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아들이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2025.6.19

저는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생활하느라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도시 사람들의 생활을 부러워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만 땅 파고 밭 매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정말이지 악착같이 공부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쉴 때도 공부했고, 집에 가면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뜻과는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재수를 두 번이나 했지만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고, 저는 그 일로 심한 불면증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저는 창피해서 반년 넘게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남편과 집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후, 똑똑하고 귀여운 아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 아들만큼은 반드시 열심히 공부시켜서 대학에 보내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 출세하게 해 줘야지. 그래야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도 어깨 펴고 살 수 있을 거야. 어릴 때 우리 집은 자매가 많아서 부모님이 우리 공부에 신경쓸 시간이 없으셨고, 그래서 내가 기초를 다지지 못했지. 우리 아들은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기초를 다져 줘야 해.’ 그래서 아이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면 무엇이든 사 주었습니다. 가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잠시 놀고 싶어 하면, 저는 아이를 다그치곤 했습니다. “네가 지금 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커서 막노동이나 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거야. 꼭 우리처럼 말이지. 이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내가 매일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다 누구를 위해서겠니? 전부 너 잘되라고 하는 건데, 넌 왜 시원치 않니!” 아이는 마지못해 숙제를 하러 갔습니다. 숙제를 다 끝내도 저는 아이를 놀게 하지 않고 또 다른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저는 책을 백 번 읽으면 저절로 그 뜻을 깨우친다고 믿었기에, 매일 아침 아이를 30분 일찍 깨워 책을 외우게 했습니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릴 때면 고함을 치며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저는 매일 활시위처럼 긴장을 놓지 못하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말을 듣지 않으면 잔소리를 퍼부었습니다. “넌 어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내가 매일 죽어라 고생하면서 네 공부 뒷바라지하고, 네가 학교 가면 빨래하고 밥하고, 또 일을 해서 돈 벌어다 맛있는 것도 사 주는데, 이게 다 누구를 위해서겠니? 이게 다 네 앞날을 위한 것 아니니? 내 말 안 듣고 공부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틀림없이 후회한다!” 저는 아이가 놀다 보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까 봐 밖에서 놀지 못하게 했고, 어쩌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도 서점에만 갔습니다. 저는 아이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공부하라고 다그쳤고,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영어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내가 먼저 영어를 배워야 아들을 가르칠 수 있지! 모든 과목에서 성적이 좋아야 대학에 갈 확률이 높아지고, 대학에 가야만 운명을 바꿀 기회가 있고 출세할 수 있어. 그러면 부모인 우리도 체면이 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일도 많은데 공부까지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우고 익힌 다음, 아들이 익힐 때까지 가르쳤습니다. 아이는 매일 힘들어하고, 말수도 줄고,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등도 굽고 기운도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지만, 아이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결국 아들은 이류 대학에 겨우 합격했습니다. 저는 그런 대학을 나와서는 좋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아들을 시내 명문 고등학교에 보내 재수를 시켰습니다. 저의 피나는 노력 끝에 아들은 좋은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뻤고 어깨가 으쓱해져서 걸을 때 기분도 예전과 달랐습니다. 저는 아들이 대학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면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고, 저도 늙어서 아들 덕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아들은 영어 4급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아는 사람을 통해 손을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이랬습니다. ‘이제 완전히 끝났구나. 출세할 가망은 이제 눈곱만큼도 없어. 내 수년간의 노력이 결국 물거품이 되었구나. 모든 희망이 산산조각 났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아들에게 질책과 원망을 퍼부으며, 변변치 못하고 공부도 열심히 안 하는 녀석이라고 탓했습니다. 아들은 제 잔소리에 집에 들어오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아들이 대학 졸업장이 없어 계속 취업을 못 하자, 저는 밖에 나갔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아들은 어디서 일해요? 일은 잘 되고요?”라고 물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만약 아들이 대학은 갔지만 졸업장을 못 받았다는 사실이 남들에게 알려지면, 대학을 안 간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러면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어?’ 그 생각에 저는 매일매일 몹시 괴로웠습니다.

2021년 12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제 고통스러운 마음을 한 자매님에게 털어놓았더니,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주었습니다. 『출생과 성장, 결혼에 있어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얼마나 많았든, 경험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출생 시점과 장소, 외모, 부모, 배우자를 선택할 수 없고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기 시작하면, 사람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자녀가 대신 이뤄 주고 뜻대로 되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만회해 주길 바란다. 이 때문에 자녀에게 터무니없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딸은 예쁘고 아들은 잘생기기를 바란다. 딸은 예술적인 재능을 두루 갖추고, 아들은 공부와 운동에 능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길 바란다. 딸은 온화하고 현명하며 교양과 지성을 겸비하기를 바라고, 아들은 똑똑하고 유능하며 이해심이 많기를 바란다. 딸과 아들 모두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를 살뜰히 챙기는, 모두에게 사랑과 칭찬을 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이 시기 사람은 인생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짐과 동시에 새로운 욕망에 불이 붙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변변찮은 탓에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 성공의 기회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신이 못 이룬 꿈과 희망을 자녀에게 떠넘기고 대신 이뤄 주기를 바란다. 자녀가 가문을 빛내거나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바라고, 큰 부자나 유명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녀가 출세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긴다.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그리고 그 자녀의 외모나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자녀의 운명은 더욱이 부모가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느냐?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이 얼마나 분수를 모르는 짓이냐?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운명을 주관하시기에, 사람이 어떤 방법을 쓰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든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어릴 적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에 불만을 품고 지식으로 운명을 바꾸려 했습니다. 제 이상이 좌절되자 이번에는 그 희망을 아들에게 걸고, 아들이 출세하여 제 소원을 이루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저는 아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시간대별로 학습 계획을 짜 주었고, 심지어 주말에도 아들을 나가 놀지 못하게 하고 외출해도 서점에만 데려갔습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아들을 감독했으며, 아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때리거나 질책했습니다. 아들이 공부를 못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제 체면이 깎일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제 기대를 아들에게 강요한 결과, 아들은 심한 억압 속에서 살아야 했고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 역시 너무나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운명을 주관하시며,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 지식으로 저와 아들의 운명을 바꾸고 출세하려 했습니다. 비록 큰 대가를 치렀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 운명조차 다스리지 못하면서 아들의 운명까지 바꾸려 했으니,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교만하고 주제넘었으며, 어리석고 무지했습니다! 예전에 저희 이웃 중에는 학력은 낮았지만 사장이 되어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었고, 제 조카도 학력은 높지 않았지만 전자제품 가게를 운영하며 돈을 많이 벌어 학력 높고 지식 많은 사람들보다 더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반면 제 고향의 한 동생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졸업 후 우울증을 앓아 사람들과 말도 섞지 않으려 했고,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저는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늘 벗어나려 애쓰다가 저 자신은 물론 아들까지 해치고 말았습니다. 이제야 제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든 당신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더 이상 아들을 질책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고, 아들도 이전처럼 저를 피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후 길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아들이 어디서 일하는지 물었을 때 저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고,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걱정되었고,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들의 일에 대해서는 이제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이 그 얘기를 꺼내면 여전히 마음이 불편한 걸까 하고요. 그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지식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탄은 온갖 방식을 동원한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단순한 특정 지식을 활용하기도 하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꿈을 이루게 만들기도 한다. 사탄은 대체 너를 어떤 길로 끌고 가려고 이러는 걸까? 사람은 지식 학습이 비난할 만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서,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가진다는 것은 패기가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삶의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크게 성공하는 게 더 멋진 삶 아닌가? 가문을 빛내고 이름을 후세에 떨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이는 좋은 일이고, 정당한 일이고,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사탄이 사람을 그러한 길로 유도하는 것으로 그칠까? 당연히 아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체 무엇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다. 사탄은 과격한 방식이 아닌 매우 부드럽고 사람의 관념에 맞는 방식을 써서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생존 방식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그 인생의 꿈은 겉으로 내세우는 말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되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자본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인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는 자본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확실하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구하지 않게 된다.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의 유혹이 너무나 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사람이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아도 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이 바로 명예와 이익을 이용해 사람을 패괴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하게 하며,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것을 얻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식이 곧 힘이고,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자신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만들자’, ‘모든 게 다 쓸모없고, 오직 공부만이 최고다’와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했고, 사촌 언니가 도시에서 차를 몰고 집에 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것을 보며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장차 꼭 사촌 언니처럼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명예와 이익을 좇기 위해 저는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었고, 쉬어야 할 때도 쉬지 않았습니다. 결국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려 밤새 잠 못 이루고 수면제에 의존해야 했으며, 매일 억지로 버티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고 제가 원하던 삶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깨닫지 못하고,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 제가 이루지 못한 이상을 아들에게 떠넘겼습니다. 어린 아들이 잠시 놀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지만, 저는 제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아이의 생활을 통제하고 매일 공부만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때리거나 꾸짖었고, 그 결과 활발하고 명랑했던 아이는 온종일 우울해하며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고, 어린 나이에 등이 심하게 굽고 탈모까지 생겼습니다. 저의 통제 때문에 아이는 저와 멀어졌습니다. 아이가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해 제 목적이 좌절되고 명예와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되자,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고,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를 원망하고 아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탓하며 매우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해서 얻은 씁쓸한 결과였습니다. 언니네 마을에 살던 한 남자아이도 집이 매우 가난했는데, 지식으로 운명을 바꾸려 몇 년을 재수했지만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된 일이 떠올랐습니다. 이 모두 사탄이 명예와 이익을 이용해 사람을 패괴시킨 결과인 것입니다.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서 명예와 이익을 제 일생의 추구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아들을 해치고 저 자신도 해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탄에게 고통받고 싶지 않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이런 요구들, 이런 행동 방식들이 옳은지 살펴보자. 과연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그럼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이런 행동 방식들은 결국 근본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부모의 주관적인 의식 속에 자식의 미래에 대한 그들의 여러 가지 예상, 계획, 그리고 규정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런 기대가 생긴 것이다. 이런 기대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들은 자식에게 여러 가지 기능이나 연기, 춤, 그림 등을 배우도록 요구한다. 그리하여 자식이 인재로 자라나 하류층이 아닌 상류층이 되고, 졸병이 아닌 고위 관료가 되며, 세계 500대 기업에서 일하는 사장, CEO, 임원이 되는 등등 말이다. 이것들은 모두 부모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럼 자식은 미성년자일 때 부모가 기대하는 이런 내용들에 대해 개념이 있겠느냐? (개념이 없습니다.) 아무런 개념도 없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느냐? 어린아이는 학교에 가서 글자를 깨치고 열심히 공부하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어린아이가 아는 것은 그저 매일 착실하게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숙제를 완성하는 것뿐이다. 그것 말고 하는 일들이라고는 놀고먹고 상상하고 꿈꾸는 것 등이다. 아이는 미성년자일 때 인생의 길 위에 놓여 있는 미지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념도 없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다. 성인이 된 이후와 관련되는 예상이든 정의든 그것은 모두 부모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이런 그릇된 기대들은 자식과는 관련이 없다. 자식은 그저 부모의 기대 속에서 이런 기대들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할 뿐이다. 부모의 이런 기대들은 무엇에 근거하겠느냐? 모두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사회와 세상에서 비롯되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모두 자식이 이 세상과 사회에 적응하고 세상과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자식이 사회에서 자리 잡아 안정적인 직업, 가정, 그리고 미래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부모는 후손에게 여러 가지 주관적인 기대가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컴퓨터 공학자가 꽤 유행하다 보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중에 제 아들도 컴퓨터 공학자 시킬 거예요. 그 일을 하면 돈도 많이 벌고, 하루 종일 컴퓨터를 갖고 다니면서 컴퓨터 공학을 다룰 테니 부모도 체면이 서잖아요!” 아이가 모든 사물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없는 상황에서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는 완전히 어른의 시선으로, 그리고 세상사에 대한 견해, 관점, 기호에 따라 자식에게 기대를 거는 것인데, 이는 주관적인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듣기 좋게 말하면 주관적인 것이지만 사실은 무엇이겠느냐? 이 주관적인 것을 또 다른 방면에서 해석하면 무엇이겠느냐? 이기적인 것 아니겠느냐? 강요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어떤 일, 어떤 직업을 좋아하고, 사회에서 자리 잡는 것, 체면이 서는 것, 관직에 오르는 것, 돈이 많은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자식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한다면,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길을 걷도록 한다면 앞으로 그런 환경에서 생활하며 그런 일에 종사하는 것을 자식이 좋아하겠느냐? 자식에게 어울리겠느냐? 그의 운명은 무엇이겠느냐?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는 무엇이겠느냐? 너는 알고 있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들은 상관없습니다. 부모인 제가 좋아하면 그만이죠. 제가 좋아하니까 자식에게 이런 기대를 거는 거예요.” 이는 너무나 이기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무도 이기적이다! 듣기 좋게 말하면 주관이 뚜렷하고 자주적이지만 사실은 무엇이겠느냐?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는 자식의 자질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운명과 일생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하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기호, 타산, 그리고 계획을 자식에게 강요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바로 아이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를 때,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온갖 요구를 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고, 아들이 장차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사실 그것은 저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대학에 합격해서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아들을 통해 그것을 이루려 했던 것입니다. 아들이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저는 아들의 생각은 묻지도 않고, 제 생각대로 졸업 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전공을 골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공이 영어 4급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들은 언어 능력이 부족했고, 결국 영어 4급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졸업장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제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저는 아들을 원망하고 질책했고, 그로 인해 아들 역시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제 요구를 아들이 달성할 수 있는지, 감당할 수 있는지, 아들이 정말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늘 일방적으로 제 취향과 계획, 바람을 아들에게 강요했습니다. 제가 한 모든 일은 겉으로는 아들을 위한 것이었고, 아들이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본질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저의 야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천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의 본질을 해부해 보면, 부모의 기대는 이기적이고 인성에 위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모의 책임과도 관련이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여러 가지 기대를 품는 것, 강제로 다양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위 책임이란 무엇이겠느냐? 부모가 최소한 다해야 하는 책임은 너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나쁜 사람이 되지 말고 선량해야 한다고 교육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너를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 밖에 너의 나이, 네가 견딜 수 있는 정도, 너의 자질과 취미에 근거해 너에게 적합한 어떤 지식과 재주 등을 익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부모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이 우주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식에게 알게 하며, 그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인도하고, 성경 이야기도 좀 들려준다. 그가 어른이 된 후 세상의 흐름을 좇고 각종 복잡한 인사 관계에 빠져 이 세상, 이 사회의 갖가지 흐름에 짓밟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길 바란다. 부모가 다해야 하는 책임은 부모의 기대와는 관련이 없다. 부모가 다해야 하는 책임은 바로 부모라는 역할을 맡아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고 그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자식의 육적인 생활 방면에서 그의 의식주를 제때 살피는 것, 또는 그가 아플 때 신속히 보살펴 주는 것이다. 아이가 아플 때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해야 한다. 그를 상관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가 아픈 걸 보고도 그에게 “학교는 계속 가야지. 공부도 계속 해야 하고. 숙제도 빼먹으면 안 돼. 많이 빼먹으면 수업을 못 따라가니까.”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에게 휴식이 필요하면 휴식을 취하도록 해야 하고, 그가 아프면 몸이 회복하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 이는 부모의 책임이다. 한편으로는 그의 몸이 건강하도록 잘 보살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이 건강하도록 지도하고 교육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은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지 자식에게 강요하는 어떤 비현실적인 기대나 요구가 아니다. 한 방면은 마음에 필요한 것이며 다른 한 방면은 육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부모는 이 두 방면에서 모두 책임을 다해야 한다. 겨울에는 그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그에게 생활 상식들을 알려 주어야 한다. 감기에 걸리는 상황,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기 때문에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 날씨가 추워지면 바람 부는 곳에서 함부로 옷을 벗거나 바람을 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 그가 스스로 건강을 챙길 줄 알도록 해야 한다. 한편, 아이의 어린 마음속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유치하고 성숙하지 못한 생각들이 생기거나 극단적인 사상들이 생기면, 부모는 발견 즉시 강제로 억압하지 말고 제때 올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그가 그것들을 표출하고 털어놓아 진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보살펴 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끌고 바로잡아 주며 올바른 사상 관점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부모가 다하는 책임은 사실 후손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기대와 요구를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책임은 아이의 자질과 필요, 그리고 각 연령대의 실제 상황에 맞추어 아이를 긍정적으로 인도하고 돕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의 건강을 잘 돌봐야 합니다. 좀 더 크면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고, 세상의 악한 풍조를 따르지 않고, 또 극단적인 생각을 갖지 않도록 긍정적으로 이끌어주고, 아이가 즐겁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올바르게 이끌어야 합니다. 또한 아이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도록 인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달은 후, 저는 더 이상 아들을 질책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도 저를 보면 이전과 달리 마음속 이야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아들이 지금 풍족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얼굴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마음의 해방감을 얻었고, 이런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임을 체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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