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본분 이행의 의미를 깨닫다

2020.10.4

한국 쉰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한다는 것은 사실 사람에게 원래 있는 것, 즉 사람이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이 된다. 섬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은 단계적으로 체험하고 심판받는 과정에서 점점 줄어들므로 본분을 가로막거나 본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섬기는 과정에서 폐단이 생길까 봐 섬김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가장 나약한 자다. 사람이 섬기는 과정에서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하기까지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은 것이다. 그런 자는 이른바 ‘둔재’이자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자를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하겠느냐?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어 문드러진 자가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본분 이행의 참된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습니다. 어떤 재능과 은사를 가졌든 자기가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잔머리를 굴리거나 대충 하지 않고 하나님 요구에 따라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부족한 점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채워지고, 본분도 점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찬양 본분을 맡았습니다. 본분 초기에 팀 리더가 한 곡은 저더러 기타 반주도 하고 리드 보컬도 맡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건 노래만 하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에도 솔로 찬양 동영상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찬양을 할 때 공연에 집중하면 기타 코드에서 실수하고, 기타 코드에 집중하면 표정이 엉망이 돼서 결국 당시 촬영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같은 본분을 맡으라고 하니까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기도 하고, 다들 제가 그 찬양을 잘 소화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본분을 받아들이고 잘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본분을 수락했습니다. 이틀 연습했더니 노래와 공연은 어떻게 할지 가닥이 잡혔지만 기타 코드는 너무 복잡해서 암기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촬영을 하루 앞둔 전날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연습을 더 하기에는 이미 늦은 듯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연습했다가는 손이 퉁퉁 부을지도 모르는데,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코드를 다 외운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노력할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난처한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없는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때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촬영하는 사람한테 되도록 제 손을 찍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든 코드 연습을 하느라 애를 먹지 않아도 되고, 촬영은 잘 마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한편으로는 좀 불안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것은 본분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코드 때문에 실수해서 촬영을 다시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시간이 촉박한데 곡이 이렇게 어려우면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신경도 많이 써야 해.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너무 잘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지. 그리고 내가 이러는 것도 촬영을 빨리 마치려고 그러는 거니까 다들 이해할 거야.’ 그래서 노래와 표정 연습을 주로 하고 기타 연습은 곁들이는 정도로만 했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동영상 촬영을 하는 날 저는 촬영을 맡은 형제에게 제 손을 너무 자주 클로즈업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감독이 제가 연주한 코드가 몇 군데 틀렸다면서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속이 뜨끔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번에도 잘못돼서 설마 다시 촬영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황급히 편집자에게 달려가서 다른 방도가 없는지 물었더니, 형제는 시도는 해 봤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순간 재촬영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사역에 지장 주었다고 생각하니까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이번 촬영의 실패 원인에 대해 논의할 때, 저는 어떤 생각으로 기타 코드를 연습했는지 실토했습니다. 그러자 한 자매가 저를 나무랐습니다. “코드를 다 익히지 못했다고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촬영을 다시 해야 하니까 사역이 지연되잖아요. 너무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군요!” 저는 그 말에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무성의한 거지? 내가 코드를 못 잡는 것도 사실이잖아. 나도 빨리 촬영을 끝내려고 그런 건데, 내 손을 촬영 안 했으면 될 거 아니야?’ 저는 반성하지 않고 속으로 따졌습니다. 그때 다른 자매도 거들었습니다. “코드 잡는 게 잘 안 되면 촬영을 며칠 미루더라도 더 연습하면 되지요. 그런데 자매님도 그렇게 대충 하면 안 되죠. 자매님이 리드 보컬인데 자매님 손을 가까이 찍지 않으면 본분 효과가 좋겠어요?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 불성실하잖아요!” 연이은 ‘너무’라는 말에 속이 뜨끔했습니다. ‘다들 내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했다고 하는 걸 보면 나한테 정말 문제가 있는 걸까? 나도 잘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결국 내 기타 코드가 틀려서 재촬영해야 하고 사역이 지체됐어. 어찌 됐든, 내 책임이잖아.’ 이렇게 생각하니까 속이 상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스스로를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는데, 정말 크게 와닿았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본분을 가볍게 여기고 대충 이행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느냐?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다. 본분을 이행한 결과가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은 본분을 대하는 너의 태도에 흡족해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네가 정상적으로 구하고 협력한다면, 본분을 이행하는 데 전념한다면, 본분을 행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일정 기간 그 일을 위해 신경 쓰고, 마음을 들이고, 숙고하고, 시간을 들여 자료를 찾으며 본분을 이행하는 데 몸과 마음 모두를 바친다면, 네가 그렇게 협력한다면, 하나님은 네 앞에서 인도해 줄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힘을 쓸 필요는 없다. 네가 협력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때, 하나님은 이미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 놓았을 것이다. 네가 잔꾀를 부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도중 마음을 바꿔 잘못된 길로 빠지면 하나님은 네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너는 이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너는 자격도 없고 쓸모도 없다. 저 옆으로 비켜서라. 너는 게으름 피우는 걸 좋아하지 않느냐? 잔꾀 부리기 좋아하지 않느냐?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니 그냥 쉬어라.” 하나님은 이번의 은혜와 기회를 다음 사람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손실이겠느냐, 아니면 이득이겠느냐? 엄청난 손실이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 상태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리드 보컬을 맡았을 때, 저는 연습을 잘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취약한 부분인 기타 코드에 관해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해서 수준을 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연습을 게을리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잔머리를 굴려 촬영자에게 손을 클로즈업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슬쩍 넘어갈 줄 알았는데, 결국 사역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였습니다! 본분을 맡게 됐을 때, 어떻게 하면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 곡을 잘 연주해서 하나님을 증거할지는 생각하지 않고. 잔머리를 굴려 쉬운 길을 택하는 바람에 촬영이 끝난 동영상을 다시 촬영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무성의했을까요?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신경을 썼더라면, 하나님 집 사역에 손해를 입히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저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또 기회가 온다면, 다시는 잔머리를 쓰지 않을 거야. 아무리 힘들고 많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코드 연습을 열심히 해서 촬영을 제대로 해야지.’

그 후 형제자매들이 의논 끝에 저에게 코드 연습할 시간을 이틀 더 주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 소식에 무척 감동했습니다. 저는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열심히 코드를 외우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연습을 하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컸습니다. 제 실력에 이틀 연습해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그럴수록 코드는 더 생각이 안 나고,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성과는 미미했고, 손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점심 먹고 쉴 시간이지만, 코드 연습도 제대로 안 됐으니 쉬는 것은 포기하고 남은 시간 내내 코드 연습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하니, 하나님도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후가 되자 어느새 섹션별로 코드 외우는 법을 깨치게 된 것입니다. 결과가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런데 연습을 오래 하다 보니 손이 부어서 다시 게으름을 피우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또 건성건성 넘기려는 저 자신을 보니까 하나님 말씀이 떠올라서 얼른 그 부분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힘을 쓰고 헌신해야 하며 몸과 마음과 시간을 바쳐야 하는 본분을 마주할 때, 어떤 것도 숨기거나 잔꾀를 쓰거나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여지를 남기거나 요령을 피운다면 절대 그 일을 잘해낼 수 없다. ‘아무도 내가 요령 피운 걸 못 봤어. 정말 다행이야!’, 이것은 대체 어떤 생각이겠느냐? 너는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까지 속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하나님은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아십니다.) 사람도 보통 너와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네가 항상 요령을 피우고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며 자기 노력의 50~60%, 기껏해야 80%만 쏟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보고도 못 본 체하면서 모든 일을 아주 어설프게 하며 전혀 진지하게 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너는 일을 시키면 좀 노력을 기울인다. 네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약간 열심히 하고, 주위에 확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요령을 피우기 시작한다. 책망을 받으면 그 일에 마음을 좀 쓰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리라 생각하면서 일하는 내내 끊임없이 졸며 기회만 되면 일을 대충 해치우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사람은 신뢰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이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려면 감독이 필요하다. 그는 원칙이 필요 없는, 평범한 일은 할 수 있지만, 그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면 자칫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당신은 속아 넘어갈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간파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의 존엄과 인격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아무도 그를 못 믿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믿을 수 있겠느냐? 그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겠느냐? 그러한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그동안 제가 얼마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적당히 연습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최고 수준에 이를 때까지 애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건 최선을 다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꾀를 부리고 건성으로 본분을 행하는 모습은 신뢰성이 떨어지고 인격이 부족한 것입니다. 전에는 제가 열심히 헌신하고 모든 걸 내려놓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충성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본분을 이행할 때 최고의 결과는 추구하지 않고, 대충 하려는 마음은 이리도 심각하니 차마 본분을 이행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누가 저를 신뢰할까요? 결국은 저의 인격과 존엄을 다 잃는 것 아닐까요? 이미 한 번 과오를 저지른 이상, 이번에도 건성으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인격과 존엄을 잃는 것에 비하면 손이 좀 붓고, 좀 덜 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코드 연습을 제대로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가 보였습니다. 그날 자정 넘어서까지 연습을 하니까 코드를 거의 다 외울 수 있었습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다음 날 하루를 더 연습해서 코드를 완전히 익혔습니다. 촬영할 때는 단계마다 진지하게 임하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드렸습니다. 촬영은 한 번 만에 끝났습니다. 그런 결과가 나오니까 평안이 찾아왔고, 진리를 실천한 달콤함을 맛보았습니다.

얼마 후 저는 작곡 본분을 맡게 됐습니다. 그런데 작곡을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최근에 제작하는 록 장르는 저도 처음이라 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본분이고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월말까지 두 곡을 완성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밤늦게까지 작곡을 해 가며 피곤할 때는 육을 저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좋은 멜로디가 떠올라 곡 하나를 빨리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완성된 곡을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들려주었더니, 록 분위기가 물씬 난다면서 괜찮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코러스를 조금 더 다듬으면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난들 썩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니 스스로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 형제자매들도 문제없다고 했으니까 이 정도면 무난해. 더구나 이런 장르는 나도 이제야 배웠으니까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당연하잖아. 이대로 팀장에게 넘겨주지 뭐.’

며칠 후 팀장이 제가 만든 곡이 스타일은 맞는데 멜로디가 밋밋하니까 가사를 생각해 보면서 좀 더 다듬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 말에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이런 장르 작곡은 이제야 배웠는데, 나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냐? 안 그래도 작곡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다시 공들여 수정하려면 꽤 애를 먹을 텐데. 게다가 어떤 효과가 나올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아예 곡을 처음부터 다시 썼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팀장이 멜로디가 단조로워서 동요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했는데 한 곡도 통과가 안 됐어. 어떡해야 하지?’ 나중에 멜로디를 몇 개 더 만들었는데 역시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무척 속이 상했습니다. 월말까지 두 곡을 완성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한 곡도 못 끝내고 본분에도 성과가 없으니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중에 예배 때 팀장이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만든 곡은 꽤 참신하고 분위기도 좋은데, 왜 한 곡도 통과를 못 할까요? 그건 바로 자매님이 가사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 가사와 멜로디가 잘 안 맞은 거고, 수정할수록 문제가 더 커져요.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 집 사역이 지체되고 말 거예요.” 다른 형제도 한마디 했습니다. “자매님은 평소에 녹음할 때도 노래를 제대로 안 불러요. 악보랑 안 맞을 때도 있고요. 그건 건성으로 하는 거지요!” 형제자매들에게 책망과 질책을 들으니까 괴롭고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전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할 뿐 충성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세요.”

그러고 나서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그렇게 경솔하고 오만하며 무책임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건달 기질이다. 모든 일에서 그들은 “대충 맞는 것 같아.”, “그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아마도’, ‘십중팔구’ 식의 태도이다. 형식적으로 일을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고, 할 수 있는 한 일을 대충 해 나가는 수준에서 만족한다. 일을 진지하게 대하거나 세밀함을 추구할 필요도 없으며 원칙을 구하는 것은 더욱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의 발현이겠느냐? 이를 교만함이라 해도 옳고, 방종함이라 해도 아주 적절하지만, 가장 알맞게 표현하는 어휘는 ‘건달’이다. 건달 기질은 대다수 사람의 인성에 존재한다. 모든 일에서 대충 건성으로 하려 하고, 기만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우며, 문제를 살피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발각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얼렁뚱땅 넘어간다. 번거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일을 굳이 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숙달하는 경지까지 배우는 일이 없으며 배우는 일에 전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대충 배워 전문가 행세를 하고 그걸로 때우려고 한다. 사람들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지 않으냐? 이것이 옳은 태도겠느냐? 그러한 사람들이 사람, 일, 사물에 대해 취하는 이런 태도는 한마디로 ‘때우는 것’이며, 그러한 건달 기질은 패괴된 인류에게 다 존재한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만 순종하게 한다(2)> 중에서)사람의 귀천을 어떻게 구분하겠느냐? 사람, 사건, 사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방식을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인격과 존엄이 있는 사람들은 행동에 있어 세심하고 진지하며 마음을 쓰며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인격과 존엄이 없는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무성의하며 항상 속임수를 쓰려 하고 그냥 대충 넘어가려 한다. 그들은 어떤 기술도 숙달할 정도로 배우지 못하며, 아무리 오래 배워도 기술이나 업무 면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에게 진지하게 따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이지만 진지하게 따지면 곧 그들은 허둥지둥하며 진땀을 흘리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들은 인격이 비천한 사람들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만 순종하게 한다(2)>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가 좋은 결과를 구하지 않고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 이유는 제가 가진 건달 기질 때문이란 점을 깨달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성실하고 꼼꼼하게 하지 않고, 대충대충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진리의 원칙을 구하여 일을 제대로 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맞게 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최근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찬양을 하든 작곡을 하든 어려움에 부딪혀서 신경 써야 하거나 수고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 때면, 더 잘하려고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었습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본분을 더욱 잘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자’, ‘이 정도면 됐지, 뭐’ 하면서 자신과 타협했습니다. 그래서 사역에서 진전도 없고, 본분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결실도 맺지 못하고, 일을 다시 하게 만들어 교회 사역을 지체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그러니 합격한 본분 이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명백히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것입니다. 그 순간 제 건달 기질이 너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렁뚱땅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으니 정말 인격과 존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지하고 꼼꼼하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진리 원칙을 구하고 하나님 요구대로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바로 인격과 존엄을 갖춘 사람이자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입니다. 그에 비추어 보니 저 자신이 어찌나 낯 뜨겁고 부끄러운지, 사람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형제자매를 통해 저를 훈계, 책망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를 구원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저는 계속 이렇게 대충대충 해 나가다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해서 하나님께 미움받고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인류를 위한 것이고, 사람의 협력은 하나님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다 한 다음에는 사람이 전력을 다해 실행하고 협력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에 자신의 온 힘을 다하고 충성을 바쳐야지, 관념을 계속 늘려 가거나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데, 사람은 왜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 못하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는데, 사람은 왜 조금도 협력하지 못하느냐?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사역하는데, 사람은 왜 하나님의 경영을 위해 자신의 본분을 조금도 이행하지 못하느냐? 이렇게까지 사역했음에도 너희는 보고도 행하지 않고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자는 모두 침륜될 대상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사람은 왜 지금까지도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께는 사역이 첫째이고, 자신의 경영 사역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첫째이다. 이런 것은 너희 모두가 알아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되새기니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려고 두 번이나 성육신하여 커다란 수모를 당하시고, 또 세대를 거쳐 버림받으시고,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심각하게 패괴되고 무감각한 우리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진리를 선포하여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질이 부족해서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더디지만, 하나님이 진리를 교제하실 때는 무척 진지하고 구체적이었습니다. 비유나 예를 들어 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명을 책임지시고, 우리를 꼭 온전케 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 성품과 고심을 알고 나니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본분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하니까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더는 본분을 대충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어떡하면 건성으로 하는 버릇을 고치고 정성껏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지를 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사명이다. 그럼 어떻게 본분을 이행해야겠느냐? 하나님의 요구와 기준, 진리의 원칙에 따라 행해야지, 사람의 주관적인 바람대로 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이러면 이행한 본분이 합격인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의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얼마간 힘을 쓰고 육체적인 고통을 겪는 것은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부담을 느끼며, 자신이 이행하는 본분의 중요성을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 이러한 부담과 책임을 갖고 모든 일에 임하되, 마음으로 행하여 하나님이 네게 준 그 사명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이 너를 위해 치른 그 모든 대가와 너에 대한 기대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형식을 따르는 것은 소용이 없다. 그것은 사람을 우롱하는 행위다. 너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본분 이행에 진실한 대가와 충성심이 없다면, 그것은 전부 합격한 본분 이행이 아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최소한 양심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말씀을 보고 나서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본분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므로 하나님 요구대로 행하고 진리 원칙대로 행해야 합니다. 쉬운 것만 고르거나 자기 멋대로 하는 게 아니라 정석대로 해야 합니다. 본분 이행이 합격점에 도달하려면, 외적인 노력과 고생만으로는 안 됩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 진지하게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또 항상 구하고 고민하고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고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뒤로 작곡할 때는 더 신중하게 가사를 음미했고, 분위기에 맞는 곡을 몇 개 찾아 들어 보면서 어떤 멜로디로 그 분위기를 표현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가사의 의미와 멜로디의 흐름, 곡의 분위기 등 모든 걸 이해한 후에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형제자매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나서 두 번 정도 수정하니까 곡이 금방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정한 다른 곡도 통과되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곡 하나를 완성해 낸 것을 보면서 전에 본분을 건성으로 했던 게 더 마음에 걸리고 후회되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사탄에 의해 얼마나 패괴됐고, 건달 기질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상황을 마련하시고 형제자매들을 통해서 저를 책망하고 훈계하신 덕분에 저는 진리를 구하여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충성 다해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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