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을 찾다
중국 충성(重生)저는 어릴 때부터 청춘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보면 너무 부러웠고, 그래서 절 아껴 주고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는 것이 평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7살에 남편을 만났는데, 마침...
2012년, 저와 아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저희는 평소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매일 즐겁고 충실하게 보냈습니다. 2년 후,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본분 때문에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자 아내는 저에게 조금은 불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면서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알았지만 아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남편의 책임을 다해 아내와 아이를 잘 돌봐야 결혼 생활이 행복하고 가정이 화목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집에 있을 때면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아내에게 맛있는 음식도 자주 만들어 주며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끔 본분이 바빠 아내를 돌보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중에라도 최선을 다해 보상해 주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불만을 품어 저희 관계에 금이 갈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설교자가 되었고, 집에 있으면서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었습니다. 때로는 본분 때문에 바빠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내는 제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본분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서기 전에는 일찌감치 아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 두었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아내가 원하는 것이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들어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좋은 남편이 해야 할 일이고, 그래야만 저희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아내는 돈과 육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데에만 온 마음을 쏟았습니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즐겼으며, 가정을 돌보지 않을뿐더러 술집에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점점 타락해 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내가 늘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저를 배반할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애써 이룬 가정이 깨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내와 자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며 아내가 그런 좋지 않은 곳을 멀리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내는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행동은 여전했습니다. 점차 저와 아내 사이에는 대화가 줄어들었고, 제가 집에 돌아와도 아내는 저를 본체만체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아내가 이미 저를 배반한 것은 아닌지 늘 걱정했고, 특히 텅 빈 집을 볼 때면 마음속에 늘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아내와 쌓아 온 수년간의 감정이 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제가 고통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던 2020년 8월의 어느 날, 저는 리더에게서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저와 함께 동역하던 왕창 형제가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경찰이 이미 CCTV 영상을 확보해 왕창 형제와 접촉한 사람들을 추적하고 있으니 빨리 집을 떠나 숨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저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떠나면 아내와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고, 가정도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떠나지 않으면 체포되어 혹형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에 저는 결국 집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달 후, 저는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며칠 전 경찰 일곱 명이 저를 체포하기 위해 저희 집에 들이닥쳤는데, 제가 없는 것을 알고 아내의 언니를 대신 잡아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외지로 몸을 피해야 했습니다.
2023년 7월의 어느 날, 저는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집을 떠난 지 3년이 되자 아내가 이혼 소송을 걸고 다른 사람과 재혼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내가 저를 기다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깨지면, 그동안 힘들게 이룬 가정이 사라지는 거잖아? 아내와 결혼한 지 11년이 되었고, 사랑스러운 딸도 하나 있는데. 예전에는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만약 이혼하면 앞으로 나 혼자 어떻게 살지?’ 밤에 저는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고, 집으로 돌아가 결혼 생활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찰에 쫓기는 몸이었고, 집을 떠난 2년 동안 경찰이 몇 번이나 저희 집에 와서 잠복했으며, 아내의 휴대폰도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섣불리 집에 돌아갔다가는 체포되는 것은 물론 교회에까지 폐를 끼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기에 만약 떠난다면 그것은 본분을 내팽개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돌아가지 않는 것은 파경을 의미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아내를 만류하는 편지를 쓰며 아내가 제 고충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편지를 다 썼지만, 저는 제 진심 어린 말이 아내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느 순간이든 네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또 하나님이 너를 지금까지 살도록 이끌었고, 네게 결혼과 가정을 베풀어 주고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다해야 할 책임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너 스스로 결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까닭 없이 그냥 결혼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결혼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일은 이제 분명히 설명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않았느냐? 길이 뚜렷해지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결혼 생활에서 네가 다해야 할 책임 및 의무가 네 피조물의 본분 및 사명과 아무런 충돌과 갈등을 빚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네가 마땅히 따라야 할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도록 해라.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네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책임을 미루지 말고, 상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상대의 생활, 상대의 감정, 상대의 모든 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만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네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네 피조물의 사명 및 본분과 충돌할 경우, 네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본분과 사명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져야 하는 책임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거는 기대이자 너에게 하는 부탁이다. 물론 하나님이 모든 남자 혹은 여자에게 하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그게 안 돼서 그렇게 실행할 수 없다면, 너는 그저 이름만 걸어 놓고 믿을 뿐이다.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마음은 진실하지 않고, 너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 어떤 사람들은 이것저것 고려한다. ‘아, 내가 없으면 그가 어떻게 살지? 내가 없으면 우리 결혼은 깨어지지 않을까? 우리 결혼이 끝나는 건 아닐까? 그러면 난 앞으로 어떡하지?’ 앞으로의 일이 네가 고려해야 할 일이냐? 네가 가장 고려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고려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내려놓으라고 한 것을 어떻게 내려놓고, 하나님이 완수하라고 한 일을 어떻게 완수하는가 하는 문제다. 미래에, 앞으로 결혼이나 반려자가 없어도, 너는 그냥 살던 대로 끝까지 살 수 있고, 원래대로 잘 지낼 것이다. 하지만 네가 만약 이 기회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네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포기한 것과 같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고, 구원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네가 원해서 자신이 구원받을 기회와 권리를 포기하고, 사명을 포기하고, 그 대신 결혼을 선택하고, 부부가 같이 있는 쪽을 택하고, 배우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배우자를 만족시키는 쪽을 택하고, 완전한 결혼을 택한다면, 결국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네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는 너 자신도 잘 알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0)> 중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안정적인 생활과 반려자를 준 건, 네가 더 잘 지내고 누군가 너를 보살피고 동반하라는 뜻이었지, 반려자가 생긴 뒤로 하나님도 잊고, 하나님 말씀도 잊어버리고, 본분을 이행할 의무,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인생 목표도 포기한 채 배우자를 위해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었다. 네가 정말 그렇게 했다면, 정말 그렇게 살고 있다면 하루빨리 돌이키길 바란다. 그 누가 너에게 아무리 중요해도, 네 생명과 생활, 심지어 인생길에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는 너의 종착지가 아니다. 그는 단지 패괴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지금의 반려자를 안배했기에 너는 그와 함께 생활할 수 있지만, 만약 하나님이 마음을 바꿔 너에게 다른 누군가를 안배해도 너는 여전히 잘 지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네 반려자는 너의 유일한 사람도 아니고, 너의 종착지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네가 종착지를 기탁할 수 있는 분이고, 하나님만이 인류가 종착지를 기탁할 수 있는 분이다. 너는 부모를 떠나서도 생존하고 살아갈 수 있고, 배우자 없이도 당연히 전처럼 잘 살아갈 수 있다. 부모도 너의 종착지가 아니고, 배우자 역시 너의 종착지가 아니다. 배우자가 생겼다고 해서, 네 마음과 영혼, 육을 기탁할 대상이 생겼다고 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부탁을 잊어버리고,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 네 신분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양심과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는 짓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결혼과 가정, 자녀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런 것들을 주신 것은 단지 사람이 외롭지 않도록 부부가 서로 돌보며 더 나은 삶을 살라는 뜻이지, 배우자를 평생의 종착지로 삼고 좋은 가정과 결혼 생활을 지키는 것을 일생의 추구 목표로 삼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배우자야말로 제 일생의 종착지이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제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여겼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사랑과 가정의 따뜻함이 결여되었던 탓에 커서는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갖기를 무척이나 갈망했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후 아내의 사랑과 아이가 주는 행복과 기쁨을 맛보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더욱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이혼 소송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은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습니다. 결혼과 가정이 사라지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고, 심지어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 본분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제 마음속에서 결혼이 하나님보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제게 결혼과 가정을 주시고 가정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신 것은 결혼했다고 해서 본분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든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서양 선교사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혼과 직장, 유복한 생활을 내려놓고 머나먼 중국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고, 그 덕분에 주 예수의 복음이 중국에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수많은 말씀으로 양육과 목양을 받았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이혼하면 가정이 깨지고 아이도 고생할 것이며, 더 이상 가정이 주는 따뜻함과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본분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 결혼 생활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저는 오직 개인의 이익만 고려했을 뿐 하나님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서양 선교사들과 비교하면 저는 정말 양심도 없고 너무 이기적입니다. 지난 수년간의 하나님의 이끄심과 공급을 받을 자격조차 없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무척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의 삶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에만 마음을 쏟았습니다.
한 달 후, 장모님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매형이 내부 경로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제가 지명수배된 것이 아니라 단지 추적을 받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 현지에만 있지 않으면 여기저기 숨어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모님은 지금 아내와 아이, 장모님이 다른 성(省)에 있는데, 저더러 그곳으로 올 의향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아이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정이 깨지지 않을 것이고, 아이도 따뜻한 가정을 가질 수 있을 거야.’ 바로 그때, 제가 하나님께 본분을 지키겠다고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본분을 포기하고 결혼 생활을 지키러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게다가 현재 저보다 이 본분에 더 적합한 사람도 없는데, 제가 떠나면 사역에 분명히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오늘 받은 장모님의 편지가 저에 대한 검증이며, 제가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보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본분을 우선으로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이 연약하여 돌아가서 결혼 생활을 지키고 싶습니다. 하지만 본분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 당신을 배반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 제가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보았습니다. 『사람은 물질세계에서 살고 있어서 하나님을 따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고 사랑을 주고 염려하는지 영원히 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네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보는 것은 너와 혈연관계에 있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너를 몹시 아끼는 그 사람이다. 네가 본 것은 너에게 육적으로 유리한 것들이고, 네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물질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사심 없음이다. 바로 이렇게 ‘사심 없는’ 사람이 오히려 그에게 생명을 준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하나님과 비교해 볼 때, 사람의 ‘사심 없음’은 오히려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사람이 생각하는 ‘사심 없음’은 실제적이지 않은 공허한 것이고 불순물이 들어 있다. 하나님과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다. 사람의 ‘사심 없음’은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사심 없음’은 하나님의 본질이 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사심 없음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끊임없는 공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오늘 내가 말하는 이 주제에 대해 깊이 느끼지 못하고 그저 머리를 끄덕여 인정하는 수준에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면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가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일과 사물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사심 없음만이 진정한 것이고 실제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직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무조건적이고 흠결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의 소위 사심 없음도 진실이 아닌 거짓되고 표면적인 것이다. 그것은 목적과 속셈이 있고 거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검증을 이겨 낼 수 없는 것이다. 추하고 비열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너희는 이 말을 인정하느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제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물질세계에서 살고 있어서 하나님을 따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고 사랑을 주고 염려하는지 영원히 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네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보는 것은 너와 혈연관계에 있는,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람이다. … 네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물질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중국 공산당 경찰에 쫓긴 이후로 줄곧 형제자매들이 저를 섬겨 주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외지로 옮겨 주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막 집을 떠났을 때, 저는 아내와 아이를 자주 그리워하느라 마음이 고통스럽고 연약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저를 양육하고 깨우치며 제가 진리를 깨닫고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여러 가지 사람과 일, 사물을 마련해 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생명이 조금 성장하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제가 지명수배된 것이 아니니 외지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아내와 딸이었습니다. 아내 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결혼 생활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당장이라도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사실이 증명하듯이, 제 마음속에는 오직 아내와 딸뿐이었고 하나님의 자리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큰데, 제가 하나님께 보답한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니 깊은 자책과 후회가 밀려왔고, 죄스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하고, 사심 없으며, 거룩하고, 어떤 거래나 불순물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랑은 거래와 불순물, 거짓으로 가득하며, 모두 이기적입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가 결혼 생활을 지키고 싶었던 것에도 개인적인 속셈과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결혼이 깨진 후 혼자 사는 것이 너무 외로울까 봐, 더 이상 가정이 주는 따뜻함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것입니다. 아내가 저와 이혼하려는 것도 자신의 앞으로의 삶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집에 있을 때 아내는 늘 “당신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잘해주니까 같이 사는 거지, 안 그랬으면 진작에 헤어졌을 거야.”라고 말했는데, 이제 그 말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제가 곁에 있어 줄 수 없으니 아내는 저를 떠나려 했습니다. 아내의 저에 대한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조건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아내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세상의 흐름을 좇으며, 제 앞에서 늘 소극적인 말을 해서 제 발목을 잡고, 좋은 물질적 생활만을 요구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아내는 불신파였습니다. 아내는 돈과 쾌락을 추구하고, 세상 사람들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따라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우리 사이는 애초에 합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만약 억지로 함께한다면 행복은커녕 끝없는 고통만 따를 것입니다. 집을 떠나기 전 아내와 다투고 갈등했던 일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금 제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결혼 생활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3년 전처럼 육적인 정에 빠져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사라질 것이고, 구원받는 것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한, 저는 늘 딸이 저와 아내의 이혼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앞으로 더 많은 고난을 겪게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모두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는 단지 육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자녀에게 도움과 보살핌을 줄 수 있을 뿐, 자녀의 일생의 운명이 어떠할지, 어떤 고난을 겪고 어떤 복을 누릴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안배하고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늘 딸을 걱정하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후, 저는 기꺼이 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장모님께 들어보니 딸은 잘 지내고 있었고, 교회 찬양도 십여 곡이나 배웠으며,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제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더 이상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23년 10월, 아내가 불신파로 규정되어 교회에서 제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은 비교적 담담했습니다. 또한 저를 지켜 주셔서 아내 때문에 본분을 포기하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스스로에게 반문했습니다. ‘나는 왜 행복한 결혼과 가정을 인생의 추구 목표로 삼고 온 힘을 다해 지키려고 했을까?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그러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민족의 기개’는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악영향과 봉건사상을 남겨, 조금의 자유도 없이 옭아매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패기도, 의지력도, 진취심도 없이 소극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노예근성에 깊이 젖어 버렸다. 이러한 객관적 요소들은 사람의 사상적 풍모, 개인의 이상(理想)과 도덕, 성품을 씻을 수 없는 더럽고 추한 몰골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공포의 암흑세계에 갇힌 것처럼 누구도 벗어날 생각을 못 하고, 이상적인 세상도 생각지 못한 채, 그저 현실에 안분지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힘껏 땀 흘려 일하며, 안락하고 원만한 가정, 부부간 사랑, 자녀의 효도, 즐거운 노년과 편안한 여생 등을 꿈꾸면서 말이다. 사람은 수십 년,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심지어 지금도 이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아무도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저 어두운 세상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명예와 이익을 다투며, 아귀다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중 하나님의 뜻을 구한 자가 있더냐? 하나님의 사역에 신경을 쓴 자가 있더냐? 흑암 권세에 점령당한 사람의 이 모든 것들은 이미 고질화되었기에, 하나님의 사역은 전개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사람은 하나님이 오늘날 맡긴 부탁에 대해 신경 쓸 생각조차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과 진입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저는 “두 손 꼭 잡고 백년해로하다.”, “부부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어려울 때 힘이 되어야 한다.” 등과 같은 사탄이 주입한 전통문화 사상의 독성에 물들고 영향을 받아서 행복한 결혼과 화목한 가정을 추구의 목표로 삼았고, 사람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께 따뜻한 가정을 선물로 받지 못한 까닭에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겼고,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을 행복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결혼 후, 아내의 관심과 보살핌, 그리고 가정과 딸이 주는 기쁨을 맛보면서 저는 평생을 바쳐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키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교회에서 본분은 이행했지만 마음은 늘 집에 가 있었습니다. 하루빨리 집에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생각뿐이었기에 본분도 건성으로 형식만 갖추곤 했습니다. 때로는 본분이 바빠서 아내를 잘 챙겨 주지 못했는데, 그럴 때면 집에 돌아가기가 무섭게 최선을 다해 아내의 마음을 풀어 주려 했습니다. 아내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든, 무엇을 사고 싶어 하든, 어디를 놀러 가고 싶어 하든, 심지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저는 최선을 다해 들어 주며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었습니다. 그 후 저는 경찰에 체포되어 3년 동안 집에 돌아갈 수 없었고, 아내는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저는 이혼하면 힘들게 이룬 가정이 무너질까 봐 걱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 결혼 생활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그 때문에 두 번이나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할 뻔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너무나 위험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행복한 결혼과 가정의 화목을 추구하는 사상 관점이 줄곧 저를 얽매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피조물의 본분보다 결혼과 가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그 결과 하나님을 7~8년이나 믿었지만 진리 실제에 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예전에는 아내에게 잘해주고 가정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기만 하면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방법으로 아내의 비위를 맞추며 결혼 생활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아내는 저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아내가 제게 잘해 줬던 것은 전적으로 제가 아내에게 마음을 쓰고 대가를 치르고, 심지어 인격과 존엄까지 내려놓고 비위를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제가 잘해 주는 호사를 누릴 수 없게 되자, 아내는 하루빨리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해 안달이 났습니다. 우리의 결혼은 철두철미한 거래였습니다. 이익이 있을 때는 잉꼬부부처럼 달콤하게 지내다가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걷어차는 관계였으니, 여기에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이런 일들을 돌이켜보면서, 저는 지난 수년간의 노고와 헌신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은커녕 오히려 상처와 고통만 가져다 주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부부간의 사랑이나 행복한 결혼이라는 것이 사람을 미혹하는 사탄의 달콤한 속임수이며, 온통 거짓과 기만뿐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행복한 결혼을 추구하며 치른 대가가 너무나 컸고, 너무나 가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는 추구하지 않고 그저 행복한 결혼 생활만 추구했던 것은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비위를 맞추고 결혼 생활을 지키는 데 시간과 정력을 모두 쏟았습니다. 그 결과 마땅히 얻어야 할 진리는 얻지 못했고, 마땅히 해야 할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의 생명 성장이 지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까지 저버렸으니, 정말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사람이 살면서 과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피조물이기에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더러운 육체 속에서 살고 있다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된 것이 아니냐? 네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너는 자신이 지금 받고 있는 이 작은 고난을 마땅히 기쁘고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욥이나 베드로처럼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 2> 중에서), 『사람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베드로의 모습으로 살려면 베드로의 인식과 체험을 갖춰야 한다.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더 깊고 순결한 사랑을 추구해야 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베드로 같은 사람이다. 너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만족하며 소극적이 되어 후퇴해 더 깊고, 더 세밀하고, 더 실제적인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적극적인 면에 자발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 너는 실제적인 사랑을 갖추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타락해 살아가는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고, 자기 삶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얻지 못할 진리도, 서지 못할 정의도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는 모두 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너에게 이런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개 없는 나약한 자가 되지 마라. 너는 의미 있는 인생과 의미 있는 진리를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그렇게 건성으로 대해선 안 된다. 일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지나가 버리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너는 베드로와 같은 의지와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우롱하지 마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네 일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더 의미 있게 믿을 수 있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어떻게 해야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고자 해야 하며, 욥이나 베드로처럼 살아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베드로는 오직 하나님을 따르는 데에만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장차 출세하여 관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부모의 기대를 추구 목표로 삼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이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대신 오직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데 온 힘을 다했고, 결국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욥 또한 시련이 닥쳐 산을 가득 메운 소와 양, 그리고 자녀들을 모두 잃고 자신도 온몸에 악창이 났을 때,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고 말했지만, 욥은 아내의 말을 듣고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켰고, 아내를 어리석은 여자라고 꾸짖으며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여 사탄에게 치욕을 안겨 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욥의 체험을 통해 저는 오직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고 굳게 서서 증거해야만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으며,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인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분에 몰두했으며, 동시에 체험 간증문 쓰는 훈련도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쓴 체험 간증문이 영상으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 체험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동했으며, 오직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고,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있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2024년 2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아내가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제 마음은 비교적 담담했습니다. 아내와의 이혼 때문에 고통스럽거나 슬프지 않았고, 오히려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이제 저는 이런 짐들을 내려놓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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