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행복한 인생을 찾게 된 나
저는 평범한 시골 가정에서 자랐어요. 가정 형편이 넉넉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자랐어요. 엄마는 성격이 밝고 현숙한 편이라 집 정리를 너무 잘했어요. 아버지도 어머니한테 잘하셨고요. 두 분은 60여 년간 금슬 좋게 지내셨어요. 일단 제가...
저는 불임이라 전남편과 이혼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죠. 그 당시 남편에게는 어린 아들이 둘 있었는데, 저는 이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면 노후에는 그래도 비빌 언덕이 생기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두 아이를 정말 친아들처럼 보살폈고 또 눈이 먼 시모까지 모셨어요. 저랑 남편은 하우스 농사를 했는데, 저는 남자가 할 일도 같이했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장에 나가 야채를 팔면서 돈벌이도 했어요. 제가 그렇게 희생하니 남편도 저한테 자상하게 대했고 애들도 엄마라고 불러 주는 등 보답이 있었어요. 그때 저에겐 희망이 보였죠. 이 가정을 잘 보살피면 노후에 걱정 없이 살 테니 더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죠. 근데 예상치 못한 건 10년 후에 갑자기 뇌혈전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몸을 가눌 수 없게 된 거였어요. 남편은 어떻게든 치료를 해 주려고 했고, 병원에 입원한 동안에도 살뜰히 챙겨 줬어요. 근데 아무리 치료해도 호전이 안 돼 너무 괴로웠어요. 저는 ‘난 이제 아무것도 못 하게 됐으니 앞으로 그냥 남편만 바라봐야겠구나. 남은 생은 의지할 곳이 남편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근데 시간이 흐르자 한편으로 걱정이 들기도 했어요. ‘지금 남편이 잘해 주기는 하지만 내가 계속 병이 낫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면 나를 싫어하고 버리지는 않을까? 어쨌든 애들한텐 내가 친엄마도 아닌데, 내 곁에 가족이 하나도 없으면 늙을 때 누굴 의지해야 할까?’ 저는 자주 이런 걸로 근심을 했고 심지어 살아갈 용기를 잃어 가고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막막해하면서 괴로워하던 시기, 2013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게 됐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됐는데, 저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고 저의 진정한 의지처는 하나님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 저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얻었고 더는 노후 때문에 걱정하면서 울지 않게 됐어요. 그리고 혼자 몸을 가눌 정도로 몸 상태도 호전됐는데,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남편도 제가 많이 좋아지니까 하나님 믿는 걸 응원해 줬어요. 그러다 나중에 남편은 중국에서 하나님을 믿다가는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거기에 중국 공산당의 루머까지 믿게 됐어요. 결국 제가 신앙 때문에 잡혀가면 아들의 직업과 손자의 미래에 영향이 갈까 봐 하나님 믿지 말라고 반대하기 시작했고, 아들 그리고 친척들과 연합해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강요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전 ‘남편 말 안 듣고 계속 하나님을 믿으면 결국 남편과 아들 눈 밖에 나게 될 텐데, 그러면 앞으로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두려움에 예배 모임에도 못 가고 본분을 이행할 엄두도 못 냈는데, 그저 가정을 잘 지켜야겠단 생각뿐이었어요. 남편은 제가 예배 모임에 참석 안 하니까 저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좋아졌어요. 근데 전 교회 생활을 잃고 형제자매들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제를 못 하게 되니까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괴로웠어요. 며칠 후에 리더가 저를 붙들어 주려고 심방 와서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줬어요.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고 또다시 몰래 예배에 참석했어요. 근데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연말에 집에 돌아온 남편은 제가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제 동생들을 불러 비판 대회를 열고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강요했어요. 근데 제가 물러서지 않으니까 아예 집을 나가 버렸어요. 그리고 집에 있던 모든 현금과 저축 통장까지 다 갖고 가 버렸죠. 저는 허약하고 몸도 아픈데, 챙겨 주는 사람이 없이 혼자 있는 데다 생활할 돈도 없으니 정말 이렇게는 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적으로 너무 괴롭고 갈등이 생겼어요. 계속 믿자니, 남편과 이혼하면 난 집이 없어지는 거고, 이제 나이도 많은 데다 몸도 아픈 상황인데, 혼자 어떻게 살겠나 싶고 누가 제 노후를 책임져 주겠나 싶었어요. 근데 안 믿자니, 그건 하나님을 배반하는 거라 구원에 이를 기회를 놓치는 거였죠. 나중에 한 자매가 저를 붙들어 주면서 도와줬는데, 그때 가정의 핍박이 닥치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후에 추가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 보니까 그렇게 괴롭지 않았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며칠 후에 남편이 돌아왔지만 저는 계속 예배 모임에 참석했어요. 다만 매번 남편 모르게 몰래 나가곤 했죠.
2016년 봄에 리더는 저한테 문서 관련 본분을 맡기려고 했는데, 저는 기쁘면서도 걱정이 됐어요.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게 된다는 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높여 주신 것임을 아니까 이 훈련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문서 관련 본분을 이행하게 되면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하는 경우가 있을 건데, 남편이 집에 왔다가 알게 될 경우 그걸 핑계로 나랑 안 살겠다고 하면 어쩌나? 그럼 나는 살 집도 없어질 텐데, 노후에 어떻게 살지?’라는 걱정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에 결국 저는 그 본분을 밀어냈어요. 근데 그 후에는 자주 가책이 됐어요. 문서 관련 본분을 이행하면 더 많은 진리를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인데,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그 기회를 밀어내고는 남편한테 통제받으면서 살려고 했으니 제가 정말 천박해 보였어요.
2023년 8월에 리더가 또 그러더라고요. “요즘 형제자매들이 많이 잡혀가요. 접대 집을 찾기 어려운데, 자매님 집에서 자매님 한 분을 접대해 줄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평소에 남편은 객지에서 일하고 집에 일이 생겨야 돌아오니 나 혼자 집에 있는 데다, 건강상 난 다른 본분을 이행하기는 어렵잖아. 근데 자매 한 명을 접대하는 건 문제없지. 그리고 자매는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나도 선행을 예비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곧바로 ‘남편이 집에 왔다가 자매를 보게 되면 어떡하지? 안 그래도 하나님 믿는 걸 반대하고 툭하면 이혼을 들먹이는데, 괜히 이것 때문에 남편의 불만을 사서 버림받을지도 모르잖아. 이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 가정이 없으면 앞으로 누가 내 노후를 책임지겠어? 집도 없고 직업도 없는 내가 어디 갈 데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구나 남편이 전에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핍박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더더욱 걱정되고 겁이 났어요. 하지만 자매가 중국 공산당에 쫓기느라 마땅히 지낼 곳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 집이 조금 안전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그러기로 했어요.
근데 문제는 자매가 온 지 삼사일 만에 남편이 돌아온 거예요. 그러니 걱정이 됐어요. ‘남편한테 뭐라고 해야 할까? 시비 걸지는 않을까? 괜히 심기를 건드려서 자매랑 같이 쫓겨나면 어떡하지? 더구나 요즘은 외부 상황도 안 좋은데, 자매가 마땅하게 지낼 곳이 없어 경찰에 잡혀가면 어떡하지? 그럼 나도 선행을 예비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행을 하는 게 되잖아?’ 근데 또 전에는 계속 본분을 밀어낸 것으로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이 컸었고, 이제는 하나님 말씀도 많이 봤고 진리도 조금 알게 됐는데,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사람이라 할 수 있겠나 싶으면서 더는 본분을 밀어내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길을 열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어요. 그리고 저는 남편에게 지혜롭게 자매가 며칠 정도만 머물 거라고 말했어요. 남편은 뭐라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매한테 나와서 식사하라고 했어요. 그러니 제 가슴을 누르고 있던 바윗덩어리가 말끔히 사라진 것 같았어요. 이 가정을 잘 유지하려고 저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다양하게 해 주면서 최선을 다해 남편의 시중을 들었고, 어떻게든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려고 했죠. 남편이 돌아온 지 이틀 만에 저는 남편한테서 감기를 옮았는데, 열나고 기침하고 몸살이 났어요. 저는 그렇게 아픈데도 남편 시중을 잘 들려고 했어요. 괜히 나중에 자매를 접대하는 걸 싫어할까 봐요. 저는 계속 남편 눈치를 봤어요. 남편 기분이 좋아 보이면 자매한테 좀 잘했고 남편이 기분 안 좋아 보이면 불안했어요. 혹시라도 남편을 화나게 해서 쫓겨날까 봐요. 그렇게 저는 온통 걱정 근심에 휩싸여 있었어요. 더구나 그 당시 제가 많이 아프다 보니 이 본분을 하기로 한 걸 후회했어요. 심지어 자매가 빨리 옮겨 가기를 바랐고 자매가 있는 게 싫어지면서 전처럼 자매를 친절하게 접대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자매도 아프게 됐는데, 마음이 안 좋고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리더한테서 편지를 받았는데, 남편의 속박을 받는 제 상태에 맞춰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 보내왔더라고요.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하나님은 너에게 결혼을 허락하고, 반려자를 주고, 다른 생활 환경을 주고, 이런 생활 환경과 배경 안에서 배우자와 네가 모든 일을 함께 분담하고 대면하게 해서 네가 더욱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살게 한다. 동시에 네가 인생의 다른 단편을 체험하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를 결혼에 팔지 않았다. 결혼에 팔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바로 네 일생과 운명, 네 사명, 또 네가 인생에서 어떤 길을 걷고,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어떤 신앙을 가지는가 하는 이런 것들은 네 배우자가 결정하도록 맡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 여자는 운명과 추구가 어때야 하고, 어떤 인생길을 걸어가야 하고, 어떤 인생관을 가져야 하는지를 반드시 남편이 결정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고, 한 남자는 운명과 추구, 인생관이 어때야 하고,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반드시 아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 적도, 그렇게 정한 적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이 최초의 인류에게 결혼을 정하면서 그런 말씀을 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또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남녀의 일생의 사명이니, 네가 반드시 결혼의 행복을 지켜야 일생의 사명이 완성되고, 피조물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한 적이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사람의 운명과 결혼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 결혼을 정해 주신 건 부부가 서로 보살피고 도와주면서 모든 일을 분담하라는 의미였어요. 그래야 사람은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살 수 있는 거죠. 하나님은 자신을 결혼에 팔라고 하신 게 아니었어요. 또한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는 게 일생의 사명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사람은 자신이 갈 길과 신앙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거지 배우자가 모든 걸 결정할 권리를 가진 건 아니에요. 근데 저는 단란한 결혼 생활과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저를 결혼에 팔아넘기고 고생과 원망을 감내하며 기꺼이 남편의 노예로 살기로 했어요. 모든 가사를 혼자 도맡았고, 남자가 할 일도 같이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 남편을 챙겼어요. 하나님을 믿은 뒤에는 이 결혼 생활을 잘 꾸려서 노후에 기댈 곳을 만들기 위해 저는 예배에 참석하거나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엄두를 못 냈어요. 접대 본분을 하면서도 남편이 자매가 집에서 지내는 걸 싫어해서 저를 버리고 외면할까 봐 계속 구속받고 있었어요. 마지못해 자매를 접대하기는 했지만 계속 남편의 눈치를 봤어요. 남편이 기분 좋아 보이면 자매한테 잘하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불안해했죠. 그리고 자매를 접대한 걸 후회하면서 자매가 빨리 떠나 이 고생을 끝내고 싶은 바람도 있었어요. 저는 남편한테 잘 보이려고 계속 눈치 보면서 제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어요. 돌아보면, 제가 몸이 아파서 정말 괴롭고 막막해할 때, 하나님께서 자매를 보내어 복음을 듣게 해 주셨고,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인도가 있었기에 저도 다시 살 용기를 얻었어요. 또 제가 소극적이고 연약할 때, 하나님은 제가 굳세어질 수 있도록 자매님을 보내 수차례 도움을 주고 붙들어 주게 하셨어요. 그럼 저는 당연히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잘 수행해야 하고 저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해야죠. 하나님의 말씀이 저한테 믿음과 용기가 됐고, 저는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어요. 하나님을 믿는 건 제 권리니까 남편이 간섭할 권리가 없죠. 본분을 잘해야 하는 건 제 사명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이걸 깨닫고 나서 자매한테 말했어요. “걱정하지 말고 그냥 우리 집에서 맘 놓고 지내요. 남편이 저한테 어떻게 하든 이제 구애받지 않아요. 이혼하는 한이 있어도 자매를 접대할 거예요.”
어느 날 밤 10시가 넘었는데, 제 기침 소리에 남편이 놀라서 깼어요. 그러자 저한테 화를 내면서 듣기 거북한 말을 막 쏟아 냈어요. 저는 자매가 들으면 눈치 볼까 봐 반박은 하지 않고 그저 속으로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근데 좀 지나서 전화벨이 울렸는데, 남편 회사 사장이 남편한테 다음 날 무조건 일 나오라고 한 거예요. 정말 기뻤어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게 분명하니까요. 나중에 남편이 가끔 돌아올 때면 자매도 눈치가 보이고 해서 교회에서는 다른 접대 집을 찾았고, 며칠 뒤에 자매는 떠났어요. 저는 자매한테 미안했고 자책감이 들었어요. 자매가 우리 집에서 지낼 때 제가 남편 눈치 보면서 남편만 먼저 챙기고 어떻게든 제 결혼 생활과 가정을 유지하는 데 신경 쓰느라 본분에 마음을 들이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본분까지 잃게 됐고요. 그 후에 생각해 봤어요. 왜 자꾸 남편의 구애를 받는지, 그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를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제가 반성을 통해 자신을 알고 배워야 할 공과를 배울 수 있게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달라고요. 찾고 구하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결혼 생활에 뛰어들려고 하고, 자신의 결혼 생활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분투하고 목숨을 바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돈을 벌고 죽기 살기로 고생한다. 물론 본인 일생의 행복을 자신의 반려자에게서 찾는 사람들은 더 많다. 그들은 자신의 일생이 행복하고 즐거울지는 자신의 반려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달렸다고 믿는다. 반려자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자신의 성격과 지향점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돈을 잘 벌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미래에 내가 먹고살 걱정 없이 살게 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자신에게 행복하고 안정되고 아름다운 가정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자기가 어떤 고통과 환난, 실패와 좌절을 만났을 때 자기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달렸다는 것이다. … 이런 생활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거의 분별하지 않고, 완전히 상대에 대한 정 속에 살아가고, 정으로 그를 보살피고 포용하며 그의 모든 결점과 문제, 추구를 대하고, 심지어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예배 시간이 너무 길다며 30분만 예배드리고 들어오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되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순순히 대답한다. 그리고 다음번 예배 때는 정말 30분 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자 남편이 말한다. “진작에 이랬어야지. 다음에는 얼굴만 내비치고 들어오도록 해.” “아, 당신 생각이 그렇다면 알았어요. 그렇게 해 볼게요.” 다음번 예배 때도 역시 남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참석한 지 10분 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자 남편은 무척 흡족하고 기뻐한다. “이 정도는 돼야지!” … 너는 배우자가 너에게 만족해서 네가 가끔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예배드리는 것에 동의하게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닭 모이 주고 개밥 주고 하면서 힘든 일을 모두 도맡아 했다. 남자가 할 일도 다 했다. 남편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녀처럼 뼈 빠지게 일만 했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남편 구두도 반짝반짝 닦아 놓고, 슬리퍼도 가지런히 놓아두고, 남편이 들어오면 잽싸게 몸에 묻은 먼지도 털어 주고 외투도 받아서 걸어 놓는다. “오늘 날씨 진짜 덥네요. 안 더워요? 목 안 말라요? 오늘은 뭐 먹고 싶어요? 새콤한 거? 아니면 매콤한 거? 옷 안 갈아입어도 돼요? 벗어 두면 빨아 놓을게요.” 꼭 하녀나 노예 같다. 이건 결혼의 틀 안에서 해야 할 책임의 범위를 한참 벗어났다. 상대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그를 자기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가정에서 두 사람의 지위는 명백히 차이가 난다. 한쪽은 노예, 다른 한쪽은 노예주이다. 한쪽은 머리를 조아리고, 다른 한쪽은 눈을 부라린다. 한쪽은 굽실거리고, 다른 한쪽은 기세등등하다. 확실히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두 사람의 지위는 불평등하다. 왜 그럴까? 이 노예는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비굴하게 굴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정해 준 결혼 생활에 대한 책임을 지키지 않고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 다른 한쪽은 어떤 책임도 다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런 배우자에게 너는 무조건 복종하고 무릎 꿇었다. 기꺼이 노예가 되고 하녀가 되어 그를 위해 애쓰고,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이건 어떤 인간이냐? 도대체 너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에게는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느냐? 배우자가 네 생활을 책임지는 것, 이는 하나님이 정한 일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빚을 진 것이 아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네가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데, 그러면 그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느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느냐? 결혼한 두 당사자는 둘 중 사나운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 잘하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혼한 양쪽은 서로 책임을 다하고, 서로 동반해 주는 것이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양쪽 모두 결혼의 틀 안에서 자신이 다해야 할 의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너는 너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네 역할이 어느 쪽이든, 너는 그쪽이 할 일을 해야 한다.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너는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다. 속된 말로 형편없는 인간이란 의미다. 그렇다면 이 형편없는 인간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기꺼이 노예가 되어 주는 것은 너무나 멍청한 짓이고, 가치 없는 행동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게 어때서 그러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이냐?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 이것은 떳떳하고 당당한 일이다. 나라와 정부에서 하나님 믿는 사람을 박해한다는 건 무얼 뜻하느냐? 이 인류가 너무나 사악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사악한 세력을 대표하고 사탄을 대표한다. 진리를 대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표하지 않는다. 따라서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네가 남보다 낮은 자리에 있고, 남보다 등급이 낮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고귀하고, 또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다. 하나님은 너를 눈동자로 여긴다. 그런데 너 자신이 너를 짓밟고 배우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럼없이 노예가 되었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왜 그걸 못 하느냐? 이것이 사람의 비천한 부분이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검처럼 제 마음을 찔렀어요. 이 말씀에서 폭로한 게 제 내적 상태였거든요. 저는 남편을 만난 후에 이 결혼 생활을 잘 꾸려 나가면서 안정된 가정을 만들고 노후의 의지처를 위해 더럽고 힘든 일이라도 기꺼이 맡아 하면서 최선을 다해 남편한테 잘 보이려고 했어요. 저는 마음을 다해 남편이 하우스 농사를 하는 데 함께했고, 고생과 원망을 감내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데 정성을 쏟았어요. 그리고 눈먼 시모의 식사 시중까지 들면서 기꺼이 그 집의 하녀로 살았어요. 남편과 아이들이 만족한다면 아무리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기꺼이 하려고 했어요. 하나님을 믿은 뒤에 남편은 중국 정부의 루머를 믿고 하나님 믿는 걸 강하게 반대했는데, 저는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남편한테 굽실거리면서 기꺼이 가정의 노예가 되기로 했어요. 남편의 통제와 결박 때문에 전 본분을 이행할 엄두도 못 냈고, 예배드리러 나갔다가도 남편한테 밥해 주고 챙겨 주려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고,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건 생각도 못 했어요. 괜히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 노후에 어떻게 할 수 없을까 봐 겁났거든요. 그래서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속박을 받았어요. 저는 “노후 걱정 없어야 한다.”, “자식 농사가 노후 대책이다.”와 같은 사탄 독소에 크게 통제받다 보니까 존엄성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어요. 사실 하나님께서 결혼을 정해 주신 것은 두 사람이 동반하면서 서로를 챙기고 잡아 주라는 거지 남편이 사납다고 주인이 되고 다 남편 말을 듣고 남편 눈치 보면서 살라는 게 아니거든요. 이 집에서 저는 그냥 아내로서의 책임만 다하면 되는 거죠. 그것 외에 저는 제 사명이 있는데, 바로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거죠. 더는 굽신거리면서 남편과 애들의 노예로 살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잘 잡아서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게 맞더라고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나는 이 사람들, 즉 지금의 너희를 예정하고 택하였다. 성품, 자질, 모습, 체격, 출생 가정, 직업, 결혼 등 너의 모든 것, 심지어는 너의 머리카락 색깔, 피부색,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가 직접 안배했다. 네가 매일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도 내 손으로 안배한 것이며, 오늘날 너를 내 앞으로 인도한 것은 더더욱 내가 안배한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히 앞으로 나아가라. 오늘날 내가 너에게 누리도록 한 것은 당연한 너의 몫으로, 내가 세상을 창조했을 때부터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74편>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말세에 태어나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게 된 건 하나님의 은혜이고, 불임인 것에도 하나님의 정하심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더라고요. 저는 “자식 농사가 노후 대책이다.”, “현모양처”와 같은 전통적 사상을 매우 중시했어요. 그래서 저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오직 그 아이와 가정을 위해서만 살았을 거예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남편과 자식에게 쏟아 붓고 그들을 위해 모든 걸 지불하면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자식 농사를 이생의 사명으로 여기느라 하나님 앞으로 오지 못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제게 고난의 상황을 마련하시어 제가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를 추구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이게 다 하나님의 축복이죠. 예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저는 팔자가 안 좋다고 원망했었는데, 이제는 저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고심을 알게 됐고, 하나님께서 저를 말세에 태어나게 하신 건 단순히 자녀를 낳고 기르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됐어요. 그게 제 책임과 사명이더라고요.
그리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봤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지금의 반려자를 안배했기에 너는 그와 함께 생활할 수 있지만, 만약 하나님이 마음을 바꿔 너에게 다른 누군가를 안배해도 너는 여전히 잘 지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네 반려자는 너의 유일한 사람도 아니고, 너의 종착지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네가 종착지를 기탁할 수 있는 분이고, 하나님만이 인류가 종착지를 기탁할 수 있는 분이다. 너는 부모를 떠나서도 생존하고 살아갈 수 있고, 배우자 없이도 당연히 전처럼 잘 살아갈 수 있다. 부모도 너의 종착지가 아니고, 배우자 역시 너의 종착지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사람의 운명은 모두 창조주께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남편이 아무리 저를 잘 챙기고 보살펴도 제 운명을 주관할 수는 없죠. 하나님만이 제가 종착지를 기탁할 수 있는 분이고 진정한 의지처죠. 제가 뇌혈전증에 걸렸을 때도 그래요. 남편은 최선을 다해 치료해 줬지만 낫지 않았고 아무리 잘 챙겨 줘도 제 병은 호전되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믿은 후에 저는 하나님께 병을 맡기고 더는 병이 어떻게 될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근데 서서히 제 병이 호전됐고 혼자서도 몸을 가눌 수 있게 됐는데, 그것도 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잖아요? 그리고 교회의 많은 형제자매들을 보면 모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가정을 내려놓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거든요. 그들은 다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입을 걱정, 먹을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내는데, 오히려 더 즐겁고 자유롭게 살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하나님이 창조한 공중의 새는 심지 않고 거두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르시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인류는 더 말할 것도 없잖아요. 저는 맨날 결혼 생활과 가정을 잃고 남편이 없으면 노후에 부양해 줄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했어요. 그래서 자주 남편 눈치를 보느라 예배에 참석하거나 본분을 이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게 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작아서였어요. 이제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조금 알게 되면서 하나님을 의지해 나아갈 자신감이 생겼어요. 남편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저를 핍박하기까지 하니 그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잖아요. 그럼 제가 더는 남편한테 고분고분하면서 노예로 살면 안 되죠. 얼마 안 돼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잡히게 되면서 자매 2명을 우리 집에서 접대할 수 있겠냐는 리더의 문의 편지가 왔어요. 저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된다고 했어요. 그렇게 다시 접대 본분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남편이 볼까 봐 걱정하지 않았고 남편이 이혼 얘기를 꺼낼까 봐 겁내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너무 홀가분하더라고요. 어느 날, 남편이 돌아오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그때 자매가 나가서 피해 있겠다고 했는데, 저는 편하게 말했어요. “아니에요. 남편이 하나님 믿는 걸 반대는 해도 신고할 정도는 아니에요.” 남편은 집에 자매 두 명이 있는 걸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근데 이틀 뒤에 사소한 일로 또 버럭 화를 내면서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앞으로 신앙인들 들이지 마. 또 오면 아예 쫓아 버릴 거야.” 그때 전 제가 여태 남편한테 밉보일까 봐 고분고분 그의 말을 듣느라 본분을 잃어버리고 존엄성 없이 살았던 게 생각났어요. 근데 이제는 진리를 알게 되어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맞받아쳤죠. “내가 하나님 믿는 게 법을 어기거나 죄를 짓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 집에는 내 몫도 있으니까 당신이 다 결정할 권한은 없어요.” 남편은 제 말을 듣고 화를 내면서 나가 버렸어요. 하지만 저는 남편이 저를 외면하거나 이혼을 요구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고,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좋았어요. 남편의 반대가 없으면 본분을 이행하는 데 더 자유로우니까요. 그리고 더는 남편의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되죠. 그 뒤로는 자매들이 우리 집에 묵어도 남편은 뭐라고 하지 않았고, 가끔 다른 자매들이 찾아오면 오히려 밥도 먹여 보내곤 했어요. 제가 마음가짐을 바로잡으니까 남편의 자세도 바뀌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과의 사이가 더 좋아졌어요. 저도 가정에 대해 할 수 있는 책임은 최대한 다하죠. 그리고 예배에 참석해야 할 경우는 참석하면서 더는 남편의 구애를 받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혼과 가족을 대하니까 사는 게 힘들지도 않고 존엄성도 지킬 수 있게 됐어요.
겪고 나니까 남편이든 아들이든 그 어떤 가족도 제 의지처가 될 수 없고, 제가 남은 생에 어떤 고난을 받아야 할지는 제가 주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모든 게 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따르는 거죠. 그리고 제 유일한 의지처는 하나님밖에 없어요. 이제 결혼의 통제와 결박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됐는데, 이 모든 게 다 하나님 말씀으로 거둔 성과예요.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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