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찾다

2024.9.10

러시아 리민(李敏)

저는 어렸을 때 평범한 시골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무척 행복했습니다. 어머니는 활달하고 현숙한 성격에 생활력이 강하셔서 살림을 빈틈없이 꾸리셨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세심하게 챙겨 주셨습니다. 그렇게 두 분은 60여 년을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부모님께서 다투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저도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가정적인 남자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바라던 대로 저는 마음에 쏙 드는 남편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함께 출퇴근하고, 같이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남편은 저를 무척 아껴 주었는데, 특히 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지난 몇 년간 제가 아프면 저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면서 병원에 데려가 주고 정성껏 돌봐 주었습니다. 결혼 생활 내내 우리는 거의 다투지 않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감싸 주었습니다. 저 역시 정성을 다해 살림을 꾸리며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과 평생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백년해로하는 것을 얼마나 꿈꿔왔는지 모릅니다.

2017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인생의 바른길임을 확신했고, 무척 열성적이어서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기든 다 받아들이고 순종했습니다. 처음에는 본분이 바쁘지 않아 가정생활에 지장이 없었고, 남편도 저의 신앙생활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2020년에 제가 교회 리더가 되면서 본분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밤늦게 돌아오다 보니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남편이 도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저의 신앙생활에 불만을 품었고, “퇴사하더니 출근할 때보다 더 바쁘네!”라며 비꼬기도 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내어 밥상을 차려주었습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입원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20여 일간 병원에서 간병하느라 눈이 퀭해지고 몸도 많이 야위었습니다. 제가 매일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었지만, 남편은 저를 쌀쌀맞게 대했습니다. 지친 남편의 모습을 보니 딱한 마음에 ‘내가 예전처럼 간단한 본분만 이행했다면 남편과 교대로 어머님을 돌볼 수 있었을 테고, 남편도 저렇게까지 지치지는 않았을 텐데. 아내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퇴원하시고 난 어느 날, 제가 너무 늦게 귀가하자 남편은 저를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집안 어른이 오랫동안 앓아누워 계신데 당신은 돌볼 생각도 안 하는군.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보이지도 않아? 당신은 자기밖에 몰라. 더는 이렇게 못 살겠어!” 남편의 질책에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방에 들어가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교회 리더가 된 후로 교회 일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집안 어른이 아프셔도 돌볼 수가 없으니, 남편이 나한테 쌀쌀맞게 구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이대로 가다간 남편의 불만이 쌓여 나랑 다투게 될 텐데, 그럼 내가 애써 가꿔 온 오랜 결혼 생활이 깨지는 게 아닐까? 결혼 생활이 없어지면 나에겐 가정도 없어지는 거잖아!’ 그날 밤 저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쪽은 결혼 생활, 다른 한쪽은 본분. 저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요? 저는 리더 본분은 그만두고 간단한 본분만 이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동역자 자매를 만나 집에서 있었던 일과 제 생각, 그리고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자매는 저에게 하나님 말씀을 몇 구절 교제해 주었는데, 그중 한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고, 사람의 안배나 교란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일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이는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그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었지만 욥에게 닥친 것은 사람의 행위요, 사람의 교란이었던 것과 같다. 너희에게 행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과 한 내기가 있고, 싸움이 있다. … 일이 닥칠 때는 늘 싸움이 있다. 네 내면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 하나님은 너의 실제적인 협력과 네가 실제로 받는 고통을 통해 네게 역사한다. 결국 너는 내면에서 그 일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화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 역시 네가 하나님과 협력한 결과이다. 어떤 일을 하든 일정한 심혈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실제로 받는 고통 없이는 하나님을 만족게 한다는 말 자체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것은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것에 불과하다! 공허한 구호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사탄이 영계에서 하나님과 싸울 때,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겠느냐? 일이 닥칠 때마다 네게는 그것이 큰 시련이고 네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서 비롯된 것이며, 일이 닥칠 때마다 영적 싸움이 벌어지는데, 하나님은 사람이 굳게 서서 증거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인생의 바른길을 가는 것이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곳곳에서 방해하고 가로막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은 사탄에게 속한 자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합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본의 아니게 이런 상황이 남편의 이익과 충돌하자 그는 저와 다투며 제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방해했습니다. 저는 결혼 생활이 깨질까 두려워 리더 본분을 그만두고 가정을 돌보기 좋은 간단한 본분을 이행하려고 했습니다. 굳게 서서 증거하지 못하고 하마터면 사탄의 꾐에 빠질 뻔한 것입니다. 저는 더는 물러설 수 없어, 리더직을 그만두려던 생각을 접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집에 늦게 들어가자 남편은 또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돌아올 줄은 아네? 집이 무슨 여관인 줄 알아? 이 집에서 살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저는 속으로 제가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도록 제게 믿음과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그러고는 남편의 말이 끝나기만 기다렸다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전 30년 넘게 우리 가족을 위해 충분히 헌신했어요. 내 동료들 좀 봐요. 퇴직해서는 마작을 하거나 춤을 추러 다니고, 아니면 여기저기 여행 다니느라 하루도 집에 붙어 있지 않는다고요. 돈은 또 얼마나 많이 쓰는데요. 제가 하나님을 믿고 바른길 가는 데 시간 좀 썼다고 반대하고 자꾸 트집 잡는데, 같이 살기 싫으면 내일 당장 도장 찍으러 가고, 그게 아니면 간섭하지 마요. 나한테도 자유가 있으니까!” 남편은 잠시 멈칫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에게 물었습니다. “생각은 해 봤어요? 같이 살 건지 말 건지 똑똑히 말해봐요!” 남편은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제 이마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내가 졌다 졌어!” 그 순간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 후로 남편이 잔소리할 때면 저는 상대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남편의 잔소리도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2022년 5월, 저는 설교원으로 선발되어 여러 교회의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본래 발탁되면 기뻐야 하는데 제 마음은 큰 돌덩이에 짓눌린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년여간 교회 리더를 하면서 교회 사역으로 바쁘긴 했지만, 아침저녁으로 집안일을 돌볼 수는 있었어. 그런데 설교원이 되면 일이 바쁜 건 둘째 치고, 거리가 먼 교회의 경우 집에서 나와서 남편과 별거해야 할 텐데, 남편이 그걸 어떻게 용납하겠어? 그건 내가 먼저 결혼 생활을 포기한다는 뜻이잖아? 결혼 생활이 깨지면 나 혼자 남게 될 텐데, 그럼 어떻게 살지? 이제 곧 예순인데, 나중에 몸져눕기라도 하면 물 떠다 줄 사람 하나 없이 어떻게 살지?’ 저는 생각할수록 슬퍼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싶었지만, 예전에 조금이나마 깨달았던 도리도 무용지물이어서 도무지 실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 분량이 작고 진리 실제가 없다는 이유로 그 본분을 거절했습니다. 그 후 며칠간, 저는 몹시 괴롭고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오랜 시간 저를 양성해 주었고, 저는 계속 교회 리더를 맡아 형제자매들에게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리를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분이 저를 필요로 할 때는 꽁무니를 빼며 결혼 생활과 가정을 택했고,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딜 봐서 제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습니까? 정말이지 머저리가 따로 없습니다! 저는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그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정 나를 위해 완전히 헌신하고 바칠 수 있는 자 누구냐? 모두가 이리저리 망설이고, 이모저모 따져보며, 가정과 바깥 환경, 먹고 입는 것 등을 생각한다. 너는 지금 나를 위해 내 앞에서 일을 한다고 하나, 네 마음은 여전히 집에 있는 처자식과 부모를 생각한다. 설마 그러한 것들이 다 너의 유업이란 말이냐? 어째서 그러한 것들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는 것이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내가 네게 마련해 준 것이 적절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냐? 어째서 줄곧 육체의 가정을 마음에 두고 가족을 걱정하느냐? 네 마음에 내가 있긴 한 것이냐? 그러고도 내가 네 안에서 주권을 잡고, 너의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겠다고 말하니, 전부 사람을 기만하는 거짓말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위하는 자 몇이나 되느냐? 또 자신을 생각지 않고 오늘의 하나님나라를 위하는 자 누가 있더냐? 스스로 한번 잘 생각해 보아라.(<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59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눈앞에서 저를 심판하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저의 현 상태였습니다. 겉으로는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며 매일 바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마음은 늘 집안 걱정뿐이었습니다. 밖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남편이 끼니는 챙겨 먹는지 걱정했고, 남편이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돌보느라 지쳐 있는 모습을 보면, 남편의 짐을 덜어 줄 수 있도록 간단한 본분만 하고 싶었습니다. 본분 때문에 바빠서 남편을 언짢게 했을 때는, 가정도 돌보고 본분도 이행할 수 있게 리더 본분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헛된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바로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또 저는 입으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전혀 없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저를 설교원으로 발탁했을 때, 저는 교회 사역에 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제 결혼 생활만 생각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 결혼 생활이 깨져 버려, 가정이 없어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사실 결혼 생활이란 것은 제가 지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 제 결혼 생활이 깨져야 한다면 제가 매일 집을 지키고 있어도 깨질 것입니다. 제 친구처럼 말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어디를 가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지만, 그녀의 눈앞에서 외도한 남편과 결국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어떤 부부는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내면서 일 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하는데 결혼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합니다. 이 점을 깨달은 저는 제 결혼 생활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패괴가 드러날 환경을 마련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본성이 지극히 이기적인 저는 제 육적인 이익만 생각해 온전한 결혼 생활을 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만 의지하여 결혼 생활을 내려놓겠습니다. 앞으로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해야 할 기회가 다시 온다면, 저는 본분을 택해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몇 달 후, 저는 또 설교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무척 감격했습니다. ‘지금껏 나는 하나님께 상심과 실망만 안겨드렸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뿐이었어.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내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니, 이번에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겠어!’ 하지만 막상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생각을 하니, 제 마음속에 영적 싸움이 치열해져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마라. 너는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속되게 살며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면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 하나를 위해 너는 모든 육적 향락을 포기해야 하며, 약간의 향락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도 없고 존엄성도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믿음과 힘을 주었습니다. 오로지 육을 위해 분주히 살면서 가정의 행복과 육의 평안만을 추구했던 제 반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 삶은 아무런 가치나 의미도 없을뿐더러, 마지막엔 그저 아쉬움만 남긴 채 빈손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택해 하나님 집에 오게 하셨고, 제게 진리와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사한 줄도 모르고, 하나님께 진심을 드리지 않았으며,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 본분을 거절하여 하나님 앞에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또 한 번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설교원이 될 기회를 주셨으니, 저는 더 이상 결혼 생활이 깨질까 봐 걱정하며 본분을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삶은 인격과 존엄,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로 선택한 이상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 합니다. 진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버리든 가치가 있습니다. 설령 집을 떠나고 나서 가정이 깨진다 해도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한 번 살아 보기로 했습니다.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한가해지기만 하면 남편이 생각나, 본분에 전념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결혼에 관한 진리를 교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저는 귀한 보물이라도 얻은 듯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생의 행복을 본인의 결혼에서 찾으려 한다. 그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결혼의 행복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배우자와의 결혼이 행복하면 자신의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결혼의 행복을 일생에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 그들의 마음속에는 결혼의 행복이 어떤 일보다도 커서 그게 없으면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 ‘사랑은 결혼의 행복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해. 내가 상대를 사랑하니까, 또 상대가 나를 사랑하니까 결혼이 행복하고,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내가 하나님 믿고 본분 이행하는 것 때문에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여기서 접는다면 결혼의 행복은 이제 끝나서 없어지는 거고, 다시는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 아닌가? 결혼의 행복이 없으면 삶이 어떻게 되겠어? 내 사랑이 없으면 아내는 어떻게 살지? 아내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서 창조주 앞에서 사람의 사명을 완성한다고 이 결핍을 채울 수 있을까?’ 이들은 모른다. 답이 없고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결혼의 행복을 최고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로 인해 집을 떠나 외지에서 복음을 전도하며 본분을 이행해야만 하는 경우, 결혼의 행복을 곧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낙담하고, 안타까워하고, 심지어 불안해한다. 어떤 이들은 결혼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본분 이행을 포기하거나 거절하기도 한다. 심지어 하나님 집의 중요한 안배를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결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늘 상대의 감정을 살핀다. 상대가 자신의 신앙과 자신이 하나님 믿는 길을 가는 것, 자신이 본분 이행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거나 조금이라도 불쾌하거나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면 얼른 방향을 바꿔 타협하곤 한다. 결혼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늘 상대와 타협한다. 설령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포기하고 예배드리며 하나님 말씀을 읽고 영 생활 하는 시간을 포기하더라도 상대가 쓸쓸하고 적막하지 않도록 자신의 존재, 자신의 사랑을 느끼게 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상대의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신앙, 혹은 하나님 믿는 길을 걷기 위해 상대의 사랑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혼의 행복을 포기한다는 뜻이고, 그의 생각에 결혼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은 외로운 사람,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아무도 사랑하고 아껴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비록 도리를 어느 정도 알고,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의미를 알고, 또 당연히 피조물로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또 자신의 행복을 당연히 결혼의 행복에서 찾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해하고 알더라도, 결혼의 행복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지 못한다. 그들은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이번 생에 추구해야 할 사명, 피조물이 추구하고 완성해야 할 사명으로 삼았다. 이것은 잘못이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폭로했습니다. 결혼 후 부부 사이의 정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고 환심을 사는 행동을 하거나, 결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결혼의 행복을 위해 오히려 본분 이행의 기회를 포기하고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 사람마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은 다름 아닌 제 진실한 상태였고, 제 반평생의 추구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결혼 후 저는 가정적이고 저를 무척 아껴 주는 남편을 보고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결혼 생활을 하늘이 내려 주신 복이라 여긴 저는 평생의 행복을 남편에게 걸고는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결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저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 애썼고, 매일 끼니마다 다른 메뉴로 식사를 차려 주었습니다. 제가 리더를 맡게 되면서 바쁜 교회 일로 가정을 돌보지 못해 남편의 반감을 샀을 때는, 죄책감과 자책감에 시달렸고, 아내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핀잔을 들은 후에는 가정이 깨질까 봐 걱정되어 남편과의 관계를 위해 리더 본분을 그만두려고까지 했습니다. 설교원으로 선발되었을 때도, 제 마음속엔 온통 결혼 생활과 가정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결혼의 행복을 위해 오히려 본분 이행의 기회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저는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긍정적인 일로 여겼고, 부부가 결혼 생활을 25년, 50년간 유지하는 것은 부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서로 아껴주며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어른이 되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고 전 그것을 무척 소중히 여기며, 평생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본분 이행이나 진리를 얻는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기고는 스스로 하나님의 요구를 등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결혼을 운명적으로 정해 주고, 배우자를 주어서 네가 결혼했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네 신분과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 너는 여전히 너이다. 네가 여자라면 하나님 앞에서도 여전히 여자이고, 네가 남자라면 하나님 앞에서도 여전히 남자이다. 하지만 너희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너희가 남자든 여자든 창조주 앞에서는 모두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너희는 서로 포용하고 아껴 줘야 하고, 서로 돕고 붙잡아 줘야 한다. 이것은 모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네가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 마땅히 완성해야 할 사명은 네가 배우자에게 다해야 할 책임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배우자에 대한 네 책임과 하나의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다해야 할 본분이 서로 충돌을 일으킬 때, 네가 선택해야 할 것은 상대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가 선택해야 할 방향이자 목표이고, 물론 네가 당연히 완성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 결혼의 틀 안에 있는 어떤 한 쪽이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그 어떤 대가도 마다하지 않거나 어떤 희생도 기꺼이 치르는 것은 모두 기념되지 않는다. 네가 배우자에게 다하는 의무와 책임이 아무리 훌륭하고 완벽해도, 또 아무리 배우자 앞에서 떳떳하다 해도, 바꿔 말하면 네 결혼의 행복을 아무리 완벽하고 훌륭하게 지키더라도, 아무리 남들의 부러움을 살지라도, 그것은 네가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했다는 뜻도 아니고, 네가 이미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었음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너는 완벽한 아내, 혹은 완벽한 남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결혼이라는 틀에 한정된다. 창조주의 입장에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할 때는 네가 그 앞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네가 어떤 길을 가는지, 네 인생관이 무엇인지, 네 인생의 추구는 무엇인지, 네 피조물의 사명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근거로 한다. 하나님은 이런 것으로 너라는 피조물이 가는 길과 미래의 종착지를 판단하지, 네가 아내나 남편으로서 다한 책임과 의무가 어떤지, 배우자에 대한 네 사랑이 상대를 만족시켰는지를 근거로 하지 않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기준에 맞는 피조물인가를 판단하실 때는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가는지,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했는지를 보시지, 그 사람의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한지를 보시지 않습니다. 범사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것은 피조물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만약 결혼의 행복을 위해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니, 사람이라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저는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저는 한 명의 피조물이기에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제 일생의 사명입니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저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결혼의 행복을 추구한다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진정한 인생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합니다. 제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에게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혼을 포기하거나 형식적으로 이혼하라는 말이 아니라, 결혼 생활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피조물의 사명을 완수하고, 이행해야 할 본분을 잘 이행하라는 뜻이다. 물론,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 일이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데 지장을 주고, 걸림돌이 되고, 심지어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면, 너는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만 포기할 것이 아니라 결혼 전체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교제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의미는 무엇이냐? 바로 결혼의 행복에 발목 잡히고, 두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지고, 시선이 어지러워지고, 마음이 혼란해지는 등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거기에 마음을 내어 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네 인생길과 생활이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로 가득 차는 것도 안 된다. 결혼 생활에서 네가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올바르게 대하고, 올바르게 버리고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 바람직한 실행은,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본분에 쏟아서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이 네게 맡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든 네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또 하나님이 너를 지금까지 살도록 이끌었고, 네게 결혼과 가정을 베풀어 주고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다해야 할 책임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너 스스로 결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까닭 없이 그냥 결혼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결혼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일은 이제 분명히 설명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0)>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신 것은 꼭 형식적으로 이혼하라는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에서 책임을 다한다는 전제하에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결혼 생활이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거나 방해가 된다면 결혼 생활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명확한 실행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과거에 저는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며 반평생 심혈을 기울였고,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후에도 여전히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결혼 때문에 본분을 거절하며 진리를 얻을 많은 기회마저 놓쳤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제 예순을 앞두고 있으니, 얼마 안 남은 시간을 본분을 이행하는 데 써야겠습니다. 앞으로의 결혼 생활은 제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로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문제가 발견되면 동역자 자매와 교제하여 해결하고, 어려움에 처하면 윗선 리더에게 구하다 보니 얼마 후 사역에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묵상의 시간을 가지고,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에 놓이면 그 즉시 진리를 구해 해결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정도 진리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집에 있을 땐 낮에는 교회 일로 바쁘고 아침저녁으로는 집안일을 하느라 바빠 묵상할 시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요즘에서야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갖추고 진리를 구할 시간이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젠 깨달았습니다.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저의 사명이 아니며, 그런다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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