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과오 때문에 오해 속에서 살지 않게 되었네

2025.8.1

중국 쑤톈(蘇恬)

전 2011년에 엄마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때는 제가 학생이라 주일에만 예배에 갔었죠. 그러다 201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했어요.

2018년 8월, 제가 스물두 살 되던 해였는데, 중국 공산당이 계속 크리스천들을 박해하고 잡아가는 바람에 저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로 가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어요. 근데 제가 공항에서 붙잡힐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경찰들은 저한테 교회 정보를 불라면서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발을 모으고 서 있게 했어요. 그렇게 육칠 일을 서 있으니까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쑤시고 저릿저릿한 게 숨쉬기도 힘들더라고요. 게다가 경찰은 또 “말 안 하면 매달아 놓고 뜨거운 기계로 지지고 물 붓는 걸 반복하면서 ‘불과 얼음, 이중 지옥’을 맛보게 해줄 거야. 그때는 말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거야.”라고 위협까지 했어요. 그 말에 형제자매들이 경찰한테 고문당하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덜컥 겁이 났어요. ‘만약 내가 고문당하면 버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자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조용히 기도드렸어요. 경찰은 제가 끝까지 실토를 안 하니까 제 머리를 누르고 새빨간 담뱃불을 제 콧구멍에 갖다 댔어요. 뜨겁고 짙은 담배 연기가 콧구멍으로 들어오는데, 너무 매캐해서 숨도 못 쉬겠고, 당장 질식할 것 같았어요. 콧구멍 아래는 담뱃불에 데어 피부가 벗겨져서 따끔거렸어요. 경찰은 또 제 팔을 잡아당겨 라이터 불로 팔을 지졌어요. 뜨거워서 저도 모르게 손을 빼려고 했는데, 경찰이 꽉 잡고 못 움직이게 하는 바람에 두 팔은 수십 초 동안이나 불에 지져졌어요. 정말 누가 제 피부를 찢어 버리는 것처럼 너무 아팠고, 팔에는 계란만 한 궤양이 생겨버렸어요. 그런데도 경찰은 사악한 미소와 눈빛으로 절 쳐다봤어요. 정말 너무 분하면서도 겁이 나기도 했어요. ‘이 악마 같은 자들은 못할 짓이 없는데, 이다음에는 또 어떻게 날 고문할까?’ 저는 마음이 너무 약해졌고 빨리 그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형제자매를 팔아넘기는 유다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는 유다가 되지 않겠다고요. 며칠 뒤에 경찰이 저의 가족들을 불렀어요. 그러고는 제가 ‘3서’에 서명하면 바로 풀어 주겠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큰 붉은 용의 꼬임에 넘어가 제가 서명 안 하면 부자간의 인연을 끊겠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저는 그게 사탄의 간계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부했어요. 그랬더니 경찰은 마지막으로 하룻밤 기회를 주겠다면서 다음 날까지 서명 안 하면 다른 곳에 끌고 가서 제대로 혼내 주겠다고 위협했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겁이 났어요. ‘정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들인 데다 특히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사람들한테는 무자비한지라 내가 정말 서명을 안 하면 어떤 고문을 당할지도 모르잖아. 정말 그 죽기만도 못한 고통스러운 느낌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 게다가 내가 버터지 못하고 유다가 된다면 그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거니까 더는 구원받지 못할 거야. 근데 내가 지혜롭게 ‘3서’에 서명만 하고 마음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나약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3서’에 서명했어요.

경찰은 제가 ‘3서’에 서명한 후에 풀어 줬어요. 집에 돌아갔지만 계속 불안한 거예요. 지혜롭게 대처하는 거로 생각했지만 어쨌든 ‘3서’에 서명한 건 사실이니까 하나님 편에서는 배반의 기호가 된 건데, 하나님께서 날 구원하실지 걱정이 됐어요. 나중에 아버지가 절 데리고 일하러 가려고 하셨는데, 그러면서 주변 친척들이랑 친구들까지 불러서 절 설득시키려고 하셨어요. 그때 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떠나면 안 돼. 내가 떠나면 형제자매들이 나를 찾지 못할 거고, 그럼 나는 다시 하나님 집에 돌아갈 기회가 없을 거야.’ 정말 그 당시 저는 길 잃은 작은 새처럼 홀로 외롭게 알 수 없는 답을 기다리는 느낌이었어요. 6개월 후에 형제자매들이 절 찾아와 본분 이행에 관해 교제를 나눴어요. 저는 제가 아직 하나님 집에 돌아갈 기회가 있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얼른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그 후로는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기든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근데 가끔 형제자매들이 ‘3서’에 서명하는 순간 하나님을 배반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거니까 ‘3서’에는 절대 서명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더구나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볼 때는 더 그랬어요.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 내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지 못하고, 누구든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위엄 있어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나님은 당신을 배반하고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으신다고 하신 거예요. 제가 ‘3서’에 서명해 하나님을 배반한 일이 떠올랐어요. 난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아 도태된 자가 된 게 아닌지, 끝까지 믿어도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는 건 아닌지 싶은 거예요. 특히 하나님의 집에서 찍은 체험 간증 영상을 볼 때면 더 그랬어요. 형제자매들은 잡혀간 후 어떤 고문을 당하든 굳게 서서 증거하고, ‘3서’에 절대 서명하지 않았는데, 저는 고문당하는 고통이 싫어서 ‘3서’에 서명했잖아요.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치의 낙인을 남기고 사탄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분명 크게 실망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럴수록 저는 더 소극적으로 변해갔고, 마음은 칼에 찔린 것처럼 아팠어요. 그러면서 그때 내가 ‘3서’에 서명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엎어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것처럼 일은 이미 벌어졌잖아요. 나중에 하나님 집에서 ‘3서’에 서명한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다음은 제가 제명 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됐어요. 결국 제가 제명되지는 않았지만 전 여전히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협력하는 형제자매들이 체험 간증문을 쓰거나 생명 진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저는 여러 번 제가 그들과 다르다고 느꼈죠. 그들은 모두 형제자매이고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을 기회가 있지만, 나는 다르다고, 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이니까 하나님께서 분명 날 혐오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나 같은 사람은 진리를 추구할 자격도 없고, 끝까지 믿어도 소용없으며, 그저 힘만 쓰는 사람에 불과할 뿐,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본분은 매일 하던 대로 이행했지만 마음은 정말 몹시 고통스러웠어요. 그땐 <네가 만약 봉사자라면>이란 찬양을 자주 들었어요. 가사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신 내용이 있어요. 『네가 정말로 봉사자라면 건성이나 소극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여 봉사할 수 있겠느냐? 내가 너를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때도 내게 머무르며 한평생 봉사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이 찬양을 들을 때면 몹시 감동이 됐어요. 저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설령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신다 해도 저는 끝까지 믿어야겠다고, 하루라도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내가 맡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봤는데, 꼭 저를 두고 하신 말씀 같았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 특수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떠한 과오를 범했거나 어리석은 일, 우매한 일, 무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 어리석은 일, 무지한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의기소침함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의기소침한 정서를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본인의 진심과 본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본분, 의무, 책임을 다하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부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환경과 배경이 임했다 하면 그런 의기소침한 정서가 다시 우위를 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참소한다. ‘너는 그런 짓을 했었잖아. 과거에 그런 인간이었잖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네가 진리를 실행한들 소용이 있을까? 네가 저지른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네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네가 이렇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예전에 범한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늘 자책과 참소가 존재하며, 의문과 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일 때문에 언제나 내면이 불안하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음에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는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과연 사함과 구속을 받을 수 있을지, 자기한테 과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론이 없기 때문에, 그의 깊은 내면은 항상 의기소침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한번 또 한번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일의 경과를 회상하고, 그 일의 전후를 회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죄악감이 든다. 그 일 때문에 수년간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상태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일의 책임자가 돼도 자기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진리 추구를 무엇보다 올바르고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직시한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과거에 범한 잘못, 혹은 자기가 저지른 일이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몹시 안 좋거나 남들에게 정죄와 버림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도 자기를 정죄하리라 여긴다. 앞으로 진리를 추구할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든,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말씀을 했든 그는 줄곧 진리를 추구하는 일을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냐? 그런 일을 체험한 뒤에 최종적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게 딱 제 내적 상태였어요. ‘3서’에 서명한 후로, 저한테는 그게 제 속을 파고드는 가시가 돼서 계속 아프게 찔렀어요. 그리고 저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죠. ‘난 ‘3서’에 서명해서 짐승의 표를 받게 됐는데,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까? 하나님이 원하는 자는 당신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근데 나는 하나님을 증거하기는커녕 ‘3서’에 서명이나 하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수치의 상징이 돼 버렸어.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도태시키신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칼로 에이는 것처럼 아팠는데, 기도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어요. 교회에서 저한테 계속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고,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걸로 마음속의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형제자매들이 ‘3서’에 서명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 마음은 계속 아팠어요. 붙잡혀가서도 굳게 선 형제자매들의 체험을 볼 때면 마음은 더 찔리고 괴로웠어요. 그런 분들이 진짜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대상인 거고, 저처럼 ‘3서’에 서명해 하나님을 배반한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3서’에 서명했다는 현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주 소극적인 상태로 지냈어요. 진리 추구나 생명 진입에도 힘이 나지 않았어요. 전 그냥 영혼 없는 껍데기처럼 느껴졌어요. 매일 그저 일만 했었는데, 맡은 일을 잘해야만 조금이라도 제 과오를 만회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한테서 진리를 추구할 기회를 빼앗지 않으셨고, 오히려 리더 일꾼으로 훈련받을 수 있는 본분을 주셨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도태시키셨다면, 제가 어떻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있었겠어요? 더군다나 하나님 말씀의 공급도 누리지 못했을 거잖아요. 그런데도 저는 계속 하나님을 오해하고 부정적인 상태에 빠져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계속 이렇게 소극적인 상태로 지낸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도태시키는 게 아니라 제가 저 자신을 도태시키는 꼴이 되겠더라고요. 저는 잘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서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맞더라고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문제의 근원을 찾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본분을 이행하거나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이 가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고, 복받으려는 속셈에 대해 인식이 있고 이미 포기했으며, 지금은 그런 속셈에 지배되거나 속박받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복받으려는 속셈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일을 바라볼 때 그저 겉면만 본다. 시련이 닥치지 않았을 때는 사람은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긴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을 위해 계속 헌신하면 자기에게 변화가 있다고, 더는 열성과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해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실제 변화가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종착지, 결말과 직접 관계된 일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그때 본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은 제 실제 내적 상태를 드러내셨어요. 제가 그렇게 소극적이 된 이유는 다 복받으려는 속셈 때문이었더라고요. 하나님을 믿고 나서 정말 열심히 헌신했거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하나님의 집에 와서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했어요. 그때는 이렇게 계속 추구하면 분명 나중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가 체포된 후 고문당할까 봐 무서워서 ‘3서’에 서명했을 때, 더 이상 복받을 희망이 없다고 느꼈어요. 속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오해가 터져 나왔죠. ‘내가 ‘3서’에 서명했는데, 그래도 하나님은 날 용서해 주실까? 만약 하나님이 날 구원해 주지 않으시면, 나한테 무슨 복받을 가망이 있겠어? 복받을 가망이 없으면, 끝까지 믿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정말 너무나도 소극적으로 변한 거예요. 특히 나중에 리더가 제가 ‘3서’에 서명한 사실을 파악할 때, 전 언제 제명될지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당장은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받고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지만, 도태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복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마음은 큰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처럼 괴로웠어요. 무슨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늘 소극적이고 고통에 휩싸여 있었고, 본분을 이행하거나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는 전혀 힘이 나지 않았어요. 보니까 저는 복을 받으려는 욕심이 너무 강하더라고요. 여태까지 버리고 헌신했던 목적이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려는 게 아니라 모두 하나님과 거래를 하기 위함이었어요. 내가 이득을 볼 수 있을 때는 힘이 넘쳤지만 복을 받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 됐어요. 저의 이런 모습이 불신파랑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생각해 보면 전 원래 피조물이고, 티끌만도 못한 존재인데, 이런 제가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진리를 누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걸 얻은 거잖아요. 근데 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뻔뻔하게 하나님께 천국의 복을 토색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복을 받지 못할 것 같을 땐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의기소침해졌어요. 정말 너무 인성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걸 깨닫게 되자 저는 깊이 후회했어요. 그리고 복을 바라던 속셈을 내려놓고 회개한다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조금 깨닫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과오와 오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말을 했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거부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시험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배반했고, 어떤 사람은 체포된 후 ‘3서’에 서명해 하나님을 배반했다. 또 어떤 이는 몰래 제물을 훔쳐먹거나 낭비했고, 어떤 이는 늘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해하였으며, 어떤 이는 패거리를 짓고 다른 사람을 괴롭혀 교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어떤 이는 수시로 관념과 죽음을 퍼뜨려 형제자매들을 해하였고, 어떤 이는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맺고 음란한 짓을 하면서 극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과오와 오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어도 회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본성 본질 그리고 일관된 태도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해야 한다. 회개할 수 있는 자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죽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자는 제명하거나 출교시켜야 한다. …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처분을 내릴 때 당시의 환경과 배경 등 실제 상황에 근거하고, 사람의 모든 행동과 본성 본질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억울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일면이다. 예를 들어, 하와가 뱀에게 유혹되어 선악과를 먹었을 때 당시 여호와는 하와를 질책하며 “먹지 말라고 했거늘 왜 먹었느냐?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뱀의 말이 너를 유혹하는 것임을 알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호와는 하와를 이렇게 질책하지 않았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사람의 본능이 어떤 것인지, 사람의 본능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사람이 자신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등을 전부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사람에게 처분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대해 혐오하거나 반감을 가질 때, 혹은 그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말을 할 때, 하나님은 사람의 내적 상태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감찰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는 신성뿐이야.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사람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도 않으시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은 그를 징벌하실 거야.’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역, 사람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단단히 틀린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정할 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근거하며, 각각의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하나님은 공의롭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깊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성경에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째서 예수가 그런 비유를 들었겠느냐?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진실하며,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와 변화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과 패괴된 정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사람이 넘어지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치 어렸을 적 걸음마를 배울 때 신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발이 걸리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잘 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어려움과 연약함, 필요를 알고 있다. 더욱이 사람이 성품 변화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고, 어떤 연약함이 생겨나고, 어떤 실패를 겪을지 잘 알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한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연약하더라도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도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너에게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다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살아남을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를 위한 실행의 길>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나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실 때 일시적인 행동이나 한 가지 과오만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도태시키지 않으신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분량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특별히 이해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판단하시는 주요 기준은 그 사람이 일관되게 보여 주는 모습과 진리를 받아들이는지의 여부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일관되게 보여 주는 모습이 괜찮고, 과오를 저지른 후에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여전히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 주시죠. 다윗의 경우가 그렇죠.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한 후 진심으로 크게 후회해 그 후로 다시는 간음하지 않았는데, 늙어서는 처녀가 몸을 따뜻하게 해 줬어도 가까이하지 않았어요. 다윗은 과오를 저질렀지만 참된 회개를 했기에 하나님은 여전히 다윗을 인정하셨어요. 또 어떤 형제자매들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으며 교회 사역을 심하게 방해해서 제명되었지만 나중에 진정으로 회개해서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복귀하게 됐는데,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구원 사역을 증거하는 체험 간증문을 쓰기도 했어요. 그런 사례를 통해 진정으로 회개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구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반대로 일관되게 보이는 모습이 좋지 않거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정한 회개가 없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정죄와 도태였어요. 어떤 사람을 보면 ‘3서’에 서명한 후에도 자신이 하나님을 배반한 과오를 저지른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교회와 형제자매들의 정보까지 팔아먹기도 하죠. 그런 자들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으시죠. 그런 자는 진리를 싫어하고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죠. 제가 한순간의 연약함 때문에 ‘3서’에 서명했지만 나중에 자책하면서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바뀌려고 했어요. 교회에서도 제가 일관되게 보여 준 모습이 괜찮았고, 본분을 이행한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고 믿음의 분량도 작고 깊이가 없는 데다 ‘3서’에 서명한 후에 크게 후회한 걸 보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줬거든요. 이건 하나님의 긍휼이시죠. 다만 제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다 보니까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건 그저 힘만 쓰는 것에 불과하고 결국엔 토사구팽 될 거라고 하나님을 계속 오해하고 있었어요. 저는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부인하고 있었던 거고,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도 부인했어요. 보니까 저는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정말 눈먼 소경이었어요! 저는 하나님을 패괴된 인간과 같다고 생각했으니, 그게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니고 뭐겠어요?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용서와 관용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러니 제가 다윗을 본받아서 제 과오를 담담하게 직시하고 진정한 회개를 하는 게 맞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든 아니면 도태시키시든 다 순종하고 받아들이고, 저의 미래나 앞날을 걱정하지 않는 게 맞더라고요.

나중에 제가 체포됐을 때 ‘3서’에 서명함으로 실패하게 된 근본 원인이 뭔지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지금은 세상 사람 모두가 시련을 받고 있다. 하나님도 아직 고통받고 있는데, 너희가 고통받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 어떤 사람은 가정의 고통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결혼의 고통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핍박을 당해 안전하게 지낼 곳조차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하느라 마음이 무척 고통스럽다. 지금 너희에게 임한 고통이 바로 하나님이 받는 고통이 아니더냐? 너희는 하나님과 함께 고통받고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이 사람의 고난에 함께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 너희가 그리스도의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해야 마지막에 영광을 얻을 것이다!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냐? 너에게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오늘 겪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알고, 진리를 구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너에게는 고통을 겪어 낼 의지가 생길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말씀을 보면서 제가 ‘3서’에 서명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육신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탄의 생존 법칙을 따랐기에 제 육적인 이익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조금의 어려움이나 고통도 없기를 바랐고, 육체가 고통받는 것도 싫었고, 나아가 어떤 시련이나 환난도 겪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큰 붉은 용의 잔혹한 고문 위협에 직면했을 때, 제 머릿속에는 어떻게 굳게 설지에 대한 생각보다 고문을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마음뿐이었어요. 제가 고문을 견디지 못해 유다가 될까 봐 걱정하면서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3서’에 서명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겉으로 보기엔 제가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완전히 저 자신을 보존하고 육체가 조금도 고통받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어요 저는 ‘3서’에 서명하는 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굴욕적으로 마귀의 비위를 맞췄으니, 사실 그건 유다랑 별반 다를 게 없었어요.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까지도 여전히 내 몸뚱어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참된 증거를 보여 주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육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사탄과 함께 침륜되고 멸망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고난의 상황을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거였죠.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를 때 그랬던 것처럼요. 베드로는 일생 동안 수백 번의 시련과 연단을 겪었는데, 그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했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림으로 역대에 하나님께 온전케 된 첫 번째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또 욥이 시련을 겪을 때도 보면, 순식간에 막대한 재산과 자녀를 잃었고, 온몸에 악창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함으로써 사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완전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죠. 그들과 비교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심한 고문을 겪기도 전에 죽을까 봐 겁이 나 사탄한테 손 들었는데, 온실 속 화초처럼 조금의 비바람도 견디지 못한 거죠. 저는 정말 너무나 연약한 존재였어요! 그래서 이제는 진리를 추구하면서 더 이상 육을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언젠가 다시 붙잡히게 된다 해도, 설령 고문으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느껴져도 굳게 서겠다고 마음먹었어요.

2024년 7월 말, 제가 동양(東陽) 교회에 온 지 얼마 안 돼 인근 교회가 대대적인 체포 사태를 겪었어요. 리더는 저희한테 서둘러 하나님의 말씀 서적들을 옮기라고 지시했죠. 그래서 몇 군데의 보관소를 옮겼는데, 옮기자마자 운전자가 미행당하는 분위기를 느꼈고, 또한 함께 협력했던 형제가 운전자와의 접촉으로 인해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 발생했어요.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저는 속으로 너무나 두려웠어요. 전에 경찰에게 오랫동안 미행당하다가 거의 붙잡힐 뻔했던 일도 생각났고, 유다의 밀고로 인해 제가 경찰의 중점 체포 대상이 된 일도 생각났어요. 이제 겨우 숨어 지내게 됐는데, 함께 협력했던 형제한테도 위험이 생겼으니 만약 그 형제가 미행당하면 저도 피할 수 없을 테고, 경찰이 저를 잡으면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했어요. 근데 그 전에 붙잡혔을 때 ‘3서’ 에 서명했던 과오를 생각하니까 내가 정말 붙잡힌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겠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이상 그런 환경 때문에 가슴 졸이지 않게 됐어요. 게다가 잡히고 안 잡히고는 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일이니까 전 그냥 하나님의 안배와 배치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더라고요. 당장은 말씀 서적들을 잘 정리하는 게 급선무이고, 또 여러 가지 일들도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저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켜야 했어요. 그래서 동역자 형제한테 서적 이동에 대해 묻고, 파악하고, 상의하는 한편, 교회에도 서적 이동 상황을 점검하도록 쪽지를 보냈어요. 이렇게 실행하니까 마음이 훨씬 편해지더라고요. 제가 지금 이런 수확과 변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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