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과오로 오해 속에서 살지 않게 되다

2025.8.1

중국 쑤톈(蘇恬)

2018년 8월, 저는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중공이 줄곧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체포했기 때문에 저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믿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공항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경찰은 제게서 교회 정보를 캐내기 위해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두 발을 붙이고 서 있게 했습니다. 그렇게 엿새에서 이레를 꼬박 서 있었더니 머리가 멍해지고, 두 다리는 저리고 쑤셨으며, 숨도 가빠졌습니다. 경찰은 또 저를 협박했습니다. “네가 불지 않으면 매달아 놓고 ‘냉온탕’ 맛을 보여 주겠어. 고온 기계로 지진 다음 물을 붓는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불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거다.” 경찰에게 혹형을 당하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들이 나에게도 혹형을 가하고 괴롭히면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달라고 조용히 기도드렸습니다. 제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자 경찰은 제 머리를 누르고 시뻘겋게 타는 담배꽁초를 콧구멍에 갖다 댔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자욱한 연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자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질식할 것만 같았고, 콧구멍 아래쪽은 불에 데어 피부가 벗겨지면서 따끔거렸습니다. 경찰은 또 제 팔을 잡아당겨 라이터를 켜고는 불꽃으로 제 팔뚝을 지졌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 했지만 경찰이 꽉 붙들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양팔을 수십 초 동안 지져 대자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팔뚝 아래 피부는 새까맣게 타서 문드러졌습니다. 나중에 피부가 궤양으로 변하면서 달걀만 한 흉터가 남았습니다. 당시 경찰은 옆에서 사악한 미소와 눈빛을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분노가 치밀었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 악마들은 정말이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놈들이야. 앞으로 또 어떻게 나를 괴롭힐지 몰라.’ 저는 너무나 연약해져서 빨리 이 악마의 소굴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유다가 될 수는 없었고, 형제자매를 팔아넘길 수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지 않고, 죽어도 유다는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며칠 후, 경찰은 제 가족을 불러와 저에게 ‘3서’에 서명하라고 하면서 서명만 하면 풀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큰 붉은 용에게 미혹된 아버지는 서명하지 않으면 부자 관계를 끊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탄의 간계임을 알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협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룻밤의 시간을 주겠다.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널 어딘가로 끌고 가서 제대로 손봐 줄 테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특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더 잔인하지. 내가 끝까지 서명하지 않으면 어떤 혹형을 당할지 몰라.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 만약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유다가 되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구원받을 기회를 영영 잃게 될 거야. 머리로만 ‘3서’에 서명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지 않을까?’ 그렇게 저는 육적인 연약함을 이기지 못하고 ‘3서’에 서명했습니다.

‘3서’에 서명하자 경찰은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제 마음은 늘 불안했습니다. 지혜롭게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3서’에 서명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을 배반한 낙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래도 나를 구원해 주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나가 일을 하게 하려고 친척과 친구들을 불러 저를 설득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가면 안 돼. 내가 가 버리면 형제자매들이 나를 찾을 수 없을 테고, 그럼 다시는 하나님 집에 돌아갈 기회가 없을 거야.’ 그때 저는 길 잃은 작은 새처럼 외롭게 알 수 없는 답을 기다리는 심정이었습니다. 보름 후, 형제자매들이 저를 찾아와 본분 이행에 대해 교제해 주었습니다. 다시 하나님 집에 돌아올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까지 얻게 되자 저는 벅찬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올 뻔했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교회가 어떤 본분을 맡기든 저는 최선을 다해 잘 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때때로 형제자매들이 ‘3서’에 서명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곤 했습니다. 그들은 ‘3서’에 서명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짐승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 내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지 못하고, 누구든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위엄 있어 거스를 수 없으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에게는 다시 긍휼을 베풀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3서’에 서명해서 하나님을 배반했으니 하나님께 이미 도태된 것이 아닐까? 끝까지 믿는다 해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게 아닐까?’ 특히 하나님 집에서 배포한 체험 간증 영상을 볼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체포된 후 어떤 혹형을 당하더라도 굳게 서서 증거하며 단호히 ‘3서’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혹형의 고통을 받지 않으려고 ‘3서’에 서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치욕의 흔적을 남겨 사탄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분명 저에게 완전히 실망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저는 소극적이 되었고, 마음은 칼로 찌르는 듯 괴로웠습니다. 그때 ‘3서’에 서명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 집에서 ‘3서’에 서명한 사람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저 또한 조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3서’에 서명한 그 사람들이 바로 폭탄을 터뜨려 스스로를 산산조각 낸 것 아니겠느냐?(<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은 ‘3서’에 서명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을 혐오하시는데, 저는 ‘3서’에 서명했으니 하나님께 분명 정죄받고 도태되었을 것이고, 다음은 제명될 차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교회에서 저를 제명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여전히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협력하는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 체험 간증문 작성이나 생명 진입에 관해 나누는 것을 볼 때면, 저는 그들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모두 형제자매이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을 기회가 있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분명 저를 혐오하실 거라는 생각에 저 같은 사람은 진리를 추구할 자격조차 없다고 여겼습니다. 끝까지 믿는다 해도 소용없고, 어쩌면 봉사자에 불과할 것이며, 구원은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 것입니다. 저는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매일 기계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뿐이었고,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저는 <당신이 힘쓰는 자라면>이라는 하나님 말씀 찬양을 자주 들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정말로 봉사자라면 건성이나 소극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여 봉사할 수 있겠느냐? 내가 너를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때도 내게 머무르며 한평생 봉사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이 찬양을 들을 때마다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피조물이니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저를 원치 않으신다 해도 저는 끝까지 믿을 것이며, 하루라도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해낼 것입니다!

하루는 제 상태에 꼭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 특수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떠한 과오를 범했거나 어리석은 일, 우매한 일, 무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 어리석은 일, 무지한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의기소침함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의기소침한 정서를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본인의 진심과 본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본분, 의무, 책임을 다하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부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환경과 배경이 임했다 하면 그런 의기소침한 정서가 다시 우위를 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참소한다. ‘너는 그런 짓을 했었잖아. 과거에 그런 인간이었잖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네가 진리를 실행한들 소용이 있을까? 네가 저지른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네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네가 이렇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예전에 범한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늘 자책과 참소가 존재하며, 의문과 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일 때문에 언제나 내면이 불안하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음에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는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과연 사함과 구속을 받을 수 있을지, 자기한테 과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론이 없기 때문에, 그의 깊은 내면은 항상 의기소침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한번 또 한번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일의 경과를 회상하고, 그 일의 전후를 회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죄악감이 든다. 그 일 때문에 수년간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상태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일의 책임자가 돼도 자기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진리 추구를 무엇보다 올바르고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직시한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과거에 범한 잘못, 혹은 자기가 저지른 일이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몹시 안 좋거나 남들에게 정죄와 버림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도 자기를 정죄하리라 여긴다. 앞으로 진리를 추구할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든,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말씀을 했든 그는 줄곧 진리를 추구하는 일을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냐? 그런 일을 체험한 뒤에 최종적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제 상태였습니다. ‘3서’에 서명한 후, 그 일은 제 마음속 가시처럼 저를 괴롭혔고, 저는 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자문했습니다. ‘나는 ‘3서’에 서명했고, 짐승이라는 낙인이 찍혔는데,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해 주실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사람인데, 나는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3서’에 서명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치욕의 표식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도태시키신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제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듯 괴로웠고, 기도조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비록 교회가 여전히 저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어 마음속으로 매우 감사했고, 최선을 다해 협력하려 했지만, 내면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3서’에 서명한 사람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은 은근히 아팠고, 형제자매들이 체포되어 굳게 서서 증거한 체험을 볼 때는 더욱 가슴이 찢어지는 듯 괴로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대상이고, 저는 ‘3서’에 서명하여 하나님을 배반했으니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3서’에 서명했다는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저는 늘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살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에 진입하는 데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마치 영혼 없는 껍데기 같았고, 매일 일만 할 줄 알았습니다. 일을 잘해야만 제 과오를 만회할 수 있고,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사실 하나님께서 제가 진리를 추구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리더 일꾼의 본분을 이행하며 훈련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를 도태시키셨다면 제가 어떻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공급받는 것은 더더욱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하나님을 오해하며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 모릅니다! 만약 제가 계속 이렇게 소극적으로 지낸다면, 그건 하나님께서 저를 도태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스스로를 망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잘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문제의 근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거나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스스로 가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고, 복받으려는 속셈에 대해 인식이 있고 이미 포기했으며, 지금은 그런 속셈에 지배되거나 속박받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복받으려는 속셈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일을 바라볼 때 그저 겉면만 본다. 시련이 닥치지 않았을 때는 사람은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긴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을 위해 계속 헌신하면 자기에게 변화가 있다고, 더는 열성과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해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실제적인 변화가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종착지, 결말과 직접 관계된 일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그때 본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께서 저의 실제 상태를 폭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토록 소극적이었던 것은 복 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열심히 헌신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이렇게 추구해 나가면 나중에 분명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체포된 후 혹형이 두려워 ‘3서’에 서명하자, 복 받을 희망이 사라졌다고 느꼈고,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오해가 싹텄습니다. ‘내가 ‘3서’에 서명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실까?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내게 복 받을 희망이 있을까? 복 받을 희망이 없다면 끝까지 믿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렇게 제 마음은 몹시 소극적으로 되었습니다. 특히 나중에 리더가 제가 ‘3서’에 서명한 일에 대해 알아보자, 저는 언제가 교회에서 제명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지만, 도태될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복 받을 희망이 없다고 여기자, 마음속에 큰 돌덩이가 얹힌 듯 괴로웠고, 온몸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늘 소극적이고 고통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에 진입하는 데 전혀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복 받으려는 욕망이 너무나 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가 버리고 헌신한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과 거래를 한 것입니다.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는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넘쳤지만, 복을 얻지 못하자 극도로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저의 이런 추구가 불신파와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저는 본래 피조물이고, 흙먼지만도 못한 존재인데, 오늘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진리를 누릴 수 있었으니, 저는 실로 과분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 모든 것에 조금도 감사하지 않고, 염치도 없이 하나님께 천국의 복을 달라고 요구했으며, 복을 받지 못하자 소극적으로 대항했습니다. 저는 정말 인성이 없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무척 후회스러웠고, 복 받으려는 속셈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더 보고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과오와 오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말을 했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거부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시험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배반했고, 어떤 사람은 체포된 후 ‘3서’에 서명해 하나님을 배반했다. 또 어떤 이는 몰래 제물을 훔쳐먹거나 낭비했고, 어떤 이는 늘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해하였으며, 어떤 이는 패거리를 짓고 다른 사람을 괴롭혀 교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어떤 이는 수시로 관념과 죽음을 퍼뜨려 형제자매들을 해하였고, 어떤 이는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맺고 음란한 짓을 하면서 극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과오와 오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어도 회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본성 본질 그리고 일관된 태도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해야 한다. 회개할 수 있는 자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죽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자는 제명하거나 출교시켜야 한다. …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처분을 내릴 때 당시의 환경과 배경 등 실제 상황에 근거하고, 사람의 모든 행동과 본성 본질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억울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일면이다. 예를 들어, 하와가 뱀에게 유혹되어 선악과를 먹었을 때 당시 여호와는 하와를 질책하며 “먹지 말라고 했거늘 왜 먹었느냐?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뱀의 말이 너를 유혹하는 것임을 알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호와는 하와를 이렇게 질책하지 않았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사람의 본능이 어떤 것인지, 사람의 본능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사람이 자신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등을 전부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한 사람을 처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든 반감을 갖든, 아니면 증오하든 주로 그 사람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 근거한다.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말을 하든 하나님은 모두 감찰하고 있으며, 또한 모두 이해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감찰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는 신성뿐이야.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사람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도 않으시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은 그를 징벌하실 거야.’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역, 사람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단단히 틀린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정할 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근거하며, 각각의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하나님은 공의롭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깊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성경에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째서 예수가 그런 비유를 들었겠느냐?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진실하며,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와 변화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과 패괴된 정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사람이 넘어지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치 어렸을 적 걸음마를 배울 때 신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발이 걸리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잘 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어려움과 연약함, 필요를 알고 있다. 더욱이 사람이 성품 변화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고, 어떤 연약함이 생겨나고, 어떤 실패를 겪을지 잘 알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한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연약하더라도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도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너에게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다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살아남을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를 위한 실행의 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받을 수 있는지 판단하실 때는 한순간의 과오만을 근거로 정죄하고 도태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량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도 헤아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시는 주된 근거는 그 사람의 평소 행실과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평소 본분을 잘 이행하던 사람이 과오를 저질른 후에 진리를 받아들여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푸십니다. 다윗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은 뒤 마음속으로 극심한 후회를 했고, 그 후로는 다시는 음란한 죄를 짓지 않았으며, 노년에 소녀가 이불을 덮어 주어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비록 과오가 있었지만 진심으로 회개했기에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인정하셨습니다. 또 어떤 형제자매들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어 교회 사역을 심각하게 교란하여 출교되었지만, 그 후 진심으로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 집으로 받아들여졌고, 자신의 체험 간증문을 써서 그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저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긍휼과 구원이며, 반대로 평소 행실이 좋지 않거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정죄와 도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3서’에 서명한 후, 하나님을 배반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조금도 인식하거나 회개하지 않고, 심지어 교회를 팔고 형제자매를 팔아넘기기까지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진리를 싫어하고 양심과 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체포되었을 때는 본분을 이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체험이 얕고 분량이 작았기에 한순간의 연약함으로 ‘3서’에 서명했지만, 그 후 마음속으로 무척 자책하고 후회했으며 회개하고 변화되기를 원했습니다. 교회는 평소 저의 본분 이행 태도를 보고 한 번의 기회를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긍휼이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을 오해하며, 제 자신이 단지 봉사자일 뿐이고, 봉사하는 일이 끝나면 도태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를 봉사자로 이용만 하시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패괴된 사람처럼 매사 사람을 계산하는 분으로 여겼으니,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경외하는 마음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저는 하나님의 공의를 철저히 부인했고, 사람을 최대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마저 부인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조금도 알지 못했으니, 정말 너무나 눈뜬장님이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나아간다면 결코 하나님의 용서와 관용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다윗을 본받아 제 과오를 담담히 마주하고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좋은 결말이 있든 없든 저는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제 앞날과 퇴로를 위해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체포되어 ‘3서’에 서명하고 실패했던 근원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지금은 세상 사람 모두가 시련을 받고 있다. 하나님도 아직 고통받고 있는데, 너희가 고통받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 어떤 사람은 가정의 고통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결혼의 고통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핍박을 당해 안전하게 지낼 곳조차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하느라 마음이 무척 고통스럽다. 지금 너희에게 임한 고통이 바로 하나님이 받는 고통이 아니더냐? 너희는 하나님과 함께 고통받고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이 사람의 고난에 함께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 너희가 그리스도의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해야 마지막에 영광을 얻을 것이다!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냐? 너에게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오늘 겪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알고, 진리를 구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너에게는 고통을 겪어 낼 의지가 생길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제가 ‘3서’에 서명한 근원은 바로 스스로 육체를 너무나 아꼈기 때문이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을 신봉하며, 개인적인 육체의 이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조금의 어려움이나 고통도 없기를, 육체가 고난받지 않고, 어떠한 시련이나 환난도 겪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큰 붉은 용의 혹형과 위협에 직면했을 때, 저는 어떻게 굳게 서서 증거할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혹형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혹형의 고통을 덜 받기 위해 ‘3서’에 서명했던 것입니다. 저 자신을 보전하고 육체가 고난받지 않게 하려고 마귀에게 무릎 꿇고 굴복하며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했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했으니, 저의 이런 행위가 유다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또한, 하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려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며, 고난의 환경을 통해서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주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는 일생 동안 수백 번의 시련과 연단을 겪으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했고, 마침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경지에 이르러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역대 최초로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욥은 시련이 닥쳐 순식간에 막대한 재산과 자녀를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지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함으로 사탄이 소문만 듣고도 벌벌 떨며 허둥지둥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욥 또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니 저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심각한 혹형을 당하기도 전에 죽을 듯이 두려워하며 사탄과 타협했으니, 온실 속 화초처럼 작은 비바람조차 견디지 못하는, 정말 너무나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더는 육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어느 날 다시 체포된다면, 사탄에게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더라도 굳게 서서 증거할 것입니다.

2024년 7월 말, 제가 둥양 교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근 교회가 대대적인 체포를 당했고, 리더는 우리에게 서둘러 하나님 말씀 서적 이전을 도우라고 안배했습니다. 하지만 서고 몇 군데를 막 옮겼을 때, 기사님이 미행당하는 것 같았고, 파트너 형제가 그 기사님과 접촉한 적이 있어 형제 역시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두려웠습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쫓긴 끝에 하마터면 체포될 뻔했던 일, 유다가 저를 팔아넘겨 경찰이 저를 중점 체포 대상으로 찍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파트너 형제가 미행당하면 저 역시 꼼짝없이 당할 것이고, 경찰이 저를 잡으면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체포되어 ‘3서’에 서명하며 남긴 과오를 생각하자, 제 마음속에 한 가지 강렬한 다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정말 잡히게 된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더는 환경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체포될지 아닐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은 서적을 급히 이전해야 하고, 시급히 처리해야 할 여러 사역도 있으니, 저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협력하는 형제와 서적 이전을 상의하고 안배하는 동시에, 교회에 편지를 써서 이전 진행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지금 제가 이 정도의 인식과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이끄심 덕분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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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책임을 맡는 게 두렵지 않아요

중국 허난 청눠 2020년 11월의 어느 날, 리더가 저희 팀을 찾아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리더는 팀에서 글 편집 작업을 책임질 팀장을 뽑아야 한다고 했고, 형제자매들은 놀랍게도 저를 팀장으로 선출하였습니다. 저는 머릿속이...

소극성과 오해가 드디어 사라지다

한국 유신(有心)몇 년 전, 저는 교회에서 동영상 제작 훈련을 했습니다. 한동안 본분 이행의 성과가 좋지 않았는데, 제작한 동영상 두 편이 구상에 문제가 있어 잠시 제쳐 둔 상태였죠. 당시 저는 무척 괴로웠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무시할 것...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한 결과

중국 뤄잉(羅英)2013년 저는 본분 이행에서 원칙을 구하지 않고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처리해서 교회의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시켰다는 이유로 거짓 리더로 판정되어 교체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매우 소극적이게 되었고 또 많이 통회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저의 경계심과 오해가 사라졌습니다

중국 충신(重新)2023년, 저는 교회에서 복음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역 능력이 부족하여 팀장 직책을 감당하지 못하고 교체되었고, 리더는 제 자질에 맞춰 복음 전도 본분을 안배해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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