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다

2025.11.27

중국 이산(依姍)

2003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어 몹시 감격한 저는, 이 좋은 소식을 어서 빨리 주 안의 형제자매들에게 알려 모두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복음 전파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2004년 3월, 저는 사역상 외지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당시 저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어서 빨리 나가 복음을 전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세의 구원을 받아들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떠나면 두 아이는 누가 돌봐 주지? 열세 살 딸과 열두 살 아들 모두 어릴 때부터 내가 키웠는데. 남편은 하루 종일 일에만 바빠 아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 내가 본분을 이행하러 나가면 아이들 밥은 누가 챙겨 줄까? 만약 아무도 돌봐 주지 않다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남편이랑 시어머니가 나보고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까? 친척과 이웃들도 나를 나쁜 엄마라고 하겠지.’ 이런 생각들이 들자 마음이 착잡하고, 마치 큰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도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지만 마음속으로 도저히 아이들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떠나면 아무도 아이들을 돌봐 주지 않을까 봐 걱정입니다. 제가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요? 저를 깨우쳐 이끌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진정 나를 위해 완전히 헌신하고 바칠 수 있는 자 누구냐? 모두가 이리저리 망설이고, 이모저모 따져보며, 가정과 바깥 환경, 먹고 입는 것 등을 생각한다. 너는 지금 나를 위해 내 앞에서 일을 한다고 하나, 네 마음은 여전히 집에 있는 처자식과 부모를 생각한다. 설마 그러한 것들이 다 너의 유업이란 말이냐? 어째서 그러한 것들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는 것이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내가 네게 마련해 준 것이 적절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냐? 어째서 줄곧 육체의 가정을 마음에 두고 가족을 걱정하느냐? 네 마음에 내가 있긴 한 것이냐? 그러고도 내가 네 안에서 주권을 잡고, 너의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겠다고 말하니, 전부 사람을 기만하는 거짓말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위하는 자 몇이나 되느냐? 또 자신을 생각지 않고 오늘의 하나님나라를 위하는 자 누가 있더냐? 스스로 한번 잘 생각해 보아라.(<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59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주관하고 계셔. 두 아이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의 미래는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안배해 놓으셨으니 내가 걱정해도 소용없어. 하나님께 믿음을 갖고 아이들을 그분께 맡겨야 해.’ 그래서 저는 두 아이를 잘 챙겨준 뒤,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하러 나섰습니다.

2004년 겨울, 날씨가 무척 추웠습니다. 어떤 형제자매가 자녀에게 겨울옷을 사 주어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두 아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날씨가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있을까?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지?’ 그래서 저는 사역을 안배해 놓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두 아이는 밥도 짓고 빨래도 할 줄 알았고, 몸도 아주 건강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째서 그러한 것들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는 것이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내가 네게 마련해 준 것이 적절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냐? 어째서 줄곧 육체의 가정을 마음에 두고 가족을 걱정하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59편> 중에서) 예전에 제가 믿음이 너무 작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잘 지내는 것을 보니, 저도 아이들을 내려놓고 본분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후 다시 만난 아이들은 훌쩍 커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도와 가게에서 물건을 팔 뿐만 아니라 물건을 사들이는 법도 배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두 아이가 일을 잘하고 똑똑하다고 칭찬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무척 기뻤고, 하나님께 아주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두 아이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아이들은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하나님 말씀도 보았습니다.

2012년 연말, 저는 외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은 제가 교회 리더를 팔아넘기도록 일주일 동안 저를 혹독하게 고문했고, 그러면서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치범에 해당하며 저 같은 경우는 최소 3년에서 7년 형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위협하고 협박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징역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내가 잡혔다는 걸 알면 얼마나 걱정할까? 만약 경찰이 아이들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걸 알아내면 아이들까지 잡아가는 건 아닐까? 몇 년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아이들까지 끌어들인다면….’ 저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며칠 후 경찰이 저를 구치소 입구로 데려갔습니다. 딸이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두 아이가 여기저기 사람을 찾아 부탁하고 갖은 애를 써 가며 7~8만 위안을 쓴 끝에 제가 보석으로 풀려나 18개월간 보호 관찰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당신을 구해내려고 정말 많이 뛰어다녔소. 매일 사방으로 수소문하느라 장사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 아이들은 매일 당신이 경찰에게 맞아 죽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냈소. 우리 아들은 집을 팔고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당신을 꼭 빼내 오겠다고 하더군.” 남편의 말을 듣고 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열 살 남짓이었을 때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몇 년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이제 아이들이 또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희생했으니, 아이들에게 정말 면목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잘 돌보고, 손주도 봐주고 일도 좀 하면서 아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가 집에 돌아온 지 열흘 만에 대여섯 명의 경찰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저를 다시 구치소로 잡아갔습니다. 그들은 엿새 동안 저를 혹독하게 심문했지만 별다른 것을 캐내지 못하고 저를 풀어 주었습니다. 저는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 외지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딸에게 편지를 보내 집안 형편을 물었습니다. 딸은 제가 집을 떠난 후 경찰이 여러 차례 집에 찾아와 제 행방을 밝히라고 윽박지르고, 정부에서 아들의 사업을 취소하고, 자신도 제가 체포된 일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로 예배와 본분을 중단했다면서, 시간이 지나자 본인도 연약해지고 아들도 더는 예배에 참석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편지를 다 읽고 저는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두 아이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나중에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없지 않은가? 만약 내가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교제해 주었다면, 아이들도 하나님을 잘 믿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하루 종일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정작 내 자식들이 연약해졌을 때는 제대로 돕고 붙들어 주지 못했구나. 나는 정말 나쁜 엄마야.’ 그 무렵 저는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아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없었고, 새 신자들도 제때 양육하지 못해 일부는 소극적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제 상태를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저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라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이 현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다.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사람의 사상 관점에는 전통문화의 요소가 적지 않다. 특히 전통문화는 여자에게 남편을 돕고 자식을 가르치며 현모양처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아가며, 가족들 세끼 식사 준비와 뒷정리를 비롯한 모든 집안일을 훌륭히 해내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현모양처의 기준이다. 여성들도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심에 어긋나고 도덕 기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도덕 기준에서 벗어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남편과 자식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좋은 여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서 진리를 이해하고 일을 간파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피조물이니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이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과 현모양처가 되는 일이 부딪히지 않느냐? 현모양처가 되려면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려면 현모양처가 될 수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책임 있게 교회 사역을 대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을 택한다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이럴 때 너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네 사상에는 어떤 파동이 일겠느냐? 네 자식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겠느냐? 너의 그런 미안함과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에게 죄책감이 드느냐? 죄책감도 없고 자책감도 없다면 그것은 네 마음과 네 사상 속에 진리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네가 이해한 바는 무엇이냐? 전통문화이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네 사상 속에는 현모양처가 못 되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바른 여자가 아니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너는 이 관념에 얽매이고 사로잡혀 하나님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여전히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분 이행과 현모양처 되는 일이 부딪혔을 때, 너는 비록 마지못해 본분을 택하거나 하나님께 충성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틈이 생기면 자식과 남편에게 더 많이 보상해 주려는 마음에 여전히 그들을 챙길 기회를 찾는다. 설령 본인이 더 고생스럽더라도 마음만 편하면 된다. 이것은 전통문화 중에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 이론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일이 아니냐? 너는 지금 양다리를 걸친 채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고 싶고 현모양처도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책임과 의무, 우리의 사명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 하나뿐이다. 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였느냐? 어째서 또 다른 길로 빠지느냐? 설마 네 마음속에 자책감도 참소도 없단 말이냐? 진리가 아직 마음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고, 마음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지 못한 까닭에 너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다른 길로 빠진다. 비록 지금 본분을 이행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사실 진리의 기준, 하나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자 하나님이 정한 운명,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에게도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할 필요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에게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사람의 일생에서 반드시 완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너는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제가 전통문화에 너무나 심각하게 속박되고 얽매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좋은 어머니라면 자식을 위해 살아야 하고, 자식의 하루 세끼를 잘 챙겨주며, 일상 생활의 모든 일과 집안일을 잘해야만 현모양처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양심과 도덕 기준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줄곧 현모양처를 좋은 여자의 기준으로 삼았고, 자녀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며, 평생 자녀를 위해 기꺼이 소나 말처럼 일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제가 공산당에 체포된 후, 두 아이가 저를 위해 많은 돈을 썼고, 장사도 지장을 받았으며, 마음까지 졸였기에 저는 더욱 자식들에게 빚을 졌다고 느꼈습니다.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저 때문에 자식들이 이렇게 많은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며, 자식들을 위해 일을 더 많이 해주고, 손자들도 돌봐 주면서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 했습니다. 제가 체포된 일로 인해 딸은 예배도 못 드리고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아들은 직업도 잃고, 며느리까지 가로막고 핍박하는 바람에 하나님을 믿을 마음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저는 그것이 제가 직무를 다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읽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책감에 빠져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양육을 책임진 새 신자들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져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때도, 서둘러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새 신자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온통 어떻게 하면 집에 돌아가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안전상의 문제로 집에 돌아갈 수 없는 것 때문에 늘 아이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며 속으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을 진리를 얻는 것보다, 본분을 이행하는 것보다,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비록 지난 몇 년간 가정과 일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했지만, 제 사상 관점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할지를 생각하기보다, 그저 현모양처가 되기를 추구하다가 하마터면 본분과 구원받을 기회를 모두 망칠 뻔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어리석고 무지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아이들에게 하나님 믿는 일에 대해 적지 않게 말했고, 아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으니, 제 책임은 이미 다한 것이었고 아이들에게 빚진 것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겪은 이런 고통은 사실 모두 공산당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만약 공산당이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체포하지 않았다면 저도 집에 돌아가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공산당을 미워해야 합니다. 공산당이 저와 아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모든 것을 제 탓으로 돌리며, 아이들이 겪는 고통이 제가 어머니로서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우겼습니다. 제가 정말 너무나 어리석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닫자 제 내적 상태는 어느 정도 호전되었고, 마음도 본분에 쏟을 수 있게 되었으며, 소극적이고 연약했던 새 신자들도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3년, 유다가 저를 팔아넘기는 바람에 저는 경찰에게 계속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2024년 1월, 경찰이 제 딸에게 전화해 파출소로 오라고 했습니다. 딸은 제가 또 잡힌 줄 알고 허둥지둥 파출소로 달려갔는데, 뜻밖에도 경찰은 제 딸에게 ‘3서’에 서명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라고 강요하며 위협하고 협박했습니다. 딸은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지 못하고 ‘3서’에 서명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딸은 말을 잘 듣고 착해서, 한 번도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을 막은 적이 없었어. 내가 경찰에 체포된 후에는 본인도 그것 때문에 안전상의 우려가 생겨 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본분도 이행하지 못했지. 그 후로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속박을 받아 지난 몇 년간 진리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하고, 돈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도 열심히 먹고 마시지 않고 본분도 이행하지 않아 교회에서 이미 불신파로 제명 처리되었어. 그런데 이번에 또 ‘3서’에 서명했으니, 완전히 구원받을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자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당시에 제가 집에 자주 들러 아이들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교제해 주었더라면, 아마 딸이 진리를 좀 더 깨달아 ‘3서’에 서명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마음속으로 더욱 큰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 며칠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기도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그가 걷는 길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분명한 사실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길을 걷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그가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사람이 되든 그것은 그 자신의 일이며, 예정된 것, 타고난 것으로, 본성과 관계가 있다. 그럼 부모의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겠느냐? 사람의 본성에 영향을 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부모의 교육은 사람의 본성에 영향을 줄 수 없고,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다. 부모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무엇뿐이냐? 일상생활 속 자녀의 단순한 행위들, 깊이가 얕은 사상과 처신의 도리들은 부모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부모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책임은 바로 자녀가 바른길을 걷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열심히 공부하고, 성인이 된 후 두각을 드러내며,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가르치는 한편, 자식의 행위를 규범화하여 연장자를 보면 인사하는 등 예의를 알려 줘야 한다. 이렇게 행위와 관련된 것들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다. 자녀의 생활을 돌보고, 자녀에게 기본적인 처신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 부모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부모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부모는 성격이 굼떠서 무슨 일을 하든 느릿느릿하지만, 자식의 성격은 매우 급해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는 열네다섯 살이 되면 사회에 나가 분투하며, 어떤 일이든 자기가 알아서 해서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등 매우 독립적이다. 이것이 부모가 가르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격과 성품, 나아가 그의 본질과 관계되는 것, 추후에 그가 선택할 길 등은 부모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 사람이 평생 어떤 길을 걷느냐 하는 것은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정한 바이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인류가 체험을 통해 종합해 낸 것이다. 상대가 미성년자일 때, 너는 그가 어떤 길을 걸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성인이 되면 사상이 생기고, 문제를 사고하게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을 할지 선택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고위 관리가 되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변호사가 되겠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등 각자 다른 선택을 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다. 누구도 “부모님이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부모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될 거예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런 바보는 없다. 성인이 되면 사상이 활성화되고, 조금씩 성숙해지며, 눈앞에 놓인 길과 목표가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럼 그가 어떤 부류이고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가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나타난다. 이때, 모든 사람의 성격이 점차 명확해지고, 성품도 점차 분명해지며, 그가 추구하는 길이나 인생 방향, 그가 속하는 집단 역시 점차 확실해진다. 이는 다 무엇에 근거한 것이겠느냐? 근원을 따져보면 하나님이 예정한 것이지, 부모와는 상관이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자녀가 어떤 길을 갈지는 부모가 결정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며, 부모의 교육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딸은 ‘3서’에 서명하기 전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장사가 바쁘면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도 않았으며, 본분도 이행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추구하고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좇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리더가 여러 차례 교제해 주었지만 딸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딸의 평소 모습을 근거로 불신파로 제명 처리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딸이 또 ‘3서’에 서명한 것은 본인의 불신파로서의 본질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딸이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바른길을 가지 않는 것은 자신의 본성 본질이 결정한 것이지, 어머니인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자식들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자신들의 본성이 진리를 싫어하고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지, 누구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읽어준다고 해서 본인들이 진리를 잘 추구하고 바른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 본성이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매일 교제해 준다 한들 자식들의 본질을 바꿀 수도, 자식들이 가는 길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녀들을 바라보게 되자, 마음이 많이 해방되었고, 더는 그들에게 빚졌다고 느끼지 않았으며, 본분을 이행할 때도 더는 방해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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