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했던 나의 변화

2020.10.4

샤오첸(小倩) 사이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행한 각 단계의 사역은 엄한 말씀이든 심판과 형벌이든 할 것 없이 전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며, 너무나도 적절한 것이다. 하나님은 만세와 만대에 이런 사역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 너희에게 이런 사역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한 것이다. 너희는 내적으로 고통을 조금 겪었지만, 늘 마음이 든든하고 평안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이번 단계 사역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너희의 행복이다. 나중에 무엇을 얻게 되든 어쨌든 오늘날 하나님이 너희에게 행한 사역이 전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연단을 겪지 않아 늘 겉으로만 행하고, 겉으로만 열성적일 뿐, 성품이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현재 사람의 내면에는 여전히 방자하고 오만한 것들이 많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성품이 많이 안정되었다.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는 것 역시 너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 당시에는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 네 성품이 변화했을 때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행한 사역이 지극히 지혜로웠다고 느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전에는 기꺼이 대가를 치르면서 열심히 본분만 이행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줄 알았어요.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받거나 성품 변화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교만한 성품에 따라 독단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죠. 결국 형제자매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 사역에 피해를 주게 됐는데, 그제서야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없이는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될 수도, 바뀔 수도 없고, 하나님이 흡족해하실 만큼 본분을 잘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러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정말 구원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거든요.

전 2016년에 세트 디자이너라는 본분을 맡게 됐을 때 신나서 이렇게 생각했죠. ‘난 실내 디자인과를 나왔고, 4년이라는 경력도 있으니까 본분에서 내가 배운 걸 다 발휘해 하나님을 흡족게 해야지.’ 전 형제자매들과 실무에 필요한 것을 배우면서 원칙에 대해 서로 교제했어요. 얼마 정도 지나니까 제 본분에서 성과가 나기 시작했고 이런 칭찬을 듣기도 했죠. “이 세트 정말 잘 만들었네요. 진짜 같아요.” 전 다 하나님의 인도라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당연하지, 그걸 누가 디자인했는데! 난 전문가야.’라고 생각했어요. 점점 저는 목에 힘이 들어갔고, 목소리도 더 커졌어요. 남들이 본분을 이행하다가 실수하면 그 사람을 무시했고 소품을 배치할 때는 상의하지도 않았어요. 전 디자인을 공부했으니까 그럴 필요도 없고, 어차피 다들 제 의견에 따를 거니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리고 혼자서 레이아웃을 구상해서 감독님과 상의했어요.

팀장이 된 후에는 형제자매를 더 무시하게 되더군요. 한번은 식당 장면 세트장을 준비하고 있는데, 장 형제가 의견을 냈어요. “출입문이 낮아 별로인 것 같다고 좀 더 높이자고 했어요.” 근데 전 수긍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이런 세트장 디자인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음식점 출입문 높이도 모르겠어? 당신이 세트장 몇 개나 해봤다고 그러는 거야? 디자인 공부도 안 했고 실무 경력도 없으면서, 감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 전 짜증 내면서 장 형제 의견을 묵살했고, 팀원들에게 저의 생각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카메라맨이 출입문을 보더니 문이 너무 낮아서 샷이 가려지니까 그대로는 촬영할 수 없다는 거예요. 결국 문을 다시 만들 수밖에 없었죠. 또 한번은 벽장을 만들어야 해서 천 형제에게 제가 그린 도안대로 만들라고 했는데, 형제는 중심부가 너무 넓어 보인다고 좀 좁게 만드는 건 어떠냐고 했어요. 저는 ‘내가 온라인에서 참고 자료를 많이 봤는데, 이런 벽장은 이 비율이 맞아. 내가 디자인한 대로 하면 돼.’라는 생각에 계속 제 의견을 고집했어요. “무슨 소리예요? 제가 드린 도안대로 만드세요.” 하지만 결과물이 나온 후, 다들 중심부가 너무 넓어 이상하다고 하는 바람에 천 형제가 다시 짜느라 시간이 걸렸고, 촬영도 지연됐어요. 그런데도 전 반성하지 않고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오히려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재작업하느라 시간 좀 들이고 재료를 좀 더 쓴 것뿐이잖아. 그게 대수인가?’라고 생각했죠.

한번은 예배가 끝나고 장 형제가 저에게 충고해 줬어요. “자매님과 협력하면서 보니까, 자매님은 자기 주장대로만 하더군요. 우리가 내놓은 의견은 전부 수용하지 않았어요. 사실 좋은 방안들이 있었는데, 다 묵살해 버렸죠. 말할 때도 지위를 이용해 억누르면서 계속 자매님 방식대로 하라고 강요해요. 그건 다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말로는 인정한다고 했지만 속 생각은 달랐죠. ‘그래, 내가 교만하긴 한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며칠 후, 류 형제도 저의 교만함을 책망하면서 제가 남의 말을 무시하고 구속을 준다고 했어요. 전 형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욱 하는 마음부터 생겼어요. ‘다들 나보다 못해 가지고 뭘 믿고 날 책망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도저히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기도할 때조차 변명만 가득 늘어놓았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전 영적으로 더 침체됐고, 디자인할 때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전 여전히 반성할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철제 의자에 정강이를 부딪혔는데, 길게 찢어져서 병원에 가 일곱 바늘이나 꿰매야 했죠. 전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제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반성을 했어요. 돌아보니, 형제자매들이 충고하거나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줄 때, 저는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따지면서 순종의 자세가 없었어요. 전 정말 너무 강퍅했어요. 그제야 저의 패괴된 성품을 깨닫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하루는 아침 묵상 시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읽었어요. 『누구를 보더라도 자신만 못하다고 여긴다면 너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것인데, 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네가 하늘보다는 약간 낮고 땅보다는 훨씬 높은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는 결코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 않다. 지구상의 어떤 이성적인 사람보다 어리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열등감을 느낀 적이 없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군다. 사실 너는 전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너는 아예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도 하늘의 축복만을 바라보며 경작하는 농부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네 인생을 몹시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평판도 알지 못하며, 주제 파악을 못 한다. 너는 정말 ‘대단’하구나!』(≪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이 말씀을 보니까 양심에 찔리고 죄책감이 크게 들었죠. 말씀 하나하나가 제 민낯을 드러내는 것 같았죠. 돌아보면, 저는 세트장 디자인 본분을 시작한 후로 이건 자신이 전공한 분야고, 또 경력이 있다는 걸 내세워 스스로를 없어서는 안 되는 인재처럼 여겼어요. 그래서 형제자매들과 협력할 때도 콧대 높게 굴면서 제가 전문가라는 생각에 주변 사람을 다 무시했어요. 저는 형제자매들과 의논하지 않고 혼자 다 결정하려고 했어요. 다들 디자인을 잘 모르니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거든요. 마지못해 뭔가 상의할 때는 제가 전공자라 더 많이 알고 시야도 넓다고 생각해, 형제자매들의 제안을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묵살해 버렸어요. 정말 기본적인 존중조차 하지 않았던 거예요. 또 형제자매들이 저더러 교만하다며 반성하라고 권면할 때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하기만 했어요. 그동안 교만한 성품만 드러내며 살았더라고요. 교만한 성품으로 살다 보니 형제자매를 무시하고 깔보고, 형제자매들한테 구속과 상처만 안겨 줬어요. 또 사역에서는 교만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제 의견을 강요했어요. 결국, 여러 번 재작업하게 돼 교회 사역에 방해만 됐어요. 정말 악행을 저질렀더라고요. 이런 걸 깨닫게 되니 그제야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더는 교만한 성품대로 하지 않겠다고 회개하면서 기도했어요.

그 후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의식적으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형제자매들 의견에 귀 기울이며 제 부족점을 보완했어요. 가끔 도안을 그릴 때 형제자매들이 제 생각과 다른 제안을 많이 내놓으면 무시하려고 하다가도, 제가 또 교만함을 드러내는 걸 느끼고 바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제 생각을 내려놓고 패괴 성품으로 살지 않도록 인도해 달라고요. 또 하나님 집 사역에 가장 이익이 되는 제안을 따르려고 했어요. 주변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니까 제작한 소품들이 더 실용적이고 기능도 훨씬 좋았고, 제작 시간도 단축됐어요. 그제야 하나님 말씀을 행했을 때의 달콤함을 느끼게 됐어요. 하지만 교만한 본성에 대해 깊이 깨닫지 못했고, 자아 인식도 부족했어요. 그래서 몇 개월 후, 세트장을 잘 만들었단 칭찬을 듣고, 본분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되니 어느새 교만한 성품이 다시 고개를 들었어요.

한번은, 부잣집 세트장을 만들어야 했어요. 부잣집이면 인테리어를 프리미엄 급으로 해놓아야 주인공 신분에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형제자매들에게 제 아이디어대로 만들라고 했어요. 그때 장 형제가 너무 현대적이라 주인공의 시대적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죠. 그러니 전 또 언짢아지면서 이렇게 생각했죠. ‘당신이 뭘 알아? 이런 걸 융통성이라고 하는 거야. 이건 주인공의 지위에 맞게 해야지, 시대만 고려하면 안 된다고. 이건 부잣집이 어떤지를 몰라서 하는 소리 같은데, 생각이 너무 구식적이잖아!’ 그리고 장 형제에겐 이렇게 말했죠. “제가 알아서 그 시대에 맞게 맞출 거니까 이대로 제작하시면 돼요.” 그런데 얼마 후에 천 형제까지 창문이 너무 현대적이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짜증났고 왜 다들 ‘그렇게 구식이고 융통성이 없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전 화를 억누르면서 자기 의견을 고집했더니 형제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세트장이 완성됐을 때, 감독이 보고는 인테리어가 현실적이지 못하고 너무 화려해서 영화에 등장하는 시대와 맞지 않아서 다시 만들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저는 인정할 수 없었고, 그냥 다들 보는 눈이 없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대부분이 안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다시 하겠다고 했어요.

또 한번은, 둥베이 지방의 80년대식 구들방을 만들어야 했어요. 그 얘기에 저는 예산이 많이 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장 형제는 자기가 직접 만들면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하면서 벌써 설계도까지 구상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한심한 의견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접 만들면 돈은 덜 들어도 튼튼하지 않을 텐데, 괜히 헛수고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감독한테 장 형제의 생각대로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감독은 제가 책정한 예산이 너무 크다면서 그냥 구들방 장면을 찍지 않기로 했어요. 그 일이 지난 후에도 장 형제가 또 의견을 냈는데, 전 형제가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부린다고 한 소리 했어요. 그걸 보고 다른 자매가 저에게 교만하다고 책망하더라고요. 하지만 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또 감독과 세트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저는 교만하게 고집을 부렸어요. 결국, 필요한 세트장이 나오지 않아 재작업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러니 촬영도 지연될 수밖에 없었죠.

결국, 저는 그 본분에서 교체됐어요. 리더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형제자매들은 다 자매님을 교만하다고 해요. 늘 독단적으로 자기 방식대로 하고, 지위를 이용해 사람을 억누른다고요. 자매님이 사장이고 자기들은 직원 같은 느낌을 받고, 자매님 때문에 속박받는다고 하네요.” 이런 말을 듣는데, 현기증이 났어요. 형제자매들에게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 충격이었어요. 전 너무 괴로웠고 리더의 말이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며칠은 너무 괴로워서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왔어요. 계속 반성을 하는데,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어요.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어 온 자신의 생애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돌아보니, 저는 하나님 믿은 지 5년이나 됐지만 진정으로 반성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고, 계속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고도 의식하지 못했어요. 그제야 제대로 반성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제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런 자신을 미워하고 내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세요. 정말 회개하고 싶습니다.” 하루는, 촬영 현장에 가게 됐는데, 장 형제의 의견에 따라 만든 80년대식 둥베이 구들방을 보게 됐어요. 제가 책정했던 예산의 절반도 들이지 않았다고 했어요. 또 장 형제는 주변 분들이랑 골판지로 다른 소품도 많이 만들었는데, 시간도 단축하고, 예산도 아끼고 실용적이었어요. 그걸 보니 너무 부끄러웠어요. 제가 그동안 너무 교만해서 촬영을 계속 지연시킨 게 생각났어요. 그때 다시 제 자신을 돌아봤어요. ‘왜 난 독선적이고 교만하게 굴면서, 늘 남한테 내 의견을 강요했을까? 그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다음 날 아침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죠. 『네 안에 정말 진리가 있으면 자연히 바른길로 가게 되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네 내면에 있는 교만함이 어떻게든 너를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만드는 것과 같다. 너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뽐내게 한다. 마지막에는 네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를 증거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이 사람을 지배하여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했는지 보아라!』(≪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이 말씀을 보는데 가책이 크게 느껴졌어요. 제 성품이 교만한 건 알고 있었지만 교만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제대로 몰랐거든요. 근데 하나님 말씀에 비춰 제가 행한 걸 돌아보니, 교만한 본성대로 살면 자연히 악행을 저질러 하나님을 거역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교만한 성품 때문에 전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게 됐고 업무를 조금 아는 게 있다고 형제자매를 무시했어요. 늘 제 관점과 판단이 옳고 제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해 모든 것을 제 의도대로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제 의견에 이의를 달지 못하게 했고, 제 말을 안 들으면 바로 훈계했어요. 정말 독단적이고 자기 멋대로였어요. 제가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간 거더라고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볼 때, 더 크게 느껴졌어요.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전 본분을 이행한다면서 계속 자기를 높이고 자기 자랑만 하고 하나님의 뜻도 진리 원칙도 구하지 않았어요. 형제자매들이 의견을 내면 하나님의 뜻에서 온 것인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닌지 생각해 보기는커녕 제 생각과 다르면 아예 귀를 닫았어요. 저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고 안하무인은 물론 마음에 하나님도 없을 정도로 교만했어요. 크리스천이라면 진리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해야 하잖아요. 형제자매의 의견이 제 생각과 달라도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일 수도 있지요.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세로 먼저 수용하고 알아봐야 하는 거죠. 그 의견이 진리에 부합하고 교회 사역에 유익하면, 그에 따르고 실천해야 하는 거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거부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죠. 그건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는 거예요. 저는 교만한 성품대로 본분을 이행했고 독선적으로 행동해 형제자매들을 억누르고, 좋은 의견을 묵살하면서 교회 사역을 방해만 했어요. 그때 보니 본분에서 교체된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따른 거였죠. 형제자매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고 교회 사역에 손해 끼친 걸 생각하니 너무 후회되고 자책감이 들면서, 패괴된 자신이 미웠어요.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했어요. 너무 교만하고 강퍅한 제가 엄한 심판과 형벌을 받지 않는다면 제 자신을 알지 못해 계속 하나님을 대적했을 거예요.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어요. 『재능과 은사가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사상은 진리와 어긋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들 스스로는 이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봐. 내가 그렇게 영리한 선택을 했어! 얼마나 지혜로운 결단이야! 너희들 누구도 나를 따라올 수 없어.’ 그들은 늘 자기도취와 자화자찬의 상태로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진리와 진리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숙고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들은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을 발견하고 파악하거나 진리의 실제에 들어가기도 어렵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어요. 자신의 은사와 재능에만 의지하면 더 교만해지고 자기만족에 빠지게 되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자기 은사를 진리처럼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저는 실내 디자인은 제 전공이라 세트장과 소품 배치는 제가 없으면 안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 분야에 경력이나 재능이 없어도 본분을 잘하고 저보다 소품을 더 잘 만드는 형제자매들이 있었어요. 저는 제가 안목도 있고, 실력도, 아이디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본분은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제가 만든 것은 재작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간과 에너지, 돈까지 다 낭비했어요. 그제야 진리의 원칙은 구하지 않고 자기 은사와 장점에만 의존하면,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근데 은사가 없어도 마음이 바르면 하나님이 깨우쳐 주고 인도하시죠.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지혜를 주시잖아요. 그제야 제가 자부심으로 내세웠던 은사와 실력이 정말 무가치하다는 걸 느꼈어요. 근데 제가 그걸 밑천으로 여겼으니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했던 거죠.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네요. 그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어요. 더는 교만한 성품대로 살지 않고 착실하게 진리를 추구하고 실천하면서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요.

나중에는 양육하는 본분을 하게 됐는데, 형제자매들과 협력할 때, 자신을 낮출 수 있더라고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형제자매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죠. 하루는 한 형제가 제게 그러더군요. “자매님은 양육하는 방식이 좀 규례적이어서 효과가 떨어집니다.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양육하시면 좀 더 좋을 것 같네요.” 하지만 전 그게 납득이 안 됐어요. ‘나도 나름대로 경험한 걸 종합한 것인데, 왜 효과가 떨어진다고 하지?’ 전 바로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교만한 성품에서 나온 생각이란 걸 느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어요. 『두 번째, 누군가 너와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네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먼저 자세를 낮추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은 다음 다른 사람이 교제하게 해야 한다. 설령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일종의 발전이자 진리를 구하는 태도이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는 태도이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기도해라. 네가 옳고 그름을 모르니, 하나님께 드러내 달라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인지, 또 가장 적합한 것인지 하나님께 알려 달라고 해라. 모두가 함께 나누다 보면 그때 성령이 깨우쳐 줄 것이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과거에 저는 너무 교만하고 고집만 내세웠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을 속박하고 교회 사역을 방해했었죠. 그러니 계속 그렇게 행동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면 안 되잖아요. 형제자매들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먼저 받아들이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죠.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죠. 그래서 전 그 형제 말을 끝까지 들어 봤어요. 근데 정말 제 방식에는 개선할 부분이 있었어요. 형제의 제안이 훨씬 융통성 있고 좋았어요. 그래서 그대로 했더니 정말 효과도 좋았어요. 그 후로는 형제자매들이 저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먼저 받아들이고 살펴보고, 같이 의논하면서 좋은 방법을 모색하곤 했어요. 그러니 다들 그렇게 양육하면 얻는 것도 많고 유익하다고 했어요. 저도 마음이 편해졌고요. 이 모든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인도였어요. 그러니 절로 감사와 찬양이 우러나왔어요. 또 교만한 성품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진리 원칙대로 할 때, 하나님의 축복도 경험하게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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