에 막 도착하여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역을 잘 해내려면 대가를 좀더 많이 치러야 했습니다. 얼마 동안 협력하자 조금 힘이 들었습니다. 특히 매일 점검해야 할 사역이 비교적 많아 육이 고생하게 될 때면, 저는 또다시 한 가지 사역을 하면서 신경도 덜 쓰고 에너지도 덜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나왔을 때 저는 제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고 싶다면 반드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우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눈에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아무리 패괴 성품이 드러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서 해결할 수만 있다면, 또 책망과 훈계를 받고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이것은 완전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하는데, 이 요구가 너무 높아서 도달하기 어렵고, 너에게 그런 의지와 분량도 없고, 네 믿음도 너무 작다면 우선은 주변의 형제자매들에게 네가 좋은 사람, 옳은 사람,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보여 줘라. 네가 비교적 정직한 사람이라서 잘못이 있으면 고칠 줄 알고, 자신의 패역한 상태를 발견하면 얼른 바로잡을 줄 알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발견하면 얼른 진리를 구하고, 사람들과 교제하고, 또 인식한 뒤에는 회개할 줄 안다는 사실을 보여 줘라. 이렇게 추구하면 발전이 있을 것이다. 우선 형제자매들에게 네가 좋은 사람, 옳은 사람, 생명 진입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 주고, 그런 다음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라. 이렇게 실행하면 쉽게 진입할 수 있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비교적 실제적이다. 먼저 형제자매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냐? 우선 본분 이행에서부터 보자면, 본분 이행은 몇 가지 요구 기준에 도달해야 하느냐?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기꺼이 고생하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 일을 진지하게 대하고, 건성으로 일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좀 더 기준을 높이자면, 일 하나하나 거기에 해당하는 원칙을 찾은 다음, 그 원칙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 누가 한 말이든 관계없다. 설령 네가 가장 우습게 여기는 형제자매가 얘기한 원칙일지라도, 그게 옳은 말이고, 진리에 부합한다면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여 보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관념을 저버려 보려는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습니다.) 입으로만 본분을 잘하겠다고 하는 건 쉽다. 입만 열면 된다. 하지만 합격된 본분 이행에 이르기는 어렵다. 그러려면 일정 부분 대가를 치르고, 버려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가장 기본적으로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하루에 남들보다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고, 더 오래 지속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본분을 잘하고 싶다면 속으로 항상 어떻게 해야 본분을 잘할지, 본분 이행할 때 어떤 진리를 갖추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 기도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고, 하나님께 깨우치고 인도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저녁에 남들이 쉴 때도, 너는 따로 시간을 내서 잘 생각해 보아라. 오늘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스스로가 어떤 패괴를 드러냈는지 반성하고 길을 찾은 뒤 비로소 휴식에 든다면 그날 하루는 수확이 있고, 헛되이 보내지 않은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해 내지 못하면 밥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수고요, 이것이 바로 대가다. 네가 남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대가를 치르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가며 진리를 향해 노력한다면, 이것이 실제적인 대가가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주로 그 사람이 진리를 좋아하고 추구하는지,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또한 그 사람이 본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하는지, 진지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기꺼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는지, 문제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속으로 이런 본분에 관한 일들을 궁리하고, 본분을 중요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고, 자신의 육체를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인성이 좋은 사람이고 신뢰할 만한 사람입니다. 저 자신을 대조해 보니 하나님의 요구와 거리가 너무 멀었고, 특히 제가 이전에 육을 생각하느라 사역을 지연시키고 과오를 남긴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또 제게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으니, 더는 이전처럼 해서는 안 되고, 제대로 회개해야 합니다. 제 사역 능력이 좀 부족하면,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더 많은 마음과 정력을 쏟아 하나님을 의지하여 협력하고, 모르는 것은 구하고 교제하면 됩니다. 그 후 협력하는 과정에서, 제가 잘하지 못하는 사역이 하나 있었는데, 진리 원칙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했고, 시간과 정력 면에서도 협력하는 자매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과 사역에서의 문제를 보고 저도 마음으로 묵상하고 구하며, 제 능력껏 도와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했을 때, 제 마음은 매우 안정되고 평안했습니다.

이전에는 늘 사람은 살면서 마땅히 자신을 잘 대접해야 하고, 편안하고 안일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비로소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너희가 말해 보거라.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 한 사람이 평생 병과 죽음을 모면하려 하거나 몸을 잘 보살펴서 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려는 생각밖에 없다면,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이겠느냐?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가 아니다. 그럼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힘이 닿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다. 최소한 양심에 참소가 없고, 본인의 양심에 떳떳하며,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태어난 가정, 교육 수준, 자질을 떠나 사람의 생존에서 알아야 할 도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걸어야 할 길, 사람이 살아야 할 삶, 의미 있는 삶 등 인생의 참된 가치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에는 복음 전파 사역에 온 힘을 기울이며 평생을 쏟아붓고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사람을 얻은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고 가치 있다고 위안을 느낀다. 그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하거나 생을 마감할 때 그가 한 이 모든 일과 걸었던 길을 돌이켜 보면서 마음에 위로받고 참소가 없으며 아쉬움도 없다. 그리고 교회 리더를 맡거나 한 측면의 사역을 담당할 때 여력을 남기지 않고 자기 역량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온 힘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해야 할 사역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며 대가를 치르는데 많은 사람이 연약하고 부정적일 때 그의 양육과 인도, 도움과 붙듦 덕분에 강건해지고 일어서며,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다. 이 외에도 그가 리더를 맡는 동안 여러 중요한 사역을 완수하여 많은 악인을 제명하고 적지 않은 하나님의 선민을 보호하며 일부 막대한 손실을 만회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그가 리더를 맡은 기간에 이룬 것이다. 자신이 걸었던 길과 그동안 했던 사역, 치렀던 대가를 돌이켜 볼 때 마음에 아쉬움도, 참소도 없고,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으며, 가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낀다. 이러면 얼마나 좋으냐! 이것이 성과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끼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추구하여 얻게 되는 효과이자 수확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무엇이 의미 있는 인생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잘 이행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행하는 본분은 모두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자신의 미약한 힘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일이고 가장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방인들은 평생을 잘 먹고 잘 입기 위해 삽니다. 설령 육적으로 잘 누리고, 별로 고생도 하지 않고 자신을 살찌우겠지만, 이 세상에 한번 와서 사람이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지, 어떻게 살아야 의미가 있는지 모르니, 그런 인생은 별 가치가 없고 헛되이 살다 가는 인생입니다. 이전에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언제나 제 육을 고려하여 문제와 어려움에 부딪히면 피하고 싶어 하고,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에 육은 별 고생을 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마음속에는 채울 수 없는 아쉬움과 하나님에 대한 빚진 마음이 남았습니다. 육적으로 아무리 잘 누리고 편안해도 사람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없으며, 자신의 책임과 본분을 잘 이행해야 비로소 안정되고 담담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본분을 이행할 동력이 생겼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육적인 고생이 필요할 때 저는 더더욱 이것이 제 본분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때로는 좀 바쁘고 힘들면 적절히 조절하고, 제 몸 상태에 따라 힘을 다해 일했더니 그렇게 어렵거나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또한 깨달은 것은, 리더로서 신경 써야 할 일은 더 많지만, 사역 중의 각종 문제를 처리하거나 형제자매들이 내적 상태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도움으로써,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이 모두 특별한 은혜라는 점입니다. 지금 제가 이 정도의 인식을 얻고 변화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마침내 본분을 이행하는 법을 깨닫다

이탈리아 신청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마침내 본분 이행의 의미를 깨닫다

한국 쉰추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한다는 것은 사실 사람에게 원래 있는 것, 즉 사람이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이 된다. 섬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은 단계적으로...

어느 거짓 리더의 깨달음

중국 양판2019년에 전 리더로 선출 됐어요. 본분을 잘 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매일 예배드리고 본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역 진도를 체크하는 데 집중했어요. 알차게 사는 기분이었죠. 얼마쯤 지나 사무적인 일을 처리해야 하면서 일도 늘어났고,...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